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일요일 (12월 23일), 부산 중앙동 생활문화공간 한성1918에서

부산 작가들의 단편 소설을 각색한 낭독공연이 있다고 합니다.

 

정광모 작가님의 나는 장성택입니다』의 수록작 「외출」

『작화증 사내』의 수록작 「답안지가 없다」도 각색되어 공연한다고 하네요.

소설이 희곡이 되면서 어떤 모습으로 바뀌었는지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이번 주말은 자주 보던 영화 대신, 낭독공연 한 편 보러 가시는 건 어떠세요?

 


 

 

'문자 대신 몸짓으로' 무대에 선 소설

 

우리 사회는 문자 시대에서 이미지 시대로 급속하게 전환 중이다. 대중교육을 통해 모두가 문자를 쓴 시간을 꼽아봐도 몇백 년이 채 안 된다. 문자 시대가 잠깐 반짝하다가 다시 이미지 시대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문학이 갈수록 독자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연극판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무대에서는 여전히 배우의 육성이 쩡쩡 울리고 땀 내음이 물씬 풍기지만, 객석은 썰렁하기만 하다. 이처럼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갯길을 걷는 두 장르가 손을 잡았다. 고난의 행군은 서로의 손을 잡게 만든다. 희망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법이다.

 

극단 '배우 관객 그리고 공간(배.관.공)'이 오는 23일 한성1918 부산생활문화센터 청자홀에서 부산 지역 소설가 3명의 4개 작품을 각색해 낭독극으로 공연한다. 낭독극은 무대장치만 갖추지 않았을 뿐 극 전개는 일반 연극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낭독으로 즐기는 부산소설 나들이(연출 주혜자)'라는 이름으로 관객을 찾을 이번 공연은 예술단체와 예술동아리, 작가가 협업하여 작품을 기획하고 발표, 시연하는 프로젝트다. 부산의 소설들을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연극을 통해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극단 '배.관.공'이 전문 예술단체로서 프로젝트를 이끈다. 시민극단 '배우로 배우다'의 단원 10여 명과 '김문홍 희곡 교실'에서 활동한 회원들이 각색자로 참여했다. 각색자들이 선택한 부산의 단편 소설은 정태규 소설가의 '비원', 정광모 소설가의 '외출'과 '답안지가 없다', 배길남 소설가의 '램프불, 그리고 낯선 이'이다.

 

정태규 소설가는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일명 '루게릭병'으로 투병 중이다.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없어 병상에 누운 채 안구 마우스로 작업과 소통을 하고 있다. 그는 낭독극을 앞두고 카카오톡으로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제가 루게릭병 초기에 구술하고 아내가 타이핑해서 완성한 작품 '비원'을 극단 '배우 관객 그리고 공간'에서 낭독극으로 공연한다는군요. 전 못 가지만 많은 참석 부탁합니다~^_^".

 

정광모 소설가의 '외출'은 교도소와 외출이라는 소재를 통해 관계에 대한 상처와 아픔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답안지가…'는 진실을 드러내기보다 감추는 것을 강요당하는 순응주의를 꼬집는다. 배길남 소설가의 '램프불…'은 '폐선박을 인양하는 꿈을 꾸는 유진, 심해에서 본 유령 같은 존재인 아멜리아가 나타나 구조를 요청한다'는 내용이다. 

 

정태규, 배길남 소설가는 각각 1990년, 2011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정광모 소설가는 부산 문학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분투 중이다. 공연 당일은 정광모, 배길남 소설가의 토크쇼도 마련돼 있다.

 

 

부산일보 이준영 선임기자 gapi@busan.com

기사원문 보러가기

 

 

나는 장성택입니다 - 10점
정광모 지음/산지니

작화증 사내 - 10점
정광모 지음/산지니

Posted by 실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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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은박으로 강렬하게 새겨진 ‘작화증 사내’라는 두 단어. 독자들은 이 ‘작화증’이라는 다소 생경한 표현에 당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막상 이 책의 편집자인 나 또한 처음 원고를 받아들고 낯설어 했으니 말이다. 이 책의 제목이 독자들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대중적인 이름인가 하는 회의는 책 출간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야기를 만드는 한 사내의 이야기 『작화증 사내』의 미덕은 그런 '낯섦'에 있음을 부정하지 않겠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나, 자신이 한 마리 흉물스런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는 카프카의 『변신』 첫 구절처럼, 이 소설의 제목이 주는 '낯섦'은 어쩌면 매우 신선하고 기묘하면서도 꽤나 아름답다.


이야기를 써 놓은 적이 있나요? 박이 물었다. 뭣 때문에요? 작화증 사내는 눈을 크게 뜨며 반문했다. 어디에든 쓰일 곳이 있지 않나 해서 한 말입니다. 재밌는 환상시리즈로 책을 엮어도 좋을 것 같네요. 환자는 뚫어지게 박을 바라보았다. 선생은 내가 여기 왜 오게 되었는지 모르는 모양이군요. 저는 이야기를 글로 남기지 않습니다. 그저 말로 내뱉은 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엉뚱한 선로로 옮겨졌으니까요. _「작화증 사내」中


얼마 전 출간된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의 순례의 해』를 재밌게 읽고 있다. 주인공이 친했던 친구 그룹의 모든 이름에는 색채에 관련된 한자가 있지만 정작 자신은 색채 없는 이름을 지닌 한 고독한 사내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 그의 이름이 ‘만들다’라는 뜻의 쓰쿠루(作, つくる)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아직 완독하지 못한 소설이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어쩐지 정광모 작가의 『작화증 사내』가 떠오르기도 했다.

사실에 근거가 없는 일을 말하는 병리현상인 작화(作話) 증세란, 말 그대로 말을 만들어(作) 낸다는 뜻이다. 문득 만든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철도를 계획해서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하루키 소설 속의 쓰쿠루, 말도 안되는 허황된 이야기를 만들어 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정광모 소설 속의 사내, 책을 편집하고 만드는 나, 그리고 이 책 『작화증 사내』를 착상하고 글을 썼을 작가 정광모의 삶까지, 내 삶의 언저리에는 이렇듯 수많은 만드는 일로 점철된 일상이 차곡히 배여 있다. 그리고 묵묵히, 또 차분히 일을 행해 나갔을 이들의 결과물들이 주변에 녹아져 있음도 마찬가지다. 삶과 문학은 이처럼 동떨어진 별개의 것이 아니다.


동료 문인들의 낭독극. 장소연, 문성수, 박향 소설가.



출판사 근처의 소극장에서 정광모 작가의 최근작 『작화증 사내』를 두고 문학콘서트가 열렸던 것은 유월 십칠일 월요일이었다. 꼬박 일여 년이 넘는 편집과정을 거치고, 책으로 탈바꿈한 이 책에는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삶이 포착되어 있다. 역사를 재구성하고 포장해서 전시 흥행으로 일확천금을 누리려는 큐레이터의 삶, ‘시시포스의 돌 굴리기’라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호텔 사장의 욕망, 수능시험이라는 매년의 통과의례 속에 발생한 해프닝을 두고 사건 해결보다 수습에만 급급한 교무부장과 교감의 삶 등, 그의 소설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일상에 지쳐 있는 사람들이다. 승진이나 출세, 전시 흥행, 관광객 유치 등 다양한 욕망들을 품고 있는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그런 사람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빛나 보이는 것은 그들을 차분히 관조하는 ‘작화증 사내’의 시선 때문이 아닐까. 그는 이런 삶을 조롱하지도 비웃지도, 그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욕망’하지도 않는다. 다만 관찰하고 그려내고 누군가에게 그 이야기들을 전달할 뿐이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사내의 무미건조하고 ‘욕망’하지 않는 삶을 두고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게끔 만드는 사회구조의 부조리를 이 책은 담담하고 건조한 필치로 그려낸다.


저 남자가 정신이상이라고 믿어지지 않아서요. 만약 저 사람이 바깥 사회에 있었더라면 기발하기도 하고 재미가 넘치는 사람으로 보였을 텐데요? 글쎄 그게 그 사람한테 이미 말려든 거라니까요. 저 작화증 사내가 회사에서 무심하게 지어낸 얘기로 일으킨 소동이 한둘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여기까지 끌려온 거예요. 제일 가까운 주변 사람들이 인정했어요. 저 사람은 자기가 본 영화와 책이나 신문, 텔레비전과 같은 온갖 잡동사니를 대담하게 섞어 탁월하게 이야기를 버무려 내요. 누구든지, 뭐든지 엮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죠. 더 두려운 건, 그걸 본인이 철석같이 믿는다는 거지요. 악성 작화증 증셉니다._「작화증 사내」中




정기문 평론가와 정광모 소설가.



정기문              비문학적 글쓰기와 문학의 글쓰기는 결이 다르다. 글을 쓰는 작가의 신념이 보다 중요하다고 보는데, 글쓰기에 있어서 고충은 없었는가?


정광모                퇴고의 과정이 힘들었다.



정기문              읽으면서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다. 나는 이 책의 테마를 ‘자본주의’, ‘기억’, ‘타자’, ‘우울’, ‘책임과 윤리의 문제’로 판단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 바로 「기억금지구역」이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할아버지의 초상이 걸린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와 손자의 대립을 이야기 삼고 있는데, 역사를 왜곡하고 비틀면서도 ‘일제강점기 시대 신관옷을 입고 있는 한국남성’이라는 흥행요소를 놓치지 않으려는 큐레이터의 욕망이 담겨 있다. 이처럼 역사는 훗날 역사를 바라보는 이들의 관점과 해석으로 재구축되고 재생성된다.  그래서 이 작품에 있어 ‘기억’이 중요한 요소이다. 큐레이터의 욕망과 함께 자본의 축적을 풀어내고자 자본에 공모하는 손자의 선택과 갈등도 매우 흥미롭게 읽혔다. 작가에게 있어서 과거란 어떤 요소인가?


정광모                과거는 기묘하다. 말랑말랑하고 실체 없는 것이다. 밀가루같이 변용가능한 성질의 것이랄까. 나는 과거를 역사적 과거와 문학적 과거로 나누고자 한다. 「기억금지구역」의 작품 속 ‘신관 옷을 입은 할어버지’는 이를테면 보기 싫은 기억이자 상기하기 싫은 과거의 일부였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이런 과거들은 우리 주변에도 흔하지 않은가. 그러나  문학적 기억으로서 우리가 상기해야 할 기억은 놓치지 않고 복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선 작품 낭독 중인 정광모 소설가.



정기문              과거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체제의 무의식을 폭로하고 까발리는데 그 존재의의가 있다고도 본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자본주의의 문제를 폭로하는 데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는데 반해, 등장인물의 자살과 같은 요소는 보였으나 굳이 비판하자면 체제를 탈주하려는 전망은 보이지 않았다. 작가의 책임문제도 뒤따라야 하는 게 아닐까 보는데……


정광모                현실은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다. 작년께 출간된 『밤의 눈』이라는 조갑상 소설가의 장편소설을 살펴보노라면, 그것이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는 소설임을 주목해야 한다. 세상에는 이처럼 소설보다 더 믿기 힘든 기묘한 이야기들이 산재해 있다. 작가는 이런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데에도 책임을 져야 된다고 본다. 문학의 죽음을 논하는 시대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소설책을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작가인 나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작가의 신념이랄까. 이런 모순된 체제를 탈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썼다. 비록 작품에는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대학 학예제 발표 시절 정광모 작가의 모습.



독자질문             소설이 참 간결하고 담백하다, 맛있다 하는 느낌을 받았다. 단편 「답안지가 없다」를 재밌게 읽었는데, 수능시험 과정의 소상한 진행과정이라던가 어떻게 구상하고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는지 그 경위가 궁금하다.


정광모                이런저런 조사도 함께 병행하면서 교직에 있는 아내의 도움도 받았다. 매년 수능시험마다 비행기도 못 뜨게 할 정도의 야단법석을 떠는 우리나라의 수능시험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나라 사회현상의 특이점이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로 인한 다양한 이야기 발상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서 내 나름의 수능현상에서 일어나는 한 교감 선생의 고뇌를 구상하게 되었다.


정기문              작가 본인의 삶의 경험치를 넘어갈 때, 보통 인터뷰와 사전조사가 뒷받침되어야 리얼리티가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인터뷰를 성실하게 답변해주신 정광모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작화증 사내 - 10점
정광모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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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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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온수입니까 2013.07.04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와 만나 이야기하는 자리가, 책의 생명성을 불어넣는 것 같아요. 문인들의 낭독극은 아주 재미있었구요^^ 오랜만에 찾아온 엘뤼의 포스팅 좋아요:)

  2. BlogIcon 깜달 2014.11.13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읽게 읽었습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

 “저 남자의 얘기는 대부분 거짓이지만 그중에는 진실도 섞여 있죠.

  그래서 긴장해서 들어야 해요.”





정광모 소설집 

작화증 사내













독특한 신예작가가 한국 문단계에 등장했다. 일상의 내부를 비집고 들어온 치밀한 상상력으로 점철된 소설가 정광모의 세계는 담담하면서도 드라이한 개성을 지녔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알싸한 맥주거품이 솟아오르듯 현대인이 품고 있는 절망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군더더기 없는 하드보일드 문체로 현실을 끄집어 올리는 작가 정광모의 첫 소설집 『작화증 사내』는 그래서 더욱 독특하다. 왜곡되고 비틀린 현실 속, 정신병원에 감금된 한 사내의 거짓 이야기로부터 작가는 이야기의 본질과 소설적 진실의 자리를 되묻고 있다.





담담하면서도 치열하게 현실을 비틀다

‘첫 문장을 쓰고, 이어서 차근차근 인물의 스토리와 운명을 결정하노라면 (…) 나는 창조주가 세상을 창조하면서 느낀 기쁨에 조금이라도 접근했다는 쾌감에 젖는다.’_정광모, 「작가의 말」


2010년 월간지 「한국소설」로 등단한 작가 정광모는 국회의원 정책보좌관으로 일한 경력을 뒤로하고 전업작가로 나섰다. 치열하게 현대 문명을 탐구함과 동시에 문학의 존재 이유를 성찰한 결과물이 바로 이번 소설집 『작화증 사내』에 담겨 있다. 현대인의 일상을 일곱 가지 단편으로 무덤덤하게 짚고 넘어간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기계화된 문명 속에서 체제 순응적 삶을 강요당하는 인간 군상을 포착해냈다. 그것은 별일 없는 무료한 일상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가 정광모의 부단한 노력으로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사실과 허구 속에 놓인 작화 행위를 묻다


정광모의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우직하게 끌고 가는 힘이며, 이를 통해 우리 생의 의지를 북돋고 바른 길을 제시하고자 하는 그 정직함에 있다. _박형준(문학평론가)

주인공들은 암담한 현실에서 탈출하면서, 또는 탈출하려 몸부림치면서 궁극적인 삶의 신비를 체험한다. _윤후명(소설가)

정광모 소설은 모든 것이 갖춰진 현대 문명 속에서, 구원이 없는 인간의 실존을 그린다. 개성이 예술의 중요 덕목이라면 정광모 작가는 드라이한 현대적 개성을 지녔다. _이복구(소설가)


7편의 단편 가운데 표제작은 「작화증 사내」이다. 작화증(confabulation)이란, “공상을 실제 일처럼 말하면서 허위라고 깨닫지 못하는 병”을 의미하는 정신병리학적 증세이다. 작가는 이러한 작화증 환자의 작화 행위를 ‘박’이라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지긋이 바라보면서 ‘이야기’의 본질을 묻고 있다. 스토리텔링 기법이 각광받고 상상력이 주목받는 시대이나, 소설 속에 그려지듯 ‘작화증 사내’의 행위들은 모두 미치광이 ‘작화증 환자’의 행동으로 치부될 뿐이다. 임상심리사의 발화를 통해 사내의 말들은 단순한 허위 이야기의 차원을 넘어, 사회 시스템을 뒤흔드는 사회적 ‘질병’으로까지 위험시된다. 이처럼 작가 정광모는 감정적인 수사를 배제하고 담담한 필치를 통해 부조리한 사회와 은폐된 사실을 그려냈다. 이로써 작가는 문학적 사유와 함께 진실과 허위로 얼룩진 ‘이야기’의 구조 자체에 대한 탐구를 독자에게 던지고 있다.




비순응적 삶의 양식을 조명하다

정광모 소설가가 드러내는 현실인식은 여타 작품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차마 마주하지 못하는 역사적 외상을 ‘용두산공원’이라는 역사적 장소를 통해 드러내는 한편(「기억 금지구역」), 진실을 ‘드러내는 것’보다 ‘감추는 것’을 손쉽게 강요당하는 우리 사회의 순응주의를 꼬집기도(「답안지가 없다」) 한다. 직장의 회식 자리마저도 업무능률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구조화되는 현실(「어서 오십시오, 음치입니다」)이나,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늘 새로운 과업을 창출해 낼 것을 주문받는 현대인의 쓸쓸한 단면(「시시포스 묻히다」)을 묘파해 내기도 한다. 

이처럼, 소설집 『작화증 사내』는 기존의 개인적 서사와 감정을 위시한 주류문단의 서사 방식과는 달리, 정광모 작가만의 독특하고도 치열한 작가의식으로 현대인의 실존과 함께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드러낸 문제작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추리적 전개, 새로운 스타일의 발견

한편, 소설 「밤, 마주치다」는 ‘박관수 시장’이 도모하고자 하는 수많은 일이 좌절되고 그로 인해 어긋나는 일상 속에 느끼는 ‘박관수 시장’의 무력감과 피로감을 여실히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현대 정치의 비정함과 살인의 유사성’을 그려 내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정치적 협잡과 뒷거래가 오가는 가운데 느끼는 주인공의 염세적 삶의 태도는 우연히 마주하게 되는 시체의 검은 봉투에서 보다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텔레비전 뉴스에 연일 보도되는 아주 일상적인 사건을 두고 ‘검은 봉투’라는 소설적 매개를 통해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현실에 끈끈이 밀착되어 있으면서도 구성지게 어울리는 정광모 작가만의 상상의 조미료를 첨가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덤덤하기에 오히려 매력적인 정광모의 세계는 그러나 절망만으로 점철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통증의 시작과 끝」에서 이 시대의 우울과 직접 대면하라고 작가는 종용하고 있다. 앞으로의 행보가 보다 주목되는 작가 정광모. 그는 풀리지 않는 인생의 미로를 일곱 편의 이야기 속 주인공의 입을 빌려 포착해 내는 뛰어난 묘사력과 상상력을 동시에 지녔다.

 

『작화증 사내

산지니소설선 17
정광모 지음
문학 | 국판 변형(140*205mm) | 244쪽 | 12,000원
2013년 3월 28일 출간 | ISBN : 978-89-6545-213-3 03810

군더더기 없는 하드보일드 문체로 현실을 끄집어 올리는 작가 정광모의 첫 소설집. 현대인의 일상을 일곱 가지 단편으로 무덤덤하게 짚고 넘어간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는 기계화된 문명 속에서 체제 순응적 삶을 강요당하는 인간 군상을 포착해냈다. 왜곡되고 비틀린 현실 속, 정신병원에 감금된 한 사내의 거짓 이야기로부터 작가는 이야기의 본질과 소설적 진실의 자리를 되묻고 있다.

 



글쓴이 : 정광모

부산 출생. 2010년 『어서 오십시오, 음치입니다』로 한국소설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부산대학교를 거쳐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을 졸업했고 저서로 『또 파? 눈먼 돈 대한민국 예산』이 있다.


차례

기억 금지구역

시시포스 묻히다

밤, 마주치다

답안지가 없다

작화증 사내

어서 오십시오, 음치입니다

통증의 시작과 끝


해설 : 비순응적 삶의 형식-박형준

작가의 말


작화증 사내 - 10점
정광모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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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크라울리 2013.11.08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단편 하나하나 읽어가면서 책장 넘어가는 게 아깝더군요.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됩니다.

  2. BlogIcon 솔바람 2015.05.21 18: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게 읽었어요. 동시에 작품 한편한편이 생각도 많이 하게 하는 작품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