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후, 대한민국의 암울한 자영업 현실을 실감나게 드러낸다며 여러 언론매체에서 호평받은 소설 『배달의 천국』.
『배달의 천국』은 코로나 유행의 직격탄을 맞은 영세 자영업자의 자화상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식당 홀 매출이 떨어지자 식당 사장 ‘만석’은 돌파구를 마련해 보고자 배달업에 뛰어듭니다. 그러나 배달이 가진 비대면 서비스 특성상 홀 장사를 하던 때보다 온갖 진상손님이 늘고, 배달 어플에 리뷰로 올리겠다며 평점을 가지고 협박하는 블랙컨슈머 관리까지. 배달 장사를 시작하고 하루하루 지쳐가는 만석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 안의 어플에서 장도 보고 음식도 주문해 먹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어플과 같은 플랫폼이 비대해지면서 발생하는 플랫폼 자본주의가 지닌 문제는 우리 사회의 짙은 어둠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리고 이 플랫폼 내에서 착취당하는, 약자일 수밖에 없는 영세 자영업자의 현실을 『배달의 천국』 저자 김옥숙 작가와의 북토크를 통해 고민해 보았습니다.
김옥숙 작가는 사실, 과거에도 식당 사장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 『식당사장 장만호』를 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만에 다시 자영업자의 목소리를 담은 책을 쓰게 되었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다시 한번 자영업자의 이야기를 쓰게 된 계기는 코로나입니다. 저는 남편과 함께 음식점을 운영하며 배달 일, 홀서빙, 배달 어플 리뷰 관리까지 하면서 진상손님을 많이 겪었습니다. 코로나로 배달업이 활성화됐는데, 처음에는 매출이 올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얼마 가지 않더라고요. 배달 대행료, 광고료, 수수료 떼고 나면 사실상 마진이 없었고, 특히 배달 어플 리뷰 관리에 정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전에 자영업자 관련 칼럼을 쓰면서 많이 조사해 봤는데 이 영세 자영업 생태계가 지닌 문제가 참 많았습니다. 큰 사회적 문제죠. 저도 자영업을 해 본 당사자로서 이 문제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작가는 배달 어플에 각종 광고료와 수수료를 내고 나면 웬만해서는 마진이 남지 않는데, 거기다 어플에서 ‘맛집’으로 랭크되기 위해 리뷰 관리하는 것 역시 자영업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어플에 아주 자세하고 정성스럽게(?) 적힌 장문의 악플이라도 달리는 날에는 이후 주문 급감을 감수해야 한다고 합니다.
“인터넷 검색, 쇼핑, 배달 음식 주문... 우리는 하루종일 어플이라는 플랫폼 안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때문에 소비자를 모으기 위해 판매자 역시 플랫폼을 떠나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플랫폼 평점 들여다보며 신경 쓰느라 사실상 일과 휴식의 경계가 없는 거죠. 한마디로 노동착취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플랫폼 서비스에는 임시직, 비정규직 같은 노동자가 많이 고용되니 고용의 질 또한 하락하게 됩니다.”
『배달의 천국』에는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만석’뿐 아니라 이 만석의 식당에 줄기차게 악성 리뷰를 다는 ‘프로 악플러’ ‘민성’이 또 다른 주요 인물로 등장합니다.
“민성은 배달 어플에서 음식을 주문해 먹고,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악성 리뷰를 답니다. 마치 리뷰가 무기라도 되는 양 자신이 적은 악플에 사과하고, 리뷰를 삭제해 달라며 눈물로 읍소하는 식당 사장을 보며 왠지 모를 권력을 느끼는 민성. 리뷰라는 무기로 갑질을 해대며 희열을 느끼는 악플러 민성은 사실 유년시절 가정 내 차별,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입니다. 남을 해하는 가해자인 악플러를 학대의 피해자로 설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네, 플랫폼 서비스의 발달로 우리는 정말 몇 년 간 외출하지 않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어도 살 수 있을 정도로 편리한 세상을 누리고 있고, 민성도 그렇게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악플놀이에 재미를 느끼고요. 민성은 과거 학교폭력을 당하고, 집에서는 엄마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아들입니다. 민성을 이렇게 설정한 이유는, 약자가 약자에게 고통을 주게 되는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을 드러내고 싶어서입니다. 요즘 ‘혐오범죄’ 뉴스 많이 접하실 텐데요. 내면에 쌓인 분노와 원망의 감정을 그 가해 당사자에게 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약자에게 푸는 것이죠. 갑질을 당했던 사람이 갑질을 하는 사람이 된다고도 하더라고요. 약자였던 민성의 내면 속에 있는 분노와 상처가 또 다른 약자를 향한 공격이 될 수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갑질과 악플로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는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정당한 의견 개진은 자유롭게 이뤄져야 하지만, 문제는 이 의견이 허위, 과장이 섞인 말 그대로 ‘악성’이라는 데 있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며 평점에 전전긍긍하는 만석. 이런 문제로 인해 공황장애 등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자영업자가 많다는 것, 여러분도 뉴스를 통해 종종 접하셨죠?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 악플 사건. 많은 사람들은 악플 문제의 원인 중 하나를 ‘익명성’으로 꼽습니다. 닉네임과 같은 익명이 아니라 리뷰 실명제를 도입하면 민성과 같은 악플러가 수그러들 것이라는데, 김옥숙 작가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
“리뷰 실명제가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합니다. 자신의 실명이 드러난다는 것은 얼굴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그렇게 되면 좀 더 신중히 리뷰를 쓰게 되고,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배려하게 되죠. 이런 여론 때문에 리뷰 실명제 도입이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소설에도 나오듯이, 리뷰 실명제를 원하는 건 업주뿐입니다. 고객과 배달 어플은 원하지 않는다는 거죠. 고객 입장에서는 리뷰를 마음대로 쓰고 평가하던 권력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익명으로 리뷰를 쓸 수 있는 어플만을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어플 입장에서는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서 리뷰 실명제를 도입하지 않을 거고요.”
“배달 어플은 업주의 편을 들지 않습니다. 고객의 수가 수익으로 직결되는 플랫폼 기업 특성상 고객의 입장을 더 고려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자영업자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대항력을 키우는 것 혹은 플랫폼 서비스 수수료 상한제를 통해 이러한 플랫폼 자본주의 횡포를 좀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설에는 코로나 직격탄으로 식당 매출이 떨어져 월세와 인건비 감당 등 재정 상황의 악화로 자살하는 인물 ‘선호’가 나옵니다. 작가는 실제인물을 모티브로 선호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자신보다는 타인을 위하며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의롭게 살아온 선호. 코로나 여파는 살아보려 고군분투하던 많은 자영업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습니다.
살인사건으로 시작되는 소설, 그리고 자살… 『배달의 천국』은 그 제목과는 대조적으로 내용이 어둡고 결말 또한 비극적입니다.
“처음부터 비극적 결말을 염두에 두고 집필하셨나요?”
“밝은 이야기를 썼다면 좋았겠지만, 코로나 시대 자영업 이야기를 하면서 희망적인 이야기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고요. 몸에 병이 났다면 아픈 부분을 다 드러내고 찾아내는 게 치료의 첫걸음이잖아요. 그래서 자영업자의 아픈 부분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게 맞지 않나, 그래서 자영업자가 겪는 비극적 상황을 그대로 반영해 결말로 썼습니다.”
김옥숙 작가는 북토크 중에도 작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사회 고발적 내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재차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시간에도 일터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정직하게 일하고 있을 자영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어보았습니다.
“리뷰는 리뷰일 뿐, 너무 목매진 마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세상에 악플러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손님도 있어요. 비방을 위해 적힌 악플은 무시하세요. 리뷰 게시중단 같은 제도도 있으니 활용하시고요. 그리고 힘없는 자영업자가 서로 뭉쳐야 하지 않을까요.”
무조건적인 헌신, 희생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관용과 배려가 필요한 요즘입니다. 그리고 이 가치는 미래에도 유효할 것이고요. 사실 업주, 고객, 플랫폼 모두에게 사연이 있고 상황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타인을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공격하는 것은 결국 피해와 희생을 만들어 낼 뿐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맛있는 음식 먹고, 타인에 노고에 감사하며! 우리 모두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지냅시다. 😊
▼ 북토크 라이브는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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