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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노동법률에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 유형근 저자의 인터뷰가 소개되었습니다.

by _Sun__ 2023. 1. 3.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의 발자취를 따라서

[2023년 1월호 vol.380]

 

▲유형근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노동법률)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울산 대공장노동자들의 생활과 의식, 노동운동을 노동계급 형성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 나왔다. 바로 유형근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의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이다.

유 교수는 노동운동, 노사관계, 노동인권교육 등에 관심을 두고 있는 노동사회학자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이화여대 연구교수, 한국산업노동학회 학술위원장, 비판사회학회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부산대 사범대에서 예비 사회과 교사를 양성하고 있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 최대의 중화학공업도시이자 노동자대투쟁의 주요 무대인 울산, 그 안에서도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대공장노동자들의 지난 30여 년을 장기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봤다. 열악한 노동환경에도 불구하고 '고생은 되어도 돈은 벌 수 있다'며 타지에서 모여든 노동자들이 '철의 노동자'가 되어 울산에 정착하고 '귀족노조'의 표상이 되기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다.

누군가는 왜 이들의 노동과 삶을 들여다봐야 하냐고 물을 수 있겠다. 이 질문에 유 교수는 "이들의 노동운동과 삶, 의식을 들여다보면 87년 이후 형성된 한국 노동계급의 행로를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지난 20일 부산대에서 유 교수를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집필 배경이 궁금하다.
 
2012년 박사 학위를 받을 때 쓴 논문을 토대로 한 책이다. 당시 박사 논문 주제를 고민할 때 노동과 관련해 울산이라는 지역을 파헤쳐보자는 생각을 했다.

2000년대 중반은 울산 대공장노동자들에 대한 관심이 지금보다 더 높았을 때다. 현대차 노동조합이 96ㆍ97 총파업을 하고 10년이 채 안 됐고, 현대차 안에서 사내하청 비정규직 운동도 등장해 투쟁을 벌였다. 현대차 노동조합이 금속노조로 산별 전환에 성공했고, 지역적으로는 '진보정치 1번지'로 불리며 노동자 정치세력화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을 때였다. 대공장노동자들에게 귀족노조라는 꼬리표가 본격적으로 따라붙기 시작한 때도 이때부터다. 되돌아보면 지금보다는 훨씬 다면적인 노동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때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2000년대 이전과 비교해도 노동운동이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그래서 '왜' 노동운동이 그렇게 변화했는지를 다층적이고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기로 했다. 논문 발표 이후에도 관련 연구를 조금씩 해왔기 때문에 하나의 단행본으로 묶는 작업을 이번에 새롭게 하면서 책으로 출간하게 됐다.
 


Q. 누군가는 울산 대공장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문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엔 어떤 대답을 해줄 수 있을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이면서 어려운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웃음). 두 가지 측면에서 질문이 나올 것 같다. 하나는 왜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생산직 노동자들이냐, 또 하나는 왜 그들의 노동과 삶이냐 라는 질문일 거다.

전자에 대한 답은 그들이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민주노조 운동에 있어 상징적인 존재들이고 자동차산업과 조선산업이라는 한국의 대표 중화학공업, 그중에서도 가장 큰 기업에 속한 이들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의 노동운동과 삶, 의식을 들여다보면 87년 이후 형성된 한국 노동계급의 행로를 읽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후자에 대한 답은 그들의 삶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왜 노동운동이 그렇게 전개되고 흘러갔는지 완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엔 주체들의 이해와 관심, 욕구와 열망이 담길 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자기 자식들에겐 무엇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지 등을 함께 봤다.
 

 

Q. 현대차ㆍ현대중공업 생산직 노동자들은 전환기를 겪고 있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주축이었던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매년 대규모 정년퇴직을 하고 있다. 현대차에선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자들이 새 구성원으로 유입되고 있고, 조선산업의 사내하청 비중은 앞으로도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 것 같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의 노동운동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연스럽게 세대가 바뀌면서 이전 세대와는 사회화 경험이 다른 조합원들이 늘어날 거다. 예를 들어 1인당 소득수준이 5000달러일 때 성장기를 보낸 노동자들과 2만 달러일 때 성장기를 보낸 노동자들의 사고와 의식, 생활양식엔 큰 차이가 있지 않겠나. 주체의 이해가 반영되는 노동조합 활동도 당연히 변화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조합원들의 변화에 발맞춰 노동조합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노동조합 간부들이 변화할 수 있는가에 있다. 우리가 흔히 노동조합 활동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어떻게 육성하고 훈련시켜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세대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없어도 국가와 자본을 향한 파업, 투쟁을 통해서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훈련받을 수 있는 조건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역사적 격동기는 과거가 됐다. 노동조합의 일꾼을 길러내고 교육하지 않으면 세상을 바꿔 나가는 노동조합이 아니라 조합원들을 위한 서비스기관으로서의 노동조합, 관료적인 활동만 반복하는 노동조합으로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유형근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노동법률)



Q. 안팎에서 지금의 대공장 노동운동이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현대차, 현대중공업 안에서 노동운동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 거라고 보는가.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산업전환 속에서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작업장, 일하는 방식이 나타날 거라고 본다. 결국 이 산업전환 과정에 노동조합이 어떻게 대응하고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지에 따라 노동운동의 향배도 달라질 거다. 이때 그동안 자신들이 누려왔던 사회적 지위보다 하락하는 일이 발생하면 그 저항은 강렬할 수밖에 없다. 지금 현대차 생산직에게 미래차로의 전환은 사회적 지위가 '내려갈 수도 있는' 불확실성이 가득한 문제다. 회사 입장에서도 이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노동조합과 불확실성을 적절하게 해소해 나가는 전환의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나 역시 한국 사회에서 대공장 노동운동이 앞으로도 유효할 거라고 보지 않는다. 그러기엔 한국의 경제상황이 너무도 많이 변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고, 이후 경기가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한국은 2%대의 경제성장률이 지속될 거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규 채용은 줄어들 것이고, 임금인상이 1순위인 노동운동도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특히, 현대차나 현대중공업 같은 수출 대기업은 더더욱 그렇다.

결국 이후에는 노동자들의 삶의 질과 관련된 문제들이 단체교섭에서 중요한 의제가 될 수밖에 없다. 노동의 인간화, 노동시간, 일과 삶의 균형, 산업안전보건, 일터 민주주의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유럽이나 미국도 마찬가지 과정을 겪었다.

동시에 최근 공공부문, 플랫폼산업과 같은 분야에서 새로운 투쟁들이 분출되고 있기도 하다. 노동운동의 중심축도 전통적인 제조업에서 새로운 산업, 이전에 주목받지 못했던 부문으로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 현시점에선 이러한 변화를 평가하고 묶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Q. 책에서도 울산 대공장 노동운동에서의 임금인상 정치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임금인상의 정치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표현이 오해를 일으킬 수 있어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임금인상 자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령 올해만 하더라도 인플레이션 때문에 실질임금이 하락하지 않았나. 실질임금을 만회하는 건 교섭에서 임금인상을 통해 올리는 게 맞다. 책에서 말하는 임금인상의 정치라는 건 노동운동 차원에서 임금인상이라는 매개로 조합원을 하나로 단결시키고 이를 통해 사측 또는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는 모델이다. 이것이 이제 대공장에서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이고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이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때문이다. 울산 대공장에 속해 있는 집단들이 임금인상을 가속화할 경우 전체 노동계급의 단결이 깨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책에선 연대의 기반이 계속 축소된다는 표현을 썼는데, 각자가 서 있는 땅이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연대라는 이름으로 이들이 하나로 묶일 수 있겠나. 묶이지 않는다는 걸 우리가 목격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대공장 노동운동의 임금인상 정치가 한계에 다다랐다고 본다.

결국 대안으로 임금노동자계급의 단결과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형태의 임금정책을 생각해 봐야 하는데, 그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임금의 평준화'다. 이때 임금 평준화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가는 방법이 될 수도,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동시에 내려가고 올라가 편차를 줄일 수도 있다. 어떤 방법이 좋을지는 정세나 조건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이제 대공장 노동운동도 임금격차 완화 정책을 자기 과제로 안고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Q. 책에서 완성차공장과 조선소에서 원하청 간 연대가 어려운 구조적인 한계도 함께 짚고 있는데.
 
지금의 구조에서는 원하청 간 연대가 일시적으로 이뤄질 수는 있어도 장기적으로 유지되고 튼튼해지기는 어려운 환경이다. 그 이유를 확인하려면 완성차공장과 조선소에 사내하청제도가 왜 도입됐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두 산업 모두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동조합의 교섭력이 강화됨에 따라 사측이 노동조합을 우회해 고용유연화를 도모하기 위해 사내하청제도를 도입했다. 도입될 때만 하더라도 정규직 노동조합 입장에선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문제는 정규직노동자들이 IMF 외환위기 이후 자신들의 구조조정을 최소화할 수 있는 완충 장치로서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쓰일 수 있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되면서부터 생겼다. 정규직 노동조합과 사측 간 사내하청노동자들을 활용하자는 일종의 거래가 일어난 것도 이때였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한 구조 속에서 원하청 간 연대는 이뤄지기 어렵다. 물론, 일시적으로는 가능하다. 예를 들어,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파업할 때 노동조합 집행부의 의지와 노력에 따라 정규직 노동조합 대의원들이 이들을 엄호하고 지원하는 일이 일시적으로는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원하청 노조가 함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함께한다거나 단체교섭을 함께 하거나 하는 '이상적인 형태의 원하청 연대'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원하청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적으로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문제인데, 이걸 특정한 기업의 작업장 내부 노동자들에게 해결하라고 하는 것 역시 가혹한 요구일 수 있다.


 
Q.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파업이 우리 사회에 조선산업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이들의 파업을 어떻게 봤는가.

이번에 하청노동자들이 어떻게 투쟁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전까지만 해도 현대중공업도, 대우조선해양도 조선소 안에서 사내하청노동자들이 이렇게 오랜 기간 전국적인 주목을 끌면서 투쟁했던 경험이 거의 없었다. 있더라도 분신과 같은 매우 고립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근데 지난 몇 년간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직화 등을 통해 지난번과 같은 파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까지는 목소리가 많이 올라온 것 같다. 즉, 단 며칠이라도 전체 흐름 중 일부를 멈출 수 있는,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다. 일차적으로는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는 지난번 파업과 동일한 형태가 아니더라도 앞으로 계속 나타날 거다.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지금 조선소가 인력난을 겪고 있지 않나. 수요가 많은데 공급이 적으면 어떤 일이 생기겠나. 일반론적으로 보면 노동자들의 교섭력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노동자들이 집단적인 목소리를 낼 확률이 훨씬 더 높아지고 목소리 내기도 쉬워질 거다. 정부도 어떻게든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하니까 원하청 상생이라는 이름으로 상생협의체를 운영한다고 발표했지만 핵심은 건들지 못했다. 결국 앞으로 크고 작은 형태로 항의나 쟁의행위가 계속 발생할 거다. 그렇게 되면 지난번과 같은 임기응변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질 거라고 본다.

이동희 기자 dhlee@elabor.co.kr

▶출처: 월간노동법률

 

월간노동법률

중앙경제 :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의 발자취를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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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한국의 최대 중화학 공업도시이며, 노동운동의 중심지였다. 이 책은 한국의 대표적인 산업도시 울산의 대공장 노동자의 생활과 의식, 노동운동을 노동계급 형성의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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