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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부터 2020년대 팬데믹까지, 한국 사회의 어제와 오늘_『도항』 조갑상 소설가 북토크 후기

by 2raon 2025. 7. 18.

 

 

7월 17일 산지니x공간에서는 조갑상 소설가님의 신작 <도항> 출간을 기념하여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문학/사상 주최로 열린 이번 북토크는 문학평론가 구모룡 선생님, 그리고 조갑상 소설가님과 함께하였습니다. 북토크를 아쉽게 놓치신 분들을 위하여 북토크 후기 아주 세세하게 전달합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 더운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조갑상 선생님의 다섯 번째 단편 소설집 <도항>의 출간을 기념하면서 선생님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선생님 인사 말씀 먼저 있겠습니다.

조갑상 소설가: 반갑습니다. 날씨도 좋은 편도 아닌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글 쓰는 문인들께서도 많이 참석해주셨기 때문에 글 쓰는 고민 등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나누면 좋겠습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 : 올해가 광복 80주년입니다. 소설의 표제인 '도항'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이 일어난 지도 80년입니다. 의미 깊은 단편집이 나왔습니다. 우선은 최근에 선생님께서 연변에 다녀오셨는데 여행 다녀오신 이야기를 여쭙습니다.

조갑상 소설가: 부산소설가협회의 '여름소설학교'로 따라갔는데 이번으로 40몇 회 정도 됩니다. '여름소설학교'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내 나이도 드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또 옛날에 한번 가봤다 보니 다시 가니 여러 감회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가니 조선족들의 공동체가 많이 협소해지고 위축되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도 문학하는 분들은 그 나름대로 활기차게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가 좀 걱정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우리 말을 주당 세 시간만 가르친다 하니까요. 

구모룡 문학평론가: 과거에 연변에 가셨을 때는 그 경험을 통해 <중국산행>이라는 소설도 쓰셨겠습니다.

조갑상 소설가:  산행을 하면서 이야기 끝에 중국 이야기가 나오고 여행 갔던 것을 기억하는 내용인데, 그때는 제가 어떤 관심이 있었냐면, 차를 타고 가거나 기차를 타고 가거나 하면서 스치고 만나는 나이 많은 조선족분 중에는 한국전쟁 의용군으로 참전했던 분도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 연변에 다녀오신 이야기를 나누어봤고, 이번 소설집이 <도항>입니다. '도항'에 대해서는 선생님께서 일찍부터 여러 언급을 하시며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일제시대는 관부연락선이나 일본하고 해협을 다니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는데, 특히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에 선생님께서 많이 관심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그 현장을 생생하게 단편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도항을 쓰신 과정, 또는 이 작품이 가지는 어떤 의도와 효과 이런 거에 대해서 선생님이 생각하셨던 바를 좀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조갑상 소설가:  아직도 부산 영락공원 묘지에 가면은 무연고자들도 계시고, 지금도 가끔 한 번씩 마이즈루 그쪽 사람들이 하는 기념에 대한 책도 나오고 있고, 아직도 연속성을 갖고 있는 사건이죠.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지 폭침이든 기뢰 접촉이든 간에 여러 가지 큰 기본적인 의문이 있다라는 거죠. 왜 그 많은 사람을 태워가지고 출항을 시켰는지, 그게 첫 번째고. 그다음에는 마이즈루를 왜 들어갔는지 하는 거죠.

또 헤엄치는 장면에서 잠시 넣었지만 생존한 분들 중에 보면은 헤엄을 치다가 뭔가 이렇게 잡는다든지 스친다든지 하는 그런 기분을 느꼈을 때 자기도 잘못하면 빨려 들어가니까 물속에서 아주 허둥대면서 뿌리친 기억이 아주 괴롭게 남아있다거나 하면서 여러 가지 기억들로 고통이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과거 이야기지만 현재에 여전히 자극을 주고 있기 때문에 우리 글 쓰는 사람들은 이렇게 소재로 잡을 수가 있거든요.

대일 관계에 있어서 물론 과거를 계속 붙잡고 해서는 안 되겠죠. 그러나 기억은 기억대로 살려두어야 된다라는 것이죠. 근데 이게 소설적 작업으로 본다면은 일본과 관련한 과거 역사를 소설로 써가지고는, 징용이든지 뭐든지 간에 우리 작가가 우리 말로 과거사를 쓰는 것이,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인기가 없는 소재다라는 생각을 제 나름대로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항>은 단편이기도 하니, <문학/사상>에서 청탁이 왔을 때 이걸 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지속적으로 신문에 보도도 되고 있는 사건이고, 부산이라는 도시 자체가 어찌 보면 '도항'이라는 말을 떠나서 그 행위라든지 의미를 놓칠 수 없는 곳이고,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 이런 소설도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 하는 거죠. 

구모룡 문학평론가: 그다음 작품으로 저는 이 단편집에서 <그해 봄을 돌이키는 방법에 대해>에 대해 굉장히 주목을 했습니다. 선생님의 소설 쓰기에서 제목 붙이는 방법이 있는데 대체로 제목과 주제하고 연관이 대부분 다 있습니다. 특히 이번 <그해 봄을 돌이키는 방법에 대해> 이 제목은 참 특별하다, 이 '방법'이라는 말에 대해서 저는 눈길이 갔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쓰시면서 왜 '방법'이라는 말을 쓰셨는지 거기에 대해서 먼저 한번 여쭤보고 싶습니다.

조갑상 소설가 소설가는 제목을 이렇게 붙일까 저렇게 붙일까 고민을 하다가 어쨌든 붙이는데 저는 뭐랄까요, 특별한 생각을 해서 그리한 건 아니고요. 가장 기본적으로는 팬데믹이라는 상황 자체가 너나 없이 고립이라는 위치에 있게 하는 것이고 그런 상황이  우리들에게 놓쳤던 과거를, 옛날을 돌아보게 할 수도 있지 않는가. 그런 데다가 이제 마침 <킹 메이커>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고, 그게  이 소설의 주인공이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니까 제가 그렇게 붙였습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 예.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제가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였나 싶기도 하네요. 그런데 이 소설을 보면은 이제 <킹 메이커>라는 영화를 보면서 옛날 그 시절 그러니까 1971년이죠. 김대중 박정희 이렇게 선거가 붙었던 그 해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 속 인물이 대학생인데 우체국에 다니는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는 이야기거든요. 근데 선생님 소설을 읽어보면 성공한 사랑은 하나도 없어요. 다 실패한 사랑들뿐인데 특히 그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는 이야기가 좀 들어 있습니다. 또 사랑에 실패하면 이제 군대로 가거든요. 월남전에 가버리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들은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라는 장편하고도 연결이 되는 거예요. 이 소설에서도 중학교 시절부터 이야기를 끄집어내거든요.

그래서 이 소설의 이 '방법'이라는 게 단지 소설적인 방법이 아니고,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기를 치유하는 그런 면도 있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전에 나온 중학교 시절을 다룬 선생님의 소설이 <방화>입니다. 중학생이 학교에 불 지르는 이야기예요. 이 소설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끝>에 실려 있습니다. 그다음에 <더 큰 비밀> 이런 이야기도 청소년 시절 이야기고 그다음에 <거세된 사랑>은 이제 청년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거세된 사랑>에서 잘못된 사랑이 장편으로 이어지죠. 이런 거 하고 그 연장선에서 저는 이 소설을 읽었습니다. 이게 제가 잘못 읽은 건지 아니면 어떤 건지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조갑상 소설가:  대단한 평론가께서 잘못 읽을 일은 있겠습니까? 제가 이 책을 받고 처음부터 읽었습니다. 책이 반갑기도 해서 읽는데 <도항>을 읽을 때 든 시간하고 지금 말하는 작품을 읽을 때 하고는 시간 차이가 납니다. <도항>은 빨리 읽었고 뒤에 작품은 아주 더디게 읽히더라고요. 그러니까 1인칭 소설인 데다가 기억이 담겨 있으니까 내 모습의 허구화라든지 그런 것도 이제 있다는 게 첫 번째 대답인 거죠.
1971년이라는 해는 저에게 좀 강렬하게 기억되는 해였어요. 71년 봄에 국회의원 선거도 있고 대통령 선거도 있고 또 아시다시피 실미도 사건도 있었죠. 그 속에 제가 대학교 3학년이었어요. 군대 가기 전이었는데 3학년 정도 되니까 글쓰기부터 여러 가지 고민 같은 게 있었겠죠. 거기다가 이제 2학기를 다녔는데 그때는 교련 반대 데모를 많이 할 때예요.
이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어지간한 대학은 크든 작든 공개적이든 아니든 교련 반대에 대한 어떤 행위를 했는데 제가 다니는 학교는 이제 그러지 못한 거죠. 근데 어떤 날 점심 먹고 시간이 남아가지고 어디 모여서 앉아서 3학년 남학생끼리 이야기를 하는데 누가 뭐 다른 학교는 데모도 하는데 우리가 데모는 못 할망정 수업이라도 보이콧하자고 한 거죠.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그러자 해서 교련을 안 들어갔어요. 그때 남학생들이 숫자가 한 열몇 명 정도였나 그런데, 맨 처음에 그 이야기를 한 친구는 군대를 갔다 온 친구였죠. 교련을 안 듣고 한 학기가 지나니 학점이 안 나왔어요. 그러니 신체 검사를 미루는 혜택을 못 받았지요.
12월 중순에  통지가 왔는데 굉장히 우울하고 그랬던 71년이었습니다. 그 해를 내가 이렇게 좀 보듬어야 된다든지 뭐 이렇게 한 번이라도 뭘 해보고 싶다는 제 생각도 있었죠. 또 1971년 대선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거는 지역감정이죠. 지역감정의 시초가 이때입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 책 256쪽에 보면 인용을 해놓은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해설에서 유일하게 인용한 부분인데 "중학교 시절 1학년 1년 휴학한 것부터 너무 마음 아팠다. 세상에서 벌어진 듯 외로웠던 그 시간 동안 정신적으로 무척 컸을 테고 그래서 그녀와 사귀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에 무척 성숙했다라고 이런 이야기가 돌연하게 나와 있거든요. 다른 소설에도 보면요. <보스니아에 대한 꿈>에도 보면은 어지러웠던 고교 시절에 대한 언급이 있고요. 다른 소설에서도 공부를 안 하고 <데미안>을 읽었다는 내용도 나와요. 

선생님의 소설은 성장 소설들이 많아요. 중고등학교 시절 대학 시절 이런 게 군데군데 이야기가 단편으로 돼 있는 것도 있고 또 때로는 구석구석 흔적으로도 나오기도 하고 하는데 굉장히 궁금해요. 중고등학교 시절은 데미안을 중요하게 읽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나중에 작가로서의 길을 걸으면서는 안톤 체호프를 주로 읽었다는 이야기도 있거든요

조갑상 소설가: <데미안> 이야기하셨는데 연상의 여자에 대한 관계를 만들다 보니까 그런 걸 하나 넣은 것이고,  데미안이라는 소설을 이제 빌렸다고 할까요? 그다음에 이제 체호프 같은 경우는 제가 많이 읽었어요. 여러 번 읽고 기법도 기법이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알려주는 내용이 많아서 마음에 와닿았죠.

구모룡 문학평론가:  소설 이론들을 보면 대부분 장편 소설 이론을 단편에 적용하고 그러거든요. 뭐 영웅적 주인공, 세계사적 주인공, 문제적 개인 이런 것은 다 장편에 해당됩니다. 또 한편 우리 교육의 잘못된 게 플롯 이론입니다. 발단부터 결말까지 있어야 된다 그게 아니거든요. 단편은 밑도 끝도 없는 겁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거예요. 소설이 그런 거거든요. 선생님의 등단작은 <혼자 웃기>라는 소설인데 굉장히 뛰어난 작품이죠. 친구가 다방 지하에서 인질극을 벌이고 있는데 그 친구를 만나러 가면서 자기는 평소에 하던 수도 검침하던 생각을 하면서 혼자 웃거든요. 그걸로 끝나버립니다.
그러니까 아주 심각한 상황인데도 혼자 웃는 웃음으로 승화합니다. 다른 소설에서도 혼자 웃는 장면이 조금 몇 번 보이는데, 이런 방식으로 소설을 쓰시면서 <혼자 웃기> 이후로 일관되게 그런 미학적인 수준을 계속 유지하고 계신다고 봐지거든요. 등단 전에는 어떤 작품을 쓰셨고 어떻게 등단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조갑상 소설가:  문학을 이제 하게 되는 건 다 비슷하거나 조금씩 다른데 저 같은 경우는 초등학교 다닐 때 백일장도 나가고 그때는 항상 웅변 대회도 많았기 때문에 웅변 대회도 나가게 되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고 중학교 때는 <학원>이라는 잡지에 글을 써서 보냈는데 그게 입선인지가 됐어요. 그 제목이 <공납금>입니다. 그러니까  내 이야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쓰는 것이 소설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뒤에도 소설도 쓰고 대학 다니면서도 책을 쓰고 했는데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심지어는 무슨 생각까지 들었냐면은, 그때는 원고지에다가 다 써서 보내는 거니까 내가 잘 쓰기는 잘 쓰는데 필체가 안 좋아가지고 안 됐다 하는 생각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다가 79년에 세 편을 만들어 가지고 보냈는데 <혼자 웃기>가 됐어요. 너무 말을 다 하려고 하거나 모든 것을 맞춰 넣으려는, 이런 것을 못 하게 하는 글쓰기를 제가 계속 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 절제하는 것은 일종의 미적 거리죠.  앞에 이야기한 <그해 봄을 돌이키는 방법에 대하여>가 1971년이라면은 <1972년의 교육>은 파월 교육대에 들어가가지고 유신헌법 교육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또 월남전에 참전하면은 월급이 나오니까 그걸 군인들이 월급을 땡겨 쓰고 하면서 생긴 문제들을 보는 작품인데요. 앞서 쓰신 <병들의 공화국>이라는 작품하고 연결이 되더라고요. 억압적인 제도 속에, 그런 상황 속에 놓인 개인들 이런 데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가지신 것 같습니다.
또 하나 궁금한 거는 왜 이런 조직과 제도 속에 있는 개인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 건지이고, 또 하나는 왜 월남전에 참전하려고 하셨는지. <1972년의 교육>은 실제 경험을 이야기한 작품으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조갑상 소설가: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어떤 단체든지 사회든지, 그런 것이 집약되며 극대화된 곳이 학교일 수도 있지만 군대가 가장 큰 그런 조직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기다림을 위하여>라는 소설을 쓴 적 있는데 그 소설도 파월 교육대에서 명령이 안 나와서 계속 거기에 머물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제 군 생활은 좀 힘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72년 봄에 군에 갔는데 가기 전에 군대를 가면은 월남에 가야지라는 생각을 막연하게나마 하고 있었어요. 월남을 갔다 와야 제대로 소설도 쓸 수 있다라는 그 생각도 있고 그래가지고 제가 처음으로 군대 근무지를 어디에 배치 받았냐면은 논산 훈련소에 받았어요. 거기가 힘들다면 힘들지만 또 편하다면 아주 편한 곳인데, 저는 8월에 지원을 해서 그 부대를 떠나 다른 부대에 가게 됐는데, 전출이 군대에서는 굉장히 힘든 거예요. 거기에 대한 기합도 있고 근데 내가 가기는 갔는데 가보니까 단기 하사 20명에 병이 20명이 있는 거예요. 
단기 하사는 아시다시피 이병부터 병장으로 제대하는 대신 처음부터 하사로 계급장을 달고 하사로 제대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들은 계급상으로는 병장보다는 개월 수가 떨어지더라도 계급은 높고 집단적으로 20명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한 20개월이 안 된 기수들이었는데 힘들게 지냈지요. 이제 거기서 뭐랄까요? 개인과 폭력이라든지 그런 것이 소설에 많이 담긴 것 같습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 <병들의 공화국>하고 그다음에 <1972년에 교육>하고 이렇게 월남전을 자꾸 가시겠다 생각한 것은 혹시 사랑에 대한 도피는 아니신지.

조갑상 소설가: 하하하. 제가 어렸을 때는 한 동네에 아주 오래 살았어요. 집도 한 집에 거의 20여 년을 살았어요. 그래서 이제 초등학교는 중앙국민학교를 다녔는데 이제 걸어 다니는 거죠. 골목길이면 옆 골목이나 저 골목이나 그거밖에 없이 맨날 걸어 왔다 갔다 해야 되는데 어떤 때는 이 지루한 걸 어찌어찌 살꼬 싶더라고요. 그런 지루함에 대한 두려움이라든지 반감이라든지 뭐 이런 게 있었죠. 그러다 보니까 가만히 있기 싫은 그런 게 있었습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 선생님은 그동안 보면 학교나 군대나 사회에서의 어떤 상황 속에서, 개인이 의지적으로 뭘 선택하기보다는 그 속에서 어떻게 느끼고 삶을 영위하는가를 굉장히 섬세하게 추적해 오셨습니다. 그런 속에서 폭력의 문제들도 많이 다루었습니다. 보도연맹 사건을 굉장히 집중적으로 다루셨는데 <사라진 하늘>부터 장편 <밤의 눈>, <보이지 않는 숲>에 이르기까지 국가 폭력에 대한 글을 많이 쓰셨습니다. 그 연장선에서 <이름 석 자로 불리던 날>이라는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이건 부산이 떠들썩했던 형제 복지원 사건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것도 역시 전두환 군부 체제 때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국가 폭력의 연장선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단 하루동안 거기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생생하고 리얼하게 우리에게 와닿도록 작품을 쓰셨습니다. 이 작품은 어떤 의도를 갖고 이렇게 쓰셨는지 한번 듣고 싶습니다.

조갑상 소설가: 기억이 비슷할 수도 있는데 기차 타거나 버스 타고 이렇게 구포 쪽으로 가다 보면은 개금 쪽에 건물들이 아주 특이했고 언덕바지에서 눈에 보이고 그랬죠. 그때 부랑자들 단속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사람들도 알고 있었겠죠. 그런 시설이 있고 그런 행위가 있었는 걸 아는데 그때 그렇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자체가 잘못되었고 이상하다는 거죠. 형제복지원 보도가 나고 어떤 분한테 만나서 들었는데 그분은 형제복지원에 가서 점심을 같이 먹었대요. 거기에 있는 분과 아는 사이였다고 하는데,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긴 하는데 이쪽 테이블엔 직원들이 먹고, 한참 저쪽에는 원생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뭐 그런 데구나라는 생각만 했지 그런 일들까지는 생각을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 밥만 먹고 나왔으니까 그랬겠지만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다는 자체가 상당히 문제가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또 우리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기도 하고 잡혀들어간 사례들을 보면 넥타이를 맨 옷을 입은 사람이 아니면은 누구든지 구경을 하거나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 있거나, 두리번거리거나 했을 때 단속 차만 왔으면 누구든지 실려갈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좀 무서운 거죠. 그래서 한 번은 써야 되겠다 싶어서 소설을 썼습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  이 소설은 설명을 피하고 장면을 보여주면서 수용소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데요, 아주 소설적인 효과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형제복지원이라는 게 1975년부터 있었는데 1980년 들어서 더 확장이 됐고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그때 형제복지원만 있는 게 아니고 삼청교육대라는 게 또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누가 싸우면은 잡아다가 삼청교육대에 집어넣거나 형제 복지원에 집어넣는 이런 시절이었거든요. 그게 군부 독재 시절인데 여전히 밝혀져야 될 그런 내용들이 많습니다.

설명을 하지 않고 인물들의 행위와 대화를 통해서 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주기가 쉽지 않거든요. 작가들은 자꾸 설명을 하려고 하고, 전지적 시점으로 스스로 개입을 해서 서술하거나 설명하며 요약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생님의 소설은 철저하게 절제하면서 미학적인 완성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단편이 그렇다고 보면 됩니다.

 

또 가족 이야기를 많이 쓰셨거든요.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 이런 게 다 가족 이야기인데, 어떻게 보면 사소하고 자잘한 이야기들입니다. 가족 간에 심각하게 굴곡이 있거나 갈등이 파국으로 이어지거나 이렇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쓰시는데 또 어떤 분들은 조갑상 선생님의 이런 가족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우리 일상 속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어서 이야기를 하고 계시기 때문인데 이 <현수의 하루>도 그런 이야기죠. 사람들의 관계를 섬세하게  바라보고 내면까지 이야기하시자면은 평소에 좀 피곤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렇게 쓰시는 것은 어떤 동기이십니까?

조갑상 소설가: 작가가 가족 이야기를 쓰는 거는 드문 경우는 아닌데, 저는 형제도 여러 명이고 아버님 형제분들도 많고 어머님 형제분들도 많다 보니 그런 걸 쓰게 된 거겠죠. 저는 전쟁 끝나고 마산에서 부산으로 이사를 왔는데,  누가 먼저 도시에 나오면은 고향에 있는 사람들이 도시로 나올 때 그 집을 거쳐서 가잖아요.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고 형님이나 누나, 아저씨 분들을 자연스럽게 많이 알게 되는 거죠. 그리고 소설 쓸 때 기억에 남고 하면 소재로 활용되기도 하죠.

구모룡 문학평론가: 가족 이야기만 그런 게 아니고 <여러 노래가 섞여서> 이 작품도 보면은 중앙아시아에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여정을 따라 가는 여행에 주인공이 섞여 가는 이야기인데 여러 사람들이 모였으니까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부릅니다. 나중에 가서는 서로 교감에 이르는 과정이 잘 나와 있습니다.  이 소설도 선생님께서 실제로 중앙아시아를 갔다 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죠? 이 작품 배경을 한번 이야기해 주시죠.

조갑상 소설가: 지금 우리가 고려인이라고 부르는 중앙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은 본래 조선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고국이 두 개로 나뉘면서 정부가 들어섰는데 남쪽은 대한민국이라고 하고 북쪽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고 쓰니까 이 사람들이 조선인이라 말을 하면은 이게 자칫 북한 사람이라고 들릴 수 있게 된 거죠. 그러면 조선을 갖다가 못 쓰니까 고려인이 됐다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80주년 기념으로 갔는데 그 무렵이 그러니까 어떤 정부 시절이었는가는 모르겠습니다. 
가는 데 행사도 여러 개 하고 주최 측에 대해서 막 항의하는 손님도 있고 그런 얘기들로 좀 티격거리기도 했는데요. 아마 그 당시 정부의 남북 관계에 대한 생각이라든지 이런 거 자체가 작용을 한 것 같더라고요. 거기다 특히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노래를 두고도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소설에 넣었죠.

한반도 외의 여러 나라에 동포들이 사시잖아요. 그중에 일본 계시는 분이나 아까 말한 조선족 분들도 있고 중앙아시아에 사는 분들은 지금은 더 하지만 3세대 4세대 정도는 한글을 몰랐거든요. 중앙아시아에 간 고려인 1세대는 교육을 받기가 어려웠으니까 2세대들은 대학까지 공부를 시켜서 모스크바까지도 유학도 가고 주로 기술 공대 같은 이공계통으로 많이 가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에  기술직 공무원으로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거예요. 북한 정부가 수립될 때 남한보다 훨씬 빨리 체제를 잡은 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은 그중에 하나는 이북의 공장들이 많고 그렇다 아닙니까? 이 사람들이 와가지고 북한의 정부 수립에 각 공무원 노릇도 하면서 그랬다는 것도 뒤에 알게 됐죠.

구모룡 문학평론가:  예 이제 가족이든 사회든 민족이든 추상적으로 요약 정리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시인이든 작가든 모두 이런 요약 정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삶의 디테일을 찾아서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그런 점에서 조갑상 선생님의 단편 소설은 가장 바람직한 전범들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헨리 제임스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정성껏 요리하는 것 이것 말고 다른 조리법은 없다" 이게 사실은 헨리 제임스가 소설 쓰는 걸 은유한 거거든요. 음식점도 정성껏 요리하는 집에 다 손님들이 몰려듭니다. 선생님의 소설을 읽으면 굉장히 정성껏 요리를 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소설가가 평생 이렇게 소설을 쓰고, 소설의 방법을 진전시키고 터득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은 소설가의 어떤 사유나 삶하고 분리될 수 없다, 그러니까 소설가는 소설의 방법을 통해서 자기를 성장시키는 존재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선생님 작품을 그런 식으로 읽으려고 해봤습니다. 조갑상 선생님께서는 앞으로도 <데미안> 등을 능가하는 성장 소설을 집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편을 하나 쓰신다면은 그런 걸 주문을 하고 싶고, 더 훌륭한 사랑 소설도 쓸 수 있으실 것 같은데 이제 마지막으로 어떤 계획들을 갖고 계신지말씀을 좀 해 주시죠.

조갑상 소설가: 작가의 말에 쓴 것처럼, 경기장에 있긴 있는데 빨리 휘슬을 안 부는지 하는 그런 운동선수 같은 기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쓰기는 쓰고 해봤죠. 여러 작품을 장편으로 만들어볼 생각도 처음부터 있었으니까요. 근데 마땅치 않더라고요. 이제 두렵다고 그러나요 내가 잘 썼든 못 썼던 내 앞에 발표한 작품보다 뒤의 작품이 혹시나 잘못 쓴다는 말을 들을까 두려운 마음도 있고 좀 복잡하다 할까요? 좋은 성장 소설도 쓸 수 있을런지 여러 자극을 받고는 있지만 특별히 뭘 쓰겠다는 말씀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 현기영 선생은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는 말을 일찌감치 했습니다. 80이 넘으셔서 소설을 쓰시고 그거로 대산 문학상도 받고 이러셨는데 선생님도 더 좋은 작품을 계속 쓰실 거라고 믿습니다.


북토크를 아쉽게 놓친 분들께 현장감이 생생하게 전달된 글이었길 바라며,  글 마칩니다.

<도항>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도항』더 알아보기  

 

도항 | 조갑상 - 교보문고

도항 | 1945년 해방부터 2020년대 팬데믹까지, 한국 사회의 어제와 오늘을 소설로 엮어내다▶ 역사와 부산을 서사화하는 소설가 조갑상의 다섯 번째 단편집 『도항』 역사와 부산을 서사화하는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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