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화열전>1892년 상하이 소설잡지 해상기서에 연재된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로, <, >의 작가 장아이링이 감명을 받아 두 번이나 번역한 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상하이 화류계에 출입하던 실제 명사·배우를 조박재라는 화류계에 빠져버린 청년과 관련지어 그렸으며, 특별한 줄거리는 없으나 청말 상하이 화류계의 풍경 및 생활사를 가감 없이 묘사하였고, 신분적 주변부에 머물렀던 기생을 비롯한 인물들을 생생하게 표현하며 당시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소설로 평가 받습니다.

 

이번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은 해상화열전의 역자 김영옥 선생님과 함께했습니다.

 

김영옥 선생님은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해상화열전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셨고, 인제대, 동의대, 동아대학교 등에서 강사로 역임하였으며, 현재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조교로 재직하고 계십니다. 논문으로 영화 <해상화>와 소설 해상화열전의 서사구조 비교,한방경 단편소설의 근대적 불교서사 탐색-환희불을 중심으로등이 있습니다.

 

 

 김영옥 선생님은 <해상화열전>과 관련된 논문을 작성하며 <해상화열전>을 번역하고자 마음먹으셨습니다. 일상적인 이야기가 반복되기 때문에 전체적인 줄거리 파악이 어려웠는데, 논문을 쓰면서 꼼꼼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강연을 준비하시는 김영옥 역자

 

1892년도에 해상기서라는 잡지가 나옵니다. 한방경이 스스로 만들어서 자신의 작품을 연재 하기 위한 잡지였습니다. 한방경은 과거 급제에서 계속 떨어졌기 때문에 그 당시 지식인으로서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해상기서를 만들고 신보에 대대적으로 광고했습니다. 이 잡지는 한방경 자신이 경험했던 1880년대의 실제적인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중국의 작가들은 항상 자기 시대를 서술하기보다는 시대를 앞서간다거나 풍자를 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는데, 해상화열전은 한방경이 자신이 살아왔던 그 시대, 그 공간에서 있는 그대로를 서술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19세기 말 상하이 조계지 지도

 

19세기 말 상하이 조계지 표시를 해놓은 부분이 현성인데, 청나라 정부의 손길이 닿는 곳입니다. 아편전쟁 이후에 다섯 개의 항구를 영국에 내주었을 때의 청나라에서 빨간 표시 부분을 영국에 내어주었고 영국은 자기들이 생각한 도시를 이곳에 건설하게 됩니다. 상해 조계지는 기본적인 구성은 영국에서 만들었는데, 자신들이 꿈꾸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고 평가 받습니다. 조계지에 기루는 복주로에 모여있고, 고급 기녀가 사는 곳, 2급 기녀가 사는 곳, 창녀들이 사는 곳 등 영역이 따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조계지 복주로 지도

 

그 당시 복주로를 보면 건물이 상당히 밀집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테라스가 마주 보고 있는 구조입니다. 소설 속에 나와 있는 지역들이 실제로 거의 다 존재해, 소설이 그 당시를 그대로 옮겨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강연을 듣고 있는 저자와의 만남 참여자들

 

 육가석교 사진과 본문자료

 

육가석교는 현성과 조계지를 연결해 주는 다리입니다. 1회의 초입 부분의 '화야련농 꽃도 나를 가련하게 여기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들도 시든다는 것을 목도하다.'와 같은 구절에서 인생의 참담함을 느끼며 꽃밭에 떨어지고 마는데 그곳이 바로 육가석교입니다. 현성에서는 가마로 이동하고, 현성에서 멀어지면 인력거를 탈 수 있고, 마로(마차)도 있습니다. 현성과 조계지는 도로 사정이 완전히 때문에 현성에서는 가마, 조계지에서는 인력거나 마차를 탄 것입니다.

 

 

 

 

 청말 상하이 기녀들의 모습

 

19세기 말 상하이 기녀들은 등급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왼쪽에 앞머리가 있는 기녀들은 아직까지 머리를 올리지 않은 기녀이고(소설 속 주상욱 주상후라던지 황금봉 황주봉) '칭꽌(맑은 기녀)' 라고 불렸습니다. 오른쪽에 있는 기녀들은 '훈꽌'으로 머리를 올린 기녀들입니다.

 

 

 

 청말 장삼서우의 모습

 

'서우'는 몸을 팔지 않는 기녀를 의미하는데, 장삼은 서우보다 다가가기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장삼이라는 말처럼 이 기녀들을 부르려면 삼원을 주면 됩니다. 장삼은 서우보다 덜 전문적으로 예능을 배웠던 사람이고, 연기를 하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을 서우라고 합니다. 1870년대에 서우는 이미 입지 조건이 좁아지면서 장삼서우가 엄격하게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원래는 장삼과 서우는 함께 자리하지 않았는데 그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녀들의 대표적인 장식품인 비취 연밥 머리핀 

 

 

비취 연 머리핀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녀들은 초록색에 집착을 많이 했는데, 비취 연밥 머리핀을 두고 참 재미있는 대화를 했습니다. 한방경은 2급 기녀 출신 장이종의 '제가 볼 줄 아나요?'라는 말을 통해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고, 오소량과의 대화를 통해 허영심을 보여줍니다. 이런 사소한 대화를 한방경이 책 속에 굳이 썼다는 자체가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청말 당시 유행하던 아편을 피우는 모습

 

 

아편을 잘 피우는 것은 그 당시 상하이의 세련됨의 기준이었습니다. 아편을 잘 태워주는 것도 능숙한 기녀의 역할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편을 피워본 경험이 없는 조갑제는 담뱃대가 자주 막히곤 하였습니다. 주에인이라는 사람은 아편중독이었고, 한방경은 신문 사설에 아편을 피우지 말라고 하면서도 자신은 아편을 많이 피웠습니다.

 

 

 

술자리에서 후아취엔을 하는 모습

 

후아취엔은 술자리에서 하는 일종의 가위바위보 놀이입니다. 술자리에서는 늘 사업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생일잔치를 열었을 때에도 실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숨어 있고, 왕아히 뒤에 있는 장소천이라는 사람도 한참 후에야 작품 속에 등장합니다. 심수홍과 희극배우 류소화와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끊임없이 후아취엔을 하는 것은 그 당시를 살던 사람들의 문화입니다. 후아취엔이 무엇인지 영화를 통해 알고 있으면 책을 읽을 때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역자 선생님과 함께하는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습니다. 책 속의 인물에서부터 작품이 가지는 문학사적 의의까지 다양한 내용의 질문과 답이 오갔습니다.

 

 

 

 

 

 

Q: 소설 속 굉장히 많은 기녀들이 등장하는데 역자님이 번역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인물은 누구인가요?

 

A: 황치봉은 나와 너무도 다른 성격의 인물입니다. 황치봉에게는 전장과 나자부라는 손님이 있었는데, 전장은 이전부터 계속 만나던 사람이고 나자부를 새롭게 자신의 손님으로 만드는 장면이 나와요. 나자부라는 사람은 매력이 없어요. 뚱뚱하고 수염 나 있고 살쪄있고 자주 술을 먹습니다. 하지만 황치봉에게 그런 모습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나자부가 가진 돈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오직 그것만 생각하죠. 황치봉의 큰 그림은 나자부의 돈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황치봉은 나자부에게 자신과 사귀는 대신 다른 사람과 사귀면 안 된다는 증표, 증서를 받고, 나중에 황치봉이 기생어미를 장악해서 자신의 기루를 차릴 때, 나자부와 전장의 재력을 이용합니다. 이 내용이 본격적으로 나오는 것이 6,7,8회입니다. 황치봉은 가장 번역하기 어려운 인물이었어요. 아주 힘들었죠.

 

 

 

Q: 얼마 전이 1919년 일어난 5.4운동 100주년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중국에서 봉건제가 무너지고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였지 않습니까? 저는 1892년에 발표된 <해상화열전>은 봉건제 사회 속 기녀들의 계급과 청 말의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면 중국 사회나 학계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A: 실제적으로 중국 문학사라고 하면 1911년 <아Q정전>, <광인일기>를 근대소설의 시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지금 학계에서는 근대소설이 여기서부터 시작되었고, 서양의 영향을 받았다고 바라보고 있는데, 대만 독자면서 하버드 대학의 왕더우이라는 교수의 글을 보면 자신은 5.4가 중국 근대의 시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그 예가 <해상화열전>인데요. 왕더우이의 논지는 근대가 서구의 영향을 받거나 이입된 것이 아니라 중국 내에서 자생했다는 것입니다. 청말소설들이 질적으로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하며 양적으로만 해석을 했는데 1998년 영화 <해상화>를 기점으로 하여 <해상화열전> 연구가 확대되었습니다. 지금은 학술계에서도 근대소설의 시작을 루쉰의 1900년대가 아니라 해상화열전이라고 생각하는 움직임이 있어요. 그것을 밝혀주는 논문들, 글들이 영향력을 얻고 있는 상황입니다. 

 

<해상화열전> 자체가 형식적인 면에서도 이전의 청말 소설과 확실히 달라요. 이전에는 시로 시작해서 중간에 시사를 넣어서 흥을 돋우는 그런 형식이 빈번하였으나 해상화열전은 작가가 작품 속에 들어가지 않고 그저 바라볼 뿐입니다. 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굉장히 독립적인 이야기가 기루마다 전개되는데도 나중에 조합해보면 스토리가 하나로 이어지죠. 한방경은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를 예상하고 글을 썼어요. 인물마다 나누어진 공간에 따라 독립적인 이야기가 되면서 전개됩니다. 이 소설의 중요한 특징은 작가가 작품 속에 개입하지 않고 최대한 독자들이 집중해서 읽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청말 소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에요.

 

 

 

 

 

 

 

 

 

 

 

강연 후에는 역자 선생님께 싸인도 받고,

함께 단체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청말 상하이 기녀들의 모습과 당시의 생활사를 가감없이 묘사한 해상화열전을 통해 중국의 근대와 역사, 문화에 대해 알아갈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흥미로운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신 김영옥 역자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해상화열전 - 상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해상화열전 - 하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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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은 『해상화열전』 김영옥 역자님과 함께합니다.

소설 『해상화열전』을 통해 청말 상하이의 시대상과 생활사를 알아보는

이번 강연에, 관심 있는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책을 미리 읽고 오셔도 좋고,

못 읽고 오신 분들을 위해 현장에서 도서 구입 가능합니다.

 

 

 

해상화열전 - 상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해상화열전 - 하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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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화열전 = 청말 상하이를 휩쓴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 완역.총 64회로 이루어진 장회소설로 상하이 조계지 화류계를 배경으로 다양한 계층을 형성했던 기녀들의 일상을 펼쳐낸다. 30여 명의 기녀 모두가 주인공이 돼 각자의 일상을 사건으로 만드는 파편적 이야기 다발로 구성된다. 한방경 지음, 산지니 펴냄, 전 2권, 각 2만 5000원.

 

 

 

경남도민일보,이원정 기자 june20@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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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화열전 - 상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해상화열전 - 하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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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수지 기자 = 19세기 말 중국 상하이의 조계지 화류계를 다룬 중국 최초 창작 연재소설이자 만청 시기 대표작가 한방경이 남긴 마지막 소설이다.  

1892년 상하이에서 발행된 중국 최초 문예잡지 '해상기서'에 연재된 이 소설은 당시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중국 소설사가 정리되는 과정에서 문체와 전개 방식, 내용적 측면에서 현대성을 선취한 독보적 작품으로 평가됐다. 작품 내부의 완결성으로 문학적 글쓰기의 독창성을 구현할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상하이 조계지 화류계의 부침을 사실적으로 다룸으로써 '상하이'라는 공간을 중국 소설사에 적극적으로 편입시킨 선구성을 담보한 작품이기도 하다.
   
총 64회로 이뤄진 장회소설이다. 상하이 조계지 화류계를 배경으로 다양한 계층을 형성한 기녀들의 일상을 미시적으로 펼쳐낸다. 유일한 주인공의 전기를 총체적으로 구현하는 전통적 서사를 거부하고, 작품에 등장하는 기녀 30여명 모두 주인공이 돼 각자 일상을 사건으로 만드는 파편적 이야기의 다발로 구성된다.

작가 한방경은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서술자 대신 마치 카메라의 시선처럼 기녀들이 다양한 신분의 표객, 기생어미, 하인과 관계를 맺고 일상을 꾸려가는 모습을 펼쳐낸다.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당시 상하이의 생활사를 구축하기라도 하려는 듯 도시로 급부상한 상하이 조계지의 장소와 거리를 스냅사진처럼 묘사한다. 결말 없이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기녀들의 굴곡진 삶을 전하는 이 소설의 끝이 다다르는 곳은, 여전히 기루에서 흘러나오는 그녀들의 노래이고 표객들이 드는 화권과 술잔이며 아편관에 가득한 흰 연기다.

김영옥 옮김, 상권 519쪽, 하권 550쪽, 각권 2만5000원, 산지니

 

 

 


이수지 기자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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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화열전 - 상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해상화열전 - 하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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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화열전 1, 2 (한방경, 김영옥, 산지니, 각 2만500원)=만청 시기 대표작가인 한방경이 남긴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 1892년 상하이에서 발행된 중국 최초 문예잡지 해상기서에 연재됐다. 중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작품이다. 이번 소설은 상하이 조계지 화류계를 배경으로 다양한 계층을 형성했던 기녀들의 일상을 미시적으로 펼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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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말 상하이를 휩쓴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

해상화열전(전2권)

 

한방경 지음 | 김영옥 옮김 | 신판 | 각 25,000원 | 

978-89-6545-584-4 04820 (上권)

978-89-6545-585-1 04820 (下권)

 

『해상화열전』은 1892년 상하이에서 간행된 중국 최초의 소설잡지 해상기서(海上奇書)에 연재된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이다. 청말 상하이 화류계의 풍경 및 생활사를 가감 없이 묘사했으며, 신분적 주변부에 머물렀던 기녀의 일생을 통해 시대상을 파악한 전위적인 소설로 평가받는다.

 


 

 

 

 

 

 

해상화열전 - 상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해상화열전 - 하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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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화류계 다룬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

 

 

 

 

편전쟁 이후 상하이는 중국의 대표적인 도시로 급부상했다. 특히 태평천국의 난으로 인구가 대량 유입되면서 유흥업도 번성하게 됐다. 상하이 조계지의 북쪽 거리에는 기루가 즐비했고 그곳에는 각 지역 출신의 기녀들이 영업했다. 1870년대 이후 소주(蘇州) 출신 기녀들이 고급 기녀로서 우위를 점하게 되면서 다른 지역 출신 기녀들도 고급 기녀로 성장하기 위해 소주 방언을 배워야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계지의 고급 기녀들은 대부분 소주 방언을 사용했다.

 

<해상화열전>은 중국 상하이 조계지 화류계를 다룬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이자 만청(晩淸)식의 대표 작가 한방경이 남긴 마지막 소설이다. 부산대 중문과 박사 출신인 김영옥 씨가 번역자로 나서 국내 최초 완역본을 산지니에서 펴냈다. 

 

1892년 상하이에서 발행된 중국 최초 문예 잡지 <해상기서>에 연재됐된 이 소설은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중국 소설사가 정리되는 과정에서 문체와 전개 방식, 내용적 측면에서 현대성을 선취한 독보적 작품으로 중요하게 언급됐다. 총 64회로 이뤄진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로 상하이 조계지 화류계를 배경으로 다양한 계층을 형성했던 기녀들의 일상을 미시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에 등장하는 기녀 모두가 주인공이 돼 각자 일상을 사건으로 만든다. 마차를 타고 거리를 활보하며 기루를 드나드는 인물의 행동과 대화를 통해 19세기 말 중국 격동기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선 ‘색, 계’의 작가 장아이링이 감명을 받아 두 번이나 번역한 책으로 화제가 됐다. 또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영화 ‘해상화’(1998)의 원작 소설로도 유명하다. 한방경 지음/김영옥 옮김/산지니/상권 519쪽, 하권 550쪽/각권 2만 5000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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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말 상하이를 휩쓴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

해상화열전(전2권)

 

한방경 지음 | 김영옥 옮김 | 신판 | 각 25,000원 | 

978-89-6545-584-4 04820 (上권)

978-89-6545-585-1 04820 (下권)

 

『해상화열전』은 1892년 상하이에서 간행된 중국 최초의 소설잡지 해상기서(海上奇書)에 연재된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이다. 청말 상하이 화류계의 풍경 및 생활사를 가감 없이 묘사했으며, 신분적 주변부에 머물렀던 기녀의 일생을 통해 시대상을 파악한 전위적인 소설로 평가받는다.

 


 

 

 

 

 

 

해상화열전 - 상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해상화열전 - 하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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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화열전 1, 2 = 만청(晩淸) 시기 대표 작가인 한방경이 남긴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

1892년 상하이에서 발행된 중국 최초 문예잡지 ‘해상기서’에 연재돼 이후 문체와 전개 방식, 내용적 측면에서 현대성을 선취한 독보적인 작품으로 중국 문학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됐다.

이번 소설은 상하이 조계지 화류계를 배경으로 다양한 계층을 형성했던 기녀들의 일상을 미시적으로 펼쳐낸다.

작품에 등장하는 30여명의 기녀가 모두 주인공이 돼 각자의 일상을 사건으로 만드는 파편적 이야기의 다발로 구성된다.

작가는 마치 카메라의 시선이 된 듯 기녀들이 다양한 신분의 표객, 기생 어미, 하인과 관계를 맺고 일상을 꾸려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펼쳐낸다.

이번 번역본에는 1894년 간행될 당시 삽입됐던 삽화 및 작품의 재미와 이해를 더 해줄 한방경의 서문과 후기 또한 수록됐다.

김영옥 옮김. 산지니. 519쪽·550쪽. 각 2만5000원.

 

 

 

 

 

김선아 기자 baby47484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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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말 상하이를 휩쓴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

해상화열전(전2권)

 

한방경 지음 | 김영옥 옮김 | 신판 | 각 25,000원 | 

978-89-6545-584-4 04820 (上권)

978-89-6545-585-1 04820 (下권)

 

『해상화열전』은 1892년 상하이에서 간행된 중국 최초의 소설잡지 해상기서(海上奇書)에 연재된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이다. 청말 상하이 화류계의 풍경 및 생활사를 가감 없이 묘사했으며, 신분적 주변부에 머물렀던 기녀의 일생을 통해 시대상을 파악한 전위적인 소설로 평가받는다.

 


 

 

 

 

 

해상화열전 - 상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해상화열전 - 하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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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말 상하이를 휩쓴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

해상화열전국내 완역 출간

 

해상화열전은 한마디로 이전의 소설과 다르다.

광서 말에서 선통 초까지 상하이에서는 이러한 기루 소설이 많이 나왔으나 해상화열전과 같이 평담하면서 사실적인 작품은 없었다.

- 루쉰(魯迅)

 

 

19세기 말 중국의 상하이 조계지 화류계를 다룬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이자 만(晩淸)시기의 대표 작가 한방경이 남긴 마지막 소설 해상화열전이 드디어 국내 최초 완역 출간되었다. 1892년 상하이에서 발행된 중국 최초 문예잡지 해상기서에 연재된 이 소설은 당시에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중국 소설사가 정리되는 과정에서 문체와 전개 방식, 내용적 측면에서 현대성을 선취한 독보적인 작품으로 중요하게 언급되었다. 화류계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중국 고전문학의 정수로 널리 알려진 홍루몽과 유사한 작품으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해상화열전에 이르러 홍루몽이라는 전통은 마감되고 기루소설은 중대한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대문호 루쉰의 평을 주목한다면 이 소설의 진가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해상화열전은 작품 내부의 완결성으로 인해 문학적 글쓰기의 독창성을 구현할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 상하이 조계지 화류계의 부침을 사실적으로 다룸으로써 상하이라는 공간을 중국 소설사에 적극적으로 편입시킨 선구성을 담보한 작품이기도 하다. 번역은 부산대 중어중문학과에서 본 작품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관련 작가론 및 작품론을 두루 제출한 김영옥 선생이 맡았다. 총 두 권으로 분권 출간되는 국내 번역본에는 1894년 석인초간 영인본으로 간행될 당시 삽입되었던 삽화와 더불어 작품의 재미와 이해를 더해줄 작가 한방경의 서문과 후기 또한 빼놓지 않고 수록하였다.

 

 

 

 

 

 

 

 

 

 

 

 

루쉰, 후스에서 장아이링까지

중국의 문호가 극찬한 작가 한방경이 다시 쓰는 중국 소설사

 

평담하면서 사실적인 작품”(루쉰), “소주(蘇州) 방언문학의 걸작”(후스), “갑자기 끝을 맺는 결말의 백미”(장아이링) 등 당대는 물론 이후 해상화열전을 접한 중국의 문호들은 이 소설의 등장에 주목하고 문학성에 대해 평하며 작품이 주는 감흥의 연원을 다양한 시각에서 평해왔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창작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극찬 받는 이 소설이 현대 일반 독자에게 널리 알려지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현지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작품의 출간 및 유통이 제한되는 부침을 겪기도 하다가 1981년 장아이링의 표준어 번역본 출간을 계기로 일반 독자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이후 대만의 거장 허우 샤오시엔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면서 작품의 현대성이 증명되기 시작했다. 한편 일본에서는 중국 고전문학자 오오타 타츠오에 의해 1969년 헤이본샤 중국대표 고전 목록에 포함되었고 서양권에서는 장아이링의 영역본을 저본으로 삼아 2005년 컬럼비아대학 출판사에서 The Sing-Song Girls of Shanghai라는 제목으로 출간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작품의 명성이 검증되었다.

 

올해 한국어 번역본 출간을 계기로 이제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해상화열전을 만날 준비가 되었다. 문학작품, 특히 고전을 읽는 계기와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새롭고 낯선 이 소설을 처음 만나게 될 국내 독자들에게는 작가 한방경의 삶과 글쓰기 자세에 주목해보는 것이 좋은 통로가 될 수 있다. 일찍이 글쓰기에 재능을 보여 수재(秀才)로 이름났던 한방경은 여러 필명으로 글을 쓰며 뚜렷한 작가적 자의식을 내비쳤다. 신보(申報) 편집 주간을 지내며 시사(詩詞)를 비롯한 산문, 논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글을 썼으며 한때 막료 생활을 하기도 했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새로움을 추구했던 그의 글쓰기는 향시에서 요하는 공식 문체와는 상당 부분 괴리가 있었고 정식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은 채 평생 글쓰기를 통해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의식을 모색하게 된다. 경계인으로서의 그의 삶은 1892년경 절정을 이루어 상하이에서 직접 중국 최초 문예잡지해상기서를 간행하고 작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화야련농(花也憐儂)’이라는 인물을 서술자로 내세워 작품화하기에 이른다. 해상화열전은 바로 그가 글쓰기를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새로움과 자유가 집약된 수작이라 할 수 있다.

 

 

 

 

 

 

 

 

 

 

 

 

감정의 발견으로 재탄생한 19세기 말 상하이 화류계,

소설의 미시사로 펼쳐지는 중국의 격동기

 

어떤 객이 화야련농(花也憐儂)이 살고 있는 방으로 와서 64회 이후의 원고를 찾았다. 화야련농은 웃으며 자신의 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원고는 여기에 있소.”

객은 그 대략적인 내용을 청했다. 화야련농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저의 책에서 얻은 게 있습니까 없습니까? 저의 책은 64회로 모두 갖춰져 있고 끝이 있는데, 또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한방경의후기중에서

 

해상화열전은 총 64회로 이루어진 장회소설로 상하이 조계지 화류계를 배경으로 다양한 계층을 형성했던 기녀들의 일상을 미시적으로 펼쳐낸다. 소설은 유일한 주인공의 전기를 총체적으로 구현하는 전통적 서사를 거부하고, 작품에 등장하는 30여 명의 기녀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각자의 일상을 사건으로 만드는 파편적 이야기의 다발로 구성된다. 작가 한방경은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는 서술자 대신 마치 카메라의 시선이 된 듯 기녀들이 다양한 신분의 표객, 기생어미, 하인과 관계를 맺고 일상을 꾸려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펼쳐낸다. 뿐만 아니라 마치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당시 상하이의 생활사를 구축하기라도 하려는 듯 도시로 급부상하기 시작한 상하이 조계지의 장소 기루, 찻집, 아편관, 공원, 매음굴 와 거리를 스냅사진처럼 묘사한다.

 

한편 해상화열전을 여러 번 탐독하며 작품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이 소설을 널리 알리는 데 공들였던 현대 중국문학의 대표 기수 장아이링이 강조했던 것처럼 갑자기 끝을 맺는 결말에 주목하는 것은 해상화열전이 보여주는 도시 상하이의 생활사만큼이나 이 소설을 읽어야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대단원의 결말 없이 저마다의 독특한 사연을 간직한 기녀들의 굴곡진 삶을 펼쳐내는 소설의 결말이 다다르는 곳은 여전히 기루에서 흘러나오는 그녀들의 노래이고 표객들이 드는 화권과 술잔이며 아편관을 가득 채우는 흰 연기이다. 문체와 형식상의 변화와 실험을 통해 중국 소설사의 한 획을 그은 해상화열전을 읽는 것은 마차를 타고 거리를 활보하며 기루를 드나드는 인물의 행동과 이들이 나누는 대화의 행간에 머무는 감정의 흐름을 통해 19세기 말 중국 격동기의 단면을 들여다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P.6      이 책은 타일러 깨우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치밀하게 묘사한 곳은 마치 그 사람을 보는 듯하고, 그 소리를 듣는 듯하다. 독자들은 그 말을 깊이 음미하며 풍월장 속을 들여다보면서도 싫어서 회피하거나 혐오할 틈은 없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인명과 사건은 모두 허구이며 결코 특정인이나 사건을 가리키는 바는 없다.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을 숨긴 것이고, 어떤 사건은 어떤 사건을 숨긴 것이라고 망언을 하면 독서를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며, 더불어 이야기하기 부족하다 할 것이다.

()중에서

 

P.15     이 장편 소설은 화야련농(花也憐儂)이 지었고, 제목은 해상화열전입니다. 상해가 개항한 후 남쪽 홍등가는 날로 번창해갔고 그곳에 빠져 지내는 젊은 화류객들도 늘어났습니다. 그들은 부모형제의 만류도 외면하고 스승과 친구의 충고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 얼마나 우매하고 무지한지요. 이는 그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탓이겠지요. 그곳에서는 서로 추파를 던지며 유혹을 하는 등 온갖 애정 행각이 벌어지지요. 본인들이야 그 재미에 흠뻑 빠져 있겠지만, 그 모습들을 묘사하면 금방이라도 토할 듯 역겨울 따름입니다. 그런데도 그들 중에 어느 누구도 정신을 차려 그곳을 완전히 잊고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화야련농은 보살심으로 장광설을 발휘하여 그들의 모습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였습니다. 유사한 사건을 연결하여 엮되 때로 과장되게 꾸미기도 하여 생생함을 더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음란하거나 외설적인 글 한 자 없으며, 전체를 보면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그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만약 독자들이 이들의 행적을 좇아 낱낱이 살피고 그 의미를 깨치게 되면, 이들이 앞에선 서시(西施)보다 아름다워 보이지만 그 뒤에선 야차(夜叉)보다 악랄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지금이야 조강지처보다 살갑고 다정하게 대하지만 지나고 나면 전갈보다 표독스럽게 변하리라는 것을 점치게 될 것입니다. 이 또한 잠에서 깨어나려는 순간, 새벽종 소리를 듣고 문득 인생의 깊은 이치를 성찰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화야련농이 해상화열전을 지은 이유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 글을 쓴 화야련농이 어떤 사람인지 아시는 지요? 화야련농은 원래 괴안국 북쪽에 있는 흑첨향의 주인 지리씨로, 일찍이 천록대부를 지냈지요. ()나라 때 예천군공에 봉해져 중향국의 온유향으로 들어와 살게 되면서 화야련농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화야련농은 원래 흑첨향의 주인이었던지라, 매일 꿈을 꾸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는 꿈을 꿈이라고 믿지 않고 현실이라 여겨 이 꿈들을 책으로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이렇듯 꿈속 세계를 한 권의 책으로 다 엮고 난 후에야 그 책 속의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그곳에서 꿈만 꾸지 말고 이 책을 한번 읽어 보는 게 어떠실런지요.

01 조박재는 함과가의 외삼촌을 방문하고,

홍선경은 취수당의 중매를 서다

趙樸齋鹹瓜街訪舅 洪善卿聚秀堂做媒부분

 

 

 

 

 

 

 

 

 

 

 

저자 소개

 

 

지은이 한방경(韓邦慶, 1856~1894)

송강부 누현(松江府 婁縣, 지금의 상하이)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친 한종문(韓宗文, 1819?)이 형부주사(刑部主事) 직책을 맡게 되어 유년 시절을 베이징에서 보냈다. 1876년 전후 고향 누현으로 돌아와 수재(秀才)가 되었으나, 이후 1885년 난징 향시에 낙방하였다. 1887년부터 1890년까지 신보에서 편집자 및 논설 기고자로 생활하였다. 1891년 베이징 향시에 낙방한 후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18922월에 중국 최초 문예 잡지 해상기서를 간행하여 해상화열전을 연재하였다. 1894년 초봄 64회 석인본 해상화열전을 출판한 후 오래지 않아 병을 얻어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김영옥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 「『해상화열전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인제대, 동의대, 동아대학교 등에서 시간강사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부산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조교로 재직하고 있다. 논문으로 영화 <해상화>와 소설 해상화열전의 서사구조 비교, 한방경 단편소설의 근대적 불교서사 탐색-환희불을 중심으로등이 있다.

 

 

 

 

목차

 

목차(더보기)

 

 

 

 

 

 

 

 

 

해상화열전를 원작으로 하는 영화 <해상화>입니다.

양조위가 출연했고, 9분 동안 원테이크로 촬영된 첫 장면이 특징입니다.

영화 속 대부분의 공간은 어둑하며 폐쇄적입니다. 실외에서 촬영한 장면이 없습니다. 촬영기법이나 시대 배경이 주는 오묘한 분위기 때문인지 마니아층이 두터운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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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화 (海上花: Flowers Of Shanghai, 1998)

 

감독: 허우 샤오시엔

출연: 양조위, 방선, 하다 미치코, 고첩, 유가령, 반적화, 이가흔, 위조혜

줄거리:

19세기 말 상하이의 한 유곽, 외교 관리인 왕은 유곽의 매춘부인 소홍의 단골이다. 왕은 다른 유곽의 매춘부인 혜정과 밤을 보냈다는 이유로 소홍에게 면박을 당한다. 왕은 소홍의 빚을 탕감해주고 그녀를 첩으로 맞기를 원하지만 소홍의 불분명한 태도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 늙은 남자 홍과 짝을 이룬 쌍주는 아량이 넓은 성격으로 사람들간의 갈등을 중재한다. 루의 후원을 받고 있는 쌍취는 똑똑하고 직선적이다. 왕은 소홍의 방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북경 오페라 배우를 발견하고 질투에 휩싸여 방의 집기를 부순 뒤, 소홍을 버리고 혜정을 첩으로 맞아 광동으로 전근을 간다. 그 사이 쌍취는 빚을 갚고 자유를 얻었으며, 신참내기 쌍옥은 젊은 청년 주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와 결혼하지 못할 것을 알고 동반자살을 기도한다. 절망에 빠진 주는 소홍의 방에서 아편을 피운다.

 

 

 

 

 

 

 

  

 

청말 상하이를 휩쓴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

해상화열전(전2권)

 

한방경 지음 | 김영옥 옮김 | 신판 | 각 25,000원 | 

978-89-6545-584-4 04820 (上권)

978-89-6545-585-1 04820 (下권)

 

『해상화열전』은 1892년 상하이에서 간행된 중국 최초의 소설잡지 해상기서(海上奇書)에 연재된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이다. 청말 상하이 화류계의 풍경 및 생활사를 가감 없이 묘사했으며, 신분적 주변부에 머물렀던 기녀의 일생을 통해 시대상을 파악한 전위적인 소설로 평가받는다.

 


 

 

 

 

 

 

해상화열전 - 상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해상화열전 - 하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책 주문하기 >> https://goo.gl/cUJW3o

*산지니 출판사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습니다.
(10% 할인, 3권 이상 주문시 택배비 무료)


 

      

 

 

 

 

 

 

 



 

 



Posted by 비회원

 

                     해상화열전[산지니 제공]

 

해상화열전 1, 2 = 만청(晩淸) 시기 대표 작가인 한방경이 남긴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

1892년 상하이에서 발행된 중국 최초 문예잡지 '해상기서'에 연재돼 이후 문체와 전개 방식, 내용적 측면에서 현대성을 선취한 독보적인 작품으로 중국 문학사에서 중요하게 언급됐다.

이번 소설은 상하이 조계지 화류계를 배경으로 다양한 계층을 형성했던 기녀들의 일상을 미시적으로 펼쳐낸다.

작품에 등장하는 30여명의 기녀가 모두 주인공이 돼 각자의 일상을 사건으로 만드는 파편적 이야기의 다발로 구성된다.

작가는 마치 카메라의 시선이 된 듯 기녀들이 다양한 신분의 표객, 기생 어미, 하인과 관계를 맺고 일상을 꾸려가는 모습을 담담하게 펼쳐낸다.

이번 번역본에는 1894년 간행될 당시 삽입됐던 삽화 및 작품의 재미와 이해를 더 해줄 한방경의 서문과 후기 또한 수록됐다.

김영옥 옮김. 산지니. 519쪽·550쪽. 각 2만5천원.

 

 

 

                    

bookman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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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말 상하이를 휩쓴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

해상화열전(전2권)

 

한방경 지음 | 김영옥 옮김 | 신판 | 각 25,000원 | 

978-89-6545-584-4 04820 (上권)

978-89-6545-585-1 04820 (下권)

 

『해상화열전』은 1892년 상하이에서 간행된 중국 최초의 소설잡지 해상기서(海上奇書)에 연재된 중국 최초의 창작 연재소설이다. 청말 상하이 화류계의 풍경 및 생활사를 가감 없이 묘사했으며, 신분적 주변부에 머물렀던 기녀의 일생을 통해 시대상을 파악한 전위적인 소설로 평가받는다.

 


 

 

 



 

 

 

해상화열전 - 상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해상화열전 - 하 - 10점
한방경 지음, 김영옥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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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여행은 위험하다. 떠남과 만남, 그 구체적 사건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상념과 관념으로 존재하던 여행은, 바로 그 떠남의 순간부터 무수한 만남들의 지평을 연다. 그러므로 여행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미지의 경험 속으로 자기를 내던지는 기투이며, 이 때문에 모든 여행은 그 알 수 없음의 암흑 가운데서 두려운 마음으로 떠도는 방황인 것이다. 그러니 예정된 ‘일정’이란 언제나 배반될 수밖에 없으며, 우발적인 사건들의 터무니없는 전개로 여행의 시간이란 극히 혼돈스러운 것이다.

6월의 끝자락은 무더웠고, 학기말의 일정들로 마음은 몹시 빠듯했다. 작은 여행 가방에 억지로 쑤셔 넣은 물건들처럼, 분주한 일상을 미처 다 정리하지 못한 내 마음은 영 거북하기만 했다. 그것은 공항에서 만난 K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출판사의 여러 형편들이 떠나는 그의 마음을 부담스럽게 붙들어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우리는, 어차피 이렇게 떠나게 되었으니 잘 다녀오자고 서로를 위안하며 비행기에 올랐다. 그만큼 우리들의 여행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륙과 함께, 기체 밖의 작아진 영토만큼이나 마음의 거북함은 점점 멀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약간의 설렘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들의 여행은 난삽한 관념으로부터 구체성의 경험으로 서서히 이륙하고 있었다.

상하이의 푸동공항에는 이틀 전에 이미 도착해 있던 이종민 교수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물론 그 마중은 K의 간곡한 요구를 따른 것이니 환대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먼 이국땅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불안한 처지의 우리들로서는, 그 마중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요금이 좀 비싼편이었지만, 공항에서 숙소로 가는 길에 우리는 자기부상 열차를 탔다. 그것도 상하이에서 해 볼 수 있는 여러 경험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열차 안에서 이종민 교수는 이틀 동안의 음주기담을 펼쳤고, 그것은 곧 앞으로 우리가 보내게 될 상하이의 밤들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숙소에 도착, 호텔은 의외로 훌륭했다. 짐을 풀고 간편한 차림으로 갈아입은 우리는, 일행과 함께 와이탄 거리로 향했다. 신혼여행의 첫 여행지가 바로 이곳이었던 나에게 와이탄 거리와의 재회는 남다른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20세기 초 유럽풍의 건축물들이 풍기는 고풍스런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 무렵, 어느새 화평반점 앞에 도착한 우리는 길을 건너 황푸공원으로 갔다. 몇 컷의 어색한 사진을 찍고, 이종민 교수의 또 다른 지인들을 기다렸다가 합류한 후, 우리들은 번화한 난징로를 걷고 또 걸었다. 거리를 가득 매운 정말로 많은 인파, 그리고 당연한 소란스러움과 이방인에게는 익숙지 않은 독특한 냄새들. 난징로를 걷는다는 것은, 그 모든 낯선 감각들과의 갑작스런 조우였다.

여행은 무엇보다 낯선 풍경들과 만남이라고 할 만큼 시각적인 것의 우위로 점철되는 사건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번 여행은 풍경보다는 사람을 만나는 일, 그것이 여행의 묘미라는 것을 일깨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4박 5일의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또 그들과 어울렸다. 물론 길거리에서 만난 그 익명의 사람들과의 종적 없는 부딪힘이란 또 얼마나 귀한 것이었던가.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구성철 형과의 만남은 특별하게 기억해 두고 싶다. 특히 형과 함께 했던 비오는 밤, 푸단대 유학생 거리의 노천에서 먹고 마셨던 양꼬치 구이와 칭다오 맥주의 맛은 미각이 아니라 온몸에 아로새겨질 추억의 한 조각임에 틀림없다. 처음엔 역했던 그 양고기의 맛처럼, 현지의 음식들은 대단히 괴로운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적응이 되어갔다. 이렇게 되풀이되는 경험 속에서 단련되고 익숙해지는 것, 적응이란 수동적으로 길들여지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반복되는 경험의 교류 속에서 대상을 치열하게 이해하게 되는 능동적인 받아들임의 과정이 아닐까.

  

대전 지역의 한 국립대에서 이종민 교수와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는 구성철 형은, 푸단대에서 국제관계학으로 박사논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나이에 특히 민감했지만, 고달픈 유학생활을 잘 견뎌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견뎌낸다니, 하지만 어쨌든 저 기약 없는 유학생활이란 나에게 분명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라고 여겨졌다. 이런 마음은 아마도, 장춘에서 이제 막 유학을 끝내고 돌아오는 아내에 대한 감상 탓이리라. 끝이란 것이 있을 수 없는 공부의 시간이란, 그렇게 우리들을 한 없이 기다리게 만드는, 가혹하게 지루한 바로 그런 것이니까.

상하이에서의 첫날 저녁, 그 낯선 시공간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활달한 청년들이었다. 이종민 교수의 학부 제자들은 그들의 외모만큼이나 밝고 환한 선남선녀들이었고, 구성철 형의 친구들(그 중에 한 사람은 한국에 유학했던 중국인이었다.)은 유머와 위트로 시종 즐거웠다. 그런 분위기 탓이었을까, 나는 과음했고 안 해도 좋을 가벼운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다음 날은 역시 고통스런 숙취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대가 없는 즐거움이란 없는 것일까? 주흥이 다하자 고통이 찾아왔다. 아침 날이 밝았는지도 모르게 누워있는데, K는 벌써 일어나 씻고는 TV를 켜 놓고 내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겐 이른 시간이었지만, 늘 규칙적인 생활에 익숙한 K에겐 늦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가벼운 차림으로 호텔을 빠져나와 골목길을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상하이 사람들의 생활을 엿보고 싶은 마음으로 그렇게 떠돌다보니, 눈앞에 지하철 입구가 나타났다. 매표기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한 여학생의 도움을 받아 표를 끊고 지하철을 탔다. 상하이의 지하철 풍경은 부산의 지하철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전날 거닐었던 난징로에 이르러 아침 식사를 할 만한 곳을 찾았다. 과음으로 속이 거북했던 나는 한국식 해장국이 너무나 그리웠지만, 도저히 중국음식을 먹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햄버거나 콜라가 보편적인 음식이니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나니 다를까 그 맛은 한국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현지화된 것이었다. 맥도널드 따위의 패스트푸드를 보편적인 맛으로 여기고 있는 나의 입맛이란 정말 한심한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서구적인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감각하는 내 천박한 감수성이란 어디 음식뿐이겠는가. 맥도널드와 함께 시내 곳곳에는 KFC가 자주 눈에 띠었는데, 그곳의 메뉴에는 한국에 없는 죽들이 아침 식사로 팔리고 있었다. 그 역시 중국 인민의 생활에 맞게 변용된 것이리라. 숙취로 고달픈 중에도 문화의 유통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처지라니.

30위안이면 하루 종일 탈 수 있는 이층짜리 시티 투어 버스는, 이번 상하이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의 하나였다. 우리는 그것을 타고 무려 두 바퀴 반을 돌았는데, 처음엔 노선을 따라 상하이 시내를 유람하였고, 두 번째는 내리고 타기를 반복하면서 예원과 상하이 박물관, 미술관 등 몇몇 장소를 관람했다. 체력이 바닥나 박물관에서 무척 지쳐보였던 K는, 미술관에서는 활력을 되찾은 듯 그림들 앞에서 휴대폰 카메라의 셔트를 마구 눌러댔다. 역시 너무 먼 과거의 유물들보다는 화폭에 그려진 동시대의 삶이 우리에겐 더 매혹적이었던 것 같다.

상하이의 도심은 큰 길 주변으로, 격조가 있어 제법 그럴듯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그런 건물들로 외곽을 이루고 있는 도심 내부의 생활공간은 완전히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세월의 때가 그대로 느껴지는 낡은 가옥들, 꾀죄죄한 느낌이 들 정도의 독특한 냄새들, 그 집의 살림살이를 짐작하게 만드는 늘어놓은 빨래들, 후텁지근한 날씨에 웃통을 벗고 있는 남자들, 한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늙은이들, 재잘거리며 뛰노는 아이들... 이방인의 눈에 그것들은 그저 지저분하고 남루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들의 가난한 삶이란 원래 그렇게 난삽하게 펼쳐진 가재도구들 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상하이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인화의 소설 <<하비로>>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 모든 풍경에 대한 인상을 적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과 사물 모두가 퀴퀴하고 구질구질하고 편안해 보였다.”

미술관 관람을 끝으로 상하이 투어를 끝낸 우리는, 미술관 주변 거리를 거닐다 지하철을 타고 호텔 근처로 되돌아 왔다. 이종민 교수와 구성철 형이 호텔 로비로 찾아왔다. 중국음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위해 그날 저녁은 한국 음식점으로 데려가 주었다. 소주에 고기를 구워먹으며 김치찌개에 밥을 먹으니 참 좋았다. 나의 이문화적 감수성이란 이렇게도 많이 편파적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자리는 이차로 이어졌고, 구성철 형의 기숙사 로비에 하얀 물보라가 뿜어져 나오는 성능 나쁜 에어컨 앞에서, 우리는 배달시킨 양꼬치에 칭다오 맥주를 마셨다. 물론 나는 양꼬치의 역한 냄새 때문에 전혀 먹지를 못했고, 구성철 형이 공들여 끓여준 계란까지 곁들인 라면에 얼큰하게 소주를 마셨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그랬던 것처럼, K는 역시 3일 째 날에도 일찍 일어나 있었다. 창문 밖으로는 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었다. 편의점에 들러, 나는 컵라면을 K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대충 아침을 때웠다. 버스를 타고 우리는 루쉰 공원으로 갔다. 여행 첫날 프랑스인들이 조성했다는 어느 공원에 들렀을 때, 이종민 교수는 중국의 공원은 모두 노인공원이라 농담을 했었다. 역시 루쉰 공원엔 노인들로 가득했고, 음악에 맞추어 집단으로 춤을 추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넓은 공원을 거닐며 담소를 하다 보니 어느새 루쉰 묘지에 이르렀다. 소박했지만 역사의 무게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묘소 참배 후 드디어 루쉰 기념관으로 갔다. 한국에도 많은 작가들의 기념관이 있지만, 작가의 삶과 문학적 일대기를 이렇게 잘 정리해 놓은 곳을 보기란 참으로 드물다. 나중에 이종민 교수에게 들으니, 기념관의 배치를 새롭게 해 루쉰의 혁명적 성격이 많이 약화되었다고 했다. 그 전의 모습을 알 수 없으니 뭐라 할 수 없지만, 듣고 보니 일대기 위주의 전시물 배치가 조금은 단조롭게 여겨졌다.

기념관을 나오니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K는 책을 읽고 나는 잠시 눈을 붙였다. 달콤한 휴식 뒤에 우리는 비오는 거리를 걸어 일본 조계지를 찾아갔다. 한국의 인사동에 비견할 수 있는 그곳에는 일본식 적산가옥과 고풍스런 건물들이 즐비했다. 몇 컷의 사진을 찍고 다시 서둘러 길을 나섰다. 택시를 타기 전 서점에 들러 오후에 만날 작가 왕안이의 소설 <<장한가>>를 한 권 샀다.

 

호텔로 가서 젓은 옷을 갈아입고 푸단대로 향했다. 왕안이는 상하이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로 장아이링의 뒤를 잇는 것으로 평가받곤 한다. 곡절 많은 인생을 살았던 장아이링과는 달리 지금 왕안이는 푸단대 문예창작과의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이번 만남은 상하이 대학에 방문 교수로 와 있는 목포대학교 임춘성 교수와의 대담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종민 교수와 임춘성 교수, 그리고 대담의 정리와 한국어 번역을 맡은 유학생이 동석했다. 이번 대담은 내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잡지에 실릴 것이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었고, 잡지에 실을 사진을 몇 컷 찍고는 자리를 떠났다. 대담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라운지에서 차를 마시며 한담을 나누었다. 대담이 끝나고 다시 임춘성 교수와 합류한 우리는 학교 근처의 음식점에서 이번 대담을 연결해준 상하이 대학교의 왕광동 교수를 접대해 저녁 만찬을 가졌다. 향이 센 시앙차이도 먹어보고 냄새가 지독한 취두부도 먹었다. 편견을 버리고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니 모든 음식들이 다 먹을 만했다. 결국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 세상을 편협하게 받아들이는 자기 안의 옹졸함이 아닐까. 이차는 유학생촌 앞의 노천에서 양꼬치에 맥주를 마셨다. 이 자리에서 나는 비로소 양꼬치 맛의 매력에 눈떴다. 양꼬치의 매콤함과 구운 마늘줄기의 담백함은 천상의 조합이었다. 깊은 밤 보슬보슬 비가 내리는데, 좋은 사람들과 시끄럽게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생활의 여러 시름들은 잠깐 잊고 오직 즐거움으로 충만했다.

벌서 4일 째 날. 상하이 대학 현대문화연구소에서 이종민 교수의 발표가 예정되어 있었다. 점심시간에 맞추어 상하이 대학에 도착한 우리는, 전날 만났던 왕광동 교수의 환대로 맛있는 점심식사를 대접받았다. 이제는 음식에 어느 정도 적응이 돼 황소개구리 요리 마저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날 자리에는 <<문화/과학>>의 편집인인 중앙대학교 영문과의 강내희 교수가 함께 했다. 그곳에 체류한 지 4개월째라고 한다. 그날 하루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그에게서 좌파 지식인의 결기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연구소에 젊은 연구원들이 속속 모여들자 이종민 교수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발제문은  <<오늘의 문예비평>> 지난 여름호에 실렸던 「왕후이의 중국 개혁개방 서사에 대한 질의」였다. 이 글은 중국의 비판적 지식인 왕후이의 사상적 변화의 의미를 되짚어 보면서, 그 변화의 바른 방향에 대한 조언을 담고 있다. 왕후이가 중국 굴기의 성공 요인으로 꼽은 두 가지, 즉 개혁개방 이전의 사회주의 시기의 경험과 국가의 적극적 역할에 대한 언급은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이종민 교수는 그것이 왕후이의 사상적 전회가 아니라 일관된 논리라고 이해한다. 바로 그 지속되는 부분(개혁개방 서사)에 대한 근본적 사유를 통해, 이종민 교수는 몇 가지 의문을 제시하면서 최종적으로 왕후이가 구상하고 있는 인민민주주의 정치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 대안이란 ‘사회적 통합을 정치적 수단으로 재창조’하는 셰리 버먼 식의 사회민주주의의 길이다. 쉽게 말해 이종민 교수는 북유럽 식의 사회민주주적 복지국가 모델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종민 교수의 발제에 대해 토론을 맡은 연구원은 발표시간보다 긴 토론으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는데, 그 무례한 열정은 중국어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나에게도 아주 뜨겁게 전해졌다. 칭화대에서 왕후이의 지도로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그 토론자는 이종민 교수가 왕후이의 논지를 오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내희 교수는 토론자에게 사회주와 공산주의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토론자는 역시 교과서적인 답변을 했다.

그 날 행사에 참석했던 젊은 연구원들과의 뒤풀이는 대단히 유쾌했다. 특히 낮에 왕광동 교수가 선물한 수정방을 꺼냈을 때의 열기는 뜨겁다 못해 활활 불타올랐다. 강내희 교수는 탁월한 술꾼이었고 이종민 교수는 엄청난 술꾼이었다. 지레 겁먹은 나는, 자작을 자제하며 젊은 연구원들의 건배 제의에 답례하는 술잔만 기울였다. 그날의 술자리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흥겹고 신명이 나는 자리였다. 열정적인 토론을 보여주었던 친구와는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차후를 기약할 만큼 정다운 교감을 나누었다.

자리를 옮겨 우리는 이차로 상하이대학 개천가의 노천 술집에서 양꼬치에 술을 마셨다. 강내희 교수는 흥에 겨워 가곡을 불렀고 모두들 즐거워했다. 분위기가 차분해지자 진지한 이야기들도 오갔는데, 강내희 교수는 이종민 교수의 발표에서 사민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한 부분에 대하여 강력하게 비판했다. 선생은 격앙된 어조로 “사민주의는 가능한 것이 아니야!”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사실 발제에서 이종민 교수는 왕후이에게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원리주의적 접근을 지양할 것을 제언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종민 교수의 입장에서 보자면 강내희 교수의 비판은 사민주의를 수정주의로 보는 지극히 원리주의적 입장에 다름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런 토론은 한국의 좌파 지식인 내부의 논쟁과 갈등을 재연하고 있는 것 같아 무척 인상 깊었다.

흥이 깊었는지 그날은 이차에 만족하지 못하고 술자리는 삼차로 이어졌다. 드디어 나는 지쳤고, 자리를 피해 혼자 바람을 쐐며 개천 거리를 거닐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땐 강내희 교수가 민요를 부르고 있었는데, 특유의 소리 꺾임이 구성지게 들렸다. 모두들 웬만하게 지쳐 술자리가 파하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양꼬치에 맥주를 외치는 이종민 교수를 뒤로 하고 우리는 호텔로 갔다. 상하이에서의 마지막 밤, K는 “마지막인데 맥주 한 잔 해야지요?”라고 했고,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을 사들고 숙소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

여행 내내 K는 출판사에 대한 생각들로 쉴 틈이 없었다. 젊은 연구자들과 함께 했던 마지막 날 밤은 지난 시절을 더듬어 젊은 날의 자기를 추억하는 듯 했다. 늘 같은 패턴으로 되풀이되던 지겨운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풍물과 사람을 만날 수 있었던 짧은 여행의 시간들, 그것은 말 그대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모처럼 만의 해방감 속에서 유유자적한 날들이었다. 그러나 이 여행이 끝나더라도 K의 고뇌는 계속될 것이고, 나도 역시 세속의 어떤 어려움들로 자주 외로울 것이다. 대사동 백탑 주변에 모여 살았던 이덕무와 박제가, 아홉 살의 나이 차이에도 그들은 깊은 우정을 나눈 벗이었으며, 함께 연경을 다녀오기도 했던 그들은 이따금 운종가의 시끌벅적한 시정을 유람할 만큼 세속의 인정에 관심이 많았다. 나보다 열 살이 많은 K는 책을 만드는 사람이고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우리는 책을 좋아하고, 그렇게 공통의 밑변 위에서 만나다보니, 어느새 이처럼 나이 따위는 무관한 벗이 되었다. 우리의 짧은 여행을 고난이라고 말할만한 그들의 여정에 빗대는 것이 무리인 줄 알지만, 이덕무와 박제가의 연경행은 과연 어떠했을까? 그들의 삶은 그 고단한 여정 이후 어떻게 달라졌을까? K와 나에게 이 여행은 무엇이었을까? 귀국과 함께 다시 돌아온 일상은, 이런 질문들을 무색하게 할 만큼 변한 것이 하나 없었다. 하지만 이 가혹한 시간들 속에서 이따금 상하이의 밤을 떠올릴 때, 나는 기꺼이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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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전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