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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 | 이벤트

제40회 박향 저자와의 만남 - 생생기록 포스팅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0. 31.

 

 

 

 

 

 

지난 10월 25일 목요일, 정해진 시간보다 조금 늦은 7시 10분 제 40회 『즐거운 게임』저자이신 박향 선생님과의 만남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책과 아이들’이라는 아동서적전문서점에서 열렸습니다. 이곳은 교대 지하철역 근처에 위치해 있는데, 아름다운 풍경의 정원과 동화 나라로 꾸며진 내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왼쪽부터 책과 아이들 앞 정원과 입구 모습, 서점 내부의 까페 모습, 다락방에 책이 가득한 서점의 아기자기한 모습입니다>

 

박향 선생님은 2005년 소설집『영화 3편을 보다』를 집필하셨고 2010년 『얼음꽃을 삼킨 아이』로 두 번째 소설집을 선보이셨습니다. 

 

오늘 ‘저자와의 만남’ 사회는 문학비평가 윤인로 선생님께서 맡아주셨습니다. 서점 옆에 자리한 까페에는 박향 선생님을 기다리는 분들로 가득 찼었는데요, 입구에 계신 윤인로 선생님 역시 독자 중 한 분인 줄 알고 있었는데 시간이 되자 앞쪽으로 나가시는 것을 보고 놀랐더랬습니다. 성함에서 느껴지는 연륜과 다르게 무척 젊으신 분이더라구요. 굉장히 진지한 모습으로 사회를 해주셔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언제나처럼 산지니 강수걸 대표께서 저자와의 만남 시작을 알려주셨습니다>

이날 윤인로 선생님은 5개 정도의 질문을 하셨습니다. 사실 매우 철저히 준비된 질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녹취한 것이 아닌 순수 메모에 의지한 저의 재해석이기 때문에 실제 내용과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윤인로 선생님 (이후 윤) : 기존 작품과 이번 작품의 차이점에 대해 궁금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 사물을 대하는 가치관의 변화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결례를 범하면서도 잘 나온 사진이 없어 송구할 따름이에요>

박 향 선생님 (이후 박) : 기존 작품이 많은 편이 아니에요. 『즐거운 게임』은 3번째 작품집이고 오래 전부터 써온 것을 묶은 것이라 갑자기 발표한 것은 아닙니다. 차이점은 사실 없다고 생각했는데 교정할 때 새로 읽으면서 느낀 게 있어요. 전에는 따뜻한 시선으로 무언가를 보았다면 지금은 굉장히 냉소적인 시각이 많은 것 같습니다. 첫째, 둘째 작품집에도 싣지 못한 「홍시」라는 소설이 있는데 뺀 이유는 아마도 가족들이 읽게 되면 집안에서 쫓겨날 것 같아서 (웃음) 싣지 못했어요. 지금은 병원에 계시지만 제가 알기로는 어머니께서 TV만 보시는 줄 알았는데 제 책이 나오면 돋보기를 쓰고 보고 계셔서 참 곤란했어요. 그래서 지금도 계속 드는 생각이 ‘홍시 안 싣길 잘했다’는 거에요. 이「홍시」 역시 지금에 와서 새로 교정을 보며 고쳐나가니 처음 썼던 글의 결론과는 상반되는 굉장히 비참한 내용으로 마무리 되었어요. 그때 지금과 옛날의 차이점을 깨달은 것 같아요. 

 

윤 : 소설 속에는 즐거움과 달콤함의 양가성이 드러납니다. 에로틱한 장면도 많이 드러나고요. 소설 속 에로티시즘의 문제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가 듣고 싶습니다.

 

박 : 「즐거운 게임」이 아마도 그 얘기에 적합한 작품일 것 같은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제 친구도 이 소설 19금으로 해야지 않겠느냐고 말하더군요. 차곡차곡 쌓은 생을 배반하고 조롱하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제까지의 자신의 생은 너무나 보잘 것 없었기 때문에 자의식의 폭발과 열망이 드러난 것 같습니다.

 

윤 : 기존의 질서를 부수는 힘 있는 인물의 생동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묘사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세 번째 질문은 목욕탕을 묘사하시는 장면에서도 굉장히 정밀한 표현들이 눈에 띄었는데 선생님께 묘사 행위의 기본적인 조건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 영화『해피엔드』의 주인공 전도연 씨 인터뷰 중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사람들은 내가 벗는다는 것에만 신경을 쓰는데 나는 굉장히 많은 점을 신경 썼다고. 영화를 보면 정말로 그녀의 몸짓에서 남편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는 권태로움이 느껴져요. 이것이 묘사의 힘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에서도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화자가 몸짓으로 감정을 나타낼 수 있도록. 제 소설은 취재중심은 아니지만 항상 보던 것도 다시 가서 글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봐야 쓸 수 있더라고요.

 

윤 : 책의 제목이 정해지기 전 가장 인상적이었던 단편은 「대화법」이었습니다. 제목을 이것으로 하면 어떨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설 속 등장하는 ‘나’는 모두 다른 인물입니다. 아마  ‘성언’이가 경험하는 고통을 들여다보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피폐해지고 핍박받는 이들을 대하는 소설이 가지는 본질적인 부분과 아울러 선생님의 방법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 : 「대화법」은 저에게는 참으로 불편한 소설이에요. 전에 쓴 소설 『얼음꽃을 삼킨 아이』에서도 아동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나옵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맞서 싸웁니다. 더 큰 상처를 입더라도 계속해서 저항합니다. 하지만 성언이는 일방적인 상처를 받기 때문에 가능하면 읽고 싶지 않은, 외면하고 싶은 소설입니다.

실제로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 세 분의 학부모가 러시아 국적이에요. 한 분은 여기 와서 한국 아이를 기르고 두분은 여기 와서 아이를 낳았는데 ‘과연 말이 통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거치지 않고 어떤 방법으로 소통하는 것이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 쓰게 되었어요. 성언이의 경우만 보더라도 게임기와 금붕어라는 단절된 세상을 더 맞닥뜨리지만 그 둘 역시 고장나버리거나 죽게 되었으니까요.

작가는 아마도 책임감으로 글을 써나가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상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치유 역시 할 수 없을 테니까요. 상처를 억누르거나 도망가면 치유가 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즐거운 게임」의 유림이 역시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계속해서 세상과 부딪혀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소설의 장점은 아마도 치유의 방법으로써 고통을 맞이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고통에 대해 씀으로써 깨어있게 하고 인식하게 하고 보여줄 수 있어 좋습니다. 그러나 그저 고통과 상처를 건드리고 마는 것이 아닌가, 회피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반성도 많이 합니다. 너무 비겁해지는 게 아닌가 하고요.

 

윤 : 소설은 재현의 힘을 가지고 있지만 폭력의 요소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것을 비평의 언어로 말하자면 ‘재현의 불가능성’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논의되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사회적 고통에 대한 이야기들, 진정한 치유는 김난도 교수가 쓴 책과 같은 것으로는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단편 「육포냄새」에서 “씹다보면 달아, 아저씨.” 이 대목은 매우 중대한 인식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 책을 대변해주는 한 문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건과 사람, 사물을 곱씹고 사고하고 자주 대면하고 더 강렬하게 그려주시길,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열심히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이어진 질문 시간에는 주로 어느 시간대에 소설을 쓰고, 최초의 독자는 누구인지 궁금하다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박향 선생님 작품의 최초 독자는 논리적인 오류를 짚어내는 남편이라고 하시네요. 얼마 전 부산일보에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글을 쓰는데 담을 넘는 주인공의 발에 고무신을 신겨 “대체 고무가 어느 시대에 나온 것인데? 짚신이면 모를까!” 라는 애정 섞인 잔소리도 해주셨다고 하네요.

선생님은 주로 오후 3시 이후 집필을 하신다고 합니다. 집안일이 눈에 밟혀 집에서는 제대로 할 수가 없고 교무실이 아닌 교실에 혼자 있는 시간을 활용하신다고 하네요. 음악을 가르친 지 4년 정도 되신다고 하십니다.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다고는 하시지만 선생님의 노래 실력 또한 수준급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왼쪽부터 산지니의 청년기획위원(너무 거창하지만;;) 은미, 희성,미라>

이 날 유난히 박향 선생님께 질문을 많이 하신 조갑상 선생님은 저의 모교 선생님이십니다. 최근에 제가 감명깊게 읽은 『테하차피의 달』의 저자이기도 하신데요, 이분과 박향 선생님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아마 과작하시는 것이 가장 닮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질문 시간에 박향 선생님의 소설에 대단한 관심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단편은 하나씩 뽑아서 읽는 게 맛인데 손에 쥔 순간 다 읽어버렸다는 말씀을 듣고 보니 박향 선생님 작품의 팬으로써 또 문인으로써 응원 차 방문해주신 것 같았습니다(사실 저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선생님^^).

 

 

블로그 포스팅 덕에 열심히 메모하고 사진 찍는 제게 윤인로 선생님께서 혹시 박향 선생님 제자인지 한 번 물으시고는 질문할 기회를 매우 직접적으로 주셨어요(어찌나 당황했던지 얼굴이 화끈화끈). 그전까지 앞에 나란히 앉은 산지니안들의 허벅지를 찔러가며 서로에게 기회를 주고 있었는데 말이죠.

 

 

저는 단편집의 표지에 있는 소녀의 모호한 표정과 소설 속 가장 가까운 주인공은 누구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이 그림은 선생님의 동서분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작품전이 끝나고 「즐거운 게임」을 동서분께 보내드렸더니 지금의 그림을 추천하셨다고 하네요. 그리고 출판사 식구들과 대다수의 분들이 이 그림을 강력 추천하셔 표지 그림이 되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아마도 「즐거운 게임」속의 유림이와 가깝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의견을 말씀해 주셨어요.

또 글을 쓸 때 지인들에게 작가와 화자의 동일시 때문에 조금 곤란했지만 지금은 자유로워진 것 같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간결한 문체를 주로 쓴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아마도 작품 속 주인공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한다고 생각해 짧아진 것이 아닐까 하고 말씀해주셨어요.

 

시작할 때와 달리 마칠 때쯤,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객석이 가득 차 있었어요. 많은 분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히 말씀 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은 필력 뿐만 아니라 어휘력에서도 앞서나가시는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실 만큼 근사하셨어요.

 

<산지니 식구와 산지니안 기념촬영 ^^>

저는 내내 박향 선생님의 바로 앞에서 방청을 했습니다. 선생님을 바로 앞에서 뵈면서도 계속 드는 생각이 보조개가 참 아름다우시다는 거였어요. 선생님의 수줍은 보조개처럼 조용히 탄생을 알린 『즐거운 게임』의 건승과 선생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즐거운 게임 - 10점
박향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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