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7일 월요일, "월요일에 만나는 문학과 비평" 1회 모임이 열렸습니다. ‘재난시대, 새로운 세대의 문학과 비평’을 주제로 김대성 문학평론가의 평론집 <무한한 하나>와 <대피소의 문학>으로 김대성, 구모룡, 김만석 평론가와 함께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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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 평론가(이하 김대성):

“오늘 이 자리에서 <무한한 하나>부터 <대피소의 문학>까지를 다 다루시겠다고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이 두 책은 비평을 쓰는 방식이나 관점이 달라지고 갈라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 변별성이 굉장히 의식적이거나 어떤 관점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차이가 나왔다기보다는 계속 쓰는 와중에 저도 모르게 변화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약간의 의식을 하고 쓴 부분도 있지만, 아마 대부분은 그렇게 쓰여진 것 같은데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읽고 쓰는 것들의 감각이 변화된 와중에 비평의 방식도 달라진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분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그 변화가 무엇이었는지 객관화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구모룡 평론가(이하 구모룡):

“저작이 개입해왔던 다양한 비평적 투쟁이 <대피소의 문학>에 많이 나옵니다. 주니어 시스템이라고 부를 만한 문학 제도 내에 있었던 강력한 선후배 구조, 청탁 시스템 , 젊은 어린 평론가들에게 쪽글, 서평들을 계속 쓰게 만들면서 어디 써먹을 수 없는 글을 계속 쓰게 만드는 시스템, 잘 아시다시피 신생에 관련된 잡지 편집위원 그리고 제도의 정지와 붕괴의 경험 등이 이 책에 많이 나옵니다.

이 투쟁은 단순히 국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3부에 가면 곳간이라고 부르는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영역들에 나타나는데 여기에서 소규모 모임에 찾아가 만나거나 멤버들과 함께 일군 생활 예술에 대한 주장이 있습니다. “

 


김만석 평론가(이하 김만석):

“ 저같은 경우에는 시를 이야기하는 비평가의 태도가 소설에서도 나타난다는 것. 소설을 작품 전체를 두고 이야기를 풀어내어서 그 작품과 작가의 세계관이라던가 이런 것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비평가가 필요한 대목들을 시적으로 이렇게 선택을 해서 비평가의 목적, 대피소라는 이런 쪽하고 결부시키는, 자꾸 현장으로 가다 보니까 그러 세계에 없는 작품들은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이 두 개를 아울러서 김대성 선생이 한 번 자기 비평이 흘러온 과정을 한 번 우리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시면 오늘 오신 분들 처음 접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에, 스스로 한 번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김대성:

“꼭 미학적으로 정연된 글쓰기만이 문학이 아니고 각자의 생활 이력 속에서 익힌 자질들이 있거든요. 그게 너무 사소해서 가까이 가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데 가까이 가서 보면 되게 뛰어나고 비범한 태도들과 능력들이 있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기록하고 비평하고 의미화하는 작업을 지속하면서 '아, 이것은 기존에 있는 방식으로 읽어내는 게 아니구나. 이것을 일단 기록하고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리는 것이 그 자체가 비평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이론적이지 않고 텍스트 자체를 해석하는 게 아니라 그 현장에서 주고받았던 말들과 기운들과 에너지가 어떤 의미인지를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글을 써 나가면서 기존에 있던 작가들의 텍스트를 보는 관점들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던 거 같아요. 그게 얼마나 잘 쓰고 얼마나 보편적인가 보다는 얼마나 그 사람의 결 그 사람이 품고 있는 희망을 담고 있는가가 달리 읽히더라고요. 그런 식으로 제가 비평을 쓰는 것들 만약에 변화된 게 있다면 이런 과정 속에서 나온게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



김대성:

“누구나 시대 감각이라는게 있고 동시대적 체험이라는 것도 저는 꽤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을 객관화시켜서 이론화하면 차이가 없는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문학적 체험이라던지 인식의 전환이라는 것은 동시대적, 동세대적 체험이 주는 효과가 되게 크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4.16이라는 동세대적 절망에 대한 체험은 저한테 대체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그전에 놓쳤던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 문맥이 열린 측면은 있겠습니다만, 그 역할은 각자가 좀 해야할 부분인 것이 보편적 문맥으로 전환하는 것은 제 입장에셔는 조금 쉽지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





참여자1:

“만약에 미디어 체험의 양식이 완전히 급변화해버린 조건 안으로 우리 사회가 들어왔고 그런 체험의 순간에 왔다고 치면 왜 문학이냐. 실시간으로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미디어 장치들이 훨씬 더 많을텐데 왜 문학을 통해서 그런 증언 언어들 혹은 그 증언과 언어가 놓여 있는 컨텍스트 등에 대해서 비평가가 그것을 독해해야 하거나 알고 해야 하는가. 혹은 이런 사정은 기존의 문학적 제도가 실제로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어줬던 제도적 에너지들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독서회, 말하자면 그것을 통해서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논리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



김대성:

“저는 그것에 대해서 왜 문학이면 안되냐 라고 얘기하고 싶은데요. 왜 이렇게 말씀드리냐면 지금 작가라고 하는 사람들, 지금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과거처럼 등단하고 매체에 글쓰고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더 작아진 것 같고요. 독립출판하고 텀블벅하고 집단적으로 작업하고. 오히려 그 동네의 작가. 그 마을의 작가. 이런 식으로 작업하는 사람들이 비약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다 파악도 안돼요. 파악도 안되는 어마어마한 글쓰기 역량과 욕심과 그 표현의 욕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문단 문학이 그런 것들을 제어할 수도 없고 다 품어 안을수도 없어요. 말씀처럼 그게 왜 문학인가. 라고 꼭 문학이어야만 하는가 할 때 그 문학에 대해서 저는 왜 문학이 왜 문학이면 왜 안되느냐 라고 할 때 그 결이 좀 다른 것 같은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우리 시대의 문학들이 시사하고 있는 바는 우리 문학이 조금 더 다양한 층위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근대의 네이션을 형성할 만큼 커다란 이야기, 거대한 담론을 다룰 수는 없지만 개인의 이야기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보다 다양한 담론을 품을 수 있는 다채로운 문학이 되었습니다. 근대문학의 종언 이후 생성된 소설들이 거대한 담론을 아닐지라도, 우리 시대의 소외된 이들, 무심코 지나쳤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사소하지만 새로운 담론을 형성해 내는 것이 바로 근대문학의 종언 이후 문학이 나아갈 방향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운명이 걸린 예언을 받고도 그 예언에 반하는 부산물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소설 또한 종말로 내몰리고 있는 현 시점에서도 사소하지만 다양하고 새로운 담론이라는 부산물을 형성해내고 있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이 거대한 담론을 형성하지 못하게 되는 시점에서부터 종말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근대문학이 종언했다고 확언하거나 종말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문학이 생성하는 사소하고 다양한 담론들이 발전하여 이전 근대문학이 수많은 이들을 상상의 공동체속에 공감시켰던 것처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월요일에 만나는 문학과 비평이 그 담론의 첫 발걸음이길 바랍니다.


 

 

 

무한한 하나 - 10점
김대성 지음/산지니

 

대피소의 문학 - 10점
김대성 지음/갈무리

 

 

 

 

김대성

 

 

 

1980년 부산 출생. 2007년 계간 『작가세계』 평론부분에 「DJ, 래퍼, 소설가 그리고 소설」이라는 글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한국 노동자 글쓰기에 대한 박사학위논문을 쓰며 동아대와 한국해양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2013년 생활예술모임 <곳간>을 열어 활동하면서 제도 바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며 사는 삶으로 이행할 수 있었다. 2015년부터 생활글을 근간으로 <회복하는 글쓰기> 모임을 기획 및 진행하고 있으며 구성원들과 함께 『문이야, 무늬야』(chaaak, 2016)를 함께 썼다. 문화이론계간지 『문화/과학』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생활예술모임 <곳간>과 모임 <회복하는 글쓰기>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무한한 하나』(산지니, 2016), 『대피소의 문학』(갈무리, 2019)이 있다.

 

 

 

구모룡

 

 

 

1959년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대학과 대학원에서 시론과 문학비평을 전공하였다.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평론(「도덕적 완전주의―김수영의 문학세계」)이 당선된 후 문학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무크지 <지평>,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 시전문계간지 <신생>에 관여하였다. 지방-지역-세계라는 중층적 인식 아래 문학과 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저서로 『앓는 세대의 문학』, 『구체적 삶과 형성기의 문학』, 『한국문학과 열린 체계의 비평담론』, 『신생의 문학』, 『문학과 근대성의 경험』, 『제유의 시학』, 『지역문학과 주변부적 시각』, 『시의 옹호』, 『감성과 윤리』, 『근대문학 속의 동아시아』, 『해양풍경』, 『은유를 넘어서』, 『제유』, 『예술과 생활』(편저), 『백신애 연구』(편저) 등이 있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한국해양대학교 동아시아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Posted by 비회원

 

산지니출판사에서 '월요일에 만나는 문학과 비평' 을 기획했습니다.

 

'월요일에 만나는 문학과 비평'은 매주 월요일 저녁 시간에

문학과 비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일주일의 시작을 사유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싶은 분들을 위한 자리입니다.

 

앞으로 꾸준히 행사를 진행하려고 하는데요,

첫 번째 행사에서는 산지니와도 인연이 깊은 평론가,

김대성 문학평론가의 두 평론집을 두고

구모룡 문학평론가와 김만석 문학평론가를 모시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문학과 평론에 관심 있는 독자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무한한 하나 - 10점
김대성 지음/산지니

대피소의 문학 - 10점
김대성 지음/갈무리

 

 

 

 

김대성

 

 

 

1980년 부산 출생. 2007년 계간 『작가세계』 평론부분에 「DJ, 래퍼, 소설가 그리고 소설」이라는 글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한국 노동자 글쓰기에 대한 박사학위논문을 쓰며 동아대와 한국해양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2013년 생활예술모임 <곳간>을 열어 활동하면서 제도 바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부대끼며 사는 삶으로 이행할 수 있었다. 2015년부터 생활글을 근간으로 <회복하는 글쓰기> 모임을 기획 및 진행하고 있으며 구성원들과 함께 『문이야, 무늬야』(chaaak, 2016)를 함께 썼다. 문화이론계간지 『문화/과학』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생활예술모임 <곳간>과 모임 <회복하는 글쓰기>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무한한 하나』(산지니, 2016)가 있다.

 

 

 

구모룡

 

 

 

1959년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대학과 대학원에서 시론과 문학비평을 전공하였다.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평론(「도덕적 완전주의―김수영의 문학세계」)이 당선된 후 문학평론가로 활동해왔다. 무크지 <지평>,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 시전문계간지 <신생>에 관여하였다. 지방-지역-세계라는 중층적 인식 아래 문학과 문화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저서로 『앓는 세대의 문학』, 『구체적 삶과 형성기의 문학』, 『한국문학과 열린 체계의 비평담론』, 『신생의 문학』, 『문학과 근대성의 경험』, 『제유의 시학』, 『지역문학과 주변부적 시각』, 『시의 옹호』, 『감성과 윤리』, 『근대문학 속의 동아시아』, 『해양풍경』, 『은유를 넘어서』, 『제유』, 『예술과 생활』(편저), 『백신애 연구』(편저) 등이 있다. 1993년부터 현재까지 한국해양대학교 동아시아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Posted by 실버_

 

지난 금요일, 2018년의 마지막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우리들,킴』의 저자 황은덕 작가와의 만남으로 시작한 2018년 저자와의 만남이

한 해동안 부지런히 달려 어느새 89회가 되었습니다.

소설로 열었던 2018년을 소설로 마무리하게 되었네요.

 

 

2018년 저자와의 만남 대미를 장식해주신 저자는 바로,

『방마다 문이 열리고』의 최시은 작가님입니다.

성탄절과 연말을 앞두고 모두가 분주했던 가운데,

많은 분이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자리를 채워주셨습니다.

아쉽게 참석하지 못한 여러분들을 위해 그날의 후끈후끈했던 이야기를 지금, 공개합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진행에 관해 이야기 나누시는 최시은 작가님과 김대성 문학 평론가님.

 

-김대성 문학 평론가(이하 김)

첫 책 『방마다 문이 열리고』를 내신 소회가 궁금합니다.

 

-최시은 작가(이하 최)

저는 사실 작가라는 말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요. 최시은은 필명인데, 아직 동료들이 필명을 부르면 생소합니다.

집에 도착한 책을 쌓아놓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 마치 늦둥이를 낳은 기분이랄까요? 애비 없는 늦둥이 같은 기분이었습니. 저게 어디서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교정 과정에서 글을 계속 보다 보니까 늦둥이인데 보기 싫은 늦둥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지인들에게 어떤 반응을 얻을까, 하고 설레는 마음이 들었습니.

작가라는 말이 아직 익숙하지 않고 아직은 붕 떠 있는 기분입니다.

 

-김 │제가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사고 입주해서 밤에 거실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어리벙벙하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아요.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있는 것 같아요그 감정이 글 쓰는 이가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정이자 특권적인 감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최 특권적인 건 아닌데? (웃음)

특별하고 낯선 감정이 맞는 것 같아요.

든 못 됐든 오랜 시간에 걸쳐서 책을 냈다는 게 뿌듯한 느낌도 있어요.

 

 

-김 │ 특권적이라는 말은 실언은 아니었고요. 왜냐하면, 글을 쓰는 사람들은 보상받을 길이 많이 없거든요. 주위에서는 뭐길래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 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런 조건 속에서 글을 쓰고 결국 책으로까지 엮어냈을 때, 외부에서 보상받지 못하지만 그 감정이 특권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최 작가로서 책을 내고 느끼는 뿌듯한 감정을 특권이라고 표현하셨다면, . 특권적인 감정 맞습니다.

 

-김 │8년 전, 5년 전에 써두신 소설을 다시 엮으며 문장을 고치고 덧붙이고 빼는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이 궁금합니다. 책을 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공부의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요.

 

-최 │소설 잔지바르의 아이들」이 그 경우에 해당할 것 같아요. 써 놓고 한참을 넣어둔 작품이에요. 출판사에 원고를 넘기며 다시 소설을 보았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 일주일을 교정을 보며 헤맸어요. 경향신문의 짧은 기사를 가지고 소설을 만든 것인데, 기사 속 여자를 볼 때 마음이 참 안되었어요.

죗값을 치른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봤어요. 소설 속 남자에게 감옥에 있는 것은 죗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생각했을 때 죗값을 치르는 것은 감옥에서 나와서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는 것이었죠.

소설은 질문의 형식이라고 생각합니. 답을 주는 소설은 재미가 없죠. 잔지바르의 아이들」이 소설적으로 썩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 안에 질문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

 

 

-김 │소설집 중에서 마음에 들고 뿌듯함을 느낀 작품은 어떤 작품인가요?

 

-최 │일곱 편 중 두세 편이 마음에 들어요. 소설적 완성도 면에서는「누에」가 마음에 들어요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 모든 것을 다 설명해줘야 했기 때문에 집필할 때 힘들었어요. 전자발찌를 찬 30대 남성의 심리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사실 경찰서를 통해서 실제 성폭행범을 만나 보려고 하기도 했는데 쉽지는 않더라고요.

 

-김 │소설집 제목이 '방마다 문이 열리고'인데요. 이 구절이 수록 작품「누에」에서 따 오신 거로 압니. 이 표제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최 │소설적 상황을 보자면 '문이 열리기 전'에는 엄마가 아파서 집에 누워 있죠. 엄마에게 필요한 건 아버지이고, 아버지에게 필요한 건 그 여자입니다. 아버지가 그 여자를 데리고 집에 왔습니다. 아버지로 인해 엄마는 생기를 얻고, 집에도 생기가 돕니.

아버지가 옴으로 방에 문이 열리고, 봄이 와서 산벚꽃이 피듯 집에 봄이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자가 수동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시대에는 그런 엄마들도 분명 있었다고 생각합니.

 

 

-김 │이 소설의 남성들이 굉장히 전형화되어 있습니. 성적인 본능에 충실한 모습으로 말이죠.

젠더의 위계가 전형화되어 있는데, 이는 작가가 의도하고 쓰신 것이라고 보입니.

이 문제는 앞으로 이 소설을 이야기할 때 계속 언급이 되고 쟁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

 

-최 │ 그러게요. 왜 그럴까요. 왜 남자를 그렇게 그렸을까요... (웃음)

 

-김 │ 왜 인물들을 이렇게 그렸어야 했는가를 이야기해보자면, 인물들이 대부분 도시 빈민이에요. 생존이 최우선인 삶의 조건에서 가치 있는 행위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요즘 통념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이들이 처한 삶의 조건을 이해하면서 인물의 행동을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최 │페미니즘이 많이 언급되는 이 시대에 제 소설 속 캐릭터는 낡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알고는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밥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직접 목격도 했고, 그런 상황을 보며 눈물이 날 때도 많았어요.

 

-김 │ 소설 속 아버지, 남편, 아들, 애인 등 남성들은 성적대상으로 여성을 욕망하는 데 집중하고 있고, 여성들은 존중받지 못하는 돌봄 노동 속에서 학대당하고 폭력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런 남성들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있지요. 젠더적 위계성이 굉장히 도식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최 │글이라는 것은 내 의식의 반영입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소설에서는 조금 다른 여성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독자 질문제가 「환불」을 읽었는데, 작가가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애매모호했습니다. 작가의 의도를 듣고 싶습니.

 

-최 │ 이것은 밥 이야기입니다. 밥 먹는 이야기이자, 밥 먹기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 제 의도는 그렇습니다.

 

 

-김 │ 소설 속 '수진'이라는 인물을 묘사할 때 헤픈 육체라 표현을 쓰셨는, 전체 소설집 중 수진이라는 등장인물이 가장 자유로운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최 │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렇네요. 수진에게 다시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웃음)

 

-김 │작가도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은 작가 자신을 성숙하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요. 이후에 작가님 소설 속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관계 맺게 되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최 │ 소설 쓰면서 인간 됐다는 말 많이 해요. 작가일 때와 독자일 때가 참 다르더라고요. 소설을 쓰면서 자유로워졌어요. 내가 인간이 되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어떻게 하면 좀 잘 쓰고 제대로 된 작품을 쓸까 고민하고 있고요. 쓰고 있는 장편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

 

-김 │소설 속 인물들도 인간이 되어가면 좋겠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이 너무 고착되어 있어서 좀 안타까웠습니. 작가님이 자유로워졌듯이, 작품 속 인물들도 자유로워지면 좋겠습니.

 

-최 │그 사람들이 인간이 되면 소설이 될까요? (웃음)

 

-김 │ 인물들을 잘 보내주는 것도 작가의 몫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독자 질문 │요리가 작품마다 중요하게 나오는데요. 작가가 일상생활에서 요리로 치유를 받은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최 │요리를 먹으면서 위로가 많이 받습니다. 저는 술을 좋아해요. 혼술도 좋아하고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메뉴를 만들어서 먹으면 내가 치유가 돼요.

작품 속에 고등어탕이 나옵니다. 엄마가 해준 고등어탕을 먹으면 모든 근심이 사라질 것 같아요.  요리가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

실제로 제가 요리를 잘하기도 합니다. (웃음)

 

-김 │첫 번째 소설을 내시는 것이 제목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

작가가 닫힌 문을 열고 나오는 거라면, 방을 나온 작가와 인물이 어디로 가는지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 │네, 늘 잘 쓰려고 머릿속에서 소설이 떠나지 않죠.

그런데,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는 안 물어보시나요? (웃음)

어느 행사에 가니까 마지막에 물어보시길래 준비해왔는데... 

저는 쥐스킨트의 『향수』를 너무 좋아해. 제가 지향하는 것은 장르와 정통문학을 결부시켜 잔인하면서 슬프고도 아름다운 작품을 쓰는 거예요. 

그렇게 신들린 것처럼 쓰는 것은 힘들겠지만 그게 제 목표입니.

 

 

 

  한 해 동안 열심히 달려왔던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2019년의 첫 번째 저자와의 만남은 창작동화 『해오리 바다의 비밀』과 함께 시작합니다.

[행사 알림] 90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 http://sanzinibook.tistory.com/2663

조미형, 박경효 작가님과의 만남에 많은 분들 참석 기다리겠습니다. :)

 

모두 따듯한 성탄절 보내세요!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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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디터날개

 

지난 8월 29일(수), 제84회 저자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번 주인공은 장편소설 <생각하는 사람들>의 정영선 선생님이었는데요.

탈북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사회에 편입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이지요.

 

선생님께서는 2013년부터 2년간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내 청소년 학교에서 근무하셨는데요. 그곳에서 아이들과 생활하며 느꼈던 시간들을 토대로 한 권의 소설을 집필하셨어요.

 

이번 저자와의 만남은 김대성 문학평론가님의 진행으로 구모룡 문학평론가님과 정영선 선생님의 대담으로 이뤄졌는데요. 많이 이야기들을 담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지만, 밀도 높은 행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자와의 만남에서 나온 이야기들을 모두 옮기면 좋겠지만, 그중 몇 가지 이야기들만 정리에 아래에 실었습니다, 혹, 시간이 되지 않아 오지 못하신 분들께 아쉬움을 달래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녹취를 푼 것이라 실제 대담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정영선(이하 '정') : 비가 안 와서 사람들이 많이 왔네요. 고맙습니다. 아마 마이크를 가슴 가까이에 대면 쿵쿵 소리가 날 껍니다. 이 자리에 앉으니까 두렵고, 많이 떨립니다. 책을 석 달 전에 냈는데 오늘 이렇게 행사를 하게 됐습니다. 이 자리에 앉기까지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책을 몇 권 냈지만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건, 첫 책 이후 두 번째입니다. 그래서 특히 더 긴장되는 것 같아요. 양 옆에 평론가가 있어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어쨌든, 재미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구모룡(이하 '구') : <생각하는 사람들>은 북을 이탈해서 한국 사회로 온 사람들의 이야기지요. 그런 사람들이 3만 천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분단체제를 많이 이야기하지만, 분단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런 분단 문제에 가장 최전선에 놓여 있는 사람이 바로 한국에 와 있는 북한 이탈주민이고, 그래서 그들에 대한 접근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럴 때 <생각하는 사람들>과 같은 장편소설이 나와서 굉장히 반갑게 생각합니다. 그럼 제일 먼저 제목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생각하는 사람들'의 뜻이 무엇인가요?

 

: 말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생각하는 되는 것들이 있지요. 서울사람이라고 하면 하지 않는 생각들 말입니다. 또 북에서 온 사람들은 한국에서 와서 늘 끊임 없이 자신의 출신지에 대한 생각을 지우려고 합니다. 그렇게 남과 북, 모두가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슬프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 제목을 생각하는 사람들로 붙이게 됐습니다.

 

 

 

: 작가의 말을 보면 '허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이라는 것을 아는대도 다시금 허구인 것을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까?

 

: 현실이 바탕이 되긴 하나 어디까지나 소설이고 허구입니다. 독자들이 읽었을 때, 이것이 허구인가 진짜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접하게 될 북한 분들이 '이건 소설이다, 소설이기 때문에 예민하게 생각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놓고 싶기도 했습니다. 책에 나온 내용들이 사실일지라도, 그것은 우연일 뿐이지 저는 소설을 쓴 것이기 때문에 그 점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 개인적으로는 소설을 통해서 탈분단적 주체를 만들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문제의식이 이 소설에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더불어 굉장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그 인물들의 배치와 스펙트럼에 대해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고민을 많이 한 부분입니다. 하나원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모두 달랐습니다. 공통된 조건을 묶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남한에서 꿈꾸는 삶 또한 그랬습니다. 너무 다양하고 달랐어요. 제가 청소년학교에서 근무했던지라 아이들,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는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나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에 대해 매우 고마워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 어쩌면 자기 검열일지도 모르는 그것을 거치지 않은 사람, 그런 인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만들어낸 캐릭터가 병욱이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자기의 삶을 개척하려고 하는 사람, 적응해가는 사람, 비판해가는 사람 등 다양한 인물들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본 모습이기도 했으니까요. 극단의 선택을 하는 사람, 어떤 큰 이야기를 가진 사람보다는 우리 옆에 있을 것 같은 인물들의 다양한 삶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 그래서 그런가요. 여러 편의 단편, 장편으로 발전할 수 있겠단 생각도 들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남북한 사회를 통합적으로 극복해내는 인물을 기대했었는데, 결국 분단 이데올로기 문제가 가족사로 봉합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저는 가족 이야기로 봉합했다고 생각하진 못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웃음) 죽음이라는 결론을 향해가거나, 강하게 밀어붙여서 얻는 결말은 사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요. 그리고 '탈분단'이 사실 가족이 아닐까요? 개인으로 본다면 가족이 헤어진 것이 분단이고, 가족을 만난다는 게 굉장한 일이 되어버렸으니까요. 힘든 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가족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남북으로 나눠지지 않은 채 가족이 만나는 모습이야 탈분단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김대성 : 지금 분단체제에 대한 온도차는 세대차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탈북민 청소년들이 어떤 관점으로 보고 있는지 관심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탈북민들의 눈에 비친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대변하는 관점으로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조직 논리에 휘둘리는 구성원들의 비애를 중심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양한 관점들이 독자들을 만나면서 '탈분단적인 주체가 필요하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고민을 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독자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죠. 더불어 정영선 선생님께서 책임의 무게를 많이 느끼면서 이 소설을 쓰지 않았나 싶어요. 한국사회에서는 분단과 관련해서 사실을 말하는 것이 긴 시간 동안 금지되어 왔었잖아요. 조갑상 선생님,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말이죠. 그런 역사적 강박같은 게 우리 몸에 있는 것 같은데요, 정영선 선생님께서 하나원에 근무하면서 본 것들을 그대로 쓰는 것이 옳은 것인지, 선별하여 허구적 장치를 넣는 것이 옳은 것인지 등등 목격하고 증언했었을 때 어떤 효과를 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어느 소설을 쓸 때보다 무겁게 가지고 계셨을 것 같아요. 그것을 소설에 전면적으로 드러낸 것 같진 않고요. 소설 속에 책임의 무게가 스며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감지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4부에 있는 '선주 씨의 글' 은 어떤 효과로 배치한 것인가요?

 

: 선주 씨의 글에서 개인적인 부분은 삭제하고 거의 그대로 실었습니다. 선주 씨의 글을 보면서 제 글은 글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탈북민에 대해 고민하고 소설을 쓴다고 해도 선주 씨의 글을 넘을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오면 진짜 자기 검열을 많이 하게 됩니다. 소설에 실은 이 글은 스스로를 검열하기 전에 쓴 글이고, 처음 워드로 써본 글이기도 했어요. 저는 이런 글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책에 실은 건 그런 바람이 들어 있기도 하고요. 음, 탈북민들을 보면서 제일 슬펐던 건 이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만드는 사회가 정말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선주 씨의 글은 이 사회에 와서 삭제되지 않은 정말 순수한 글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실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제가 전하고픈 이야기가 선주 씨의 글에 다 녹아 있기도 하니까요.

 

 

 

 

참가해주신 모든 분들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Posted by 비회원

무더운 여름, 모든 산지니 가족들(대표님부터 인턴분들까지^^)이

힘을 모아 땀을 뻘뻘 흘리며 준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산지니X공간 프로젝트입니다.

 

 

산지니X공간은 아직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부산지역 출판의 역사를 모으고 소개하는 전시를 산지니 출판사가 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인데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흩어져 있던 부산 지역의 출판 자료들을 조사하고, 추리고, 모으는 과정에서

남아 있는 도서를 찾기 위해 부산 각 출판사들에게 연락하고,

보수동 헌책방을 샅샅이 뒤지는 등 바쁜 나날이었지요.

 

이번 프로젝트는 부산 문학과 출판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현재 부산의 출판과 문화 현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은 물론,

나아가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모색해보는 까지에 그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이런 담대한^^ 취지를 가지고 개설된 공간은,

준비 끝에 드디어 다음 주에 개관을 앞두고 있는데요.

개관을 기념하며 여러분을 모시고 작은 행사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산지니X공간 개관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언제? 7월 24일 화요일 오후 6시

 

어디서? 산지니X공간  

(부산시 해운대구 센텀중앙로 97 스카이비즈 A동 710)

 

 

 

 

 

▲ 산지니x 공간 (위에서부터 나무책장, 베란다 독서공간, 책식탁)

 

 

- 행사 1부에서는

요산문학관장 조갑상 선생님과 산지니 출판사 강수걸 대표님의 축사를 시작으로,

<책 제목 키워드로 보는 부산지역 출판의 역사> 전시에 큰 도움을 주신 구모룡 평론가를 모시고 부산지역 출판의 역사에 대한 강연을 들을 예정입니다.

 

- 행사 2부에서는

산지니에서 최근 출간된 <시인의 공책>의 저자 구모룡 교수님을 모시고 

북토크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사회자로는 김대성 문학평론가, 대담자로는 임성원 부산일보 논설위원을 모셨습니다.

 

<시인의 공책> 은 부산의 대표 문학평론가이신 구모룡 선생님의

‘문학, 철학, 사회, 장소, 부산’에 대한 깊이 있는 고뇌와 사유가 담긴 책인데요?

책의 한 대목에서는 부산 문학과 출판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국현대문학의 메카로서의 부산! 이는 나만의 공상이 아니다. 리얼리즘, 모더니즘, 해양문학, 추리문학 등 모든 영역에서 부산은, 한국현대문학의 중심적 가치들을 만들어 왔다. 문제는 이 소중한 가치를 부산이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_ p.183, 「부산은 현대문학의 메카다」, 『시인의 공책』 중에서

 

 

 

부산 출판 역사와 비평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신 교수님께서

집필한 책이라 부산의 출판 역사에 담긴 공간 개관식과도 맥이 이어지지요.

 

▲ 산지니x공간 책식탁에 전시되어 있는 <시인의 공책>

 


 

 

개관식에서도 볼 수 있는, <책 제목 키워드로 보는 부산지역 출판의 작은 역사> 전시는 9월 21일까지 평일 10시~17시에 관람하실 수 있으니

보기만 해도 시원한 수영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산지니X공간에 오셔서

책과 함께하는 피서를 즐겨보세요.

책을 사랑하고, 지역 문화와 출판을 사랑하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책 제목 키워드로 보는 부산지역 출판의 작은 역사> 전시 보기

 

 

또한 이번 년도 말까지 상시 전시와 함께 지역 출판과 관련된 다양한 강연, 독서 모임 등의 다채로운 행사도 열릴 예정이오니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강연과 모임 관련해서는

산지니 공간 트위터 https://twitter.com/sanzinixspace

산지니 블로그 http://sanzinibook.tistory.com/ 를 통해 소식을 전할 예정이오니,

계속 주목해주세요 :)

 

 

산지니 가족들이 오랜 기간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공간이자 행사인 만큼,

많이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 조심해서 오세요^^

다음 주 화요일, 개관식 행사에서 뵙겠습니다.

Posted by 실버_

김대성 평론집

무한한 하나


 

 


▶ 타자와 자신을 읽는 글쓰기로 문학 세계를 탐구

독점의 하나가 아닌 평등한 이들의 이름, 무한한 하나

 

2007년 『작가세계』 평론 부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대성 평론가의 첫 번째 평론집. 평론집은 노동, 지역, 공동체, 공생 등 타자와 자신을 읽는 글쓰기로 문학의 세계를 탐구한다. 김대성 평론가는 글쓰기를 ‘한 사람’을 무한하게 만나기 위한 시도로서 모든 ‘하나’가 공평하게 나눠 가지는 속성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는 지배와 독점을 근간으로 ‘군림하는 하나’가 아닌 미미하지만 평등한 이들의 이름, ‘무한한 하나’를 뜻한다.

 

이 책에 묶인 다양한 평문은 글 쓴 평론가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문학과 글쓰기, 평론과 삶이 어떻게 하면 공존할까 하는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백무산 시를 분석하면서 자신의 아버지가 용접공으로서 고단하게 살아온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정태규 소설가의 서평 글에서는 지난날 처음 만난 정태규 소설가에게 부탁받은 소설집 발제문을 가혹할 정도로 비판했던 치기 어린 자신을 반성한다. 이처럼 김대성 평론가는 자신과 비평의 삶을 분리하지 않고 “수행의 발판을 삼으며 공동적인 것을 향한 실천의 의지를”(구모룡 문학평론가) 놓지 않고 있다.

 

그의 비평은 타자와 자기를 포개고 섞으면서 살아있는 문장을 생성하려는 아슬한 모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무한으로 나아가는 존재의 가능성과 불가능성, 이반과 탈주, 소외와 공생, 고통과 죽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의 글에는 타자와 세계를 읽는 비평가의 비애가 묻어난다. 그리고 다른 곳을 사유하는 비평가적 신체가 문장의 배면으로부터 은근하게 드러난다._구모룡(문학평론가)

 



 

        

 

 

▶ 주변부과 공동체에 대한 고민

 

1부는 주변부를 탐색한 글로 묶었다. 백무산, 박완서, 김중혁 등의 글로 연약한 존재들이 자신의 힘으로 깊이와 무게를 더해가는 고투의 이력을 탐색했다. 2부는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담은 글로 묶었다. 공동체에 대한 사유를 멈추어선 안 된다고 말하며 문학을 통해 공동체 안과 밖을 탐구한다. 처음 청탁받아 쓴 「고통의 공동체」와 몇 년 후에 쓴 「불가능한 공동체」로 공동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읽어내는 것도 흥미롭다. 3부는 정익진, 김이듬, 송재학 시인 등의 시적 세계를 탐문하며 시인과 시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를 읽을 수 있다.


 

▶ 비평한다는 것과 지역적인 것

 

4부에 수록된 글은 지역적인 것에 대한 생각이 담겨 있다. 요산 김정한, 조명숙, 정영선 등 부산 지역 작가의 작품을 주목하면서, 지역이란 개념과 ‘지역 작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 탐구했다. 지역을 단일화로 환원하지 말고 특색을 지닌 개별적인 곳으로 바라보길 당부한다. 5부는 서평 형식의 글로 진은영, 정태규, 정형남, 김영민 등의 문학 세계를 분석했다.

 

‘지방’이 아닌 ‘지역’이라고 명명한다고 해서 중앙과 주변의 이분법적 도식이 손쉽게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이라는 프레임 안에 자리하고 있는 ‘지역 작가’라는 명명 속에도 이미 ‘위계화’에 의한 차별과 소외라는 핸디캡을 안고 작업을 하는 ‘핍박받고 있는 존재’라는 의미가 각인되어 있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다._「부산스러운, 하나가 아닌 여럿인」 277쪽

 

 

▶ 비평가로서 글쓰기

 

이 책에서는 김대성 평론가가 비평가로서 가지는 글쓰기에 대한 사유와 고뇌를 느낄 수 있다.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촘촘한 연결망에서 외부와 소통하기 위한 통로이기도 하고, 일상적 글쓰기가 확대되면서 더 이상 쓰기가 전문가의 영역이 아니게 되었다. 이런 시대에, 비평가로서 글쓰기가 어떤 의미인지, 생산성과 실천성을 보일 수 있는지 되물으며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이유를 발견한다

 

첫 평론집은 독자에게도 평론가에게도 드물고 귀한 기록이다. 날이 잔뜩 선 첫 평론집의 세계는 안주하지 않는, 아니 안주할 영토를 찾지 않는 비판의 공간이 가장 무한하게 펼쳐진 자리이다. 그 무한한 자리가 전율과 공포로 아로새겨져 있는 것은 필연이다. 영원히 침묵하는 무한한 공간 앞에서, 전율과 공포 속에서도, 헛되이 사라질 말의 조각을 던지는 일, 그것이야말로 ‘쓰기’의 존재 이유이다. 『무한한 하나: 몫 없는 이들의 문서고』는 그런 ‘쓰기’의 존재 이유를 묻는 책이다._권명아(비평가)



【책 속으로&밑줄긋기】


P.8: 비평은 자유롭게 숨 쉬고 마음껏 달릴 수 있는 필드(field)였다. 그저 부지런히 달리는 것으로 텅 빈 운동장을 경기장으로 바꿀 순 없었지만 무언가를 읽고 쓰는 일을 지속하는 것은, 다시 말해 내 힘으로 트랙을 달리는 일은 무엇보다 소중했다.


P.15: 내 아버지는 용접공이었다. 결혼을 한 이듬해 고향이었던 강원도 삼척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리다 어깨너머로 배운 용접 작업으로 한 시절을 보냈다. 당연히 용접 자격증 따위는 없었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로 팀을 꾸려 언제, 어디라도 불러만 주면 달려갔다. 야무지고 기술이 좋다는 입소문 덕에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다. 새벽에도, 휴일에도,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일거리가 생기면 달려 나가 용접을 했다. 식사 시간을 뚝 떼어내고, 잠자리를 뚝 떼어내서 철골들을 이어 붙이고 무수한 구멍과 빈틈들을 때웠다.


P.34: 문학은 현실의 불가능성에 의문을 던지는 행위이기에 그곳은 ‘말을 둘러싼 투쟁’의 현장일 수밖에 없다. 금지되어 있는 ‘말’을 전유하려는 의지와 ‘몫 없는 이’들의 ‘몫의 재분배’ 혹은 ‘자리바꿈’을 향한 쟁투는 동궤를 이루는 것이리라.



글쓴이 : 김대성

1980년 부산 출생. 2007년 『작가세계』 평론 부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 2009년∼2013년까지 연구모임 <aff-com>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현재 생활예술모임 <곳간>의 공동대표이자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차례

 

 



목 없는 이들의 문서고

 

무한한 하나

 

 

김대성 지음 | 380쪽 신국판 | 25,000원 | 978-89-6545-384-0 03810


2007년 『작가세계』 평론 부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김대성 평론가의 첫 번째 평론집. 

평론집은 노동, 지역, 공동체, 공생 등 타자와 자신을 읽는 글쓰기로 문학의 세계를 탐구한다.




 

 


 

 

무한한 하나 - 10점
김대성 지음/산지니


 

 

 

Posted by 동글동글봄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김비 작가와의 책이야기

사진: 김민영 

 

11월의 마지막 목요일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의 김비 작가님과 독자분들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긴 제목 덕분에 『붉, 출』이라고도 불리는 이 장편소설은 

비상계단에 갇힌 가족의 이야기인데요

택배기사로 일하다 허리를 다친 남수, 근무력증을 앓는 아내 지애그리고 뇌성마비를 가진 아들 환이가 주인공입니다.

동반자살을 하기 전, 가족은 마지막 만찬을 위해 초호화 백화점에 왔다가

층수도 쓰여 있지 않고, 이상한 붉은 불빛으로 물든 비상계단에 들어섭니다.

여기서 비정규직 20대 정화, 명예퇴직 압박에 시달리는 명식

성전환 수술을 위해 돈을 모으려는 수현 등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함께 출구를 찾아 헤멥니다

 

행사가 있었던 26일은 손발이 얼어붙을 만큼 바람이 강한 날이었어요

그럼에도 많은 독자분들께서 참석해주셔서 

행사 공간을 빌려주신 호랑이 출판사의 작업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난롯불 쬐며 이야기했답니다



이 날 이야기는 작가님께서 책의 일부분을 직접 낭독해주시면서 시작됐어요.


남수는 찬찬히 사방 벽을 둘러보았다. 손으로 짚어가며 붉은 벽을 꼼꼼히 살폈다. 그러고 보니 매끈하게만 보였던 벽 위엔 무수히 많은 작은 돌기들이 오돌토돌 돋아 있었다. 조금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아무것도 없는 깨끗한 벽이었지만, 손으로 더듬어보니 무작위의 돌기가 빼곡히 만져졌다. 그것은 마치 공포에 질린 누군가의 팔뚝 같았다. "이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틀림없어."

성급한 손길로 그녀는 환이를 쓰다듬었다

(…) 

순간 남수는 엉뚱하게도 역사 속에 희생되어왔던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택해야 하는 시간,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택할 수밖에 없는 순리. 그렇다면 우리는 차선이나 차악이 될 수 있을까? 남수는 다시 주먹을 움켜쥐었다. 쾅쾅, 또 한 번 있는 힘껏 철문을 두드렸다

"그럼 고장 아닌가? 무슨 일만 터졌다 하면 고장이니 인재니 만날 그러잖아?"

"그러면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있어야지. 갇힌 게 우리뿐이라는 건 말이 안 되지."

더 이상 지애는 말이 없었다. 그녀의 몸짓을 흉내라도 내듯 남수도 붉게 물든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이상해, 여기.' 그녀는 또다시 그렇게 중얼거렸다(22~23)

 

소설 속 짧은 한 장면에서도 주인공들의 불안과 절망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붉, 출』을 암울한 이야기라 부르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 아닐까 합니다. 김비 작가님은 비상계단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갇혀 있으면서도 인물들이 그 안에서 스스로 원하던 것, 하고 싶어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이뤄 나간다는 점을 짚으셨습니다. 가난 속에서 떳떳한 가장이 되기 힘들었던 남수는 계단 속에서 가족과 함께 걷고 있고, 침대를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했던 지애는 남수와 환이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존재가 됩니다. , 비틀린 팔다리 때문에 스스로 움직이기 힘들었던 환이도 비상계단에서는 온 세상을 자기의 그림으로 채우는 꿈을 이룹니다.

이런 점이 『붉, 출』의 숨겨진 반전이라고 할까요. 이어진 김대성 평론가님과의 대담에서도 이렇게 『붉, 출』을 숨겨진 면모들을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대담의 일부를 아래에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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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 이 안이 굉장히 척박하고 암울하고 절망으로 가득 찬 세계인 것 같지만, 이 인물들은 아무런 것도 변한 게 없다, 예상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많은 것을 이루고 변화된 자기 자신의 또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거죠. 근데 그것은 그쪽 세계뿐만 아니고 우리, 이쪽의 세계의 반영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도 하거든요. 우리가 믿고 있는 어떤 절망이 정말 절망일까. 혹시 내가 어디에 묶여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 저는 예전에... 예전을 생각하면 정말 많이 절망했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자학도 많이 하고 그랬었는데 요즘은 좀 자유로운 느낌을 조금조금씩 갖게 되요. 저 자신을.. 이제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저 자신을 추스르면서 내가 서 있는 여기를 나를 위해서 즐겁게 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아무 생각하지 않고. 가족, 사회, 정치, 다 생각 않고 나를 위해서. 오롯이 나 하나를 위안하면서, 나를 위해서, 그렇게 살고 있거든요. 그렇더라도 저는 그게 나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느 서면 인터뷰에서 주인공인 남수라는 인물은 왜 영웅적인 인물이 아니고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이냐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 실제로 보통의 이야기는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인물이 어떤 사건이나 이유.. 다른 계기가 있어서 다른 인물로 바뀌거든요. 선하게 깨우친다거나, 내가 이제 바뀌어야 되겠다, 내가 이제 가족을 위해 살아야 되겠다, 이렇게 바뀌게 되는데 제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죠. 저는 인물을 바꾸는 대신 세계를 바꾼 거죠. 그러니까 그런 세계라면 그런 인물이 오히려 더 가장 희망적이고, 그 세계를 믿지 않고, 그 세계를 불신하는 비관적인 그 모습이 오히려 더 가장 희망적이고 생을 향해 가장 힘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궁극적으로 굉장히 암울하지만, 여전히 비관적이고 회의적인 사람으로 남아 있지만 제가 하려고 했던 것은 희망의 다른 얼굴을 얘기[하는 것이었어요.]


 


김대성: 여기에 한마디 더 보태면, (…) 절망이라는 거는 희망하기를 멈춘다는 거잖아요. 말 그대로 푼다면. 그런데 만약 이 세상이 개별자들의 희망을 지켜주지 못하는 곳이라면 우리가 희망하는 방식이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매번 실패하고 패배하고 좌절하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당할 게 아니라 절망이 희망하기를 중단한다, 끊어낸다는 것은 다르게 접근해보면 직전까지 희망했다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막연한 희망들을 품고 상처받을까 두려워할 게 아니라, 잘 절망하자. 절망과 대면하자. 절망함으로써 직전까지 희망하지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자. (…) 남수 또한 (…) '저 위에 뭐가 있다 저 아래 뭔가가 있다' 이야기가 오갈 때 같이 움직이다가 매번 좌절[하고], 오히려 그 좌절을 선명하게 대면하면서, 언제라도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면서 건물 뒷편 계단 안에서의 생의 의지같은 것들을 좀 발견하는 장면들이 전반적으로 펼쳐져 있거든요. 그것이 말씀하셨던 세계를 아예 바꿔버리는, 태도를 바꿈으로서 그런 것과 연관이 되는 것 같아요. 절망하기로서의 희망하기의 문맥하고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요.


김비: , 여기도 카피로 쓰셨지만, "희망이라고 다 옳은 게 아냐. 어떤 희망은 후련한 절망보다 못해." 희망이란 말이 물론 많은 걸 일으키고 있기는 한데, 너덜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문을 사이에 두고 바깥 쪽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소리가 있잖아요,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소리가 있잖아요. 되게 잔인하지만, 어쩌면 그게 우리 살고 있는 여기가 아닐까 생각했거든요.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렇게]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걸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 세계에 살고 있고 그럼에도 나아가는 것이 책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 잔인함을 오롯이 드러낼 수밖에 없는어쨌든 희망이라는 말 아닌 다른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희망이 아닌, 희망을 짓누르는 다른 언어. 정말 우리를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언어가 있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희망이라는 언어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요


김대성: [소설에서는] 여기가 몇 층인지도 몰라요. 160층 백화점에서, 지하로 내려가야 될지, 지상으로 올라가야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오르락내리락 하죠. 그런데 남수는 허리가 너무 안 좋고, 아이도 있고, 지애는 만성 무기력증이고. (…) 조금 내려갔다가도 다시 올라와야 되고, 그런 상황 속에서 그런데 위에서부터 소리가 들리고 문밖에서 어떤 소리가 들리거든요. 금방이라도 나갈 수 있을 것처럼. 그런 단서들이 소설에 전반적으로 계속 펼쳐져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잠시 언급해 주신 것 같아요.

환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환이가 너무 핵심적인가요


김비: 그렇죠, 아무래도. (key).


김대성: 희망 말고 환이.


김비: 그거 좋네요.


김대성: (…) 모두가 무력해질 때 환이가 천진난만함으로 방향을 제시하거든요. "아이의 그림은 이제 혼돈에 빠진 그들을 이끄는 마술같은 표식이었다"라고 176페이지에서 177 페이지 사이에 걸쳐 있는 문장이 있는데. 되게 아무런 희망도 없[] 것 같은 뇌성마비[를 가진] 아이가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면서. 그것을 보고 여기가 몇 층이다. 우리가 몇 층 올라왔구나 [알게 돼요. 그 이전에는] 아무도 그걸 시도를 안 해요. 그냥 출구를 찾으려고 아등바등거리지 여기가 몇 층이라는 표시를 할 생각을 아무도 하지를 않는데, 환이가 그걸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그냥 그림을 그리는 거에요. 그게 표식이 되어서 작은 이정표가 되는데. (…) 마치 횃불 같[기도 하]고 가끔씩은 조명등 같고 촛불 같은 (…) 환이에 대해서도 잠시 이야기를 [해주세요.]


김비: 아이.. 이건 개인적인 습성 같은데요. 전 항상 소설에 아이를 써요. 그것도 한 여섯일곱살의 아이를 꼭 쓰는 편이에요. (…) 어쩌면 그게 저 자신이 갖지 못한 무언가에 대한 동경, 계속된 동경이겠죠. (…) 내가 갖지 못한 순수함에 대한 욕망, 욕구 같은 것일 수도 있고, 그 나이대로 돌아가려는 회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이 아이 같은 경우는 장애[를 가진 소수자에요.] 성소수자는 제가 주변에서 많이 봤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편안하게 쓰는 편인데, 장애를 가진 아이를 쓰는 건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건 뭐 취재하고 이런 어려움이 아니라 그 인물을 만드는 것 자체가, 일단 한 인물을 탄생시키는 거잖아요. 그것도 장애를 가진 한 인물을.. 그거는 굉장히 아픈 일이거든요, 제 생각으로는. 그런데 이 아이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요. 횃불이고 촛불 같다고 하셨는데. [제가] 어렸을 때[]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저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행동하는데 주변에서는 제가 이상하다고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만약에 환이가, 이거 정말 조심스런 얘기지만, 선천적으로 그런 몸으로 태어났다면 이 아이에게 과연 꿈꿀 수 있는 자격이 없는 것일까, 이 아이는 꿈을 안 꿀까, 정말, 이 아이는 정말 고통스럽기만 할까 하는 생각을 한 거거든요. 가끔 병원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같은 걸 보면 아이들이 너무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도 중간중간 굉장히 순수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금방 고통을 가졌었던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순수한 웃음, 그런 걸 발견할 때. 이건 제 욕심일 수 있어요, 정말 위험한 욕심일 수 있는데 좀 그렇다면 좋겠다는 바람인 것 같아요. 누가 옆에서 이쁘다고 해 주면 자기 스스로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나 이쁘구나하고 생각하는 그런 존재이기를 바란 제 마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되게 조심스러웠어요


(…)


김대성그러면 환이 이야기는 이 정도 하고요. 전작 『빠쓰정류장』에서는 기억 속의 장소를 찾기 위해서 로드무비처럼 계속 옮겨 다니[고, 찾고 있는] 그곳은 없는 곳으로 밝혀지는데, 정류장이라는 것이 머무는 장소는 아니잖아요. 머물지 못하고 바로 가야 되거든요. 정류장의 장소라는 것은 대합실 의자 정도의 공간? 떠남인지 상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자리에 앉아야 다음 행보를 시작할 수 있는, 뿌리내릴 수 없는 존재들의 거처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붉, 닫, 출』은 계단이어서 이전처럼 수평적으로 옮겨 다닐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 수직적이고 갑갑하고 변동 없는 장소로, 폐쇄적인 곳[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변화에 대해서 좀 말씀해주세요. 겹쳐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 건 뭐냐면, (…) 소설에서의 이름을 알 수 없는 각 층들이 정류소일 수도 있다. [그곳이] 절망하면서 멈춰 설 수도 있구요,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있는 그런… 내몰린 이들이 잠깐 머물 수 있는 거처일 수도 있겠다. 가까스로 버틸 수 있는 장소일 수도 있겠다, 라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는 초반에 남수가 ‘출구를 한 번 찾아 볼게’ 하고 계속 내려가거든요? 그때 위에서 지애가 ‘여보, 있어요?’ 하고 물어요. 그 때 남수가 ‘있어!’ 하고 대답을 하는데  [그 대화가] 무기력하고 자기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애의 무력함을 드러내기보다는 이 폐쇄적인 공간을 그들의 교류와 교신이 일어나는 장소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조금 받았는데. .그런 면에서 이 계단은 폐쇄적인 공간은 아니구나. 언제라도 새로 시작할 수 있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고, 그 자리에서 고꾸라질 수 있고,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고, 이곳이 좀 정류소 같은 느낌도 든다, 연장선에 있겠구나 하는 대목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소설적 공간에 대해서 염두에 두시거나 조금 더 이야기해주시고 싶은 대목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김비 (…) 실제로 이 공간은 부산에서 만났어요. 서면 cgv아시죠? 마트가 밑에 있잖아요. 지하주차를 하면 지나서 가야 하잖아요, 홈플러스를 지나서 가지 않으려면 비상계단을 올라가게 되있어요. 근데 그 비상계단 들어가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 비상계단에 층수가 없었어요. 중간쯤 올라가는데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는 거에요, 갑자기 두려움이 굉장히 크게 밀려왔었어요. 그게 이 이야기의 시발점이었는데 그 계단이라는 공간이, 과연 저 표지판이 없다면 무엇을 보고 오르내릴 수 있을까 생각을 했던 것 같고 그것을 생각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우리 일상과 겹쳐졌어요.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끊임없이 누군가를 따라서 올라가고. 저도 그때 다른 게 앞에 없었거든요. 앞에 다른 사람이 걸어 올라가니까 올라가고. 어쩌면 계단이라는 공간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이 자본주의 사회.

횡으로 설 수 없는 공간이에요. 일직선으로 설 수밖에 없는 공간이거든요. 이게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이기도 하고, 저는 등장인물들이 또 다른 의미의 각자의 희망을 만들어 가면서 이 공간이 더 확장되기를 바랐어요. 욕심으로는 우주를 담고 싶었어요, 이 안에. 그래서 우주에 대한 힌트들이 남아 있어요. 이게 또 다른 세계이기도 하고, 이 공간을 태초로 돌리고자 하는 욕망이기도 하고, 작가로서 시도하는 전복, 빅뱅같은 의미였거든요. 실제로 굉장히 좁은 공간이지만, 작가로서는 이 공간이 우주로까지 확장되는 공간이었어요. 그래서 벌레 이야기도.. 벌레가 처음에는 눈에 있었죠. 마지막에는 이 건물 자체가 벌레처럼 꿈틀거린다고 했거든요. 확장되는 느낌이고. 이 인물들의 이름에도 유치하긴 하지만 한가지씩 힌트를 넣었어요. 혹시 아시나요?


김대성: 어떤..?


김비: 이름들에 은하계 행성들의 이름을 하나씩 집어 넣었어요


김대성: , 그렇구나. 수현, 지애,


다같이: 금이, 정화… 


김비: 정말 유치한 거거든요, 하지만-


김대성: 보물찾기 같은 거네요.


김비: 그렇죠. 환이는 앞에 나오죠. "그만해, 김달환!" 이렇게 나오잖아요. (…) 이 공간을 우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끝나는 건 우리밖에 없거든요. 그냥 우주는 계속 지나가고 있는 거죠. 그리고 어쩌면 우리도 끝이 아닌 웜홀을 통해서 다른 곳으로 나가서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세계를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거든요. 협소하게 읽으면 협소하지만 작가로서는 굉장히 큰 것 까지 생각하면서 그려냈던 공간이었습니다.


김대성: 여러분, 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주가 여러분들을… (웃음)


김비: (웃음) 작가는, 아무래도, 병인 것 같아요. 굉장히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해요. 한군데에 몰아넣으려고 하고 그것에 잘 완성되면 되게 보람이 있어요. 인물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이건 우주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에요]. 


김대성: 계단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 경향신문[에 실린 서평처럼 소설을] '재난' 이야기로서 읽을 수도 있지만 (…) 한 개인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부침을 묘사해놓은 것으로도 읽을 수 있거든요. 일상적으로 읽을 수 있는 문맥이 훨씬 풍부하다고 생각하는데..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는 재난이 아니라,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존재들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정서의 부침들, 이를테면 조증 같은거요. 좋았다가 끊임없이 추락하고. 추락하면서는 다시는 올라갈 수 없을 거라고 절망하면서, 바닥을 치죠, 그리고 이 추락은 얼마나 또 쉽게 됩니까. 그런 것들도 (…) 충분히 염두에 두고 쓰신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소설을 재난서사로 단박에 규정하기에는 좀 더 세밀하고 폭넓게 읽을 수 있는 대목들이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비: 맞아요, 저는 재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재난서사로 쓰려면 이 재난을 주인공들이 어떻게든 극복해야 하거든요. 어떤 방식으로든. 그런데 제가 묘사한 방식은 재난서사의 극복방식은 절대 아니거든요. 누군가 영웅적인 행동을 해야 하고 누군가를 살려내야 하고 , 떠나면 안돼!’, 이런 게 있어야 되는데, 저는 재난서사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그냥 우리 현실과 꼭 닮은 궁지를 그려내고 싶고 그 궁지를 좀 깨트리고 싶었어요. 중간에 구상을 하는 와중에 세월호 사건도 있고 그래서 감금, 폐쇄라는 것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어요. 너무너무 크게, 아프게 다가왔[어요].


(…)


독자: 여기서 조명이 세 번 바뀌잖아요, 처음에 붉었다가, 나중엔 파랬다가, 나중에 없어지잖아요. 어떤 뜻을 담으신 건[가요].


김비: 앞서 말했던 환경의 변화고요, 우주 얘기를 했잖아요. 우주를 만든 것은 불, 물 그런 물질이거든요. 그것의 상징을 쓰려고 했고저는 이 세상이 바뀌면 뭔가 굉장히 많이 바뀌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ㅠ요. 그 차이 없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불이 꺼지면서 밖으로 암흑이 되고 불빛이 떨어지잖아요, 불빛의 파편이 떨어지고 건물이 흔들리면서 먼지가 떨어지는데요. 그 공간 안에 우주의 모습을 그리려는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우주에 꽂혀 있었어요. 이 세계를 태초로 돌리고 싶은 욕망. (…)


독자: 아까 세월호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학생들이 몇 백 명 내려간다고 []셨잖아요. ‘수장 당한이런 표현도 있었고. 염두에 두신 건가요?


김비: 망설였어요. 이건 쓰면 안돼. 근데, 어차피 제가 현실을 담고자 했고무기력함을 담고 싶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여기를 담고 싶었어요.


김대성: 소설에서 35페이지에 보면 남수가 밑에서 되게 절망적으로 고꾸라져 있다가 힘을 내서 그는 제자리를 향해서 뛰고 있다는 대목이 나오거든요. 근데 이 제자리가 주기적인 표현인 것 같아요. 자기 자리이기도 하구요, 두 번째는 원래 있던 자리에요. 그럼 변한 건 없어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데, 근데 그게 원점이 아니라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 내가 와주기를 바라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 자리, 책임을 짊어지는 자리이고 응답해야 하는 자리. 그래서 제자리가 되게 힘 있는 자리일 수 있겠다. 그래서 남수가 초반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게 혼자 걸음이 아니겠다, 이것은 지애랑 달환이의 걸음이 겹쳐져 있는 걸 수 있겠다. 이 절망적인 세계에서 우리가 뭐랄까요, 구조요청, 모두가 구조요청하잖아요. 누구나 쉽게 조난당할 수 있고. 절망에 빠질 수 있는데 이 구조요청에 응답하는 것은 바깥에 있는 사람이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 바로 함께 조난당한 사람이 구조요청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구조요청에 가장 필요한 건 저는 응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사람을 건져 올리는 게 아니라 그걸 들어야 해요. 그리고 반응을 해야 하는데, 남수의 제자리를 향해서 뛰어올라갔다는 짧은 문장이, 책임을 지는 자리,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는 자리로 돌아가는 거란 측면에서 여기 나오는 많은 무기력한 존재들이 서로에게 응답하고 있고 서로에게 작은 책임을 붙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 건물 뒷면이 절망의 공간만은 아니다, 서로가 엉키고 어울리면서 결들을 달리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김비: 정확하게 읽어주셨는데, 아까 말씀 드렸듯이 이 사람들이 결국은 희망을 다 찾고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요.] 그것이 이 안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믿음이고 신념이고 새로운 에너지거든요. 어떻게든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제자리 얘기를 하셨는데, 233페이지에 수현과 정화가 무리와 떨어져서 여행자처럼 계단을 여행하면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서 목종이 "그게 무슨 소리야. 다 똑같은데 가면 뭐해"라고 하니, 수현이 얘기를 합니다

아무리 똑같아 보여도, 같은 건 없지. 여기가 어디인지 우린 왜 여기에 있는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우린 어쨌든 다른 곳에 와 있잖아? 제자리를 도는 것 같지만, 여전히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지만, 일단 올라서면 그곳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잖아? 다시 돌아내려간다고 하더라도, 그곳은 이미 그때의 거기는 아니잖아? (…) 내가 달라졌으니까, 아무리 그곳이 똑같은 곳이라고 하더라도,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져 있을 테니까.

그러니까 제가 똑같은 세계,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이 세계를 만들었지만, 결국에는 똑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세계, 누가 구원해주는 건 정말 아니거든요. 우리 안에 있는 거죠. [후반부에] 종교에 관한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이 책 안에 제가 신을 넣었거든요. (…) 묵묵히 곁에서 남수의 모든 걸 지켜보고 제일 먼저 절망의 상태에서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을 때 가장 먼저 앞서서 걸어 올라가는 이름 없는 한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을 바로 신으로 저는 생각하고 있고요. 신은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종교는 없지만, [저는] 구원을 찾아라, 믿어라, 이래라 그런 게 과연 신일까? 생각하거든요. 조용히 우리와 같이 쓰러지고, 같이 좌절하고 절망하고, 하지만 아무 말 없이 가장 먼저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서 인도하는 인물이 신이 아닐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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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가 번번이 되돌아오는 '제자리'가 

응답의 자리라는 말을 곱씹게 되는 저녁이었습니다.

(앗 응답하라 198...? 하핫)  

편집자로서 『붉출』을 여러 번 읽었지만, 작가님과 평론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인물의 이름에 은하계 행성들을 숨겨놓으셨다니!!! 저만 눈치 못 채고 있었던 건 아니겠죠;)


2015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새해 결심을 할 날도 (그리고 작심삼일 할 날도!) 멀지 않지만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응답하고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 따뜻한 12월 되세요!  


Posted by 비회원
문예비평사 4곳 토론회…"문학이 사라진다" 우려의 목소리

소영현 '21세기 문학' 편집위원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열린 '한국문학, 침묵의 카르텔을 넘어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소 편집위원은 "계간지 '창작과 비평'은 가을호에서 신경숙 논란을 사과했지만 창비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대했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신경숙 사태가 불거진 지 두 달여가 지났지만,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출판사 창비가 여전히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천문학·오늘의 문예비평·황해문화·리얼리스트 공동 주최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열린 '한국문학, 침묵의 카르텔을 넘어서' 토론회에서는 신경숙 사태와 한국문학의 방향을 되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소영현 '21세기 문학' 편집위원은 "계간지 '창작과 비평'은 가을호에서 신경숙 논란을 사과했지만 창비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대했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창비는 표절 의혹이 제기된 신경숙의 소설 '전설'이 수록된 단편집 '감자 먹는 사람들'을 발간한 출판사다.

창비는 '창작과 비평' 가을호를 통해 백영서 편집주간의 사과의 글과 함께 표절 사태 직후 진행된 두 번의 토론회 토론문(정은경·김대성) 및 한국작가회의 홈페이지 게시물(윤지관)을 실었다.

소 편집위원은 그러나 "세 편의 글은 개별 글의 내용과 무관하게 창비의 무성의한 태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며 "창비의 입장이 이 글들을 통해 밝혀질 수 없으며 대변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학장 쇄신에 대한 요청에 어떤 방식으로 응답이 필요한 시점임에도 여전히 표절 프레임 내부에서 답을 찾으려 하는 반응에 멈춰 있다는 점에서도 창비의 이번 대응이 아쉽다"고 강조했다.

한국사회에서 문학이 가지는 위상과 의미가 변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임태훈 '말과 활' 편집위원은 "취할 것을 택하기도 전에 우리 자신이 버림받고 있다"며 "대학에선 한국문학 재생산의 한 축인 국문과와 문예창작과가 사라지고 있고 다른 한 축인 출판시장은 4∼5년 뒤 더 큰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 편집위원은 "신경숙 사태는 이 와중에 터진 것이고, 우리는 사양산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고 있다"면서 "근대문학의 태동과 함께 정의되고 재생산된 '작가' 개념은 오래지 않아 폐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 편집위원은 "이번 사태는 우리가 그간 문학이라 불렸던 것의 한 시대가 끝나고 있음의 시그널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며 '권력의 최후 저항선'이자 '자유의 수호자', '시대정신의 상징적 사표'로서의 작가가 사라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신경숙의 표절 문제는 문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이제는 세간의 기억에서 많이 잊힌 상태다.

토론자들은 그러나 신경숙 사태가 작가 개인적 잘못으로 축소돼 사회적·문학적 관심에서 멀어져 흐지부지 끝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박형준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은 "신경숙 표절이라는 문제를 단순히 작가 개인의 사적 도덕률의 위반이나 특정 작가의 일탈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며 "본질은 자기 성찰을 누락한 작가, 출판사, 비평가가 어떻게 균형감각을 잃고 자기 내부로 침전되고 매몰될 수 있는지 보여준 문화적 증례"라고 꼬집었다.

한편 이날 발간된 문학과지성사의 '문학과사회' 가을호는 강동호 동인을 비롯해 외부에서 황호덕, 김영찬, 소영현 평론가가 참여한 '표절 사태 이후의 한국문학' 대담을 게재했다.

대담에서는 표절 논란과 관련 특히 창비가 게재한 윤지관 평론가 글에 대한 비평적 언급이 잇따랐다. 윤지관은 해당 글에서 '전설'이 우국의 일부 구절을 차용했다고 해도 문학적 성취를 이뤄냈으므로 전체적으로 표절이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에 대해 김영찬은 윤지관의 글이 나름 합리적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전설'은 문학적 성취에 있어서 실패한 작품에 가깝다며 '성공한 표절은 표절이 아니라는' 이상한 결론에 동의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소영현과 강동호 또한 '성공한 표절=표절 아니다'는 등식은 이상한 논리라는 데 입장을 같이하면서 "신경숙 작가에 대한 변호를 누군가 했어야 하는데 동의하지만, 이보다 지금 필요한 건 표절을 넘어선 프레임 전환적 사고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논리를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황호덕은 윤지관의 글이 대중을 경시하는 '엘리티즘'으로 비칠 가능성을 언급했다.

김중배 고은지| 연합뉴스| 201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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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예비평 2015.가을 - 10점
산지니 편집부 엮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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