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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진화론의 옹호자가 사회진화론의 윤리를 비판하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2. 17.


진화와 윤리 ㅣ 토마스 헉슬리 지음 ㅣ 이종민 옮김 ㅣ 산지니 ㅣ 15000원


    영국의 생물학자이자 사상가인 토마스 헉슬리(1825~1895)는 ‘다윈의 불도그’라고 불렸다. 헉슬리는 <종의 기원> 이해를 돕기 위한 책을 썼고, 진화론과 다윈을 적극적으로 옹호해 이런 별명이 붙었다. 1860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열린 <종의 기원> 찬반 토론에서 “그 원숭이는 할아버지 쪽인가, 할머니 쪽 조상인가”라는 옥스퍼드 주교 새뮤얼 윌버포스의 말에 “원숭이가 내 조상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주교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도 사실을 왜곡하는 사람과 혈연관계라는 점이 더 부끄럽다”고 반박한 일화가 유명하다.



    헉슬리는 진화론의 옹호자였지만 ‘적자생존’ ‘약육강식’ 논리만 강조한 사회진화론을 부정했다. 자유방임적인 생존경쟁을 주장한 스펜서 식의 사회진화론을 광신적 개인주의라고 비판했다. 헉슬리가 자신의 진화론과 모순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적극 강조한 것이 윤리다. 죽기 2년 전 옥스퍼드 대학의 ‘로마니즈 강연’에서 연설한 원고를 묶은 <진화와 윤리>는 ‘진화에서 윤리’로 귀결된 헉슬리 사상의 핵심을 볼 수 있는 책이다. 책은 노동자가 이전 농노보다 못한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하고, 소년 소녀까지 착취당하는 극악한 노동현실에 전쟁이 끊이지 않던 19세기 후반 시대 현실에서 나왔다. 헉슬리는 약자의 생존을 침탈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훼손하는 현실에 개탄했다고 한다.


    헉슬리는 <진화와 윤리>에서 당시 현실을 이렇게 서술했다. “사회 속의 인간들 역시 우주과정의 지배를 받습니다. 다른 동물들처럼 끊임없이 번식을 진행하고 생존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격렬한 경쟁을 벌입니다. 생존경쟁은 생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을 도태시킵니다. 자기 주장이 가장 센 최강자는 최약자를 짓밟아버립니다.” 


    헉슬리는 ‘최적의 생존자’란 표현에 녹아 있는 “윤리적 존재로서 사회 속 인간도 자연과 동일한 과정을 통해 완전성을 이룰” 것이란 주장을 반박한다. 헉슬리는 지구가 다시 추워지기 시작하면 결국 미생물만이 최적의 생존자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윤리가 진화할 것이란 주장엔 모순도 있다. 비도덕적 감정 역시 도덕 감정과 마찬가지로 진화한다. 도둑과 암살자나 자선가가 진화의 산물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진화와 윤리>는 끊임없는 전쟁과 함께 어린 소년들이 열악한 공장에서 긴 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19세기 후반의 참혹한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여과없는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우주과정’이란 무엇인가. 동서양 철학·역사, 종교 고전을 아우르며 간결하고 쉽게 핵심을 전달하는 헉슬리는 고대 비극의 한 사례를 예로 든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의 남편이 되어 그의 백성들을 황폐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급작스레 몰락하게 만든 것은 사건의 자연스러운 순서-우주과정-였습니다.” 헉슬리는 “사회 진화에 끼치는 우주과정의 영향력이 클수록 그 문명은 더욱 원시적 상태에 머물게 된다”고 말한다. 자연은 도덕에 무관심하며, 우주는 윤리학의 법정 앞에 서면 유죄를 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봤다.


    “윤리적 실천은 검투사적인 생존 이론을 부정합니다.” 우주자연의 과정을 인간사회의 과정에 대입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헉슬리는 자연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생존경쟁 방식과 차원을 달리하는 인간사회의 윤리적 과정이 필요하다고 봤다. 사회진보란 것도 “매 단계마다 존재하는 우주과정을 억제하여 이른바 윤리과정으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윤리과정의 목표는 “주어진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윤리적으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의 생존”이라고 규정했다. 자연상태를 극복한 인간사회의 현 상태를 문명사회라고 할 때, 이 문명상태를 지속시키는 동력이 바로 윤리과정이다. 헉슬리는 사회의 윤리적 진보는 우주과정을 모방하거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과정과 투쟁하는 활동에 의지하는 것이라는 점을 각별히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윤리적 본성은 (우주과정이라는) 집요하고 강력한 적과 부딪쳐야 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헉슬리는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리학 같은 과학과 심리학, 윤리학, 정치학이 윤리적 실천이라는 위대한 혁명을 수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화와 윤리>를 두고 헉슬리와 다윈의 미묘한 차이를 말하는 이들도 있다. 다윈도 “인간이 하등동물과 다른 것은 무엇보다 도덕관념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도덕관념이야말로 인간특성 중 가장 고귀하다”고 했다. <종의 기원>에서 생존경쟁과 더불어 공존의 논리도 전개했다. 헉슬리와 다윈의 관계, 다윈의 도덕관념을 연관해 읽으면 더 좋을 듯하다.


경향신문 김종목 기자의 기사 바로 보기


진화와 윤리 - 10점
토마스 헉슬리 지음, 이종민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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