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미세한 균열이 부른 삶의 파국

서정아 소설집 ‘오후 네 시의 동물원’

- 2004년 등단 … 7년 만에 두 번째 책
- 누구나 겪는 불안 소재로 단편 8편
- 예민하고 촘촘한 글로 긴장감 부여


인생을 덮쳐오는 어마어마한 사건보다 ‘일상에 끼어드는 불안’이 어쩌면 더 무섭다. 가까운 사람도 알지 못하고 나조차 외면하고 살지만, 불안은 미세한 균열을 통해 독한 연기처럼 스며든다.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또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을 상상하며 남몰래 밤잠을 설친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서정아 소설가의 두 번째 소설집 ‘오후 네 시의 동물원’의 단편들은 어느 순간 침입해 일상을 잠식하는 불안을 다룬다. 8편 소설 속 에피소드는 현대의 보통사람이 한 번쯤은 겪어봄직한 일들이라서 더 서늘하다. 어떤 사건과 그로 인해 일어난 심리의 변화를 관찰하는 작가의 예민하고 촘촘한 글이 긴장감을 부여한다.

표제작 ‘오후 네 시의 동물원’은 각각 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부부의 평범하지만 위태로운 심리를 들여다 본다. 중국 가오슝으로 가족여행을 왔지만 남편 상욱은 내내 시큰둥하다. 아내 도연은 이런 남편에게 마음이 상한다. 고생해서 찾아온 동물원은 시설이 시원찮고, 남편은 짜증난 기색이 역력하다. 철이 들어서 눈치를 보는 남편의 딸 은비도 애처롭고 어려서 눈치 없이 떼쓰는 자신의 아들 은호도 힘든데, 남편이 화장실에 간 사이 몸집이 큰 야생 원숭이 한마리가 남은 세 사람을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어딘지도 모르고’의 진오는 새벽 출근길에 사람을 치어 사망하게 한다. 결정적인 과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고 합의금이 유족의 어려운 형편에 오히려 도움이 됐을 거’라고 자위하던 진오와 아내 경화는 아들 민재가 이 일로 학교에서 따돌림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둘러 신도시로 이사한다. 새 아파트에서 계급 상승이라도 이룬 듯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려 애쓰던 어느 날 민재의 귀가가 늦어지고 진오의 휴대폰에는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전화가 걸려온다.

‘조금 언성을 높였을 뿐’이라는 단편 제목은 이미 생활에 내재된 불안과 결핍을 암시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인양 외면하던 불행을 직시하게 되는 순간, 단지 평소보다 조금 언성을 높였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상황은 예전과 달라져 있다. 강은 아름다운 아내 진이 자랑스럽다. 얼마 전 골프장에서 자신이 친 공이 아내의 눈을 실명시키지 않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다고 지금 불행한 것은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은 가사도우미를 해고하는 과정에 일어난 일로 강에게 히스테리를 부린다.

 

두 번째 소설집 ‘오후 네 시의 동물원’을 펴낸 서정아 소설가. 작가 제공


서정아 소설가는 “사람 간, 특히 가족 간에 발생하는 균열을 다루고 싶었다”고 이번 작품집을 소개했다. “어떤 계기로 인한 균열이 생겼을 때 가족간의 관계에서 (모른 척 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일들, 견디고 살려고 하지만 어느 순간 무너져 버리는 지점, 작은 일로 시작된 파국 그런 것에 관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는 2004년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지만, 그 이후 육아 등 생활을 해내기 바빠 등단 10년 만에 2014년 소설집 ‘이상한 과일’을 내고 또 한 동안 쉬었다. 그런 그에게 이번 소설집은 작가로서 새출발 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개인 간의 관계에 집중해왔는데 이제 조금 더 범위를 넓혀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관해 쓰고 싶다”는 그는 “조금 더 시간과 힘을 내서 이른 시일 내에 장·단편으로 독자를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

 

출처: 국제신문

 

알라딘: 오후 네 시의 동물원 (aladin.co.kr)

 

오후 네 시의 동물원

서정아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일상의 귀퉁이 한쪽이 깨진 채 오늘을 살아내는 인물들의 모순적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www.aladin.co.kr

 

 

Posted by 부산에서 책 만드는 이야기 : 산지니출판사 블로그 제나wp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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