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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책/문학

사실과 허구 속에 놓인 작화 행위를 묻다-『작화증 사내』(책소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4. 19.

 “저 남자의 얘기는 대부분 거짓이지만 그중에는 진실도 섞여 있죠.

  그래서 긴장해서 들어야 해요.”





정광모 소설집 

작화증 사내













독특한 신예작가가 한국 문단계에 등장했다. 일상의 내부를 비집고 들어온 치밀한 상상력으로 점철된 소설가 정광모의 세계는 담담하면서도 드라이한 개성을 지녔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알싸한 맥주거품이 솟아오르듯 현대인이 품고 있는 절망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군더더기 없는 하드보일드 문체로 현실을 끄집어 올리는 작가 정광모의 첫 소설집 『작화증 사내』는 그래서 더욱 독특하다. 왜곡되고 비틀린 현실 속, 정신병원에 감금된 한 사내의 거짓 이야기로부터 작가는 이야기의 본질과 소설적 진실의 자리를 되묻고 있다.





담담하면서도 치열하게 현실을 비틀다

‘첫 문장을 쓰고, 이어서 차근차근 인물의 스토리와 운명을 결정하노라면 (…) 나는 창조주가 세상을 창조하면서 느낀 기쁨에 조금이라도 접근했다는 쾌감에 젖는다.’_정광모, 「작가의 말」


2010년 월간지 「한국소설」로 등단한 작가 정광모는 국회의원 정책보좌관으로 일한 경력을 뒤로하고 전업작가로 나섰다. 치열하게 현대 문명을 탐구함과 동시에 문학의 존재 이유를 성찰한 결과물이 바로 이번 소설집 『작화증 사내』에 담겨 있다. 현대인의 일상을 일곱 가지 단편으로 무덤덤하게 짚고 넘어간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기계화된 문명 속에서 체제 순응적 삶을 강요당하는 인간 군상을 포착해냈다. 그것은 별일 없는 무료한 일상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가 정광모의 부단한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사실과 허구 속에 놓인 작화 행위를 묻다


정광모의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우직하게 끌고 가는 힘이며, 이를 통해 우리 생의 의지를 북돋고 바른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그 정직함에 있다. _박형준(문학평론가)

주인공들은 암담한 현실에서 탈출하면서, 또는 탈출하려 몸부림치면서 궁극적인 삶의 신비를 체험한다. _윤후명(소설가)

정광모 소설은 모든 것이 갖춰진 현대 문명 속에서, 구원이 없는 인간의 실존을 그린다. 개성이 예술의 중요 덕목이라면 정광모 작가는 드라이한 현대적 개성을 지녔다. _이복구(소설가)


7편의 단편 가운데 표제작은 「작화증 사내」이다. 작화증(confabulation)이란, “공상을 실제 일처럼 말하면서 허위라고 깨닫지 못하는 병”을 의미하는 정신병리학적 증세이다. 작가는 이러한 작화증 환자의 작화 행위를 ‘박’이라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지긋이 바라보면서 ‘이야기’의 본질을 묻고 있다. 스토리텔링 기법이 각광받고 상상력이 주목받는 시대이나, 소설 속에 그려지듯 ‘작화증 사내’의 행위들은 모두 미치광이 ‘작화증 환자’의 행동으로 치부될 뿐이다. 임상심리사의 발화를 통해 사내의 말들은 단순한 허위 이야기의 차원을 넘어, 사회 시스템을 뒤흔드는 사회적 ‘질병’으로까지 위험시된다. 이처럼 작가 정광모는 감정적인 수사를 배제하고 담담한 필치를 통해 부조리한 사회와 은폐된 사실을 그려냈다. 이로써 작가는 문학적 사유와 함께 진실과 허위로 얼룩진 ‘이야기’의 구조 자체에 대한 탐구를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




비순응적 삶의 양식을 조명하다

정광모 소설가가 드러내는 현실인식은 여타 작품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차마 마주하지 못하는 역사적 외상을 ‘용두산공원’이라는 역사적 장소를 통해 드러내는 한편(「기억 금지구역」), 진실을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을 손쉽게 강요당하는 우리 사회의 순응주의를 꼬집기도(「답안지가 없다」) 한다. 직장의 회식 자리마저도 업무능률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구조화되는 현실(「어서 오십시오, 음치입니다」)이나,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늘 새로운 과업을 창출해 낼 것을 주문받는 현대인의 쓸쓸한 단면(「시시포스 묻히다」)을 묘파해 내기도 한다. 

이처럼, 소설집 『작화증 사내』는 기존의 개인적 서사와 감정을 위시한 주류문단의 서사 방식과는 달리, 정광모 작가만의 독특하고도 치열한 작가의식으로 현대인의 실존과 함께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낸 문제작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추리적 전개, 새로운 스타일의 발견

한편, 소설 「밤, 마주치다」는 ‘박관수 시장’이 도모하고자 하는 수많은 일이 좌절되고 그로 인해 어긋나는 일상 속에 느끼는 ‘박관수 시장’의 무력감과 피로감을 여실히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현대 정치의 비정함과 살인의 유사성’을 그려 내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정치적 협잡과 뒷거래가 오가는 가운데 느끼는 주인공의 염세적 삶의 태도는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시체의 검은 봉투에서 보다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텔레비전 뉴스에 연일 보도되는 아주 일상적인 사건을 두고 ‘검은 봉투’라는 소설적 매개를 통해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현실에 끈끈이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구성지게 어울리는 정광모 작가만의 상상의 조미료를 첨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덤덤하기에 오히려 매력적인 정광모의 세계는 그러나 절망만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통증의 시작과 끝」에서 이 시대의 우울과 직접 대면하라고 작가는 종용하고 있다. 앞으로의 행보가 보다 주목되는 작가 정광모. 그는 풀리지 않는 인생의 미로를 일곱 편의 이야기 속 주인공의 입을 빌려 포착해 내는 뛰어난 묘사력과 상상력을 동시에 지녔다.

 

『작화증 사내

산지니소설선 17
정광모 지음
문학 | 국판 변형(140*205mm) | 244쪽 | 12,000원
2013년 3월 28일 출간 | ISBN : 978-89-6545-213-3 03810

군더더기 없는 하드보일드 문체로 현실을 끄집어 올리는 작가 정광모의 첫 소설집. 현대인의 일상을 일곱 가지 단편으로 무덤덤하게 짚고 넘어간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기계화된 문명 속에서 체제 순응적 삶을 강요당하는 인간 군상을 포착해냈다. 왜곡되고 비틀린 현실 속, 정신병원에 감금된 한 사내의 거짓 이야기로부터 작가는 이야기의 본질과 소설적 진실의 자리를 되묻고 있다.

 



글쓴이 : 정광모

부산 출생. 2010년 『어서 오십시오, 음치입니다』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부산대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을 졸업했고 저서로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 있다.


차례

기억 금지구역

시시포스 묻히다

밤, 마주치다

답안지가 없다

작화증 사내

어서 오십시오, 음치입니다

통증의 시작과 끝


해설 : 비순응적 삶의 형식-박형준

작가의 말


작화증 사내 - 10점
정광모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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