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첫 서평을 올리게 됐습니다. 2017년 1월 한 달 인턴으로 산지니에 출근하고 있는 완두라고 합니다. 사실 완두라는 이름은 임시로 붙인 거였는데 수정이 안 되어서 그냥 완두가 되었네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완두콩을 좋아하니까요!

오늘 처음으로 책 소개를 하게 됐는데요. 오늘 제가 이야기할 책은 박정선 작가님의 장편소설, 가을의 유머인데요. 제가 단숨에 읽었던 만큼 여러분들도 흥미롭게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가을의 유머 표지/누르면 링크 이동)

 

 

한국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중년 여성입니다. 한국 사회에서의 다수의 중년 여성은 여성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성도 아닙니다. 어머니입니다. 아이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자비로움을 베풀어야 함과 동시에 남편의 뒷바라지와 시어머니의 만족을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어머니의 역할론이 강조되면서 그렇게 중년 여성은 주체이지만 주체의 모습을 잃고, 또 다른 주체의 부속물로 살게 됩니다. 이는 곧 중년 여성의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을 제재하는, 보이지 않는 사슬로써 작용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중년 여성이 자신이 품고 있는 사랑에 대한 욕망이나 성적 욕구를 거침없이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에 대한 커다란 도전임과 동시에 반항입니다. 가을의 유머는 그런 의미에서, 용기 있는 책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3세 여성 승연의 가슴 떨리고도 저릿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으니까요.

 

두 여자는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언제나 배설하는 사람이고 나는 받아내어 주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 남편은 가정의 가장이니까, 아정이 아빠니까, 나는 인내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데, 나만 그렇게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반가웠다. (p. 60)

 

 

승연은 무뚝뚝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권태를 느끼고 있는 43세 여성입니다. 남편은 승연에게 무관심하고, 사랑한다는 표현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고, 또 그럴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승연은 어느 날 석환이라는 남자를 만납니다. 석환은 남편과는 다른 매력을 지녔습니다. 표현에 인색하지 않는, 승연의 남편과는 다른 종류의 남자입니다. 승연은 그런 석환에게 서서히 빠져들고, 어느새 그녀의 하루의 중심은 석환이 됩니다.

 

 

승연은 석환을 기다리며 자신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끼게 됩니다. 보통 날과 다르지 않을 며칠의 시간이 더디고도 더디게 가는 것, 그를 만난다는 사실 하나로도 세상 모든 일이 특별하게 보이는 것! 그 모든 것이 석환을 만나고 난 뒤 승연이 알게 된 새로운 것들입니다. 그녀는 석환을 기다리는 자신을 보며 만개한 장미를 떠올립니다. 성숙하고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는 장미가 자신과 비슷하다 생각이 들기 때문이지요. 과거엔 거울을 보는 것도 두려워했던 그녀가 석환으로 인해 완전한 변화를 겪게 됩니다. 꽃에 물을 주면 꽃이 피어나듯, 매우 자연스럽게요.

 

 

거실을 수십 번 돌고 난 다음 쇠붙이가 자석을 찾아가듯 거울 앞으로 다가가 나를 비춰 본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한 것은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가라고 감탄한다. 거울 속의 내 얼굴에 이제 막 물을 올려 준 장미처럼 싱싱하고 따뜻한 피가 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꽃잎을 피우기 시작한 장미가 후끈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와도 같다. 꽃이 개화하는 순간을 아세요?’라고 누군가에게 묻고 싶다. (p. 27)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이라는 소재입니다. 승연은 과거에는 남편과 함께 꽃집을 하다 꽃꽂이 작가로 전향을 했는데, 그녀의 직업 덕분에 꽃이라는 소재에 빗대어 비유를 하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저는 꽃을 잘 알지 못하지만, 생생한 묘사 덕분에 그들의 감정선과 여러 상황들이 꽃으로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이를 위해 작가님이 얼마나 꼼꼼하게 꽃과 나무에 대해 조사하셨을지, 읽으면서 꼼꼼한 지식에 감탄했습니다.

 

한 가지 더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소설 속에 철학이 매우 자연스럽게 녹아져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논의되는 문제입니다. 욕망은 어디에서 오고, 왜 자꾸만 생겨나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욕망이란 소재를 이 소설은 자연스럽게 논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데에 쓰인 소재가 바로 차나무 뿌리입니다.

 

 

 

차나무 뿌리는 물을 찾아 땅속 깊이 내려가면서 층층이 물을 만나지만 자기가 원하는 물을 만날 때까지는 결코 다른 물에 입을 대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나무의 모든 뿌리들은 처음에 벌레들이 사는 흙을 지나 다시 모래가 섞인 흙을 지나면서부터 물을 만나게 되고 대부분 뿌리들은 그쯤에서 입을 대고 물을 빨며 안주하고 말았다. 차나무 뿌리는 줄기차게 계속 내려갔다.

(……중략.)

 

자갈을 지나면 주먹보다 큰 돌들이 나오면서 물은 더욱 많아지고 차나무 뿌리는 더 많은 유혹을 받게 되지만 차나무 뿌리가 만나야 할 물은 그 물도 아니었다. 그런 돌들을 지나면 넓적한 암반 같은 바위들이 나오고 거기서부터 물과의 만남을 위해 차나무는 뿌리를 정결하게 다듬기 시작했다. 뿌리는 점점 가늘어지면서 색깔도 표백하듯 하얗게 변했다. 하얀 전깃줄처럼 가늘어지고 투명해진 뿌리가 암반을 바로 뚫거나 암반과 암반 사이를 뚫고 물을 향해 내려갔다. 거기에 자기가 원하는 물이 감춰져 있었다. 그쯤에서 서늘한 물이 뿌리를 끌어당겼다. 견우와 직녀의 만남처럼 드디어 차나무 뿌리와 물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평생, 내가 원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나아갑니다. 누구나 욕망의 대상은 다를 테지만 그 대상을 원하는 마음은 비슷할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상을 성취하면 다른 대상을 원하게 되고, 그 대상을 성취하면 또 다른 대상을 욕망하게 됩니다. 차나무 뿌리가 물을 찾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원하는 물이 아니면 입을 대지 않고 묵묵히 뿌리를 내리던 차나무 뿌리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물을 찾았지만, 다음번에는 처음 원했던 물이 아닌 또 다른 물을 찾아 저 아래까지 뿌리를 내리겠죠. 이처럼 욕망은 성취한다고 해서 해소되는 것이 아닌 끝없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내용은 불륜입니다. 기혼자의 연애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불륜이라는 자극적이고도 도덕적이지 못한 소재를 미화하려는, 옹호하려는 소설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여 있던 그들은 비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이 책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까요? 저는 40대의 여성에게도 사랑의 욕망이 존재함을, ‘사랑이라는 기본적인 감정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욕망, 그 중에서도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욕망은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거죠. 왜냐하면 인간은 언제나 최상의 욕망을 추구하고, 최상의 대상을 찾기 때문입니다.

 

가을의 유머는 이런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욕망에 대해서 한 번 깊이 탐구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들었던 궁금증은 제목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가을의 유머라니, 도대체 무슨 뜻일까! 저처럼 이런 호기심이 드는 분들도 있으리라 보는데요. 제목의 의미를 알고 싶으신 분들도 이 책을 읽어보시는 게 어떨까요? 이상, 차디찬 겨울 속에서 만난 가을의 유머에 대한 서평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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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디자이너 2017.01.11 16: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산지니 블로그 등단 축하합니다.
    문단 첫줄 들여쓰기부터 강조글에 볼드, 이탤릭, 색상 바꾸기 등등
    편집하느라 노가다 많이 하셨네요.^^

  2. BlogIcon 스낑 2017.01.12 09: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꽃과 나무처럼, 인간의 욕망도 결국엔 자연과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기에, 작가님은 그에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며칠 전 지연스님이 "꽃은 인간이 가장 기쁜 순간과 가장 슬픈 순간에 찾는 '언어'"라고 말하셨죠.
    어쩌면 승연이 남편에게 가장 바랐던 것은 '승연씨, 사랑해.'같은 '말'이 아니었을까요.
    포스팅 잘하셨어요!^^

    • BlogIcon 완두 2017.01.16 11: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죠. 애정 표현이 적던 남편의 말 없음이 승연에게 외로움으로 다가왔을 것 같아요. 말의 힘은 대단하니까요.

  3. BlogIcon 깎은서방님 2017.01.12 22: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간이 가장 순수해질 때는 사랑의 감정이 분출되는 때인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완두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네요^^

  4. BlogIcon 단디SJ 2017.01.13 09: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용기 있는 책'이라는 말이 참 와 닿습니다. (그렇게 표현한 것도 멋있고요!) 사회가 만든 딱딱한 질서에 익숙해질수록 가장 '나다운' 혹은 가장 '진솔한' 나의 모습들을 감추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사랑이든, 뭐든-

    • BlogIcon 완두 2017.01.16 11: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도와 인간의 성정은 어느 하나가 지나치게 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서로 조화가 되어야 건강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으니까요!

* 40대의 욕망과 인생의 아이러니…

     박정선 소설 '가을의 유머'

 

 

부산 문단에서 '글만 파고들며' 살기로 유명한 박정선(사진) 소설가가 사랑을 다룬 장편 소설 '가을의 유머(산지니)'를 출간했다. 지난 30년간 소설가이면서 시와 시조를 쓰고 문학평론까지 한 그는 '백 년 동안의 침묵' '동해아리랑' 등 역사와 해양을 소재로 한 선이 굵은 장편소설을 썼다.

 

 

그간 작가의 행보를 봤을 때 중년의 사랑을 다룬 이 책은 조금 특이하다.

 

 

'가을의 유머'는 사회적 금기 영역에 있는 기혼 남녀의 연애와 사랑 이야기다. 40대 주부이자 꽃꽂이 작가 승연이 남편과 전혀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그동안 잊고 있던 설렘과 떨림을 찾고 내면 깊숙이 숨겨두었던 욕망을 하나씩 꺼내게 된다. 인간 내면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승연에게서 사회가 만든 규범과 질서의 근엄함에 가려진 인간의 솔직한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박 작가는 "중년의 사랑을 다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 욕망에 관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욕망은 인간의 본질에 속한다. 헤겔은 인간에게서 욕망을 제거하면 사회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고, 프로이트도 사회를 욕망의 체계로 보았다"면서 "모든 욕망을 표현하고 살 수 없지만, 이를 배제하고 정형화된 틀에 가둔다면 인간은 사물화된다"고 말했다. 인간의 동경과 이상을 은유한 욕망에 관해 쓰려 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이하 생략)

 

 

2017-01-02 | 김현주 기자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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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유머 - 10점
박정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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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단디SJ 2017.01.03 17: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국제신문에 기사가 났네요 +_+

 

중년 여성에게 찾아온 사랑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의 본질.

 

 

"인간은 이상과 현실 사이, 그 비좁은 행간에서 몸부림치는 존재라는 것, 현실은 곧 정형이란 틀이며 인간은 끊임없이 그 현실을 탈출하려고 몸부림치지만 현실은 늘 자기의 틀 안에 붙잡아 놓기를 고집하는 것이라고 했다."(208쪽)

중년 여성에게 찾아온 사랑에 자리 잡고 있는 욕망의 본질. 욕망은 그 무엇으로도 누를 수 없는 삶의 일부. 박정선 지음, 240쪽, 산지니, 1만3000원.

 

2016-12-30 | 박정규 기자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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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의 유머 / 박정선 지음

 

중년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봄 직한 고민과 이야기를 주인공 승연을 통해 그려내는 박정선의 신작 장편 소설. 산지니 펴냄.

 

2016-12-30 | 김슬기 기자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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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유머 - 10점
박정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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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유머


 

 

 

 

 

 

  

"이제 하룻밤만 자면 그가 온다는 사실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녀의 무미건조한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든 설렘과 기다림

마흔셋, 뜨거운 사랑이 찾아온다

 

30여 년 동안 시, 소설 등 다양한 문학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박정선 작가의 장편소설 가을의 유머가 출간됐다. 이번에 선보이는 소설은 사회적 금지영역에 속해 있는 기혼 남녀의 연애와 사랑을 다루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동경과 이상을 은유한 욕망을 말하려고 했다고 전한다. 주인공 승연()이 남편과는 전혀 다른 남자 석환과 만나게 되면서 잊고 지냈던 설렘, 떨림 등의 감정을 회복하고, 내면 깊숙이 숨겨두었던 욕망들을 하나씩 꺼내게 된다. 작가는 승연()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녀가 마주하는 내면의 욕망과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사회가 만든 규범과 질서의 근엄한 모습 안에 숨겨진 인간의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팍팍한 삶에 묻혀 지워진 줄 알았던 '여자'라는 이름

그리고 그 이름을 꺼내준 한 남자

 

떨림은 정말 그런 것이었다. 떨림은 지금까지 고장 나고 비뚤어진 나의 뼈를 다시 맞추게 만들었다. 석환 씨를 알고부터 몸이든 정신이든 속속 드러나는 내 단점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다. 맨 먼저 식사습관과 빠른 걸음걸이와 빠른 말씨부터 고쳐 나갔다. 꽃장사를 하면서 격식을 생각할 겨를 없이 무조건 빠르게 먹던 습관 때문에 그와 식사를 할 때면 그가 절반도 채 먹기 전에 나는 식사를 마치고 기다렸다. 걸을 때도 그보다 늘 앞서가려고 해 주춤거려야 했고 말이 빨라 본의 아니게 말을 많이 하게 되어 늘 후회를 해야 했다. _ p.72~73

 

작가 박정선은 이번 소설에서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나이, 직업, 결혼의 유무 등 여러 사회적 굴레를 벗어던지고 인간 내면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데 몰두한다. 사람들은 시간을 건너오며 사회로부터 많은 이름을 부여받게 된다. 누군가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 어느 집안의 며느리 등. 그 수많은 이름에 익숙해질 중년의 나이가 되면 문득 진짜 나의 이름이 궁금해지지 않을까?

 

소설 가을의 유머의 주인공 승연()은 남편과 함께 힘든 삶의 시간을 견뎌내느라 진짜 나의 모습들을 잊고 살아온 보통의 중년 여성이다. 그 인고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남편의 꽃장사도 자리를 잡았고, 그녀 역시도 꽃꽂이 예술가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승연은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놓쳐버린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평온하고 잔잔한 지금의 삶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 일본 출장길에 우연히 석환이란 남자를 알게 된다. 승연은 이제 다시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떨림이 온몸에 퍼진다. 그리고 치워뒀던 거울 앞에서 선다.

 

이 소설은 남녀 간의 관계와 사랑 이면에 자리한 욕망의 본질에 집중한다. 보통의 중년 여성에게 찾아온 사랑은 자신의 모습을 찾게 했다. 그리고 그동안 감춰뒀던 욕망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는 가을의 유머가 불륜을 다룬 여느 드라마, 영화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저자는 모든 게 욕망이다라고 전하며 지구가 존재하는 한 인간은 욕망이 낳은 이상과 동경을 찾아 헤맬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규범 속에서 감추며 살아야 하지만,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욕망. 그 아이러니 속에 소설가을의 유머가 자리하고 있다.

 

 

 

중년 여성들의 사랑과 성에 대한 솔직하고 과감한 이야기

 

생각해 보면 김 선생 네 말, 구구절절 일리가 있어. 섹스만 해도 그래. 쾌감 없는 섹스는 뭐랄까. 소득도 없이 중노동만 실컷 하고 난, 뭐 그런 기분이거든.”

쾌감을 섹스에서만 찾는 건 아니지만 프로이트에 의하면 사람의 원초적 충동은 에로슨데 에로스는 다름 아닌 삶의 충동이고 사랑과 섹스는 이런 충동의 대표적인 표현이라는 거야. 사실 가정이란 그렇잖아. 결혼해서 한 3? 아니 1, 2년만 지나도 아내나 남편은 어느새 부모로 변해 버리고 서로 성적 로맨스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함께 가정을 꾸려 가는 동역자로 전환되어 버리는 거지. 그래서 신비감을 추구하는 성적 호기심 때문에 성적 로맨스를 텐트 밖에서 구하게 되는 거구.” _ p.77

 

헬스장에서 만난 중년의 세 여자, 승연(), 전업주부여자, 가정선생여자. 이들은 주로 몸과 에로티즘에 대한 수다를 나눈다. 통통한 몸매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전업주부여자는 자신의 남편을 최고라 이야기하며 그를 위해 몸매를 만들고자 한다. 반면 가정선생여자는 깡마른 몸에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다. 모르는 것이 없는 그녀는 승연()과 전업주부여자에게 라스코동굴벽화의 의미부터 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전해주곤 한다. 이들의 대화는 일상적이고 가볍지만 결코 쉬이 넘어갈 수 없다. 작가는 이 대화와 승연()이 사랑을 하며 변해 가는 모습을 중첩시킨다. 예컨대 몸매에 관한 수다와 처진 가슴, 아랫배의 튼 자국에 고민하는 승연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중년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봄 직한 고민과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더불어 주인공 승연()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 모두 새롭고 청아한 떨림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양과 나는 물을 찾아 내려가는 차나무 뿌리를 따라 흙을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흙을 지난 다음 모래층을 지났다. 얽히고설킨 수많은 뿌리들도 지났다. 차나무 뿌리는 줄기차게 계속 자기가 원하는 물을 찾아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도 계속 뿌리를 따라 내려갔다. 자갈층을 지나고 돌 무리를 지나 제법 큰 돌이 나왔다. 뿌리는 거기서부터 몸을 다듬기 시작했다. 뿌리는 표백을 해 놓은 것처럼 희고 고왔다. 내가 거울 앞에서 석환 씨를 만나기 위해 연습했던 것처럼 뿌리도 물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점점 희고 가늘어진 뿌리가 돌 틈을 뚫고 물을 향해 내려가 있었다. 드디어 물에 다다른 것이었다.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대고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소리가 들렸다. _ p.77

 

가을의 유머마지막 대목에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승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에 다다르자 그녀는 다시 본연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는 자신 안에 있는 내재된 욕망을 억누르며 예전처럼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작가는 차나무 뿌리가 최상의 물을 찾아 땅속 깊숙이 뿌리내리는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이 은유를 통해 인간의 욕망 역시 끊임없이 이어질 것을 예고한다.

 

소설은 삶을 그리고, 그 속에는 사람이 있다. 삶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사람의 내재된 욕망 역시 그 무엇으로도 누를 수 없다. 가을의 유머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소설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음을, 승연()의 내면적 갈등과 욕망을 계속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이.

 

 

 

 

책속에서 & 밑줄긋기

 

시간을 죽여야 했다. 하필이면 제아무리 완고한 사람도 물렁해지고 만다는 가을에 석환 씨를 기다린다는 건 공기도 빛도 없이 숨 막히는 수심이었다. _P.10

 

돌이켜 보면 내가 거울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거울은 나에게 무서운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거울을 마주 보는 이 위대한 버릇이야말로 석환 씨로부터 생긴 것이다. _P.28~29

 

통증 대신 오히려 라일락 향기가 꽃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내 몸과 영혼 어딘가에 단단히 얼어붙은 것이 비로소 용해되는 신묘한 카타르시스,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버린 듯한 순간이었다. _P.134~135

 

그런데 운명이란 것과 그런 기회가 찾아와 준다면 인간으로서 행복한 일이라고 했던 말이 지금 나에게 내일까지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듯하다. _P.158

 

인간은 이상과 현실 사이, 그 비좁은 행간에서 몸부림치는 존재라는 것, 현실은 곧 정형이란 틀이며 인간은 끊임없이 그 현실을 탈출하려고 몸부림치지만 현실은 늘 자기의 틀 안에 붙잡아 놓기를 고집하는 것이라고 했다._P.208

 

차나무 뿌리가 물을 빨아 올리는 소리를 들으며 동굴벽화를 떠올렸다. 인간이 신성과 동물의 중간인 이상, 동물적인 본성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나였다._P.224

 

글쓴이 : 박정선

 

소설가,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졸업, 문학석사.

1986<문학정신> 신인상(시조)으로 문단에 나와 시조와 시를 쓰고 있으며 성파시조문학상을 받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로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심훈문학상, 영남일보문학상, 해양문학 대상(서울), 한국해양문학 대상(부산), 아라홍련 대상, 천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장편 소설 백 년 동안의 침묵(2012년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 수남이(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창작지원 선정), 동해아리랑(한국해양문학 대상 당선), 소설집 청춘예찬 시대는 끝났다(2015년 우수출판콘텐츠 도서 선정), 내일 또 봐요, 와인파티, 변명, 표류등을 출간했다. 시집으로는 바람 부는 날엔 그냥 집으로 갈 수 없다, 뿌리(부산역사)가 있으며 <월간 시민시대>2년 동안 연재한 장편서사시 독도는 말한다8권을 출간했다. 에세이집 고독은 열정을 창출한다, 평론집 사유와 미학, 역사서 다수가 있으며 명진초등학교(부산) 교가를 지었다.

 

 차례

 

 

 

 

마흔세 살 기혼 여성들의 연애와 욕망을 해부하다

가을의 유머

 

박정선 지음 | 240국판  | 13,000원 | 978-89-6545-391-8 03810

 

30여 년 동안 시, 소설 등 다양한 문학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박정선 작가의 장편소설『가을의 유머』. 주인공 승연(나)은 남편과 함께 힘든 삶의 시간을 견뎌내느라 진짜 나의 모습들을 잊고 살아온 보통의 중년 여성이다. 중년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봄 직한 고민과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더불어 주인공 승연(나)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

 

 

 

 

 

가을의 유머 - 10점
박정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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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스낑 2016.12.29 09:1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ㅎ태그가 재밌네요! 여기저기서 사진 잘 찍으셨어요~
    인간이기에 끝까지 들끓는 욕망을 차나무 뿌리로 표현하는 결말이 참 마음에 듭니다.

    • BlogIcon 깎은서방님 2016.12.30 09:3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진을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
      인간은 나이를 불문하고 어느 세대나 사랑을 갈망하는 듯합니다. 연말에 아름다운 사랑하길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