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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15

고종은 왜 명성황후 복수에 집착했나? 1895년 8월 20일 경복궁에 잠입한 일본인들은 명성황후를 처참하게 시해하고 암매장한다. 을미사변이다. 황후의 국장은 2년이 훌쩍 지난 1897년 11월 21일에야 치러진다. 아관파천과 환궁, 대한제국 선포 과정에서 고종은 황후의 복수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칙령에서 을미사변을 '국모를 시해하고 임금을 협박해 법령을 혼란시킨 만고에 없던 일'로 규정하고 을미의병들이 국모 복수를 위해 충절로 궐기했다고 평했다. 경운궁으로 환궁한 뒤 편전에 해당하는 경소전을 황후의 혼백과 유해를 안치한 빈전으로 삼음으로써, 통치의 우선 과제에 황후의 복수가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냈다. 황제 즉위 절차적 정당성 획득 노려 근대화 압력 맞선 군주제 변신 추적 고종은 왜 국장을 미루고 황후의 복수를 이토록 강조했을까? '근대 서.. 2014. 11. 10.
근대 서구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군주제 근대 서구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군주제 - 박원용 외 지음/산지니 19세기 서세동점의 시기에 동아시아 각국의 군주와 지배 엘리트들이 군주제 유지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각국의 특수성은 어떠했는지를 비교해 살핀다. 조선은 황제를 중심으로 전제군주제를 도모했으며, 청나라에선 만주족과 한족, 군주입헌제와 민족주의가 대결했다. 또 일본에선 막부와 장군을 중심으로 한 에도시대 군주제가 조정과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군주제로 변모했으며, 러시아의 군주정은 우익 정치세력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허약한 모습을 보였다. 티베트에선 독특한 정교합일의 전통이 달라이 라마에 투영됐다. 이들의 비교 연구는 어떤 함의를 줄 수 있을까. 저자들은 전통을 지키려는 다양한 군주론 또한 당시 근대화론이나 혁명론 못지않게 중요하다.. 2014. 11. 10.
[서점까지 화이팅] 왕좌는 흔들리기 시작했다─근대 서구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군주제(근간) #N. 전복라면 편집자가 만든 근간 홍보 포스터를 보는 산지니 식구들 권디자이너: 잘했네. 사소한 것만 좀 고치면 되겠다. 밑에 저자 소개는 검은색으로 하고, 여기 큰 글자 옆에 가려진 거 빼고 보이게 하고. 전복라면: 근데요, 전 약간...(시무룩하게) 근간 소개는 좀 웃기게 하고 싶었어요. 병맛 나게. 짤방처럼. 엘뤼에르, 온수입니까: 짤방? 그건 전혀 아니다. 온수입니까: 포스터 색깔이 검은색이라서 딱딱하게 보이는 거 아닐까? (산지니 블로그에 들어가보고) 카테고리 이름을 근간 소개 말고 좀 부드럽게 했으면 좋겠어. 전복라면: 곧 나올 책, 이런 거? 으음.(블로그 카테고리 이름을 고친다) 엘뤼에르: 전복 씨 근간 소개 가지고 한 이 주쯤 계속 생각한거 아니야?ㅋㅋ 쉽게 생각해요. 전복 씨는 정말 .. 2014. 10.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