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전복라면입니다. 배고플 때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책, 『삼겹살』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정형남 선생님은 주간 산지니 6월 셋째주 호에도 등장하셨을 정도로 저희 산지니의 스타 작가신데요, 많은 이유들이 있지만 일단 출중한 외모가 일순위지요.
우리 모두를 쓰러지게 만든 미소. | 흩날리는 은발이 매력 포인트. |
『해인을 찾아서』와 『남도(南島)』 등으로 고유한 문학세계를 만들어온 중견소설가 정형남이 오랜만에 장편소설을 출간하였습니다.
난계 오영수의 적통다운 향토적 정서와 정감 어린 어휘, 반도시주의가 돋보이는 『삼겹살』은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는 남위원이 도시에서 생활하다 귀향을 결심하기까지 만난 사람들과 그의 고향 정경을 그린 장편소설입니다. 선생님은 오랜 세월 부산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 전남 보성으로 터전을 옮겼는데, 이러한 자전적인 면모를 글 속에서 엿볼 수 있답니다.
주요 등장인물인 ‘남위원’은 지식인인 동시에 경계인(marginal man)의 위치에 있습니다다. 시인, 화가, 서예가 등 남위원의 벗들도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세속 도시에 쉽게 영합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들은 경계에 모여 이야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며 술을 나눈답니다.
경계인들이 형성한 우애의 공동체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삼겹살입니다. 사실 선생님은 돼지고기를 못 드시는데, 이 소설에서는 삼겹살과 돼지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 곳이 없어요.(ㅋㅋㅋ) 삼겹살은 우애, 환대, 배려의 공동체를 매개합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삼겹살을 즐겨 먹었는지 아시오? 그야, 역사가 꽤나 오래되었을 걸요. 선사 이래로 돼지는 없어서는 안 될 제수용이자 영양 공급원이었으니까. 돼지고기야 오래전부터 즐겨 먹었지요. 그런데 기름기가 많은 삼겹살을 즐겨먹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중략)
탄광촌은 연탄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땅속 깊이로 자맥질하듯 탄맥을 파 들어갔다. 광부들은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하루에도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나 목숨을 잃거나 불구자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하 수십 미터의 갱 속에서 고된 작업을 하고 나오면 탄가루가 목에 달라붙어 대부분 폐가 망가졌다. 진폐증 환자가 되기 십상이었다. 광부들은 묵은 때를 벗겨내듯 얼굴과 몸에 달라붙은 탄가루를 씻어 낼 때마다 컬컬한 목을 시원스럽게 뚫을 수는 없을까 고심하였다.
눈보라 치던 어느 날, 추위를 이겨 내기 위해 드럼통을 잘라 낸 화덕에 모닥불을 피우며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화덕 위에 솥뚜껑을 올려놓고, 군밤이며 고구마를 구워 먹던 아련한 추억에 젖은 것이다. 언제 고향에 가려나. 다시는 못 올 어린 날의 추억을 눈시울에 매달고 있을 때, 누군가 돼지고기를 들고 왔다. 솥뚜껑 대신 철판을 올려놓고 기름진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막혔던 목구멍이 확 뚫릴 거야. 광부들은 그 말에 신명을 내며 기름기로 지글거리는 삼겹살을 안주로 소주잔을 들이켰다. 카아, 이 맛을 왜 몰랐나. 목구멍에 눌러 붙은 탄가루가 시원스럽게 씻기는구랴. 광부들은 그날 이후로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하나의 의례처럼 삼겹살로 텁텁한 목구멍을 정화시켰다.
그러니까 삼겹살이 굴뚝청소부처럼 광부들의 목구멍을 확 뚫어 주었다? 봄철이면 연례행사처럼 불어오는 황사바람으로 입안이 텁텁하면 삼겹살을 찾지 않는가요. 아무튼, 삼겹살의 역사가 그렇게 짧은 줄 몰랐어요. 풀피리 시인이 최기자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래요, 그래. 탄광광부들이 일구어 놓은 삼겹살이야말로 가난한 서민들의 묵은 때를 포만스럽게 씻겨 주지요. 주인 아낙네가 삼겹살을 들여왔다. 일행은 새로운 기분으로 술잔을 들었다.
자, 건배합시다. 우리도 이놈의 삼겹살로 가슴에 맺힌 자질구레한 때를 한꺼번에 씻어 냅시다.
-본문 중에서
주 소재가 삼겹살이니 표지 만들기가 아주 수월해 보이지만, 사실 저희는 무척 힘들었답니다. '제목이 삼겹살이라고 표지에 돼지고기가 나와도 되는가' 에 대해서 깊게 토론하다가 '사진을 찍어야 하니 일단 삼겹살을 먹으러 가자'는 이상적인 결론(?)에 봉착하곤 했지요ㅋㅋㅋ
마음을 살찌게 하는 『삼겹살』 많이 사랑해 주시고, 저는 제 뒤에 앉아 계신 분(지금 엄청난 분이 앉아계시거든요!)을 소개해드릴 포스팅을 쓸 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삼겹살 -
정형남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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