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백한 언어로 차곡히 담은 ‘삶의 굴곡과 마디’

조성래 시인 일곱 번째 시집 ‘쪽배’

 

 

조성래(62)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쪽배>(산지니)는 아주 담백하고 슬픈 시집이다. 요즘 어렵게 시를 쓴다고 야단들이지만 그는 쉽게 읽히는 시를 쓴다. 하지만 그 언어들이 가볍지 않은 것은 삶의 언어들이기 때문이다. 시 언어들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야 하며,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한다는 태도가 읽힌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은 일어난다. 시인은 근년 아픔을 겪었다. ‘허공’이란 시를 보면 요양병원에서 ‘외동딸이 자기를 데리러 온다고/ 눈 내리는 허공만 하염없이 가리킨다’는 노파가 나오고, ‘오래 투병해온 노파의 딸도 또한/ 병 깊어 하루하루 여위어간다’(61쪽)고 했는데 노파와 외동딸은 그의 장모와 부인이다. 시인과 같이 살던 두 사람은 모두 근년에 세상을 떠났다.

투병하던 아내 옆을 지키는 일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알 수 없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운명에 설정된 장치가 무엇인지/ 암호가 무엇인지/ 왜 갑자기 세상은 흑백필름으로 흐려져/ 나를 먹먹하게 하는지/ 어찌하여 지상의 자물쇠는 나를 병동에 가두어/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지’(‘덫’ 중에서). 그 아내가 흔적도 없이 훌쩍 떠나간 것이다. ‘나에게 구원 요청하다가/ 어느 아침, 흔적도 없이 잘려나간 그녀/ 내 사랑 벚꽃나무’(‘비가’ 중에서).

 

 

조 시인은 1984년 무크 <지평>, 1989년 계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고교 국어교사로 34년간 봉직한 학교에서 올 초 정년 1년을 남겨두고 명예퇴직했다. 그는 대금을 멋들어지게 잘 불고, 팔만대장경이 있는 경남 합천 출생으로 불경을 줄줄 외는 천주교 신자다. ‘텅 빈 마음으로 대금 불기 좋지/ 굴곡 많은 인생살이 말 못할 사연 많아’(‘대금’ 중에서). 그는 젊은 시절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갔다가 힘들어 곧바로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어느 날 눈 속을 걸어/ 해인사 장경판전에 닿기까지/ 거기 닿아, 지친 몸 내려놓고 시린 마음으로/ 경판의 문구 하나 돋을새김하기까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눈 내리는 소리에 귀 열고/ 내가 누구인지 생사의 너머 어디인지/ 몸 바뀐 글자들 경판에서 더듬다가/ 문득, 내 안의 큰 고요 대면하기까지/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팔만대장경’ 중에서).

‘내 안의 큰 고요’는 우리가 떠나온 고향, 마침내 이르러야 할 안식처일 것이다. 그곳을 향해 가는 것이 삶의 길이다. ‘아무리 애써도 단숨에 넘을 수 없는 아슬아슬한 장고개 (중략) // 세상 길 가도 가도 아슬한 고개’. 문현동과 우암동 사이에 ‘장고개’가 있는데 그런 고개를 넘어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가자, 이 몸 낙타야/ 목마른 시간 너머 팍팍한 능선 너머/ 오늘 하루 또 살아내야 하는/ 나를 견디며 걷자’(‘이 몸, 낙타’ 중에서). 아, 우리는 사막을 걷는 낙타인 것이다. 그 험로에서 ‘집도 어찌 그리 가난하던지/ 이 골짝에 시집 와서 참 많이 굶었니라/ 뼈 빠지게 농사지어도 묵을 거는 없고’로 이어지는 ‘나무실 합천이씨’라는 그의 ‘어머니 경전’을 새기고는 하는 것이다.

그는 지금 홀로다. ‘그대 이별하고 지상의 빈방에 갇힌 나’(‘하늘통신’ 중에서) 혹은 ‘천천히 물 아래 가라앉는’(‘하늘거울, 쪽배’ 중에서) 늪에 잠겨 있는 쪽배 같은 신세다. 눈물 없이 독한 술도 마시면서 그는 말한다. ‘먼저/ 천상으로 올라간 그대/ 잠시 내려와/ 숲에서 한나절 놀다 가면 안 될까,/ 노랑부리 지저귀는/ 우리 새끼들 함께!’(‘가족’ 중에서). 고향과 도회지 사이, 합천 언저리에 폐사지인 영암사지가 있다. ‘나, 한 그루 은행나무로 물들어/ 그대에게 닿을 수 있다면/ 온몸 황홀하게 물들어/ 그대 마음 어귀에 놓일 수 있다면/ 가을저녁 폐사지에서 깊은 적막/ 홀로 밝혀도 좋으리’(‘폐사지에서’ 중에서). 그는 지금 아내가 떠나고 없는 삶의 폐사지에서 시로 수행 중이다.

시인은 최계락문학상, 김민부문학상을 수상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출처: 부산일보

알라딘: 쪽배 (aladin.co.kr)

 

쪽배

조성래 시인의 시집으로 이끌림 혹은 부름의 의식이 발현하는, 생명현상을 표현한 시부터 사별한 아내를 생각하며 쓴 시까지 총 예순 편의 작품을 선보인다.

www.aladin.co.kr

 

 

Posted by 부산에서 책 만드는 이야기 : 산지니출판사 블로그 제나wp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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