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락한 문학의 자리에서

여전히 타협하지 않는 중견 비평가들에게 주목한다

근대 문학의 종언이 선언된 시대에, 비평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1991년 발간되어 25년간 결호 없이 독자들과 만나온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이 국내 중견 비평가들에 주목하는 책을 펴냈다. 위기를 맞았다면 비평의 미래가 될 신인 평론가들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왜 하필 ‘중견’ 비평가인가? 이러한 의문에 필자들은 명료하게 답한다.

“패기 넘치는 젊은 비평가들의 열의도 인정해주어야 하지만, 여전히 도저한 비평가의 자의식으로 활력 넘치는 중견 비평가들의 존재론은, 그 자체로 어떤 강력한 반시대적 전언이다. 우리가 주목하고 귀 기울이고자 한 것이 바로 그 전언이었다.” 

_머리말 중에서

여성문학에 천착해온 비평가들에서부터 진보적·자유주의적 성향의 평론가들까지, 『비평의 비평』은 여전히 문학의 장에서 활약 중인 진중하면서도 타협 없는 ‘불한당’들의 궤적을 포착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국 비평의 지형도를 그리며, 새로운 상상력을 싹틔워낼 우리 비평의 탄탄한 기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에서 젠더로 이행한 페미니스트 평론가 김미현

변화할 수 있는 세계 보여주며 대중과 소통하는 김용희

도입부에서는 여성문학과 신세대문학을 깊이 연구해온 두 비평가, 김미현과 김용희 평론가를 다룬다. 김경연의 「변온과 항온, 혹은 유동하는 ‘사이’의 비평」은 여성문학에 ‘올인’해온 김미현 평론가의 궤적에 주목한다. 2008년작『젠더 프리즘』에서 김미현은 페미니즘 ‘다시-보기’를 시도하면서 스스로의 비평행위를 심문한다. 여성에서 젠더로, 페미니즘에서 페미니즘 ‘이후’의 페미니즘으로 이행하며 김미현은 “현실을 민감하게 감각하면서 그 변화에 스스럼없이 몸을 내맡기”고 있다.

김필남은 김용희 평론가의 글을 「환(幻)의 글쓰기」라 정의한다. 현실·이성과 대립하는 ‘환’의 글쓰기는 독자를 “환상적인 세계, 꿈의 세계, 유혹에 빠지게” 한다.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김용희는 문학 평론은 물론 영화 평론, 소설 집필까지 나아갔다. 낡은 틀을 넘어서려는 소통의 노력을 통해 발견한 ‘환의 글쓰기’로 그녀는 완성된 형태가 아닌,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세계를 보여준다.


체제의 바깥을 꿈꾸며 문학의 전위에서 활동해온 

조정환, 김명인, 권성우

전성욱의 「유죄로서의 욕구, 이론과 신념」은 평론은 물론 노동해방문학 운동, 출판, 정치철학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온 조정환에게 주목한다. “지금도 나를 가장 강하게 사로잡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날 길을 알고자 하는 욕구”라는 조정환의 글을 인용하며 전성욱은 조정환에게 욕구란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활력”이라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조정환의 비평이란 어떤 ‘론’이 아니라 이론과 신념 사이, 그 “생성의 틈”에서 분출해 나오는 것이다.

「혁명의 좌절, 비평의 악몽」에서 박대현은 80~90년대를 거쳐 오면서 줄곧 비평적 주체의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김명인을 살피고 있다. 그 작업이 “한국 민중문학의 한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한 것은, 비평이 민중으로부터 멀어졌거나 처음부터 변혁의 주체와 떨어져 ‘악몽’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명인의 평론을 통해 박대현은 오히려 비평이 “악몽의 순간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가장 절망적이고 비참한 순간에야말로 비평은 (…) 단단한 정신적 좌표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미혹과 비판, 성찰과 망명」에서는 전성욱이 권성우 평론가에 대해 썼다. 전성욱이 말하길 “비평의 아름다움은 문장의 유려함이나 해석의 치밀함보다는 ‘비평가의 자의식’이라는 내면의 섬세한 무늬”로 드러난다. 권성우의 경우 그 자의식은 건조하고 상투적인 논문 투의 비평문체로부터 ‘나’를 전면에 드러내는 개성적 비평으로, 주류화된 문학의 장르 구분을 넘어 변두리 양식의 가치를 발굴하는 ‘외부’의 비평으로, 문단제도의 불합리한 권력 행사를 거부하는 자유로운 탈주의 비평을 통해 ‘망명의 비평가’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문화적 좀비’상태를 ‘비판적 사유’로 돌파하는 도정일

당대 문학의 맥을 짚는 모더니스트 황종연, 이광호

서정이라는 ‘정공법’ 통해 시의 미래를 구상하는 유성호

박형준의 글 「르네상스 정신의 비평적 발현」은 이미 고전이 된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의 저자 도정일을 “우리 시대의 르네상스인”으로 명명한다. 문화적 좀비가 된 시민사회의 사유 정지 상태를 인문적 가치, 특히 ‘비판적 사유’를 통해 돌파하고자 하는 도정일은 “탈이성에 마취되어 있던 90년대를 ‘차가운 정신’으로 묵묵히” 관통한 예외적인 비평가이다. 박형준은 인간 개개인의 가치와 무한한 잠재성을 신뢰하는 그의 비평에서 계급 모순에 대한 사유가 부재하다고 지적하지만, 이를 근거로 그의 인문주의를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근대 문학 이후를 탐색하는 모더니스트」와 「‘무중력 공간’에 갇혀버린 ‘미적 근대성’」에서 손남훈은 모더니즘 문학에 집중해온 두 평론가 황종연과 이광호를 다룬다. 이 두 평론가에 대한 손남훈의 공통된 비판은 모더니즘-리얼리즘 이분법을 따르고 있다는 점인데, 황종연은 리얼리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모더니즘 진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이광호는 이 이분법을 부정하면서도 한국 문학사를 도식화하여 이 대립을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근대 문학 이후…」에서 손남훈은 황종연의 “정치한 문학적 방법론과 거시적인 인식이 근대 이후를 지향하는 또 다른 문학의 지형도를 창출”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무중력 공간’…」에서는 이광호 평론의 장점은 “성실한 텍스트 해석과 더불어 이를 당대의 맥락과 관련시켜 의미화하는” 데 있다고 짚으며, 이 두 평론가들이 꾸준히 만들어갈 비평의 길에 기대를 걸고 있다.

마지막으로 허정의 유성호론 「서정과 현실의 역동적인 교섭」은 시가 근대문학 종언론의 축에 끼지도 못하고 이미 퇴물로 취급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미래파와 전통 서정 간의 대립구도도 시들해진 지금, 유성호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서정 개념의 갱신을 통해 이 시대 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서정이라는 ‘정공법’의 의미를 확대하여 시의 미래를 구상하는 유성호를 허정은 “철저한 현실 대면의식과 대안 세계에 대한 고갈되지 않는 희망을 중시해온 비평가”로 정의한다.


적극적 독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적 행위, 

‘비평’의 확장을 꿈꾸며

머리말에서 지은이들은 비평을 “적극적 독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적 행위”라 정의한다. 그 ‘적극적 독해’가 문학 작품이 아니라, 비평의 길을 앞서 걸어온 선배 평론가들의 궤적을 읽어낼 때, 그 행위는 “신화도 전설도 아닌, 한 사람의 중견 비평가”를 비추어낸다. 물론 ‘비평에 대한 비평’은 자칫 문학장 내부로만 국한된 ‘찻잔 안의 태풍’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비평의 비평』은 새삼 ‘읽고 쓴다’는 행위에 요구되는 용기와 섬세함, 그리고 타자와의 열린 대화가 이루어질 때의 짜릿함을 전하는, 우리 ‘읽고 쓰는 사람’ 모두에게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비평의 비평』을 엮은 『오늘의문예비평』은 내년 봄 100호를 발간한다. 지난 25년간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로서 꿋꿋이 문학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만큼, 이 잡지 또한 ‘중견’이라 불릴 만한 깊이를 갖추게 되었다. 한국 문학 비평의 지형도인 『비평의 비평』을 통해, 『오늘의문예비평』또한 동료들을 여전히 긴장하게 만드는 ‘중견’의 모습으로 근대문학을 넘어서는 문학, 그리고 더 넓은 비평의 장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나누고 있다.


엮은이: 오늘의문예비평



지은이:



비평의 비평: 우리 시대의 중견 비평가론

오늘의문예비평 엮음 | 김경연 외 지음 

| 국판 292쪽 | 15,000원

2015년 10월 15일 | 978-89-98079-10-9 03810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이 국내 중견 비평가들에 주목하는 책을 펴냈다. 여전히 문학의 장에서 활약 중인 타협 없는 ‘불한당’들의 궤적을 포착하여 우리나라 비평의 지형도를 그린다. 



차례


비평의 비평 - 10점
김경연 외 지음, 오늘의문예비평 엮음/해피북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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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온수 2015.10.22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디어 나왔네요^^!

산지니시인선 002


소금 성자

정일근 시집





구체적인 삶을 통한 희망가,

궁극의 서정을 말하다



히말라야 설산 높은 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물속에 숨어 있는 소금을 받아내는 평생 노역이 있다// 소금이 무한량으로 넘치는 세상// 소금을 신이 내려주신 생명의 선물로 받아// 소금을 순금보다 소중하게 모시며// 자신의 당나귀와 평등하게 나눠 먹는 사람이 있다. _「소금 성자」, 전문.


정일근의 열두 번째 시집 『소금 성자』가 산지니에서 출간되었다. 서정시인 정일근은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이후 『바다가 보이는 교실』(1987),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2009) 등 30여 년간 꾸준히 시집을 발표해온 중진시인이다. 특히 구체적인 삶을 통하여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으로서 주목받고 있는 그의 시세계는, 일상의 경험이 빚어낸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번 시집 『소금 성자』에는 “소금을 받아내는 평생 노역”인 히말라야의 한 노인과 그가 받아내는 소금 이야기가 담겨졌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시의 주인공과 소금의 관계를 시인과 시의 관계로 읽어내며, 시인이 “삶의 미궁에서 궁극의 시를 말한다"고 읽는다. 무감각해지는 현대사회 속 궁극의 서정을 담아내는 정일근 시인이 그리는 세계는 이번 시집 『소금 성자』에서 소금처럼 빛을 발할 것이다.


기다림과 그리움의 미학



첨성대 앞 나무의자에 앉아 있다 비단벌레차를 기다린다 온다는 시간 지났다 나는 매표원에게 항의하지 않는다 이렇게 기다려본 지 오래다 기다리는 동안 계림의 황금 가을이 나에게 온다 아름다운 호사다 비단벌레차가 천년 전에 출발했든 천년 후에 도착하든 조급하지 마라 신라가 나에게 오는 데 천년이 걸렸다 오늘 내게 중요한 것은 너를 기다리는 일 내 손에 탑승권이 있으니 만족한다 비단벌레차가 오고 있나 보다 황남동 쪽 어디에서 푸른 사랑의 섬광 번쩍하며 눈부처로 내려앉는다. _「비단벌레차를 기다리며-경주 남산」, 전문.


이번 시집은 ‘기억’과 ‘그리움’이 감각의 근원을 이룬다. 정일근 시인은 1980년대 ‘새로운 서정’의 지역문학운동을 개진한 바 있는데, 이 ‘새로운 서정’에는 세상을 바꾸자는 시인의 꿈과 희망이 담겨 있었다. 구모룡 평론가는 1990년대 이후 정일근 시인은 삶의 거처가 옮겨지고 그의 시세계에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였다. 구체적인 장소가 매개가 되어 시인의 ‘움직이는 시’세계 또한 순례의 과정을 보이는 것이다. 「비단벌레차를 기다리며-경주 남산」에서 드러나듯 기억은 기다림과 다가오는 것들, 그리고 저 너머 세계에 대한 근원적 그리움을 안고 화자에게 돌아온다. 「고래, 52」 또한 한국의 대표적인 고래보호운동가인 그가 ‘고래’를 유토피아의 표상으로 생각하여 숭고한 아름다움을 그려낸 시다.


삶과 죽음을 껴안는 생명의 긍정성



우수서 경칩까지 같이 걸어와 보니, 아니다/ 응달에 쑥 수북하다, 산수유꽃 터진다// 저건 어느 땅 한줌이든 버리지 않는/ 은현리의 가르침, 부지런히 볕 찾아/ 청솔당 문 앞 시멘트 바닥 갈라진 틈새마다// 봄까치꽃, 별꽃 스스로 지천이다. _「우수서 경칩까지」, 부분.


‘움직이는 시’로서 정일근 시인의 시세계가 압축적으로 드러난 부분이 시인이 현재 거주하는 장소인 ‘은현리’이다. 그는 “은현리 유월, 꽃 한 송이 피운 뒤에 또 한 송이 피우며 접시꽃이 걸어”(「접시꽃이 걸어간다」)가는 모습을 묘사하기도 하며, “어느 땅 한줌이든 버리지 않는/ 은현리의 가르침”(「우수서 경칩까지」)을 들며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를 표현한다. 이처럼 끊임없이 생동하는 자연사물의 움직임을 오로지 시인의 경험에 의존하여 서술함으로써 시적 공감을 획득할 뿐 아니라, 시적 화자와 다양한 의미망으로 연결되어 있는 자연사물의 인과관계를 특유의 서정성으로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삶의 미궁에 놓인 궁극의 시



시인이 제 피 찍어 시 한 편 쓰지만/ 마침표는 죄의식처럼 찍어야 한다/ 이 시가 끝났다는 시의 마침표는 되겠지만/ 그건 시인의 마침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는 시인과 함께 살아 있는 생물이어서/ 시인의 눈물로 고쳐지고 또 고쳐지며 시는 살아 있어야 한다 _「마침표」, 부분.


이 시집은 정일근 시인이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이후 등단 30주년을 기념하여 출판되었다. 따라서 정 시인이 갖고 있는 시에 대한 생각과 철학이 보다 압축적으로 묘사되기도 했는데, 이는 “자갈밭에 제 몸 굴려가며 시의 뼈를 깎아야 한다”(「별이름 루婁에 대하여」), “미궁의 시”(「미궁의 시詩」), “미궁에서 찾아온 시”(「미궁에서 찾아온 시詩」)와 같은 시어들에서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나 시인은 시인의 수행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시집의 표제이기도 한 『소금 성자』처럼 한 편의 시를 쓰는 일이 “소금”처럼 읽는 이에게 스며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삶의 미궁에서 궁극의 시를 찾는 과정이 빚는 그의 ‘새로운 서정’은 80년대 이래 여전히 역사성을 가지고 전진할 것이며, 등단 30주년을 맞이한 현재에도 끊임없는 운동성을 갖고 지속될 것이다.

특히 이 시집은 시인이 인세 전액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네팔 지진 구호성금으로 내놓아 ‘착한 시집’으로도 의미를 가지며, 정일근 시인은 내년 1월 네팔 신두팔촉 지역에서 있을 대한적십자사의 구호활동에 직접 참가한다.





글쓴이 : 정일근

경남 진해에서 태어났다. 경남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재학 중인 1984년 무크 『실천문학』과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바다가 보이는 교실』(1987),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1991), 『그리운 곳으로 돌아보라』(1994), 『처용의 도시』(1995), 『경주 남산』(1998), 『누구도 마침표를 찍지 못한다』(2001),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2003), 『오른손잡이의 슬픔』(2005), 『착하게 낡은 것의 영혼』(2006),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2009), 『방!』(2013) 등이 있으며 『소금 성자』(2015)는 시인의 열두 번째 시집이다. 현재 경남대학교 문과대학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시와시학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지훈문학상(시), 이육사시문학상, 김달진문학상(시), 한국예술상(시) 등을 수상했다.



소금 성자 | 산지니시인선002

정일근 지음 | 문학 | 46판형 양장 | 102쪽 | 10,000원

2015년 9월 22일 출간 | ISBN : 978-89-6545-316-1 03810

정일근의 열두 번째 시집. 구체적인 삶을 통하여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으로서 주목받고 있는 그의 시세계는, 일상의 경험이 빚어낸 아름다운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번 시집 <소금 성자>에는 '소금을 받아내는 평생 노역'인 히말라야의 한 노인과 그가 받아내는 소금 이야기가 담겨졌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시의 주인공과 소금의 관계를 시인과 시의 관계로 읽어내며, 시인이 '삶의 미궁에서 궁극의 시를 말'한다고 바라본다.


차례



소금 성자 - 10점
정일근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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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동글동글봄 2015.10.01 12: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소금성자 시 좋았어요.

문학평론가 구모룡 교수의 최신작은 시 평론집『은유를 넘어서』입니다.

"많은 시인들은 필생의 과업을 은유로 생각한다"고 시인(!)하는 이로써

이런 제목의 책을 낸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지난 화요일에 열렸던 저자와의 만남에서 탐색해 볼 수 있었습니다. 


바야흐로 장미의 계절. 지인분들께서 축하 화환도 준비해주셨어요.


행사 전 주부터 메르스에 대한 우려가 높아져 있어 

행사를 진행해도 될지 걱정스러웠지만, 많은 분들께서 참석하셨습니다 :) 



이 날 행사는 『은유를 넘어서』에 등장하는 작가 최정란 시인과

문학을 탐하다의 저자인 최학림 부산일보 기자와의 대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최정란 시인은 "시와 시인 자체가 소통이 되지 않고, 또 시와 독자가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시와 독자가 소통되지 않는 그 이면에 평론가의 역할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며 대담을 여셨습니다. 또 구모룡 교수가 '미래파'와 '극서정시'라는 두 극단이 아닌 그 사이에 있어 평론가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시들을 다루고 있는 점에 주목하셨습니다. 

이에 구모룡 평론가는 "양끝만 보이는" 진자운동이 아니라 "이 사이에 무수한 궤적들"이 있기에 그 "구체적인 궤적들을 추적"하고자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최학림 기자는 구 교수의 글에서 "은유의 도서관에서 나와 진실 속으로 나아가자. 시쓰기는 자신의 바깥으로 나가는 과정이다"라는 부분을 인용하며 제목의 의미에 대해 물으셨는데요.


구모룡 평론가는 "영어로 하면 실존이란 existence입니다. 그런데 existence의 ex가 바깥이란 듯이거든요. 실존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 있는 것입니다."라며 말문을 트셨습니다. 

아래에 이어지는 답변에서 '은유를 넘어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까요?


"사실 언어가 은유죠. 그런데 많은 이론가들이 시는 은유라 말하거든요. 실존의 욕구라는 것은 외부기 때문에 들어가기 위해서 바깥의 사물에 대해 은유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보면 굉장한 동일성의 확대재생산일 수 있다는 거죠. 

은유를 넘어선다는 건 단지 언어의 차원이 아닙니다. 주체의 문제인데, 서정시인이 가장 먼저 극복해야될 게 나르시시즘입니다. 시인이 자기 이야기 속에 갇혀 있으면 안됩니다."





이에 대해 최정란 시인이 "나약한 시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며 웃자 


구모룡 평론가는 "시인은 나약하지 않다"며 

오히려 "자기만의 고통이 아니고 타자들의 고통"에 대해 말하는 시로 나아가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리얼리즘 시과 서정시, 일상시와 정치시, 생태시 등 여러 구분을 넘어서

그동안 많은 시인들은 우리 사회에서 '잠수함의 토끼' 역할을 해 왔습니다.

용산 참사에서 4대강 사업, 세월호 사건까지, 

시인들의 방식으로 낮은 곳에서, 약한 이들과 함께해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두운 시대에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시와 시인에게 세상을 변화하기를 주문하는 것은, 그만큼

시의 힘을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유를 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겠지만

시, 그리고 시인이 전혀 '나약하지 않다'고 믿는 이에게서 오는 부탁이자

함께하겠다는 약속이지 않을까요?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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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모룡 평론가 '저자와 만남'서 "시인은 나르시시즘 극복해야"


중진 문학평론가 구모룡(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가 평론집 '은유를 넘어서'(산지니)를 최근 펴냈다. 그는 이 책에서 시인과 시가 다시 변화를 감행할 시점에 닿았다고 고찰했다. 그 방식은 '은유를 넘어서'라는 제목이 상징한다.

'은유를 넘는 것'는 어떤 걸까. 지난 9일 산지니출판사는 부산 러닝스퀘어 서면점에서 구모룡 평론가를 초청해 제67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을 열었다. 은유를 넘어서는 것의 의미와 접근법이 궁금한 이들이 많았던 듯했다. 좌석 30여 석이 순식간에 가득 찼다.

사회와 진행을 맡은 최정란 시인, 최학림 부산일보 논설위원은 저자를 친절하게 대하는 척하다가 이내 돌변해 몰아치듯 질문했다. 저자는 꿋꿋하게 의견을 내고 설명했다. "사실 언어 자체가 일종의 은유('A는 B다' 또는 '내 마음은 호수다' 식의 표현)다. 그러므로 은유 없이 소통이 안 되는 측면이 있다."

그의 설명은 은유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게 아니라, 죽은 은유를 남발하거나 무의식 상태이든 의도를 했든 간에 과도하게 은유에 기대어버리는 시 창작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남 또는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계속해서 이런 식 은유를 만들어내는 것은 굉장한 동일성의 확대재생산일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동일성의 확대재생산'은 실제로 시에서 굉장히 위험한 요소다. 별 고민 없이 'A는 B다'라고 해버리거나 '내 마음은 호수다'라는 식으로 식상하게 표현할 경우 이는 일단 창작 주체인 시인 내면에 아무 변화도 못 일으키고, 'A를 B'에 '내 마음을 호수'에 가둬버려 문학을 파괴할 공산이 매우 커진다.

저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러므로 서정시인이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것이 나르시시즘(자기도취)이다. 시인이 자기 이야기에 갇혀서는 안 된다. 그걸 넘어서야 한다. 그 점을 표현하려니 '은유를 넘어서자'는 제목을 고르게 됐다. 이 중에서도 자기 아름다움에 도취하는 나르시시즘은 큰 문제 아닐 수 있다. 언젠가 극복 과정에 가닿을 수 있으니까. 문제는 타자를 외면한 나르시시즘이다."

수많은 이가 자기 세계에 갇혀 의미 없이 과장하고 호들갑 떠는 시를 쓰는 세태를 그는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어 최영철 송경동 시인 등을 언급하며 시와 삶이 일치하는 시인, 세월호 사고를 예로 들며 주체에서 확장을 거듭해 세계로 나아가는 소통의 시를 강조했다. '은유를 넘어서' 갈 방향이었다.

조봉권 | 국제신문ㅣ201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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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를 넘어서 - 10점
구모룡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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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국제신문사 강당에서 열린 제10회 최계락문학상 시상식에 갔다왔습니다. 수상의 주인공은 얼마전 블로그에 소개해 드린 시집 '찔러본다'(링크)와 최영철 시인. 그날 모처럼 저희 출판사에 놀러오셨는데요, 점심때 따끈한 대구탕도 사주시고, 시상식에 안가볼 수 없었답니다.^^;

사실 문학에 문외한인 저는 최계락 시인을 잘 몰랐습니다. 작년에 출간된 동길산 산문집 <길에게 묻다>를 작업하면서 최계락 시인을 처음 알게되었고, 이번 문학상 시상식 덕분에 조금 더 알게되었습니다.

최계락 시인(1930~1970)은  일찍이 20대 초반에 등단하여 경남과 부산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문학 활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전쟁기 임시수도였던 부산에 몰려들었던 많은 문인들이 제 각기 서울 등지로 떠나간 뒤에 고석규, 김성욱, 김재섭, 김춘수, 손경하, 송영택, 유병근, 조영서, 천상병, 하연승이 참여한 <신작품> 동인들과 함께 경향 각처의 시인들이 교류하는 장을 여는 데 힘을 썼습니다. 맑고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면서 행복하고 조화로운 세계를 꿈꾸어온 그가 돌연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문학을 기념하는 문학상이 제정된 지도 해를 거듭하여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최계락 시인의 대표시 <꽃씨>와 <외갓길>을 낭송했고, 생전의 최계락 시인과 함께 활동한 하연승(77) 손경하(81) 원로 두 분이 특별상을 받으셨습니다. "오래 사니 상을 주네. 더 오래 살아야겠다"고 하연승 님께서 수상소감을 밝혀 모두에게 큰웃음을 주었습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께서
"3명의 평론가가 이구동성으로 최영철 시집 <찔러본다>를 선정하여 비교적 수월한 심사였다"고 심사평을 말하셨습니다.


최영철 시인께 수상 소감을 묻자 "딴 짓 안하고 꾸역꾸역 시를 쓴 것을 잘 봐주신 것 같습니다. 문학상은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았고, 시를 쓸 운명이었는지 이나이 먹도록 시를 쓰며 살았고 시에게서 보상을 받았는데 이런 '큰 시인'을 기리는 상을 받아 기쁩니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학창시절 얘기도 해주셨는데, 어렸을때 자신은 지각생에 열등생이었다고 자백하셨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교내백일장에서 첫 상을 받던 날 아침에도 지각하여 벌을 서고 있었는데, 운동장에 전교생이 모인 조례 시간에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래 얼른 뛰어가서 상을 받고 다시 돌아와 벌을 마저 섰습니다."(모두 웃음) 최계락 시인의 <달>이라는 시를 읽고 받은 충격 이야기 등 선생님의 특기이신 느리지만 재밌는 입담으로 좌중을 흔드셨습니다.


노을 / 최영철

한 열흘 대장장이가 두드려 만든
초승달 칼날이
만사 다 빗장 지르고 터벅터벅 돌아가는
내 가슴살을 스윽 벤다
누구든 함부로 기울면 이렇게 된다고
피 닦은 수건을 우리 집 뒷산에 걸었다


- <찔러본다> 중에서


최계락 시인 외가로 가는 길. 길은 어느 길이든 다감하고 어느 길이든 누군가에게는 외가로 가는 길이다 - 산문집 '길에게 묻다' 중에서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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