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가 실감할 수 있는 ‘사건’으로 다가온 것은 성인이 되고 난 이후였다. 학창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운 근현대사는 어쩐지 연도와 날짜만 남아 있었고,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역사책을 자진해서 들여다보는 일은 없었다. 역사, 중요하지, 알아야지, 되뇌었지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봐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미래에 도움이 될 자격증이라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은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내가 처음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나서였다. 당시 시체 위에 시체가 덮인 더미 사이에서 자신의 시체 주위를 서성이는 소년의 시점을 읽었을 때 매우 충격을 받았었다. 책을 읽고 눈물을 흘리는 일은 잘 없었는데, 『소년이 온다』를 보고는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들 중에서 가장 특별한 존재는 환자복을 입은 젊은 남자였는데, 가마니를 가슴에 덮고 누운 그는 누구보다도 청결했어. 그의 몸을 누군가가 씻어주었어. 환부를 꿰매고 약을 발라주었어. 그의 머리에 친친 둘러진 붕대가 어둠속에 하얗게 빛났어. 똑같은 죽은 몸인데, 누군가의 손길이 남아 있는 그 몸이 한없이 고귀해 보여서 나는 이상한 슬픔과 질투를 느꼈어. 몸들의 높은 탑 아래 짐승처럼 끼여 있는 내 몸이 부끄럽고 증오스러웠어.
그래, 그 순간부터 내 몸을 증오하게 되었어. 고깃덩어리처럼 던져지고 쌓아올려진 우리들의 몸을. 햇빛 속에 악취를 뿜으며 썩어간 더러운 얼굴들을.
― 『소년이 온다』 p.53
이번 <전라도닷컴> 5월호는 ‘다시 오월’이라는 제목의 기획특집으로 채워져 있다. 당시 광주기독병원의 풍경, 혼란한 상황 속에서 투사회보를 만들던 박용준 씨의 이야기, 유학을 앞두고 장재철 씨를 떠나보낸 어매 김점례 씨의 이야기 등, 새싹 돋아나는 1980년 5월에 생을 달리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아 여전히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을 담고 있다.
임경찬씨는 영안실에서 가족이 시신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얼굴이 아니라 소지품인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총상으로 죽은 시체들은 얼굴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해 시체 옆에 신발, 옷가지, 떨어져나간 이빨, 차고 있던 시계 등을 놔뒀다. 한 꼬마의 시체 옆에는 구두 한 짝만 두기도 했다. 놔둘 게 없었다.”
― <전라도 닷컴> p.12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글을 읽거나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나의 미간은 항상 찌푸려져 있었다. 전해 듣는 이야기로 상황을 짐작해볼 뿐이었지만 그조차도 견디기 힘들 만큼 참혹한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장례도 치르지 못할 정도로 많은 시신이 나왔다. 얼굴을 알아볼 수조차 없이 훼손된 시신을 보며 내가 찾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 사람일리 없다고 부정했던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때는 또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리고 그마저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또 어떻게 살아갈까.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마음이 너무 아리다.
학살자는 한번도 뉘우친 적이 없는데, 오월 이후 어매는 아들의 죽음을 당신 탓인 양 여기며 살아왔다.
― <전라도 닷컴> p.21
다시 오월이 온다. “오월이 올 때보다 지나갈 때가 더 서운하고 더 아퍼. 올해는 뭣이 될 것인가 기대했다가 허망하게 가불문, 내가 죽기 전에 진상규명이 다 되고, 전두환이가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처벌을 받아야 한디. 그것을 못보고 죽을랑가. 자꼬 나이는 묵어가고.”
― <전라도 닷컴> p.25
사건이 일어나고 40여년이 지났다. 당시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한 톨도 듣지 못했던 우리 부모님도 이제 그 시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아이들도 학교에서 5.18이 무엇을 뜻하는지 배우고, 공부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당시 광주에 계엄령을 내렸던 전두환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최종판결 8개월 만에 특별사면 되었다. 어떠한 사과나 반성도 없이. 그에게 선고된 2,200억원은 완납할 기세도 없어 보인다.
모든 역사는 피상적으로 바라보면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인다. 고작 한두 줄로 수만, 수천 명의 죽음을 설명할 수 있다. 너무 쉬워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죽어간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면면을 살펴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 사람이 바로 내 옆에서 살아 움직이던 가족이고, 친구이고, 연인이었을 때, 혹은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하나의 인생을 돌아보면 수만, 수천의 인생들이 얼마나 가슴 아픈 죽음을 맞이했는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상황을 목격하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또한.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 한강 『소년이 온다』 p.135
다시, 오월이 왔다. 오늘이 혹자에게는 평범한 하루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40여 년이 흘러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내가 살아 있다는 치욕을 또 다시 맛보는, 여느 때보다 고통스러운 하루가 돌아왔다.
2021년 5월 18일,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대답을 들려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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