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서평]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IT회사 그만두고 독립서점 차린 이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무엇이든 빠르게 할 것을 요구받는다. 사람들은 빠른 속도를 좋아한다. 때문에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신속, 정확하게 해내야 한다고 교육받고, 등교시간에 늦지 않게 빨리 준비해야 한다.

 

빠른 일처리는 유능한 직원이 가져야 할 기본 소양이다. 도심에 위치한 직장 근처에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지하철과 버스를 타기 위해서 급하게 달려간다. 급하게 사람 사이를 뛰어가서 환승하고, 회사에서는 엄청난 경쟁 속에서 일을 빨리 처리해야 한다.

 

현대사회는 속도를 강요한다. 물론 느린 것보다는 빠른 것이 좋다. 택배가 빨리 오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한계를 넘어선 속도를 계속 추구하고, 속도에 중독되면 인생이 조급해진다. 그런데 사회 분위기는 속도에 중독될 것을 요구하고 이 문제를 가중시키고 있다. 인생의 속도를 점점 빠르게 높이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의 고유한 몸과 마음의 속도를 택한 사람이 있다.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는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윤성근씨가 현대 사회의 병폐와 속도의 문제를 말한 학자 이반 일리치의 글과 자신의 이야기를 섞어 만든 책이다.

 

저자는 원래 서울 강남에 위치한 회사에서 IT 업무를 하던 직원이었다. 바쁜 생활중에도 IT 관련 자격증을 꾸준히 따면서 자기 관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서버 컴퓨터 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 매우 길었지만 부지런히 살았다. 저자는 원래 남보다 느린 리듬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지만, 회사는 더욱 더 빠르게 일하기를 요구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설비들은 안정적인 관리를 위해 최대 성능이 아닌 최대 성능 이하를 구현하도록 설정되었다. 하지만 정작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본인 능력의 한계 이상을 업무에 쏟아붓고 녹초가 되어가고 있었다. 저자 역시 더 급하고 빠르게 살아가기 위해서 건강을 잃었다. 회사는 더 빠르게 살아갈 것을 요구했다.

 

 

말 그대로 '출근 전쟁'이다.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매일 아침 전쟁을 한판 치르고 나서야

회사건물 입구에 닿을 수 있었다.

한 번은 직원회의 시간에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달라는 건의가 나왔다.

그랬더니 돌아온 답은 더 충격적이었다.

편하게 출근하고 싶다면 지하철 첫차를 타면 된다는 것이었다.

유용한 예까지 들어줬다.

일찍 출근한 다음 회사 근처에 있는 영어 학원에서

 아침 6시에 시작되는 강의를 들으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73P

 


그러던 저자는 이반 일리치라는 학자의 책을 읽게 된다. 그가 쓴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그림자 노동>을 읽고 저자는 '삶'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앞서는 '생활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일하고 돈버는 것에 앞서서 그와 균형을 맞추는 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퇴사한 저자는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헌책방을 차리기로 하고 은평구 녹번동에 헌책방을 차린다. 이 헌책방 이름이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이다. 헌책방 이름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하는 저자가 지었다.

 

이상한나라의헌책방에는 다른 헌책방과 다른 매우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운영 시간이다. 저자는 일련의 경험을 통해 현대사회는 속도감에 중독되어 있고, 필요 이상의 속도감을 발전시킨 현대사회는 속도가 인간을 앞질러 좌절에 빠뜨리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은 이반 일리치의 절제의 사회라는 책의 내용을 저자가 인용한 것이다.

 

 

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생활방식을 수송수단에 맞추는 움직임은 더욱더 전제적이 된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더욱 짧은 시간으로 쪼개어

계속 수정하고 개정할 필요가 생겨난다.

몇 달 전에, 또는 몇 년 전에 예약하거나 결정할 필요가 있게 된다.

이러한 결정의 몇 가지는 엄청난 비용을 계속 지불해야 하는 것이어서

결국 지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긴장감을 낳는 지속적인 실패감이 있게 된다.

 계획화에 복종하는 인간의 능력은 한정된 것일 수밖에 없다.

 

-63P

 

저자는 그래서 자신의 생활 리듬과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근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저자는 점점 더 빠른 속도를 강조하는 다른 사람의 시간관념과 다른 자신만의 속도에 따라서 생활한다. 때문에,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은 일주일에 4일만, 그것도 점심이 한참 지난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문을 연다.

 

다만 이렇게 헌책방을 운영하면 임대료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쉽지 않다. 이상한나라의헌책방이 만들어진 2000년대 중후반은 아직 독립 서점이 자리잡기 전이었다. 저자는 서적의 물량을 중점으로 하는 헌책방을 택하는 대신 문화 교류의 장소로서 기능할 수 있는 헌책방을 만들기로 한다.

 

이렇게 장사해서는 1년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업계인의 조언을 뒤로하고, 자신만의 헌책방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심야책방'을 열어서 밤늦게까지 서점을 열고, 가수를 초청하여 음악과 함께하는 헌책방을 운영했다.

 

그리고 헌책방과 책과 관련된 자신만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책으로 썼다. 소비도 줄였다. 회사에 다닐 때와 달리 전문가가 추천하는 최신형의 물건을 사지 않고 더 단순한 물건을 구매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저자는 지금 더 말할 필요도 없이 좋고 기분이 상쾌한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을 사는 것도 어렵지만, 매일 매일의 생활을 제대로 유지해서 사는 것도 쉽지가 않다. 생활을 뒤로 하더라도 더 중요한 과업을 달성해야 할 것 같고, 남이 추천하는 물건을 유행에 맞게 사서 재빠른 삶을 사지 않으면 안 될 것같은 분위기가 존재한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더 급해지고, 느린 사람은 스트레스 받기 좋은 환경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윤성근씨는 그런 인생을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자신의 생활을 정돈했다. 바삐 살면서 우선순위가 밀려나는 자신의 생활 리듬이 마음에 들지 않는사람, 헌책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자의 독특한 삶에 흥미가 갈 것이다.

 

 

 최종인 시민기자

 

기사원문 보러가기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 10점
윤성근 지음/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10% 할인, 3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마이뉴스



친구 조혜원의 맛깔나는 시골살이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소개합니다



혜원과 수현, 그이들이 어느날 갑자기 떠났다. 앞집에 살면서 10년 가까이 친한 이웃으로 지내던 부부였다. 그들이 이제 그만 서울 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가 살겠다는 청천벽력 같은 결정을 지인들에게 알렸다. 성실하게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어디에서 살아야할지 살펴보러 간다며 며칠씩 훌쩍 떠나 우리나라 곳곳을 무진장 쏘다니기 시작했다.


특별하게 연고가 있는 곳도 없고, 먼저 내려가 안정적으로 정착한 귀촌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모아둔 돈이 많아서 여유를 부리며 느긋하게 내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하나 더듬거리며 자신들이 알아서 준비해야 하는 귀촌이었다. 그럼에도 그이들은 평온했고 의지는 결연했다.


어디론가 떠났다 돌아오면 한동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이들을 만났다. 혹여나 내려갈 만한 곳이 마땅치 않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귀촌을 접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내심 들었기 때문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선택을 존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 옆에서 이웃으로 더 있어주길 바라는 속좁은 마음이 불쑥불쑥 들었다. 


허허, 그러나 그이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이번에 다녀온 곳에서 본 산과 들, 계곡,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마음에 들어찼는지 이야기하기 바빴다. 지금에야 고백하자면 응원하는 마음으로 귀기울였지만 무언가 꼬투리를 잡아 주저앉히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 간신히 억누르곤 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이들은 내가 도시에서 사귄 가장 가까운 이웃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삭막하다고 도리질을 하는 도시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도시의 익명성이 주는 적당한 단절이 평화로운 해방감 같은 것을 전해 줬다. 


나는 산골에서 나고 자라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단순한 관심을 넘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집요하리만치 꼬치꼬치 간섭하는 초밀착형 인간 관계에 넌더리가 난 터였다. 도시에 살면서는 이웃끼리 지킬 것은 지키고 민폐 끼치지 않는 선에서 거리를 두고 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러던 차에 맺게 된 이웃지기니 더 각별했다. 


서울에 살 때 혜원이는 일 중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일에 열심이었다. 그녀는 월간지 만드는 일을 하는 출판 노동자였고, 다달이 돌아오는 마감이면 며칠 동안 야근을 했고, 자주 술을 마셨다. 그런데 집에서 밥 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이들이 사는 빌라에서 만날 때는 대부분 맥주와 안주, 주전부리가 상 위에 올라왔었다. 오히려 주방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건 혜원의 옆지기였다. 


그랬다. 혜원이 성정은 털털하고 작은 일에도 마음을 잘 내어주고 사람 좋아하는 기질이 다분했지만, 기본적으로는 도시 생활을 하는 직장인이었다. 도시에서의 삶은 구조적으로 '먹고사는 일'에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돈 버는 일'에 최대한 집중하도록 짜여져 있다. 


그렇게 번 돈으로 끼니를 대충 해결하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농사일을 해본 적도 없다. 동네에서 지인들과 꾸리던 텃밭에서조차 그녀는 좀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랬던 그녀가 귀촌을 하다니! 그러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는가. 


혜원이 2013년에 귀촌해서 생활한 5년여의 시간을 담은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라는 책을 냈다. 이들 부부가 처음으로 삶의 터전을 잡은 곳은 전북 장수군 천천면이었다. 어떻게 이런 곳과 연이 닿았나 싶을 정도로 동네에서 한참 벗어난 외딴 집이었다. 



 혜원이 2013년에 귀촌해서 생활한 5년여의 시간을 담은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라는 책을 냈다.
▲  혜원이 2013년에 귀촌해서 생활한 5년여의 시간을 담은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라는 책을 냈다.
ⓒ 산지니


집 앞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이 있고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섰다. 둘레가 온통 자연이다. 이러니 자연과 친해질 수밖에 없지. '천천이'라는 강아지 한 마리가 가족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새로운 삶을 꾸려갔다. 손전화와 인터넷 연결이 잘 되지 않는 산골짜기였다. 지금은 번암면으로 삶터를 옮겼다. 열 가구 남짓 되는 마을로 드디어! 입성한 것이다.  


이 책에는 성공적인 귀촌을 위한 안내나 근사한 자연 요리법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봄, 여름, 가을, 겨울 바뀌는 계절에 따라 자급자족하는 삶에 대한 충실한 일상이 담겨 있다. 도시쟁이였던 그녀가 봄내음을 맡으며 냉이, 취, 잔대, 머위니 고사리 같은 산나물을 뜯고, 숲에서 자라는 버섯을 따고, 뽕나무 잎이나 찔레꽃을 덖어 차를 만들고(나는 덖는다는 말이 참 예쁘다),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구별할 수 있게 되고, 슬근슬근 톱질을 해서 박을 가르고, 벌레가 야무지게 뜯어먹어 구멍 숭숭 뚫린 망사 배추를 만나고, 고라니한테 당근을 반강제로 내어주고, 메주를 띄우고, 모든 과정을 손수 준비하는 김장을 하고, 도끼질을 하게 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아, 무언가를 썰어서 말리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나물을 비롯해서 대봉감, 무우, 호박, 박이며 가지가 햇볕과 바람을 맞으며 말라간다. 겨우내 식량이 될 귀한 녀석들이다.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이토록 알콩달콩하게 펼쳐지다니. 



 책에는 무언가를 썰어서 말리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  책에는 무언가를 썰어서 말리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펼쳐진다.
ⓒ 조혜원



오히려 시골살이에 대한 선입견이나 경험이 없어 순수한 호기심과 자유로움이 깃든 모양새다. 그게 참 좋다. 텃밭 농사를 하고 들과 산으로 다니면서 자연을 배우고 자연에서 먹을거리를 얻는 모습이 신통방통하고 재미나다. 


읽다보면 정말 '먹고사는 일'의 고단함과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 다람쥐처럼 부지런하게 오가면서 씨 뿌리고 김매고 보살피고 거두고 보관하고 말리고... 끝없이 이루어지는 노동! 그래서 마련한 밥상은 따뜻하고 정겹다. 가끔은 서툰 농사꾼, 살림꾼의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실패담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그 세월 동안 웃음만 있었겠는가. 멀리서 보기에는 시골살이가 단순한 것 같아도 하루도 쉴 날 없이 이어지는 육체 노동에 이웃끼리 벌어지는 감정 노동과 부대낌에 마음 고생도 제법 했을 것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젊은 부부는 마을 터줏대감들에겐 호기심의 대상이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젊은 일꾼으로 생각하기 쉬웠을 거다. 그래도, 웃으며 묵묵히 살아간다. 


뿐인가. 삶의 터전은 바뀌었지만 사람들이 찾아드는 건 변함이 없다. 서울 살던 빌라에서는 술상이 차려졌지만, 장수에서는 자신들이 가꾸고 채취한 재료들로 만든 자연 밥상이 차려진다. 사람들은 걸핏하면 장수로 간다. 아무일이 없어도 가고, 휴가라서 가고, 심심해서 가고, 큰일을 앞두고 가고, 큰일을 치르고 가고. 우리들의 쉼터가 되었다. 나도 결혼을 앞두고 지금의 옆지기와 장수에 갔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건 지방선거를 앞둔 후보에게 더덕더덕 표가 붙으라고 직접 담은 더덕주를 안겨주고, 산에 가면서 눈여겨봐 둔 더덕을 직접 캘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찾아올 사람들을 생각하며 밥상을 차리고, 맞춤한 그림들을 그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어디를 가든 웃으며 사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그리고 찔끔 눈물이 난 이야기 하나. 서울 살 때는 시어머니가 보내준 먹을거리를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냉장고에 턱 넣어두고, 먹을 타이밍을 놓치면 아무 생각 없이 하나씩 버리곤 했단다. 이제는 시어머니가 보내주는 택배 상자를 소중하게 받아들고는 꾸러미 보따리들을 열어본다. 그 모습이 울컥한다. 먹는 것을 챙긴다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나는 책을 보면서 시골에서 살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직도 시골에서 농사지어 먹을거리를 보내주는 엄마,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혜원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맞장구 칠 일도, 웃을 일도 많다. 그러면서 그리움으로 콕콕 들어와 박혔다. 나이가 들면서 시골살이에서 겪었던 불편한 마음도 잦아들었고 어쩌면 나도 언젠가 도시를 떠나 시골에 가서 살 것만 같다.


김이진(ajiva77)시민기자

기사원문 보러가기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

 

조혜원 지음 | 256쪽 | 15,000원 | 2018년 5월 11일

 

서른을 훌쩍 넘겨 서울 생활을 접고, 아무 연고도 없는 외딴 산골에 첫발을 디딘 용감한 여자가 있다. 걱정 반, 설렘 반으로 깊은 산골짜기 언덕 위의 하얀 집에 깃든 지 어느덧 5년. 작은 텃밭과 골골이 이어진 산골짜기를 벗 삼아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글 쓰는 알콩달콩 재미난 이야기를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에 담았다.  산골에서 전해온 작은 행복 이야기는 고달픈 일상에 지쳐 아슬아슬 버티며 사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면서, 살아가는 의미를 찬찬히 되돌아보게 한다.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 - 10점
조혜원 지음/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10% 할인, 3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병아리 편집자입니다.

금요일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마이뉴스에 특이한 책 제목에 대한 기사가 나왔는데

산지니에서 나온 김일석 시집

『조까라마이싱이 있기에 담았습니다^^

 

기사 전체를 읽고 싶으시면

하단의 기사 전문 읽기를 눌러주세요~

 

***

 

 

(상략)

 

'놀랍고도 이상한' 제목의 책을 수소문 하기 위해 동네서점 책방지기들의 도움도 요청했다. 청주 꿈꾸는책방 책방지기 정도선씨는 여러 권의 책을 추천했다.

<화합의 리더 박근혜>, <임금 인상을 요청하기 위해 과장에게 접근하는 기술과 방법>, <소맥황금비율>, <잃어버린 보온병>, <조까라마이싱>, <선생님이 먼저 때렸는데요>, <클럽에서 만난 남녀는 왜 오래 가지 못할까>, <죽지 않고 모터사이클>, <중2병 대사전>, <남자는 섹스말고 무엇을 생각하는가>, <판타스틱한 세상의 개 같은 일>, <오빠 알레르기> 등등.

그중에서 김일석 시인의 시집 <조까라마이싱>이 눈에 띈다. 사실 이 말은 시에 등장하는 시어다(물론 욕이기도 하다). 2014년 10월 출간 당시 출판사 산지니 블로그에는 제목에 얽힌 일화가 하나 소개된다.

사무실에서 "팀장님 제 공유폴더에 조... 까라마이싱 넣었어요", "편집장님 조까... 라마이싱 수정했어요"라고 부르면서도 '멈칫멈칫'했더라는. 처음엔 너무 제목이 세지 않나 싶었지만, 나중에는 친근해지더라는 이야기. 그 친근한 시어가 담긴 시는 이렇다.

걸레 빗자루 들고 구석구석 박박 기던
늙고 값싼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가
덜거덕거리는 무릎과 허리 곧추세워 대오를 짜니
교육 모리배들아, 느낌 어떠냐?
황당하냐?
기분 더럽나?
여태 모르겠느냐?
노동자가 노동을 멈추면 모든 게 멈춘다는 걸
에라이 니기미
조까라마이싱이다!
- <조까라마이싱> 일부

 

 

오마이뉴스 최은경 기자

 

기사 전문 읽기

 

 

조까라마이싱 - 10점
김일석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산그늘12 2017.10.23 11: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장님은 여전히 이 시집의 제목을 말할 머뭇거리신다. 난 아무렇지도 않게 불쑥불쑥 말한다. 시집 제목인 줄 아니까

  2. BlogIcon 산그늘12 2017.10.23 11: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금요일 행사에서 박훈 변호사가 이 시를 낭독했다. 멋있있다.
    "에라이 니기미
    조까라마이싱이다"
    하고 원고를 힘차게 날려보냈다.
    욕도 쓰기에 따라 멋있을 수 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병아리 편집자입니다♥

일이 많고 바쁘다는 핑계로 독서를 조금 게을리했더니

반성하라는 듯 제 앞에 나타난 기사를 여러분께도 보여드리고 싶어졌어요ㅎㅎ

피곤하고 힘겨운 월요일, 잠시 머리 식히실 겸 읽어보세요^^

 

기사 전체를 읽으시려면

하단에 있는 기사 전문 읽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

 

틈이 없어 책 못 읽는다는 핑계는 안 먹혀

[시골에서 책읽기] 안건모 <삐딱한 책읽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최종규(함께살기) 님의 기사입니다.

 

 

 

 

 

버스기사로 일하던 안건모 님은 버스를 몰다가 신호에 걸려서 기다려야 할 적에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 본들 책을 얼마나 읽겠느냐고 여길 분이 있을 텐데, 열 권짜리 <태백산맥>을 오직 버스를 모는 동안 한 달 만에 다 읽었다고 해요.

한 달에 열 권쯤 읽기란 대수롭지 않을 수 있을 테지요. 그러나 버스가 신호에 걸리는 작은 틈을 차곡차곡 모으니 한 달 동안 열 권에 이르는 책을 읽는 새로운 길을 연 셈이에요. 우리한테 틈이 없어 책을 못 읽는다기보다, 책을 읽는 틈을 스스로 못 내는 하루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중략)

 

그런 책 한 권을 보면 사회를 보는 눈이 트일 텐데 우리 노동자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내가 같이 일하던 버스 운전사들을 보면 1년 내내 책 한 권 읽지 않는다. 시간이 없어 못 본다는 핑계는 나한테 먹히지 않는다. "나는 운전하면서 책 읽었어." (112쪽, <전태일>을 읽고)

책읽기를 둘러싸고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바빠서 책 읽을 틈이 없다'입니다. 그러나 틈이 많아서 책을 읽는 사람이 있을 터이나, 없는 틈을 내어 책을 읽는 사람이 제법 많다고 느껴요. 요즈음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매우 크게 줄었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꾸준히 있어요. 여행을 가는 길에 비행기에서 책을 읽는 사람이 있어요. 여행을 간 곳에서 다리를 쉬면서 책을 읽는 사람이 있지요. 여행을 간 곳에서 책방을 애써 찾아가서 틈틈이 책을 손에 쥐는 사람이 있고요.

 

(중략)

 

생각해 보면 그렇지요. 애써 틈을 내고, 틈 가운데에서도 아주 작은 쪽틈을 내는데, 아무 책이나 손에 쥘 수 없어요. 스스로 새롭게 거듭나도록 일깨우는 책을 읽으면서 즐거워요. 스스로 새롭게 바라보도록 가르치는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어요. 스스로 새롭게 살림을 짓도록 돕는 책을 읽으면서 사랑스럽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삐딱한 책읽기란 아직 평등하지 않고 평화롭지 않으며 민주하고 동떨어진 이 나라에서 평등·평화·민주를 찾아내어 가꾸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읽는 모습이나 몸짓일 수 있습니다. 평등·평화·민주하고 엇나가는 나라 흐름을 앞으로는 작은 촛불힘으로 바꾸어 내고 싶은 꿈으로 바지런히 책을 읽습니다.

 

덧붙이는 글 | <삐딱한 책읽기>(안건모 글 / 산지니 펴냄 / 2017.6.19. / 15000원)

 

 

기사 전문 읽기 (오마이뉴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숲노래 2017.08.02 1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겁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나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레
    책짓는 살림 꾸리셔요 ^^

빠밤~!

산지니 프렌즈의 독서회원이신 조혜원 님이 올려주신 기사입니다!!

며칠 전에 <나는 나>를 읽으시고 서평을 올려주셨는데

그 글을 다듬어서 오마이뉴스에 게재하셨네요~^^

멋진 서평이 담긴 기사를 가져왔습니다 :)

기사 전문 읽기를 누르시면 오마이뉴스 기사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

 

 

 

(상략)

 

옥중 수기지만 자서전과 다름없다. 태어나서부터 박열과 만나는 순간까지 살아온 시간들이, 그 끈적이게 아픈 흔적들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1903년에 태어났으니 한참 옛날이다.

일본 여자 가네코 후미코가 조선 남자 박열과 함께 일본에 맞서는 반제국주의 운동에 뛰어들지 않았다면, 그 때문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지지 않았다면, 지독하게 어렵고 힘들던 그 시간들은 어쩌면 우리 어머니들의 어머니들도 겪었을 법한 가슴 아픈 개인사로만 여겼을지도 모른다.

ad

"나는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하다. 그 때문에 나는 돈을 가진 자로부터 혹사당하고 괴롭힘을 받았으며 들볶였고 억압당했다. 또한 자유를 빼앗겼으며 착취당하고 지배당했다. 이런 나는 힘을 가진 자들에 대해 항상 마음속 깊이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 내 마음속에 타오르고 있던 반항심과 동정심은 순식간에 사회주의 사상에 의해 불이 붙어버렸다. 아아, 나는 우리와 같은 불쌍한 계급을 위해, 나의 모든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투쟁하고 싶다."_300쪽

 

(중략)

 

"곧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현상은 현상적으로 없어질 뿐, 영원의 실제 속에서는 존속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평안하고 냉담한 마음으로 이 조잡한 수기의 펜을 놓는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에 축복이 있기를!"_344쪽

책 한 권으로 단숨에 나를 흔들어 놓은 가네코 후미코. 나는 지금 조금은 서럽고 뜨거운 마음으로 이 조잡한 후기를 마친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다는 것이 죄가 되어, 옥에서 삶을 마쳐야 했던 가네코 후미코. 당신의 영혼에 진심으로 축복이 있기를!

 

오마이뉴스 조혜원 시민

 

 

 

기사 전문 읽기 (오마이뉴스)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결코 한국인이 될 수 없었던 베트남 여자

'이방인'과 현실 속 '이방인'이 만난 소설 <쓰엉>

 

 


조금은 불편한 내 처지를 자꾸 떠올리게 하는 소설을 만났다. 내 삶이 소설에 나올 법하다는 말은 아니고, 귀촌한 사람으로서 시골에서 '이방인' 비슷하게 살고 있는 처지를 말하는 것. 글에 나오는 소설가 '이령'이나 베트남 여자 '쓰엉'과 닮은 점은 그뿐이다. 그럼에도 감정이입이 너무 잘 돼서는 이 책을 보며 내가 사는 곳과 내 삶에 대하여 자주 생각하게 됐다.

 

 

"한국음식을 능숙하게 요리한다고 해도 쓰엉은 외국인일 뿐이었다. (…) 산골에서 나고 그곳에서 죽을 날을 기다리는 늙고 선량한 노인들은 낯선 나라에서 며느리를 들일 수밖에 없는 자신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면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노인들은 여자를 믿지 않았다. 가일리에서 평생을 살다 죽는다고 해도 쓰엉은 결코 한국인이 될 수 없었다. 그녀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시 아이를 낳더라도 이방인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18쪽)

 

 

메콩 강 처녀뱃사공으로 살다가 한국으로 시집 온 지 7년이 된 쓰엉. 그이는 이령의 집에서 밥하고 청소하는 일로 돈을 받으며 살림을 꾸린다. 굳이 외국 사람이 아니어도 할매, 할배가 많은 시골에서 낯선 젊은이는 무조건 관심 대상이다(귀촌 3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 관심이 부담스럽다). 그러니 마을 토박이 남자와 혼인한, 그것도 그 남자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외국 여자를 두고는 얼마나 말들이 많았을까.

 

보통 '관심'이라면 좋은 뜻으로 해석할 때도 많지만, 시골에서는 좀 다르다. 특히 마을 사람이 되겠다고 눌러앉은 '낯선' 사람에게는. '신기함'에서 출발해 '의심'과 '경계'까지 포함된 그 눈빛을 나는 알고 있다. 늙고 선량한 어르신들한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그 눈빛은, 마을 토박이가 아닌 한, 수십 년을 눌러 살더라도 평생 이방인들의 뒤를 쫓아올 거라는 사실도. (중략)

 

 

뒤엉켜 버린 시간들을 되돌릴 수 없었다

"그녀는 동정과 위로를 바라지 않았다. 헛된 꿈을 좇아 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고향을 떠났고 돌아갈 수 없었다. 수년 동안 갇혀 살았지만 단념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모험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젊고 아름다웠다." (98쪽)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손금을 읽듯 빤히 읽히는 삶을 벗어나고자 했던 쓰엉. 바다 건너 근본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는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운명에 순응하지 않으려 했다. 그 모험이, 늙고 야윈 할머니께 평생 만질 수 없었던 것을, 깨끗하고 아늑한 집을 가져다줄 수 있는 선택이라고 믿었건만. 그리하여 언제까지라도 할머니의 자랑이자 이웃들의 부러움을 사는 존재이고 싶었건만.

"그녀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뒤엉켜 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었다. 궤도를 이탈한 열차가 어느 곳을 향해 달려갈지 짐작할 수 없었다." (140쪽)

"그녀는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고, 힘들이지 않고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순응하며 살려면 고향집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지 말았어야 했다.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대신 가난하고 비루하지만 안전한 삶을 선택했어야 했다." (239쪽)

 

(중략)

 

 

 

'이방인'이 '이방인'을 만났을 때

"날이 저물면 어둠과 침묵에 싸이는 마을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명명되지 않은 채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져 있는 존재였다. 쓰엉은 부피와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이었다." (212쪽)

책을 다 읽고 나니 어두운 밤이다. 벌레 숨소리마저 들릴 듯한 조용한 마을이 유독 낯설게 느껴진다. 어두컴컴한 밤이 되면 딱 저 글처럼, 우리 집이 마을과 분리된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령의 하얀집처럼 외딴집이 아님에도. 

 

(중략)

 

'이방인'은 다른 나라 사람을 뜻하는 말인데도 한국 사람인 이령마저 이방인으로 그려낸 소설, <쓰엉>. 이 글을 읽는 내내 불편하고 아팠던 건, 나 또한 산골마을에서 '외지인'으로 살고 있기 때문일 거다. '외지것이 어쩌구~' 하는 소리 안 듣고 싶어서 보이지 않게 발버둥 친 시간들이 자꾸 생각나서일 거다.

나름 무난하게 귀촌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내 생각뿐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안고 살기는 한다만) 이렇게 마음이 복잡한데, 쓰엉과 비슷한 처지로 한국에 온 많은 여자들은 이 소설을 두고 어떤 생각이 들지 너무나 궁금하다. 그 가운데 누구라도, "내가 이러려고 한국에 왔구나, 참 잘 왔다. 행복하다"면서 환하게 웃어 준다면 이 불편한 마음이 좀 가라앉을 것도 같은데.

 

 

2016-11-15 | 조혜원 시민기자 | 오마이뉴스

원문읽기

 

 

쓰엉 - 10점
서성란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동글동글봄 2016.11.16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정성이 담긴 리뷰네요:) 결혼이주해온 여성을 우리 사회가 조금 더 폭 넓게 안으면 좋겠어요. 한국 문화를 강요하기보다 이주해온 여성들의 문화도 배우면서 교류하는 느낌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 곳곳에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요. 쓰엉은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닐까 합니다.

  2. BlogIcon 동글동글봄 2016.11.16 14: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뷰 감사합니다. 재미난 소설을 지속적으로 보내드려야겠어요ㅎㅎ

김비의 장편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은 160층 초호화 백화점 비상구 계단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다. 위아래로 끝없이 이어진 계단이 소설의 유일한 공간이다. 한 가족과 그들이 갇힌 건물에서 탈출하기 위해 비상계단을 오르내리다 만난 몇몇 사람들이 등장인물의 전부다. 주인공 남수의 과거가 회상으로 채워지긴 하지만 소설 속 현재의 시간은 한나절에 불과하다. 단편이나 중편이라면 모를까 장편소설로서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소재다. 

▲  김비의 장편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표지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두 번 연거푸 읽었다. 박진감 넘치는 내용에 압도되어 한 번. 결말을 보기 위해 쏜살 같이 달려온 인생을 뒤늦게 후회하듯, 상징과 은유와 우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섬세한 문장 하나하나를 느긋이 즐기면서 다시 한 번. 그렇다고 평온한 마음으로 읽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들이 갇힌 건물 비상계단의 안과 밖이 별반 다르지 않듯이, 작가의 절망적 상상력이 그려낸 소설 속 이야기가 우리네 현실 속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의 내레이터이기도 한 남수는 개인사업자로 트럭을 매입해 택배 일을 시작했지만 그의 삶은 조금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럴수록 현실에서 벗어나야한다는 집착을, 그의 몸은 버티지 못했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허리 때문에 침대에 누워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세금은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날아들었다." 거기에 "온전한 삶을 부여받지 못한 채 태어난 아들 환이"는 "그의 삶을 옭아매기 위해 운명이 내던진 결정적인 한 수"였다. 그의 아내도 몸이 성치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남수가 그의 가족을 이끌고 초호화 백화점을 찾아간 것은 '마지막'이라는 그의 아내 지애의 간청 때문이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불우한 삶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가족 동반 자살이라고 하는 최후의 결심을 이행하기 전, 근사한 한 순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백화점 부실공사로 사고가 났고, 비상계단에 갇히게 된 것. 

하지만 남수 일행이 가족 동반 자살이라고 하는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된 것이 딱히 절망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의사로부터 아이가 뇌손상으로 평생 장애를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남수는 "이상하게도 담담"했던 것이다. 

아이의 증상이 경도의 근무력증을 반복적으로 앓은 경력이 있는 아내가 복용한 약물에 대한 부작용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는 "그저 문밑으로 던져진 체납고지서를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런 희망 없음 속에서도 그가 한 일이란 "그저 소독약 냄새가 나는 벽을 힘없이 몇 번 걷어찬 것이 전부"였다. 

그럼 그를 가족 동반 자살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내몬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역설적이게도 '희망'이라는 말이었다. 그는 "신념을 잃지 않으면 무엇이든 다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하며 희망을 부추기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에게 희망은 "어떻게든 세상이 돌아가야 하니까, 모두들 제자리를 지키도록 세뇌시키는 속셈"에 불과한 것이었고, 그의 눈앞에서 아래위로 끝도 없이 뻗어 있는 나선형 계단도 누군가 "그에게 쏘아올린 조롱"일 뿐이었다. 

"그나마 아이가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고 말을 배워가면서 누군가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했을 때, 남수의 두 손에 자신도 모르는 살의가 가득했다. 주민센터의 사회복지사가 놓고 간 자세 교정용 의자에 구겨진 채 틀어박혀 있는 아이를 보면서, 그는 희망이란 것의 비틀린 몸체를 상상하고 있었다."(15쪽)

"여기 이 문. 이렇게 꼼짝도 않는 이 문! 아무리 걷어차고 발길질해도 꿈쩍 않는 이 문! 바로 이 문 앞에서 서 있는 게 어떤 건지. 그게 어떤 느낌인지 줄 알아? 이런 문 앞에 서서 당당하다고 어깨를 펴는 꼴이... 희망을 잃지 말아야한다고 억지웃음을 웃고 있는 꼴이 얼마나 엿 같은 줄 너 같은 놈이 알기나 하냐고!"(93쪽)

남수가 발설한 '너 같은 놈'은 그날 백화점에 들어왔다가 갇힌 사람 중 한 하나다. 이름은 수현. 그가 백화점에 들어온 이유는 성전환 수술을 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그는 절도를 하기 위해서 건물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 사실은 안 남수는 "기껏 그 따위 인생 망치는 수술이나 하려고 도둑질을 해?"라고 쏘아붙인다. 하지만 수현은 마치 "봄 햇살을 쬐는 것처럼 고즈넉한 눈빛"으로 이렇게 항변한다. 

"그래도 난 아저씨가 부럽지 않아요. 그렇게 간단하게 살 수 있는 삶이라도... 태어나보니 그 어떤 혼란도 없이, 그저 돈 벌면 행복하고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괜찮은 그런 삶이라도, 난 아저씨 인생이 전혀 부럽지 않아요.(...) 누군가에게는 그 따위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거든요."(84쪽) 

남수가 괴변이라고 일축한 수현의 말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깔아놓은 일종의 포석이다. 그 포석의 핵심은 삶에 대한 재해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것은 남수가 절망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닌, 자신을 조롱하는 희망에 대한 앙갚음을 도모하기 위해 동반자살을 선택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건물 안이나 밖이나 절망스럽기는 마찬가지라면 지금의 상황을 재해석하는 것도 하나의 구원에 도달하는 방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후반부에서 남수의 아들 환이가 전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도 이런 소설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작가가 환이를 통해 이 세계와 독자들에게 내보이는 회심의 카드는 다름 아닌 '다름'이다. 여섯 살 먹은 환이의 손에는 크레파스가 들려져 있다. 

그는 아버지인 남수에게 자주 듣던 말을 떠올려 벽에 '다시'라는 글자를 적게 된다. 처음에는 그것이 탈출구를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남수를 지치게 하는 요인이 되지만 곧 상황은 반전된다. 계단에 오줌을 질질 흘리며 애물단지 노릇을 하던 환이는 일행 중 누구보다도 먼저 계단을 올라가 크레파스로 벽에 글자나 숫자를 쓰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붉은 빛깔의 벽에 매달려 환이는 천천히 글자를 따라 팔을 움직이고 있었다.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누군가에겐 채 1분도 걸리지 않은 글자들을, 아이는 획을 세고 서로 다른 곳에 획을 교차하며 그리듯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쉽게 한 번에 써내려간 글자라면 쓰는 사람의 습관에 따라 일정한 형태가 있겠지만, 가까스로 손을 움직여 아기가 적고 있는 글자들은 모두가 다 다른 모양이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휘어지고 기울어지면서, 그 선들이 맞닿아 만든 글자들은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170쪽)

"희망이나 꿈 같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여섯 살짜리 아이가 행복이나 미래를 가늠하고 있을 리도 없었다. 서로에게 말을 잃은 채 등을 지고 있던 그와 아내 사이에서, 아이는 스케치북 안에 혼자만의 세상을 조용히 그려나가고 있었다. 모두가 달라서, 그래서 아이에겐 더욱 예쁘고 신나는 세계였다."(171쪽)

"정화는 아이의 눈 속을 들여다보다가, 꼭 안아 주었다. 이 좁고 혼란스러운 공간 속에 아이가 만들고 싶은 것이 얼마나 거대한 세계였던 건지. 그녀는 그제야 알 것만 같았다. 모두가 포기해버린 여기 이 공간을, 그 작은 손으로 얼마나 열심히 다시 짓고 있었던 건지. 이미 환이의 눈 속엔 갖가지 생명체로 가득한 또 한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234쪽)

정화라는 인물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자다. 그녀는 비정규직이긴 하지만 직장을 얻게 되어 기뻤는데, 그로 인해 기초수급 대상에서 탈락해 오히려 살림이 더 곤궁해진다. 고작 100만 원 남짓한 월급으로 엄마의 병원비며 동생들의 학비며 생활비에 집세까지 마련하다보니 구두 하나 살 돈이 없는 형편이다. 하지만 새로 들어간 사무실의 선배언니가 채근하여 구두를 사러 백화점에 들렀다가 비상계단에 갇힌 신세가 된 것이었다. 

소설 말미에 정화와 수현은 지옥을 방불케 하는 건물 속 갇힌 상황 속에서 서로의 사랑을 고백하게 된다. 죽음을 눈앞에 두었거나, 이미 죽음 이후를 살고 있는지도 모를 공간에서 그동안 수현을 괴롭힌 성 정체성의 문제는 별 의미가 없게 된다. 그런 사실을 은연중에 알게 된 일행 중 한 사람이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래. 마음껏 잘 살아. 여기에서 돈이 의미가 있겠니, 그깟 몽뚱이가 의미가 있겠지? 그렇다고 먹고사는 일이 의미가 있니? 가정을 꾸리고 새끼 낳고 잘 사는 그런 미래가 의미가 있겠니? 그저 이 징그러운 계단을 같이 오르내려줄 사람이면 되겠지. 흔들리지 않고, 서로에게 의지해 서로를 토닥이면서 살아."(232쪽)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작가 김비에 대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트랜스젠더 여성 소설가"라고 소개하고 있다. 나는 그녀가 쓴 에세이 <네 머리에 꽃을 달아라>를 읽은 적이 있다. 하여, 나는 그녀가 사용하는 '불안'이나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함축하는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절망이라는 단어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 그녀가 나보다는 훨씬 진실에 더 가까운 지점에 서 있을 것 같아서다. 물론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한다면 줄행랑을 치고 말겠지만 말이다. 소설이 끝나고 곧바로 작가의 말이 이어진다.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될 만한 작가의 경험담이 먼저 소개되고, 뒤이어 그녀는 이렇게 술회한다.  

"잠깐이었지만, 그때 그 두려움은 이상하게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일상은 맴을 돌 듯 매일매일이 닮아 있었고, 타인이 만들어놓은 세계 속에서 나는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발을 옮기고 있었다. 얄팍한 희망의 말들을 위안으로 삼고 있을 뿐, 내 두려움을 들키지 않기 위해 남몰래 숨을 골랐던 것도 여러 번이었다. 모두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의 불안과 두려움은 부끄러운 것일까. 희망을 꿈꾸지 못하는 내게 미래로 나갈 자격은 없는 걸까? 이 이야기는 그런 비관에서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결국 앞으로 발을 내딛는, 삶을 향해 꿈틀거리는 이상한 절망에 관한 이야기다."(264쪽)

철없는 낭만자주의자인 나의 오독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입에서 발음된 '이상한 절망'이라는 말이 전혀 칙칙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이 획일적이고 천박한 세상에서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재건한,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진실하고 고유한 그녀만의 품격이 느껴진다.  작가 김비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지는 이유다.


안준철 | 오마이뉴스 | 2015-12-07

원문읽기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 10점
김비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
노용석 지음/산지니/18,000원

 

 

 

 

창고에 유골 보관... 과테말라도 그렇게는 안 한다
[인터뷰] 중남미 과거청산 연구하는 노용석 교수 "유해발굴 전문기관 운영"


노용석 교수(부산외국어대)는 과거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 2005~2010)에서 나와 함께 일하던 동료였다. 그는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 발굴 담당자였고 나는 국제협력 담당자였다.

(중략)

이런 인권감수성의 '원시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최근 노용석 교수는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은 과테말라와 엘살바도르 등 중미지역을 중심으로 라틴아메리카에서 자행된 민간인학살과 과거청산, 그리고 민주주의 복원과정을 연구한 것이다.

역사의식과 도덕이 상실된 요즘, 며칠간에 걸쳐 노용석 교수와 이메일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아래는 간추린 일문일답.

"과거청산, 발전된 민주주의 이루기 위해 필요하다"
 
이번에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를 발간했는데, 남미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나?
"라틴아메리카(중남미)의 역사는 15세기 유럽에 의한 식민정복 과정부터 18세기 이후 근대국민국가 수립에 이르기까지, 소수 귀족의 득세와 군부통치, 쿠데타, 극심한 빈부격차 등으로 말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중남미의 특징은 현재까지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여기에다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냉전 영향을 받은 미소 양국의 이해관계까지 중남미를 침범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중남미 각국에서는 수많은 내전과 학살 등이 발생했으며, 이에 대한 근본적 치유를 하지 않고 더욱 발전된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그러기에 중남미에서 과거청산이란 과거의 잘못을 꾸짖거나 '복수'를 하기 위한 담론이 아니라 발전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현실 정치라고 볼 수 있다."

(중략)

중남미 과거사정리에 관한 자료가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소중한 책을 써주어서 고마운 마음뿐이다.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애 대한 책을 쓰기로 마음 먹은 동기가 무엇인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유해 발굴을 담당했다. 한국은 당시 과거청산에 있어서 걸음마 단계를 걷고 있을 때였다. 당연히 유해 발굴에 있어서도 선진 기술이나 노하우 등이 축적되지 않았다.

이때 내게 가장 큰 용기와 감명을 주었던 것이 중남미의 과거청산, 특히 유해발굴에 대한 그들만의 특이한 조직운영 관리였다. 과테말라, 페루,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의 많은 중남미 국가들은 자국 내에 전문적인 유해 발굴 기관을 두고 있다. 이 기관들은 내전 혹은 학살이 발생한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희생자 유해를 발굴해 가족에게 돌려주는 일을 수행한다.

그래서 지난 2006년부터 중남미 유해 발굴 사례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중남미 과거청산 전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 작업의 시작일 뿐이다. 향후에는 좀 더 전문화된 분야로서, 중남미와 한국에서 발생한 학살과 같은 '비정상적 죽음'의 의미가 어떠한 공통성과 상이성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 집필하고자 한다."

 

 

오마이뉴스│김성수 기자│2014-06-19

전문읽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04844

 

Posted by 비회원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오마이뉴스>에  『이데올로기와 미국 외교』 서평이 크게 떴습니다.  '부시도 아니고 오바마인데, 미국 왜 이러나?'(링크) 라는 제목입니다.
『이데올로기와 미국 외교』는 영국 식민지로부터 독립하여 지금의 초강대국이 되어 있는 미국이 건국 이후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견지해오고 있는 외교정책의 실체를 밝힌 마이클 헌트(Michael H. Hunt) 교수의 저작입니다.

한국에 미치는 미국의 영향력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수많은 미국 관련 저작들이 번역 소개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지극히 피상적이고 단편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마이클 H. 헌트

삼일절이나 광복절이 되면 어김없이 유엔기와 성조기를 들고 시위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고, 한편에서는 ‘반미출정가’를 부르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 책은 미국적 가치를 무조건 추종한다거나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깊이 있는 성찰을 바탕으로 특정 입장에서 벗어나 진실을 추구하는 책입니다. 저자인 마이클 헌트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을 때조차도 “『이데올로기와 미국 외교』에서 다루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과연 세월뿐만 아니라 문화와 역사적 경험의 차이까지 초월해서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한국인들의 관심사에도 타당하게 적용되는지(저자 서문에서...)” 검증하고, 비판적으로 읽어달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장기적 관점에서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을 때, 역사학자인 저자가 역사학적 통찰을 통해서 현실주의의 문제점을 ‘명쾌하게’ 밝혀주는 이 책은 일반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교정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번역하는데만 2년여의 시간이 걸렸고 2008년 책이 출간됐을때 여러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나 판매는 기대에 못미쳐 많이 안타까웠는데, 늦게나마 이렇게 책의 가치를 알아주시는 독자를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얼마전 <시사인>의 책소개 코너인  '아까운 걸작'에 소개되기도 했답니다.

노엄 촘스키나 하워드 진만 있는 것은 아니다 | 시사인 145호

이데올로기와 미국 외교 - 10점
마이클 헌트 지음, 권용립.이현휘 옮김/산지니


 

Posted by 산지니북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