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의 뒷모습
유익서 소설집

✒ 책소개
“왜, 어째서 인류는
태연히 아름다움을 버려왔는가.”
▶ 문학의 지향을 묻고 그 답을 찾는 유익서의 여덟 번째 소설집
문학과 삶의 경계를 오가며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성찰을 이어온 유익서의 신작 소설집 『김형의 뒷모습』이 출간되었다. 등단 이후 50여 년 동안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장편과 단편을 성실히 발표해 온 그는, 통영 한산도로 거처를 옮긴 뒤 17년간 고독한 세월을 보내며 문학적 갱신을 모색해 왔다. 이번에 발표하는 여덟 번째 소설집에는 문학으로부터 추방되고 있는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의 회복에 대한 고민 속에서 빚어진 단편들을 묶었다.
책에 실린 일곱 작품은 작가의 경험과 사색을 바탕으로, 고독한 창작자의 삶과 예술의 존재 이유를 탐문한다. 소설가는 작품에서 소설을 비롯한 문학의 위기 담론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기술과 영상 매체의 발달 속에서 소설이 품어야 할 깊은 사유와 진지한 질문을 역설한다. 또한 이념을 넘어서는 예술의 본질적 가치란 무엇인지 질문하고 현실과 부딪치면서도 창작을 이어가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낸다.
『김형의 뒷모습』은 유익서가 한산도의 고독 속에서 길어 올린 문학적 사유의 결정체이며, 동시에 지금 이 시대에 소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 진지한 응답이다. 작가는 “고독하게 날마다 새로운 시작을 거듭하는”(구모룡 문학평론가) 창작자의 자세로, 우리 곁의 이웃이자 성찰하는 동시대인으로서 다시금 문학의 힘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
▶ 소설을 통해 말하는 소설의 위기
표제작 「김형의 뒷모습」은 소설을 가벼운 이야기로 치부하는 세태 앞에서 문학이 지켜야 할 품격과 책임에 대한 저자의 절절한 고민을 드러낸다. 주인공 ‘김형’은 소설 작업을 위해 통영을 방문해 젊은 시절 같은 소설 동인이었던 화자와 만난다. 김형은 취재를 위해 갑골문자 연구자와의 만남을 시도하지만 연구자는 “소설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말로 거절하고, 소설의 궁극적 지향점을 모르는 세태에 분노한 김형은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통영을 떠난다.
「달걀 벗기기」는 소설 위기 담론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문학과 예술을 평가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저자 개인의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주인공은 소설가로, 작업을 위해 고창 질마재 미당시문학관을 방문한다. 그곳 사무장과 서정주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서정주의 친일 행적으로 인해 그의 시가 교과서에서 제외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주인공은 충격을 받는다. 미당 시의 아름다움이 교육 현장으로부터 배척당한다는 복잡한 상념은 주인공이 매일 아침 먹는 달걀의 껍질 벗기기라는 난제와 만나며 한층 더 깊어진다.

▶ 자유와 창작의 빛을 가린 벽, 체제의 폭력을 고발하다
정치와 사회의 틀에 구애받지 않는 창작에 대한 문제의식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나아간다. 「저 너머 고향」은 저자 특유의 시적 문체와 알레고리를 만날 수 있는 작품으로 무대, 스크린, 탈놀이판이 현실과 병치된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한 사내는 고향으로 가고자 빛의 벽을 넘어 탈출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20년이 넘는 감옥살이 끝에 출소하지만 오히려 그에게는 자유가 불편한 것이 되어버리고, 다시 교도소로 가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다. 자신이 벽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 벽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 체제에 속박되어 수인이 된 삶에 대한 풍자가 돋보인다.
「옰」은 구소련의 교육 현실에서 당과 이데올로기가 학생의 창의성과 자유를 억압하는 사태를 서술한다. 까레이스키인 주인공 ‘비쨔’는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지녔으나 예술을 정치적 도구로 삼는 체제에서 그의 창의성은 반동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학교는 비쨔에게 퇴학 처분을 내리고, 비쨔는 이를 이해하지 못하며 충격과 분노를 느낀다. 저자는 한 소년의 좌절을 그리며 사회주의 체제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소련의 해체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력을 말살한 대가임을 암시한다.
▶ 한산도 생활과 고립, 그리고 소설 쓰기
자전적 서사를 통해 전달되는 작가의 소명
『김형의 뒷모습』의 많은 작품이 한산도를 배경으로 하는 만큼, 독자들은 소설을 통해 저자의 고립된 삶과 소설가로서의 고민을 짐작할 수 있다. 「탈춤」의 주인공 ‘송’은 과거 연재한 명인명창의 인터뷰를 책으로 묶는 과정에서 자료의 보충을 위해 ‘하 선생’을 만난다. 전통 예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송은 하 선생에게 통영 오광대를 주제로 당대의 것을 뛰어넘는 “천년왕국”을 개진할 것을 요청하는데, 이처럼 저자는 작중 인물인 송의 입을 빌려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전개한다.
「… 및 …」의 화자는 소설가로, 한산도 생활을 통해 자발적 은둔을 수행하고 있다. 한때 문학을 하며 세상을 바꾸고자 했으나 그는 나이 듦에 따라 세상의 흐름에 순응해 버렸고, 그러한 과거를 후회하며 부끄러움을 털어내기 위해 안락한 일상으로부터 탈출해 한산도로 이주를 결행한 것이다. 작품에서 묘사되는 수행에 가까운 생활과 화자의 고민, 쓰고 있는 소설에 관한 이야기는 저자의 삶의 풍경과 자연스레 겹쳐지며 저자의 한산도 생활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혼자 나는 새가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건」은 암벽을 오르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주인공 ‘영후’는 과거 친구 ‘민수’와 함께 마칼루 원정을 갔다 그곳에서 그를 잃은 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산다. 민수의 연인이었던 ‘인경’과 재회한 후 영후는 “죽음과 맞닥뜨린 절망적인 순간마다 민수가 읊조리고는” 했던 ‘고독한 새가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건’을 떠올리며 다시 마칼루로 향한다. 과거를 마주하고 새로운 시작을 향해 첫발을 내딛는 인물의 모습은 수행을 통해 날마다 새롭게 삶을 대하고자 하는 저자의 다짐과도 같다.

✒ 책속으로
p23 자연은 그의 섭리를 따르지 않는 인간은 죽음이라는 형벌로 다스립니다. 그러나 그 빛의 벽이나 어둠의 벽은 자연의 소산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산도 아니고 강도 아니고 바다도 아니고 벼랑도 아니고 계곡도 아닙니다. 그것은 국제 정치 역학적 소산물로 관계자들이 임의로 그어놓은 선이고 벽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인위적인 선이나 구축물이 자연의 소생인 인간을 억압하고 묶는 덫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빛의 벽과 어둠의 벽은 그것을 구축한 자들의 이념을 위해 일방적으로 자연의 소산인 이 땅의 모든 사람을 마치 운명처럼 도도히 가두고 다스리며 군림하고 있습니다._「저 너머 고향」
p67 인류의 발자취를 밝혀나간 여러 연구자들의 최종 결론은, 매사 허탈함이로다, 였어. 전력을 쏟아 연구 성과물을 내놓으면 자기 능력 밖의 어떤 잉여 영역이 빤히 내려다보며 조롱하고 있는 것 같아 소름 끼친다고. 우리 능력이란 한계가 빤해. 결국 우리는 무한반복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인간 만사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이 하나 없는 것이라고._「탈춤」
p100-101 문학 작품이 시대의 소산물임은 자명하지만 그 평가는 시대를 뛰어넘어 역사적 안목과 잣대로 재단되고 평가되어야 올바른 것 아닌가. 그런데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시적이고 무상한 시대적, 정치적 잣대로, 더욱이 비전문가들이 문학작품을 재단하고 평가하고 훼절하다니._「달걀 벗기기」
p121-122 책을 읽으면 새로운 생각과 만나게 되고 그 새로운 생각이 자극제가 돼 새로운 생각을 낳게 되지. 새로 낳은 그 생각이 곧 창조적으로 작동하게 되면 발명품이 나오기도 하고. 인류문화 발전을 바라지 않는다면 별문제겠지만, 앞으로도 인류에게 문화 발전이 필요하다면, 사람들이 계속 영상매체를 신주 모시듯 모시고 살아서야 되겠나, 아니면 생각을 자극하여 창조적 행위를 유도하는 활자매체를 문화의 대표적 지위에 다시 재옹립시켜야 되겠나?_「김형의 뒷모습」
p174 “오랜만이다. 자주 찾아오지 못해 미안하다. 이번에 인경이 마칼루에 다시 오르자는구나. 아마 민수 널 꼭 데려올 생각인가 봐. 나도 낭가파르바트 등정 계획을 뒤로 미뤘다. 낭가파르바트 원정을 다음으로 미루자고 하자 자이언트 대원들이 난리가 났었다. 하지만 내게 너를 데려오는 일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뭐가 더 있겠니. 우리가 찾아가면 이번에는 꼭 나타나 우리를 만나주렴.”_「혼자 나는 새가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건」
p197 “사를로따 선생님, 선생님은 그들의 재주에 주목해달라고 하시지만 그 노랫말을 한 번이라도 눈여겨보신 적 있습니까? 하나같이 반동적인 것이 아니면 패배자의 넋두리나 탄식 같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냉소 뒤에는 세상을 송두리째 뒤집어엎어야 한다는 선동이 짙게 깔려 있습니다. 이런 노래를 이 세상에서 불리도록 용인해야 한다는 말입니까?”_「옰」
p230 반복을 거듭하는 일상은 언제나 익숙한 습관과 편안한 생활을 제공하였다. 그러므로 일상을 탈출한다는 것은 곧 낯익은 것들과 편안한 생활을 등지고 고생길로 접어든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누가 고생을 스스로 지어 가까이하고 싶겠는가. 집을 등지고 떠나야 한다는 결론은 내려졌으나 망설임이 거듭될 뿐 실행이 마냥 늦춰졌다. 다른 까닭 때문이 아니었다. 고생길에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한 졸렬함 때문이었다._「… 및 …」

✒ 추천사
통영 외곽에 자리한 선생님의 아파트를 방문한 적이 있다. 예상대로 사방이 책이었고 집 안은 깨끗했다. 장보고 요리하고, 청소하는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하셨는데 『김형의 뒷모습』을 보니 그게 아니다. 삶은 달걀 껍질 하나 제대로 벗기지 못하시면서, 귀찮고 고된 노동을 복이라고 하신다. 기꺼이 몸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것은 큰 염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선생님의 한평생 염원은 소설이다. 그 말을 하실 때마다 후배인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웃는다.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스스로를 벼랑 끝에 세워야 할 수 있는 일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여든을 넘긴 선생님의 언어는 통영 바다에서 헹군 듯 명징하고 날카롭다. 다시 읽으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선생님의 웃음처럼 따뜻하고 부드럽기도 하다. 『김형의 뒷모습』은 선생님이 통영에 뿌리를 내리고 키운 일곱 말(馬)이다. 소설의 길도 세상의 길도 그 안에 있다. _정영선 소설가

✒ 저자 소개
유익서
197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부곡(部曲)」이 가작, 197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우리들의 축제」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후, 고도의 상징과 알레고리로 문제적 현실을 적실히 재현한 『비철 이야기』 『표류하는 소금』 『바위 물고기』 『한산수첩』 『고래 그림 碑』 등 소설집과, 우리 전통음악의 우수성과 고유한 아름다움의 근본을 밝혀 문예 미학적으로 승화시킨 『새남소리』 『민꽃소리』 『노래항아리』 소리 3부작을 비롯하여 『아벨의 시간』 『예성강』 『세 발 까마귀』 『소설 진달래꽃』 등의 장편소설을 출간했고, 우리 명인명창 15인의 장려한 민족예술혼을 담은 『소리와 춤을 살았더라』를 세상에 내놓았다. 한동안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부 초빙교수를 지냈으며, 이주홍문학상, PEN문학상, 성균관문학상, 류주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차례
저 너머 고향
탈춤
달걀 벗기기
김형의 뒷모습
혼자 나는 새가 갖추어야 할 다섯 가지 조건
옰
… 및 …
해설 | 소설가로 사는 법_구모룡(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김형의 뒷모습
유익서 소설집
지은이 : 유익서
쪽 수 : 272쪽
판 형 : 142*210
ISBN : 979-11-6861-511-3 03810
가 격 : 19,000원
발행일 : 2025년 8월 31일
분 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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