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락한 문학의 자리에서

여전히 타협하지 않는 중견 비평가들에게 주목한다

근대 문학의 종언이 선언된 시대에, 비평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1991년 발간되어 25년간 결호 없이 독자들과 만나온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이 국내 중견 비평가들에 주목하는 책을 펴냈다. 위기를 맞았다면 비평의 미래가 될 신인 평론가들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왜 하필 ‘중견’ 비평가인가? 이러한 의문에 필자들은 명료하게 답한다.

“패기 넘치는 젊은 비평가들의 열의도 인정해주어야 하지만, 여전히 도저한 비평가의 자의식으로 활력 넘치는 중견 비평가들의 존재론은, 그 자체로 어떤 강력한 반시대적 전언이다. 우리가 주목하고 귀 기울이고자 한 것이 바로 그 전언이었다.” 

_머리말 중에서

여성문학에 천착해온 비평가들에서부터 진보적·자유주의적 성향의 평론가들까지, 『비평의 비평』은 여전히 문학의 장에서 활약 중인 진중하면서도 타협 없는 ‘불한당’들의 궤적을 포착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국 비평의 지형도를 그리며, 새로운 상상력을 싹틔워낼 우리 비평의 탄탄한 기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에서 젠더로 이행한 페미니스트 평론가 김미현

변화할 수 있는 세계 보여주며 대중과 소통하는 김용희

도입부에서는 여성문학과 신세대문학을 깊이 연구해온 두 비평가, 김미현과 김용희 평론가를 다룬다. 김경연의 「변온과 항온, 혹은 유동하는 ‘사이’의 비평」은 여성문학에 ‘올인’해온 김미현 평론가의 궤적에 주목한다. 2008년작『젠더 프리즘』에서 김미현은 페미니즘 ‘다시-보기’를 시도하면서 스스로의 비평행위를 심문한다. 여성에서 젠더로, 페미니즘에서 페미니즘 ‘이후’의 페미니즘으로 이행하며 김미현은 “현실을 민감하게 감각하면서 그 변화에 스스럼없이 몸을 내맡기”고 있다.

김필남은 김용희 평론가의 글을 「환(幻)의 글쓰기」라 정의한다. 현실·이성과 대립하는 ‘환’의 글쓰기는 독자를 “환상적인 세계, 꿈의 세계, 유혹에 빠지게” 한다.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김용희는 문학 평론은 물론 영화 평론, 소설 집필까지 나아갔다. 낡은 틀을 넘어서려는 소통의 노력을 통해 발견한 ‘환의 글쓰기’로 그녀는 완성된 형태가 아닌,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세계를 보여준다.


체제의 바깥을 꿈꾸며 문학의 전위에서 활동해온 

조정환, 김명인, 권성우

전성욱의 「유죄로서의 욕구, 이론과 신념」은 평론은 물론 노동해방문학 운동, 출판, 정치철학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온 조정환에게 주목한다. “지금도 나를 가장 강하게 사로잡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날 길을 알고자 하는 욕구”라는 조정환의 글을 인용하며 전성욱은 조정환에게 욕구란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활력”이라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조정환의 비평이란 어떤 ‘론’이 아니라 이론과 신념 사이, 그 “생성의 틈”에서 분출해 나오는 것이다.

「혁명의 좌절, 비평의 악몽」에서 박대현은 80~90년대를 거쳐 오면서 줄곧 비평적 주체의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김명인을 살피고 있다. 그 작업이 “한국 민중문학의 한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한 것은, 비평이 민중으로부터 멀어졌거나 처음부터 변혁의 주체와 떨어져 ‘악몽’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명인의 평론을 통해 박대현은 오히려 비평이 “악몽의 순간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가장 절망적이고 비참한 순간에야말로 비평은 (…) 단단한 정신적 좌표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미혹과 비판, 성찰과 망명」에서는 전성욱이 권성우 평론가에 대해 썼다. 전성욱이 말하길 “비평의 아름다움은 문장의 유려함이나 해석의 치밀함보다는 ‘비평가의 자의식’이라는 내면의 섬세한 무늬”로 드러난다. 권성우의 경우 그 자의식은 건조하고 상투적인 논문 투의 비평문체로부터 ‘나’를 전면에 드러내는 개성적 비평으로, 주류화된 문학의 장르 구분을 넘어 변두리 양식의 가치를 발굴하는 ‘외부’의 비평으로, 문단제도의 불합리한 권력 행사를 거부하는 자유로운 탈주의 비평을 통해 ‘망명의 비평가’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문화적 좀비’상태를 ‘비판적 사유’로 돌파하는 도정일

당대 문학의 맥을 짚는 모더니스트 황종연, 이광호

서정이라는 ‘정공법’ 통해 시의 미래를 구상하는 유성호

박형준의 글 「르네상스 정신의 비평적 발현」은 이미 고전이 된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의 저자 도정일을 “우리 시대의 르네상스인”으로 명명한다. 문화적 좀비가 된 시민사회의 사유 정지 상태를 인문적 가치, 특히 ‘비판적 사유’를 통해 돌파하고자 하는 도정일은 “탈이성에 마취되어 있던 90년대를 ‘차가운 정신’으로 묵묵히” 관통한 예외적인 비평가이다. 박형준은 인간 개개인의 가치와 무한한 잠재성을 신뢰하는 그의 비평에서 계급 모순에 대한 사유가 부재하다고 지적하지만, 이를 근거로 그의 인문주의를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근대 문학 이후를 탐색하는 모더니스트」와 「‘무중력 공간’에 갇혀버린 ‘미적 근대성’」에서 손남훈은 모더니즘 문학에 집중해온 두 평론가 황종연과 이광호를 다룬다. 이 두 평론가에 대한 손남훈의 공통된 비판은 모더니즘-리얼리즘 이분법을 따르고 있다는 점인데, 황종연은 리얼리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모더니즘 진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이광호는 이 이분법을 부정하면서도 한국 문학사를 도식화하여 이 대립을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근대 문학 이후…」에서 손남훈은 황종연의 “정치한 문학적 방법론과 거시적인 인식이 근대 이후를 지향하는 또 다른 문학의 지형도를 창출”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무중력 공간’…」에서는 이광호 평론의 장점은 “성실한 텍스트 해석과 더불어 이를 당대의 맥락과 관련시켜 의미화하는” 데 있다고 짚으며, 이 두 평론가들이 꾸준히 만들어갈 비평의 길에 기대를 걸고 있다.

마지막으로 허정의 유성호론 「서정과 현실의 역동적인 교섭」은 시가 근대문학 종언론의 축에 끼지도 못하고 이미 퇴물로 취급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미래파와 전통 서정 간의 대립구도도 시들해진 지금, 유성호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서정 개념의 갱신을 통해 이 시대 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서정이라는 ‘정공법’의 의미를 확대하여 시의 미래를 구상하는 유성호를 허정은 “철저한 현실 대면의식과 대안 세계에 대한 고갈되지 않는 희망을 중시해온 비평가”로 정의한다.


적극적 독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적 행위, 

‘비평’의 확장을 꿈꾸며

머리말에서 지은이들은 비평을 “적극적 독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적 행위”라 정의한다. 그 ‘적극적 독해’가 문학 작품이 아니라, 비평의 길을 앞서 걸어온 선배 평론가들의 궤적을 읽어낼 때, 그 행위는 “신화도 전설도 아닌, 한 사람의 중견 비평가”를 비추어낸다. 물론 ‘비평에 대한 비평’은 자칫 문학장 내부로만 국한된 ‘찻잔 안의 태풍’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비평의 비평』은 새삼 ‘읽고 쓴다’는 행위에 요구되는 용기와 섬세함, 그리고 타자와의 열린 대화가 이루어질 때의 짜릿함을 전하는, 우리 ‘읽고 쓰는 사람’ 모두에게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비평의 비평』을 엮은 『오늘의문예비평』은 내년 봄 100호를 발간한다. 지난 25년간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로서 꿋꿋이 문학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만큼, 이 잡지 또한 ‘중견’이라 불릴 만한 깊이를 갖추게 되었다. 한국 문학 비평의 지형도인 『비평의 비평』을 통해, 『오늘의문예비평』또한 동료들을 여전히 긴장하게 만드는 ‘중견’의 모습으로 근대문학을 넘어서는 문학, 그리고 더 넓은 비평의 장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나누고 있다.


엮은이: 오늘의문예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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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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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비평: 우리 시대의 중견 비평가론

오늘의문예비평 엮음 | 김경연 외 지음 

| 국판 292쪽 | 15,000원

2015년 10월 15일 | 978-89-98079-10-9 03810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이 국내 중견 비평가들에 주목하는 책을 펴냈다. 여전히 문학의 장에서 활약 중인 타협 없는 ‘불한당’들의 궤적을 포착하여 우리나라 비평의 지형도를 그린다.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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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비평 - 10점
김경연 외 지음, 오늘의문예비평 엮음/해피북미디어

Posted by 비회원

"얼마 전까지는 디테일한 작업을 많이 해왔지만, 아까 만덕에서 했던 작업을 보여드렸던 것처럼, 요즘은 아예 반대로 매우 심플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어요. 그런 아이디어를 많이 떠올리려 해요. 심플하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비평 전문 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오문비)이 최신호인 가을호에서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그래피티 작가 구헌주에게 주목했다. 이 잡지는 '주목할 만한 시선'이라는 기획물에서 구헌주 작가를 집중해서 다뤘다.

구 작가는 2005년부터 부산에서 그래피티 작업을 펼쳐왔다. 도시의 공터나 건물 벽면에 스프레이 같은 도구로 그림을 그려 메시지를 표현하는 예술양식이 그래피티다. 사회를 비판하거나 저항 정신을 드러내는 경우도 많은 자유분방한 분야다. 구 작가는 전국을 무대로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주목받았고 비중 있는 작가로 떠올랐다.


그가 2012년 그린 '자이언트 키드'.

시민에게 친숙한 구 작가의 작품은 2012년 부산 수영구 광남초등학교 바깥 벽면에 그린 '자이언트 키드'를 들 수 있다. 한 어린이가 돋보기로 골똘히 뭔가 살피는 모습을 세밀하게 그린 큰 그림이다. 대체로 사실성이 높고 세밀한 그림으로 메시지를 표현한 작가는 이 기획에서 철거되는 주택 벽면에 '천사의 머리 위에 뜨는 동그라미' 하나만 달랑 그린 작품 'RIP'을 보여주며 앞으로 작업이 한결 단순해질 것임을 내비쳤다.


올해 그린 'RIP'. 철거된 가옥 벽면에 천사 머리 위 동그라미만 간략히 표시했다.


가을호 '오문비'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는 구헌주 작가와 손남훈 문학평론가의 이메일 대담, 구헌주 작가의 자기 작품 설명, 부산시립미술관 김영준 학예연구사의 그래피티에 관한 비평문을 실어 여러 각도에서 그래피티를 볼 수 있게 했다.

한편 '오문비'는 이번 호에서 특집좌담 '신경숙이 한국문학에 던진 물음들', 특집 '노년의 삶과 재현'을 수록했다.

조봉권| 국제신문 | 2015-09-09


오늘의 문예비평 2015.가을 - 10점
산지니 편집부 엮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구수한 전라도 입담과 도인을 연상시키는 따스한 풍모로 산지니를 반겨주시는 정형남 작가님의 『감꽃 떨어질 때』를 대상으로 지난 달, 영광독서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 업무를 마감하고 영광도서에 향한 산지니 식구들. 부산의 향토서점 대문을 장식하고 있는 『감꽃 떨어질 때』 포스터가 입구를 밝히고 있네요.


토론회장을 가는 계단길에도 이날의 행사를 알리고 있었고요.^^


드디어 행사장인 3층 '문화사랑방' 입구입니다. 


수요일의 북새통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날 행사에서 권유리아 문학평론가, 배옥주 시인, 손남훈 문학평론가께서 함께해주셨습니다.


작가님의 약력 소개로 행사가 처음 시작되었고요. 이윽고 토론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정형남 작가님은 토론회에 중간중간에 이어지는 평론가들의 질문에, 소설에 등장하는 중요 인물로 왕명인의 아들을 입체적으로 묘사하려 애썼다고 밝혔습니다. 일제 피해자의 상징이기도 한 그가 소설의 주인공은 아니나, 소설의 요소마다 등장함으로써 민초의 아픔을 환기하는 장치로 그려내고자 함이었습니다. 

     또한, 독자들의 소설 속 결말부의 '음성 한센환자'가 '조영'이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고 하셨습니다^^*



     더불어 정형남 작가는 기존의 역사교육의 문제를 비판하시기도 하셨는데요. 현재 역사교육은 기득권자들의 역사이자, 왕조와 관련한 큰 흐름과 양반 문화에 대한 기술만 있을 뿐 그 시대를 살아오고 겪어온 민중에 관련한 미시적인 역사에 대한 것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즉, 소설 속에 등장하는 조영과 삼수와 같은 민초들의 삶을 조명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역사 교과서에 자세하게 해명되지 않은 아픔의 역사가 대대로 내려와 아직도 소설 말미의 '음성 한센환자'처럼 현재에도 이들의 고통이 남아져 있기 때문에, 역사를 소설화하는 작업이 보다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은 역사의 기술이 남성에만 초점이 맞춰진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습니다. 소설 속에서도 의병활동으로 떠난 남편들을 대신해 고문을 받는 여인네들을 묘사하는 한편, 소설의 화자를 여성화자로 설정하여 그녀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도댁은 제일로 얼굴 맞대고 사는 마을 사람들의 골 깊은 감정의 응어리가 가슴 아팠다. 부녀자들이 무얼 안다고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으면서도 생뚱한 얼굴로 외면을 하는 모습들이라니. 엊그제까지만 하더라도 성님, 동상, 아짐 하던 사람들이 무슨 철천지원수나 된다는 듯 외면하고 반목하였다. 소도댁은 본의 아니게 이쪽저쪽으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

삼수네만 해도 그랬다. 아녀자가 무슨 죄가 있다고 주리를 틀 것인가. 일제 때 남편이 의병이 되었을 때도 모진 고초를 당하였는데 같은 민족끼리도 일본 놈들의 수법을 그대로 물려받은 듯 사람을 진저리치게 하였다. _『감꽃 떨어질 때』 중에서


     평론가와 시인 토론자들께서는 이 책이 가지는 장점으로 다채롭고 활기찬 어휘와 살아있는 토속어를 꼽았습니다. 그러자 작가님께서는 시골에서 살아 감성이 부드러워졌다면서, 부산에 거주하면서 전남으로 이주하기까지의 일화를 재미나게 들려주시기도 하셨고요.^^

     사실 이 책은 세 권까지로 기획하고 계셨다고 하십니다. 사모님의 조언으로 한 권으로 압축되었다고 하네요. 세 권이면, 아마 올해 안에 책이 출간되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한 흐름을 한 권에 압축하는 작업도 만만찮으셨을 테지만, 그래도 이 작품을 위한 다양한 자료 수집과 작가님의 내공을 통해 그 당시 인물들의 입체적인 삶을 오롯하게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마지막으로 소설 속 일부를 작가님께서 읽는 낭독의 시간이 있었는데요. 정형남 작가님답게 구수한 창으로 소설의 일부를 읽어주셔서 더 즐거운 시간이었답니다.


이날 객석을 매운, 다양한 사람들의 참석으로 토론회 열기가 더욱 뜨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럼 다음 번, 정형남 작가님의 차기작도 기대해보겠습니다^^**

작가님 건필해주세요~^^


감꽃 떨어질 때 - 10점
정형남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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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1동 | 영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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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사회자 손남훈 평론가님(좌)과 저자 목학수 교수님(우)

 

3월 18일 화요일 저녁, 부산대학교 근처 <금정예술공연지원센터>에서 3월 저자와의 만남이 열렸습니다.

주인공은 바로 『미국 대학의 힘』의 저자 목학수 교수님! 사회자는 비평 전문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편집위원인 손남훈 평론가님입니다. 미국 대학을 탐방할 오늘의 ‘일일 신입생’들을 위해 친절하고도 지적인 안내자가 되어주셨습니다.

 

부산대학교 산업공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교수님을 위해 장소 섭외에 신경을 좀 썼습니다. 다행히 대학생 여러분들도 많이 와주셨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역시 책을 쓰게 된 구체적 계기였습니다. 아시다시피 『미국 대학의 힘』은 저자가 미국 오하이오 대학교에서 연구년을 보내며 쓴 미국 대학 견문록입니다. 목학수 교수님은 “처음부터 책을 쓰겠다고 생각했으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며 겸손을 보이셨지만, 선생님이 보내신 초고에는 미국 대학에서 보고 들은 것을 한국의 상황과 비교하며,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참고하여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 또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가득했습니다.


2014년 지금 이 시점에서 미국의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 중에는 “대학에서 교수란, 학생이란 무엇인지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한국 대학은 서비스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한데, 이 부분은 선생님이 『미국 대학의 힘』에서 여러 번 강조하신 부분이기도 하죠. 대학에서 교수란, 학생이란, 교직원이란, 학부모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충분히 생각하고 또 그에 필요한 여러 가지 제도나 서비스를 연구한다면 대학이 발전하고, 더불어 그것이 소속된 우리 사회도 더욱 나아질 것 같습니다.


손남훈 사회자는 “책이 시스템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서비스, 사람이 먼저”가 아니냐는 날카로운 분석을 해주셨는데요. 지방거점국립대학이나 상대평가 같은 거시적 담론부터 미국 대학 화장실에선 찾아볼 수 없는 스티커(“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등)처럼 작고 사소한 내용까지 두루 담긴 『미국 대학의 힘』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주신 것 같죠?

산지니도 그렇지만, 저자와의 만남이 열리고 교수님이 교편을 잡고 계신 부산대학교 역시 지역 대학입니다. 미국은 주 자치가 발달된 나라인 만큼 지역과 대학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요. 교수님이 미국의 한 대학 부총장에게 대학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크게 놀라셨다고 합니다.

 

클락 박사는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는 2020년까지 국가적인 연구에 두각을 나타내어, 이를 통해 대학 교육의 국제화를 강화하고 웨스트버지니아 주의 시민들에게 생활의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대학이 되고자 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는 좋은 학생들을 길러 내고, 주립대학으로서 주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찾으며,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였다.

『미국 대학의 힘』,「웨스트버지니아 대학교에서 본 PRT」 중

 

대학이 독립적 기관으로 기능할 것이 아니라 그가 위치한 기관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함께 성장해야 하며, 지역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를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4월 저자와의 만남은 매력 넘치는 어중씨와 함께합니다. 기대 많이 해주세요. 4월은 어중씨만 믿고 따~라~와~

 

『미국 대학의 힘』책 소개>> http://sanzinibook.tistory.com/1036

 

미국 대학의 힘 - 10점
목학수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손전등을
끄고
달을 좇아

산지니 51회 저자와의 만남
9월의 저자 정천구

 

안녕하세요, 전복라면 편집자입니다. 9월 25일에 열린 산지니 51회 저자와의 만남은 특별히 부산외국어대학교 도서관과 함께했습니다. 이날의 초대 저자는 『중용, 어울림의 길』의 저자 정천구 선생님입니다.  대담에는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이자 문학평론가인 손남훈 선생님이 함께해주셨습니다.

 

중용불가능-『중용, 어울림의 길』(책소개)

 

 

반갑습니다, 정천구 선생님의 『중용, 어울림의 길』이라는 책을 가지고 선생님과 직접 대담할 수 있어서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중용, 어울림의 길』 이전에도 『논어, 그 일상의 정치』라든지 『맹자독설』 같은 책들을 통해 유가의 필독서들을 번역하고 재해석해서 다시 현실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오셨습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중용, 어울림의 길』이란 책도 단순히 중국어를 번역했다, 지금 우리말에 맞게 맛깔스럽게 바꿨다고만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내셨을 때 야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의도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마도 모든 저자들이 똑같은 생각일 것인데, 일단은 가장 남다른 책을 쓰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은 제 전공이 중국 고전이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굳이 이걸 할 이유가 없었는데 작은 계기로 논어부터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원래 국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일단 우리말 번역을 잘하는 걸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고전에 대해 정의를 내리라고 한다면, 조금 우스갯소리 같지만 “누구나 말하지만 아무도 안 읽는 책.”입니다. 그 이유가 뭐냐, 사실 재미없습니다. 첫 번째는 지금 현재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이 읽기에 적절한 서적이 아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그에 대한 해설이 적절하지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좀 고리타분하게 생각하다가 읽어보면 여전히 고리타분한 걸 보여줍니다. 그래서 고전이 현대적 가치를 얼마든지 가지고 있다는 것, 그래서 논어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또 사고하는 것들이 1500년 전과 꾸준히 서로 통하고, 또 거기에 가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걸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건 현대적 관점에서 또 현재 일어나는 사건과 관련해서 풀어내는 것이 가장 적절하리라 생각했고요.

이미 관련 저술들이 많이 있지만 제가 그것과 확실히 다르게 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 『중용, 어울림의 길』을 썼습니다. 실제로 『중용』은 아주 양이 적습니다. 그래서 책 한권으로 다뤄내기가 굉장히 애매합니다. 『대학』과 함께 묶어서 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도 저는 『중용』이 정말로 가치 있는 책이라면 원문이 적더라도 거기서 오늘날 우리가 새겨볼만한 것들을 풀어내면 양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쓸 때 40여일에 걸쳐서 아주 빨리 썼는데, 그래야 제 색깔이 나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오래 걸리면 남의 글을 흉내 내거나 참고해서 온전히 제 것이 아니게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논어, 그 일상의 정치』를 내고 난 뒤에도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늘 질문하신 것처럼 어떤 야심이 있었느냐. 사실 숨은 야심은 이 책이 대박 나는 겁니다. 제 책을 읽고 감동을 받는 게 역시 가장 큰 야심이죠. 그리고 저는 제 책을 읽어주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사주시길 바랍니다. (일동 폭소) 그리고 독서보다는, 지금이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는데 저는 독서를 중시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장서를 중시합니다. 독서로는 그 사람을 잘 알 수 없지만 장서를 보면 단박에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장서가 곧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을 보여준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여기 오신 분들이 『중용, 어울림의 길』을 읽고 장서로 마련하고 싶다는 꿈을 꾸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말씀 감사드립니다. 중간에 제가 끼어들어서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참 많았습니다. 저도 남의 집에 가면 맨 먼저 그 집에 책이 뭐가 꽂혀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보면 “아, 이 사람 관심사가 이쪽이구나, 저쪽이구나.” 파악이 되고 그에 맞춰서 화제를 꺼내 이야기할 수 있거든요.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이야기해봤습니다. 앞과 비슷한 맥락에서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드리자면, 왜 『중용』입니까?

 

사실 참 단순합니다. 『논어, 그 일상의 정치』를 썼기 때문이죠. 그다음 자연스럽게 “일단 사서(四書) 주석서를 써야 되겠다”라는, 어떻게 보면 기존의 통념 때문에 작업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비중을 둔 것 중에 하나가 책 앞부분의 이 해제입니다. 대체로 『중용』을 자사(子思)의 작품이라 합니다. 공자의 손자인. 성리학 학자들, 특히 주희가 주장하면서부터 그 뿌리가 확고해졌는데 실제로 그 근거가 거의 없습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자사가 『중용』을 썼다는 언급이 아주 간략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자사가 죽고 사마천이 『사기』를 쓴 기간이 거의 300여 년 차이가 납니다.

자사라는 인물도 불명확하고, 그가 쓴 책이 지금 현재 전하는 『중용』인지도 불분명한데 우리는 이미 자사의 작품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미 성리학적 사고에 익숙하다는 거죠. 성리학자들이 묶은 사서(四書)가 유가를 대표할 수 있는 고전이 될 수 있느냐? 이 사서를 중시했던 성리학자들의 해석이 과연 절대적일 수 있느냐? 800여 년 전 해석도 수없이 많은 해설서 중 하난데 우리는 아무 이견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가? 제가 『맹자』와 『대학』 작업도 하고 있는데, 이렇듯 사서를 다루는 이유는 주희와는 다른 해석을 할 필요가 있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도 있다는 인식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 우리 동아시아의 고전을 되살리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말씀하신 내용이 다음에 드릴 질문의 답과 상당히 겹쳐서 당황스럽습니다. (웃음) 고전이라는 텍스트를 과거의 것으로 가만히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는 거고, 계속해서 재발견하고 재해석해서 현실에 맞도록 의미를 찾아가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죠?

 

그렇죠. 고전이라는 것은 처음 형태대로만 남는 게 아닙니다. 시대마다 또 공간을 달리하면서 그것이 가치 있다고 했던 수많은 인식들이 모여서 고전으로 자리를 잡는 거죠. 그렇게 보면 고전이라는 것은 항상 어떤 시대든 그 시대 사람들이 가치를 발견할 때 고전이 됩니다. 고전이 가치 있으려면 현재의 내가 되살릴 수 있어야 하고 유용하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쓸모없는 것은 고문이지 고전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걸 고전으로 만드는 것은 항상 그 시대 사람이지 과거의 사람이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내용 측면에서 조금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까도 잠깐 이야기했듯이, “『중용』이 자사의 작품이다.”라는 통념을 이 책에서 논리적으로 반박했습니다. 그리고 『순자』, 『맹자』와 『중용』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셨습니다.

 

책 뒤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논어』 『맹자』 『순자』 『예기』와 어우러진 새로운 『중용』을 읽다.” 출판사에서 저자보다 더 잘 붙여놨습니다. (웃음) 당연히 『중용』은 유가에서 가장 중시하는 텍스트이기 때문에 유가의 다른 고전들과 긴밀한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사의 작품이라고 하면 대부분 전국시대 이전 작품이라 합니다. 그런데 시절이, 내용을 굉장히 자세히 읽고 꼼꼼하게 따져보면 오히려 전국시대의 텍스트, 『순자』에 아주 가깝습니다. 저는 『맹자』와 『순자』 사이에 나온 것이 『중용』이라고 봅니다.

 

 

선생님께서 ‘중용(中庸)’ 가운데 ‘중(中)’을 많이 강조하시고 ‘어울림’이라고 자주 환용하셨는데, 일어나는 감정을 알맞게 처리하는 것, 상황에 맞게 처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어울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중용’이 사실 불가능한 것은 아니냐는 말도 있고요.
한편 든 생각이 이겁니다. 공자님도 불가능한 ‘중용’을 훨씬 후세대인, 그리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전하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중(中)’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알맞다’라는 거죠. 일종의 상황에 알맞게 하는 것. 이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풀이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긴 하지만 상황이 늘 다릅니다. 그게 또 확 다르지 않고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에 더 처신하기가 어렵습니다. 아주 다르면 참으로 편한데, 너무 미묘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상황 자체를 파악하기가 어렵고, 알맞게 하는 게 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쨌든 상황에 알맞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중’이고 그다음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냐는 문제에 이 ‘중’이 어울려 있다, 이렇게 풀 수가 있습니다. 알맞게 할 수 있어야만 어울릴 수 있습니다.

‘중용불가능(中庸不可能)’을 제가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중용은 불가능하다 즉, 할 수 없다는 게 아니고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어쩌다 한 번 잘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계속 잘 하기는 어려운 거죠. 그래서 지혜도 필요하고, 지혜로워지려면 어질어야 합니다. 그래서 『중용』이 중요시하는 종목이 ‘지(智)’와 ‘인(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어려우면 공자도 불가능하다 했고, 저도 이렇게 주석을 달면서도 그런 느낌을 가졌지만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지향하는 게 인간적인 행위가 아닐까요. 그래서 유교 역사는 세상이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아지게 만들려고 했던 사람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산업화가 이룩된 오늘날 욕구, 욕망은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그건 좋지만 문제는 그것을 무한히 긍정할 순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사람들이 바라는 대상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 피를 말리는―요즘 공무원 시험이 그렇듯이― 그런 고단한 삶밖에는 남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그 폐단이 지극히 큽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벗어난 욕심을 갖게 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는데 그때 우리가 중시해야 될 게 과유불급이라는 거죠. 지나치게 모자란 것도 똑같은 건데, 모자라서도 안 되지만 지나쳐서도 안 된다. 그것을 조율할 때 필요한 것이 『중용』이 아닐까요.

‘중용’ 할 때 ‘용(庸)’이 바로 그 일상의 의미입니다. 일상의 자그마한 일에서 내가 편안하고 또 주위 사람들을 편안하게 대해주려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중용이 불가능하거나 어렵진 않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중용』이 그런 의미에서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중용』의 시대적 배경이 춘추전국시대입니다. 딱 20세기, 21세기 지금 우리 시대와 거의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급변하는 시대, 그리고 가장 혼란이 극심했지만 동시에 인간의 능력도 무한 긍정된, 그와 동시에 탐욕조차도, 욕심조차도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던 시대입니다. 그때 그런 과속을 늦추기 위해서 나온 게 유가의 사상이고, 그중에 『중용』은, 이 시대 『중용』은 어떻게 생각하면 개개인마다 달라질 수 있지만 가장 필요한 화두가 될 거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중용』을 비롯해서 고전 텍스트들이라 하면 먼 이야기, 초월적인 이야기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렇죠. 잘산다, 행복이라는 말을 흔히 쓰지만 이게 제일 불확실한 거고 불명확해요. 제가 아까 야간산행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제가 야간산행을 할 때 당연히 손전등을 들고 갑니다. 제가 손전등을 들고 산꼭대기에 딱 왔을 때 나무가 듬성듬성 있고 등 뒤로 보름달이 비췄어요. 그래서 아 손전등이 필요가 없구나 해서 껐어요.

보름달을 받으면서 걷는데 문득 제 손에 들려있는 손전등과 달빛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들었어요. 손전등은 내가 필요한 부분을 명확하게 비춰주고 아주 밝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범위가 한정적이에요. 사방 3미터를 못 넘습니다. 그리고 건전지를 세 개 넣으면 열 시간 이상 쓸 수 있는 게 전부죠. 이게 지식이고 근대 과학기술의 한계일 것입니다.

반면에 달빛은 그 자체로 자유롭습니다. 달빛을 밝기로 따지면 굉장히 희미합니다. 그러나 온 세상을 비추죠. 잘산다고 하는 것, 행복이라고 하는 것, 지혜라고 하는 것, 그것은 달빛에 가깝지 않을까요. 명료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고 대충 넘어가죠. 덜 중요하고 덜 가치 있는 걸 쫓다가 저 멀리 있지만 귀한 것들을 놓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는 제가 지식과 통찰의 관계 때문에 손전등과 달빛을 떠올렸는데, 질문을 하시니 (그렇게도 대답할 수가 있네요).

삶의 지혜라고 하는 걸 사실은 얻기 어렵습니다. 왜 수많은 고전들이 있느냐? 뭐라 딱 떨어지게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대로 이야기를 하는 거죠. 스스로 체득하고 그렇게 경험을 통해서 자기만 명확하게 인지하는 게 잘사는 길로 가는 게 아닌가.

잘사는 것이 공부의 핵심이라고 했는데, 저는 스무 살이 된 이후로 제 인생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돈을 벌려고 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공부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겠다 해서 이렇게 왔는데 여러분 보시기에 제가 별로 잘사는 것 같지 않고 행복해보이지 않으면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을) 바꾸셔도 됩니다.(웃음) 그렇지만 저만큼 즐겁고 신나게 사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 부분은 제가 자신합니다.(웃음)

 

부럽습니다. (웃음) 저도 좀 그렇게 살고 싶은데 갈림길 앞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거든요.

 


누구나 똑같은 조건이죠. 결국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고, 그다음에 실행을 해야 합니다. 선택의 문제가 우리가 공부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이왕이면 선택을 잘하는 것.

그런데 어떤 책을 읽어도 선택을 잘하는 법을 명확하게 가르쳐 줄 수 없어요. 내가 부딪치는 문제가 다 다르거든요. 백 퍼센트 다 알고 선택을 하는 건 어렵습니다. 불확실한 상태에서 저지르죠. 공자도 만 일흔이 되어서야 비로소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혜를 쌓고 그렇게 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공부하다 보면 저지르는 과오가, 빨리 좋은 길을 찾아서 성과를 내고 싶어 하거든요. 바로 그런 면에서 고전이 중요하지 않을까. 천천히 가고, 더디게 가고, 게으르지 않은. 게으른 것과는 달라요.

요즘 왜 우리가 고전을 안 읽느냐. 고전을 안 읽는 것은 20세기 이후의 현상이라 생각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건 서둘러서 그렇습니다. 급하게 해서. 고전은 급하면 못 읽습니다. 우리가 라면을 잘 만들어서 팔긴 하지만, 서두름이 오히려 삶의 빈곤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요. 천천히 음미하면서 가는 삶, 그게 바로 고전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중용』의 성(誠) 자를 선생님께서 ‘성스럽다’라고 하셨거든요. 보통 ‘성스럽다’ 하면 거룩할 성(聖) 자를 써서 표기를 하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말씀 언 변(言)에 이룰 성(成) 자, 자기가 한 말을 이루다라는 이야기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시적이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의 글자이지만 그 속에서 다양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고.


 

그렇죠. 요즘 ‘번역’ 하면, 번역기도 나오고 있지만, 사실은 번역에 전제가 되는 게 있습니다.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이 텍스트를 나는 어떻게 해석하느냐, 그 해석하는 것을 옮겨 쓴 게 번역이죠. 말로 옮기니 번역이지 단순히 글자만 바꾸는 것은 진정한 번역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거죠. 제가 사서를 배울 때 그게 제일 답답하고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어요.

여러분이 갖고 있는 노트는 공책입니다. 빌 공(空) 자에 책 책(冊) 자입니다. 그러면 그 공은 아무것도 없느냐, 아닙니다. 무(無)가 아니고 무한(無限)히 넣을 수 있죠. 하지만 그냥 공, 하면 그 차이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전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지금 사람들이 갖고 있는 언어와 관계에 맞게 텍스트를 풀어주는 것이 첫 번째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을 심사숙고했고, 그 의미가 저에게 와닿지 않으면 번역을 할 수 없습니다.

 

 

성리학이 이 책에서는 많이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선생님 말씀처럼 우리사회의 의식구조를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사상,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병자호란, 임진왜란 이후를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중국에서조차도 고집하지 않는 성리학을 말 그대로 신주 받들듯이 합니다. 그게 (주희)에 벗어나서 이야기하는 것을 어렵게 만듭니다. 그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이데올로기, 관념화죠. 관념화의 제일 문제는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고 수용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그것을 깨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책을 읽고 다른 책을 읽어보면 성격이 다르다는 걸 느끼실 겁니다. 기존에 나은 표방을 했든 안했든 (주희)를 바탕으로 번역을 하고 주희의 해석을 따릅니다. 저는 저의 해석을 사족(蛇足)이라고 달았지만, ‘주희도 한 학자고 나도 한 학자다. 그 사람이 주석을 달았다면 나도 해석을 달 수 있다. 왜 주희를 내가 따라야 하는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만약에 주희를 따르려 한다면 제가 굳이 이 작업을 할 이유가 없지요.

성리학의 폐단은 말하기가 굉장히 복잡하고 많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서 주희라든지 성리학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 그 폐단이 팽배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책을 쓸 때 꼭 그 말을 씁니다. 제가 쓴 책을 읽되 다른 책을 같이 읽으라고. 제 책 역시 저의 해석일 뿐입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어떤 요리사가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 다 외우지 않죠. 맛있게 먹고 나옵니다. 모든 고전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해석도 주석도 절대화해서는 안 됩니다. 『논어, 일상의 정치』도 그렇고 『중용, 어울림의 길』을 쓸 때도 그 의도를 담았습니다. 절대화를 되도록 배제하고 이 텍스트가 나왔을 때 그 시점에서 들여다보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팔백여 년 전 성리학자의 해석을 굳이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정천구

1967년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삼국유사를 연구의 축으로 삼아 동아시아 여러 나라의 문학과 사상을 비교 연구하고 있으며, 현재는 대학 밖에서 ‘바까데미아(바깥+아카데미아)’라는 이름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저서로는 『논어, 그 일상의 정치』, 『맹자독설』, 『삼국유사, 바다를 만나다』, 『중용, 어울림의 길』이 있고, 역서로는 오카쿠라 텐신의 『차의 책』과 『동양의 이상』, 명심보감 완본을 번역한 『밝은 마음을 비추는 보배로운 거울』, 『삼교지귀』 등이 있다.

 

 

 

자료 제공/ 부산외국어대학신문 김덕현 기자
정리 도움/ 용달달, 별난오리

*위 내용은 분량 조절과 입말의 특성을 고려한 편집을 거쳤습니다.

 

 

52회 10월 역자와의 만남 :: 서신으로 읽는 두 지성의 세기적 사랑

 

 

Posted by 비회원





2011년 <해석과 판단>은 '폭력', '실재', 공동체' 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 현대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하는 '타자성'의 윤리적 접점들을 찾아보고 있다.




1부 _ 폭력



고은미「폭력의 스펙터클과 윤리적 되갚음」
<아저씨>,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악마를 보았다>를 중심으로 잔혹한 폭력 이미지와 복수의 의미를 고찰한다. 
  

 

이 영화 속 폭력 이미지는 대중의 피해 의식과 불안, 배설 욕망을 포착하였지만, 자본주의적 교환 의지를 바탕으로 전시 욕망의 스펙터클을 위해 활용될 뿐이다. 앙갚음을 원하는 복수극 안에서 분개심의 정의를 넘어 윤리적 되갚음을 고민하는 영화적 시선이 필요함을, 글쓴이는 역설하고 있다.



김필남 「폐쇄된 세계, 역류하는 신체 - 김기덕론」
김기덕 영화는 관객들에게 ‘구역질’을 유발하는데 이 의미는 몸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을 게워내려는 가역반응이다. 봉합하고 감추기 급급한 이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에 구역질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영화는 사회 규칙과 규범 등을 부정하기 때문에 관객들과의 소통에 실패했으며, 이 지점이 바로 개인들에게 윤리적 존재가 되게끔 강요하는 사회를 똑바로 직시하게 만든다. 

 


박정민 「고통의 심연」 
이창동의 영화 <밀양>(2007)과 <시>(2010)가 고통을 다루는 방식에 주목한다. 이창동은 자극적인 사건의 재현을 생략한 채, 인물들의 고통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대화하고 있다.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서로 다른 두 입장은 시선의 반복되는 상호교차 속에서 손쉬운 이해와 연민으로 남기를 거부한다. 고통을 단순한 볼거리로 전락시키지 않으려는 이창동의 안간힘 앞에서, 우리는 고통과 함께, 타자의 고통의 심연을 그 윤곽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다.

<시>의 마지막 수업시간, 미자의 시를 읽기 전에 시인은 시 써온 사람 또 없느냐고 묻는다. 수강생들이 "어려워요"라고 대답하며 멋쩍게 웃을 때, 그 모습은 고통의 재현물 앞에서 가벼운 연민 뒤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과 겹쳐진다.






2부 _ 실재



오선영 「환상은 없다-황정은론」
황정은 소설에서 나타나는 ‘환상’의 배치와 맥락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황정은 소설 속 인물들은 자기 자신이나 가족, 주변 사람들에게서 벌어지는 기이한 일들을 기이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그들의 담담한 태도에 놀라는 것은 독자, '우리들'이다. 여기에서 황정은 소설의 새로움과 특별함에 대해 말할 수 있다.

 
황정은의 환상은 베일에 가려진 진실의 이면을 들추어내면서 예외적 존재들의 자기 목소리를 들려준다. 거기서 삶의 진실에 대한 앎이 아닌 행동의 문제를 제기할 때 주체의 윤리적 태도는 나타날 수 있다. 



조춘희 「노동하는 사람들-박현덕 시조(時調)를 읽는 한 방식」
 


 
과연 노동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라는 역설적인 물음 앞에 오늘에 복무하고 있는 우리가 던질 수 있는 답변이 있을까. 현대시조가 설 자리를 탐색하는 하나의 방식은 노동의 오늘을 진단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을 박현덕의 시조에서 찾을 수 있다.
 

 

손남훈 「르포르타주와 글쓰기의 윤리-김곰치의 르포·산문론」 
김곰치의 르포르타주에서 글쓰기의 가능태를 보고자 하는 욕망을 보여준다. 작금에 일어나는 르포르타주 글쓰기는 당대 현실의 부조리에 반하는 실재를 향한 충동의 결과인데, 김곰치의 르포르타주는 ‘직각’과 ‘의심’의 글쓰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글쓰기=행동에 근접하고자 하는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부산의 어느 길거리, 그들이 왜 한낮에 부산역까지 가는 초행의 길에 있게 되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막내야, 니가 물어봐라, 했던 듯이 셋을 '대표하여' 가장 젊은 축의 사내가 나선 것이고, 길을 묻는 일에 '대표'가 필요했구나, 하고 나는 직각(直覺)했다.

-김곰치 「한 사람」『지하철을 탄 개미』


그의 르포르타주는 논리적 근거를 찾아 자료들을 많이 읽고 준비해가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 되레 현장의 생생한 사태들과 맞부딪칠 때 생겨나는 "고유성" "유일무이함"을 그는 신뢰한다.




3부_공동체 


장수희 「죄의식의 정치, 윤리의 기술(Art)」
지금까지 스타일리스트로 평가되어온 소설가 이기호를 읽는 다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기호가 화두로 삼아온 ‘죄의식’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하고, 근대 체제를 만들어온 이 죄의식을 벗어나기 위한 이기호의 전략을 분석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것은 이기호의 근작(近作) 「밀수록 더욱 가까워지는」과 『사과는 잘해요』에 잘 드러나고 있으며,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서 죄의식의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소설과 소설가의 작업 내용은 소설가 이기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한다. 

"나중에 혹시 나한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말이야."
"그러면?"
"그냥 너한테 해."

-이기호  『사과는 잘해요』

이 말은, 죄의식을 지배하는 자에 대한 기계적 사과의 공허함을 체득한 자에게서나 나올 수 있는 용서의 말이다. 반성적 사유를 통해서 자신을 스스로 반성하는 것-그것이 지금, 필요하다고 이기호는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방법이야말로 죄의식과 고백의 무한 순환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희원
「‘아무도 아닌 자들’의 윤리 ― 배수아의 『북쪽거실』을 읽는 어떤 시선」

 배수아의 장편소설 『북쪽거실』을 통해 공동체의 윤리적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있다. 필자는 이 작품에서 동일성의 논리로는 계산해낼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한 진실과, 그것에 충실하기를 멈추지 않는 자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정념과 소통의 방식, 그 속에서 흔적으로 남는 아이러니한 역사를 좇아가면서 공동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북쪽거실』의 인물들은 충돌로 서로 도래하고 일체화된 합일로서의 소통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래서 관계를 단절하는 것에도 특별한 고통이 따르지는 않아 보인다. 때문에 이러한 인물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는 매우 건조해 보이며 때때로 공동체에 대한 상정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이 건조함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그들의 입장이 비동일적인 낯섦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지 열정이 없거나 무관심한 때문은 아니다. 


 



김수현 「경계, 불안, 눈(seeing)」
영화 <황해>(나홍진, 2010)와 <무산일기>(박정범, 2011)를 통해 조선족과 탈북자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입장과 태도를 분석한다. 이는 영화 속의 이방인의 존재가 국민국가-자본주의라는 틀 속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가운데, 기본적으로 윤리란 사회적 관계 속에 놓인 주체의 입장과 태도에 관련된 질문을 의미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황해>의 카메라가 빠르게 질주하는 방식을 통해 조선족의 삶을 밀어내고 외면한다면, <무산일기>의 카메라는 끊임없이 머뭇거리고 서성이는 방식을 통해 탈북자의 삶에 밀참함으로써 현실의 구조를 반추하고 되돌아보게 만든다.




박형준 「불화의 공동체-지역학문공동체와 지역학의 윤리」
우리가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은 중앙 그 자체가 아니라, 중앙이라는 대타적 관념을 작동―점멸시키는 정치회로다. 비평적 논쟁의 실종과 침묵의 공모를 가능하게 하는 주체의 취약함,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입에 발린 지역적 연대가 아니라, 오히려 지역, 더 넓은 의미에서의 ‘로컬’을 ‘불화의 장소(local trouble)’로 사유하는 것이다.  

학문적 논쟁이 실종되고 풍문과 추문이 횡행하는 지역학문공동체, 이 불화로 가득한 장소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만이 '지역'이라는 곤혹스러움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임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비평의 윤리, 윤리의 비평』 해석과 판단5

| 문학 | 평론

해석과 판단 지음
출간일 : 2011년 12월 30일
ISBN : 9788965451686
신국판 | 270쪽 

2011년 한 해 동안 '폭력', '실재', '공동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치열하게 사유한 결과물. 이 세 가지 키워드는 한국 현대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하는 '타자성'의 윤리적 접점들을 찾아보고자 찍은 방점으로 각각의 글들은 지금-이곳의 현실성에 대한 비평적 개입이자 가장 치열한 방식으로 현재를 사유한 글들이다. 




저자 : <해석과 판단> 비평공동체
 
2006년에 결성된 <해석과 판단> 비평공동체는 부산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비평 그룹이다. 경성대, 동아대, 부경대, 부산대, 부산외대 등에서 연구와 강의에 임하고 있는 젊은 비평가들이 대학이라는 학연적 위계를 넘어, 함께 소통하고 교류함으로써 문학 비평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다. 비평의 현재성을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지금-여기의 문제들을 온전히 돌출해내고, 그것에 치밀하게 개입함으로써, 단지 ‘부산’ 지역의 비평이 아닌, 보편적으로 정초 가능한 비평의 가치를 모색하고 있다.  


비평의 윤리, 윤리의 비평 - 10점
해석과 판단 비평공동체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오늘의문예비평> 겨울호가 발간되었습니다.
83번째 책인 이번 겨울호 <특집1>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삶’을 다루었습니다. 새로운 정치적 삶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과는 전혀 반대로 치달아온 사회의 시스템이란, 결국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재앙을 통해 성찰하는 기획입니다.

<특집 II> ‘자기로부터의 망명’은, 익숙하기에 평온함을 가져다주는 안정적인 체제에 안주하지 않고, 기꺼이 기득권과 같은 자기의 안정을 스스로 포기하는 그 혁명적 결단에 관한 사유들을 담고 있습니다.




일본 도호쿠(東北) 지역의 대지진과 쓰나미의 여파로 발생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는 체르노빌 사고 이후 최악의 원전사고로 기록될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의 원자로 폭발과 이로 인한 방사능 유출은 원자력이라는 에너지에 대한 인간의 통제 불가능성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인간의 삶에 기여한다는 명분으로 장려된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처럼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가공할 잠재력을 내포하고 있다. 원자력 에너지에 의존하는 현대의 삶은 거대한 에너지의 소모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구조와 산업적 시스템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저 통제 불가능하고 그리하여 치명적으로 위험한 원자력에 대한 반대는, 소비적 욕망을 탕진하는 자본주의의 탐욕과 지금 우리들의 삶에 만연한 비윤리성에 대한 발본적인 반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번 사고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나 무라카미 하루키와 같은 일본의 예술계 인사들은 원전 반대를 공개적으로 천명하였다. 이것은 기술의 비윤리성에 대한 예술계의 비판이라는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다. 원자력의 위험성에 대한 비판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이번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핵연료의 문제와 더불어 환경과 생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이제는 환경문제에 대한 고려 없이 자본주의의 지속가능한 이윤축적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벌써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등 몇몇 선진국들은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거나 폐쇄결정을 내리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만큼 재앙에 가까운 이번의 원전사고는 인류사의 패러다임에 새로운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거대한 전환의 시기에 문학은 무엇인가? 기존의 생태문학론이 가진 의미와 한계를 딛고 인류의 생존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윤리적인 반성을 앞으로의 문학은 어떻게 예감하고 또 촉발할 수 있을 것인가?

- <오늘의문예비평> 겨울호 특집1 서문



차례

겨울호를 내면서

특집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삶
생명위기와 원자력문명의 종말  신승철
대전환의 예감, 보이지 않는 윤곽—3.11 이후의 일본 사회  안천
대병겁 시대의 시학을 위하여  이성희

특집Ⅱ 자기로부터의 망명
타자성의 정초, 미래파의 미래로 나아가기  손남훈
작가적 명성과 문학적 성과-조정래와 황석영의 2000년대 이후 작품을 읽으며  고인환
비밀과 결여-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와 공지영의 『도가니』  이경

아시아를 보는 눈
K-POP의 초국적 조건들-이중의 미미크리와 문화자본의 논리  이동연
번역연재-『일본의 각성』(제3회)  오카쿠라 텐신

지역을주목하라
저항하라, 상상하라, 그리고 사랑하라  김수우

한국문학의 새로운 시선
작가산문 | 딱 한번 당신의 正面  이안
E-mail 대담 | 서정의 주머니 이안·박형준

해석과 판단
들려진 삶과 살아 내려오는 운동-희망버스와 연대의 가능성  하승우

포커스
사실의 지층과 진실의 심상지리-정유정, 『7년의 밤』(은행나무, 2011)  이희원
조영일과 세계문학의 구조-조영일, 『세계문학의 구조』(도서출판b, 2011)  박가분
계급론의 부활과 노동운동의 새로운 지평-조돈문, 『노동계급 형성과 민주노조운동의 사회학』(후마니타스, 2011) 강신준

장편연재비평
지식의 윤리성(제4회)-언어감각에 관하여  윤여일

<오늘의문예비평> 2011 겨울호 책소개 더보기


Posted by 산지니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