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1882년作 <숲의 끝>

숲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다. 나뭇가지 사이에 햇살도 번하다. 구름 때문에 가렸던 해가 숲에 갇혀 있었나. 얼마 전 혼자 산문으로 나갔을 때는 어둑한 숲에서 뭔가 튀어 나올 것 같아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들었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숲엔 풀과 돌, 나무와 흙이 내쉬는 숨이 가득하다. 보살은 은빛 억새 같다. 바람과 맞서지 않고 순응하는 억새처럼 단발보살은 원시림을 스적스적 지나간다. 어디까지 가려는 걸까. 허연 머리가 숱도 많아 단발이 어색하지 않은 보살은 칠십대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게 잘도 나가는데 나는 숨이 차다. 땀이 몸의 굴곡을 타고 흐른다. _「신갈나무 뒤로」(『날짜변경선』, 중에서)


남편의 알콜중독 때문에 절에 들어간 여자가 마지막 희망이자 도피처를 찾아 떠난 곳에서 다시 방황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유연희 작가의 단편소설 「신갈나무 뒤로」입니다.

무력한 현실 속의 차가움을 견뎌내며 지친 사람들에게, 마치 '도망치지 마!'라고 조근히 들려주는 듯한 이 소설이 참 좋았는데요,

우연히 알라딘 서점의 이벤트를 보고 이 소설을 편집하던 때가 다시금 떠올랐어요.


책을 구입하면 다양한 디자인의 머그컵을 증정하는 알라딘의 이벤트!


현실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도피해도 길은 없을 테니 오히려 현실 속에서 희망을 찾자는 따스함으로 읽히기도 했어요.

읽는 내내 '길은 하나뿐이여.'라고 조근하게 말을 건네던 보살 할머니의 외침이 특별하게 다가온 소설이었습니다.

숲 속에서 방황하던 화자의 삶이, 그리고 방황하던 그 길이 우리네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 말이죠.



컵을 보니 콜드플레이의 명곡 「Don't Panic」이 떠오르네요.

같은 앨범에 수록된 「We Never Change」에서도 조근한 위로를 얻습니다.

가사처럼, 좀 더 우리는 우리의 현실 속 삶에 귀 기울이면서

진실되게 살아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다들 좌절하지 말고, 다함께 행복해집시다.

그럼, 즐거운 불금 되세요 :-D



날짜변경선 - 10점
유연희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여러분. 잠홍 편집자입니다.


여느때처럼 교정지에 둘러싸여 지내다 달력을 보니 

어느새 12월 31일군요.

그렇다면

2015년의 마지막 블로그글은 바로 제가?!?!?


내가 내가 해~ 잠홍 타령이옵니다


어제는 온수입니까 편집자님께서 

2016년 산지니의 변화를 예고해주셨는데요.


( 읽어보세요~ 산지니 어워드 1부-2016년 달라지는 산지니! )


오늘은 2015년의 마지막 날이니,

오늘만 할 수 있는 블로그 포스팅을 해야겠지요. 

더 이상 기다리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2015년에 굿바이를 고하는 대미의 블로그 포스트. 바로


2015년에 빛난 산지니 책!



올해 상을 받은 산지니 책이 워낙 많다 보니 (에헴)

이번 포스팅에서는 문학 도서를,

다음 포스팅인 '산지니 어워드 3부'에서는 인문 도서를 다룰 예정입니다.


소개하는 순서는 글쓰는 사람 마음...이기도 합니다만, 대체로

가장 최근에 발표된 수상작부터 시작해 연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 날짜변경선, 편지 

세종도서 문학나눔 - 소설




올해의 문학나눔 소설 부문에서는 


유연희 작가님의 소설집 <날짜변경선>, 그리고 


정태규 작가님의 창작집 <편지>이 선정되었는데요.




<날짜변경선>은 바다 저편의 파랑(波浪)을 향해, 

육지의 지나온 기억들을 내려놓고 떠나는 뱃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김만중문학상을 받은 표제작을 비롯한 소설 7편이 실려 있어요.







해양소설을 쓰는 이유에 대해 유연희 작가님은 

"지금도 커다란 위험과 미지가 도사린,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바다로 뚜벅뚜벅 배를 타고 나가는 이들을 보면 

의문과 신비가 생깁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날짜변경선 - 10점
유연희 지음/산지니


정태규 작가님의 창작집 <편지>는 

단편소설 8편과 콩트 6편으로 구성된 독특한 책입니다.



주소 없는 마음에 띄우는 애잔한 편지 한 장이 떠오르는 작가님의 문장들은 

싱싱한 생명력을 통해 루게릭병과의 사투에 굴하지 않는 

작가의 뜨거운 창작혼을 드러냅니다.


 







작품 중 ‘비원’은 말하는 능력을 점점 잃어가던 

지난해 여름, 구술을 통해 집필하신 것으로,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경향신문에 "원망과 회한이 죽음의 공포를 버텨낼 만한 

강한 위안과 결심으로 굳어지는 과정을 그렸다."고 

소개되었지요.



편지 - 10점
정태규 지음/산지니


2/ 

2015년 부산작가상 - 소설




이병순 작가님의 첫 소설집인 <끌>은 201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표제작을 비롯해 총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슬리퍼, 창, 스마트폰 등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물을 통해 일상에 나지막하게 깔려 있는 삶의 질문을 표면으로 끌어올리는 작품들이 모였는데요. 화려하진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삶을 가다듬어 나가는 인물과 소설 곳곳에 자리한 일상의 흔적은 독자들에게 공감과 더불어 문학의 의미,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합니다.

올해 부산작가상 심사위원분들께서는 <끌>의 
"단정하고 야무진 문체와 안정감 있는 서사"에 주목하셨다고 합니다.

<끌>은 디자인 면에서도 돋보이는 책입니다. 권디자이너님께서 표지 후가공으로 무광청박을 처음 시도하신 책인데, 이병순 작가님도 무척 만족하셨다는 후문이~ :)


 - 10점
이병순 지음/산지니




3/ 레드 아일랜드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 선정작


김유철 작가님의 <레드 아일랜드>는 해방 전후 시대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대의 폭력과 상처를 가감 없이 보여주며 그 속에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운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 놓인 인물들과 현실적인 구성을 통해 1948년 4월 3일 제주를 다시금 바라보는 이 소설은 10년의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쓰여진 탄탄한 장편입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화에 적합한 컨텐츠를 선정해 영화인들에게 소개하는 '북투필름'에 선정한 이 작품. 제주도의 언론사 제민일보에서는 <레드 아일랜드>를 " 4·3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단순히 소재로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건 속 인물들에게 집중해 시종일관 긴장감을 더한다."고 평했습니다.


레드 아일랜드 - 10점
김유철 지음/산지니


4/  번개와 천둥 

부산문화재단 우수지역출판도서





'소설 대암 이태준'이라는 부제가 있는 이 작품은 1910년대 몽골에서 독립운동과 의사로서 활동했던 대암 이태준을 조명하는 장편소설입니다. 이태준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함안이 고향이신 이규정 작가님께서는 몽골 울란바토르에 있는 이태준 기념공원을 방문하시고 나서 수년간 조사와 집필을 하셨다고 합니다. 먼 타지에서 자신의 본분을 묵묵히 다해낸 선생을 의사, 독립운동가, 신념을 가지고 시대를 살아낸 한 인간으로 그려내셨습니다.


국제신문에서는 "원숙하고 막힘 없는 문장이 역사소설의 매력을 한결 끌어올린다." 고 소개해 주셨어요.




번개와 천둥 - 10점
이규정 지음/산지니


5/ 아버지의 구두 
원종린 수필문학상


양민주 수필가의 첫 번째 수필집 <아버지의 구두>는 생을 바라보는 조화로운 시선과 같은 통찰로 자신이 경험한 삶의 조각들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저자는 육친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 평상심을 잃지 않고 자연의 이법을 따르는 삶, 타인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유연한 태도 등 자신만의 고아한 수필 세계를 이 책에서 마음껏 펼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구두>에는 범지 박정식 서예가의 아름다운 그림도 실려 있답니다. 풍부한 시적 감수성과 먹의 농담이 조화로워요.




아버지의 구두 - 10점
양민주 지음, 박정식 그림/산지니



6/ 만남의 방식 
제8회 백신애문학상


정인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만남의 방식』에서 우리 사회의 부조리, 그리고 그것이 형성한 고통과 치유의 서사는 단단한 결정을 이루어 뼈처럼 보석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붙듭니다. 고백과 폭로라는 구조를 통해 새로운 시작에 대한 전망을 조심스레 타진해온 정인 소설의 정통성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오롯합니다. 8편의 소설마다 빠짐없이 존재하는 ‘나’들은 다양하게 변주된 학교폭력, 성폭력, 가족갈등 속에서 고백 혹은 폭로를 선택하며 숨겨진 의외성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집을 통해 정인 작가님은 결국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점을 말하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저자 인터뷰에서 발췌합니다:
"「만남의 방식」을 보면 ‘나’가 결국 자기 사촌을 수용하잖아요. 너는 나를 외면해도, 나는 내 마음 속에 너는 사촌이라는 의식이라는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만남의 방식 - 10점
정인 지음/산지니




7/ 금정산을 보냈다 
2015년 원북원부산 도서



목록의 마지막은 처음부터 마음 속에 고이 점찍어두었던 주인공이라고 하죠.

<금정산을 보냈다>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산지니 시인선 001호이자 최영철 시인의 열 번째 시집.

출간되자마자 문학기자들이 '찜'한 책. 

부산 출판사에서 나온 책, 그리고 시집으로서는 첫 번째 원북원부산 도서! 


<금정산을 보냈다>는 강인한 생명력과 자연의 진정성을 발굴한 전작과 달리, 생성과 파멸, 환희와 비명이 교차하는 시편들로 어둠을 직면하는 시집입니다. 최영철 시인은 물질과 속도에 중독된 우리에게 마주해야 할 세계의 진면목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집니다.




최영철 시인에 대해, <금정산을 보냈다>를 담당한 온수입니까 편집자는 

"출판사에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는 시인, 그리고 언제나 헤어질 때는 막걸리 하자며 술 약속을 어김없이 하는 시인. 시인인가 출판인인가 가끔 헷갈리지만 그래도 그의 시를 읽으면 역시 시인이야! 하며 무릎을 치게 만드는 시인."이라 말했고


엘뤼에르 편집자는 "한동안 잊었던 시 읽는 맛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라며 

이 책을 '올해의 산지니 책'으로 추천하시더군요.


시집이 쓸모없다고 하지만, 시만이 할 수 있는 일. 

시가 아니면 금정산을 통째로 아들에게 보낼 수 없었겠지요.


새해를 시와 함꼐 시작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금정산을 보냈다 (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독자 여러분, 미리 인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산지니 어워드 3부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Posted by 비회원


소설집의 표제작 '날짜변경선'의 배경이 된 실습선에 탄 유연희 작가


높은 파도를 간신히 넘었다 안도했더니 또 밀려오는 다음 파도. '삶의 고통'은 그렇게 파도처럼 계속됐다.

'삶의 파도'가 버거울때면 그는 바다 앞에 섰다. 소설가 유연희(59) 씨는 "바다 앞에 서면 내 고민과 울화가 얼마나 찰나적인가를 깨닫게 되고, 나를 객관적으로 지켜볼 여유도 생긴다"고 했다.

유연희 소설집 '날짜변경선' 
해양실습선서 한 달 항해 체험 
아들이 디자인한 책 표지 눈길


그에게 바다는 "나를 벗어나는 곳"이었다.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는 고통까지 털어놓게 하는 곳. 바다는 나름 대답도 해주곤 했다.

사춘기 시절에도 외가가 있던 영도는 그가 살던 동네와는 다른 세상이었다. 웬일인지 영도다리를 지나면서부터 공기와 분위기는 달라졌다. 근심과 불안은 다리를 건너기전 세상에 두고 바다 건너 한달음에 '딴 세상'으로 간 그는 용기를 충전해 살던 동네로 돌아오곤 했다.

그의 두 번째 소설집 '날짜변경선'(산지니)엔 그래서 바다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그는 '해양소설'이란 분류에 대해선 "해양소설이 아닌 건 육지소설이냐"며 웃었다. "소설의 소재는 무궁무진하고 그중 살면서 자연스러운 관심사였던 바다 이야기를 많이 쓴 것뿐"이라는 것이다. 

등단 초기였던 15년 전에 써 두었던 단편 '유령작가'에서부터 5년 전 김만중문학상을 받았던 중편 '날짜변경선', 최근에 쓴 단편 '어디선가 새들은'까지 총 7편의 중·단편을 묶었다. '유령작가'와 '신갈나무 뒤로'를 제외하면 모두 '해양소설'이다.

표제작 '날짜변경선'은 작가가 한 달간 한국해양대 실습선을 타고 항해했던 경험이 오롯이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육지의 삶에 지친 우울증 환자인 의사는 바다로 도피하고, 뜻밖의 조난 사고로 자신의 한계와 당당히 마주하면서 그의 지나온 시간들은 날짜변경선을 넘는다. '바다가 재탄생시킨 한 인간의 이야기'인 셈이다. '어디선가 새들은'에선 선원이었던 아버지의 백짓장처럼 하얀 손톱이 부끄러웠던 아들이 북극 바다를 처음으로 항해하면서 아버지 세대 선원들의 고단했던 삶을 되짚는다.

오랫동안 '바다'와 '바다로 가는 사람'들에 천착해 온 작가가 소설마다 묻어둔 공통된 주제는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다. 그는 "배경이 바다일뿐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답을 얻기 위해 이렇게도 이야기하고 저렇게도 이야기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번 소설집은 힘겨운 삶을 버텨내고 있는 아들에게 엄마가 실어주는 용기이기도 하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던, 전도유망했던 미대생 아들은 군 생활 중 가혹 행위 피해를 당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울증을 겪고 있다. 작가는 그 아들에게 소설집 디자인을 부탁했다. 그와 아들의 합작품인 책이 아들의 생에 진정한 '날짜변경선'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그는 또 하나의 해양 중편소설을 쓰고 있는 중이지만 내용은 "영업 비밀"이라고 했다.


강승아 | 부산일보 | 201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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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변경선 - 10점
유연희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해양소설가 유연희 '날짜변경선'…4년 만에 두 번째 소설집 발간


- 실습선 등 항해 체험 반영

1. '파도는 하루에 팔천육백 번 정도 쳐댄다던가'.

2. '육지에서는 놀이기구도 못 탄다던 실항사지만 배에서는 못 하는 게 없다. 바다와 배, 제도가 그렇게 만든다'.

3. '갈매기가 있으면 기상도를 체크하지 않아도 마음이 놓였다. 배가 육지의 자장권에 있고 여차하면 항구로 피항할 수 있으니. 첨단 과학이 잡지 못하는 자연의 기미를 감지하는 새들이 놀랍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지만 자연에서 오래전에 쫓겨난 자식들인지도 모른다'.

위의 1, 2, 3번 문장을 차례대로 요약하면 이렇다. 1. 파도는 하루에 8600번 정도 쳐댄다.(인생이 그렇다.) 2. 부딪혀 보면 사람에겐 평소엔 자신도 몰랐던 놀라운 적응력과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된다.(인생이 그렇다) 3. 그러나 막상 일을 제대로 해보려 하면 그동안 편한 것만 추구하던 현대인에게선 퇴화해버린 능력이 참 많다.(그걸 느끼는 게 인생이다.) 작가는 묻는다. 자,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지역 문단 중견 작가이자 해양소설가로 입지를 탄탄히 한 유연희 씨가 최근 펴낸 두 번째 소설집 '날짜변경선'(산지니)에 실은 단편소설 '어디선가 새들은'은 매우 인상 깊은 작품이다. 위의 1, 2, 3번은 모두 '어디선가 새들은'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이야기를 단단히 압축해 압축미가 있고, 상징 요소를 적절히 배치해 소설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하며, 생각지 못한 반전의 요소를 품었을 때 단편소설은 매력이 커진다. '어디선가 새들은'은 이런 요소를 고루 갖췄다. 해양소설 또는 해양문학 작품이 흔히 놓치곤 하는 '독자가 보편적으로 공감할 만한 삶에 관한 질문'도 안 놓친다.

'날짜변경선'은 유연희 소설가가 4년 만에 펴낸 소설집이다. 김만중문학상을 받은 표제작 중편소설 '날짜변경선', 부산 항만에서 가장 거대하고 눈에 잘 띄는 존재이지만, 좀체 문학이나 예술에서 다루지 않은 갠트리크레인 CG-5를 주요한 요소로 그린 '붉은 용골' 등 작품 7편을 실었다. '신갈나무 뒤로'와 '유령작가'를 제외하면, 5편은 해양소설이다. 해양소설가로서 유 작가의 공력과 지향을 알 수 있다.

그는 부산에 기반을 둔 한국해양문학가협회 회원이다. 1956년생인 그의 고향은 부산이다. "온천장에서 태어났어요. 가슴이 설레도록 예뻤던 동래권번의 기생들 모습을 자주 보며 자랐죠. 외가는 영도였어요. 외가에 가느라 영도다리를 건널 때마다 물씬 다가오는 바다의 냄새, 육지와 완연히 다른 공기와 풍습과 풍경을 느꼈죠."

   

그렇게 시작한 유 소설가의 바다 사랑은 줄곧 이어졌다. "지금도 커다란 위험과 미지가 도사린,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바다로 뚜벅뚜벅 배를 타고 나가는 이들을 보면 의문과 신비가 생깁니다." 그가 해양소설을 쓰는 근원적 이유다.

소설집 '날짜변경선'은 항해의 과정과 배, 바다의 모습과 상황을 세심하게 취재해 반영한 작품이 많아 인상 깊다. "한국해양대 실습선을 타고 몇 차례 항해를 체험했고, 한국해양문학가협회 소속 동료들의 도움도 받았다"고 그는 말했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5-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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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변경선 - 10점
유연희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지난 8월 21일, 산지니 출판사가 있는 거제동의 한 카페에서 유연희 작가를 만났습니다. 오전 내내 무섭게 쏟아지던 비는 그녀를 반기기라도 하듯 금세 멎어들었지요. 마도로스와 결혼하는 것이 소싯적의 꿈이었다며 웃는 유연희 작가의 모습은 비 개인 하늘처럼 청정했습니다.

 


 

 

 

  첫 소설집 『무저갱』 이후 4년 만에, 유연희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날짜변경선』이 출간되었습니다. 『날짜변경선』에는 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지요. 지구 표면적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바다. 인류의 삶에는 언제나 바다가 함께 해왔습니다. 오랜 기간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생명의 기원으로서 존재해왔지요. 더구나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국의 역사는 바다로 대변할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바다의 가치를 잊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유연희 작가는 『날짜변경선』을 통해 우리가 잊고 살았던 바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책의 표제인 ‘날짜변경선’은 태평양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그어진 가상의 선입니다. 이 선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의 날짜가 달라지지요. 그러니 이곳의 날짜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모호한 시간의 경계에 있는 셈입니다. 『날짜변경선』속의 인물들은 모두 이 날짜변경선 위에 놓인 듯 한 사람들입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인물들은 바다에서의 체험을 통해, 날짜변경선을 넘어가듯 새로운 날을 맞이하지요. 유연희 작가는 자신 또한 아직 삶의 바다를 항해하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항해에는 언제나 ‘소설’이 함께 하고 있을 것이라 덧붙였지요.

 

 

 

 

소설집이 출간되었으니 ‘이제 한시름 덜었다’는 생각이 들 것 같은데요. 선생님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딸과 터키여행을 다녀왔어요. 딸이 올해 서른 살이라, 결혼을 하기 전에 함께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줄곧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시집을 가고나면 모녀가 함께 시간을 보내기 힘들어질 테니까요. 사실 딸에게 아직 남자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핑계를 대고서라도 딸과 여행을 가고 싶었던 거죠.

 

 

이전 소설집인 『무저갱』도 그렇고, 이번 『날짜변경선』도 ‘해양 소설집’입니다. <유령작가>와 <신갈나무 뒤로>를 제외하면 모두 바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요. 선생님에게 바다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공간인가요?

 

-저는 바다가 있었기에 제 인생이 구원 받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의 결핍이라거나, 내가 감당할 수 없이 무거운 삶의 짐 같은 것들이 바다로 인해 구원 받는 느낌? 사실 저에게 바다란 어떠한 것인지를 정확히 정의내릴 수는 없어요. 인생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콕 집어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저는 제 스스로가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생각을 자주해요. 더군다나 제 체구가 많이 왜소한 편이잖아요(웃음). 그런데 바다를 보고 있으면 그런 것들을 위로 받을 수 있어요. 사람에게는 받을 수 없는, 바다만이 줄 수 있는 위로? 바다는 저에게 그런 공간이에요. 큰 힘이 되어주는 곳.

 

 

해양 소설집이 아닌 소설집을 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글쎄요. 일반적으로 소설집 한 권 당 단편소설이 8편 정도 실리게 되잖아요? 그러다보면 어쩔 수 없이 그 중 몇 편 이상은 해양소설을 실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해양과 문학』이라는 잡지의 편집 일도 하고 있다 보니, 잡지에 실릴 해양 소설들도 꾸준히 써야 하거든요.

 

 

 

 

동명의 시집(이택수/나이테미디어)과 청소년 소설(전삼혜/문학동네), 심지어는 연극(김태수 극본)까지 있는데, 굳이 ‘날짜변경선’을 표제로 택한 이유가 있나요?

 

-정말요? 동명의 작품들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 중 누구나 알만한 대히트 작품은 없었으니 괜찮지 않나요? 저는 정말 유명한 히트작이 그 제목을 고유명사처럼 만들지 않은 이상은 얼마든지 동명의 작품들이 발표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제 소설집이 그런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저는 부족한 점이 많아서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웃음).

그리고 사실 ‘날짜변경선’이 표제가 된 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어요. 책 날개 귀퉁이에 ‘표지 이미지: 강석철’이라고 적혀 있죠? 제 아들 이름이에요. 아들이 시각디자인과 출신이거든요. 『날짜변경선』의 표지는 아들이 대학생 시절에 만든 디자인이에요. 꼭 아들의 디자인을 표지로 쓰고 싶은데, 여기에 어울릴 만한 제목이 ‘날짜변경선’ 밖에 없었어요. ‘어디선가 새들은’이나 ‘붉은 용골’같은 건 전혀 어울리지 않잖아요.

 

 

책 디자인에 맞춰서 선택된 표제였군요. 저는 수록된 작품들 중 「날짜변경선」이 가장 표제작에 걸맞다고 생각했는데…. 「날짜변경선」의 주인공 선의가 두려움을 무릅쓰고 바다로 내려가잖아요. 그 장면이 작품집의 전체 정서를 대변하는 장면이라 생각했거든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저는「날짜변경선」보다 「어디선가 새들은」이라거나 「바다보다 깊은」에 더 애정을 가지고 있어요. 「날짜변경선」은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 중 가장 문학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직접 배를 타면서 만난 사람들과, 그때 겪었던 일들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다른 소설들에 비해 쉽게 쓰인 작품이기도 하고요. ‘B급 소설’이라고 하면 될까요.

아, 제가 말하는 B급은 결코 나쁜 의미가 젆니에요. 가수 싸이가 스스로를 B급 가수라고 칭했잖아요. 그 말처럼 싸이의 음악은 싼티나고 저렴해 보이지만 그와 동시에 아주 대중적이에요. 「날짜변경선」도 그래요. 쉽게 쓰였지만, 독자와 소통하기 편한 작품. 문학성이 높은 작품을 A급이라고 본다면, 일반적으로 A급 작품들은 독자가 이해하기에 어려운 부분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에요. 게다가 오늘날에는 대중의 관심이 문학에서 상당히 멀어져 있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B급 문학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 『날짜변경선』이라는 작품집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딱히 작품집 전체에 담아내고자 했던 교훈이나 메시지 같은 건 없어요. 각각의 단편마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다 다른데, 그것들을 굳이 하나로 묶어서 정의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저 바다에 관한 소설들을 모아 책으로 내고 싶었을 뿐이에요. 한국은 지리적으로 바다와 굉장히 가까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비해 해양소설이 굉장히 적어요. 그런데다 우리나라의 해양문학회에서는 ‘배를 타본 경험을 기반으로 현장성이 잘 드러나게 써야만’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리얼리즘이 없으면 그건 해양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반면 저는 비현실적이거나 환상성이 크다 하더라도, 바다의 존재감과 가치가 잘 드러나 있다면 해양문학으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걸 이번 작품집을 통해 말하고 싶었죠. 물론 저도 직접 배를 타보았고, 소설을 쓸 때 그 경험을 참고해서 쓰고 있지만요(웃음). 그런 제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시커호」가 아닐까 싶어요.

 

 

저도 「시커호」가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어요. 특히 마지막에 주인공 ‘정’이 수압으로 인해 괴로워하며 발버둥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죠.

 

-그 부분은 좀 더 공들여 쓰고 싶었던 부분인데. 바닷물이 정말 투명하잖아요. 그런데도 심해로 내려갈수록 아주 어둡고 캄캄해지죠. 그걸 ‘투명이 한 없이 쌓여 어둠이 된다’고 표현한 것이거든요. 투명이 점차 모여들어 주위가 어두워지고 수압도 점점 높아져 ‘정’을 압박해오는 장면을 더 몽환적이고 인상적으로 묘사하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았죠.

 

 

 

 

 

해양소설은 아니었지만, 표절 작가에 대한 이야기인「유령작가」도 좋았어요. 얼마 전 한 유명 소설가의 표절 사건으로 인해 문학계가 들썩인 적이 있었잖아요.

 

-사실 그건 운 좋게 요즘 시의와 맞아 떨어진 거예요.「유령작가」는 15년 전쯤에 썼던 작품이거든요.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에요. 대부분은 10년이 넘은 작품들이죠. 그래도 그 중 가장 최신작이라 할 만한 게 「어디선가 새들은」이에요.

 

 

10여 년 전 소설이라기엔 전혀 촌스럽지 않은데요? 「유령작가」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작중 주인공이 소설가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잖아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소설가란 어떤 모습인가요?

 

-소설가는 끊임없이 변화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나’라는 존재는 사실 타인이 만들어 낸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죠? ‘진짜 나’의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어요. 소설가는 ‘진짜 나’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에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탐색하고 고찰하면서 그 속에서 ‘나’를 찾아내는 거예요. 하지만 주변의 것들은 그대로 멈춰있지 않아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죠. 그 변화를 감지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신 또한 변화해가는 것이야 말로 소설가의 참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이 너무 어려웠나요?(웃음)

 

 

작가의 말 중에서 “그닥 길지 않은 시간 후에 세 번째 소설집으로 다시 만날 것을 약속드린다”는 부분이 있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 계획된 건 없어요. 쓰고 있는 단편들이 있기는 한데…….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할 것 같네요(웃음). 저희 세대 사람들은 느긋하고 여유롭게 일을 진행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요즘 작가들은 굉장히 빨리 빨리 작품을 발표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요즘 트렌드에 맞춰 활발한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작가의 말을 저렇게 적은 거죠.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제 작품들을 하나의 책으로 엮어내면서, 해양소설이라는 장르의 발전과 더불어 이 책을 읽게 될 독자 분들이 바다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해양 관련 종사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기대 같은 게 있었어요.『날짜변경선』을 통해 독자 분들이 조금이라도 바다와 친해질 수 있었으면, 바다와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아요. 직접 배를 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주신다면 더 좋겠지요. ‘누가 나 배 좀 태워줬으면 좋겠다!’하고요.

 

 

 

 


 

 

날짜변경선 - 10점
유연희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네 번째 서평을 들고 온 임병아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자신만의 특별한 장소를 하나쯤 품고 있기 마련이지요. 그곳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일 수도 있고, 누군가와의 추억이 얽힌 곳일 수도 있습니다.『날짜변경선』의 저자 유연희 소설가에게는 그런 장소가 바로 ‘바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날짜변경선』은 일명 ‘해양소설집’입니다. 수록된 7작품 중 2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작품 속 바다는 단순한 이야기 배경이 아닌, 인물들의 한계를 시험하는 역경이자, 그것을 극복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능성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작중 인물들의 삶 그 자체로 볼 수도 있지요.

 

  표제작인 「날짜변경선」에는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의사가 도망치듯 원양항해선의 선의(배 안에서 승무원과 선객의 건강을 보살피는 일을 하는 의사)로 승선하게 되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원양항해선에는 그리스인 볼칸, 여성 선원 3기사, 죽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바다로 온 기관장 등, 저마다의 이유로 배에 오른 이들이 모여 있지요. 주인공 선의는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걸어온 삶을 되돌아보고, 작품의 끝에 이르러서는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어 성장하게 됩니다. 조난된 환자를 구하기 위해 두려움을 이겨내고 바다로 내려간 주인공의 모습은 작품집 전체를 통틀어 단연 압권인 장면이었습니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 삑삑 거리는 잡음 사이로 선장의 ‘로저’란 종결음만이 왕왕거린다. …(중략)… 샤워를 하던 아내, 얼굴도 모르는 기관장의 아버지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갑판장이 다가와 내게 구명조끼를 입혀 준다. 내가 조끼의 후크를 더듬어 채우자 갑판장이 밑으로 늘어진 벨트를 주워 재빨리 허리에 조여 준다. 무전기도 없는 내가, 소리 없이 응답한다. 로저! 알았다고. 지나온 시간이 날짜변경선을 넘는다. -『날짜변경선』229p 中

 

 

  작품집 내에서 바다는 깊고 거대한 미지의 공간으로 그려집니다. <어디선가 새들은>과 <바다보다 깊은>에서는 거센 파도와 태풍이 배를 뒤덮고, <시커호>에서는 높은 수압이 주인공을 압박해오지요. 바다라는 거대한 공간 앞에 인간은 한없이 작고 나약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작고 나약한 존재이기에, 바다 속에서 찾아낸 그들의 의지는 더욱 값진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령작가>와 <신갈나무 뒤에서>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이 두 작품은 바다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작품집 내의 다른 작품들과 같이, 자신을 둘러싼 것들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이들이 등장하여 과거를 되돌아보고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유령작가>에서는 삼류 소설가, <신갈나무 뒤에서>는 절에 들어간 여자를 통해 이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7편의 작품 중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시커호」입니다. 「시커호」의 주인공 ‘정’은 잠수부로, 과거 침몰된 시커호를 수색하던 중 왼쪽 다리를 다쳐 장애인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20년 후 시커호를 찾는 일이 재개되고, 정은 선장을 찾아가 작업에 합류시켜줄 것을 요구하지요. 정은 자석에 이끌리듯 심해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의 운명이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유연희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바다에서의 삶은 선택이 아닌 운명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처럼, 우리의 삶도 파도와 폭풍을 만나 이리저리 흔들리며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지요.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이 항해는 멈출 수 없는 운명과도 같습니다. 마치 「시커호」의 ‘정’이 다리를 잃고도 시커호를 찾아 잠수하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 처럼요.

 

나의 주변에는 바다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다에서의 삶은 때로 그들의 의지나 선택 밖의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듯 그들도 바다를 선택해 바다에서 사는 게 아닌 것 같을 때가 많다. 어쩌다 보니 바다를 택해야 하는 환경에 태어난 것 같았다. 나도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고, 아마 당신도 그럴 것이다. 당신이 알든 모르든 간에. -『날짜변경선』작가의 말 中

 

 

  유연희 작가는 부산에서 소설을 쓰는 부산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부산에서 나고 자란 덕에 언제나 바다와 함께 해왔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알기가 더 어렵다고들 하지요. 너무 가까웠던 탓인지, 바다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날짜변경선』을 읽고서 가까운 송도 바다에 다녀왔는데요, 이전과는 달리 백사장에 밀려오는 파도와 물살, 바람까지도 새롭게 보였습니다. 이 바다가 누군가에게는 과거·현재·미래를 지배하는, 삶의 현장이겠지요.

 

 

 

 

 

 

날짜변경선 - 8점
유연희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유연희 소설집

날짜변경선



날짜변경선 뒤로 펼쳐지는 바다 저편의 파랑(波浪)

육지에서의 시간을 내려놓고 나아가는 뱃사람들의 이야기

『무저갱』 이후 4년 만에 유연희 작가의 신작 소설집 『날짜변경선』이 출간되었다. 총 7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된 이번 소설집에는 육지를 등지고 바다를 항해하는 뱃사람들의 내면이 섬세하고 특이하다. 표제작인 중편 「날짜변경선」에서 선의(船醫)로 배를 탄 화자를 통해 같은 배를 탄 이들의 고뇌와 아픔이 물결 위에 녹아난다. 선의는 육지에서 도망쳐 바다로 왔지만 이곳에서는 철부지 이등항해사 아가씨보다 무력한 존재이다. 북극항로를 항해하는 화자가 새들의 방향으로 항로를 결정했던 선조들과 아버지 세대의 선원들을 회고하는 이야기(「어디선가 새들은」), 부두의 크레인이 바다와 육지의 경계이자 지구의 용골이라 자부하는 갠트리 크레인 기사들(「붉은 용골」), 싸롱우먼으로 승선한 임시직 여직원이 보는 바다보다 깊은 뱃사람들의 시선(「바다보다 깊은」), 침몰한 배를 찾는 잠수부들의 수압 지대(「시커 호」) 등 이번 소설집에서는 바다와 배를 구심점으로 교차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노동을 넘어선 자리의 항해기


유연희 작가는 바다에 관한 문학이 생소한 우리에게 바다를 이야기한다. 지정학적으로 바다를 가까이함으로써 미래를 열어나가야 하는 우리로서는 귀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늘 그래야 한다면서도 눈 돌리기 어려웠던 곳을 그는 보고 있다. _윤후명(소설가)


임시직 싸롱우먼으로 승선한 여선원이 보는 뱃사람들의 깊이(「바다보다 깊은」), 세계적인 항구도시 부산항의 크레인과 그 쇳덩어리를 생명체처럼 대하는 조종 기사들의 유대(「붉은 용골」), 투명이 한없이 쌓여 이윽고 무겁고 어두워진 바닥에서 삶의 목적과 희열을 찾는 잠수부들의 수압 지대(「시커 호」) 등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바다의 속살이 치밀하다. 소설집 『무저갱』에서 해양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했던 유연희 작가는 이번 소설집으로 해양문학의 외연을 확장하면서 바다에서 육지로, 육지에서 다시 바다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염원과 불안을 깊고 면밀하게 파고든다. 


한 인간을 재탄생시키는 바다

「날짜변경선」은 원양항해 실습선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바다를 떠도는 사람들의 형상이 신선한 중편이다. 화자인 선의(船醫)는 육지의 삶에 지친 우울증 환자이다. 비뇨기과 의사면서 피부과 시술로 돈벌이를 해오던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던 중, 아내의 불륜을 계기로 바다로 도망쳐 온다. 하지만 그가 만나는 항해의 편린은 하나같이 낯설고 위협적이다. 선원들 또한 물고기 비늘처럼 낱낱이 독특하고 이질적이다. 묘한 캐릭터의 기관장을 조우하고 조난 사고에 맞닥뜨리며 선의는 자신과 대결하는 순간을 맞고야 만다. 자신의 한계를 향해 조난선으로 뛰어내리는 순간 육지의 과거가 날짜변경선처럼 넘어간다. 한 인간이 바다에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작가는 “그들의 혼란에 가까워지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바다로 나오는 까닭은 의지나 선택 이전의 운명임을 유연희 작가는 말하고 있다. 


바다와 육지를 넘나드는, 생의 의미 


이 소설집은 절반 이상이 해양소설이다. 그중 바다나 항만과 무관한 소설은 「유령작가」와 「신갈나무 뒤로」 2편의 작품으로, 작가는 또 다른 호흡을 내뿜는다. 「유령작가」에는 유명 문학상 공모에 주인 없는 작품이 등장한다. 표절작이 대상 수상작이었던 것. 시상식장은 유령작가에 대한 화제로 소란하다. 퇴근 후 지친 몸과 빈약한 시간으로 근근이 소설 몇 편을 지방 문예지에 발표해오던 ‘나’는 은상을 수상하면서 시상식에 참여하게 되고, 작가는 시상식장의 유령작가를 통해 소설쓰기란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질문하고자 한다. 「신갈나무 뒤로」에서는 남편의 알콜중독 때문에 절에 들어간 여자가 나온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이자 도피처인 절은 기대했던 곳이 아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노인들의 마지막 정류소일 뿐. 지난한 속가(俗家)에서의 괴로움으로 방황하는 화자의 내면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반추해보는 작품이다.  


글쓴이 : 유연희

2000년 『한국소설』에서 단편 소설 「렌즈」로 작품 발표를 시작했다. 소설집 『무저갱』이 있으며 부산소설문학상, 김만중문학상, 산악문학상을 받았다.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아르코 창작기금을 받았다. 


날짜변경선 | 유연희 소설집

유연희 지음 | 문학 | 국판 | 232쪽 | 13,000원

2015년 7월 31일 출간 | ISBN : 978-89-6545-309-3 03810

『무저갱』 이후 4년 만에 출간한 유연희 작가의 소설집. 총 7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된 이번 소설집에는 육지를 등지고 바다를 항해하는 뱃사람들의 내면이 섬세하고 특이하다. 표제작인 중편 '날짜변경선'에서 선의로 배를 탄 화자를 통해 같은 배를 탄 이들의 고뇌와 아픔이 물결 위에 녹아난다. 선의는 육지에서 도망쳐 바다로 왔지만 이곳에서는 철부지 이등항해사 아가씨보다 무력한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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