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부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8.24 감독의 길 (1)
  2. 2010.07.08 신혼부부의 방귀 트기 (1)
  3. 2010.03.19 3천원으로 영화보기, 해운대 시네마테크부산 (2)


한 평생, 하나의 대상을 향해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삶의 어느 순간에 쉽게 그 열정을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방향을 돌려 다른 대상에 열정을 쏟게 마련이다. 열정이란 사실 이처럼 변덕스럽다. 그러므로 우리는 긴 세월을 견뎌 무엇 하나에 그의 삶을 오롯이 바친 사람들을 볼 때 놀라움을 참지 못한다. 때로 그것은 단지 놀라움에 그치지 않고 어떤 경이로움, 그리고 마음의 깊은 존경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나는 20세기 세계영화사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에게서 그런 마음을 느낀다.


지금 해운대에는 무더위를 피해 모여든 인파들로 북새통이다. 나는 그 인파들을 피해 해운대 인근의 ‘시네마테크 부산’으로 간다. 지금 거기선 ‘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2010. 8. 10-8. 29)이 한창이다. 몇몇 작품은 35mm 필름으로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것이라 마음이 설렌다. 내가 설렐 정도로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의 영화는 내가 본 어떤 누구의 작품들보다 문학적이다. 선명한 이미지와 휴머니즘을 드러내는 다이내믹한 서사는 그의 영화의 분명한 개성을 표현한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와 <리어왕>을 일본의 중세로 가져와서 만든 <거미집의 성>(1957)과 <란>(1985),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뻬쩨르부르크를 훗카이도로 옮겨서 만든 <백치>(1951)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주정뱅이 천사>(1948)에서 구로사와의 페르소나라고 할 만한 미후네 도시로가 맡았던 젊은 깡패 마츠나가의 그 광기어린 파멸, <이키루>(1952)에서 역시 구로사와의 많은 작품에 출연했던 시무라 다카시가 연기한 와타나베의 죽음이 묻고 있는 삶의 의미, 이런 것들은 정말 어떤 소설만큼이나 문학적인 감성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나는 시네마테크의 커피 테이블에 앉아 구로사와의 자서전을 읽는 가운데 그의 영화가 가진 문학성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았다. 그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아마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힘은 기억력일지도 모르겠다.”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아버지의 사무라이 기질, 어릴 때부터 심취했던 검도의 매력, 중학교 시절 관동 대지진의 현장에서 보았던 끔찍한 주검들과 그로 인한 공포, 뭐 이런 어린 시절의 체험과 기억들은 분명 그의 예술적 상상력의 중요한 발원지다. 아니, 그는 자기의 지나온 삶 전부를 영화 속으로 끌어들일 만큼 영화는 곧 그의 삶에 육박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영화감독이 되기 전까지의 자신의 삶을 영화의 길을 예비했던 운명의 시간으로까지 생각한다.


“미술, 문학, 연극, 음악, 그 밖의 여러 예술들에 열렬히 심취했던 나는, 영화 예술을 구성하는 온갖 요소들로 머리를 가득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영화라는 예술이 내가 배운 이 모든 것들을 다 활용해야 되는 매체인지는 미처 모르고 있었다. 도대체 그 무슨 운명이, 내가 걷게 될 인생의 길에 대해 그토록 나를 잘 준비시켜 줬는지 궁금할 뿐이다.”


이런 사후적인 생각은 현재를 합리화하는 일종의 착각일 수 있지만, 영화의 길로 들어서기까지의 그 모든 방황의 시간들은 영화와의 만남과 함께 위대한 준비의 시간으로 되살아난다. 중요한건 그 방황마저도 유쾌하게 역전시킬만한 그의 뜨거운 영화 사랑이다. 그는 1943년 처녀작 <스가타 산시로>로 시작해 여든넷의 나이에 만든 <마다다요>(1993)까지 50년 동안 모두 31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우리들에게 그 인생이 오롯이 영화에 바쳐진 것임을 말하고 있다. “나에게 영화를 뺀 합계는 0일 뿐이다.”라고 한 그의 말은 과연 과장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그는 예순하나의 나이에 영화제작의 어려움을 느끼고 면도칼로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그에게 영화 창작의 어려움은 곧 삶의 곤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작품 <마다다요>를 끝내고 5년 뒤인 1998년에 여든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저 오랜 시간을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많이 있다. 그러나 그 오랜 시간을 놀라운 열정으로, 마지막까지 진정한 사랑을 갖고 간다는 것은, 결코 누구에게나 흔한 일이 아니다. 지금 이 무더운 열기 속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보러 가는 길은, 바로 그 예외적인 인간의 위대함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지금 당신을 사로잡고 있는 바로 그것을 향해, 과연 당신은 언제까지 그 열정을 쏟아낼 수 있겠는가? 쉽게 지치고 또 쉽게 매혹당하는 우리들에게 한 가지 일에 몰두한다는 것의 위대함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Posted by 전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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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산지니북 2010.08.24 1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갑습니다. 산지니 블로그 필자가 되신 것 축하드려요.^^
    진지하고 재밌는 문화 이야기 앞으로도 많이많이 기대할께요.


<Happy?>
<햇살 좋은 날>
<추억을 만나다>
<의사놀이>
<기억사냥꾼>
<방귀트기>
<오후의 인사>
<서로 다른>


하루에 본 영화 8편의 제목이다.
총 상영 시간은 1시간 30분.

정말 새로운 그리고 어지러운 경험이었다.
한편당 3분에서 15분 짜리의 말그대로 단편영화들이었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20명의 일반인.
시네마테크부산에서 운영하는 일반인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화제작강습을 3개월(일주일 2번) 듣고 만들어낸 영화들이었다.

20대 초반부터 40대 직장인까지 직업도 다양한 20인의 초보들이 모여 시나리오도 직접 쓰고 촬영, 녹음, 조명, 감독, 편집, 연기까지 해냈다고 한다.

영화 상영 전 그간 교육을 맡은 전인룡 교육담당자가 앞에 나와 인사를 했다. "원래 교육과정은 3개월이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헛된 희망이었는지... 이론과 실기를 배우고 8편의 시나리오를 뽑아 영화를 제작하는데 꼬박 7개월이 걸렸고 그나마 한편은 오늘 낮에야 부랴부랴 끝냈습니다." 서툴고 어색하겠지만 재밌게 봐달라고 관객들에게 주문했다.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영화의 평균 등장인물은 2명~5명.
배우 섭외는 직장동료나 지인의 소개로 해결했다고 한다.
신혼부부의 방귀 트기를 소재로 한 영화 <방귀트기>는 짧지만 줄거리가 명쾌했고 관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되었냐는 질문에, 시나리오를 수차례 냈으나 모두 빠꾸당하고 괴로워하던 차에, 결혼한지 얼마 안된 한창 신혼인 직장후배가 "부인이 드디어 내 앞에서 방귀를 뀌었어요." 하며 기뻐하던 모습이 불현듯 생각나  소재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영화 출연을 흔쾌히 허락해준 두 직장 후배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난생 처음 영화배우 해보신 할아버지

<오후의 인사>에 뻥튀기 파는 할아버지로 출연한 배우는 "내가 이 나이에 이런거 해보게 될 줄 몰랐어요. 젊은이들과 같이 일하니 너무 즐거웠고 배우로 써줘서 감독님께 고마워요." 라고 가슴뭉클한 소감을 남겼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동의대 영화과 김이석 교수님의 사회로 연출감독들 7명의 소개가 이어졌다. 여감독이 5명, 남감독이 2명. 다들 상기된 표정으로 소감들을 얘기했는데 소개하자면

"감개무량하네요"
"떨리지만 참 기쁩니다"
"제가 만들었지만 차마 작품을 못쳐다보겠네요.ㅎㅎ"
"지루해서 죄송합니다.(관객 웃음)" 등등.

사회를 본 김이석 교수님과 7인의 감독들


사실 조금 지루하긴 했다. 그간 현란한 상업영화들로 눈이 너무 높아진 탓이리라. 너무 많은 영화를 한꺼번에 보니 나중엔 마구 헷갈리기도 했고. 하지만 애정을 갖고 보니 아마추어 감독들의 순수함이 오히려 신선해 보이기도 했다. 좀 서툴게 표현되긴 했지만 영화에서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느낄 수 있었고. 온천천이나 송정네거리 등 영화에 나오는 낯익은 거리풍경도 반가웠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이나 영화에 배우로 출연한 사람들 대부분에게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었을 것 같다. 도전하고 이루어낸 사람들의 표정은 다들 만족스럽고 행복해 보였다.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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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부터 토요일 근무가 시작되었다. TT;
퇴근 시간은 오후 1시. 점심 먹고 못한 일 마저 끝내고 나니 오후 4시. 환한 대낮에 귀가를 하려니 차마 발길이 안떨어졌다.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니 주말인데 일 속에 파묻혀 숨도 못쉬고 있었다.
 
"바쁠수록 마음의 여유가 더 필요하다.
좀 쉬었다 해야 능률이 더 오른다.
열심히 일한 우리, 떠나자!" 

슬슬 꼬드겼더니 당장 넘어오는 친구.
어디서 만나 뭘 할까 고민하다가 
'시네마테크부산'에 가서 영화 한 편 떼고 스트레스를 풀기로 했다.

'시네마테크부산'은 예술영화와 월드시네마를 언제나 볼 수 있는 곳. 매주 월요일은 휴관. 하루에 3~4회 상영하고  매주 목요일은 독립영화를 정기적으로 상영한다. 1층 자료실에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된 모든 작품과 영화제 관련도서가 빠짐없이 구비되어 있다. 또 영화와 관련된 거의 모든 도서와 잡지, 비디오 등을 실컷 볼 수 있다.

네이버 형님에게 물어 지도를 한장 출력해 들고(네비게이션이 없다. 앞으로도 안사고 버틸 것이다) 해운대 요트경기장으로 향했다. 요트경기장의 너른 공터에서 운전연수를 받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이미 15년 전 이야기다. 해운대는 참 많이도 변했다. 그시절 해운대는 부산의 변두리였지만 최근 해운대구는 '신흥주거지와 휴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미분양 아파트 물량이 쏟아지고 부산 전역의 집값이 내렸지만 해운대구만은 아파트값이 올랐다더니.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수십층 높이의 고층아파트들이 꽉 들어차있는 해운대의 풍경은 참 위압적으로 보였다. 특히 해안선을 병풍처럼 두른  OO팰리스, OO타워 등 이국적인 이름이 붙은 아파트들은 경쟁적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그 옆엔 공사중인 또 다른 아파트들이 제 키를 키우고 있었다.

바다 풍경을 기대하고 해변로로 길을 들었는데 아차싶었다. 길은 주차장이었고 차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백화점이라고 개장 전부터 떠들썩했던 신세계센텀시티백화점으로 들어가는 차들때문이었다. 너무 혼잡해 무슨 난리가 난 줄 알았다. 몇백 미터 빠져나가는데 한참을 허비했다.

'시네마테크부산'은 생각보다 아담했다. 1층 매점에서 새우탕 한사발과 고소미 한팩을 순식간에 헤치우고 7시 30분에 상영하는 '리틀 애쉬'라는 영화를 보았다. 천재 화가 '달리'의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 이야기였다.

소극장 규모의 좌석과 아담한 스크린.
예매 안하고 무작정 찾아갔는데도 영화를 바로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자리에 앉고 1분쯤 지나면 불이 꺼지고 영화가 바로 시작한다는 점. 광고, 예고편, 비상시 대피요령 같은 것 모두 생략. 그리고 영화가 끝난후 음악이 흐르고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때까지 불을 켜주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서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을 주는 것이다. 영화의 여운을 좀 더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영화비도 참 착하다.(일반 5천원, 회원 3천원) 이렇게 좋은 곳을 왜 진작 몰랐을까. 북적이는 영화관과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식상해진 영화팬이라면 한번쯤 들러볼만한 곳이다.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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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풀소리 2010.03.19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네요. 저도 꼭 한번 가보아야겠어요.

    • BlogIcon 산지니 2010.03.19 2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꼭 한번 가보시기 바래요. 예술영화라면 지겹고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미리 겁먹을 필욘 없구요, 관람 가이드를 보면 초보입문자, 영화학도, 골수영화팬 등을 위한 단계별 추천 영화 목록도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거예요. 하지만 헐리우드 액션영화를 즐기시는 분들은 좀 힘겨울 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