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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나'의 근원을 찾아서, 『뿌리』 서평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22. 3. 11.

한국인인 아버지와 덴마크인인 어머니 아래에서 태어나 자란 카이. 미혼모인 엄마 아래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미리암. 그리고 그들의 사이에서 태어난 수이. 한국계 덴마크 작가 에바 틴드의 『뿌리』의 주 등장인물이다.

세 인물이 타지로 여행을 떠나 많은 사람을 만나며 상승하향하는 삶과 그들이 자아를 찾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나의 자아는 무엇인지, 나의 근원은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보게 될 것이다. 인간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해보아야 한다.

미리암과 수이가 카이의 집을 떠나, 슬픔과 고독함을 느끼던 초반 카이의 모습은 약했고 그를 떠난 두 사람에게 미련이 가득해 보였다. 인도 오로빌로 여행을 떠난 그는 자신이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가 누구인지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하며 안정기에 접어든다. 이는 카이의 편지에서 알 수 있다.

사랑하는 수이
너는 집을 나가 독립했고, 나는 무기력한 공허감에 빠져 있어. 이런 내 모습을 네겐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 나는 직장에 나가는 것도 포기하고, 하루 종일 울고 있어. 눈물을 그칠 수가 없구나. 나도 이런 내 모습이 생소하기 그지없어.
-『뿌리』, 코펜하겐, 2010, 카이 中 (P. 84)-

사랑하는 수이
나는 지금 티루반나말라이의 한 아슈람에서 묵고 있단다.
오늘은 새벽 5시에 키르탄 소리에 잠을 깼어. 그 소리는 새벽녘의 어둠을 뚫고 폭포수처럼 내 귓전에 다가왔지. (중략)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였지만 따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기만 했지.
-『뿌리』, 티루반나말라이, 2010, 카이 中 (P. 292)-

 

미리암은 성공적인 예술가가 되기 위해 가정을 떠났으나, 애인 히로키의 죽음에 슬픔과 고통을 겪는다. 히로키를 잊고 스스로의 여성성을 제거하기 위해 스웨덴 달라르나로 갔지만, 그곳에서 자신을 버리고 간 미혼모 엄마 마틸데를 만난다. 미리암은 마틸데에게 어떻게 자식을(자신을) 떠날 수 있냐고 묻는다. 그러나 미리암 또한 자신의 성공적인 예술가 커리어를 위해, 그리고 자신 또한 사랑받지 못해 딸 수이에게 사랑을 줄 자신이 없었기에 카이와 수이의 곁에서 떠났다. 감정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은 미리암은 치매를 앓으며 삶의 하향선을 그리게 된다.

미리암의 손에서 자라지 못했지만 수이는 미리암과 닮은 모습이 있었다. 사랑하는 안톤과의 동거를 위해 카이로부터 독립하려 했으며, ‘담장어머니를 동일시하여 자신을 붙잡는 미리암의 모습을 장애물로 느꼈다. 또 수이의 배에 생긴 혹을 배아 기간에 생기는 비정상적 구조물인 낭포이자 포대라고 생각하며, 태아를 임신할 수 있는 여성의 몸을 그리 긍정적으로 보지 못했다. 이렇듯 수이의 메모에서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며, 독자에게 생각의 여지를 제공해준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미리암이 스웨덴 달라르나의 숲 속 집 주위에 쌓던 담장이다. 담장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짓는 보호막 같은 느낌이며, 미리암은 담장을 자신의 새로운 예술작품이자 로디니아’, 천국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 담장 사이를 들락거리던 마틸데의 존재를 알게 되어 감정적으로 혼란에 빠졌고, 달라르나로 찾아온 수이에게 모녀 관계를 부정당하고 말았다. 미리암에게 담장 속 공간은 천국이 아닌 지옥이 되었고, 수이에게 담장은 장애물이자, 미리암이 자신에게 가지는 뒤늦은 모성이었다. 두 인물에게 본질과 정반대의 의미로 존재하는 담장과 그 담장으로 인해 피폐해지는 미리암의 삶, 그곳에서 도망친 수이의 태도에 주목하게 되었다.

담장
그것은 장애물일까 보호막일까? 그것을 통과하거나 지나쳐 갈 수는 없다. 그것은 위기를 의미하는 것일까, 독립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의 부정적인 형태는 심연과 동일하다 할 수 있다.
(중략)
어머니
그것은 장애물일까 보호막일까? 그것을 통과하거나 지나쳐 갈 수는 없다. 그것은 위기를 의미하는 것일까, 독립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의 부정적인 형태는 심연과 동일하다 할 수 있다.

-『뿌리』, 마라도, 2010, 수이의 메모 中 (P. 212)-

 

작가 특유의 미사여구가 없는 단문 구성은 조금의 기호(이나 느낌표와 같은)로 인물의 감정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시간순이 아닌 인물들의 관점이나 언급된 대사와 연관하여 진행되는 이야기 흐름 또한 신선했고, 이해하기도 어렵지 않았다. 이야기가 아닌 인물의 감정에 대해 깊게 빠져들기에는 이러한 흐름이 더욱 좋겠다.

 

『뿌리』의 작가 에바 틴드는 한국계 덴마크 작가로, 이 이야기의 카이라는 인물은 작가 스스로를 본떠 만든 것이 아닐까 생각해볼 수 있다. 작가 또한 이 이야기를 쓰면서 자신의 근원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했을 것이다. 인간의 근본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자 하는, 혹은 본인의 자아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읽기에 유용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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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 YES24

어떤 일은 우리의 삶을 영원히 바꾸기도 한다정체성을 찾기 위해 이별과 여행을 거듭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한국계 덴마크 작가 에바 틴드의 장편소설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1살 때 덴마크로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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