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니에서 10월에 출간된 단편소설집 <마니석, 고요한 울림>, 읽어보셨나요? 

 

<마니석, 고요한 울림>은 풍부한 상징성과 문학성을 띠면서도 독특한 티베트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입니다. 또한 작가 페마체덴(萬瑪才旦) 영화감독이자 소설가라는 점이 독특한데요.

 

지난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마니석, 고요한 울림>의 저자 '페마체덴'과 함께하는 행사가 저 멀리 중국 남경과 홍콩에서 있었습니다. 자칭 페마체덴 선정·선동가이자 <마니석, 고요한 울림>의 해설을 쓰시기도 한 임대근 선생님이 그 현장에 직접 참석하시고, 참관기를 보내주셨는데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함께 보실까요?

 

 

 

 

 

페마체덴을 찾아서

 

 

임대근(한국외대 교수)

 

 

지난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난징을 거쳐 홍콩엘 다녀왔다. 페마체덴을 찾아간 여정이었다. 페마체덴은 티벳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베이징영화대학(北京電影學院)에 들어가 영화를 공부했다. 지금까지 여러 단편과 장편을 연출했다. <초원>(단편: 草原, 2005), <성스러운 돌>(단편/장편: 靜靜的嘛呢石, 2005), <나팔바지 휘날리던 1983년>(喇叭褲飄揚在一九八三, 2009), <쿤덴을 찾아서>(尋找智美更登, 2009), <올드독>(老狗, 2011), <오색신검>(五彩神箭, 2014), <타를로>(塔洛, 2015), <진파>(撞死了一只羊, 2018) 등 여러 영화를 찍었다. 그의 영화는 상영될 때마다 이슈가 됐다.

 

페마체덴은 소설가이기도 하다. 『랑가수의 꿈』(流浪歌手的梦, 2011), 『마니석, 고요한 울림』(嘛呢石, 静静地敲, 2014), 『부딪혀 죽은 양 한 마리』(撞死了一只羊, 2018) 등 여러 단편집을 냈다. 그의 소설과 영화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여러 영화들이 소설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와 만들어진다. 그래서 소설이니 영화니 하는 장르를 나누기보다는 이야기에 대한 희망, 티벳에 관한 이야기에 대한 희망을 가진 작가라고 할 수 있다.

 

10월 28일 난징공항에 내린 나는 곧바로 난징대학 뉴캠퍼스를 찾았다. 난징대학 중문과의 양거수(楊戈樞) 교수 겸 영화감독이 주최한 ‘페마체덴과의 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난징대학에 열린 페마체덴과의 대화: ‘페마체덴의 티벳어영화’

왼쪽이 사회를 맡은 양거수 난징대 교수, 오른쪽이 페마체덴

 

 

 

난징대학에서 ‘대화’를 마치고 작가 서명을 받고 있는 학생들

 

 

일요일 늦은 저녁 시간이었는데도 강당 안에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페마체덴의 문학과 영화에 관한 문답이 오고갔다. 참석자들은 가을 저녁 공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페마체덴의 문학과 영화가 중국문학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소수민족’ 문학과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특히 ‘티벳어영화’라는 개념이 등장한 건 독특한 일이었다. 나는 ‘티벳어영화’라는 말은 ‘화어전영’(華語電影: 중국어영화)이라는 말의 새로운 개념 정립을 요청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 관계상, 그리고 모종의 이유 때문에 이 의제는 길게 토론되지 못했지만, 나는 다음날 토론회에서도 이 문제를 다시 꺼냈다. 난징으로 유학을 온 티벳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대화’가 끝나자 마침 새로 나온 소설집 『부딪혀 죽은 양 한 마리』에 작가의 친필 서명을 받으려는 학생들의 줄이 길게 이어졌다.

 

 

 

중산릉의 한 호텔에서 열린 ‘페마체덴의 문학과 영화’ 토론회

 

 

이튿날에는 중산릉 안에 있는 한 호텔에서 페마체덴의 문학과 영화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난징의 역림(譯林)출판사 관계자들과 난징대, 난징사대 교수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저마다 페마체덴의 이야기를 읽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했다. 페마체덴은 “나의 문학과 영화에 관한 논의를 한 자리에서 한 건 처음”이라며 “그래서 이번 토론회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페마체덴 문학의 이야기가 구조화되는 방식, 영화의 미학적 스타일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소수민족 출신 작가라는 이유 때문에 그의 이야기를 문화적 맥락이나 사회적 맥락으로 끌고가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사뭇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다.

 

11월 1일, 홍콩으로 건너간 나는 홍콩침회대학으로 향했다. 그날 저녁은 페마체덴 소설의 번역에 대한 짧은 북토크와 페마체덴이 지금 작업 중인 다큐멘터리 상영이 있었다. 나는 우리말로 번역된 마니석, 고요한 울림』(산지니, 2018)이 출간된 과정을 함께 나누었다. 스페인에서 온 마이알렌 마린 라카르타 교수는 스페인어로 번역된 『타를로』에 대해 이야기했다. 토크 시작 전, 페마체덴은 티벳에서 손님을 맞는 의식으로 우리를 환영했다. ‘하다’라는 하얀 실크로 된 스카프를 우리 목에 걸어준 것이다. 페마체덴의 소설은 이미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한국어 등으로 번역되면서 세계의 독자를 만나고 있다.

 

 

 

홍콩침회대학에서 열린 페마체덴 북토크.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북토크에서 페마체덴 감독이 마이알렌 교수에게 ‘하다’를 걸어주고 있다.

 

 

이어 상영된 다큐멘터리 <나의 소년 라마>는 영화 <성스러운 돌>의 주인공이었던 소년 라마가 환속한 뒤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일거리를 찾아 헤매며 살아가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영화를 찍기 시작한지 꽤 여러 해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작업 중’인 이유는 그 추적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년에게는 영화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 수도원 안의 세계와 바깥 세계가 나뉘어 있었다. 행사가 끝나고 “언제쯤 영화가 마무리되겠느냐?”고 묻자 “아직 알 수 없지만, 곧 끝낼 것 같다”는 답이 돌아왔다. 소년이 자신의 삶이 그대로 기록되는 걸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페마체덴이 기록하는 티벳에 관한 중요한 에스노그라피로 남을 것이다.

 

11월 2일에는 역시 홍콩침회대학에서 ‘페마체덴을 번역하기’라는 주제로 심포지움이 열렸다. 프랑스의 브리짓 두장 교수, 프랑수아즈 로빈 교수, 스페인의 마이알렌 마린 라카르타 교수, 미국의 로버트 바넷 교수, 홍콩의 로콰이청 교수, 제시카 영 교수, 그리고 내가 발표를 맡았다. 우리는 페마체덴의 문학이 세계 각지의 언어로 번역돼 나가는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또 그의 영화가 중국 바깥의 세계에서 수용되는 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영화에서 단편집까지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문화번역’을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홍콩침회대학에서 열림 심포지움.

왼쪽부터 페마체덴, 브리짓 두장 교수, 프랑수아즈 로빈 교수

 

 

나는 그의 이야기가 ‘열려 있는’ 구조를 선호한다고 보았다. 그의 인물들은 치밀하지 않다. 그의 사건도 인과 관계가 분명하지 않다. 그는 추리소설이나 탐정소설과는 정반대에 서 있으면서도 매우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는 ‘번역’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세상의 언어들은 저마다 힘을 가지고 있다. 힘세 영어와 프랑스어, 스페인어가 있는가하면, 그보다는 힘이 약한 한국어와 티벳어도 있다. 우리는 힘센 언어를 약한 언어로 번역하는 일을 매우 자연스러워한다. 그러나 힘이 약한 언어가 힘센 언어로 번역되면 ‘사건’이 된다. 이 ‘사건’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나는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식민과 탈식민, 근대와 탈근대, 그리고 문화번역의 수행 과정의 복잡성에 관해 이야기했다.

 

 

 

심포지움이 끝나고 페마체덴과 함께

한국어로 번역된 『마니석, 고요한 울림』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페마체덴이라는 ‘중심’을 두고 모인 우리는 즐거웠다. 늦게까지 이어진 토론과 식사와 나눔의 자리를 통해 페마체덴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티벳과 중국, 우리가 사는 아시아와 더 넘어 자리한 세상들, 그 안에서 공통의 관심을 가지고 ‘분투’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게 됐다.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소통하려고 발버둥치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모두들 대견해 했다. 난징과 홍콩으로 이어진 문화와 학술의 여행은 내게 적잖은 성찰과 각성을 가져다 주었다.

 

 

페마체덴(萬瑪才旦)

 

티베트인으로서 작가이자 영화감독, 번역가다. 시베이 민족대학에서 티베트어와 문화를, 베이징 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1991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티베트어 소설집 『유혹诱惑 』, 『도시 생활都市生活 』과 중국어 소설집 『방랑 가수의 꿈流浪歌手个梦 』, 프랑스어 소설 『Neige』, 일본어 소설 『영혼을 찾아서寻找智美更登 』가 있다. 그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체코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2002년부터 티베트의 문화와 생활을 깊이 있고 세심하게 그려낸 영화를 만들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고요한 마니석静静的嘛呢石 >, <진파撞死了一只羊 >, <영혼을 찾아서 寻找智美更登>, <올드 독老狗 >이 있다.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각본상, 상하이영화제 아시아 신인 최고감독상, 중국 진지상 최고연출가 데뷔작상, 도쿄 FILMeX영화제 최고영화상, 브루클린 영화제 최고영화상 등을 수상하며 활발한 활동 중이다.

 

 

 

 

마니석, 고요한 울림 - 10점
페마체덴, 김미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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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니석, 고요한 울림ㅣ페마체덴 지음, 김미헌 옮김ㅣ산지니ㅣ336쪽

 

*마니석: 중국의 소수민족인 장족은 돌에는 영혼이 있어 꾸준히 노력하고 매일 밤 석판에 육자진언을 새기면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다. 사람들은 도필을 가지고 힘든 작업을 계속하며 석판에 경전의 문장, 각종 불교, 행운을 불러오는 문양을 다양한 색으로 표현한다. 작업이 끝나면 평범했던 돌과 석판은 마니석(瑪尼石)으로 재탄생된다.

 

 

▶ 티베트의 이야기꾼 페마체덴,
   그가 들려주는 낯설고도 가까운 티베트 문학을 만나다

 

티베트 출신 소설가이자 영화감독인 페마체덴의 단편 소설집 『마니석, 고요한 울림』이 출간됐다. 이 책에는 표제작 「마니석, 고요한 울림」을 포함해 모두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페마체덴은 티베트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주로 연출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도 줄곧 소설을 썼고, 그의 영화는 대부분 자신이 쓴 소설에서 연유한 이야기들이다. 이 책의 표제작인 「마니석, 고요한 울림」도 영화로 각색되어 벤쿠버 영화제 및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 상영되기도 하였다. 그 밖에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통해 2018년 75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오리종티 각본상을 받았다.


페마체덴의 소설은 우리를 신비한 티베트의 세계로 데려간다. 그러나 티베트의 ‘다름’을 과장해서 억지 감동을 이끌어내지 않는다. 페마체덴의 소설에는 스펙터클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지만, 삶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근원적 물음이 있다. 작가는 대화의 중첩과 생생한 묘사로 잔잔하게 오늘날 티베트인에게 들이닥치는 삶의 변화를 그려낸다. 그 속에는 티베트인의 삶과 죽음이 있고 종교와 사상이 있고 또 일상이 녹아들어 있다.

 

 

 

▶ 묘하게 닮은 두 단어
   마술적 사실주의와 티베트

 

페마체덴의 소설을 말하며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라는 용어는 중요하다. 『마니석, 고요한 울림』에서는 현실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들, 현실의 법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인과를 그려낸다. 소설 속에서 티베트는 현실적 공간이기도 하면서 판타지적 공간이기도 하다.


표제작 「마니석, 고요한 울림」에서는 마술적 사실주의 기법이 빛을 발한다. 소설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마니석 두드리는 소리에 르싸네가 귀를 기울이는 사건으로 시작한다. 문득 바깥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동기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듯하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내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 조각공을 꿈속으로 불러낸다. 죽은 조각공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위해 마니석에 육자진언을 새기는 행위를 통해, 아들 르싸네는 부모의 죽음에 대한 의례를 치른다. 이야기는 르싸네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판타지로 풀어내며 독자를 마술적 사실주의의 체험으로 이끈다.

 

 

 ▶ 작품을 거니는 인물들
    활불, 돌마, 그리고 이방인

 

『마니석, 고요한 울림』에는 수많은 형상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을 대표하는 인물은 셋으로 모아진다. 바로 활불, 돌마, 이방인이다.


활불은 「마니석, 고요한 울림」, 「우겐의 치아」, 「기억 속 두 사람」에 등장한다. 활불은 덕행이 아주 높은 승려를 이르는 말로, 티베트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의 정점에 있는 인물로서 티베트의 전통을 대표한다. 그러나 활불은 고상한 체하는 존재가 아니다. 활불은 언제나 티베트 사람들 곁에서 그들이 맞닥뜨린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걱정하는 인자한 존재다.


돌마는 티베트 불교의 대표적인 여자보살을 지칭하는 단어로, 「낯선 사람」, 「오후」, 「죽음의 색」에 등장한다. 작품 속에서 돌마는 작품 전체에서 삶의 처처에 자리하고 있는, 그러나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욕망을 대표한다.


이방인은 ‘낯선 사람’의 형상으로 등장한다. 「낯선 사람」의 ‘낯선 사람’은 티베트 마을에 문득 나타나 마을을 휘젓고 사라지는 사람이다. 이방인은 티베트 마을 밖, 대도시 또는 소도시에서 들어온다. 「아홉 번째 남자」에서 용우파엔이 만난 트럭 기사, 잘생긴 남자 등은 모두 도시에서 왔다. 티베트 공간에 들고 나는 ‘낯선 사람’이란 존재는 티베트 바깥의 모든 이들로 상징된다. 그들은 한족 중국인, 티베트를 행정구역화한 공무원, 푸른 눈의 이방인 등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이들을 처음으로 경험하며 놀라고 두려워한다. 그러나 티베트 바깥사람들은 티베트 사람들을 오히려 무언가 신비에 둘러싸여 있는 인물들로 이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페마체덴의 단편집은 티베트에 대한 이해의 현실적 반영이다.


페마체덴은 이처럼 활불과 돌마, 이방인이라는 상징과 표상을 통해 티베트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티베트 안과 밖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교차하는 시선을 그려내고 있다.

 

 

▶ 인민과 장족 사이
   티베트인의 정체성을 말하다
 
「타를로」에서는 대립적일 수밖에 없는 중국과 티베트의 관계를 보여준다. 「타를로」에서 타를로는 신분증을 만들러 도시에 나갔다가 다양한 낯선 사람들을 만나면서 난생 첫 경험과 마주한다. 신분증을 만드는 행위는 티베트의 전통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건 중국의 행정구역 안에 사는 ‘인민’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위치시키는 일이다. 타를로가 티베트 바깥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건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이라는 공식적인 둘레 안으로 전치하는 과정이다. 그는 행정력이 요구하는 대로 머리를 잘랐다가, 땋았다가 한다. 그리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마오쩌둥의 어록을 외움으로써 ‘중국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자네, 《인민을 위해 봉사하다》 한번 읊어보게. 우리 경찰들 시야 좀 넓혀줘.”
타를로는 경찰들의 표정을 보면서 군소리 하지 않고 거침없이 암송하기 시작했다.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 1944년 9월 8일, 마오쩌둥. 우리 공산당과 공산당이 이끄는 팔로군, 신사군은 혁명 대오입니다. 우리 혁명 대오는 오로지 인민의 해방을 위해, 철저히 인민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장쓰더 동지는 우리 혁명 대오 중 한 명이었습니다.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의미는 모든 사람에게 같지 않습니다. 중국 고대 문학가인 사마천은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죽음은 태산보다 무거울 수도 있고 깃털보다 가벼울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다 맞는 죽음은 태산보다 훨씬 무겁고, 파시스트를 위해 일하거나 인민을 착취하거나 핍박하다 맞는 죽음은 깃털보다 훨씬 가볍습니다. 장쓰더 동지는 인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다 숨졌으므로 그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 「타를로」 중에서

 

티베트 사람으로서 타를로는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불통의 경험을 반복한다. 그의 정체성은 흔들리고, 티베트의 전통은 마치 그의 꽁지머리처럼 잘려나간다. 중국이라는 행정구역의 지도가 그의 삶으로 다가올 때, 그는 혼란을 경험한다. 중국식 교육에 어쩔 수 없이 함몰돼 있는 그이지만, 그의 내면에서 우러나는 지식과 경험은 마오쩌둥 어록이 아니라 ‘양치기 방법론’이다. 작품에서는 티베트가 맞닥뜨린 정체성의 위기가 그렇게 그려진다.

 

 

▶ 그럼에도 어디에나 있는
   인간의 보편적 이야기

 

소설 속 이야기는 티베트에서 일어났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의 삶에 관해 말한다. 『마니석, 고요한 울림』 속 작품들은 ‘티베트’라는 소재에 기대어 ‘낯선 티베트의 종교 혹은 문화’를 그럴듯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 소재를 경유해 인류 보편의 일상적 물음인 삶과 죽음, 우정과 사랑을 진솔하게 다루어, 인간에 대한 보편적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아홉 번째 남자」에 있는 용우파엔의 아홉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티베트 사람들의 온갖 형상을 잘 보여준다. 이야기는 티베트에서 일어났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의 삶에 관해 말한다. 용우파엔이 만난 남자들은 우리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유비(allegory)다. 아홉 남자, 그러니까 인생은 각각 종교, 사랑, 재물, 타향, 외모, 섹스, 권력, 자식, 지식을 추구한다.


한국 독자들에게 티베트, 티베트 소설은 낯설다. 그러나 인류 보편의 일상적 물음을 담은 『마니석, 고요한 울림』속 작품들은 풍부한 상징성과 문학성을 띠면서도 독특한 티베트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 낯설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런 페마체덴의 작품들은 한국 독자들에게 선물과도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 이 책소개 글은 임대근 교수의 해설 ‘티베트의 이야기꾼 페마체덴 그리고 활불, 돌마, 이방인의 유비(allegory)들’을 인용·편집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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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페마체덴(萬瑪才旦)

티베트인으로서 작가이자 영화감독, 번역가다. 시베이 민족대학에서 티베트어와 문화를, 베이징 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1991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티베트어 소설집 『유혹诱惑 』, 『도시 생활都市生活 』과 중국어 소설집 『방랑 가수의 꿈流浪歌手个梦 』, 프랑스어 소설 『Neige』, 일본어 소설 『영혼을 찾아서寻找智美更登 』가 있다. 그의 작품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체코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2002년부터 티베트의 문화와 생활을 깊이 있고 세심하게 그려낸 영화를 만들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고요한 마니석静静的嘛呢石 >, <진파撞死了一只羊 >, <영혼을 찾아서 寻找智美更登>, <올드 독老狗 >이 있다.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각본상, 상하이영화제 아시아 신인 최고감독상, 중국 진지상 최고연출가 데뷔작상, 도쿄 FILMeX영화제 최고영화상, 브루클린 영화제 최고영화상 등을 수상하며 활발한 활동 중이다.

 

옮긴이 김미헌
성신여대 중문과와 제주대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외대 중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중국 안칭직업기술대학 외국어과 교수를 지낸 바 있다. 현재 제주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서 영상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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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석, 고요한 울림 - 10점
페마체덴, 김미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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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⑥ 

 

 

 

산지니에서는 중국 티벳 출신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페마 체덴의 소설 작품집(원제: <嘛呢石静静地敲>)을 준비 중입니다. 페마 체덴은 최근 영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지만, 그의 예술적 근원은 소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에게 있어 영화와 소설은 둘이 아닌 하나로 통하는 길이니까요.

 

총 7회 연재될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는  2016년 출간된 <중국 청년감독 열전>(강내영 지음)에 실린 글입니다. 이를 통해 페마 체덴의 소설집 출간 전,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사회맥락적 의미, “이중신분과 양면성 속의 ‘티벳영화’를 노래하다” 

 

 페마 감독의 ‘티벳영화’를 논할 때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대중들에게 사회맥락적으로 소비되고 독해되는 독특한 문화정치학적 지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페마 감독이 가진 중국/티벳이라는 이중신분(double identity)과 현재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주권문제가 그의 영화와 중첩되어 연상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작 페마 감독 당사자는 이중신분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는데도 전 세계 지식인 관객층은 인도 임시정부나 티벳 독립와 같은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한 관점에서 과도한 정치적 영화읽기를 시도하려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실제 페마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분에 대해 질문하자 약간 거부감을 보인다, “나의 신분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 작품이 제일 중요하다. 나의 신분을 범주화하는 것은 마치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차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당대의 시대적 가치관, 영화시장과 산업적 수요, 대중의 욕망이라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요소들이 교접하고 반영된 사회적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페마 감독의 작품은 중국/티벳 사이의 정치적 현실과 중첩되어 바라볼 수밖에 없다. 진솔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고향 티벳 공동체를 재현하려는 그의 최소한의 개인적 예술행위조차 정치적으로 독해되고 소비될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페마 감독은 탈정치적 시선 속에 그저 ‘말하지 않고 드러내기’를 할뿐인데, 우리 시대가 처한 중국/티벳의 현실은 그의 작품을 정치적 시선으로 몰고 가거나, ‘상상된 티벳 신화(imagined myth)’로만 오독(誤讀)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영화는 ‘티벳영화’를 상상된 이상향으로 티벳을 소비하려는 관객이나 과도한 정치적 해석으로 몰고 가려는 관객들의 예단을 제거하고 ‘바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진실한 티벳(眞實的藏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분명한 의의가 있다.

 

 

 결론적으로, 그의 작품에는 중국/티벳 사이를 오가는 양면적 성격이 엿보인다. 문화정체성이라는 점에서는 분명한 ‘티벳영화’를 지향하지만, 문화정치학적 맥락에서 본다면 티벳 독립과 같은 강렬한 민족의식보다는 〈오색신전〉과 같이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단결 이데올로기에도 부합하는 주제의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중화민족주의의 핵심은 중국이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이 뭉친 중화민족으로 구성된 다원일체(多元一體) 단일국가라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이를 위해 광범위한 역사공정이 시도되고 있으며, ‘북방공정’을 통해 ‘몽골영토는 중국영토’로, ‘동북공정’을 통해서는 ‘고구려를 중국민족으로’, 그리고 ‘서남공정’을 통해서는 티벳이 13세기 원나라 때부터 중국 일부였다고 주장하거나, 한족과 티벳족의 언어와 문화가 동일하다는 한장동원론(漢藏同源論)을 내세우기도 한다.

 

 〈늙은 개〉에서는 티벳인들이 환호할 만한 강렬한 티벳 민족의식을 보여주었지만, 〈오색신전〉에서는 ‘우애, 평화, 단결, 정의’라는 티벳의 높은 정신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동시에, 중국 정부의 중화민족단결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시선도 보여주기 때문이다.

 

 중국과 티벳 문화의 핵심적 쟁점 중 하나인 티벳 전통불교와 사회주의사상 사이의 문제에 대해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궁금했다.

 

 인터뷰에 만난 그는 평소 불교신자로서 팔에 염주를 끼고 있었지만, 사회주의 사상과 티벳불교 사이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그는 “다른 제3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답변하였다.(2014년 11월 21일 2차 인터뷰 중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양면성은 중국의 검열제도(심사제도)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현재 중국은 시나리오 단계와 상영 단계에 걸쳐 두 단계의 사전사후 심사제도가 있다. 현재 중국의 영화 관련 기본법규는 2001년 제정된 〈영화관리조례(電影管理條例)〉를 근간으로 집행되고 있는데, 제25조에는 검열의 10가지 원칙을 제시하면서, 제4항 “중화민족단결을 저해하는 영화”와 제5항의 국가종교정책에서 “사교(邪敎)나 미신을 퍼뜨리는 행위”를 엄격히 금하고 있다.

 

영화에서 아래 사항은 금지된다.

첫째, 헌법 등 기본원칙 준수 위반.
둘째, 국가통일과 주권 및 영토 보전 위반.
셋째, 국가기밀과 안전위반.
넷째, 민족단결 저해.
다섯째, 국가종교정책 위반.
여섯째, 사회질서 유지 위반.
일곱째, 음란폭력조항 위반.
여덟째, 비방과 권리 침해.
아홉째, 공중도덕과 민족문화 보호 침해.
열 번째, 법규 준수 위반.

 

특히, 현재의 중국/티벳 사이의 불안정한 정치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 페마 감독은 인터뷰에서, “티벳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심사제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부분에서 표현이 불가능하다. 먼저, 시나리오를 자기 식으로 분명하게 작성한 후, 심사제도를 고려하면서 다듬는다. 그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의 예술세계와 표현방식을 만들어낸다”고 언급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늙은 개〉는 심사제도를 고려하여 감독본과 상영본 두 가지 판본을 준비했다. 당시 한국의 서울디지털영화제에서 상영될 때에는 감독판을 상영했다”고 밝히고 있다.(2014년 10월 7일 1차 인터뷰 중에서)

 

 중국/티벳이 독립문제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의 영화는 티벳자치구에서 환영받는 영화이면서, 중화민족단결을 강조하는 중국 정부에서도 환영받는 그런 영화가 존립할 수 있겠는가. 양쪽에서 모두 좋아할 만한 영화라는 것은 결국 역설적으로 양쪽에서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으며, 그것이 이중신분을 가진 페마 체덴 감독의 고뇌이며, 이러한 예술적 고뇌가 그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늙은 개〉에서처럼 중원 한족의 이주와 물질주의 가치관을 비판한 정치개입적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고, 때로는 〈오색신전〉과 같이 중국 정부의 민족단결 이데올로기가 겹쳐지는 주선율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 시계추 같은 진자운동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 페마 체덴 (萬瑪才旦, Pema Tseden; 1969~ )

 

 중국 칭하이(青海) 하이난티벳자치주(海南藏族自治州)에서 태어났다. 티벳인으로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이다. 티벳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주로 연출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서북민족대학과 베이징영화대학(전영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유혹(誘惑)>이라는 소설로 하이난티벳자치주 제1회 문학작품창작상 2등상으로 받았다. 1999년에는 <자리()>라는 소설로 제5회 중국현대소수민족문학창작 신인 우수상을 받았다. 2002년에는 단편영화 <고요한 마니석>(靜靜的嘛呢石)을 연출하여 대학생영화제 제4회 경쟁부문 드라마 우수상을 받았다. 2004년에는 35mm 칼라영화 <초원>(草原)을 연출하여 제3회 베이징영화대학 국제학생영상작품전 중국학생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장편 <고요한 마니석>을 선보였다. 2008년에는 다큐멘터리 <바옌카라의 눈>(巴颜喀拉的雪)을 연출했고, 2011년에는 <올드 독>(老狗)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부르클린영화제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했다. 2014년 연출한 <오채신전>(五彩神箭)은 제8FIRST청년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2015년 연출한 <타로>(塔洛)는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며, 52회 대만 금마장에서 최우수감독상, 최우수 극본상과 최우수 극영화상 등에 동시에 노미네이트됐다.

 

 

출간 예정작 소개

<(가제)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원제: 嘛呢石静静地敲)

 

  티벳은 자신이 나고 자라난 공간이자 역사이자 삶이다. 고유한 자신만의 전통을 지켜오던 자신의 고향이 중국이라는 이름과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을 때, 그 전환의 과정을 소설과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로 기록하며 창작하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활불의 전통, 그러나 인민폐를 앞세워 들이닥치는 한족의 문화로 인해 벌어지는 변화들을 바라보는 현실과 상징이 녹아 있다.

  특히 그의 소설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는 동명의 영화로도 각색된 바 있다. 단편 표제작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를 비롯하여 모두 10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소설은 우리를 신비한 티벳의 세계로 데려간다. 마치 인류 문화의 시원으로 향하는 문처럼 거기에는 스펙터클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삶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근원적 물음이 있다. 그러나 소설은 결코 진지함에 매몰되지 않는다. 작가는 영화 연출의 솜씨를 뽐내듯 물 흐르는 듯한 대화의 중첩과 생생한 묘사로 잔잔하게 오늘날 티벳인에게 들이닥치는 삶의 변화를 그려낸다. 티벳인의 삶과 죽음이 거기에 있고 종교와 사상이 있고 또 일상이 녹아들어 있다. 한국 독자에게 한 번도 소개된 바 없는 티벳 소설은 각박한 경쟁의 삶 속에서 심신이 지쳐 있는 이들에게 작은 안식과 휴식을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청년감독 열전 - 10점
강내영 지음/산지니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⑦에서 계속 >>



 

Posted by 비회원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② 

 

 

 

산지니에서는 중국 티벳 출신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페마 체덴의 소설 작품집(원제: <嘛呢石静静地敲>)을 준비 중입니다. 페마 체덴은 최근 영화 활동을 주로 하고 있지만, 그의 예술적 근원은 소설로부터 시작됩니다. 그에게 있어 영화와 소설은 둘이 아닌 하나로 통하는 길이니까요.

 

총 7회 연재될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는  2016년 출간된 <중국 청년감독 열전>(강내영 지음)에 실린 글입니다. 이를 통해 페마 체덴의 소설집 출간 전, 그의 작품 세계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페마 체덴(Pema Tseden)이냐,

완마차이단(萬瑪才旦)이냐

중국 티벳감독의 어떤 이름 

 

 페마 체덴 감독은 특수한 지점에 서 있다. 스스로 티벳영화를 호명(interpellat ion)하지 못했던 과거의 영화와는 달리, 티벳을 배경으로 티벳인 배우와 함께 티벳인 스스로 자신의 문화정체성을 호명하며 티벳어로 발화(發話)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티벳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페마 체덴 감독과 그의 작품에는 ‘티벳영화’로서의 어떠한 내용과 주제의식을 표출하고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티벳영화’는 사회맥락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이 장은 페마 감독과 그의 ‘티벳영화’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중국 베이징과 부산을 오가며 만난 세 번에 걸친 최근의 교류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시작되었다.

 

 지난 2014년 10월 부산국제영화에서 처음 그를 만났다. 그가 연출한 다섯 번째 장편영화 〈오색신전(The Sacred Arrow)〉이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서 방영되었고, 그날 GV(Guest Visit) 담당자로 그와 첫 번째 만남을 가졌다. 그는 페마 체덴(Pema Tseden) 혹은 완마차이단(萬瑪才旦),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페마 체덴이 좋으냐, 완마차이단 이름이 더 좋으냐”라는 첫 질문에 그는 조용히 웃으며 둘 다 ‘나’라고 답했다. 이것이 그와의 첫 만남이었다. 이 장에서는 완마차이단이라는 중국어로 음역된 이름보다는 원래의 티벳 이름인 페마 체덴을 공식적인 감독명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본격적인 첫 인터뷰는 2014년 10월 7일 12시 부산 센텀호텔 앞에서 진행되었다. 그가 감자탕을 좋아한다고 해서 둘이 감자탕을 먹은 후, 가을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해운대 모래사장을 같이 걸으며 서로의 가족과 영화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페마 감독은 목소리가 작고 조용하고 신중한 성격을 가진 문인형 인물이었다. 실제 그는 이미 40여 편의 소설을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다. 첫 인터뷰에서 그는 티벳에 관한 나의 질문에 말을 아끼거나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살짝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식의 독특한 화법으로 답했다. 그날 〈오색신전〉 GV가 시작되었을 때에, 관객들은 예민한 티벳 관련 정치와 전통문화에 대해 쏟아지는 질문을 하였지만, 그는 역시 말을 아끼고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않으며, 그저 “영화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다”는 답변을 하였다.

 

 두 번째 만남은 2014년 11월 21일 중국 베이징에서였다. 베이징전매대학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대학생영화제 참석차 베이징에 갔을 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베이징영화학원 건너편 커피숍 위앤딩(園丁)에서 간단한 2차 인터뷰를 한 다음, 우리는 시내에 있는 티벳전통식당에서 그의 영화 스태프(티벳인)와 만나 티벳음식과 술을 먹었다. 나와는 중국어로 대화하고 스태프들과는 낯선 티벳어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새삼 그의 이중신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이 그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작정하고 예민한 정치, 문화, 종교 문제를 질문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티벳 전통 불교문화와 사회주의 종교관은 서로 충돌하지 않느냐, 가난하고 궁핍한 불교 신정체제보다는 사회주의 현대화가 경제적으로는 더 풍요롭고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은지, 또 티벳 독립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심지어 취중을 빌려 중국과 티벳 사이에 갈등이 일어난다면 당신의 조국은 어디인지와 같은 예민한 질문도 던졌다. 그는 항상 평상심을 잃지 않고, 가끔 손목에 찬 불교염주를 만지기도 하면서 조용히 웃으며 “영화 속에서 표현한 바와 같다”는 짧은 답변을 하였다.

 

 세 번째 만남은 2015년 1월 10일부터 이틀간 서울 아트씨네마에서 중국영화포럼이 주최한 <티벳영화: 페마 체덴 특별전>의 ‘관객과의 대화’를 맡음으로써 이루어졌다. 페마 감독은 상영전을 마친 다음 날 1월 12일 한국외대 대학원 브릭스홀에서 열린 ‘제2회 중국영화포럼 전국학술대회’에서 <페마 체덴의 소설과 영화> 섹션에 참석하였는데, 그때 발표자와 방담자로 네 번째 만남을 이어갔다. 페마 감독과의 네 번에 걸친 만남과 인터뷰 속에 ‘티벳영화’에 대한 학술적 고민이 본격화되었고,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이 되었다.

 

 ‘티벳영화’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세계영화사적으로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과연, ‘티벳영화’란 존재할 수 있는 용어일까, 또 ‘중국영화’와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 것일까. 페마 감독은 왜 ‘티벳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으며, 티벳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또한, 중국/티벳 관계가 갖는 외재적(外在的) 현실이 ‘티벳영화’와 중첩되어 의미화되는 우리 시대에 페마 감독의 영화와 예술정신은 무엇을 지향하는 것일까. 누군가 폄하한 대로 중국 정부의 민족단결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소수민족 출신의 중국영화일까, 아니면 티벳의 정신과 문화를 내세워 현재 티벳의 정치적 종교적 염원을 표출해내는 티벳영화일까.

 

 따라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중국 티벳 출신 페마 체덴 감독의 작품을 작가주의(Auteurism) 관점에서 접근하여 분석하는 동시에, 중국/티벳과의 외부적 환경 속에 ‘티벳영화’가 독해되고 소비되는 방식을 사회맥락적(context) 방법론으로 분석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작가주의(Auteurism)란 영화제작의 주체로서 감독을 중심에 두고 감독의 작품 속에 드러나는 일관된 주제, 세계관, 스타일에 주목하는 연구이다. 1950년대 트뤼포 감독 등 프랑스 누벨바그 그룹에서 시작한 주장으로, 구조주의적 현대영화이론에 의해 주관적 비평이란 비판을 받으면서 과학적 비평담론으로는 다루지 않고 있다. 콘텍스트 분석은 영화와 그것을 둘러싼 사회맥락적 의미를 분석하는 비평방법론이다. 이 글에서는 작가주의 입장에서 페마 체덴 감독과 작품을 고찰하고, 동시에 사회맥락적으로 분석하는 두 가지 층위의 방법론으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페마 감독의 영화 역정을 살펴본 후, 대표적인 장편영화 세 편을 집중 분석하고자 한다. 또한 중국 현지와 한국의 티벳영화 관련 문헌자료를 참조하고, 3회에 걸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페마감독과 그의 작품이 갖는 주제의식과 사회맥락적 의미를 분석하고자 한다.

 

 페마 감독 이전에도 티벳과 관련한 영화들은 있었다. 크게 ‘서구’, ‘중국 대륙’, ‘티벳 출신’에서 만든 영화로 대별할 수 있다. 먼저, ‘서구’에서 만든 티벳 관련 영화로는 1997년 프랑스의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 배우 브래드 피트가 출연했던 〈티벳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과 같은 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연출한 <쿤둔(Kundun)> 등이 있다. <티벳에서의 7년>은 실존 인물인 오스트리아 등반가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의 실화를 바탕으로, 1950년 중국의 무력침공과 1959년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에 이르는 역사적 사실을 영화로 재현하고 있으며, <쿤둔>은 인도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운 제14대 달라이 라마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중국 대륙’에서는 티엔주앙주앙 감독이 1986년 연출한 <말도둑(盜馬賊)>과 2004년 연출한 <드라무(德拉姆)>, 1997년 펑샤오닝(馮小寧) 감독이 연출한 <홍하곡(紅河谷)>, 청년감독 루촨이 2004년에 칭하이성에서 산양 밀렵군과 맞서 싸우는 티벳자경대를 다룬 중국어 영화 〈커커시리(可可西里)〉 등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은 모두 티벳인이 아니라 비(非)티벳인이 관찰자적 시선으로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본격적인 ‘티벳영화’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한편, ‘티벳 출신’이 만든 영화 중에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영화는 티벳계 부탄 영화감독인 키엔체 노르부(Khyentse Norbu)를 들 수 있다. 부탄의 스님이자 영화감독인 키엔체 감독은 티벳 불교의 환생자인 린포체로 알려져 있으며, 1999년 티벳어로된 부탄 영화 〈컵〉을 만들었으며, 2012년도에는 〈바라: 축복(Vara: A Blessing)〉을 연출하여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바 있다. 2005년에는 인도의 티벳 망명자 공동체를 다룬 리투 사린(Ritu Sarin)의 영화 〈꿈꾸는 라사〉가 있었고, 페마 감독의 〈늙은 개〉 촬영감독이었던 손타르 지알이 페마 감독의 영향 속에 2011년 자신의 첫 장편영화 〈태양의 길목〉을 연출하였고, 2012년에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성장해서 미국 뉴욕에서 활동 중인 텐진 체탄 초클리 감독의 〈아버지의 땅〉이 개봉되었다. 최근에는 2008년 티벳 다큐멘터리 〈공포를 극복하고(Leaving Fear Behind)〉를 만들다가 촬영지에서 체포되어 6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톤툽 원첸 감독이 복역을 마치고 2014년에 석방되어 새로운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들 영화 또한 중국 외부에서 만든 영화가 대부분이며, 이에 비해 페마 감독은 티벳을 배경으로 티벳인 스스로가 자신의 문화정체성을 표현한 티벳어 영화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본격적인 첫 ‘티벳영화’라는 영화사적 의의는 있지만, 현재 페마 체덴 감독과 ‘티벳영화’에 대한 학술적 선행연구는 그다지 많지 않다. 국내에서는 중국영화연구자 이병민이 2014년 티벳독립과 연관된 관점에서 쓴 「완마이단 영화의 문화의 재구성 고찰」과 인도에서 활동 중인 티벳 문화평론가 텐징 소남(Tenzing Sonam)이 분석한 「페마 체덴과 티벳 영화의 출현」이 최근의 성과이며, 중국 현지에서도 페마 감독의 영화 개봉 시기에 맞춰 〈전영예술(電影藝術)〉이나 〈당대전영(當代電影)〉 등에서 몇 편의 소개글이 있을 뿐이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중국영화포럼학회’와 ‘(사)한국씨네마테크협의회’에 의해 2015년 1월 10일부터 2014년 1월 11일까지 서울아트씨네마에서 페마 체덴 감독 영화상영전이 열렸으며, 본격적으로 한국에서도 ‘티벳영화’에 대한 소개가 시작되었다. 이번 상영전에서는 그의 영화 7편(단편 2편, 장편 5편)이 상영되어 한국 관객들과 만났다.

 

 이러한 점에서, 이 글은 사실상 최초의 티벳 영화감독이라 할 수 있는 페마 체덴과 그의 작품 전반을 학술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문화의 종다양성 보존과 문화정치학적 개입을 하는 실천적 연구라는 측면에서 의의가 있다 할 수 있다. 특히, 중국/티벳이 갖고 있는 정치적 현실이 영화에 중첩되어 투영되는 외재적 상황 속에서, 중국이나 티벳이 아닌 한국인이라는 자유로운 입장에서 ‘제3자적 글쓰기’가가능하다는 점도 이 글이 갖는 의의라 할 수 있다.

 

 

● 페마 체덴 (萬瑪才旦, Pema Tseden; 1969~ )

 

중국 칭하이(青海) 하이난티벳자치주(海南藏族自治州)에서 태어났다. 티벳인으로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영화감독이다. 티벳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주로 연출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서북민족대학과 베이징영화대학(전영학원)을 졸업했다. 1997년 <유혹(誘惑)>이라는 소설로 하이난티벳자치주 제1회 문학작품창작상 2등상으로 받았다. 1999년에는 <자리()>라는 소설로 제5회 중국현대소수민족문학창작 신인 우수상을 받았다. 2002년에는 단편영화 <고요한 마니석>(靜靜的嘛呢石)을 연출하여 대학생영화제 제4회 경쟁부문 드라마 우수상을 받았다. 2004년에는 35mm 칼라영화 <초원>(草原)을 연출하여 제3회 베이징영화대학 국제학생영상작품전 중국학생 최우수 단편상을 수상했다. 2005년에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장편 <고요한 마니석>을 선보였다. 2008년에는 다큐멘터리 <바옌카라의 눈>(巴颜喀拉的雪)을 연출했고, 2011년에는 <올드 독>(老狗)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부르클린영화제 최우수영화상을 수상했다. 2014년 연출한 <오채신전>(五彩神箭)은 제8FIRST청년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2015년 연출한 <타로>(塔洛)는 베니스영화제 경쟁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며, 52회 대만 금마장에서 최우수감독상, 최우수 극본상과 최우수 극영화상 등에 동시에 노미네이트됐다.

 

 

출간 예정작 소개

<(가제)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원제: 嘛呢石静静地敲)

 

  티벳은 자신이 나고 자라난 공간이자 역사이자 삶이다. 고유한 자신만의 전통을 지켜오던 자신의 고향이 중국이라는 이름과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변모하고 있을 때, 그 전환의 과정을 소설과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로 기록하며 창작하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활불의 전통, 그러나 인민폐를 앞세워 들이닥치는 한족의 문화로 인해 벌어지는 변화들을 바라보는 현실과 상징이 녹아 있다.

  특히 그의 소설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는 동명의 영화로도 각색된 바 있다. 단편 표제작 마니석, 고요히 두드리다를 비롯하여 모두 10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소설은 우리를 신비한 티벳의 세계로 데려간다. 마치 인류 문화의 시원으로 향하는 문처럼 거기에는 스펙터클한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삶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근원적 물음이 있다. 그러나 소설은 결코 진지함에 매몰되지 않는다. 작가는 영화 연출의 솜씨를 뽐내듯 물 흐르는 듯한 대화의 중첩과 생생한 묘사로 잔잔하게 오늘날 티벳인에게 들이닥치는 삶의 변화를 그려낸다. 티벳인의 삶과 죽음이 거기에 있고 종교와 사상이 있고 또 일상이 녹아들어 있다. 한국 독자에게 한 번도 소개된 바 없는 티벳 소설은 각박한 경쟁의 삶 속에서 심신이 지쳐 있는 이들에게 작은 안식과 휴식을 전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청년감독 열전 - 10점
강내영 지음/산지니

 

 

 

중국영화의 특이한 빛 - 페마 체덴과 티벳영화 ③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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