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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소유하지 않는 사랑, 『폴리아모리』서평

by _Sun__ 2022. 3. 16.

 여러분은 폴리아모리에 대해 알고 계시나요? 폴리아모리는 그리스어 접두사 복수(複數, poly)와 라틴어 명사 사랑(amor)을 결합한 신조어입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폴리아모리를 ‘동시에 여러 명의 파트너와 감정적으로 깊게 관여하는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는 것, 모든 파트너와의 합의를 바탕으로 성적 파트너를 동시에 두 명 이상 가지는 행위’로 정의합니다. 저는 몇 년 전, 예능 프로그램 <연애의 참견2>에서 폴리아모리를 처음 들었습니다. 프로그램에서는 바람을 피우다 들킨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자신은 폴리아모리스트(폴리아모리를 추구하는 사람)이니 여러 사람과 사귀는 것을 이해해달라고 요구한다는 사연을 소개했습니다. 저는 그때 ‘폴리아모리는 다자연애이며 상호 간의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라고 간략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KBS N '연애의 참견2' 캡쳐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우연히 <연애의참견2>에서 소개된 책 중 하나를 보았습니다. 

 

『폴리아모리』 표지

 

두 명의 아이가 있는 부모가 한 명의 아이를 가진 부모에 비해 아이에게 애정을 덜 쏟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사랑은 상대방의 수에 따라 분활되는 유한적인 것이 아니다. 즉, 사랑은 무한하므로 배타성에 얽매일 필요도, 서로를 구속할 의미도 없단 이야기다.  p28

 

  폴리아모리스트들은 사랑의 무한성을 말합니다. 사랑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무한한 것이니 여러 명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며 한 명을 사랑하는 것보다 덜 사랑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그들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구속하고 소유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들은 응원해 줍니다. 폴리아모리의 핵심은 ‘다자연애’가 아니라 ‘비독점’에 있습니다. 폴리아모리스트는 상대방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과 상대가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길 바라는 생각은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볼 때 생기는 것이기에 여기서 벗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합의, 배려, 정직입니다. 새로운 상대와 연애를 하고 싶다면 새로운 상대와 기존의 연인에게 알리고 합의를 해야 합니다. 따라서 앞서 소개한 <연애의참견> 사연은 서로간의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폴리아모리가 아닙니다. 그저 바람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폴리아모리스트들은 질투를 느끼지 않을까요? 정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80%의 폴리아모리스트들은 질투를 경험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질투를 개인의 심리 상태로 보지 않습니다. 공유하고 서로를 위해 활용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하나의 방법으로 봅니다. 그리고 질투를 직면하고 계속해서 다스린다면 컴퍼션(연인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생기는 기쁜 감정)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말합니다. 

 

 사실 폴리아모리는 낯선 것이 아닙니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와 드라마 <오로라 공주>, <질투의 화신>은 폴리아모리를 그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는 한 명의 여자와 두 명의 남자가 같이 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자는 남자 두 명을 동시에 사랑하고 남자 두 명은 여자를 사랑합니다. 관계 구성원의 합의, 여자의 다자사랑. 분명 폴리아모리입니다. 드라마는 결국 한 명의 남자를 선택하지만 폴리아모리를 보여준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폴리아모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폴리아모리뿐만 아니라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모든 낯선 것을 잘못된 것이라 규정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들이 누군가들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아도, 누군가들은 이미 생생히 존재하고 있다.  p227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닌 가능성의 문제다. 누구나, 생경함을 이겨내면 세계가 넓어진다.   p.223

 

 위의 역자의 말에서 우리는 낯선 이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역자의 말처럼 이미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는 것은 의미 없습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성애자와 시스젠더(생물학적 성별과 심리적 성별이 일치하는 사람)의 존재가 인정받을 필요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사람과 새로운 사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새롭게 대두되는 모든 것을 자신의 생각대로 재단한다면 사회는 분절되고 더 많은 갈등에 휩싸일 것입니다. 따라서 생경함을 이겨낼 때, 그리고 그 존재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 된 넓은 세상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폴리아모리를 비롯한 다른 여러 사상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포용력이 아닐까요.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은 틀렸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서로 달라도 공존할 수 있습니다. 

  『폴리아모리』는 미국의 사례를 일본 연구원이 엮어낸 것이기에 한국 사회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한국은 뿌리 깊은 유교 사상으로 인해 폴리아모리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라 짐작됩니다. 게다가 한국은 다른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도 만연합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략) 그들이 나아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 줄 이들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마르틴 니묄러의 시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의 일부입니다.

 이 시처럼 소수자간의 연대가 없다면 결국 나를 지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소수자란 누구일까요?LGBTQ+뿐만 아니라 유색인종, 빈민계층 역시 소수자에 속합니다. 그리고 비혼주의자나 딩크족과 같이 다수의 선택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넓은 의미에서는 소수자입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어떤 부분에서는 소수자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연대하고 새로운 사상과 사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도 많은 소수자들이 자신을 드러내고 있고, 이들과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조금씩 변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폴리아모리』는 모두가 폴리아모리를 할 것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책의 저자 역시 폴리아모리스트가 아닙니다. 다만 이런 형태의 사랑도 있음을 말할 뿐입니다. 새로운 사상을 알리고 그들을 이해할 여지를 제공한다는 것이 이 책의 역할이자 의의입니다.

 

 

알라딘: 폴리아모리 (aladin.co.kr)

 

폴리아모리

폴리아모리는 ‘여러’, ‘다자’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폴리(poly)와 라틴어 ‘아무르(Amor)’의 합성어로 국내에서 이제 막 소개되기 시작한 개념이다. ‘복수(다자) 간의 사랑’으로 직역되는

www.aladin.co.kr

<연애의 참견2> 사연 보기 >> https://youtu.be/SH4hOlox8W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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