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터뷰는 '만덕'에서 진행했습니다. 드디어 서면을 벗어난다고 생각했지만, 만덕도 만만찮게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저는 이 추운 겨울에 몇 발자국 움직이지 않고 대단한 작가들을 만날 수 있게 됐네요. 제가 결코 게을러서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해도 그동안 너무 딱딱하게 글을 쓴 것 같아요. 전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인기가 없었나 봐요. (절규)
  아, 아직도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을 소개해 드리지 않았네요. 여러 작가님이 물망에 올랐지만 며칠 전에 따끈따끈한 후속작 초고를 완성하신 김곰치 작가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년 9월에 개정판이 나온 제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이하 『칼국수』)대상 작품으로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삼백구 년 만에 약속이 있어 12센티 구두를 신고 갔는데, 만덕은 높고 높아서 고생을 좀 했습니다. 작가님도 그런 걸 신고 왔느냐고 하셨죠.

  가까운 다방에 들어가서 유자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김곰치 작가님은 동아대에서 강의할 예정이라고 하셨어요. 제가 졸업을 해서 너무 아쉬운 순간이었죠. 아마 소설실습과목을 맡게 될 것 같다고 하네요. 강의는 처음이라서 사뭇 긴장하면서 설레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개정판을 내며..

 책도 세월이 지나면 죽고 만다. 책이 살아 있고 죽었다는 기준은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칼국수』는 12년 전에 나왔고 죽은 책이죠. 심한 경우는 작가 본인에게도 책이 죽은 경우도 있다. 꼴도 보기 싫고,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고 하는 경우에는 그렇다. 이상적으로는 한 명의 독자와도 소통된다면 그 순간에는 책이 살아 있다. 그렇지만 책이 많이 나오는 세상이라 죽어 있는 책이 많다.

『칼국수』는 나에게 반쯤 죽어 있는 책이었다. 그러다 어떤 의욕이 생겨 책을 바로 잡게 되었다. 재밌는 건 수업을 나가면 『칼국수』 처음 책과 개정판 두 가지 텍스트인데, 작품의 퇴고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문장을 퇴고하고 장면을 보강하는 등의 작업을 했다는 게 증거 자료로 남아 있다. 학생들에게 초고를 쓰고 고치는 작업이 어떤 것인가를 알려주기에는 좋은 텍스트가 되지 않을까 싶다. 훗날 문학도들이 내 작품 두 개를 두고 퇴고수업을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은 초기작이고 자전소설이라고 알고 있다. 주인공 현직과 김곰치 작가님이 겹치는 부분이 많다.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거리낌은 없었나요? 만약 엄마가 죽었다면 이 소설을 쓸 수 있었을 것 같나요?

  사실 그 시기에 집안도 굉장히 좋지 않았다. 부산에 귀향한 이유는 조금 달랐지만, 나의 건강이나 사회적 진출에 고민이 많던 시기였다. 어머니 수술이 잘 돼서 지금도 건강히 살아 계신다. 만약 엄마가 돌아가셨으면 절망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절망하면 절망을 추스르지 않고는 글을 쓰지 못한다. 절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절망을 벗어나서 얘기하거나 아니면 절망이 아닌 것이다. 절망하면 몇 줄짜리 유서밖에는 쓸 수 없다. 어떻게든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의 에너지가 있었기에 나는 소설을 쓸 수 있었다. 나는 핵가족화되는 자본주의 사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부모님은이 내가 글을 계속 쓸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한국 문학이 개인화되고 있다. 나는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나의 주변이야기를 쓰는 걸 지향한다. 남의 이야기를 쓰면 잘 써야지 자기 이야기처럼 실감이 나지 그게 아니라면 잘 읽히지도 않는다. 사랑의 달인만이 남의 이야기를 자기 일처럼 마음 아파할 수 있다. 실제 겪을 일을 소설화하는 방식도 수만 가지가 있다. 우리 독서 시장에서는 아직도 자전, 경험을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다들 자전소설은 경험 하나 잘하면 누구나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칼국수』는 자전적이긴 하지만 경험과 허구가 적절히 섞여 있다. 만들어진 장면에 독자들이 놀라기도 한다. 아마 죽을 때까지 '자전'과 싸우게 될 것 같다. 

 대학 시절 하숙집에서 소설을 쓸 때 옆방 선배가 "야, 네 얘기를 써라"라고 던진 완벽한 충고가 소설가 김곰치를 만들었다. 나는 선배의 충고 덕에 내 얘기를 써서 당선되었다. 남의 이야기는 르포로 써왔다. 70~80년대 리얼리즘을 나는 르포로 연결해 쓰고 있다. 두 길을 다르게 걸어오고 있지만 어느 순간 합쳐지는 날도 있을 거다. 나는 경험 그것을 중요시한다. 


♤ 칼국수를 먹는 장면은 소설 끝 부분에 나온다. 혹시 나중에 제목 때문에 첨가한 내용은 아닌가요? 왜 주인공 현직을 '그'라고 지칭했나요?

  실제로 어머니와 함께 칼국수를 먹었다. 나는 그 순간에 소설을 쓴다면 칼국수 먹는 것이 마지막 장면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모두에게 감사한 순간이었다. 감정적으로 과장되게 표현한 부분은 있지만, 소설이기에 허용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나'라는 화자를 데려올 때는 독특한 화자일 경우에 가능하다. 『빛』의 조경태가 그런 경우다. 착한 소설은 '나'라고 하는 것이 너무 자서전적이다. 현직이가 조경태보다는 무난한 자아를 가졌기에 '나'라고 할 수 없었다. 『빛』에서는 조경태의 생각을 최대한 늘여놓고 그리고 인간적 약점을 노출하는 데 '나'는 유용했다. 현직을 '나'라고 하기에는 겸연쩍었다. 간단한 선택이기도 하다.

나도 학기중에 자전적인 색을 가진 소설을 써오는 친구들을 자주 봤다. 물론 나도 안 썼다고는 말은 못 하겠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화할 때 수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기에 어려움이 있다. 김곰치 작가님은 그런 경계를 잘 타는 작가인 것 같다. 다행히 작가님이 어설픈 소설일 뿐이라고 말해주셔서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이 소설을 쓴다는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 제목을 짓는 비결이 따로 있으신가요? 저는 중간 제목 <어……간……주… 알……> , <스캇렌 요한슨이 십자가에 달렸다면> 등 개성 넘치는 제목이 많았습니다. 제가 자랑할 수 있는 제목은 『말이 통해야 같이 살지』 정돕니다.

  미국 작가 레이먼드 카버도 그런 제목을 잘 짓는다. 레이먼드 카버 정도 쓰면 단편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두 소설에 마음에 들지 않는 소제목은 <영적인 것들>, <감자와 흰자위, 삔 팔, 족발> 정도다. 『빛』에 <그 방에 불이 켜졌다>는 3장 제목인데 제목과 관련된 내용은 다른 장에서 나온다. 앞에 살짝 정보 노출을 하는 거고 독자들은 나중에 그 얘기가 나올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한다. 소설 전체에 대한 제목은 정해 놓고 쓰지만, 소제목은 정말 안 나온다. 소설을 다 쓰고 마지막 퇴고를 할 때 자연스럽게 제목이 떠오른다. 퇴고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각 장에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명백히 알게 된다. 소제목은 퇴고하던 중에 하루 만에 다 지을 정도로 제목이 잘 나왔다. <조치원에서 꾸다>, <조치원에서 어린 새[鳥]로 날다>도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제목이다. 조치원을 서로 연결해 묘미가 있었다. 학생이 소제목을 이야기한 첫 사람이라 반갑다.






























  김곰치 작가님은 개정판을 내면서 '인간적으로 후회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초기작을 다시 꺼내 보는 건 작가에게 큰 용기였을 겁니다. 김곰치 작가님은 너무 급하게 나온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은 경험도 없었지만 모든 애정을 투자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항상 있었던 것 같습니다. 1,800매에서 600매를 일주일 만에 줄였기에 소설뿐 아니라 문장에도 군더더기가 많았던 거죠. 김곰치 작가님은 박혀있던 가시를 다시 빼내는 작업을 시도했죠. 펜을 들고 일일이 퇴고를 4~5번 거듭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도 개정판 작업은 새로운 작품을 쓰기 전에 흔히 말하는 초심 잡기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김곰치 작가님은 자신의 내면을 항상 관찰하는 분임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설에 얼마나 무한한 애정이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차기작 『파프리카』가 7월쯤에 출간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제가 스포일러 하려고 내용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네요. 모두 함께 김곰치 선생님의 활동을 지켜봅시다!  

엄마와 함께 칼국수를 - 10점
김곰치 지음/한겨레출판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