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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걸의 글방

사라져가는 동네서점

by 산지니북 2013. 10. 15.



퇴근하면서 종종 지하철 근처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곤 한다. 온라인상에서 충분히 신간 정보를 파악하는 편이지만, 따끈한 온기가 배어 있는 실제 책을 보면 소장하고 싶어지는 마음도 저절로 생긴다. 도서관에서 빌려 볼까 한참 고민하다가 충동구매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계산하고 나오기까지 서점 주인은 고객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다. 1980년대 대학교 앞 서점 주인은 말도 잘 걸고 책도 잘 추천해 주었는데 요즘 동네서점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졌다.


단골 미용실·빵집과 같은 동네 서점


사회학자 정수복의 '책인시공(冊人時空)'에서 프랑스 파리에서 동네 서점이 살아남는 이유를 소개하는 부분이 인상이 깊었다. 파리지엔들의 구매 습관과 파리 서점 주인들의 적극적 역할을 예로 든 부분이다. 파리 사람들에게는 단골로 가는 약국, 미용실, 빵집, 과일가게와 마찬가지로 단골로 다니는 서점 역시 있다. 책을 사면서 자신의 취향과 기호를 알리고, 바캉스 다녀온 이야기 같은 사생활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서점 주인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토론하면서 독자에게 어울리는 책을 전달하는 것을 자신들의 일로 삼는다는 것이다. 파리 사람들에게 서점은 꼭 사야 할 책이 있을 때만 가는 장소가 아니라, 지나가다가 심심하면 들러보는 곳이다.


이처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은 서점이 도시의 중요한 문화공간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서점을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상업적 공간으로 보지 않고, 책의 소비재와 문화재라는 양 측면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공공성에 방점을 두면서 도시의 중심 지역에 서점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임대료를 지자체와 정부가 지원한다. 미국 지역서점들은 대형서점처럼 수익사업을 다양화했다. 독자 특성에 맞춤한 서점 전문화와 감성적 접근을 유도하는 카페화로 대형서점에 맞서고 있다. 또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폭넓게 활용해 서점이 지역 독자에 밀착되게끔 한다. 다른 나라의 적극적인 서점육성 정책과 서점들의 자구 노력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지역 서점들이 생존하려면 지역 사회에서 '지역 제품을 먼저 구매하는 운동'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지역에 사는 사람이 지역신문을 보고,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구입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영국의 '책은 나의 가방 안에(Books Are My Bag)' 캠페인이 있다. 지역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자는 캠페인이다. 유명 작가와 연예인들이 서점과 일터, 혹은 거리에서 홍보 가방을 메고 다닌다. 캠페인 이미지는 다운로드 받아 서점과 지역 미디어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다. 지역 서점이 추천목록을 만들어 이를 홍보하면 지역민들이 적극 호응하게 되고, 최종적으로는 지역서점에서의 책 구입으로 연결된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서점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함부르크의 펠릭스유트(Felix Jud)는 1923년에 문을 열었으며 반스앤노블(Barnes and Nobles)은 1917년 뉴욕에서 문을 열었다. 파리의 지베르(Gibert)는 세느강변의 가판대에서 2년간 헌책을 판매하다가 1888년 매장을 얻어 이전했다.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는 서점이 문구점이나 정부 간행물과 교육 출판물을 발간하고 종교 텍스트를 판매하는 곳으로 발전했다. 인도 마드라스의 하긴보탐즈(Higginbothams, 1844년 설립)나 호주 시드니의 앵거스앤로버트슨(Angus and Robertson, 1884년 설립)과 같은 회사의 오랜 역사는 문자 문화의 중요성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역 제품 구매 운동 확산되기를


1997년 5천407개이던 서점이 2011년 1천752개로 급격히 축소된 게 한국 실정이다. 국회의 도서정가제 개정 입법과 함께 생존에 허덕이는 지역 서점 육성도 무엇보다 필요하다. 2009년 동보서적 폐업으로 지역 서점 육성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다가 최근에는 지지부진한 느낌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수동 책방골목, 어린이 전문서점 '책과 아이들', 지도 전문서점으로 유명한 '문우당서점', 오랜 역사와 다양한 문화공간을 자랑하는 '영광도서', 모두가 소중한 공간들이다. 지역 서점에 대한 부산시민의 많은 관심이 정책적으로 조직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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