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화론과 중국



“구망救亡의 길은 철도를 건설하고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 철도를 건설하고 기기를 사용하려면 서학 격치에 밝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 서학 격치는 우회로가 아니다. 구망을 말한다면 이것을 버리고서는 불가능하다” 중국 사상가 옌푸 <원강> 中

19세기 말의 중국은 격동기였다. 1840년 아편전쟁에서 무기력하게 영국에 패한 중국의 청나라 왕조는 홍콩을 영국에 굴욕적으로 넘겨야만 했고, 중국에는 농민혁명이 발발해 남경에는 태평천국이 건설되는 지경에 이른다. 청의 몰락은 기정사실이었고, 당시 중국의 지식인들은 서양 기술을 받아들여 군대를 근대화하고, 정치적 중흥을 모색하려는 양무운동을 전개한다. 바로 이 시기에 중국 청년들의 상당수가 유럽으로 유학을 다녀왔고, 옌푸도 그중 하나였다.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두각을 나타냈던 옌푸는 선정학당에서 영어를 배운 후 해군 항해사로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영국 왕립 그리니치 해군대학에서 유학을 마친 옌푸는 중국 해군을 교육하는 일에 매진했지만, 청나라는 여전히 복고적 전통에 집착하는 관료 조직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다.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옌푸는 허약한 중국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결심으로 언론가의 길을 택한다.

당시 옌푸가 쓴 글의 제목들만 봐도, 그가 얼마나 중국이 강력한 국가가 되기를 갈망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는 <강함이란 무엇인가>, <세계 변화의 빠름을 논함> 등의 글을 연이어 발표하며, 그가 영국 유학 중에 접했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 저작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옌푸는 스펜서의 사상을 통해 중국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계획하려 했지만, 스펜서의 저작물은 너무 많고 방대했다. 그런 옌푸에게 다가온 책이 바로 다윈의 불독으로 유명한 토머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라는 저술이었다. 옌푸가 <천연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이 책은 중국에서 대성공을 거두었고, 사회진화론은 당시 망국의 길을 향해 가던 중국사회의 생존윤리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천연론>에서 헉슬리는 생물학적 진화론이 인간사회의 윤리적 규범에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즉 당시 스펜서에 의해 널리 유명해진 적자생존이라는 진화의 법칙이 과연 인간사회의 윤리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를 검토했으며, 실제로 이 책의 결론은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헉슬리 스스로가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을 당대에 가장 잘 이해하고 있던 과학자이자 교육자였으며, 지적으로도 스펜서보다 훨씬 다재다능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옌푸가 번역한 <천연론>은 그 책이 중국사회에 사회진화론을 전파시킨 결론이 역사적 아이러니임을 보여준다. 즉, 헉슬리의 스펜서에 대한 비판서가, 중국에서는 사회진화론이 유행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훗날 이 책을 읽고 중국 최고의 지식인으로 성장하는 후스는 <천연론>을 읽은 당시 학생들이 그 책의 내용보다는 국제정치에서 냉혹하게 작동하는 적자생존이라는 현실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천연론>이 중국에 번역되고 소개되는 과정은 그 자체가 중국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서양의 과학기술과 학문이 중국 근대로 편입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즉 20세기 초반 중국은 당시 중국이 처해 있던 위기적 환경의 맥락 속에서 모든 서구적이고 이질적인 사상을 변용해 받아들였다.

 

과학은 어떻게 중국의 근대를 직조했는가

”‘과학구국科學救國’ 사상은 근대시기 중국의 구국 사조 가운데 하나이다. 과학구국 사상은 아편전쟁 시기에 발생해서 양무운동洋務運動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신해혁명辛亥革命을 거친 후 5.4 신문화운동을 기점으로 확실한 하나의 과학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현대 중국 과학 정책과 사상의 면모를 살펴보더라도 그 근간에 ‘과학구국’의 이념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한성구

1919년 5.4 신문화운동의 구호는 과학과 민주였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중국에 과학이 소개된 것은 아니었다. 분명 서학이라 불리는 형태로 명청(明淸) 시기에 서구 근대과학이 중국에 소개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편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중국의 지식인들은 서양의 학문을 그다지 대단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양무운동으로 서양의 천문학, 기상학, 역학, 화학, 수학, 생물학, 지질학, 지리학, 광학 등의 저술들이 번역됐지만, 보수파들의 반대로 양무운동은 중체서용 정도의 선에서 서구과학을 소개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기예의 관점에서만 서구과학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던 양무운동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변법파의 역할 덕분이었다. 변법파는 도구로서만 과학을 받아들이던 과거 지식인들의 한계를 넘어, 서양 과학을 사상으로 받아들였다. 변법파에 의해 일종의 보편적 가치체계로까지 지위가 상승한 과학은 강유위, 양계초 등의 사상가들에 의해 중국의 전통 관념을 비판하고 재구성하기 위한 일종의 사회개혁사상으로 변모하게 된다.

유신 변법운동을 거치며 과학이 중국의 전통을 혁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직조할 사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5.4운동 시기가 되면 과학은 중국을 계몽시킬 유일한 수단으로 여겨지게 된다. 5.4 신문화 운동의 기치는 반봉건, 반전통이었고, 계몽을 위한 방법으로 선택된 과학은 급진파와 보수파, 전통 사대부와 현대적 지식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 긍정하는 합치된 견해였다. 당시 과학은 새로운 중국을 직조할 유일한 방법론이자 이론이었고, 이런 분위기는 과현논쟁을 거치며 과학을 거의 종교의 지위에까지 이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과현논쟁에서 과학의 편에 섰던 지식인들은 대부분 급진주의자들이었으며, 과학이 인생관이 된다는데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1920년대의 중국에서 과학은 어떻게 보면 근대과학이 탄생한 유럽에서는 이미 그 흔적이 희미해진, 강력한 계몽사상으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던 셈이다.

신문화운동의 기세가 아무리 대단했어도, 중국이 서양 제국주의에 밀려 퇴보하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런 와중에 과학은 여러 구국사상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과학 구국은 마르크시즘과 경쟁하는 사조 중 하나로 인식됐다. 과학이 구국사상으로 자리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들은 대부분 유학생들이었고,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유학을 하던 리스쩡 등의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과학은 도구가 아니라 과학적 방법, 과학 정신, 그리고 정신의 본질로까지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들과 당시 중국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과학구국사상은 당시 중국 젊은이들에게는 일상적 구호가 됐고, 다양한 지식인들과 정치인들에 의해 1920년대 중국은 과학으로 전통을 뒤집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자는 열망에 빠져들게 됐다.

훗날 중국공산당의 초대 지도자가 되는 천두슈 또한 <신청년>이라는 잡지를 펴내며 진보적 지식인들과 함께 과학구국사상을 전파하는데 매진했었다. 천두슈에게 과학은 단순히 자연의 비밀을 발견하는 방법론을 넘어, 세계관과 인생관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이념이었다. 천두슈는 과학과 민주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했다. 천두슈와 같은 지식인들의 사고방식을 과학만능주의라고 비판한 장군매같은 철학자가 있었지만, 1920년대 중국에서 과학주의는 이들을 누르고 승리를 거뒀으며, 이후 과학적 유물론을 기초로 하는 마르크스주의가 중국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는 사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계기를 마련한다.
과학이 당시 중국사회를 직조한 핵심 사상이라는 점은, 중국 전통 내에서 과학과 비슷하게 사용되던 ‘격치 格致’라는 단어 대신, 모든 지식인들이 ‘과학’이라는 단어를 수용한 데서 알 수 있다. 양무운동과 변법운동을 넘어 5.4 신문화운동을 거치며 과학주의로까지 성장한 중국 근대의 과학은, 마르크스주의 자체에 내재돼 있는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관념을 중국이 받아들이는 마중물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즉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는 사상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주의에 기반을 둔 이데올로기로서 받아들여진 셈이다. 이러한 점은 과현논쟁에서 보여준 천두슈의 발언들에 명확히 나타난다. 당시 논쟁을 정리하는 서문을 쓴 천두슈는 과학파와 현학파 모두 이 논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고 말하면서, 오직 과학적 사회주의와 역사적 유물론만이 과학으로 중국을 구원하는 길임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구망과 계몽의 변증법 속에서 과학은 사회개혁에 있어 더욱 빠르고 실천적인 마르크스주의에 주도권을 내어주게 되었지만,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성질은 혁명의 역사적 필연성에 대한 약속을 제시함으로써 수많은 중국의 지식인들을 혁명의 열기 속으로 흡입”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사회의 기저에 스며든 사상으로서의 과학


혁명의 열기가 무르익어가던 1930년대와 40년대에, 중국사회를 주도한 이념은 분명 마르크스주의였다. 과학은 마르크스주의가 지식인들에게 받아들여지는데 큰 역할을 했지만, 표면적으로 과학을 하나의 이념이나 사상으로 내세우는 학파는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과학은 중국의 혁명 시기 수면 아래로 내려가 조용히 혁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아 보였다.

최근 중국과 미국이 새로운 냉전체제를 만들어가는 기저에는 과학기술에 대한 양국의 치열한 경쟁이 숨어 있다. 불과 지난 20여 년 동안, 중국은 상당 부분 미국의 기술력을 따라잡았고, 안면인식이나 5G 기술 등에서는 이미 미국을 뛰어넘은 것으로 평가된다. 시진핑 주석은 취임 전부터 과학기술에 대한 무차별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천인계획을 넘어 만인계획을 통해 해외의 우수한 과학기술인력을 모조리 중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중국의 과학기술정책에서 흥미로운 점은 과학기술인들이 주체적으로 이를 이끌어나간다는 점이다. 혁명이 종결되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 같았던 사상으로서의 과학은 1970~80년대 다시 중국사회에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키며 사회를 주도하는 이념으로서의 과학이 중국에 건재함을 과시하곤 했다. 중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사상으로서의 지위를 한번 획득했던 과학은, 여전히 현대중국을 이끌어가는 심장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마오쩌둥은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가 그다지 높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식 탐구자이자 사상가이자 철학자로서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섭렵하는데 큰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마오의 독서생활>이라는 책에는 그가 조지프 톰슨의 <과학대강>, 막스 플랑크의 <과학은 어디로 가는가>, 아서 에딩턴의 <물리세계의 본질> 등을 읽었다고 쓰여 있다. 1940년 혁명근거지에서 자연과학연구회가 결성되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연과학은 인류가 자유를 쟁취하는데 필요한 무기의 하나이다. 사람들은 자연계에서 자유를 얻기 위하여 자연과학으로 자연을 이해하며, 자연을 극복하고 자연을 개조하여 자연으로부터 자유를 얻는다."

물론 과학에 대한 마오쩌둥의 생각은, 과학으로 전통적이고 봉건적인 것을 파괴하고, 철저히 중국을 구국하는데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한 국가의 지도자가 조지프 톰슨과 막스 플랑크의 책을 읽으며 새로운 국가의 형태를 구상했다는 건 한국의 대통령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큰 차이임에 분명하다. 20세기 초 동아시아에는 사회진화론의 바람이 똑같이 불었고, 조선에도 과학은 분명히 큰 변화의 동력으로 다가왔었다. 도대체 중국에선 사상의 위치를 점유했던 과학이, 왜 조선과 대한제국에선 그렇지 못했었는지를 이해하는 작업은 한국사회에서 과학의 지위와 역할을 이해하고 이를 직조하는데 아주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이로운넷=김우재 박사

 

[이로운넷 원문 보기


 

천두슈 사상선집 - 10점
천두슈 지음, 심혜영 옮김/산지니

진화와 윤리 - 10점
토마스 헉슬리 지음, 이종민 옮김/산지니

 


 


Posted by 연이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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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과 역사:

 

중국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기원 1919~1937


콜럼비아대학 석좌교수이자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눈뜨기』, 『포스트모더니티의 역사들』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아리프 딜릭의 첫 저서가 드디어 국내 출간되었습니다. 


『혁명과 역사: 중국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기원 1919~1937』은 


1.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의 유가적 역사관에 일으킨 혁명을 탐구합니다.


과거에 중국에서 역사란 운명과 권선징악의 영역이었습니다. 

유물론적 역사관은 이러한 중국의 유교적 역사관에 혁명을 일으켜 

지도자의 품성이 아니라 중국 사회를 파고드는 심층적 연구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2. 역사가들이 어떻게 오늘의 혁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역사를 다시 쓰려고 했는지 했는지 보여줍니다.


역사학자들의 치열한 논쟁은 지적 유희가 아니라 철저히 실용적인 것이었습니다. 

혁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과거를 이해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혁명과 역사』는 오늘날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이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재에도 시사점이 있는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중국을 더 깊이 이해하고, 오늘 여기에서 행동하는 데에 이 책이 보탬이 되길 바랍니다! 






마르크스주의, 중국의 역사관에 혁명을 일으키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눈뜨기』,『포스트모더니티의 역사들』의 저자이자 35년간 미국 듀크대학에서 역사와 인류학 교수로 재직한 아리프 딜릭의 『혁명과 역사』가 국내 출간되었다. 중국 역사학의 혁명기를 다룬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에 소개된 이후 중국의 역사가들이 어떻게 유교적 역사관을 넘어 사회 자체에서 발전의 동력을 찾는 전대미문의 작업에 천착했는지 보여준다. 약 20년에 걸친 열띤 논쟁을 통해 중국에서 역사는 권선징악과 운명의 영역에서 사회경제 구조의 내재적 힘들이 상호작용하는 변화의 장으로 바뀌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유물론적 역사 개념은 공식적인 비호를 받으며 역사학계를 독점했고, 수많은 인민들에게 전파되었다. 저자는 “역사적 유물론은 공산주의가 20세기 중국 사회에 야기한 혁명적 변화에 대한 지적 영역에서의 대응물”이라 말한다. 독자들은 『혁명과 역사』를 통해 오늘날 중국 역사의 근저를 이루는 주요 역사학자들의 공헌과 한계를 파악하고, 혁명을 꿈꾸었던 역사학자들의 뜨거운 논쟁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1919년에 일어난 5·4 운동. 러시아혁명의 영향을 받았다.


“오늘날 혁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과거 이해하기”

신문화운동 이후, 사회문제 부각되자 주목받은 마르크스주의 역사관

『혁명과 역사』는 근대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적 역사 해석의 기원과 발전에 대한 ‘사상의 역사’이다. 그러나 이 책은 상아탑에서 벌어진 지적 유희를 다룬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에 있어 역사는 단순한 취미의 대상도 아니며 학문적 사업도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기능적이며 현저히 실용적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절박하게 역사를 이해하려고 했다. (…) 당대 사회의 발전의 동력에 관한 비밀이 역사 안에 담겨 있다고 믿었고, 스스로 사회의 운명을 변화시키고자 열망했기 때문이다. (…) 그들의 역사학적 노력은 20세기 초부터 내려온, 중국 역사와 당시의 시대적 변화의 요구를 일치시키려는 역사 다시쓰기의 최신의 경향을 대표했다. 

_서론, 20쪽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은 어떠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했는가? 191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신문화운동은 인습 타파를 선언하며 전통적 역사 해석의 권위를 손상시켰다. 유가적 역사관에서 역사는 인간의 행동을 인도하는 영속적인 도리들이 운명으로 발현되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신세대를 길러내려는 신문화운동 사상가들이 가족 조직과 여성의 지위와 같은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를 역사적 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이해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이 주목받게 되었다. 정치적이고 지적인 현상들을 규정하고 형성하는 사회적 공간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역사적 유물론이 역사적 방법으로서의 미덕뿐만 아니라 혁명의 문제와 연관되었기 때문에 이 시기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호소력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역사적 유물론이 중국인들에게 주목받은 1920년대 중반은, 마르크스가 역사 이론을 형성한 시기의 유럽이 그러했듯이 낡은 질서의 파괴와 새로운 세력의 등장에서 사회의 혁명적 변화가 나날이 확연해지던 때였다.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의 “주요한 관심사는 현재에 혁명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과거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사회역사논쟁의 주요 논자들이었던 타오시성(左), 궈모뤄(右)


국공 연합의 붕괴를 전환점으로 시작된 ‘사회역사논쟁’

계급투쟁이 시급한가, 봉건·제국주의 세력 파괴가 우선인가?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진행된 혁명운동은 중국에서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정치 발전의 전환점이 되었다. 1925년까지 혁명은 주로 정치적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인식되었으나, 점차 계급투쟁 측면이 부각되면서 1927년에는 결국 국공연합이 해체되었다. 계급투쟁이 먼저인지, 봉건 엘리트와 제국주의 세력을 파괴하는 것이 먼저인지에 대한 논쟁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이 대립했던 것이다. 이 논점에 대하여 트로츠키와 스탈린 사이에 벌어진 논쟁이 전해지면서, 중국에서도 비슷한 양상의 상호 논박에 불씨가 붙었다. 이것이 바로 중국 역사에 대한 본격적인 유물론적 분석을 최초로 제기한 ‘사회역사논쟁’이다.

저자는 ‘사회역사논쟁’을 1930년대 중국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적 현상”이라 명명한다. 이 열정적인 “소란”에서 국민당의 급진주의자, 공산당의 스탈린주의파, 그리고 이후 공산당에서 축출된 트로츠키주의파는 각각 중국의 역사를 다시 쓰는 분석을 내놓으며 첨예하게 대립했다. 국민당 좌파들은 계급 구조의 모호성 때문에 중국에는 지배적 계급이 없고, 정치·경제적 통합을 약화시키는 계급투쟁이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에 공산당은 계급투쟁을 통합의 선제조건으로 인식했고, 토착 자본과 제국주의 외국 자본을 구분하며 부르주아가 봉건 세력과 제국주의자들의 억압에 복종했지만 미래에 재동맹이 이루어졌을 때 혁명에 동참할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이론적으로 가장 강경했던 트로츠키파는 중국 부르주아가 외국세력과 구분되지 않으며, 해방을 위한 혁명적 투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모든 논자들은 당시 중국이 처한 곤경이 제국주의와 중국 사회의 복잡한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당시 상황의 뿌리를 역사에서 발견해 그들의 혁명 전략을 정당화하고자 했다. 이들이 중국의 봉건제와 노예제에 대해 내놓은 상이한 주장과 분기관은 중국의 역사학자들이 중국의 사료나 역사 유물론의 개념을 왜곡하지 않고 중국 역사 발전을 설명하는 포괄적 모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독창적 연구의 바탕이 된 마르크스주의 사학

사회가 변화할 때마다 역사 문제는 되살아난다

물론, 유럽의 경험으로부터 만들어진 역사 범주를 통해 중국 사회를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마르크스의 이론에서 역사 발전이 보편적 모델을 따른다고 간주할 필요는 없었지만, 혁명적 계급투쟁의 이론적 필요성을 포기할 수 없었던 중국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보편적” 모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이론적 개념과 중국 역사의 해석, 양자의 단순화였다.

중국에서 혁명이 퇴조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을 폄하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마르크스주의 사학자들의 발견은 이미 주류 사학계의 일부가 되었다. 중국의 역사가들은 마르스크주의적 모델이 제공한 새로운 중국 역사관으로부터 독창적인 연구를 이끌어냈으며, 표면적으로는 공허한 충돌의 원인이 되었던 여러 모델은 중국 사회의 다양한 면모를 파고드는 심층적 연구의 바탕이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중국을 이해하는 데에 『혁명과 역사』는 필수적인 책이다. 번역자 이현복은 『혁명과 역사』 영어 원서의 오류를 바로잡고 중국어판에 실린 중국어 1차 자료를 번역하여 언어의 치환을 넘어서서 깊이 있는 자료를 구성했다.

역사 문제는 사회 변화의 순간마다 거듭해서 되살아난다. 중국에서 혁명의 문제가 지속되는 한, 역사의 문제 또한 새로이 등장할 것이다. 중국의 역사학자들이 그린 혁명의 청사진을 추적하며, 우리나라의 독자들도 ‘실천’이라는 오래되었지만 빛바래지 않은 단어를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출처: Centre for the Study of Developing Societies

지은이 : 아리프 딜릭(Arif Dirlik)

1940년 터키 메르신 출생. 이스탄불 로버트대학에서 전기공학으로 학사학위를, 뉴욕 로체스터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로 중국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역사, 인류, 문화, 정치 등 다양한 방면의 연구와 저술활동을 전개해왔다. 듀크대학에서 역사와 인류학 교수로서 35년을 재직하였고 2001년 오레곤대학으로 옮겨 사회과학 석좌교수(Knight Professor)로 역사와 인류학을 연구하고 가르쳤으며 비판이론과 다국적 연구센터(Center for Critical Theory and Transnational Studies)의 센터장으로 재직했다. 이외에도 홍콩중문대학, 브리티시 콜럼비아대학, 빅토리아대학, 캘리포니아대학,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중국 칭화대학 등에서 석좌교수, 명예교수 등으로 재직했으며 2016년 2월에 브리티시 콜럼비아대학에서 석좌교수(Green Professor)로 임명될 예정이다.

대표 저서로는 Revolution and History: Origins of Marxist Historiography in China, 1991-1937, The Postcolonial Aura: Third World Criticism in the Age of Global Capitalism, Culture and History in Postrevolutionary China: The Perspective of Global Modernity 등이 있으며 국내에서는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눈뜨기』,『포스트모더니티의 역사들』이 번역 출간되었다.


옮긴이 : 이현복

1971년 서울에서 출생해 고려대학교에서 중국근현대문학을 전공했다. 2011년 고려대학교에서『청말 新政時期 문학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고려대학교 중국학연구소에서 청말부터 중국 현당대에 이르기까지 문화 및 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淸末 도덕 개혁의 一端-譚嗣同의 『仁學』을 중심으로」, 「1930년대 중국 문예에서의 자유와 진실의 의미-自由人ㆍ第3種人論爭의 再考」 등이 있다. 역서로는 『무중풍경』(공역), 『타이완의 근대문학』(공역) 등이 있다.


차례




혁명과 역사: 

중국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의 기원 1919~1937

아리프 딜릭 지음 | 이현복 옮김 | 신국판 336쪽

978-89-6545-325-3 93910 | 28,000원 | 2016년 2월 15일 

중국 역사학의 혁명기를 다룬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가 중국에 소개된 이후 중국의 역사가들이 어떻게 유교적 역사관을 넘어 사회 자체에서 발전의 동력을 찾는 전대미문의 작업에 천착했는지 보여준다. 약 20년에 걸친 열띤 논쟁을 통해 중국에서 역사는 권선징악과 운명의 영역에서 사회경제 구조의 내재적 힘들이 상호작용하는 변화의 장으로 바뀌었다. 『혁명과 역사』를 통해 오늘날 중국 역사의 근저를 이루는 주요 역사학자들의 공헌과 한계를 파악하고, 혁명을 꿈꾸었던 역사학자들의 뜨거운 논쟁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혁명과 역사 - 10점
아리프 딜릭 지음, 이현복 옮김/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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