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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바랜 다이어리 속 시 한 편 - 심보선의 <청춘>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1. 5. 16.

이번 주는 주말 내내 비가 오네요.🌧

날이 점점 더워지면서 꿉꿉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가만히 누워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딘가 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은 제 다이어리 속에 꼭꼭 숨겨놓았던 시 한 편을 들고 왔습니다.

다이어리는 띄엄띄엄이라도 꾸준히 쓰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심보선 시인의 <청춘>은 20대 초반 무렵 저의 다이어리에 항상 적혀 있던 시예요.

강의를 듣다가도 집중이 안될 때면 한 번씩 다시 읽곤 했는데,

읽을 때마다 새롭게 보이고 언제 읽어도 공감이 많이 가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랍니다.

 

 

청춘 - 심보선

거울 속 제 얼굴에 위악의 침을 뱉고서 크게 웃었을 때 자랑처럼 산발을 하고 그녀를 앞질러 뛰어갔을 때 분노에 북받쳐 아버지 멱살을 잡았다가 공포에 떨면 바로 놓았을 때 강 건너 모르는 사람들 뚫어지게 노려보며 숱한 결심들을 남발했을 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을 즐겨 제발 욕해달라고 친구에게 빌었을 때 가장 자신 있는 정신의 일부를 떼어내어 완벽한 몸을 빚으려 했을 때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 그림자가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에서 그 그림자들 거느리고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사랑한다는 것과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이 같은 말이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그러니까 말하자면 너무너무 살고 싶어서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을 때 그때 꽃피는 푸르른 봄이라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청춘이라는

 

이 시를 읽을 때면 수많은 때가 있지만

그때 상황에 맞게 더 눈에 들어오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이전에는 "매일 밤 치욕을 우유처럼 벌컥벌컥 들이켜고 잠들면 꿈의 키가 쑥쑥 자랐을 때"라는

부분에 공감을 많이 했었답니다.

무언가 부조리한 일을 겪거나 다른 이들에게 무시당했을 때

침대에 누워 울면서 꾹꾹 다짐했던 때가 떠오르네요.

지금은 "솔직히 말하자면 아프지 않고 멀쩡한 생을 남몰래 흠모했을 때" 부분이 가장 와 닿습니다.

저에게는 이 부분이 '멀쩡한 생'이라는 불가능을 바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이의 '완벽해 보이는 생'을

남몰래 시기하는 것으로도 느껴지네요.

여러분은 어떤 시가 가장 눈에 들어오시나요?

저는 내일이 되면 또 다른 부분이 눈에 들어올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이 시를 다이어리에 다시 적어보았답니다.

 

 

좋아하는 시를 필사하다 보면 이전에는 눈치채지 못했던

새로운 해석을 발견하기도 한답니다.

좋아하는 시가 있다면 여러분도 다이어리나 노트에

옮겨 적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ㅎㅎ

비가 많이 오네요.

모두 편안한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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