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5 산지니 소식 165호_한나 아렌트와 랠프 엘리슨의 인종차별 논쟁 지난 3월 21일은 유엔에서 지정한 ‘세계 인종 차별 철폐의 날’이었습니다. 20세기 미국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심한 인종 차별로 소수자들이 고통받았지요. 흑인은 백인과 같은 학교를 다닐 수도,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도,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오늘 보내드리는 산지니 소식 165호에서는 한국 독자들이 사랑하는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와 흑인 작가 랠프 엘리슨이 인종 차별에 대한 논쟁을 벌였던 대화를 책으로 묶은 을 소개합니다. 담당 편집자가 쉽게 들려주는 두 사람의 인종 차별 논쟁. 바로 만나 보시죠.>>https://stib.ee/V4xG ★ 편집자의 쪽지 #라온 편집자집순이인 저의 활동반경은 서면-광안리가 다입니다. 그 이상은 저에게 너무 멀어요. 그래도 올해는 서면에.. 2025. 3. 27. 유대인 철학자와 흑인 작가의 충돌과 대화_『뉴욕 거리의 한나 아렌트와 랠프 엘리슨』 문화일보 언론 소개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와 흑인 소설가 랠프 엘리슨 사이에 오갔던 흑인 차별에 관한 논쟁과 성찰을 담은 『뉴욕 거리의 한나 아렌트와 랠프 엘리슨』이 에 소개되었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20세기에 오갔던 차별에 관한 논쟁을 오늘날 다시 살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차별이 여전히 존재하는 지금, 아렌트와 엘리슨이 남긴 저작물을 통해 두 사람이 지닌 생각의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두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문제의식은 없을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흑인 향한 혐오에 나는 무지했다”… 한나 아렌트가 반성한 이유[북리뷰] ■ 뉴욕 거리의 한나 아렌트와 랠프 엘리슨 마리 루이제 크노트 지음│서요성 옮김│산지니 ‘무자비한 폭행, 신체의 본능적.. 2025. 2. 17.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렌트의 과오와 성찰을 재검토하다_『뉴욕 거리의 한나 아렌트와 랠프 엘리슨』이 부산일보, 연합뉴스,이데일리에 소개되었습니다 한국 독자에게 잘 알려진 유대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그러나 한나 아렌트가 흑인과 백인 아이들을 같은 학교에 다니도록 하는 법을 위한 흑인들의 시위를 비판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렌트는 흑인 대표 단체가 노동, 주택 시장, 교육과 같은 사회적 차별보다 인권, 시민권, 보통선거권 등 보다 정치적인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이러한 아렌트의 비판을 본 흑인 소설가 랠프 엘리슨은 한 인터뷰에서 아렌트를 비판하게 됩니다.흑인과 유대인, 두 존재 모두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차별을 경험한 이들입니다. 그러나 둘 사이의 입장이 완전히 같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아렌트와 엘리슨으로 대표되는 유대인과 흑인 사이에는 어떠한 경험과 생각의 차이가 존재했을까요. 그 간극을 살펴보는 『뉴욕 거리의.. 2025. 2. 17. 아렌트의 문제의식과 엘리슨의 경험은 어디서 만나는가::『뉴욕 거리의 한나 아렌트와 랠프 엘리슨』 카드뉴스 1954년, 워싱턴의 연방대법원은 공립학교의 인종 차별은 헌법을 위반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1957년 아칸소주의 리틀록에 사는 아홉 명의 흑인 학생에게 지역 공립 고등학교의 입학이 허가되었다. 이후 흑인 아이들의 등교는 수많은 백인의 반대에 부딪혀야 했으며 백인과 흑인 사이에 소요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대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59년 발표한 에세이 「리틀록 사건을 돌아보며」에서 백인들의 반대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를 무대로 삼은 흑인들의 운동을 비판했다. 아렌트에게 흑인 차별은 정치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였으며 학교에서의 인종 차별 철폐는 정치적 과제가 아닌 사회적 과제였다. 그는 흑인 대표 단체가 일반적인 인권, 시민권, 보통선거권이 아니라 노동, 주택 시장, 교육과 같은 사회.. 2025. 2. 14. 서신으로 읽는 두 지성의 세기적 사랑 서신으로 읽는 두 지성의 세기적 사랑 독일 실존철학의 거장인 마틴 하이데거(1889~1976)와 그의 제자이자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1906~1975) 사이의 사랑은 꽤나 유명하다.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 등 ‘세기적 연인’들 사이의 관계와 이래저래 비교되기도 하면서, 하이데거와 아렌트는 이른바 지적인 사랑의 대명사로 회자돼왔다. 이들의 관계를 단순히 사랑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그동안 많았다. 육체적·정신적 사랑을 넘어 제3자가 쉽게 규정하기 힘든 묘한 관계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정, 정신적 동반자, 사상을 교유하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몽땅 녹아들어 있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하이데거와 아렌트 관계는 세간의 관심을 끌 만한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다... 2013. 8. 1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