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서협동조합'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5.04.23 부산양서협동조합
  2. 2014.04.01 부산 민주화운동의 거목-『최성묵 평전』(책소개) (1)

1979년 부마민주항쟁과 부산 민주화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던 양서협동조합이 다시 문을 연다고 합니다. 1979년 11월 19일 강제해산된 지 36년 만의 일입니다.

 

아래는 부산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던 부산 중부교회 고 최성묵 목사(1930∼1992)의 삶을 기술한 『최성묵 평전평전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중부교회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양서협동조합(약칭 양협) 운동이다. 양협은 중부교회를 중심으로 모인 청년그룹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양서를 매개로 한 소비자협동조합운동이다.

 

(중략)


양협은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고(문호 개방의 원칙), 출자액에 관계없이 1인 1표의 권리를 가지며(경제적 민주주의의 원칙), 일체의 정치적, 종교적 중립을 지키고(중립의 원칙), 민주적 관리를 통하여 민주적 관리능력을 배양하며(민주적 운영 관리의 원칙), 조합원의 재교육을 통하여 조합의 발전을 이룩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한다(교육의 원칙). 그 밖에도 품질 본위의 원칙, 시가판매의 원칙, 구매고 비례 배당의 원칙, 자본의 이자 제한의 원칙, 현금 거래의 원칙 등이 있었다.


부산 양협은 조합원 가입에 대해 문호개방의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초기에는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사람 2인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가입할 수 있었고, 창립 이후에는 조합원 2인 이상의 추천을 받아서 가입할 수 있었다. 조합원은 의무적으로 매달 1천 원 이상 출자를 해야 했는데 1인이 출자 총액의 1/10 이상 출자를 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재정 지원을 위한 다액 출자가 있어도 그 비율을 넘지 않도록 고심했다.


부산 양협의 조합원이 되면 매달 책 2권 이상을 구입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또 조합원이 소장한 책 가운데 양서 2권 이상을 구입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또 조합원이 소장한 책 가운데 양서 2권 이상을 조합에 기증하게 하여 이 책을 정가의 1/10 또는 1/5의 대본료를 받고 1주일간 대여하기도 했다. 참고로 당시 부산 양협의 조합원들이 가장 많이 읽었던 서적들은 다음과 같다.

 

『어느 돌멩이의 외침』(유동우),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저 낮은 곳을 향하여』(한완상), 『뜻으로 본 한국역사』(함석헌), 『백범일지』(김구), 『노동의 새벽』(광민사), 『미국노동운동비사』(백범사상연구소), 『소외란 무엇인가』(에리히 프롬), 『피억압자를 위한 교육학』(파울로 프레이리), 『씨알의 소리』(월간지), 『대화』(월간지)

 

(중략)

 

양서협동조합이란?

 

1. 좋은 책을 벗삼아 살고자 하는 시민들이 신뢰와 협동의 인간관계를 기초로 모여서 좋은 책을 판매・보금・출판하려는 새로운 형태의 소비자협동조합이다.

 

2. 좋은 책을 매개로 지역사회의 인적・물적・문화적 자원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지역사회를 개발하고 시민문화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키우면서 문자 공해를 추방하고 새로운 지적 풍토를 조성하려는 문화운동체이다.

 

3. 끊임없는 성인교육・사회교육을 통하여 타성과 무기력・무관심을 타파하고 작은 힘을 모아 우리 경제의 잘못된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새로운 형태의 생산조직을 만들어가는 구조개혁운동체이다.

 

4. 물질・기능・권력의 위력이 인간성을 앗아가는 비정한 오늘의 세태에 도전하여 신뢰와 협동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 진정으로 인간이 역사와 삶의 주인이 되는 사회를 건설해가려는 인간회복운동체이다.
 
(중략)

 

부산 양협은 출범과 함께 조합원이 매달 크게 늘어나면서 규모가 커져 갔다. 1978년 4월 창립 당시 107명이던 조합원이 1978년 5월 5일 현재로 152명으로 늘어났고 출자금은 1,543,000원, 도서판매액 543,255원을 기록하고 있다. 1978년 말에 가면 조합원 수는 298명으로 거의 3배나 증가했다. 이렇게 조합원이 늘어나면서 부산 양협은 세미나와 강연회, 학습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조직했다. 1978년 6월 2일부터는 조합원이 같이 참여하는 금요 세미나를 실시하여 매주 지속했다. 1978년 9월 26일에는 독서 주간을 맞이하여 ‘한국인의 지적 풍토와 독서 경향’을 주제로 문학평론가 임헌영 씨의 초청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1978년 하반기부터는 조합원 소모임으로 도시문제 연구모임, 농촌문제 연구모임, 시사문제 연구모임 등 사회문제 학습모임과 사진반, 연극반, 꽃꽂이반 등 취미 모임도 생겨났다.

 

(중략)


부산의 양협이 성공을 거두면서 양서협동조합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었다. 마산(1978. 8), 대구(1978. 9), 서울(1978. 11), 울산(1979. 1), 광주(1979. 3), 수원(1979. 5)에 양서협동조합이 결성되었고 전주, 인천 등에서도 결성을 준비하고 있었다.

 

1979년 3월 5일에는 협동서점이 중구 대청동 1가 38번지로 확장 이전하게 된다. 그해 6월 23일에는 부산양협 주최로 농촌 현장 활동을 위한 ‘강변의 축제’를 개최하여 농촌활동을 위한 모금을 하고, 7월 16일부터 25일 사이에 농촌 현장활동 봉사단을 경남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 율림부락에 파견하기도 했다.

 

1979년에도 조합원은 꾸준히 증가하여 1979년 9월 30일 현재의 자료에 의하면 조합원 수 501명, 출자금 5,002,000원, 도서 판매액 12,766,289원이었다. 운영 상황도 1979년 1월 1일부터 7월 31일 사이의 손익계산서에 의하면 1,301,894원의 매출이익을 올리고 있었다. 김희욱에 의하면 1979년 11월경 회원 수는 최소한 600명 이상이었으며 회원 구성을 보면 대학생, 일반 시민, 가정주부, 그리고 고등학교 학생까지 회원으로 가입했다. 전체의 거의 50%는 대학생 층이었고, 일반시민들은 주로 회사원으로서 전문직종 종사자들이 많았다. 직업으로는 판사, 변호사, 목사 등이 있었고 그 밖에는 교사가 가장 많았다. 성별로는 남성이 75%, 여성이 25% 정도 되었고,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의 젊은 층이 주류(80% 이상)를 이루었다.

 

당시 부산 양협의 실무를 맡아보았던 박철수는 양협이 빠르게 성장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부산양협의 회원 확대는) 기독교 교회의 전도 방식과 비슷했다고 생각됩니다. 조합원이 조합원 신입교육을 받고 취지에 흔쾌히 찬동하고 자기가 제일 친한 친구들을 데려와 소개해주고, 순수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과 사귈 수 있다는 매력, 뭐 이런 것들이 주원인이 되겠지요. 또 전혀 위법이지 않다는 점도 있었고, 나중에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을 주도한 문부식, 김은숙도 내가 소개해서 협동서점의 멤버가 되었고요. 당시 서울 등지에서 양협을 통해 비밀스럽게 배포되곤 했던 유인물도 많이 나눠 보기도 했고요.

 

-『최성묵 평전』본문 164~170p

 

 

 

 


 


『최성묵 평전


차성환 
지음

인문 | 신국판 | 384쪽 | 20,000원
2014년 3월 21일 출간 | ISBN : 
978-89-6545-243-0 03990


부산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던 부산 중부교회 고 최성묵 목사(1930∼1992)의 평전이다. 종교인의 자세를 잃지 않으면서도 사회 참여의 길도 외면하지 않은 참 종교인의 삶을 그렸다. 
평범한 전도사이자 교사였던 최성묵이 사회현실에 눈을 뜬 계기는 4·19 혁명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품에 안겨 있던 개신교가 4월 혁명 이후 사회정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최성묵도 현실참여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최성묵 평전 - 10점
차성환 지음/산지니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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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묵 평전

-부산 민주화운동의 거목




중부교회의 최성묵 목사를 집중 조명한 『최성묵 평전』은 그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줌으로써,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어두운 시대 속에서 시련과 고초를 겪으며 신념을 지켜온 한 개인의 삶을 되살리고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 안에 위치한 ‘중부교회’는 부산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던 곳으로 이 교회의 정신적 지주였던 최성묵 목사를 중심으로 부산지역 유신 독재를 향한 민주화운동이 촉발될 수 있었다. 이처럼 기독교계의 지도자만이 아닌 재야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이기도 한 최성묵 목사의 삶을 통해 민중과 함께 호흡하며 사회운동의 길을 실천하는 종교인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저자 차성환은 최성묵 목사의 삶을 생생하게 복원하기 위해 주위 인물들의 다양한 증언과 자료들을 통합하여 평전 속에 집대성하였다.




종교인으로서 현실 참여를 각성하다

6·25 전쟁 당시, 빨치산 대장의 손에 체포되어 총살의 위기에 처한 청년기의 최성묵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신음하면서 만약 살게 된다면 남은 생을 하느님께 바치겠다고 맹세했고,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 신학교에 진학하였다. 평범한 교사이자 교회 전도사였던 최성묵을 각성하게 한 사건은 4월 혁명 이후였다. 그간 이승만 정권의 품 안에 있던 한국 기독교계가 4월 혁명 이후 일련의 변화를 겪으면서 사회정의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최 목사 또한 현실참여의 동인을 갖는다. 당시 진보적 기독학생운동을 이어가던 최성묵 목사는 부산의 대학생운동을 지도하던 이들로부터 부산행을 제안받아, 지역운동의 가능성을 품고 가족들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온다. 최 목사의 부산행 이후 대통령 박정희가 ‘10월 유신’을 선포하며 유신체제의 암울한 정치가 시작되었다.



양서협동조합과 부마항쟁
거리는 저항의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최성묵은 이날 밤 늦도록 시위대의 함성과 구호 소리를 들으며 전율하기도 하고, 때로는 최루탄 가스에 괴로워하고, 경찰 차량이 뒤집혀져 불타는 광경을 놀라움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최성묵의 가슴은 주체하기 어려운 흥분으로 방망이질 쳤다. 권력의 압제에 짓눌려 있던 민중들이 일어서는 광경을 눈앞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다. 그가 심취해 있던 민중신학이 현실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16일 밤 자정이 넘어 교회로 들어왔다. 잠을 청하기 위해 자리에 누웠지만 좀체로 잠이 오지 않았다. 거리에서 아우성치던 시민들의 함성이 귓가를 맴돌았다. _「부마항쟁의 불꽃이 타오르다」에서

제2의 도시라지만 너무나 외진 변방과도 같았던 부산에서 최성묵은 우여곡절을 거쳐 YMCA의 총무직을 맡게 된다. 1977년 이후에는 중부교회 목사로서 교회를 민주화운동의 소통 공간으로 만들었는데, 이때 중부교회의 스터디그룹에서 발기한 양서협동조합은 양서를 읽으며 시민의식을 고취시키자는 취지에서 출발하였다. 초기에 정치색을 배제하고 시민들의 교양을 도모하기 위해 출범되었던 양서협동조합은 조합원이 점점 늘면서 세미나와 강연회, 학습모임 등 다양한 활동으로 조직되었다. 유신체제의 억압 속에서 양서협동조합 운동을 통해 부산지역 학생들이 정치의식에 눈뜨는 등 훗날 이어질 민주화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하였다. 유신 정권은 양서협동조합을 부마항쟁의 배후로 조작하고자 최성묵을 희생양으로 지목하였는데, 계엄합동수사단의 고문 조작이 이어지는 와중에 발발한 10․26 정변으로 박정희가 사망하면서 최성묵 목사는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6월 민주항쟁 때 최성묵 목사(오른쪽에서 세번째) 모습. 가운데 영정을 들고 있는 사람이 故 노무현 대통령.



십자가를 지고 민주화의 길로, 실천하는 종교인의 모습
유신체제의 붕괴로 민주화가 될 것이라는 기대는 전두환 정권 이후 다시 무너지게 된다. 신군부 세력은 광주학살의 피비린내를 풍기며 철권통치를 자행하였던 것이다. 부산의 경찰과 정보기관은 부마항쟁 당시 부산의 민주화운동 세력을 파악해 그들을 ‘부림사건’이라는 이름하에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만들고자 했다. 이때 최성묵 목사는 부림사건 구속자 가족에게 기도회 장소를 제공하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는데, 전두환 정권의 경찰은 수시로 그에게 압박을 가했고 교인들 또한 당국의 압력을 받았다. 부산민주시민협의회 등 여러 활동을 이끌어가면서 군부독재에 맞선 최성묵 목사는 6월 항쟁에서 온몸을 던져 투사의 모범을 보였다. 그가 십자가 행진으로 민주화의 길을 걷는 동안, 대한민국 또한 독재 권력이 굴복함으로써 현재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의미가 퇴색하고 있는 요즈음, 그의 삶은 다시금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돌아보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평생에 걸쳐 민중과 민주주의에 헌신했던 최 목사의 삶을 통해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 ‘실천하는 종교인’의 모습과 더불어 오늘을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글쓴이 : 차성환

1953년 마산 출생

1973년 부산고등학교 졸업

1989년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조경학과 졸업

2009년 8월 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 박사학위 취득(학위 논문「참여노동자를 통해서 본 부마항쟁 성격의 재조명」)

2005년∼2007년 부산민주공원 관장

2006년∼현재까지 부산대, 해양대, 부산교대, 동아대, 경성대 등에서 강의

2006년∼현재까지 부마항쟁 및 민주화운동 관련 연구 및 구술 작업

현재 민주주의사회연구소 운영위원, 부산대학교 사회교육연구소 전임연구원

공저 : 『동아시아와 근대의 폭력』, 『1970년대 민중운동연구』, 『양서협동조합운동』, 『유엔기념공원과 부산』, 『작은이들의 벗, 김영수 목사』

저서 :『부마항쟁과 민중』





『최성묵 평전

차성환 지음

인문 | 신국판 | 384쪽 | 20,000원
2014년 3월 21일 출간 | ISBN : 
978-89-6545-243-0 03990

부산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던 부산 중부교회 고 최성묵 목사(1930∼1992)의 평전이다. 종교인의 자세를 잃지 않으면서도 사회 참여의 길도 외면하지 않은 참 종교인의 삶을 그렸다. 평범한 전도사이자 교사였던 최성묵이 사회현실에 눈을 뜬 계기는 4·19 혁명이었다. 이승만 정권의 품에 안겨 있던 개신교가 4월 혁명 이후 사회정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최성묵도 현실참여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차례



+출판기념회의 모습


한울타리 중창단


한울타리 중창단의 공연으로 평전 출판을 기념했습니다. 책에도 언급되었지만, 최성묵 목사는 장애인 교육 사업 등 사회사업에도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습니다.


책의 저자이신 차성환 선생님


책의 저자이신 차성환 선생님이 그간 평전을 집필하기까지 경과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처음 평전 집필을 결심하시고, 사료나 증언이 부족해 생각보다 집필이 늦어졌다며 묵은 짐을 덜게 된 느낌이라 출간 소회를 말씀하셨습니다.


 

최성묵 평전 - 10점
차성환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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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온수입니까 2014.04.04 0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 만든다고 고생했어요^^ 그 당시 부산의 민주화투쟁도 알 수 있어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