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봉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2.05 별을 향해 쏘다!!-온천천 2탄
  2. 2010.01.21 파키스탄으로 간 의사


『부산을 쓴다』에 실린 김미혜 소설가의 「별을 향해 쏘다!!-온천천」 계속 이어집니다.

앞부분

녀석의 말이 장황하다 싶었는데 택시에 오르니 집에서 몇 분 걸리지도 않았고 설명이 소상해서 찾기도 쉬웠다. 조금 있으려니 녀석이 남자와 아이 하나, 그렇게 셋이서 긴 장대에 녹십자기를 매달아 든 모습으로 나타났다. 뜬금없이 웬 깃발씩이나? 하도 웃기는 장면이라 숨기지도 않고 웃고 있는데, 녀석이 정자로 올라오더니 다짜고짜 말했다.

온천천



“일주일에 1시간씩만 온천천에서 의료봉사 한번 해 볼라꼬. 오늘은 헌팅 삼아 나왔네요.”

개업의로 돈도 제법 번 녀석이 간소하나마 의료봉사를 하겠다는 것, 기특하기 짝이 없었다. 해서 반가운 마음에 일부러 억지소리를 했다.
“요새 환자 없는갑네? 그래서 외롭나?”
“참내, 생각이 그렇게 짧으니 결혼도 몬 했지. 내가 아무리 돌팔이라도 명색 의사 아인교. 국민건강을 위하야! 얌마, 인사해라. 우리 사촌 누나다.”

함께 의료봉사를 할 거라는, 옆에 섰던 덩치 큰 남자가 꾸벅 인사를 했다. 나도 인사를 했고, 달리 할 말도 없어 나무 난간에 앉아 하늘이나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푸른색으로 빛나는 큰 별 하나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어머! 영수야. 저기, 별 좀 봐라. 진짜 크네. 저 별은 색깔도 초록이다야. 저 별 내 꺼.”

녀석은 내가 손가락질하는 곳을 올려다보더니 으흐흐흐, 희한한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친구 되는 사람도 도무지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흥, 내가 유치하다 그 말씀이지? 이 나이에 별이나 찾는다고? 니들 생각은 참으로 가상하다만, 역시나 속물이로구먼. 사람이 별도 찾고 바람도 느끼고, 그런 게 인지상정 아닌가? 기분이 상한 나는 속으로 속물들을 실컷 비웃었다. 한데 속물 아비와는 달리 아이는 볼수록 귀여워서 볼도 만져 보고 이름도 물어보고. 잠깐이지만 친한 척을 했다.

녀석과 친구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지 푸른 별이 어쩌고 야광이 어쩌고 하며 지들끼리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키득대다가 10시가 되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긴 장대는 그냥 장대가 아니라 못 쓰게 된 낚싯대라 깃발을 떼어 내고 착착 밀어 넣으니 막대로 변했다. 어떤 속물의 생각인지는 몰라도 기발하긴 했다.

온천천



조금 전, 영수가 전화를 해 왔다. 오늘 밤 온천천 벚나무 밑의 정자에서 정식으로 야간진료소를 개소할 예정이니 부디, 자랑스러운 첫 번째 무료환자 자격으로 참석해 달라고. 막상 나가 보니 별도 볼 수 있고 큰 무리도 아니어서 그러겠다고 했다. 한데 이어지는 녀석의 말이 참으로 가당찮았다. 지 친구 의사가 나랑 사귀고 싶어한단다. 하이고, 사람을 뭘로 보고.

“야야, 니도 잘 알다시피 나는 유부남 진짜 싫어하거덩? 멀쩡히 아들까지 있는 사람이 남의 처녀와 사귀고 싶다니, 지 정신 아이제?”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으니 아직 싱글로 산다며, 녀석이 버르장머리 없이 손위인 나를 한껏 비웃었다. 친구는 미혼이고 아이는 아들이 아닌 조카라고. 오잉? 그리고 연거푸 이어지는 녀석의 말. 내가 반색을 했던 온천천 하늘의 주먹만 하던 별은 별이 아니라 낚싯대 위에 달아 논 야광구슬이었다는 것. 허걱! 게다가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노친네가 멍청하게도 야광구슬을 별로 보는 그 순진함이 하도 귀여워 친구가 나랑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더라나? 기가 차서. 그래서 둘이 허리가 부러지게 웃었구나.

“오늘은 쫌 이뿌게 하고 나오소. 참참, 안경알 도수 높이는 것도 잊지 마시고. 크큭.”
민망하기도 하고 할 말도 없어 유구무언으로 있는데, 녀석은 제 할 말만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뉘앙스가 묘한 웃음과 안경 도수 좀 높이라는 말에 다시 존심에 왕금이 갔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끊어진 전화기에 대고 나도 내 할 말은 다 했다. 온천천 정자에서의 야간진료? 내가 첫 환자 아니라도 고맙고 말고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연하남이 내 무식에 뻑이 갔다고? 그거야말로 좋고 말고다. 하나 아직은 때가 아인 기라. 알았나, 이 사람아! 아무튼, 온천천 기다려! 공짜 진료라니 양잿물이라도 마셔줄 테다. 아니, 너 때문에 넋 나간 남자까지 생겼으니 독약인들 마다하리. 온천천! 넌, 영원한 내 사랑이야.

그랬다, 인생은 내게 하기 싫어한 일도 득으로 돌아오게 하고 몸으로 느낀 고통으로 소중한 인연을 쌓게도 하고. 그러니, 하늘에 뜬 진짜 별아 받아라. 너를 향해 쏜다. 마음속 내 소망을!
내일은 그동안 무심히 지냈던 분들께 전화라도 한 통 드려야지. (끝)

Posted by 비회원

세상이 들썩거린다. 몇일째 계속되는 한파와 폭설로 사람 혼을 빼놓더니, 지구촌 한켠 아이티란 나라에선 강진이 발생해 난리가 났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죽어 무슨 재난영화를 보는것처럼 도무지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그 와중에 아프간에서는 또 '테러'가 발생해 사람이 죽고 다치고 했는데, 사상자 몇만이라는 숫자의 위력 앞에 몇명이라는 일단위 숫자는 뉴스거리도 못되는 것 같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아이티에는 국제구호단이 파견되고 각 나라에서 경쟁적으로 원조를 하고 있지만 이런 관심과 지원이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다.

중앙아시아 변방,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접경 지역에서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묵묵히 인간에 대한 사랑을 실천해 온 한 의사가 있다. 그의 이름은 나카무라 테츠. 한가지 일을 20년 넘게 한 사람은 무조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청년이 처음 파키스탄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다소 거창하게 들리는 국제구호단체나 NGO활동 때문은 아니었다. 아주 사소한 계기. 일본의 한 등산회에서 가는 티리치미르 원정대에 참가한 것이 계기였다.

티리치미르산은 파키스탄 북서부에 솟아 있는 힌두쿠시산맥의 최고봉이다. 높이 7,690m로, 세계에서 29번째로 높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 가까이에 있으며, 그 동쪽과 남쪽 기슭을 치트랄 협곡이 지나간다. 이 계곡은 페샤와르와 카불로 통하는 중요한 교통로이다.



파키스탄 북부 마스츠지에서 바라본 티리치미르산


사람 운명은 예측하기 어렵다.
내가 파키스탄에 처음 간 것은 1978년 6월
후쿠오카등산회에서 가는 티리치미르 원정대에 참가한 것이다.
그 후 여러 차례 파키스탄 북부의 변경지방을 방문했지만,
그 모두가 의료 활동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는 나비나 산들이 나를 이끌었던 것이다.
 - 1장 <파키스탄의로 간 의사> 중에서



난민캠프 아이들

난민캠프에서 죽음은 일상이다.
연약한 어린이는 설사만으로도 쉽게 죽어갔다.
전사통보가 매일같이 집집마다 전해졌다.
캠프 밖에서는 연행된 포로들에 대한 처형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언제나 암울한 생각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무엇에든 적응할 수 있는 동물인 것이다.
사느냐 죽느냐 갈림길에 서 있었지만, ‘가난한 자 아둔하다’는 말은 맞지 않았다.
우리가 갖고 있던 식량이 떨어지자, 배고픔을 겪고 있던 캠프 주민들은 부족한 빵을 나누어주었다. 식어버린 ‘난’이라는 얇은 빵과 물처럼 묽은 스프일지라도,
단란한 한 때의 즐거운 대화가 양념이 돼주었다.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도 죽는 순간까지 명랑했다.
사람들은 조그만 즐거움에서 큰 위안을 찾아내고 있었다.
- 2장 <아프가니스탄 난민들> 중에서



지프에 약품을 실어 만든 이동약국

“논쟁은 신물이 날만큼 들었다. 목숨을 구하는 게 우선이다.
11월 초순까지 뿌리를 뽑아라!
현장에서 세 팀이 하루 2백 명씩 진료하면 3주일이면 끝난다.
지금 사태는 8월 이후로 증가 추세를 뻔히 알면서도 방치한 결과이지 않느냐?
여러분들은 논쟁을 하기 위해 공부했단 말인가?
역학조사나 유효약품 검토 따윈 다 쓸어 내다버려라.
서푼짜리 아카데미즘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사라져줬으면 좋겠다.
이곳은 열대의학을 실험하거나 조사하는 곳이 아니다.
수많은 생목숨들이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단 말이다.
적을 앞에 두고 논쟁은 나중에 해라.
자, 서둘러라!”
- 3장 <악성말라리아와 투쟁하다> 중에서



누리스탄 산악 지역에 있는 마을

선진국의 기술문명이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학교에는 없는 그 지역 전체의 전통 속에서, 일상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는 교육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교육시설이 열악하다든지 교재가 없다든지 그러한 것은 아닐 것이다. 돌판에 분필로 메모를 하면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수업풍경도 꽤나 정취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스스로가 조금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양을 몰고 땔감을 등에 메는 일도 가족의 끈끈한 정을 다지며, 공동체 내부에서 필요한 협력과 생활의 기술을 가르친다. 매일의 기도는 인간의 도를 가르치는 윤리교육 그 자체인 것이다.
- 4장 <아프가니스탄의 오지로> 중에서


 병원에서 재발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

나병 근절 계획이 현지에서 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나병이 돈이 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납득이 갈 리 없겠지만, 선진국에서 환영할 만한 테마를 내걸면 자금이 많이 들어오는 것은 사실이었다. 노골적인 외국의 모든 NGO들은 그 후 고양이의 눈동자가 변화하듯 착착 활동내용을 바꿨다. 커뮤니티 헬스케어, 여성인권, 소아마비 근절, 에이즈, 모자위생, 지구환경 등이 그 좋은 예였다. 모두가 나병 문제와 깊게 관련되어 있었지만, 우리 페샤와르회는 초기 방침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 단지 외국인을 즐겁게 하기 위한 사업으로 변질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 5장 <위기> 중에서



나병 병동

나는 병원을 떠날 때 다시 한 번 나병병동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먼지가 이는 구 시가지의 혼잡 속에 병동만이 녹색 수목들에 덮여 다갈색의 삭막한 광경에 한 점 촉촉함을 전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지금까지 10년 동안 분명 여기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치유되었을 것이다. 그 동안 ‘붕대를 감아주는 싸구려 여관’이라고 불리던 나병병동은 산뜻한 새 건물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북서변경주 6천 명 이상의 나병 환자들에게 안식처로서 기능해 왔다. 지금 우리들은 여기를 떠난다. 병동은 기능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누가 진료를 한단 말인가? 얼핏 이런 감상들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미련이 남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잇달아 전개되는 새로운 정세에 대응해야 할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6장 <충돌> 중에서



얄쿤강 상류계곡에서 말을 타고 가는 나카무라 선생

얄쿤강 하류 강변을 지나가는데 타고 가던 말이 갑자기 날뛰기 시작했다. 등자에 발이 걸린 채 말에서 떨어져서 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꼴이 되고 말았다. 천지가 거꾸로 뒤집혔을 때, 설산을 배경으로 한 하늘의 푸르름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눈에 들어왔다. 이 말이 돌투성이 강바닥으로 날뛰어 준다면 뇌좌상으로 의식을 잃겠지. ‘천지에는 시작도 끝도 없으나, 인생에는 죽음이 있네.’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편안해지고 싶었다. 지나온 이국에서의 나날들이 한순간에 그립게 생각되었다.
- 7장 <격동> 중에서



페샤와르 근교 난민 캠프

너무 비약하는 것 같지만, 소련 붕괴에서 나지불라 대통령 처형에 이르기까지 경위를 모두 보아왔던 나는 인간들이 갖는 공통의 병리를 여기서도 보았다.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 권력에 반항하는 것도 그것이 자기를 위한 목적으로 바뀌면서 역시 부패의 길을 걷는다. 과거 업적이나 소유는 그것이 힘이든 돈이든 명예든 무력이든 간에 사람 마음을 교만하게 하여 눈을 흐리게 하는 권력의 원천인 것이다. 힘이라는 괴물의 끔찍함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 8장 <통합병원 건설> 중에서



눈 덮힌 힌두쿠시 산맥

사람들은 우리 행동을 칭찬했지만, 우리가 훌륭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내재되어 있던 자연을 비추어내서 보고 있던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자에게 특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소유로부터의 자유이다. 사람에게는 ‘가지지 않을 자유’라는 것이 주어져 있다. 역설적이지만 없는 양만큼, 주어서 잃는 양만큼 우리들은 낙천적이고 풍요로워졌던 것이다. 그것은 은총이었다.
- 10장 <또 다시 변경으로> 중에서


청년의사는 장년이 되었고, 이제 노년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의술은 국경을 넘어>는 아시아 변방 오지 마을과 해발 2800미터 산악지대를
넘나들며 환자들과 함께한 한 젊은 의사의 치열한 17년 삶의 기록이다.
‘내 능력과 인생을 나를 위해 쓰지 않고,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쓰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저자 나카무라 테츠는 책을 통해 보여준다.
나카무라 테츠 의사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의료봉사단을이끈 공로로 2003년 막사이사이상(평화 및 국제이해 부문)을 수상했다. 

*막사이사이상은 1957년 항공기 사고로 숨진 막사이사이 전 필리핀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정부 공무원, 공공사업, 국제협조 증진, 지역사회 지도, 언론문화 등의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의술은 국경을 넘어 - 10점
나카무라 테츠 지음, 아시아평화인권연대 옮김/산지니
Posted by 산지니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