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과제, 과거사 청산을 위한 20년의 발걸음
1995년 8월 15일 광복 50주년 기념행사와 함께 옛 조선총독부 건물인 중앙청이 해체되었다. 많은 이들이 과거사 청산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그 과업은 아직까지도 완수되지 못했다. 이 책은 산재해 있는 과거사 문제 중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역사 교과서 수정 명령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부마민주항쟁과 민주화운동’, ‘강제동원 등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 인해 발생한 동아시아 과거사’에 집중했다. 이를 통해 독자는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과거사 청산의 큰 흐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 홍순권은 한국제노사이드연구회 회장,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및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된 시민사회운동에 관여했다. 저자는 한국근현대사 연구자이자 활동가로서 내부의 시선에서 과거사 청산의 필요성과 방향, 문제점에 대해 얘기한다.
과거사 문제를 되짚는 것은 오늘날의 과거사 청산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배우는 행위이자 끊임없이 고개를 들이밀며 우리의 역사를 제 입맛에 맞게 수정하려는 역사수정주의자들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 학살과 탄압으로 목숨을 잃은 자들
국내 학계와 관련 사회단체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자 규모를 적게는 수십만 명에서 많게는 백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셀 수 없이 많은 인명 피해와 그에 따른 깊은 정신적 상흔을 남겼다. 지역공동체가 분열되었고 민족 분열은 고착화되었다. 저자는 1부에서 공주 살구쟁이와 르완다 학살 현장 방문, 진실화해위원회로서의 활동과 소회를 통해 민족적 화합과 반공이란 이름 아래 억울하게 죽은 희생자의 명예 회복을 도모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있기 7개월 전인 1979년 10월 16일, 부산과 마산에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유신정권은 독재정권의 불의에 항거한 부산과 마산 시민들에게 계엄령과 위수령을 선포하고 대규모 공권력을 동원해 강제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1,500여 명이 연행되었고 100여 명이 기소되었으나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저자는 부마민주항쟁과 10·26 정변, 광주민주화운동의 연결성을 해명해야 진정한 한국 민주화의 역정을 되돌아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산은 1980년대까지 한국 민주화운동의 중심축이었다. 이 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민주화운동이 왜 혹독한 탄압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져 왔는가를 온전하게 설명할 수 없다. 3부에서 부마민주항쟁의 발달과 의의, 진상규명의 성과와 과제를 통해 이를 설명한다.
📚 정치에 흔들리는 역사
2008년 10월 30일 교육과학부(교과부)는 자신이 검정한 금성출판사 한국사 교과서를 ‘좌편향’으로 규정하고 수정 명령을 내렸다. 심지어 집필진이 수정 지시를 거부하자 정부는 저작자의 동의 없이 임의로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도록 출판사를 압박했다. 이 사건은 역사교육을 정치도구화하여 정권 유지 수단으로 악용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잘 보여준다. 저자는 2부에서 금성출판사 한국사 교과서의 집필진으로서 자주적인 역사 교육의 가치를 말하며 이를 위한 우리 모두의 책임을 강조한다.
일제강점기 36년.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친일파의 방해 공작으로 친일 청산에 실패한 우리나라에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이 일제 식민지 지배의 결과라는 역사수정주의자나 일부 뉴라이트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활개를 치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는 외교적 마찰을 염려한 정부에 의해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했다. 저자는 4부에서 강제징용 소송 판결, 강제동원역사관 등의 쟁점을 통해 일본과 우리 사회의 자성을 촉구하는 한편 남과 북, 동아시아 평화의 가치를 전달한다.
📚 진정한 치유와 화합을 위한 과거사 청산
어두운 독재정치가 막을 내리고 마침내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정치제도의 민주화가 곧 완벽한 민주주의를 의미하지 않음을 여러 사건을 통해 체감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에 맞는 민주적 가치를 우리 스스로 내면화하여 발전시키려는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수많은 희생으로 이룩한 민주주의 제도는 유지될 수 없다.
과거사 청산은 그동안 은폐되어왔거나 왜곡되었던 반민주적, 반인권적 행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통해 공존의 미래지향적 가치를 정립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는 결코 ‘과거의 한풀이’가 아니며 가해자를 단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과정이 없는 개인의 성장과 발전은 상상하기 어렵다. 국가 차원에서 과거의 진실을 규명하고 화해를 모색하는 과거사 정리 또한 나라의 발전과 공동체의 통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연관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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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밑줄긋기
p47 그러한 와중에 임기 만료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 뜻밖의 연하장이 나를 포함한 위원회 위원들에게 배달되었다. 한국전쟁의 피해 유족 가운데 한 분이 보내온 그 연하장에는 그동안 평생 짊어지고 살아온 빨갱이의 멍에를 벗겨준 진실위원회에 감사하고 그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 있었다. 연하장의 내용만으로도 그분이 지난해 진실규명이 결정된 피해자 유족임이 분명하였다. 단 몇 줄에 불과한 문장이었지만, 누명을 벗은 기쁨보다는 그동안 피해자 유족들이 겪어온 고통과 한 서린 슬픔이 진하게 느껴지는 편지였다.
p112 오늘날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비판적, 창의적, 배려적 사고와 같은 다차원적 사고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적 가치를 교육하는 교재로서 국정교과서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민주화를 위해서라면 교과서 검정제를 자유발행제로 바꾸어나가야 할 판국에 국정화로 역행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저들의 주장대로 우리나라 역사학자의 90%가 반대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들을 좌파로 낙인찍는다 해서 진실이 감추어지고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p164 그동안 부마민주항쟁을 연구하는 이들도 주로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 자체에만 집중하다 보니 당시 이 사건이 전국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항쟁이 발생하자 경남의 여러 도시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이에 호응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던 사실이 당시 정보기관에서 생산한 여러 문건과 일부 언론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p209 불의한 세력도 늘 ‘정의’를 집권 명분으로 내세웠다. 1980년 광주민주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들어선 제5공화국의 집권당은 그 이름조차 ‘민주정의당’이었다. 제5공화국의 신군부세력은 ‘정의 사회의 실현’을 구호로 내세웠지만, 한 번도 과거사 청산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들이 내세운 정의란 권력의 그럴듯한 치장막이었을 뿐 과거를 성찰하는 도덕적 잣대가 아니었다. 앞으로 다가올 새 시대의 청사진에 ‘정의’를 포함하려 한다면 과거사 청산은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p332 역설적이게도 과거사 청산 이후에야 과거사 청산운동이 퇴행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과거사 청산의 의미와 향후의 과제가 더욱 분명해졌다. 독일의 역사가 에드가 볼프롬의 말대로, 망각과 기억은 서로 얽혀 있다. 기억의 선택 기능으로 인해 어떤 것은 다른 것이 망각되는 대가로 기억된다. 과거사 청산의 대상이었던 과거사는 결코 망각해야 할 과거가 아니다. 또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망각되었던 과거가 아니다. 그 과거는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 망각을 강요당했던 과거사이다. 과거사 청산이 수포로 돌아가 이른바 ‘자학사관’의 극복이라는 미명 아래 과거사가 다시 망각된다면 그 망각의 자리에 무엇이 대신할 것인가를 숙고해보아야 한다.
저자 소개
홍순권
저자는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1991년 3월~2019년 8월 동아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국근현대사를 강의했다. 재직 중 역사학연구소 소장, 한국제노사이드연구회 회장, 부산경남사학회 회장을 지냈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일제하 조선인 노동자 및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된 시민사회운동에 관여했으며, 시민단체 ‘포럼 진실과정의’ 공동대표로 일하면서 학술지 『역사와 책임』의 편집 책임을 맡은 바 있다. 현재 동아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주요 저서로 『한말 호남지역 의병운동사 연구』(1994), 『근대도시와 지방권력』(2010), 『제노사이드와 한국근대』(공저, 2009), 『전쟁과 국가폭력』(공저, 2012), 『한국 현대사와 국가폭력』(공저, 2019) 등이 있다.
차례
책을 펴내며
1부 진실화해위원회 활동과 과거사 정리
1. 과거사 정리는 왜 필요한가?
2. 진실화해위원회의 과거사 진상규명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진상규명
살구쟁이에 묻힌 영혼들의 침묵
르완다의 과거사 현장을 다녀와서
임기 2년 진실화해위원회 위원 활동에 대한 소회
3. 진실화해위원회 활동 이후
과거사 청산과 정부의 책임
‘간첩조작 사건’ 진상규명, 그 이후
‘다크 투어리즘’에 대해서
픽션과 팩션, 영화 속의 과거사 논쟁
과거사 진실규명과 ‘악의 평범성’
2부 역사교육과 역사 교과서
1. 교육과학부의 역사 교과서 수정 명령
역사 교과서의 강제 수정과 교과부의 무리수
2008년 한국 사회의 ‘역사전쟁’과 저들의 색다른 역사인식
한국 근현대사 인식과 역사 교과서 수정 논란
2.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검정 전말
상식이 무너진 자리에 난무하는 이율배반의 언어유희
독선과 선무당의 은유가 된 국정교과서
통합과 배제의 원리
3부 민주화운동과 지역사회
1. 부마민주항쟁의 기억과 진상규명
다시 시월의 그날을 되새기며
국가기념일이 된 ‘부마민주항쟁’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의 성과와 과제
부마민주항쟁과 트라우마
『부마민주항쟁보고서』 발간 이후 관련자 피해 구제와 후속 조치
영화 〈남산의 부장들〉_부마민주항쟁과 김재규
부마민주항쟁의 진상규명과 헌법적 논의
부산대학교 교정의 부마민주항쟁기념관 건립을 반기면서
시월 그날의 기억법
2. 지역사회의 정체성과 민주화운동
되돌아보는 독립운동의 지역 기반
강제징용 노동자상의 부산 건립
5월 그날의 광주와 시민의식
부산의 민주운동사를 기억해야 하는 까닭
5월에 돌이켜 보는 민주주의와 지방분권
부산에 ‘항일독립운동기념공원’ 건립한다면
3. 민주화를 향한 또 다른 시선
어제의 개혁 담론, 『북학의(北學議)』
주술에 포획되었던 대한민국
‘대장부’가 아쉬운 시대
반유신 시위 진압 현장을 목격했던 어떤 경찰관 이야기
‘정의’를 곱씹어보기
4부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의 길
1. 한일관계와 동아시아 과거사
‘경술국치’ 100년, 의병항쟁과 안중근의 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소송 판결
3·1운동 100주년, 한 해를 보내며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의 정상 운영을 위하여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한 램지어의 망언
경제와 과학의 발전과 역사인식의 상관성
소설 『파친코』의 주인공, 순자의 고향에서 맞는 광복 77주년
일본의 동아시아 과거사 인식의 어제와 오늘
한일 간 과거사에 대한 침묵 이후 생길 수 있는 일들
일본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대학살
2. 남북관계와 역사교류
개성 만월대 1일 답사기
평창에서 열리는 만월대 공동발굴 특별전
남북 화해와 역사교류
한반도의 봄, 동아시아의 봄
남북철도 복원 사업에 거는 기대
3. 동아시아 평화 인권 역사기행 외
‘2005 타이페이’의 대만
강제동원의 현장, 탄바 망간 광산을 가다
한류를 보며 개혁을 말하다.
한민족의 디아스포라와 한류
먼구름 한형석과 부산의 추억
논고 | 역사바로세우기의 어제와 오늘
지은이 : 홍순권 쪽 수 : 336쪽 판 형 : 145*210 ISBN : 979-11-6861-223-5 (03910) 가 격 : 25,000원 발행일 : 2023년 12월 29일 분 류 : 국내도서>역사>역사학>역사학 일반 국내도서>역사>한국사 일반 국내도서>역사>한국근현대사>한국전쟁~현재 국내도서>인문학>교양 인문학 국내도서>사회과학>한국정치사/정치사>한국정치사정/정치사-일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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