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별과 우물입니다.

10월 초, 저는 서울로 교육을 다녀왔었는데요.

오늘은 그에 관한 얘기를 드려볼까 합니다. 

 

 

제가 듣게 된 <출판 A to Z-디자인과 제작>이라는 수업은 기업 재직자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무료 출판아카데미의 과정 중 하나인데요. 디자인과 제작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좋은 교육들이 많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확인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10/5-7일, 총 3일 동안 진행된 수업은 6시간, 6시간, 8시간으로 진행이 되었는데요.

1일차,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강무성 도서출판 루페 대표
2일차, 윤종윤 문학동네 미술부장/유지원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겸임교수
3일차, 김진섭 책공방북아트센터 대표

 

강의를 맡아주신 분들의 라인업이 엄청난 것 같죠? //_//

첫 번째 강의를 맡아주신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님은 '책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런 문장을 인용해 주셨습니다.

독서는 정보입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보다 확장된 경험이고, 고유한 경험이며, 따라서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책의 물질성을 오감으로 느끼는 독서는 디지털 기술에 의해 대체할 수 없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서점을 찾고, 다양한 표정의 책들을 살피고, 시선을 사로잡는 책을 만나며, 그 책의 무게와 질감을 느끼고, 보다 깊은 만남에 대한 기대와 함께 책을 사서 나오는 길은 결코 무의미한 수고이거나 고통이 아니다.

-오창섭, '책맹'들의 착각 中

 

정민영 대표님은 이전에 강무성 루페 대표님께 디자인을 배우셨다고 들었는데요.

그래서인지 책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식이 비슷하신 것 같았습니다.

디자인하기 전에 왜 책이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그 점을 알아야 디자이너가 의도하는 바를 분명히 전달하고, 무언가를 삭제한다거나 추가할 때 분명한 기준점을 잡을 수 있다는 겁니다.

게다가, 강무성 대표님은 무려 활자 인쇄로 출판이 되던 시절에서부터 근무하셔서 더더욱 책에 대한 소중함을 몸으로 느낀다고 하셨는데요. 그때는 인쇄소가 마치 거대한 도서관 같아서 활자들이 ㄱ부터 ㅎ까지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을 한 권 만들 때마다 여러 사람들이 투입되어서 문장에 해당하는 글자를 찾아 판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배열했다고 하는데요. 정말 엄청나죠?

그런 수고로움을 거쳐서 나온 책이 얼마나 소중했을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열심히 강연해주시는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님(좌)과 유지원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겸임교수님(우)]

 

첫째 날이 기본에 충실한 강연이었다면, 둘째 날은 조금 더 다채로웠는데요.

문학동네 미술부장님은 실무 사례를 중심으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말씀해주시고, (최종까지 결정된 시안이 사진 저작권료 때문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에피소드는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타이포를 연구하고 계신 유지원 교수님은 조금 더 재밌게 설명하기 위해 갖가지 소품들을 준비해서 직접 붓으로 글씨를 써주시는 등 퍼포먼스를 해주셨습니다. (보시는 사진은 학교 건축물로 타이포를 표현한 것이라고 하네요)

 

    

셋째 날은 정말 특별한 책들을 많이 봤는데요. 우리가 흔히 보는 책의 크기로 만드는 책은 거의 없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BOOKTOOLS 라는 책은 말 그대로 책도구를 모아놓은 책입니다. 사진가를 섭외해 도구를 하나하나 깔끔하게 찍고 책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출판 관련 책이 많이 없는 것에 책임감을 느끼고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계신다고 하네요.

간단하게만 말씀드렸지만, 3일 동안의 강의 모두 좋은 내용이었습니다. 열심히 설명해주셔서 듣는 분들도 모두 즐겁게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좀 더 많은 수업을 듣고 싶네요.

오늘도 긴 포스팅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Posted by 비회원

 

 

어제였죠? 10월 29일(목) 한겨레신문 최재봉 기자님의 강연을 다녀왔습니다.

퇴근 후라 꽤 날이 차가웠는데도 신문 광고를 보고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하셨더라고요.  

 

강연의 주제는 '신경숙 작가 표절과 문학 권력'이었습니다. 

지난 6월 신경숙 작가의 표절 이후

현재는 문학의 권력에 대한 쟁점으로 옮겨갔는데요. 

 

이에 대한 최재봉 기자님의 날카로운 강연이 이어졌습니다.  

강연은 크게

1. 요산 김정한 선생의 작품세계 - 참여적 사실주의 문학

2. 신경숙 작가의 표절 그 이후 - 문학 권력

의 내용으로 진행됐습니다.

 


 

1. 요산 김정한 선생의 작품세계  

 

   최 기자님께서는 오랜만에 부산에 오면서 요산 김정한 선생의 작품을 다시 읽으셨다고 합니다. 역시 우리 문학의 참여적, 비판적 사실주의, 진보 문학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작가라는 것을 느꼈다며 강연의 운을 띄우셨습니다.

 

   특히 <사하촌>과 절필 이후 문단 복귀작인 <모래톱 이야기>를 거론하셨는데요, 먼저 <사하촌>에서는 소작농이 된 사람들의 핍박받는 현실과 말미에 이러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래톱 이야기>에서는 담임 선생님이 주인공 소년 건우에게 하는 말, 건우 할아버지의가 자신의 땅을 유력자들, 권력자들에게 뺏기고 시달리는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대목 등에서 민중의 처지와 삶을 보여주는 요산 선생의 문학 정신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부분의 글을 읽어보면 가난한 사람들이 핍박받는 현실에 분개하는, 바로 잡으려고 애쓰는, 저항적인 문학을 볼 수 있다고 설명하며 소설 속의 사실적인 부분에 대해 강조 하셨습니다.  

 

   "1966년, 요산 김정한 선생의 문단 복귀와 창작과 비평의 창간"

 

   요산 선생은 36년 등단 후, 40년 이후 절필. 66년에 다시 복귀를 하셨습니다. 1966년 그 해,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가 창간 되는데요, 요산 선생께서 참여적 사실주의 문학을 일궈가는 시점과 창비의 참여 진보적 문학과의 시점이 동일하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요산 선생이 문단에 복귀하며 쓴 작품들은 가라앉은 참여 문학을 다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고 이후 70년대부터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는 작가들,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진보적이고 참여적인 문학이 든든하게 참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창비가 있었고, 창비는 그런 문학들을 적극적으로 개제, 출판, 착가 후원을 왔습니다.

  

2. 신경숙 작가의 표절 그 이후-문학 권력 

 

  내년이죠? 2016년은 창비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50주년을 맞이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던 창비. 그러던 와중에 최근에 여러가지 상황들이 벌어진 셈이죠. 최 기자님께서는 신경숙 작가의 표절 그 이후, 지금 현재 상황이 어떻게 와 있는지 설명하시며 메이저 출판사(문학동네, 문학과 지성, 창작과 비평)의 문학 권력을 비판하셨습니다. 그중 특히 창비에 대해 날 선 비판을 이어가셨는데요, 특히 창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진보적이고 참여적인 문학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창비 내부의 아군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서 신랄하게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신경숙 표절 행위가 창비의 문학 권력으로 이동한 데는  창비의 책임이 크다고 설명하셨는데요, 그 이유는 크게 3가지로 정리하셨습니다.

 

- 백낙청 선생의 1인지배체제의 지속화가 낳은 권위주의

- 작가 신경숙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두둔

- 창비의 진보적, 비판적 문학관의 포기

 

   신경숙 사태 이후 문학동네(이하 문동) 가을호에서 작가 토론회(좌담)를 열었습니다. 사회는 신영철 평론가가 봤는데, 그의 발언 중 "출판사들 사이의 교집합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최 기자님께서는 이 부분을 해석하자면 출판사들 사이의 차이점이 크게 없어졌다는 것인데 그것은 문동이나 문학과 지성사(이하 문지)가 창비 쪽으로 다가온 것이 아니라 그 반대라고 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 문제는 창비는 문학주의, 문학지상주의, 문학을 위한 문학과 같은 태도가 아닌 문학에 담기는 내용. 그 고유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색깔을 잃어버렸다는 점에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미학과 메시지, 문학은 양쪽을 같이 가져가야 한다."

 

    현재 문학은 너무 한 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창비는 조금 더 현실에 참여적이고 전투적으로 다가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거론하며, 미학적 완성도 치우쳐서 커다란 것(사회, 인류)들을 놓쳐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든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최 기자님께서는 이런 점에서 올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작가는 논픽션을 쓰는 작가로 전쟁,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 등 인류사의 큰 사건들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접근하는 방식은 목소리의 소설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관련자들을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하고 그 중에서 그 목소리들을 꺼내서 자기 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만약 이런 작품이 노벨상을 받기 전에, 한국 평론가들이 봤다면 뭐라고 이야기했을까? 미안하지만 '그건 문학이 아니다. 언론이다'라고 이야기 했을 것 같다고 답하셨는데요. 이 작가의 작업이 단순한 소재주의가 아니라 그것을 대단히 문학적인 터치와 소화를 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작가가 상상력으로 꾸려내는 것보다 더 절박하고 아픈 목소리들을 끄집어 냈고 작가가 자기 스타일을 내서 소화를 합니다. 스타일, 소재, 현실 등 이런 것들이 문학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글쓰기를 하고 있는 셈이죠.

 

   우리는 '문학적이다'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최 기자님께서는 직접 현실 속에 들어가 마주보는 르포와 같은 글쓰기의 필요성을 언급하셨습니다. 현재, 르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이 꽤 많지만 문제는 우리 문화에서는 이것을 문학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신경숙 표절 이후, 지금 한국 문단은 어디에 와 있는가?

그리고 창비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앞으로 창비가 살 길은 창비에 비판적인 사람들을 수용해서 편집위원들이 다시 짜는 것이라고 말하며 창비 이외의 좋은 문학 잡지들을 소개하셨습니다. 먼저 <실천문학>은 80년대 초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자신의 출발에서 지켜나가야 하는 것들을 놓치고 있지 않다고 하셨고, 이어 부산에서 나오는 계간지인 <오늘의 문예비평>을 거론하셨습니다. 이 두 권의 잡지를 이야기 하시며 창비나 문학동네만큼 유명하고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좋은 잡지들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잡지들을 응원하고 구독해주며 호응해주는 것이 창비와 같은 메이저들을 자극하고 본연의 길로 돌아오게 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015년 현재, 우리 사회는 80년대 못지않은 위기와 절망의 시기라 생각한다. 문학이 그것에 비하면 너무 태평스럽고 한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아쉬운 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창비가 정신을 차리고, 제자리로 돌아와서 진보적이고 참여적인 작품의 큰형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문예비평 2015.가을 - 10점
산지니 편집부 엮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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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신경숙 표절 논란 두 달’ 토론회…창비·문학동네 침묵에 쓴소리

“1894년 갑오경장 이후 폐지된 과거제를 기다리면서 옛 문장 읽고 쓰기에 붙들려 살았던 100년 전 유생들은 여러모로 지금의 문학장을 닮았다. (…)다른 몸체로 옮겨가되 문학의 위대한 속성은 보존해야 한다. (…)그러니 겨우 신경숙쯤으로 징징거리지 말고 새로운 변화를 향해 야망을 품자.”(임태훈 평론가)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이 촉발된 지 두달여 만인 26일 ‘리얼리스트’ ‘실천문학’ ‘오늘의 문예비평’ ‘황해문화’ 4개 문예잡지가 공동 토론회를 열었다. 논의는 두달간 침묵한 창비와 문학동네를 비롯한 문학장의 현재를 되짚고, 새로운 몸, 새로운 개념의 문학이 필요하다는 요구로 모아졌다.

소영현 ‘21세기 문학’ 편집위원은 사태 이후 가을호 계간지들의 반응을 검토한 결과 “문학장의 일원들이 지난 두 달여간의 사태 추이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듯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문학장의 미래를 위해선 ‘성역으로 지켜지는 획일적 문학관’이 변해야 한다며 장르문학에 대한 홀대, 흐릿한 순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끝내 고수하는 태도를 비판했다. 그는 “좋은 문학을 선별하고 판정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 좋은 문학인지 그 판정 기준은 어떻게 구축돼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본격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태훈 ‘말과 활’ 편집위원은 “현행 문학제도를 이어갈 토대 붕괴는 시간문제”라며 ‘새로운 문학의 몸’을 상상해야 한다고 봤다. 그 대안으로는 크라우드 펀딩, 뉴스 펀딩 등을 통한 새 출판 생태계 구축, 나름의 미학적 성취를 이룩하고 있는 게임과 웹툰의 몸을 빌린 ‘다른 문학’ 등을 들었다. 

임씨는 두달 간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은 ‘메이저 문예지 편집위원’에 대해서는 “이런 대응으로 세상을 휘몰아치는 말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 리 없다. 느리든 빠르든 속도는 메시지다. 문학장 바깥의 속도를 영민하게 감지하고 필요한 메시지를 가속 또는 감속시킬 수 있는 능력의 결핍은 비평계 전반에서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비평가 개개인의 능력 차라기보다는 둔감한 제도와 자족적 문화의 한계”라며 “창비 가을호가 딱 이 사례”라고 말했다.

박형준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은 “창비, 문학동네에 요구되는 것은 ‘문학권력’이어서 미안하다는 반성이 아니다. 자신들의 물적·인적 기반과 파급력을 통해 수행·지향했던, 한국문학의 보편화·보편성에 대한 기획과 전략이 실패했을지 모른다는 것을 자성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신경숙 사태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직접 현실과 조우하지 못하는 많은 작가와 비평가가 어떻게 ‘한국문학을 망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했다. 이강진 평론가는 “창비와 문학동네는 전혀 양립할 수 없는 각각의 논리로 신경숙 상찬에서 합의했다. 왜 그렇게 접근하는지, 서로 비판했다면 기묘한 합의는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보편적 사고라는 환상과 강박을 깨고 ‘끼리끼리’ 문화가 강화돼서 자기들 입장을 확고하게 내세워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창비가 내놓은 ‘내용 없는’ 가을호에 대해 토론 참가자들은 회의적이었다. 임씨는 “창비 얘기를 듣고 기운이 빠졌지만, 앞으로 하는 게 뭔지 상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씨도 “창비 가을호 목차를 보면서 ‘내가 왜 이런 걸 하고 있나’ 회의도 들었다. 정제된 입장을 기다리던 독자로서 착잡함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여란| 경향신문 | 201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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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예비평 2015.가을 - 10점
산지니 편집부 엮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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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가을호 게재 윤지관 글에 비판 '한목소리'

"감정적 대응보다 지속적 논의가 중요...창비 공과 구별해야"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게재된 윤지관 평론가의 신경숙 옹호글에 대해 부산 지역 문인들의 비판적 목소리가 나왔다.

1일 출판계에 따르면 부산 지역 문단을 대표해온 계간 문예지 '오늘의 문예비평'(산지니)은 통권 98호째를 맞은 가을호에 특집좌담 '신경숙이 한국문학에 던진 물음들'을 실었다. 전성욱 편집주간의 사회 아래 소설가인 조갑상 경성대 교수와 소설가 김곰치, 시인 최영철, 평론가인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가 지난달 21일 대담한 내용(이하 직함 생략)이다.

좌담에선 표절이냐 아니냐는 논란을 이어가기보다 이번 사태가 노출한 한국문학의 여러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제언들이 잇따랐다. 그러한 맥락에서 표절 논란 확산을 촉발한 창비 가을호 편집 방향과 백낙청 편집인의 페이스북 글에 대해 아쉽다는 지적과 비판들이 제기됐다.

김곰치는 "충격적인 것은 창비가 표절사건이 벌어진 후 이를 '신경숙의 작품이 더 뛰어나다'면서 무마하려했다는 점"이라며 "제가 읽은 '전설'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에 비하면 전설은 참 허접하다. 윤지관 평론가는 '전설'이 더 뛰어나다 했는데, 믿을 수 없는 비평적 언사"라고 지적했다.

전성욱도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전설'이 '우국'보다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이뤘다는) 윤 평론가의 글은 평론가로서 식견을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며 "설득력이 없으며,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전설'의 문학적 성취를 표절 비난에 대한 반박의 주요 근거로 삼았던 윤지관의 논거를 약화시키는 지점이다. 앞서 문학과지성사가 발간하는 '문학과사회' 가을호에서 김영찬 평론가 또한 "'전설'은 문학적 성취에 있어 실패한 작품에 가까우며, 성공한 표절은 표절이 아니라는 이상한 결론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설'의 표절 의혹에 무게를 더하는 새로운 진술도 나왔다. 최근 '우국'을 읽어봤다는 김곰치는 "표절은 확실하다"며 "대중 앞에 나서서 작가로서 거의 죽을 정도의 서러운 결단으로 고백을 하든지 신상발언을 해야 하는데, 신경숙의 대응은 참으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가 표절의 정황 증거로 지목한 대목은 '전설' 속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라는 표현이다. 이는 창비가 '우국'에 비해 '전설'의 뛰어난 대목이라고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앞의 문장 흐름에서 이 말을 살려주는 서술적 근거는 없다. 깨끗하고 속되지 않다는 뜻의 '청일하다'는 말은 흔하게 쓰는 단어가 아니다. 서른 즈음에 참 맛깔나고 매력적인 한자어를 사용했군, 하고 신경숙의 단어 감각 하나는 인정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우국'의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청일함'이란 단어가 나온다. 너무 고약하다." (김곰치, 29쪽)

그러나 좌담 참석자들은 신경숙이 재충전해야 할 때 출판자본에 이끌려 자신을 소진한 측면에 무게를 뒀다. '표절' 의혹이 작가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또한 출판자본에 종속돼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공헌하는 비평가와 매체 등을 뜻하는 '문학권력'에 대해 일정 부분 창비와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의 책임을 지목하면서도 이들의 공과는 구별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구모룡은 "백낙청 선생이 상업주의적으로 신경숙을 띄운 것은 아니다"며 "백낙청 선생은 부유한 집안에서 리얼리즘을 주장했는데, 신경숙은 여공 출신 작가로서 성공을 이뤄냈다. 이점 때문에 백낙청이 신경숙을 한 수 접어두고 본 것이 판단착오"라고 주장했다.

전성욱은 "(문단이) 그동안 애써 살피지 못했던 어떤 진실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충격적으로 드러났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며 구체적으로 주류 문예지와 출판사, 신화화한 작가와 작품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그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진실을 어떻게 보존하느냐가 관건이며, 지금까지 이를 통해 부당하게 이익을 얻어온 사람들을 견책하고 그들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중배| 연합뉴스 | 201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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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예비평 2015.가을 - 10점
산지니 편집부 엮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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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사태와 문학권력 논란 여파로 비평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오길영(왼쪽)과 서영인의 신작 평론집은 비평의 위의를 지키고자 하는 고투를 보여준다.


표절사태가 부른 비평 위기론
공감 가장한 정실비평이 문제
회의와 불신 속에서 희망 찾기



힘의 포획
오길영 지음/산지니·2만5000원

문학의 불안
서영인 지음/실천문학사·2만원

“요즘 신인들의 글을 보면 다들 너무 똑똑하다. 이미 문단에 나올 때부터 준비가 되어 있는 느낌이다. 어떻게 써야 등단을 하고 어떻게 써야 문학상을 받는지 영악하게 알고 있다. (…) 결국 선생님들의 시선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뜻이다. 그 시스템이 반백 년 넘게 문단을 지배하고 있다.”

“당신은 작가가 먹고살기 위해선 선생님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 당신이 은밀하게 감추고 싶어하는 현실, 그건 그 세계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는 어떤 방식으로든 평가하고 분류하고 선택과 배제를 계속하리란 사실이다. 그 시스템에서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 자는 당신의 분류법으로 ‘선생님’이다.”

앞의 인용은 작가 천명관이 격월간 문학잡지 <악스트> 창간호(7·8월호)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고, 뒤의 것은 평론가 손종업 선문대 교수가 <근대서지> 2015년 상반기호에서 천명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쓴 글이다. ‘선생님’이라 일컬어지는 문학평론가의 역할과 존재 의미에 대한 생각이 판이하게 다르다.

신경숙 표절 사태의 여파로 비평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팽배한 가운데 그래도 비평의 위의를 지키고자 하는 비평집 두권이 반갑다. 저자들은 최근의 표절 및 문학권력 논란 한가운데에서 자주 이름이 오르내렸던 이들이다.

오길영의 평론집 <힘의 포획>은 “지금 비평은 거의 대부분 ‘칭찬’의 비평”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비평(criticism)은 곧 비판(critique)”이라는 것이 그의 믿음이다. ‘공감의 비평’으로 포장된 정실비평과 주례사비평에 그는 비판적이다. 2010년에 쓴 ‘베스트셀러와 비평의 위기-신경숙론’은 지난 한달여 한국 문단을 달군 표절과 문학권력 논란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읽힌다. 신경숙의 두 소설 <엄마를 부탁해>와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대상으로 삼았는데, 그는 “두 작품 모두 나는 실망스럽다고 느꼈다”며 “신경숙은 (…) 이제 대중문학으로 완연하게 넘어갔다”고 쓴다. “아름답게 포장된 미문의 감상주의” “주인공들의 삶, 고통 속으로 작가의 시선이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표면만을 그린다”는 것이 그 근거다.

더 큰 문제는 이 작품들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이다. <창작과비평> 편집위원이던 임규찬은 <전화벨>을 가리켜 “‘청춘’이라는 식상하기 쉬운 소재에 남다른 소설적 육체와 창조적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평했고, <문학동네> 편집위원인 신형철은 <엄마를 부탁해>를 두고 “한국 특유의 가부장제 가족구조가 근대화, 산업화 과정과 만나면서 어머니라는 존재의 고유한 내면성을 말소해온 맥락과 그 결과를 냉정하게 반영”했다고 상찬했다. 그러나 오길영이 보기에 <전화벨>은 “소설의 구조를 지탱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입체적이지 못하고 작가의 감상적 세계인식을 전달하는 도구에 머”무르며 <엄마를…>은 “모성에 대한 어떤 새로운 인식도 독자에게 주지 않는다.” 안목 있는 비평가로 생각해 온 두 사람이 이런 글을 쓴 까닭을 그는 “작품 외적인 데”에서 찾는다. 출판상업주의에 대한 평론가의 종속이다.

서영인은 <문학의 불안> 서문에서 “상품으로서의 문학작품과 문학주의라는 이율배반 그리고 비평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밝힌다. 오길영과 마찬가지로 비평의 무기력 또는 일탈이 문학의 위기를 부추긴다는 판단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근거를 찾으려는 노력이 가상하다. 2000년대 젊은 작가들 소설에서 압도적 경향으로 자리잡은 ‘환상’에 대해 그는 이해는 하면서도 아쉬움을 표한다. 현실을 직시하는 대신 우회적·간접적 방식으로 접근하려는 이 태도가 “문학의 다양성이나 현실의 탐구라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치명적인 퇴행이 되는 것은 아닐까.” 쌍용자동차 문제를 파고든 르포 <의자놀이> 그리고 사형문제를 다룬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작가 공지영을 두고 “사회성과 대중성의 미묘한 접점에 서서 그 가치와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평하는 데에서는 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놓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느껴진다.

최재봉 | 한겨레신문 | 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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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포획 - 10점
오길영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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