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욱'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16.05.19 들여다보고 느낄수록 선명해지는 '로컬':: 다시 지역이다: 5·7문학 무크 1 (3)
  2. 2016.05.09 '5·7 정신'(요산 김정한 주도 문인단체)으로 지역문학에 활력 불어넣는다 (국제신문) (2)
  3. 2015.10.21 우리 시대의 중견 비평가론 -『비평의 비평』(책소개) (1)
  4. 2015.09.04 오늘의 문예비평 '신경숙 표절' 특집…"신경숙 진솔하지 못해 실망" (뉴시스)
  5. 2015.09.02 부산문인들 "창비 신경숙 옹호글, 식견 의심스러워" (연합뉴스)
  6. 2015.07.16 동정은 필요 없는 보통의 존재 -『다시 시작하는 끝』을 읽고 (6)
  7. 2015.04.10 (미남) 평론가의 사무─전성욱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1)
  8. 2015.04.09 상처 입은 여성들의 마음을 살피는 공감의 태도-『조금씩 도둑』(책소개) (3)
  9. 2015.03.23 “어긋남 속에 숨어있는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경북도민일보)
  10. 2015.03.02 다양한 예술 넘나드는 폭 넓은 평론 (국제신문)
  11. 2015.02.12 설연휴 최고의 선택!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2)
  12. 2015.02.05 짐승남의 저녁 ─전성욱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책소개) (2)
  13. 2015.01.06 64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고봉준 『비인칭적인 것』
  14. 2014.10.21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 톡! 톡!-정태규 소설가를 만나다 (2)
  15. 2014.08.26 근현대문학과 재난 재앙의 상상력 :: 동남어문학회 추계전국학술대회 탐방기
  16. 2014.01.13 중국의 국민성, '흩어진 모래'에서 복지사회의 실마리를 얻다:: 이종민 저자와의 만남 (1)
  17. 2013.09.02 내 인생의 책을 선물합니다 :: 2013 가을독서문화축제 안내
  18. 2012.12.27 저자와의 만남 :: 김주완 편집국장, 독자에게 지역언론의 길을 묻다
  19. 2012.07.20 구도(求道)를 위한 섬으로의 자기 유폐 - 『한산수첩』
  20. 2012.05.29 제 35회 저자와의 만남, 윤여일 선생님 (5)
  21. 2012.02.08 노마 히데키 선생님의 답장 (1)
  22. 2010.12.08 '청년' 비평가 전성욱 봉생청년문화상을 받다 (2)
  23. 2010.11.01 보편에 이르는 길
  24. 2010.10.29 제16회 <저자와의 만남>-『바로 그 시간』 전성욱 평론가
  25. 2010.09.30 아무도 문학평론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은 외롭다

지역의 삶을 섬세하게 대면한다

‘다시 지역’은 오랜 동어반복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무크지 ‘5·7문학’은 지역이야말로 전 지구적인 위기를 감지하는 곳이며 놓을 수 없는 희망을 건져 올리는 곳이라 말한다.

‘5·7문학’은 현금의 문학 지형에서 지금-이곳의 문학이 갈 길을 찾고자 창간되었다. 로컬은 들여다보고 느낄수록 그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양상이 선명해지는 지점이다. ‘5·7문학’은 공허한 담론의 재생산이 아니라, 로컬의 특수하고 구체적인 삶의 진경을 표현하고 재현하는 문학적 실천을 천명한다. 창간호에 모인 지역의 대표적 시인·소설가·문학평론가 20인은 오늘날 지역에서 펼쳐지는 삶의 수많은 결들을 섬세하게 대면한다.




1980년대 이후, 지금-이곳의 문학이 갈 길

무크지 ‘5·7문학’이 우연에 가까운 계기로 영감을 얻게 된 ‘5·7문학협의회’는 1980년대에 부산에서 요산 김정한 선생을 필두로 결성되어 진보적인 민족문학의 복원, 문학운동의 탈중앙화를 이끌었던 단체이다. 허나 ‘5·7문학’은 과거의 상징을 절취하여 그에 기대고자 하지 않는다. 87체제 이후의 문학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질 때, 협의회의 문학운동에서 다시 건져내어야 할 가치들이 있음을 인지할 뿐이다.

‘5·7문학’의 편집위원들은 지역의 구체적인 삶에 착목하지만 로컬을 더욱 복잡다단하게 만드는 국가와 세계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지금-이곳의 문학을 구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세계화라는 추상관념과 자본의 스펙터클이 보다 복잡해진 지역의 문제에 대한 착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구체를 놓치고 추상과 관념을 경배하는 문학은 자기도 모르게 세계의 속박을 용인”한다는 것이다.

최영철 시인은 “지역은 기회”라고 말하며 “지역이라는 공간에 인간과 세계가 안고 있는 제 문제가 있고 답도 있”다고 역설한다. “정신없이 대세에 휩쓸려가는 중심”과 달리, 시인에게 지역은 “피상적인 관념이 아닌 실체요 구체라는 점에서 (…) 처음을 되묻고 현재의 당면한 문제를 감지하고 돌파하게 하는 힘의 원천”이다.

강동수 소설가는 오늘의 문학이 “시대의 현실과 유리돼 있다는 느낌, 우리 시대의 화두를 회피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지금은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우리 시대의 문제를 다시 관찰하고 오늘의 화법에 맞게 발언해야 할 때”이다.




만물에게 열려 있는 ‘주막’ 같은 시

<특집> 5·7의 작가 - 최영철 편

무크지 ‘5·7문학’ 창간호의 특집 작가는 시인 최영철이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외 4편에서 시인은 특유의 유연함으로 어둠을 직면하며 ‘웃픈’ 현실을 관통한다.

최영철 시인이 가장 최근에 펴낸 시집 3종을 중심으로 한 작가론 「만물이 공존하는 공동체 지향」에서 허정 문학평론가는 ‘시가 현실 속에 있어야 한다’는 시인의 시적 지향이 자연, 사물, 무생물 등 “현실과 무연해 보이는 것까지 끌어안는 양상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 데 주목한다. 최영철 시인에게 있어 시는 “마지막 남은 재로 흐릿한, 문질러진 자국”이며 동시에 “만만한 주막거리”(「한때 시」)이다. 허정 평론가는 최영철 시인의 시를 만물에게 열려 있어 ‘아무나들’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읽어내며, 무효용성에 뿌리를 둔 시의 힘을 되새기게 한다.



신작 시·소설

신작 시와 소설 부문에는 지역의 대표적 작가 16인의 작품이 모였다. 시 부문에는 조성래, 조향미, 성선경, 이응인, 성윤석, 서규정, 고증식, 박서영, 표성배, 조말선, 최정란 시인의 신작 총 22편이 실렸고, 소설 부문에서는 조갑상의 「물구나무 서는 아이」, 강동수의 「언더 더 씨」, 정영선의 「치약거품을 물고 하는 대답」, 허택의 「어깨를 내리다」를 만날 수 있다.

한자리에 모인 지역 작가들의 목소리는 부산·경남 문단 내에 얼마나 다양한 시각이 공존하는지를 보여준다. 각각의 목소리를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음에도 분명한 것은, 이들 작품들이 더욱 굴절되고, 두터워지고, 복잡해진 낱낱의 장소와 사람들의 삶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5·7 작가론: 윤정규와 범죄소설 - 『얼굴 없는 전쟁』 읽기

요산 김정한은 부산의 소설가들에게 강력한 연합의 구심이 되어온 인물이다. 하지만 요산 선생이 오늘날까지 결속과 유대를 촉구하는 정치적 힘으로 남을 수 있는 것은 그를 기억하고 증언해온 후배 작가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성욱 평론가는 요산 김정한의 ‘2인자’였던 의인(宜人) 윤정규 작가에 주목해 그의 마지막 작품 『얼굴 없는 전쟁』을 범죄소설로 독해했다.


80년대의 부산 경남의 지역문학운동:

‘부산·경남젊은시인회의’에 대하여

‘부산·경남젊은시인회의’는 1986년에 원래 한 뿌리였던 부산·경남 시인들의 길트기를 위해 결성되어 약 10년간 활동했던 단체이다. 뜨거운 애정으로 부산·경남지역 곳곳을 누비던 활동의 발자취를 울산 지역 간사로 활동했던 안성길 시인이 재구성했다.

“한두 시간이면 오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인데 경남과 부산의 젊은 시인들이 너무 따로 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벚꽃 피는 4월에 진해에서 한 번 모입시다”라는 정다운 제안이 씨가 되어 결성된 ‘부산·경남젊은시인회의’의 첫 모임에는 30여 명의 젊은 시인들과 20여 명의 선배 시인들이 함께했다. 이후 회지 <시인회의>와 지역문학 보고대회 등을 열며 젊은시인회의는 지역의 현안들, 노동, 교육, 서민 등의 문제를 문학으로 껴안고자 했다. 부산·경남은 물론 경북, 호남과 연대해 90년대 초반 지역문학의 지평을 넓혀나가는 지렛대 역할을 담당한 ‘시인회의’를 기억하는 것은 오늘날 연대와 소통의 가능성을 찾는 데 이바지하는 소중한 일이다.




무크지 5.7 문학의 의의와 앞으로의 발전 방안

5·7문학이 다시 소환하는 ‘지역(local)’은 많은 전회와 변곡을 힘겹게 거치며 여러 의미를 누적해왔다. 이제 로컬은 보편, 균일, 스펙터클, 평면화, 추상화를 거부한다. 서문에서 편집위원들은 5·7문학의 발간이 “단지 작고 단순한 것들을 예찬하려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고 밝힌다.

아울러 [5·7문학은] 다양성과 차이를 말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이미 이항대립의 게임도 훌쩍 벗어나 있으므로 ‘지방주의’나 ‘비판적 지방주의’로 환원되길 원치 않는다. 공허한 담론의 재생산이 아니라 로컬의 특수하고 구체적인 삶의 진경을 표현하고 재현하는 문학적 실천을 천명한다. 그러므로 ‘다시 지역’이라는 우리의 소박한 전언은, 귀환장정이 부는 휘파람같이 가볍지만 않다. 앞으로 문학적 수행과 실천을 통해 조급하지 않는 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무크지 ‘5·7문학’을 발간하며」 중에서

5·7문학이 오늘날의 문학지평에 새로운 활력이 되고, 다른 지역에서도 지금-여기가 원하는 문학을 향해 가는 길에 함께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편집위원의 말


차례



다시 지역이다: 5·7문학 무크 1

5·7문학 편집위원 엮음 | 필자: 강동수, 고증식, 구모룡, 박서영, 서규정, 성선경, 성윤석, 안성길, 이응인, 전성욱, 정영선, 조갑상, 조말선, 조성래, 조향미, 최영철, 최정란, 표성배, 허정, 허택 | 신국판 260쪽 | 13,000원

2016년 5월 7일 | 978-89-6545-353-6 03810

로컬은 들여다보고 느낄수록 그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양상이 선명해지는 지점이다. 공허한 담론의 재생산이 아니라 로컬의 특수하고 구체적인 삶의 진경을 표현하고 재현하는 문학적 실천을 천명한다. 창간호에 모인 지역의 대표적 시인·소설가·문학평론가 20인은 오늘날 지역에서 펼쳐지는 삶의 수많은 결들을 섬세하게 대면한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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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별과우물 2016.05.20 09: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80년대의 부산·경남젊은시인회의 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

  2. 온수 2016.05.20 09: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미 있는 출간입니다^^

  3. BlogIcon 단디SJ 2016.05.20 09: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7문학 무크의 시작이 지역문학에 큰 의미를 가지는 것 같아요. 조금씩 성장해서 정기 간행물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화이팅!!



무크 제1호 '다시 지역이다' 출간


5·7문학협의회의 정신을 기리고, '5·7의 마음'을 오늘의 지역문학에 활력을 불어넣는 에너지원으로 삼겠다는 활동이 시작됐다. 5·7문학 무크 제1호 '다시 지역이다'(사진)가 산지니출판사에서 최근 나왔다. 무크는 부정기간행물을 뜻한다. '다시 지역이다'를 기획하고 엮은 편집위원은 강동수 소설가,구모룡 문학평론가, 최영철 시인이다. 5·7문학협의회는 소설가이자 민주화운동가 요산 김정한 선생이 주도해 1985년 5월 7일 부산에서 결성한 문인단체이다. 구성원은 모두 부산의 문인이었다. 군부독재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 출범한 이 문인 결사체는 민주화운동에 이바지했을 뿐 아니라 부산작가회의의 뿌리가 됐다. 무엇보다 여기 참여한 문인들은 저항도 했지만, 작품도 잘 썼다. 이렇듯 뜻깊은 참여와 창작의 전통과 정신을 오늘의 지역문학현장으로 가져와서 살리자는 것이 이번 무크지 '다시 지역이다' 발간에 담긴 뜻이다.

편집위원 세 사람은 '1980년대 이후의 문학과 지금-이곳의 문학이 갈 길'이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갖고 내용을 책에 실었다. 이 대화는 '5·7문학' 지향과 활동 방향을 보여준다. "전지구적인 위기를 감지하는 곳도 여기고 그래도 놓을 수 없는 희망을 건져올리는 곳도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최영철)

"그것은 피상적인 관념이 아닌 실체요, 구체라는 점에서 지역은 늘 저에게 처음을 되묻고 현재의 당면한 문제를 감지하고 돌파하게 하는 힘의 원천입니다."(최영철)

"5·7문학은 지역성에 토대를 두면서 우리 시대의 화두를 리얼리즘 정신 속에서 새로이 제기하는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합니다."(강동수)

"문학이 구체를 놓치고 추상과 관념을 경배할 때 자기도 모르게 세계의 속박을 용인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구모룡)

"그렇다면 답은 다른 방법으로 찾아야 하는데 그 답이 저는 예전과 같은 소집단 운동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문학은 그렇게 다시 가난해지고 다시 외로워져야 합니다. 그것만이 살길입니다. 문학의 하향 평준화를 막는 것이 가장 시급합니다."(최영철)

이 책에는 조성래 조향미 성선경 이응인 성윤석 등의 신작 시, 조갑상 강동수 정영선 허택 소설가의 신작 소설, 최영철 시인론(허정 평론가)과 윤정규의 '얼굴 없는 전쟁' 비평(전성욱 평론가) 등을 실어 새 기운과 읽을거리를 다 갖췄다.

조봉권 | 국제신문 | 2016-05-08

원문 읽기

다시 지역이다 - 10점
5.7문학 편집위원 엮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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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별과우물 2016.05.09 09: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5·7문학'에 대해서 설명이 잘 되어 있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읽어봐 주시면 좋겠네요. ^^

  2. BlogIcon 단디SJ 2016.05.11 10: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는 12일(목) 5.7문학 행사도 기대가 됩니다~


퇴락한 문학의 자리에서

여전히 타협하지 않는 중견 비평가들에게 주목한다

근대 문학의 종언이 선언된 시대에, 비평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1991년 발간되어 25년간 결호 없이 독자들과 만나온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이 국내 중견 비평가들에 주목하는 책을 펴냈다. 위기를 맞았다면 비평의 미래가 될 신인 평론가들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왜 하필 ‘중견’ 비평가인가? 이러한 의문에 필자들은 명료하게 답한다.

“패기 넘치는 젊은 비평가들의 열의도 인정해주어야 하지만, 여전히 도저한 비평가의 자의식으로 활력 넘치는 중견 비평가들의 존재론은, 그 자체로 어떤 강력한 반시대적 전언이다. 우리가 주목하고 귀 기울이고자 한 것이 바로 그 전언이었다.” 

_머리말 중에서

여성문학에 천착해온 비평가들에서부터 진보적·자유주의적 성향의 평론가들까지, 『비평의 비평』은 여전히 문학의 장에서 활약 중인 진중하면서도 타협 없는 ‘불한당’들의 궤적을 포착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한국 비평의 지형도를 그리며, 새로운 상상력을 싹틔워낼 우리 비평의 탄탄한 기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에서 젠더로 이행한 페미니스트 평론가 김미현

변화할 수 있는 세계 보여주며 대중과 소통하는 김용희

도입부에서는 여성문학과 신세대문학을 깊이 연구해온 두 비평가, 김미현과 김용희 평론가를 다룬다. 김경연의 「변온과 항온, 혹은 유동하는 ‘사이’의 비평」은 여성문학에 ‘올인’해온 김미현 평론가의 궤적에 주목한다. 2008년작『젠더 프리즘』에서 김미현은 페미니즘 ‘다시-보기’를 시도하면서 스스로의 비평행위를 심문한다. 여성에서 젠더로, 페미니즘에서 페미니즘 ‘이후’의 페미니즘으로 이행하며 김미현은 “현실을 민감하게 감각하면서 그 변화에 스스럼없이 몸을 내맡기”고 있다.

김필남은 김용희 평론가의 글을 「환(幻)의 글쓰기」라 정의한다. 현실·이성과 대립하는 ‘환’의 글쓰기는 독자를 “환상적인 세계, 꿈의 세계, 유혹에 빠지게” 한다. 대중과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김용희는 문학 평론은 물론 영화 평론, 소설 집필까지 나아갔다. 낡은 틀을 넘어서려는 소통의 노력을 통해 발견한 ‘환의 글쓰기’로 그녀는 완성된 형태가 아닌,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세계를 보여준다.


체제의 바깥을 꿈꾸며 문학의 전위에서 활동해온 

조정환, 김명인, 권성우

전성욱의 「유죄로서의 욕구, 이론과 신념」은 평론은 물론 노동해방문학 운동, 출판, 정치철학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온 조정환에게 주목한다. “지금도 나를 가장 강하게 사로잡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날 길을 알고자 하는 욕구”라는 조정환의 글을 인용하며 전성욱은 조정환에게 욕구란 “절대적으로 긍정적인 활력”이라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조정환의 비평이란 어떤 ‘론’이 아니라 이론과 신념 사이, 그 “생성의 틈”에서 분출해 나오는 것이다.

「혁명의 좌절, 비평의 악몽」에서 박대현은 80~90년대를 거쳐 오면서 줄곧 비평적 주체의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김명인을 살피고 있다. 그 작업이 “한국 민중문학의 한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한 것은, 비평이 민중으로부터 멀어졌거나 처음부터 변혁의 주체와 떨어져 ‘악몽’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명인의 평론을 통해 박대현은 오히려 비평이 “악몽의 순간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가장 절망적이고 비참한 순간에야말로 비평은 (…) 단단한 정신적 좌표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미혹과 비판, 성찰과 망명」에서는 전성욱이 권성우 평론가에 대해 썼다. 전성욱이 말하길 “비평의 아름다움은 문장의 유려함이나 해석의 치밀함보다는 ‘비평가의 자의식’이라는 내면의 섬세한 무늬”로 드러난다. 권성우의 경우 그 자의식은 건조하고 상투적인 논문 투의 비평문체로부터 ‘나’를 전면에 드러내는 개성적 비평으로, 주류화된 문학의 장르 구분을 넘어 변두리 양식의 가치를 발굴하는 ‘외부’의 비평으로, 문단제도의 불합리한 권력 행사를 거부하는 자유로운 탈주의 비평을 통해 ‘망명의 비평가’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문화적 좀비’상태를 ‘비판적 사유’로 돌파하는 도정일

당대 문학의 맥을 짚는 모더니스트 황종연, 이광호

서정이라는 ‘정공법’ 통해 시의 미래를 구상하는 유성호

박형준의 글 「르네상스 정신의 비평적 발현」은 이미 고전이 된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의 저자 도정일을 “우리 시대의 르네상스인”으로 명명한다. 문화적 좀비가 된 시민사회의 사유 정지 상태를 인문적 가치, 특히 ‘비판적 사유’를 통해 돌파하고자 하는 도정일은 “탈이성에 마취되어 있던 90년대를 ‘차가운 정신’으로 묵묵히” 관통한 예외적인 비평가이다. 박형준은 인간 개개인의 가치와 무한한 잠재성을 신뢰하는 그의 비평에서 계급 모순에 대한 사유가 부재하다고 지적하지만, 이를 근거로 그의 인문주의를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근대 문학 이후를 탐색하는 모더니스트」와 「‘무중력 공간’에 갇혀버린 ‘미적 근대성’」에서 손남훈은 모더니즘 문학에 집중해온 두 평론가 황종연과 이광호를 다룬다. 이 두 평론가에 대한 손남훈의 공통된 비판은 모더니즘-리얼리즘 이분법을 따르고 있다는 점인데, 황종연은 리얼리즘에 대한 비판을 통해 모더니즘 진영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이광호는 이 이분법을 부정하면서도 한국 문학사를 도식화하여 이 대립을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근대 문학 이후…」에서 손남훈은 황종연의 “정치한 문학적 방법론과 거시적인 인식이 근대 이후를 지향하는 또 다른 문학의 지형도를 창출”할 가능성을 발견한다. 「‘무중력 공간’…」에서는 이광호 평론의 장점은 “성실한 텍스트 해석과 더불어 이를 당대의 맥락과 관련시켜 의미화하는” 데 있다고 짚으며, 이 두 평론가들이 꾸준히 만들어갈 비평의 길에 기대를 걸고 있다.

마지막으로 허정의 유성호론 「서정과 현실의 역동적인 교섭」은 시가 근대문학 종언론의 축에 끼지도 못하고 이미 퇴물로 취급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미래파와 전통 서정 간의 대립구도도 시들해진 지금, 유성호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서정 개념의 갱신을 통해 이 시대 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왔기 때문이다. 서정이라는 ‘정공법’의 의미를 확대하여 시의 미래를 구상하는 유성호를 허정은 “철저한 현실 대면의식과 대안 세계에 대한 고갈되지 않는 희망을 중시해온 비평가”로 정의한다.


적극적 독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적 행위, 

‘비평’의 확장을 꿈꾸며

머리말에서 지은이들은 비평을 “적극적 독해를 통해 이루어지는 창조적 행위”라 정의한다. 그 ‘적극적 독해’가 문학 작품이 아니라, 비평의 길을 앞서 걸어온 선배 평론가들의 궤적을 읽어낼 때, 그 행위는 “신화도 전설도 아닌, 한 사람의 중견 비평가”를 비추어낸다. 물론 ‘비평에 대한 비평’은 자칫 문학장 내부로만 국한된 ‘찻잔 안의 태풍’으로 읽힐 수 있다. 그러나 『비평의 비평』은 새삼 ‘읽고 쓴다’는 행위에 요구되는 용기와 섬세함, 그리고 타자와의 열린 대화가 이루어질 때의 짜릿함을 전하는, 우리 ‘읽고 쓰는 사람’ 모두에게 화두를 던지는 책이다.

『비평의 비평』을 엮은 『오늘의문예비평』은 내년 봄 100호를 발간한다. 지난 25년간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로서 꿋꿋이 문학의 마중물 역할을 해온 만큼, 이 잡지 또한 ‘중견’이라 불릴 만한 깊이를 갖추게 되었다. 한국 문학 비평의 지형도인 『비평의 비평』을 통해, 『오늘의문예비평』또한 동료들을 여전히 긴장하게 만드는 ‘중견’의 모습으로 근대문학을 넘어서는 문학, 그리고 더 넓은 비평의 장으로 나아갈 원동력을 나누고 있다.


엮은이: 오늘의문예비평



지은이:



비평의 비평: 우리 시대의 중견 비평가론

오늘의문예비평 엮음 | 김경연 외 지음 

| 국판 292쪽 | 15,000원

2015년 10월 15일 | 978-89-98079-10-9 03810 

국내 유일의 비평전문 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이 국내 중견 비평가들에 주목하는 책을 펴냈다. 여전히 문학의 장에서 활약 중인 타협 없는 ‘불한당’들의 궤적을 포착하여 우리나라 비평의 지형도를 그린다. 



차례


비평의 비평 - 10점
김경연 외 지음, 오늘의문예비평 엮음/해피북미디어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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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온수 2015.10.22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드디어 나왔네요^^!


소설가 김곰치·평론가 구모룡 "표절은 확실"
전성욱 편집주간 "사랑 결합하는 서사구도 유사"


부산 지역 문인들이 소설가 신경숙(52) 표절 사태와 관련해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3일 출판계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부산광역시 거제동에 위치한 산지니 출판사 회의실에서 전성욱 편집주간의 사회 아래 소설가인 조갑상 경성대 교수와 소설가 김곰치, 시인 최영철, 평론가인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이하 직함 생략)가 참석해 좌담이 진행됐다.

이들은 표절 논란에 휩싸인 후 신 씨가 보인 태도, 그를 옹호하고 나선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게재된 윤지관(61) 평론가의 글, 백낙청(77) 창비 편집인의 글에 대해 비평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관련 내용을 정리해 '오늘의 문예비평'은 통권 98호째를 맞은 가을호에 특집좌담 '신경숙이 한국문학에 던진 물음들'을 실었다. 

김곰치는 "한국문학에 신경숙과 함께 소속돼 있다는 생각을 평소 별로 하지 않아선지, 동료애랄 게 없어 솔직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몇 평론가들이 십몇 년 전부터 이 소설가의 표절 문제를 지적해 왔지만 그것이 널리 알려지지 못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공론화되어 다행이다"고 말했다.

이어 "신경숙의 표절행위로 그의 작품들에 대한 냉정한 재평가가 이루어진다면 빈자리를 다른 새로운 작가들이 채울 기회를 얻게 되니까 좋은 일이다"며 "왜곡된 것을 바로잡는 것은 언제나 필요한 일이고, 드디어 그런 기회가 왔다는 것이 기쁘다"고 덧붙였다.

김곰치는 "표절은 확실하다"며 "같은 작가 입장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든지 '표절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맞겠다'라는 식의 신경숙 답변은 말이 안된다"며 "대중 앞에 나서서 작가가 거의 죽을 정도의 서러운 결단으로 고백을 하든지 신상발언을 해야 하는데, 신경숙의 대응은 참 실망스러웠다"고 밝혔다.

구모룡은 "표절이냐 아니냐하는 논란은 이미 다 결판났다고 생각한다"며 "당사자조차 기억이 안 난다. '아몰랑' 이런 식으로 하니까 정치판이나 문학판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문학은 기억과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인 만큼, 신경숙의 태도가 진솔하지 못해 아쉬웠다. 이 기회에 신경숙 문제만이 아니라, '읽고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평 전문 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은 통권 98호째를 맞은 가을호에 

특집좌담 '신경숙이 한국문학에 던진 물음들'을 실었다. 2015-09-03

이어 "신경숙의 글은 신경숙의 읽고 쓰는 방식에서 나오는 것이다"며 "백낙청 선생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신경숙 문학의 강점으로 신경숙만의 고유한 경험과 기억을 꼽았다. 문제는 신경숙이 가진 기억과 경험이 소진됐다는 것이다. 자신의 명망이나 자본과의 관련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애쓰다보니 이 사람의 글쓰기가 왜곡되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성찰해야 될 때가 아닌가 싶다. 작가가 자신이 얻은 허명의 노예가 되거나 자본에 종속될 때 어떻게 귀결되는가, 이런 반성을 신경숙을 통해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성욱은 "어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정래 선생께서는 '왜 하필이면 이 작품이냐'라는 말씀을 하시기도 했는데,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은 1936년의 2.26사건, 즉 청년 장교들이 천황의 친정을 주장하며 일으킨 우익 쿠데타를 다룬 작품이다. 국가에 대한 사랑과 남녀 사이의 사랑, 삶과 죽음의 문제를 결합시켜 아주 농밀한 에로티시즘으로 천황에 대한 우국의 지성(至省)을 전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설'도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 남녀의 사랑을 다루고 있다"며 "두 작품에서 공통된 구도는 남자가 나라를 위해 떠나야 한다는 설정이다. 특정 문단의 일치 여부와는 별도로, 국가주의와 남녀의 사랑을 결합하는 서사적 구도가 유사하다"고 덧붙였다.

구모룡은 "'전설'이 수록된 소설집의 원래 제목은 '감자 먹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래 전 집을 떠날 때'(창비, 1996)이다"며 "정문순 씨의 평론에서 두 작품의 문장을 나란히 비교해 놓은 것을 보면 명백한 표절이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최영철은 "신경숙 작가는 기억이 없다고 말한다"며 "이는 작가가 이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도덕적 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내의 대표작가가 그런 정도라면, 오늘날 작가들의 문학적 도덕성 또한 우려해야 할 수준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곰치는 "과거 '문예중앙'에 실린 정문순 평론가의 표절 지적을 알고 있었을 것이고, 작가 본인은 정문순의 평론을 묵살하면서도 속으로는 엄청 찔렸을 텐데, 왜 개정판을 내면서 해당 단편을 빼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까 싶다. 같은 출판사에서 제목만 바꾸고 수록작은 똑같다. 왜 그랬을까 싶다"고 말했다.

백낙청 창비 편집인은 지난달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의도적인 베껴 쓰기, 곧 작가의 파렴치한 범죄행위로 단정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며 신경숙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이어 지난달 31일에는 "잡담 제하고 신경숙의 해당대목이 의식적인 베껴쓰기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 질문에 답할 정확한 진실은 저도 모른다"고 말해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다.

이와 관련한 토론도 이어졌다. 구모룡은 "'백낙청 선생은 왜 오판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백낙청 선생은 신경숙의 출신, 즉 신경숙이 가지고 있는 공장 여성노동자로서의 경험을 과도하게 평가했다. 이런 평가에는 백 선생의 태생적 한계가 작동하고 있다. 백 선생은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지만, 진보적인 리얼리즘을 주장한 분이다. 이 분의 맹점은 가난함 속에 자란 경험을 모르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 같은 일종의 무지로 한 몫 접어두고 신경숙을 보게 되니, '창비'는 문학주의가 아닌데도 신경숙을 두고는 '문학동네'와 뜻을 같이 해버리는 묘한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안타깝게도 백낙청 선생을 지지하는 사람들까지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표절 의혹이 제기된 신경숙의 소설 '전설'이 수록된 단편집 '감자 먹는 사람들'(사진=뉴시스 DB) 2015-09-03

최영철은 "지금 출판 자본과 작가의 관계만 주목하는데, 사실 중요한 것은 독자"라며 "제삼자인 독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지금 독자들의 수준과 성향이 표절을 부추긴 한 요인일 수 있다. 10만부 넘게 팔리는 책이 있으면 1만부나 5000부가 팔리는 책도 있어서 나란히 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출판시장은 좋은 책을 1000부 팔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갈수록 독자층이 잘 팔리는 작가와 작품 쪽으로만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측면에서 따지고 보면 독자에게도 책임이 있을 수 있다"며 "독자가 잘 감시했다면 인기작가 신경숙이 아닌 좋은 작가 신경숙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독자층의 특질이 그런 작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곰치는 "충격적인 것은 창비가 표절사건이 벌어진 후 이를 '신경숙의 작품이 더 뛰어나다'면서 무마하려 했다는 점이다"며 "하지만 제가 읽은 '전설'은 '우국'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우국'은 미시마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완벽한 문장을 쓰겠다고 작정하고 쓴 단편임이 느껴진다"며 "미시마는 작품 발표 뒤 약 10년 뒤 '우국'의 자살 장면을 자신의 자살로 재현했고, 이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이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단편소설 하나에 목숨을 건 이런 집중력을 저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에 비해 '전설'은 참 허접하다. 표절 문제를 떠나 억지로 쓴 가짜 작품이다"고 말했다.

김곰치는 "윤지관 평론가는 '전설'이 더 뛰어나다고 이야기했는데, 믿을 수 없는 비평적 언사였다"며 "부산문단도 무차별화 등 문제가 많지만, 이 표절 사건을 보고 알 수 있듯이 창비도 무섭게 타락했다"고 말했다.

전성욱은 "그동안 애써 살피지 못했던 어떤 진실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충격적으로 드러났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며 "특히 이른바 주류 문예지와 출판사, 그리고 언론에서 만들어낸 신화화된 작가와 작품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탄로나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실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문학장의 정치적 역할 때문에 억압되고 말았던 진실"이라며 "이렇게라도 드러나게 된 진실을 어떻게 보존하느냐가 관건이고, 그 진실을 보존함으로써 지금까지 부당하게 이익을 얻어온 사람들을 견책하고, 또 결국에는 그들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신효령 | 뉴시스 | 201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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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예비평 2015.가을 - 10점
산지니 편집부 엮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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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가을호 게재 윤지관 글에 비판 '한목소리'

"감정적 대응보다 지속적 논의가 중요...창비 공과 구별해야"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게재된 윤지관 평론가의 신경숙 옹호글에 대해 부산 지역 문인들의 비판적 목소리가 나왔다.

1일 출판계에 따르면 부산 지역 문단을 대표해온 계간 문예지 '오늘의 문예비평'(산지니)은 통권 98호째를 맞은 가을호에 특집좌담 '신경숙이 한국문학에 던진 물음들'을 실었다. 전성욱 편집주간의 사회 아래 소설가인 조갑상 경성대 교수와 소설가 김곰치, 시인 최영철, 평론가인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가 지난달 21일 대담한 내용(이하 직함 생략)이다.

좌담에선 표절이냐 아니냐는 논란을 이어가기보다 이번 사태가 노출한 한국문학의 여러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한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제언들이 잇따랐다. 그러한 맥락에서 표절 논란 확산을 촉발한 창비 가을호 편집 방향과 백낙청 편집인의 페이스북 글에 대해 아쉽다는 지적과 비판들이 제기됐다.

김곰치는 "충격적인 것은 창비가 표절사건이 벌어진 후 이를 '신경숙의 작품이 더 뛰어나다'면서 무마하려했다는 점"이라며 "제가 읽은 '전설'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그에 비하면 전설은 참 허접하다. 윤지관 평론가는 '전설'이 더 뛰어나다 했는데, 믿을 수 없는 비평적 언사"라고 지적했다.

전성욱도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전설'이 '우국'보다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이뤘다는) 윤 평론가의 글은 평론가로서 식견을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며 "설득력이 없으며, 전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전설'의 문학적 성취를 표절 비난에 대한 반박의 주요 근거로 삼았던 윤지관의 논거를 약화시키는 지점이다. 앞서 문학과지성사가 발간하는 '문학과사회' 가을호에서 김영찬 평론가 또한 "'전설'은 문학적 성취에 있어 실패한 작품에 가까우며, 성공한 표절은 표절이 아니라는 이상한 결론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설'의 표절 의혹에 무게를 더하는 새로운 진술도 나왔다. 최근 '우국'을 읽어봤다는 김곰치는 "표절은 확실하다"며 "대중 앞에 나서서 작가로서 거의 죽을 정도의 서러운 결단으로 고백을 하든지 신상발언을 해야 하는데, 신경숙의 대응은 참으로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가 표절의 정황 증거로 지목한 대목은 '전설' 속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라는 표현이다. 이는 창비가 '우국'에 비해 '전설'의 뛰어난 대목이라고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앞의 문장 흐름에서 이 말을 살려주는 서술적 근거는 없다. 깨끗하고 속되지 않다는 뜻의 '청일하다'는 말은 흔하게 쓰는 단어가 아니다. 서른 즈음에 참 맛깔나고 매력적인 한자어를 사용했군, 하고 신경숙의 단어 감각 하나는 인정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우국'의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청일함'이란 단어가 나온다. 너무 고약하다." (김곰치, 29쪽)

그러나 좌담 참석자들은 신경숙이 재충전해야 할 때 출판자본에 이끌려 자신을 소진한 측면에 무게를 뒀다. '표절' 의혹이 작가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또한 출판자본에 종속돼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해 공헌하는 비평가와 매체 등을 뜻하는 '문학권력'에 대해 일정 부분 창비와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의 책임을 지목하면서도 이들의 공과는 구별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구모룡은 "백낙청 선생이 상업주의적으로 신경숙을 띄운 것은 아니다"며 "백낙청 선생은 부유한 집안에서 리얼리즘을 주장했는데, 신경숙은 여공 출신 작가로서 성공을 이뤄냈다. 이점 때문에 백낙청이 신경숙을 한 수 접어두고 본 것이 판단착오"라고 주장했다.

전성욱은 "(문단이) 그동안 애써 살피지 못했던 어떤 진실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충격적으로 드러났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며 구체적으로 주류 문예지와 출판사, 신화화한 작가와 작품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그러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진실을 어떻게 보존하느냐가 관건이며, 지금까지 이를 통해 부당하게 이익을 얻어온 사람들을 견책하고 그들이 책임을 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중배| 연합뉴스 | 2015-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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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문예비평 2015.가을 - 10점
산지니 편집부 엮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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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은 필요 없는 보통의 존재

-『다시 시작하는 끝』을 읽고

  안녕하세요. 인턴 정난주입니다.

  7월, 작은 태풍이 지나가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어김없이 산지니로 가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아침인데도 습하고 더운 날씨의 그 기세가 대단합니다. 거기다 출근 시간에 차까지 막힐라치면 이 버스에 있는 사람들, 도로의 차들 다 저 밖으로 내쫓고 면허도 없지만 핸들을 뺏어들고 법원검찰청 정류장으로 질주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마치 얼마 전 봤던 영화처럼 말이에요. (다들 연상되는 영화가 있으신가요? 히히) 거제대로를 '분노의 도로'로 만들고, 입에는 은색 스프레이를 뿌리고 치이익, 나를 기억해 줘!…… 하지만 그럴 수는 없죠.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저는 산지니에 가기 위해 법원 검찰청 정류장으로 가는 것이지 전과기록을 남기려고 법원 검찰청으로 가는 건 아니니까요…….

매일 아침 제 롤모델이 되어 주시는 퓨리오사 언니…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비단 저뿐만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종전에 언급되었던 영화와 같이, 질주하고 폭주하는 텍스트를 찾는 것 아닐까요. 그곳의 주인공의 폭주로 대리만족하고, 희열을 느끼며 또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막히는 도로를 참아내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읽은 조갑상 작가님의 『다시 시작하는 끝』에서는 우리에게 희열을 줄 수 있는 인물은 많지 않았습니다.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곳에 나오는 주인공은 저 혹은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과 같이 폭주를 머릿속으로 그리기도 하지만 이내 곧 자신의 망상을 비웃고 주어진 시간을 주어진 일로 보내는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아버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된 자들를 보며 아버지가 되지 않겠다며 발버둥 쳤지만 결국 모두 아버지가 됩니다. 조갑상 작가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건조하고도 어떠한 연민도 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소설을 일부분을 보며 작가님이 어떻게 그려내셨는지 한번 볼까요?

 

 

보통의

불안

『다시 시작하는 끝』의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아버지라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흔히 아버지라는 소재가 감정에 호소하여 연민의 대상, 희생의 아이콘으로 그려진 것을 다양한 매체에서 많이 보았는데요. 『다시 시작하는 끝』에서는 그 이면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희생했다는 것은 결국 체제에 순응하여 자신의 색을 지우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그것에 대한 주인공들의 모습은 단편 「동생의 3년」과 「하창기 씨의 주말 오후」에서 잘 드러납니다.

“앞서지도 뒤서지도 말고 중간 정도 하면 돼. 괜히 옳으니 그르니, 부당하니 어쩌니 깊이 생각지 말고 그냥 남 하는 대로 해.(…)깊이 생각하면 손해야.” /(…)최소한 내가 겪은 일 따위는 되풀이하게 해서는 안 되는 건데. - 「동생의 3년」p.208

「동생의 3년」에서는 주인공이 군대에 간 동생에게 어머니가 걱정하시니 ‘요령껏’, 참으며 군생활을 버텨내라고 말합니다. 주인공은 이런 자신의 모습이 못마땅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창기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색무취의 소시민.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니더라도, 세상살이 전반에 걸쳐 자신의 색채나 주장을 강력하게 내세우는 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또는 비겁한 건지 아닌지는 뒤로 하더라도, 다소 애매하게 다수의 편에 서거나 중도에 서는 게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그렇게 손해 본 적이 없었던 것도 사실인 듯했다. -「하창기 씨의 주말 오후」p.247

이념의 대립과 자극적인 구호로 가득한 유세장을, 하창기 씨는 어떠한 주장도 없이 그 난리 속을 통과합니다. ‘소시민’이라고 자신을 정의하며 이런 삶이 당연하다고 이야기 하는 하창기 씨의 이 웃지 못할 장면으로, 작가님께서는 당시 어지러운 사회의, 어쩌면 지금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는 세상의 단면을 그려내고 싶으셨던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들의 증세는 더 심각해져 결국 「그리고 남편은 오늘 밤도 늦다」의 남편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직장에 대한 불만을 생각할 수 없다.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무릎으로 TV를 끄고 30분이나 변기를 타고 앉아 신문을 읽으며 킬킬거리며 어색하도록 인용 자료를 밝히고 술을 마시고 온 세상을 욕을 해대는 근본 원인은 절대 아니다.(…)그런 온 세상이 그를 불만에 가득 차게 하고 술을 마시게 하고 XX되는 욕설을 내쏟게 하는가. -「그리고 남편은 오늘 밤도 늦다」p.147

술을 마시고 심한 욕설을 퍼붓고, 대화는 하지 않고 신문만 보고 킬킬거리고 인용자료에만 의존하는 남편의 태도는 결국 무엇에 대한 불안인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남편의 증상에는 이제는 흔한 말이 되어버린 ‘원인불명’이라는 원인이 가장 적절하다고 느껴집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부터 오는 불안, 그 불안의 원인을 알 수 없어 더 괴로워하는 원인불명의 굴레. 무엇이든 불분명하고 불명확한 사회에 남편이 믿을 수 있는 것은 정확한 근거로서의 인용자료 뿐이었을 것입니다. 홀로 그 굴레에서 힘겨워 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 동정심이 들기보다는 누군가에 비친 나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어 뜨끔하며 소설을 읽었습니다.

불안한, 아버지가 된 사람들

 

또 「방화」에서는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아하는 소년이 아버지인 그들을 바라봅니다.

나의 혼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사실들을 고정화 시키는 것으로 끝났다. -「방화」 p.308

“안정된 리듬은 권태와 크게 다른 말일까요?”

“자극은 누구나 조금씩 원하고 또 필요한 것이지만 지나치게 표피적이고 단순하지. 오래 계속하는 일에서 힘도 생기고 융화도 발견하게 돼.”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적인 생활이 혐오스러울 만큼 싫어질 때가 있는 모양이죠. 그런데 그런 내부의 욕구를 조화니 천직이란 틀 속에 넣어 적당히 말랑하고 부드럽게 변하시키는 것 같아요.” -「방화」 p.313

위는 아버지에 대한 소년의 단상이고, 아래는 자신을 다그친 선생님과의 대화입니다.

선생님의 말 속에서 자신도 역시 아버지가 되기 싫어 발버퉁쳤지만 결국 아버지가 된 자신에 대한 자조적인 태도가 느껴지는 듯합니다.

 

 

 

보통의

폭주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던 「방화」의 소년은 결국 제목처럼 방화를 저지릅니다.

“너는 맏이니까 잘해야 돼, 무엇이든지.”

(…)나는 땀이 나는 손을 빼고 싶었다. /(…) 후텁지근한 그날 밤 이후로 나는 손에서 땀이 조금만 나도 당장 수돗가로 달려가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이제 곧 눅눅하고 축축한 손의 끈적임도 없어질 것이다. (…) 연기가 아주 낮고도 가늘게 피어올랐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걸레는 타들어갔다. -「방화」 p.318

인용된 부분은 소년이 어릴 때 아버지가 자신의 손을 잡고 어머니가 아픔을 말하고 난 뒤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그때의 아버지와 땀이 나 축축하게 젖은 손은 오래도록 소년의 기억속의 남았습니다. 땀에 젖은 손은 그 이후에도 소년을 그 기억에 시달리게 했는데요. 방화를 결심한 소년은 더 이상 손이 땀에 젖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방화는 결국 아버지와 그 기억으로부터의 해방이며 아버지가 되지 않으려는 소년은 발버둥 같이 느껴집니다.

 

 

 

동정은

필요

없다

이 소설에서는 아버지가 된 그들을 동정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이 그러하다’는 태도로 일괄되게 서술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판이나 풍자의 대상으로 해석하는 것 또한 과하다고 느껴집니다. 작가는 ‘그저 그러함’을 보여주면서 주변 어디에든 있는 인물 중 하나의 삶 속에 들어가, 그 중에서도 그들의 한 장면을 콕 집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일탈하는 장면을 보는 것에만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일탈하는 장면을 보면 볼수록 일탈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조갑상 소설가는 그런 두려움을 당연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며 지난 세월의 아버지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지금도 아버지가 되어 가는 사람들에게 『다시 시작하는 끝』을 추천하며 서평을 마칩니다.

 

 

작가

소개

조갑상 작가님은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혼자웃기」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셨고,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 『테하차피의 달』, 장편소설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 『밤의 눈』을, 산문집 『이야기를 걷다』를 쓰셨습니다. 요산문학상, 이주홍문학상, 만해문학상, 서라벌문학상을 수상하셨으며, 2015년 현재 경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특히 이번 『다시 시작하는 끝』은 중견 소설가가 되신 조갑상 작가님의 첫 소설집을 재출간한 것으로 작가님께서도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습니다. 이번 재출간본에는 ‘방화’가 추가되어 '혼자웃기', '은경동 86번지'와 함께 은경동 3부작을 이루어 독자분들로 하여금 80년대의 부산을 더욱 생생하고 자세히 볼 수 기회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다시 시작하는 끝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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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엘뤼에르 2015.07.16 17: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눅스가 되는 상상을 출근길마다 하신다니, 뭔가 모르게 굉장히 재밌네요 ㅎㅎ 서평을 읽다 보니, 소소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일탈하려는 소설 속 주인공들 이야기들이 색다르게 보이네요. 잘 읽었어요 :)

    • BlogIcon 정난주 2015.07.22 09: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오늘 아침에는 다행히도 그렇게 막히지 않아서 평화롭게 올 수 있었어요. 히히. 보통의 사람들인 등장인물들이 매일 아침 버스 어딘가에 앉아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2. BlogIcon 단디SJ 2015.07.17 08: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평이 올라왔네요 :) 잘 읽었습니다. 오늘 조갑상 선생님 취재다녀오신 이야기도 기대할께요!!

    그리고, 여담이지만.. 위에서 언급하신 영화, <매드맥스>군요 ㅎㅎ 퓨리오사 사진이 있는 걸 보고 허허허 ㅎㅎㅎ

    • BlogIcon 정난주 2015.07.22 09: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덕분에 인터뷰 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퓨리오사 사진을 뒤늦게 첨부해서...하하 최근에 정말 그런 영화들이 많긴 했죠. 다른 폭주하는 영화도 또 보고 싶어요! =]

  3. 권디자이너 2015.07.17 1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색무취의 소시민'
    좀 찔리네요.ㅋ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작업 중, 책을 어떻게 홍보하면 좋을지 생각하다가  "한강 이남에서 가장 잘생긴 평론가" 뭐 이런 농담적 리얼리즘의 카피를 몇 개 뽑아보았지만 아무래도 경박해보여 공론화하진 않았습니다. 위 포스터도 SNS에만 한번 올렸었고요. 하지만 농담적 '리얼리즘'에서 알 수 있듯  카피는 비록 폐기되었으나 지극히 사실에 기반합니다. (선생님 보고계시죠?)

그리고 책에 얽힌 비밀이 하나 있는데 비밀이니 우리만 압시다.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에 수록된 글 몇 편은 지금 이곳, 산지니 블로그 중 <전성욱 평론가의 문화 읽기>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권디자이너님의 불란서영화 같은 표지와 저의 불란서출판사 같은 편집력이 더해진 책으로 보시기를 권합니다.

각종 문화 탐방기인 1부(영화), 2부(문학), 3부(전시, 공연, 대담, 여행)를 지나면 비평의 역할과 정체성을 치밀하게 고민하는 첨언 세 편이 실려 있습니다. 저는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의 백미가 바로 이 첨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희고 우뚝한 눈썹 하나를 뽑아 올립니다.

 

 

 

 

비평가의 사무


이 글은 책을 만드는 일에 간여하는 자로서 문학평론가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답해달라는 어떤 청탁에 대한 응답이다. 책이라는 공통적인 것의 세계에서 비평가는 하나의 특이성으로 참여한다. 한 권의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다. 저술은 저자의 몫이지만, 책이라는 하나의 세계에는 숱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몫으로 참여한다. 여기엔 때때로 문학평론가라는 사람들도 그 협업의 일부로 함께한다. 그 광대한 책의 세계에서 문학평론가는 주로 문학이라는 한정된 영역에서 활동한다. 평론이란 나름의 척도로 내리는 적극적인 가치판단이되, 물론 그것은 재판관의 엄중한 판결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일본의 저명한 문예비평가 고바야시 히데오가 평론을 일컬어 칭찬하는 기술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비평을 비난이나 경멸로 이해하는 어떤 오해들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 문학평론가는 책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을 가진 독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넓고 깊은 독서를 통해 가치를 비교하고 또 판별할 수 있게끔 잘 훈련된 특별한 독자다.


문학평론가는 시집이나 소설집의 말미에 ‘해설’을 써서 출간에 관여하기도 하지만, 더 적극적으로는 작품 원고를 검토하여 출간 여부를 결정하는 데 의견을 보태기도 한다. 특히 특정 출판사 문예지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평론가들은, 창작집의 출간 전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작품의 출간 여부에 대한 판단에서부터 해설 집필을 비롯해 출간 이후의 문예지를 통한 주목과 조명에 이르기까지, 유력 문예지의 편집위원들은 그야말로 막강한 결정력을 갖는다. 이런 연유로 때때로 문학평론은 ‘비평권력’이라는 힐난을 감수해야 할 때도 있다. 뿐만 아니라 창작집의 말미에 수록되는 ‘해설’을 일컬어 문단의 일각에서는 비판 없이 칭송으로 일관하는 ‘주례사 비평’이라 조롱하기도 한다. 물론 이런 속악한 비난들에는 인정투쟁의 비루한 욕정 말고도 정당한 선의가 담겨 있다. 그러나 문학평론은 가치 판단을 글로써 표현해 책의 출간 전후에 참여하기 때문에 이런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그만큼 비평은 곤혹스럽고, 그러하기에 평론은 윤리적인 고뇌 속에서 심각하게 이루어져야만 하는 글쓰기다.


문학평론은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글쓰기다. 다시 말해 비평의 행위는 평론이라는 글쓰기로 표현된다. 그래서 문학평론은 역시 그 자체로 일종의 작품으로서 한 권의 책으로 공간(公刊)되기도 한다. 이때 문학평론가는 다른 이의 글쓰기(작품)를 통해 자기의 글(평론)을 써낸 저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문학평론집’이란 예의 그 비평적 실천의 소출(所出)인 것이다. 어쩌면 문학평론은 문학이라는 대상과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가 문학으로 되어가는 그런 독특한 글쓰기라 할 수 있겠다.  


문학평론가에게 비평의 대상은 문학작품이고, 그 작품들은 대체로 책의 형태로 주어진다. 그러므로 평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엄청난 양의 문학 출판물들 중에서도, 가치 있는 어떤 한 권의 책을 탐하고 누려 그것을 공적인 지반 위에서 풀어내는 일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해석’이 작품의 가치를 기존의 지식으로 환원하거나 재단하는 ‘해설’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평이 때때로 해설이 되기도 하지만, 비평의 존재론적 위상은 비평가와 텍스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그 팽팽한 해석의 기투에 있다. 더불어 문학이라는 개념이 환기시키는 어떤 편견의 시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짚고 넘어가자. 문학이란 어떤 정형화된 실체로 판명되거나 확정될 수 있는 옹골찬 개념이 아니다. 문학이라는 기표에 경로의존(path dependency)적으로 고착되어 왔던 기의들은 이미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왔다. 시나 소설을 읽고 평하는 사람을 문학평론가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일부분만 맞고 전체적으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이란 고답적 장르의 경계를 가로질러 인간의 심성과 세계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을 아우른다. 비유컨대 문학은 주체와 구조 사이의 장막이며 통로이고 그 양쪽을 사유하는 사상의 오솔길이다. 그러므로 문학을 비평한다는 것은 글의 이모저모뿐 아니라 글 너머의 가늠하기 어려운 지대까지를 더듬어 살피는 섬세함을 필요로 한다. 


평론가는 출판의 동향과 흐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선대의 이름 높은 평론가들이 유수의 출판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사례들을 돌이켜보면 그 사정을 쉬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작품의 가치를 헤아려낼 수 있는 감각과 논리를 벼리기 위해서는, 읽고 사유하고 쓰는 공부에 쉼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그 공부가 홀로 고고할 때, 비평은 대중들과의 접점을 잃고 난해한 문장들 속에서 고립되다가 결국은 외면되기도 한다. 명성을 얻은 몇몇 문학평론가들이 누리는 세속의 권위에 비할 때, 실제로 비평은 우리의 일상에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이것이 오늘날 비평의 곤혹스러움이다. 지금 비평은 읽히겠다는 의지보다 예술로 우뚝 서겠다는 글쓰기의 욕망에 들려 쉽게 읽을 수 없는 자족적인 장르로 퇴화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그것은 비평을 계도의 도구로 알았던 앞선 시대의 어떤 진부한 진술들에 대한 항의인 측면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그것은 깊은 사유가 사상으로 숙성되어 고매한 관념의 차원에 이르렀음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상이 일상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되는 사유의 총화라고 할 때, 경험으로부터 고도로 추상화된 사상의 그 난해함이란 피하기 힘든 불가피함이다. 그러므로 난해함 그 자체로 반대중적인 엘리트주의라는 면박을 주는 것은 성급한 비난이다. 곤란한 것은 예의 그 추상화라는 고도의 사유 정련과정이 면피와 속임의 과정으로 오용되기 때문이다. 부족한 읽기와 소박한 독법을 유사 시적인 문장의 도움으로 아리송하게 추상화시킬 때, 외려 그 글들은 대단한 철인이나 사상가의 근엄함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런 눈속임으로 고고한 사람들이야말로 성실한 저술가들의 열정을 좀먹는 해충이다. 이 해충의 글쓰기는 진보적 의제들마저 자기의 글쓰기를 위한 자재로 이용하면서, 기예로 유별난 문장들로 현란한 요술을 부리곤 한다. 현실의 연관성을 잃은 그런 글들은, 그 과잉된 자의식으로 깊어진 추상화의 늪에서 기어코 독자를 익사시킨다.


지금 문학은 몰락의 소문으로 시끄럽고 구원의 열망으로 간절하다. 그 소문들의 진상을 살피고 더 나은 세계로의 변혁에 이르려는 상상력의 여러 차원들을 해석하고 사유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평론가들에게 주어진 소명이 아닐까. 그러므로 이제라도 비평은 글쓰기의 차원으로 맴돌 것이 아니라, 저 책의 운명들 속으로 들어가 그 활자들의 물질성과 더불어 구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짐승남의 저녁 ─전성욱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책소개)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 10점
전성욱/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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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엘뤼에르 2015.04.10 10: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남) 평론가인 만큼, 사진을 공개해주세요~*(굽실굽실)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






상처 입은 여성들의 마음을 살피는 공감의 태도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중견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조금씩 도둑』에서는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최근작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소설에 나타나는 다양한 소품들인 가정과 국가 폭력, 친구와 연인, 그리고 예술 안에서 조명숙 소설 속 인물들의 어두운 삶의 파편이 조각조각 드러난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속, 우물물 길어올리듯 상처의 흔적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듯한 태도가 엿보이는 작품집 『조금씩 도둑』에서 독자들은 작가 조명숙이 들려주는 생의 기쁨과 슬픔들을 마주하며 따스한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어떤 허구보다도 더 극적인 현실,

일상에 잠복해 있는 현실의 그 ‘리얼’한 재생

글은 기교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혼신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 아마도 이 작가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_전성욱(문학평론가)

「작가의 말」에서 “소설이란 것이 어느 시점에 착상해서 언제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 2005년의 사건과 5개월이 되기 전에 써 버린 2014년의 사건이 뒤섞여 있다.”라고 밝힌 것처럼 이번 작품집에서는 실로 다양한 시대적 배경과 서사를 이끌고 있는 여럿 인물들이 나온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나서 10년 이후의 유가족의 슬픔을 재현한 「점심의 종류」에서부터, 2008년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앞두고 촛불시위를 벌이는 애인을 찾는 여자의 우울한 일상을 그린 「거기 없는 당신」, 2005년 APEC정상회의를 둘러싼 어떤 사회적 기미를 ‘가가’의 하루를 통해 풀어낸 「가가의 토요일」까지 조명숙 소설이 갖고 있는 시대의 스펙트럼은 꽤 넓은 편이다. 소설이 현재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할 때, 현대사회의 병리를 짚는 것도 소설이어야 할 것이다. 그 점이 더욱 잘 드러나는 소설은 수록작 「하하네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 지망생 ‘유’의 일상을 통해 우리 삶의 부조리와 글쓰기의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유’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 ‘사물과 사람과 시간 같은 것’에 예민하려 했지만 결국 그가 거주하는 오피스텔인 ‘하하네이션’ 내에 있는 현실의 비극에 둔감했던 자신을 뒤돌아보고 “장차 작가가 되려고 했지만, 결코 작가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떤 소설이 현실보다 리얼하겠어?”라고 되묻는다. 




딸을 잃은 세월호 그 사건 이후, 십 년

“우리가 뭘 인생이란 걸 살았다고. 그런 거 없었다.”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것이 아닌 리모컨,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 사람이 아닌 영애,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영미가 아닌 영미, 매일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는 유미. 그렇기 때문에 영애는 살아 있어야 했다. 내 속에서도 점점 희미해지는 유미를 누가 기억해 줄까? 질문을 담은 눈으로 영미를 본다. 영미에게 유미가 겹쳐진다. 잠 어린 눈을 비비며 식탁에 앉던 유미, 책가방을 메고 팔짝팔짝 뛰어서 목에 매달리던 유미, 젖은 머리카락으로 물을 뿌리며 환히 웃던 유미…가 영미처럼 있다. _「점심의 종류」 중에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그 통탄할 사건은 이제 사건이 발생한 지 1주기가 된다. 끝나지 않은 유족의 아픔과 보상금 논란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세월호 문제는, 인양을 해서라도 남은 실종자를 찾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달라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공식 요청과 더불어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국민여론을 통해 세월호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발표된 시점이다. 조명숙의 단편 「점심의 종류」은 사건 이후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세월호 사건으로 딸을 잃은 그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엄마 ‘영애’의 삶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기억과 회상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병치하며 서술되는데, ‘영애’는 6·25 전쟁으로 평화롭던 가족의 균열을 보이는 영화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며 다시금 고통을 받고 영화라는 ‘환상’ 속에서도 도피할 수 없음을 발견한다. 결국 ‘영애’의 동생 ‘영미’마저 이민을 떠나고, 대한민국의 지독한 현실 속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을 위로받고 구원을 받기란 불가능함을 역설하고 있는 소설이다.



끝내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훔쳐낸 네 마음

서른두셋쯤의 나이, 띠띠와 피융이 지나온 나이의 그들이 거기 있었다. 워커를 신은 피융이 손을 내밀었고, 스카프를 두른 띠띠가 그 손을 잡았다. 탁자 아래서 그들의 무릎이 어깨처럼 조심스럽게 부딪쳤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띠띠는 분명히 느꼈다.

“피융과 나도 저렇게 앉아 있었어.”

서늘하고 메마른 혼잣말이 피융이라는 이름이 뚫어 놓은 구멍을 빠져나갔다. 잔영만 남은 여러 순간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 저런 때가 있었다. 한 번이었는지 두 번이었는지, 세 번이었는지 네 번이었는지….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다 마침내 피융이 오면 띠띠는 달려가 얼싸안았다. 손을 잡고 그 눈을 들여다보았다. 피융의 눈은 얼마나 까맣고 초롱했던지. 띠띠는 재생하고 싶은 그 순간을 붙잡으려 애썼다. _「조금씩 도둑」 중에서

열여섯 무렵, 용희, 선경, 영미 대신에 피융, 바바, 띠띠라는 이름으로 우정을 다짐하던 세 소녀가 마흔을 전후로 한 나이가 되기까지의 상처 입은 마음과 서로를 향한 위로를 담고 있는 표제작 「조금씩 도둑」은 과장된 시선이 아닌 담담한 문체로 그들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냈다. 꿈 많던 청년기를 보내고 중절수술에 후유증까지 서로의 고단한 삶을 알고 있는 셋의 우정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빛이 난다. 더욱이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결국 친구였던 ‘피융’에게 조금씩 마음을 주고 만 ‘띠띠’의 마음이 애달프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취향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수긍하기로” 하면서 띠띠는 끝내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성장하지 않은 여자로 버텨냈다. 자궁을 축출한 여자가 매번 해바라기 씨를 주문하며 오지 않는 택배기사를 기다리는 이야기 「사월」과, 남자의 충격적인 죽음을 이겨나가며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여자의 이야기가 담긴 「나비의 저녁」 또한 상실을 겪은 여성의 삶과, 상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나가야 하는 생의 고단함을 그리고 있는 소설들이다. 



환상의 기록으로서의 소설

“이 모두는 사실이 아니다.”

달리는 아버지와 함께 그 집에서 옴짝도 하지 않은 채로 여섯 달에서 두 달을 더 산 막내는 숨을 거두기 사흘 전 병원에 옮겨졌다. 막내가 숨을 거두던 날에도, 세 오빠들이 침울함을 가누지 못한 채로 화장장에 다녀오던 날에도 아버지는 새벽을 달렸다. 아버지의 달리기는 막내가 죽은 뒤 몇 해가 지나도록 계속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니, 이 모두는 사실이 아니다. 막내가 폐암이라는 말을 꺼낸 날 갑작스럽게 달리기 시작한 아버지는 집에서 두 블록 지난 파출소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식들의 희망사항이었을 뿐, 그렇게 달려 나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막내가 한사코 병원을 마다하고 집에서 비명을 삼킨 것도 그날 밤 그렇게 달려 나간 아버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니다. 아버지는 아직 달리고… 있다. _「러닝 맨」 중에서

특유의 감수성으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조명숙의 소설은 「이치로와 한나절」과 「러닝 맨」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간결하고도 속도감 있는 문체에 덧붙여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호성이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작가는 사건의 장면들을 독자에게 묘사한 뒤, 이를 일종의 환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기발함을 보인다. 자기를 버려두고 떠나버린 엄마와, 자살을 해버린 친구 청수, 그리고 눈과 귀와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할아버지를 생각해내는 ‘나’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그런 주인공에게 나타난 원숭이와 보낸 한나절의 기록을 조명숙은 소설 속에 담았다. 소설 속에 나온 원숭이는 환각이나 환상일 테지만 결국 엄마와 청수와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갸륵한 ‘나’의 마음이 담긴 ‘일상’의 한 부분일 것이다. 가족사의 곡절과 함께 배다른 막내 여동생의 죽음을 그려낸 「러닝 맨」 또한, 자식의 환상 속에서 달리는 아버지의 서사이다. 이처럼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불가능한 환상의 서사들 속에서, 독자는 조명숙 소설이 드러내는 삶의 보편적 진실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발견할 것이다.


조금씩 도둑 

조명숙 소설집

조명숙 지음 | 문학 | 국판 변형 | 244쪽 | 13,000원

2015년 4월 6일 출간 | ISBN : 978-89-6545-286-7 03810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글쓴이 : 조명숙

1958년 김해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국어국문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96년 『진주가을문예』와 2001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창작집 『헬로우 할로윈』,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 『댄싱 맘』(2012 향파문학상 수상)과 장편소설 『바보 이랑』, 『농담이 사는 집』 등을 썼다. 2006년 장편동화 「누가 그랬지?」로 14회 MBC창작동화대상을 받았으며, 그림동화책 『샘바리 악바리』, 『아기뱀 꼬물이』를 냈다. 그 외에 산문집 『우리 동네 좀머씨』가 있고, 아내들을 위한 연시집 『하늘 연인』을 엮었다.


차례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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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지나가는 온수 2015.04.10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보고 싶은 조명숙 선생님! 책 사볼게요:-) 제목과 표지 너무 잘 어울려요

  2. BlogIcon 지나가는 온수 2015.04.10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보고 싶은 조명숙 선생님! 책 사볼게요:-) 제목과 표지 너무 잘 어울려요

영화·문학·인문학·사진·연극·여행 등 다채로운 체험 통해 체득한 사유 오롯이 담겨…
55편 날카로운 시선으로 비평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전성욱 지음 l 산지니 l 347쪽 l 1만8000원

 



 

▲ 전성욱 평론가 사진=산지니 제공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최초의 빛을 기억하는 어둠 속에서 자학과 자만도 밀려간다. 바람이 불고 나는 또 무너진다. 그제야 나는 너를 비로소 온전히 호명할 수 있다.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 문예비평(이하 오문비)’을 이끌며 활발한 비평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전성욱 평론가가 최근 첫 번째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를 펴냈다. 
 “현실에 대한 예민함 없는 언어의 자의식은 혼자만의 자폐적 사유 속에서 글쓰기를 그저 추상적인 아름다움을 위해 봉사하게 만든다.”(149쪽)   
 이 책에는 영화와 문학, 인문학, 사진과 연극, 여행 등 다채로운 체험을 통해 체득한 그의 사유가 오롯이 담겨있다. 이 책에 담긴 55편의 글은 날카로운 그의 시선으로부터 호명된 예술에 대한 일종의 비평적 글쓰기다. 
 1부는 프랑스 영화의 거장 장 뤽 고다르에서부터 한공주, 지슬 등 시대를 반영해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에 관한 감상이 가득하다. 또한 2부는 정수일의 ‘실크로드 문명기행’, 김학이의 ‘나치즘과 동성애’ 등 인문학과 강동수의 ‘금발의 제니’, 이상섭의 ‘챔피언’ 등 문학에 대한 글이 담겨있다. 3부는 사진전과 연극, 여행으로 진행되는 그의 일상이 노래되며 첨언에서는 평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그의 고민이 담겨있다.
 “세상의 모든 여행은 위험하다. 떠남과 만남, 그 구체적 사건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상념과 관념으로 존재하던 여행은, 바로 그 떠남의 순간부터 무수한 만남들의 지평을 연다.”(241쪽)
 호명함으로써 완성되는 그의 글쓰기는 독자를 움직이게 한다. 그가 안내하는 책, 영화, 연극을 만나다 보면 온전히 내 것으로 그것들을 사유하고 싶어진다. 떠남으로 시작된 무수한 만남, 그 만남의 선명을 위해 최근 비 오는 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를 한 대학 캠퍼스에서 만났다.
 - 첫 번째 산문집이다. 소감은.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미 발표작이다. 청탁을 받아 쓴 원고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마주한 영화와 책, 연극 등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기에 다소 난잡하다. 일종의 잡문이다. 마치 일기장과 같다. 글 속에 온전한 내가 드러났다. 쑥스럽다.”
 - 최근 한국 영화의 티켓파워가 대단하다. ‘한공주’, ‘지슬’ 등 국내 영화에 대한 글이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인지 가장 최근에 본 국내 영화에 대해 듣고 싶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홍상수 감독의 ‘자유의 언덕’이다.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홍상수 영화 특유의 색채가 강하며 시간에 대한 사유가 인상적이다. 특히 영화 속에서 감독의 자의식이 명확히 그려지는데 그 때문에 그의 영화가 매력적이지 않나 싶다.”
 “나에게 영화의 재미, 그러니까 줄거리나 볼거리에서 그저 얻는 즐거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다시 능동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해 주는 영화의 존재론적 힘, 그 놀라운 향락의 희열에 눈뜨게 해준 것은 고다르였다.”(27쪽)
 - 영화, 사진, 연극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즐기는 듯하다. 그것들이 가진 매력은.
 “현장감이다. 영화나 사진, 연극이 주는 현장감은 나를 설레게 한다. 마치 좋은 책을 만났을 때, 활자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희열과 비슷하다. 사진 속 피사체의 모습,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 무대 위 지친 배우의 표정을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전율이 있다.”
 “지성의 기획과 조직을 통해 한 권의 결실로 드러나는 공적인 역량을 창출한다는 것이, 모든 노고를 마다할 수 있는 최선의 보람이다.”(337쪽)
 -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의 편집주간이다. 잡지를 만드는 일의 매력과 그 한계는.
 “오문비는 전국 유일의 비평전문 잡지다. 자랑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현재 비평의 현실에 대해 말하는 거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잡지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잡지는 ‘협업’의 연속이다. 편집위원들과 주제를 잡는 등 잡지 발간과 관련, 구체적 논의를 통해 조율하는 과정이 지루하면서도 재밌다. 한계는 아무래도 재정적 어려움이 가장 크다. 지난 16일 발간된 오문비 2015 봄호도 정말이지 어렵사리 나왔다. 이번 호는 편집 위원들의 열정과 박한 고료에도 좋은 원고를 보내준 필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문학평론은 무엇보다 작품에 대한 가치 판단의 글쓰기다. 다시 말해 비평의 행위는 평론이라는 글쓰기로 표현된다.”(330쪽)
 - 마지막 첨언에서 평론가로서의 고민의 흔적이 가득하다. 평론은, 또 평론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평론은 ‘어긋남’의 글쓰기다. 공감이 아닌 공감하지 못하는, 그 불화에서 오는 어떤 철학, 예술, 미학의 글쓰기다. 그 불화에서 오는 소통이 평론이다. 앞으로도 평론가로서 그 어긋남 속에 숨어있는 그 어떠한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경관ㅣ경북도민일보ㅣ201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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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 10점
전성욱/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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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예술 넘나드는 폭 넓은 평론

전성욱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영화·독서기록·사진전 등 다뤄

부산에서 활동하는 문학평론가 전성욱(사진) 씨가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산지니)를 펴냈다.


전성욱 평론가는 부산에서 나오는 전국구 비평지 '오늘의 문예비평'의 편집주간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2010년 펴낸 평론집 '바로 그 시간'에 이어 두 번째 책이다. 저자가 무척 폭이 넓고 다양한 예술 영역을 넘나들면서 다채로운 글을 쓴 점이 이 책에서 먼저 눈길을 끈다. 문학평론가가 낸 책은 대개 문학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산문집을 표방한 이 저서는 폭넓고 자유로워 구미를 당긴다. 1부에서 영화를 보고 쓴 글, 2부에서 독서기록, 3부 사진 연극 여행에 관한 글을 실었고 4부에서 비평가로서 정체성을 묻고 고민하는 글 세 편을 수록했다.

문학평론가로서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나는 2부에서 저자는 최근 주목받는 인문학자 윤여일의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부산 문단의 소설가인 강동수의 '금발의 제니', 이상섭의 '챔피언', 허택의 '몸의 소리들', 배길남의 '자살관리사' 등의 작품을 읽고 산문을 썼다. 윤여일을 읽고 이론적인 글을 전개하다가 이렇게 마무리한다.

'…학문은 현실의 한가운데서 끊임없이 반성되어야 한다. 윤여일은 길 위의 만남에 예민한 유목의 에세이스트다. 길 위에서 걷는 몸의 공부가, 그를 저 모순과 역설과 망상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라 믿는다'. 이는 예술을 일상으로 접하고 문학을 공부하는 저자 자신의 다짐으로도 비쳐 산문집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1부에서 다루는 영화는 '세르지오 레오네 걸작선', 장 뤽 고다르의 '영화사(들)', 다르덴 형제의 속죄와 구원에 관한 영화들, 오즈 야스지로 50주기 특별전부터 '한공주' '지슬' 등으로 다양하다. 마리오 스테파토 사진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등을 보고 쓴 글은 독특하다. 이론적 용어가 많고 다소 까다로운 전개로 쉽게 읽히지 않은 글도 있다.


조봉권ㅣ국제신문ㅣ201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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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 10점
전성욱/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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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엘뤼에르 2015.02.16 08: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레딧에 깨알 같은 우리 이름 ㅋㅋ 진짜 영화 포스터 같네요. 깐느 영화제에 출품해도 될 듯한+_+

  2. BlogIcon 찜디 2015.02.17 15: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ㅋ아 너무귀여워요 깨알이름들!!>_<

 

 

 

 

자학도 자만도 밀려가는 저녁에 써내려간 젊은 평론가의 수기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을 이끌며 비평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평론가 전성욱이 두 번째 저서이자 첫 번째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를 펴냈습니다. “자학도 자만도 밀려가는” 어느 저녁, 주관의 늪과 냉소의 권위로 고뇌하던 젊은 평론가가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쓴 일종의 망명 기록입니다. 책머리에서 그는 어둠 속으로 빛이 저물자 적막 속에서 비로소 떠오르기 시작하는 자신을 고백했습니다. 그가 “나는 무너진다”라고 했을 때 그 말은 파도와 같습니다. 영화를 보고, 연극을 보고, 사진을 보고,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고, 대화를 나눌 때 흐르는 사유의 조석(潮汐)은 여러분의 마음 어디까지 흘러올 수 있을지 한번 지켜보세요.

 

보편에 이르는 멀고 아득한 길들의 길목에서

영화를 보며 쓴 글이 책의 1부를 구성합니다. “나에게 영화의 재미, (중략) 그 놀라운 향락의 희열에 눈뜨게 해준 것은 고다르였다.”라는 고백과 “<변호인>은 세간의 뜨거운 호응과는 달리 그리 매력적인 영화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라는 안타까움 등 국내영화와 해외영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망라한 다양한 감상으로 가득합니다.
 
2부는 문학평론가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독서기록입니다. 『실크로드 문명기행』(정수일), 『나치즘과 동성애』(김학이), 『해석에 반대한다』(수전 손택) 등 인문, 사회과학서적을 비롯해 문학에만 치우치지 않는 고른 선택이 돋보이되, 이상섭, 강동수, 허택, 배길남 등 그의 생활 터전이자 비평 무대를 함께하는 지역의 작가들 역시 눈여겨봄으로써 잊혔던 비평가의 또 다른 역할을 상기합니다.

전성욱이 스스로를 ‘나’라고 가장 많이 호명하는 3부는 <라이프 사진전>과 <퓰리처상 사진전>, <랄프 깁슨 사진전>, 베이징과 상해 기행 등 사진전과 연극, 세미나를 접하고 여행을 떠나면서 느낀 글을 모았습니다. 사진이라는 순간적 이미지에서 여행이라는 일상의 변주에 이르는 평론가의 일상이 지적이면서도 경쾌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마지막 ‘바깥에서 바깥으로’는 「비평가의 사무」, 「읽히지 않는 잡지를 만든다는 것」, 「속된 비평의 무안함에 대하여」 세 편의 글로 이루어진 첨언입니다. 구성은 단순하지만 하나같이 평론가로서의 정체성, 나아가 비평가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상상한 흔적으로 가득합니다.

지금 문학은 몰락의 소문으로 시끄럽고 구원의 열망으로 간절하다. 그 소문들의 진상을 살피고 더 나은 세계로의 변혁에 이르려는 상상력의 여러 차원들을 해석하고 사유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 평론가들에게 주어진 소명이 아닐까. 그러므로 이제라도 비평은 글쓰기의 차원으로 맴돌 것이 아니라, 저 책의 운명들 속으로 들어가 그 활자들의 물질성과 더불어 구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비평가의 사무」 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기르는 개인가, 해치는 늑대인가?

산문집 특유의 매력 속에서도 평론가로서의 전성욱의 자의식을 찾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비평은 작가의 외로운 작업에 말을 걸고 대화를 이끌어내는 글쓰기다. 비평은 작가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일깨우고, 의도하지 않은 위대함을 발견하며, 다른 누군가를 그 대화 속으로 끌어들여 작가와 작품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다. 결코 비평은 군림하기 위해 존재하는 글쓰기가 아니다. —「속된 비평의 무안함에 대하여」 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라는 제목에 영감을 준 이는 전성욱이 아끼는 영화감독 장 뤽 고다르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저자의 모순적 상황과 거기서 오는 절망 혹은 고독이 이 이상한 짐승의 세포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현재가 이상한 짐승이라면 또한 개와 늑대의 시간이기도 한바, 인자할 수도 경계할 수도 없는 이 모호함 속에서 전성욱은 홀로 치열합니다.

 

 

 


전성욱
문학평론가, 계간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주간.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일하고 있으며 평론집으로 『바로 그 시간』(2010)이 있다.

 


차례

 

책머리에-나는 무너진다


1부
장르 클리셰의 형이상학―세르지오 레오네 걸작선
장 뤽 고다르의 시간―<영화사(들)>
영화로 개시되는 사유의 운동―<필름 소셜리즘>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언어와의 작별>
속죄와 구원―다르덴 형제의 영화들
두 대의 리무진―<홀리 모터스>, <코스모폴리스>
말년의 고독―<아무르>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해피 투게더>, <열대병>, <브로크백 마운틴>
감독의 길―구로사와 아키라 탄생 100주년 특별전
오즈의 맛―오즈 야스지로 50주기 특별전
르상티망과 노예도덕―<아리랑>
영화, 그리고 소설―<러시안 소설>
가족이라는 아포리아―<고령화 가족>, <불륜의 시대>, <댄스 타운>
제주의 비경―<지슬>, <비념>
진짜 폭력―<한공주>
좌절을 대하는 방식―<변호인>
청춘의 시간―<은교>
기억이 부르는 날에―<건축학 개론>

2부
전위의 감각―수전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마르크스―「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에서 『세계사의 구조』에 이르기까지
시시포스와 길손의 발걸음―왕후이, 『절망에 반항하라』
어긋남에서 어긋냄으로―김학이, 『나치즘과 동성애』
어느 민족주의자의 문명교류 답사기―정수일, 『실크로드 문명기행』
학문의 길―윤여일,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공생의 조건―최재천, 『통섭의 식탁』
답습 않는 기이함―황정은, 『百의 그림자』
막막함, 먹먹함―정태언, 『무엇을 할… 것인가』
적의로 가득한 우정―공지영,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환상과 해학―이상섭, 『챔피언』
척도에 대하여―강동수, 『금발의 제니』
화해하지 말고 증오하라!―배길남, 『자살관리사』
결핍의 정치학으로―허택, 몸의 소리들

3부
그 너머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마리오 테스티노 사진전
대상의 이면―랄프 깁슨 사진전
한 순간의 영원한 울림―라이프 사진전과 퓰리처상 사진전
질서를 향한 내재적 충동―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진전
경솔한 망각―연극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
늦은 저녁의 어떤 위로―연극 <황금용>
보편에 이르는 길―연극 <바보각시>
독서를 권장함―가을 독서문화 축제
급진적인 것의 비루함에 울리는 경종―강신준 교수의 『자본』 강의
낯선 만남의 파동―상하이 기행
사상의 실감을 공감한다는 것―동아시아 혁명사상 포럼
중국의 마르크스주의―난징대의 장이빈 교수 
대중의 취향―‘조정래 『정글만리』의 중국읽기’ 좌담회
익숙해질 수 없었던 이방인의 슬픔―베이징 기행
기억함으로써 가능한 기적의 순간―광주기행
열등감으로부터 시작하다―이윤택
탐미적 비평의 몸살―허문영
진지함의 이면―진동선
모더니즘이라는 파르마콘―김민수
비어 있기에 가득 찬 곳―공간 초록


첨언 : 바깥에서, 바깥으로
비평가의 사무
읽히지 않는 잡지를 만든다는 것
속된 비평의 무안함에 대하여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전성욱 산문집


전성욱 지음 | 문학 | 신국판 | 352쪽 | 18,000원
2014년 12월 31일 출간 | ISBN :978-89-6545-279-9 03810

 비평전문계간지 『오늘의문예비평』을 이끌며 비평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는 평론가 전성욱이 펴낸 산문집. 영화를 보고, 연극을 보고, 사진을 보고,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고, 대화를 나누며 얻은 사유를 담았다.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 - 10점
전성욱/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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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김무엽 2015.02.05 1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드디어 나왔군요

  2. 2016.11.13 0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안녕하세요, 산지니입니다.

2015년을 여는 저자와의 만남에서는 그동안 언어라고 하지 않았던 언어들, 목소리라 생각지 않았던 목소리들과 마주하고자 합니다. 

평론집 『비인칭적인 것』의 지은이 고봉준 교수 는 2000년대부터 2014년 최근까지 출간된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주체와 일정한 거리를 둔 발화법"을 발견합니다. 자본주의의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우리'가 아닌) '나들'이 말하는 방법과 과정은 어떤 것일까요? 


문학평론가 전성욱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오늘날 문학의 역할, 그리고 시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입니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다과가 제공됩니다. 

추첨을 통해 산지니 책을 받으실 기회도 있으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일시 : 2014년 1월 30일(금) 오후 7시
장소 : 러닝스퀘어 서면점 (동보플라자 맞은편 모닝글로리 3층)

대담자: 전성욱 (문학평론가)

문의 : 러닝스퀘어 051-816-9610




특정한 인칭에 속하지 않은 세계-『비인칭적인 것』(책소개)



 

저자: 고봉준

1970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혁명적 담론에서 생성적 담론으로의 넘어서기 : 백무산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강의하고 있고, <노마디스트 수유너머 N>에서 활동하면서 지식과 삶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지금까지 평론집으로 『반대자의 윤리』, 『다른 목소리들』, 『유령들』을 출간했고, 첫 평론집으로 제12회 고석규비평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계간 『포지션』, 『딩아돌하』, 『문학선』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산지니 출판그룹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sanzinibook 

산지니 출판그룹 트위터 : http://twitter.com/sanzini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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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입 편집자 잠홍입니다 :) 

비가 시원하게 내리던 어제는 저의 첫 출근일이었는데요. 

첫날부터 출동!! 대표님과 함께 '시민과 함께하는 문학 톡! 톡!' 이라는 제목의 요산문학축전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소설집 <집이 있는 풍경> (개정판 <청학에서 세석까지>)<길 위에서>, 산문집 <꿈을 굽다>, 평론집  <시간의 향기> 등의 저자이신 태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주제로 하는 자리였습니비가 오고 쌀쌀한 날씨였지만, 전 부산작가회의의 회장이셨던 정태규 작가님의 인기와 부산 문인 사회에서의 주요한 역할을 증명하듯 민주공원 소극장의 객석은 어느 새 가득 차 있었습니다루게릭 병을 앓고 계셔 몸이 불편하신데도 작가님 또한 행사에 참석해 주셨습니다. 


이날 문학 톡! ! 강동수 소설가, 정인 소설가, 그리고 전성욱 문학평론가의 토론으로 시작되었습니다강동수 작가님과 정인 작가님 두 분 모두 정태규 선생님과의 첫 만남에 대한 추억담을 나누어 주셨는데, 강동수 작가님은 20여년 전 문학담당 기자 시절 정태규 작가의 소설을 읽고 정 작가님께 연락을 하셔서 함께 술자리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 때 시간이 지나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빠졌던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오고 있고, 함께 부부 동반 모임을 꾸리고 있다는 점도 말씀하시며 토론 내내 두분 간의 친분을 과시(?!) 하셨습니다.

왼쪽부터 강동수 소설가, 전성욱 평론가, 정인 소설가 이십니다 ^^

정인 소설가님은 소설학당 시절 정태규 작가를 선생님으로 만나셨다고 합니다. 그 당시 작가님으로부터 상당한 혹평을 받았다고 하셔서 정태규 작가님을 포함한 많은 관객의 웃음을 자아내셨습니다. 소설계에서는 정태규 작가님께서 10년 선배이시지만 동년배이시고, 같은 정씨 이신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정인 소설가님이 할머니 뻘이시라 정인 소설가 님을 종종 '할매'라 부르셨다고 하네요 ^^


이렇게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친분도 두터우시지만, 문인 선배/동료로서의 정태규 소설가에 대한 존경 또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정태규 작가의 글을 처음 읽어 보았을 때 인상 깊었던 점에 대한 질문에 답하며

강동수 작가님은 다양한 화두를 소설책 한 권에 묶는 능력서정적이면서 명징한 문체

정인 작가님은 정태규 작가님의 비유의 탁월함, 언어의 풍성함을 꼽으셨습니다.

전성욱 평론가 님은 <길 위에서>를 처음 읽으셨을 때 이 소설가가 <집이 있는 풍경>을 쓴 사람과 동일인물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학세계의 큰 변화를 느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 소설집이 나온지 10년이 지난 뒤 출판된 <길 위에서>의 작품들에는 일상의 무게와 불안감이 잔잔하게 녹아 있어, 10년간 활동을 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줄곧 소설을 써 오셨구나 하고 짐작하셨다고 합니다. 

평론가님의 말씀대로, 두 소설 사이의 기간 동안에도 정태규 작가님은 소설에 대해 꾸준히 사유하셨습니다. 소설쓰기의 미학에 대한 탐문을 모은 평론집 <시간의 향기>에서는 작가님의 비평가로서의 면모를 접할 수 있고, 절판 되었던 <집이 있는 풍경>또한 개정판 <청학에서 세석까지> 다시 독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


세분의 대화 이후에도 영상으로 다른 문인분들의 추억담이나 본인의 작품세계에 대한 인터뷰를 접하며 정태규 작가님이 얼마나 부산 작가회의에서 주력하셨는지, 또 부산과 부산 작가들에 대한 애정이 많으신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정태규 작가님의 작품을 미리 접하지 못한 상태에서 행사에 참석하게 되어 아쉽기도 했으나, 이날 행사의 끝으로 작가님의 소설 <누가 용을 보았는가>를 연극으로 보게 되어 조금이나마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접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극단 해풍이 무대에 올린 <누가 용을 보았는가>

<누가 용을 보았는가>는 평화로운 작은 마을의 사람들이 영생을 얻게 해 준다는 용 비늘과 침에 대한 욕심 때문에 점점 폭력과 권력에 취해 간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마을의 노래꾼은 전설 속의 용은 현실태(態)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 속에 있다고 말하지만 무기를 쥔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지 않지요. 연극 이전에 상영되었던 영상에서 구모룡 평론가님이 정태규 작가는 "인간의 순수한 만남을 동경"하는 분이라 하셨는데, 그 말씀의 의미를 연극을 보며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빗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길 위에서>를 펼쳐 보았습니다. 

가을입니다. 곧 낙엽이 다 지고 찬바람이 불겠지요. 

그걸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우리 삶에 대해서 스스로 강퍅해지지 않기로 합시다. 

겨울이 지나면 곧 새봄이 오겠지요.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님 말씀대로, 우리 모두 담담하게 가을을 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길 위에서 - 10점
정태규 지음/산지니
꿈을 굽다 - 10점
정태규 지음/산지니
청학에서 세석까지 - 10점
정태규 지음/산지니

시간의 향기 - 10점
정태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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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엘뤼에르 2014.10.21 14: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입사 첫날부터 행사 취재에 고생 많으셨어요:)
    '누가 용을 보았는가'가 연극으로 어떻게 나왔을지 너무 궁금했는데, 이렇게 연출되었군요. 저도 가고 싶었는데 아쉬워요! 글 재밌게 읽었어요^^

  2. 전복라면 2014.10.21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취재기 잘 읽었어요. 정태규 작가님은 『문학을 탐하다』에도 소개된 작가시니 책을 읽어보시면 작가님의 진면목을 잘 아실 수 있을 거예요(슬쩍 책 홍보)

근현대문학과

재난 재앙의 상상력

동남어문학회 추계전국학술대회






안녕하세요:-) 산지니 인턴 곰고래곰입니다.

지난 22일 금요일 동아대학교에서 열린 동남어문학회 추계전국학술대회에 다녀왔습니다.

12시 50분부터 6시까지, 약 5시간에 걸쳐서 8편의 발표가 있었는데, 저는 시간관계상 개회사와 함께 2편의 발표까지만 듣고 왔습니다.



:: 일정별 세부계획 ::


일 시발 표 및 내 용

       비 고

제1부
기획주제
13:00~
16:40

12:50~
13:00

 개회사, 축사 

13:00~
13:40

 발표주제 : ‘세계의 끝’에 관한 상상들-한국문학과 재난・종말의 서사
 발표자 : 전성욱(동아대) 토론자 : 정기문(동아대)

 사회자 : 
 김남영(동아대)

13:40~
14:20

 발표주제 : 절망의 종교적 전유와 재앙의 상상력:
                -실화소설 '금은탑' 다시 읽기
 발표자 : 조성면(인하대) 토론자 : 최미진(부산대)

 

14:20~
14:30

 휴식

 

14:30~
15:10

 발표주제 : ‘일청전쟁’이라는 재난과 문명세계의 상상-『혈의 누』를  다시 읽는다-
 발표자 : 정선태(국민대) 토론자: 김경연(부산대)

 

15:10~
15:50

 발표주제 : 일본 애니메이션에서의 재난의 이미지 
 발표자 : 한태식(동서대) 토론자 : 김필남(경성대)

 

15:50~
16:30 

 발표주제 : 후쿠시마 원전재난 이후의 한국시 
 발표자 : 허정(동아대) 토론자 : 이소연(동아대)


16:30~
16:40

 휴식


 제2부
16:40~
18:00

16:40~
17:20

 발표주제: 내포문에 실현된 '-ㄴ지'의 문법범주에 대하여 
 발표자 : 이영신(동아대) 토론자 : 임종주(동아대)

 사회자 : 
 정규식(동아대)

 

17:20~
18:00

 발표주제 : 판소리 「춘향가」의 사건의 유일성에 관한 고찰-'만남' 사건을 중심으로-
 발표자 : 박정아(동아대) 토론자 : 박기현(동아대)

 

 
  


익숙한 동아대 교수님들 이름이 보이네요. 오랜만에 봬서 반가웠습니다:-)

개회사는 회장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재난‧재앙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으므로,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토론해보자는 취지에서 이번 학술대회 기획주제를 '근현대 문학과 재난 재앙의 상상력'으로 정했다고 합니다.



동남어문학회 진창영 회장님



각 발표는 30분 정도 이루어졌고, 이후 10분 동안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발표자는 전성욱 교수님이고, 토론자는 정기문 교수님입니다.


전성욱 교수님은 이번 학술대회를 기획할 때 함께 참여했다고 합니다.

 '근현대 문학과 재난 재앙의 상상력' 기획주제에 대해 잠시 언급하셨는데요,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4월 16일 이전에 있었던 기획이라고 말하시며, 세월호 참사를 소재화 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하셨습니다.

참석자들에게 그간 있었던 고민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하셨습니다.



좌측 발표자 전성욱 교수님, 우측 토론자 정기문 교수님



「‘세계의 끝’에 대한 상상들-한국문학과 재난‧종말의 서사」를 발표해주셨습니다.

수재와 같이 재해를 다룬 소설 작품이 많은데, 전성욱 교수님은 단순히 재해를 소재로 삼은 작품을 다루지 않습니다.

냉전체제 종결 이후 역사의 종말 서사가 대두함에 따라 이에 관해 역사‧철학적 논의들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이와 관련해 인류의 멸망과 역사를 다룰 수 있는 소설로 논의를 이어갑니다.


1990년대 이후 진보적 혁명과 계몽적 이성에 의한 역사 변화가 불가능하지 않나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역사가 불가능한 곳에서 가능한 것은, 그 불가능성을 서술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에 재난의 서사를 독해하는 데 있어 역사의 불가능성을 태도를 주의해야합니다.

여기서 전성욱 교수님은 재난과 종말의 서사가 미래를 어떤 태도로 다루고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통해, 재난 자체가 아닌, 재난을 우리가 어떻게 인식하고 서사화하는가를 문제시합니다.

이를 통해 재난과 종말을 인식하고 서사하는 방식에 대한 윤리를 이야기합니다.


재난 서사의 윤리는 바로 그 역사의 멜랑콜리를 어떤 알레고리로 표현하는 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역설과 모순으로 암시되는 역사의 아포리아를 정합적인 서사의 규율로 질식시키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아포리아를 아포리아로 표현하는 것의 지난함에 대한 헌신이야말로 재난과 종말이라는 역사의 곤경을 대하는 문학의 가장 바람직한 윤리적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희망과 절망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재앙을 재앙으로, 모순을 모순으로 표현하는 역설이 필요하며, 그것이 윤리적으로 재난과 종말을 다루는 태도일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생각중



전성욱 교수님의 발표가 끝나고 정기문 교수님의 토론이 이어진 뒤, 이어 조성면 교수님이 두 번째로 발표를 하셨습니다.

토론자는 최미진 교수님이십니다.

조성면 교수님은 「박태원의 장르실험과 재앙의 상상력-실화소설 『금은탑』 다시 읽기」를 발표해주셨습니다.



좌측 발표자 조성면 교수님, 우측 토론자 최미진 교수님



조성면 교수님은 재난‧재앙이 사회를 보는 하나의 바로미터이자 거울이라고 말하시며, 이를 통해 그 사회의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무서워하는가를 볼 수 있는 한편, 이것이 정치적‧문화적으로 어떻게 전유되고 상상되느냐를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천재지변 같은 재난재앙이 종교적 차원과 사회현상으로서 다루어지되, 이를 소설로 다룬 대표적 사례를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소설사에 나타난 재난‧재앙의 문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조건에 부합하는 소설로 박태원의 『금은방』 꼽으며, 이와 같은 관점을 통해 기존에 잘 알려진 작가와 작품을 새롭게 읽어보자고 말하셨습니다.

조성면 교수님의 발표가 끝나자, 뒤이어 최미진 교수님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두 번째 발표가 끝나고, 저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조용히 빠져나왔습니다:-)

기획발표 중 제일 마지막 순서였던 허정 교수님의 발표를 듣고 싶었는데, 듣지 못해 미련이 남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또 기회가 있겠지요.


오랜만에 교수님들도 뵙고, 흥미롭고 재밌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한테도 그 알참이 전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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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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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모래'에서 복지사회의 실마리를 얻다


전성욱             그동안 중국에 관해 문학적 측면만 바라보다가, 20세기 초반부터 왕후이에 이르기까지 중국 사상사가 집약되어 있는 이 책을 통해 중국사상사를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종민 교수님은 중국 문학 연구자, 그중에서도 중국 근현대문학 연구자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선생님뿐만 아니라 중국 문학을 연구하시는 분들이 문화쪽에 많은 관심을 가지시고, 특히 사상사 분야에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지는 양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중국학의 범위가 넓어진 것 같습니다. 이종민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몇 권의 중요한 저작들을 번역하시고, 저서도 출간하셨는데 아마 중국 근현대 사상사에 대한 연구로는 본격적으로 나온 첫 저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연구방향 속에서 이 책이 가지는 의미를 설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종민                 첫 질문부터 어렵네요. 일단 바쁜 시간 내서 와주신 선생님들과 학생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제 딸이 중2인데 앞으로 어떻게 진로를 정해야 할지 고민이 많더라고요. 아빠는 어떻게 중국문학을 전공했느냐면서…. 제가 86학번인데 그 당시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중국이 대세는 아니었습니다. 막연히 중국으로 가서 무슨 일을 하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제가 문학을 전공하고 연구해왔지만,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나 책읽기를 좋아하던 것은 딱히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도 활동적인 일, 이를테면 신문기자나 경영 쪽을 전공하는 게 어떻겠냐고 많이 반대를 하셨지요.


1992년도에 한중수교가 이루어져 본격적인 연구도 하고, 유학생활도 시작했습니다. 이어 한국으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중국문학이라는 연구 분야와 학생들이 원하는 실용적인 교육에서의 괴리를 절감했고요. 학생들은 주로 사회과학, 정치, 경제 같은 중국문화 공부를 원하고, 이를 문학과 연결시켜야 하는데 가르치는 저로서는 잘 연결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사회과학과 관련된 부분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자, 나중에 다시 문학으로 돌아와 사회·인문학적 관점으로 중국을 접근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과 작업들이 결국 이 책 『흩어진 모래』까지 오게 되었죠. 이 책은 주로 문학 얘기가 아닌 문학, 사학, 정치·경제학 등으로 작성되었고, 쓰고 나서 제가 다시 보니까 내공 있는 사기꾼이 통섭해놓은 이야기 같네요.(웃음) 그러니까 초보적인 사회·문학적 관점에서 중국 문학을 바라보는 시도였던 것 같습니다.



경성대학교 중국대학 이종민 교수.


중국, 중국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담다

전성욱            제목을 보면 학술서로서는 아주 흥미로운 제목 같습니다. 보통 학술서는 딱딱한 제목으로 되어 있는데 말입니다. 지금껏 ‘흩어진 모래’라는 용어는 중국의 국민성, 공공의식, 공동체의식의 결여라는 서양인들 혹은 중국 내 지식인들이 중국 국민성을 비판적으로 인식하여 사용하던 의미였으나, 이종민 선생님의 의도는 이 의미를 역전시켜서 중국의 나아갈 방향이나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려는 맥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이 『흩어진 모래』라는 제목과 개념을 통해서 전달하려는 맥락을 듣고 싶습니다.



이종민               제가 사회과학적 중국 연구를 진행해왔지만 애초에 저는 문학 연구자로서 문학을 초점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20세기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정치적 변화 속에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등, 제 관심은 늘 중국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중국인을 공부하면서 근대 이전의 전통적인 중국관에서 벗어난 계기가, 아편전쟁 이후에 중국에 서구라고 하는 새로운 세력이 들어오면서 새로운 중국 정체성이 만들어지면서부터입니다. 그 속에서 중국인들의 근대 국가를 만들어 가기 위한 고민들이 시작되는데, 사실 서양인들의 시선으로 파악되는 중국인들은 흩어진 모래처럼 자기의 이기적인 생존만 알고 국가를 위해서 단결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비춰졌습니다. 


흩어진 모래라는 말을 처음으로 서양인들이 영자신문에 게재하게 되어, 이를 본 중국지식인들이 중국의 문제점들이 흩어진 모래처럼 단결하지 못하고 개인의 생존만 추구하는 것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됩니다. 그 말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면서 지금에까지 이르는데, 서양의 근대적이고 자본적인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한국이나 중국 같은 농경사회를 효율성이 떨어지고 국민들의 삶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은 국가라는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흩어진 모래’는 비하적인 이미지의 용어를 썼던 것이고, 근대 중국 지식인들도 중국의 여러 가지 낙후된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국민성을 개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으며, 그중 흩어진 모래로 대변되는 모래알 같은 사람들을 시멘트와 같은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 것인지가 가장 핵심적인 중국 지식인들의 고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21세기 와서 중국의 이미지가 많이 나아졌지만 실제로 개개인,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말할 때는 문명인이라고 하지는 않을 겁니다. 국가는 부강할지 모르지만 아직 국민 하나하나는 성숙된 문명의식을 바탕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흩어진 모래와 같은 중국의 국민성을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고민도 제 나름대로 해봤는데, 중국인들이 굉장히 개인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넉넉하고 여유 있는 국민성 또한 갖고 있습니다. 어떤 고난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은 낙관적이고 인내가 강한 속성도 상당히 있었고, 그런 속성이 어떻게 보면 흩어진 모래라고 하는 이미지와 맞는 부분이 있지 않나 싶었습니다.


비오는 날 모래밭을 바라본 적이 있는데 옆에 흙이 많은 부분은 진흙탕처럼 되는데 모래밭은 물을 다 빨아들이면서 오히려 가는 길을 푹신푹신하게 하더라고요. 모래 하나하나는 작고 흩어져 있는 것 같은데 그 틈새와 여유 덕분에 훨씬 큰 힘을 발휘하고 포용적인 차이를 구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흩어진 모래가 이들의 생존만 추구하는 게 아니라 인생을 낙관하면서고 여유 있게 포용할 수 있는 이미지로 흩어진 모래로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국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바라본 국민성담론

전성욱 문학평론가.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

전성욱            그래서 나오는 게 아무래도 중국의 국민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제가 읽으면서 우리나라에도 춘원 이광수 같은 계몽사상가들이 우리에게 전통이라고는 없다 하는 반전통주의에 입각해서 새 시대 의식을 외치는데, 여기에도 국민성 담론이라는 것이 중국 근 현대사에서 주기적으로 나왔다 사라지고 하는 흐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컨대 변법유신파들이 계몽을 내세울 때도 신민 개념이 나오기도 하고, 신문화운동세대는 서구적인 자유주의적 개인의 맥락에서도 새로운 주체-국민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1980년대 개혁개방 이후에는 신 계몽주의 지식인들에 의해서 새로운 국민성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국민성담론이라는 것이 중국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맥락에서 나왔다가 사라지고 하는 것이 책에서도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국민성 담론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말해주십시오.



이종민               사실, 국민성 담론은 서양인이 만든 이론입니다. 근대사회를 이루거나 자본주의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주체로서 국민의식과 공명의식이 있어야 하고, 또 자본주의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수용할 수 있는 그런 국민의식이 있어야 자본주의가 가능하고 근대사회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당시 20세기 중국 지식인 사이에서는, 서양에는 프로테스탄티즘에 입각한 기독교 정신이 있어왔지만 아시아권에서는 서양에 비견될 만한 종교의식이나 문명의식을 가진 국민 또한 없기 때문에, 낙후된 당면의 문제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국민성 개혁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됩니다. 실제로 문화대혁명도 인민개조를 통해서 중국을 발전시키겠다하는 차원을 보면 국민성개조론하고 맞아떨어지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20세기 전체가 어떻게 중국 국민성을 개조할 것인지, 중국사회를 개조하는 것이 바로 근대국가로 건설하는 것과 같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로는 일시적인 의식개혁만으로 국민성이 쉽게 변하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는 것이죠. 오랜 시간 문화적, 경제적, 사회적인 프로그램 속에서 바뀌어나가는 과정 속에서 훈련이 되면서 그 속에서 의식이 변화되는 것이 더 맞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중국인들의 20세기 국민성 담론 운동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여겨지고, 개혁을 해도 이건 정신개조를 하자는 것이 아니고 경제개혁을 통해서 점차 성장하겠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이제는 이러한 개혁보다는 문화운동을 통해서 문명화된 시민 주체를 중국이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새로운 과제고 거기에 맞는 개혁 프로그램들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국민 개개인이 행복해지기 위한 사회 조건, '복지'

전성욱            우리가 혁명을 이야기하거나 사회변혁을 이야기할 때 흔히 그 사회변혁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중요하냐 아니면 그 사회변혁을 이룰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중요한가, 그래서 다른 말로 주체냐 구조냐 하는 말을 많이 하는데, 이 책을 보면 분명히 그 두 가지 요소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책을 보면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1부 같은 경우는 사상담론적인 차원, 국민성 담론 같은 것을 다루고 있고 2부에서는 대안을 제시하면서 좀 더 구체적인 현실문제, 사회 구조적인 문제의 이야기가 많이 다뤄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사회변혁에 있어 주체와 사회 조건, 그 관계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종민               서구식 자유주의 개념에 입각한 현 글로벌 사회에서는 똑똑한 개개인 하나하나가 문명시민에서 출발하여 주체적으로 사회를 형성하고 또 정치리더를 구성해서 국가를 이뤄나가는, 이것이 바로 주체론에서 접근한 시각인데 실제 서양의 근대국가 건설과정 속에서 보면 한 개인이 중심이 돼서 결국 대중이 행복한 사회라고 볼 수는 없어요. 전략적으로 국가를 건설할 때 개인이 중심이 돼서 사회국가를 확장하는 국가건설 전략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실제로 이런 사회가 건설된 것인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본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답이 나오고, 중국은 오히려 제국주의로부터 침략된 시기였기 때문에 주권국가를 어떻게 건설하고 그 건설 속에서 각 사회와 공적인 사람들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하는 하향식의 국가건설 논리들이 나오는 것이죠.


그래서 중국식으로 국가 정부와 공적인 리더가 건설한 사회는 저열한 결과를 낳는다는 관점은 실제로는 잘못됐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서구 자유주의 입장에서는 이게 맞았는데 중국이라는 거대한 새로운 사회가 등장하면서 반드시 그런 것이 아니고 그 나라에 적합한 사회조건과 주체역량에 따라서 국가건설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결론으로 귀착됩니다.


그러면 출발을 상향식으로 시작했더라도 결국 개개인이 행복해지는 사회를 어떻게 나아갈 것이냐가 관건입니다. 중국은 국가에서부터 나아갔지만 이제는 개개인으로 갈 수 있는, 지금까지 국가와 민족이 부흥하게 했다면 이제는 인민 개개인이 행복하고 자유로운 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하는 점이 고민으로 남습니다. 지금껏 국가가 우선이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중국의 가장 콤플렉스였던 주권국가가 이미 형성되었기 때문에 개개인이 행복하고 사회적인 권리를 가지면서 인간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국의 다음 과제입니다. 이제는 정치프로그램도 개인 중심으로 가게 되고 실제 2049년을 기준으로 중국식 사회복지 초급단계는 가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보다 복지수준이 훨씬 높은 단계죠.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시민 개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가진 어떤 사회 원동력을 가지고 중국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습니다.



중국의 복지모델, 해답은 없는가

전성욱             책을 보면, 중국 근현대사의 사회구조적인 조건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국민성담론에 대한 주체 부분에 대한 논의가 쭉 이어지다가 결국 대단원에서 선생님이 제시하고 있는 어떤 대안이나 방향이라고 하는 것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내용을 자세히 보면 북유럽식의 사회민주주의의 복지정책 쪽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논쟁이 많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15억 인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의 모델로써 북유럽식 모델을 하나의 지향점으로 삼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하는 의문 말입니다.


이종민               제가 복지국가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글로벌 차이나』 책을 쓰기 전입니다. 이 시점과 『흩어진 모래』의 시점과도 연관되는데, 중국사람들을 흔히 흩어진 모래라는 표현으로 이기적라고 평가하지만, 그들은 또한 단결을 잘합니다. 흩어진 모래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은 국가단위의 단결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지역별 회담이나 동업자 관계는 좋습니다. 개인 중심의 이해관계를 얼마나 잘 만들 것이냐가 중국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관건이라고 하듯이 이해관계에 있으면 잘 모이는데, 국가에 대해서는 단결이 잘 안된다고 하는 문제, 다시 말하면 국가가 중국 인민 개개인의 생존을 보호해줄 수 있는 장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소속된 지역 집단이나, 혈연 집단, 동업자집 단에서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해주니까 그렇게 이기적으로 다니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국가단위로 봤을 때 똑같은 논리로 한다면 ‘흩어진 모래’라는 중국인들의 국민성이 국가 단위의 사회 안전망인 복지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따라, 공적인 의식을 가진 중국인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 되지 않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북유럽식 복지 사회라고 하는 그 맥락과 중국이 흩어진 모래에서 공동체 윤리를 가진 사람으로 가는 그 힌트를 얻었던 것이고요.


사실 북유럽식 보편적 복지사회로 중국이 가고자 하려면 시기상 백년 이상 걸립니다. 예를 들면 중국 같은 경우는 국가단위에서 공공복지 서비스를 해줘야 하는데 지금 중국은 국가가 복지서비스를 해주는 것이 아니고 기업단위로, 지방단위로 책임이 전가되고 있습니다. 중국이 돈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재원이 없어서 복지서비스가 약하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국가 정책의 방향을 아직도 자본가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본가들이 돈을 내놓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죠. 사회복지의 가장 일차적인 조건인 국가 공공 서비스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정립이 필요하고 지역단위에서 복지예산을 확립해서 맞는 서비스를 해나가는데 이게 지금 큰 틀이 안 잡혀있고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아직은 성장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은 일차 분배 중심,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업에 복지를 맡기는 방식인데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더 많은 복지 서비스를 받습니다. 그럼 결국은 복지가 소득 재분배를 위해서 만든 것인데 이렇게 되면 역분배가 되어버리는 거죠. 이 부분을 빨리 고쳐서 정상적인 궤도로 가도록 만드는 것이 중국 지식인들이 해야 할 일인데, 이건 어찌보면 권력 투쟁인 거죠. 돈 문제와 관련된 일이니까. 그런데 정부에서도 쉽게 그쪽으로 가지도 않고 비판적 지식인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딜레마가 있기 때문에 당분간 그런 복지사회 비전들을 계속 얘기하면서 비판적으로 해나가는 것이, 제가 여기서 쓰는 것이 복지사회주의라는 개념이니까요, 그 시각을 좀 더 비판해 주는 것이 당분간 유용한 척도가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왕후이에 대한 비판적 사고

전성욱            선생님께서는 아마도 중국 모델을 통해서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제일 마지막에 왕후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이것을 두 번 정도 읽어봤는데, 맨 처음 읽을 때는 왕후이를 비판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보니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말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왕후이를 긍정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보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왕후이가 가지고 있는 생각, 다시 말해서 사회변혁을 이루기 위한 기획이라는 부분과 그것을 현실에 실현시키는 부분이 분리되어있다는 부분을 문제 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중국모델이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되려면 어떻게 돼야 되느냐, 경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정치가 우선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정치적인 부분이 사회변혁의 중요한 고리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왕후이의 측면을 동의하고 있는 것 같고, 세밀하게 들어가면 그런 부분이 잘못되고 있는 부분인데 그런 복잡한 측면들을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종민                왕후이에 관한 비판적 사고를 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중국문제를 바라볼 때 왕후이의 글을 보면서 중국을 이해해요. 왕후이 시각이 가져오는 문제점을 비판해주는 것이 결국은 한국인이 가져오는 중국 시각에 대한 비판과 연결되어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왕후이는 신좌파라고 얘기되어왔고 모택동의 인민민주사회를 현 당대에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는 논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인민민주정치를 굉장히 강조를 합니다.


그래서 왕후이의 글을 열심히 분석해서 지금 당국가 체제와는 다른 인민민주정치라고 하는 그 사회의 대안적 세계로써 왕후이가 쓰고 있는지를 열심히 살펴봤죠. 만약 있다고 하면 신자유주의의 대안모델이 될 수 있는데 그런 내용은 실상 없어요. 왕후이는 당국가라고 하는 이 체제를 인정하면서 인민민주주의를 어떻게 성립해야 하느냐를 두고, 서양식 직접 투표제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 현 공산당 중심의 당국가 체제와 왕후이가 구상하는 인민민주체제와 거의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이죠. 중국 같은 체제에서는 국가의 역할은 중요하고 그것을 어떻게 부정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근데 아까 사회 복지라고 하는 전체적인 큰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듯이 국가 정책과 경제 건설 사이에서의 프로그램 청사진을 제시하면서도, 국가만의 역할을 주도하도록 해야 하는데 왕후이는 복지국가사회 프로그램에 대한 구상이 없어요. 이념적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하고 있지, 실제로는 그런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이 관념화된 국가주의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이렇게 해가지고는 중국사회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들었습니다. 왕후이의 기본 관점에는 동의를 하지만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에 이건 이념에서만 멈춘다는 것입니다.




지식인이 갖고 있던 계몽과 환멸에 대한 고뇌를 담다-『광인일기』

전성욱            네, 저는 지금까지 이런 저런 사상적인 중국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저는 4장에 있는 글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중국 근현대사 통사를 읽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정도로 유기적으로 잘 짜여 있는데 4장의 광인일기를 분석한 부분은 제가 비평을 쓰는 입장에서 선생님의 문학적 피를 속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학연구자로서 또 비평가로서 굉장한 글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체라든지 문장자체가 여기 실린 기존의 다른 글들과 아주 질적으로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문장을 읽어나가는 질감이 아주 좋은 글이었거든요. 그래서 여기 실린 10편의 글들하고는 다른 어떤 사연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종민               역사를, 큰 흐름을 얘기하다보면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은 잘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의 얘기를 엿볼 때는 문학 텍스트를 동원해서 글을 씁니다. 그 국민성 담론이 지나치게 지식인 중심이나 엘리트 중심인 것을 비판했듯이 루쉰의 『광인일기』가 제가 고민하고 있던 것을 그 작품에서 적확하게 표현했다고 봤습니다.


계몽자로서의 지식인들이 현실 우위적 입장에서 대중들을 어떻게 계몽할 것인가를 고민할때 대중들은 계몽대상이기 때문에 우매하고 흩어진 모래의 이미지처럼 인식되는 거예요. 그러면 서구적 지식을 가진 지식인들은 대중들을 두고 문제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그런 과정 속에서 계몽하는 사람과 계몽된 대중 간의 의사소통이 안 되면서 괴리가 일어나고, 광인은 계몽을 시도하다 실패하면서 스스로 좌절하고 환멸에 빠지는 것이죠.


계몽과 환멸의 과정, 이건 전 역사적으로 비슷한 순환인 것 같습니다. 제가 여기서 살펴보려고 했던 것은 계몽자의 우위적 입장에서 가지 말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의식과 방법이 무엇인지 그걸 연구하고 고민하면서 이 장을 쓴 건데 대충 보니까 그렇게 해석해도 충분히 될 것 같더라고요. 대중과 현실에서 떨어진 세상 변화가 아니고 사회와 계몽자 속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현실의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가능성을 관련해서 활동하자, 그것이 지식인이 해야 될 일이 아닌가, 그 이야기를 문학 비평을 통해서 시도한 겁니다.


전성욱            다른 글들하고 다르게 이 글은 시각도 굉장히 참신하고 독특했지만 내용과 형식이 동떨어지지 않는다는 아주 좋은 정보를 보여주는 글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저도 루쉰의 『광인일기』를 읽어봤고 『광인일기』에 관한 글들을 읽어봤는데 굉장히 독특하고 재밌는 글이라 꼭 일독을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역량을 충분히 볼 수 있는 그런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글을 많이 써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이제 청중석에 질문하실 것이 있으면 질문해주십시오.







다양한 '중국모델'들과 중국 내 지역서비스 편차

청중                 지금 현대 중국에 대해서 여러 가지 말씀 하셨는데 중국은 워낙 크고 인구가 많은 국가이지요. 2013년 현재 중국 속에서도 백년, 이백년 가량 차이나는 시스템들이 상존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자면 상하이 같은 경우에는 80세 이상에게 제공되는 복지 시스템 같은 건 우리보다 훨씬 낫다고 볼 수 있다고 봅니다. 교통비라든지 의료비라든지 심지어는 매일 우유를 배달해준다든지. 또한 90세 이상 되면 국가에서 매일 한 번씩 파견해 케어를 해준다든지…. 이런 정도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이렇게 동시대에서의 어떤 편차가 나는 시스템을 현재 중국이 갖고 있는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이종민               예, 맞습니다. 국가 공공 서비스라는 큰 틀은 국가가 잡아야 되고 그 다음 각 지역별로 광동모델이라든지 그 지역 특색에 맞게, 어차피 중국은 지역 정치를 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재원이라든가 리더에 따라 지역 특색을 살리는 시스템상의 편차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 중요한 것은 국가가 공공 서비스를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이 부분이 안 잡힌 것이 제일 크고요. 아마 당분간도 계속 이러한 편차 속에서 가게 될 것 같습니다.

구비자산이 많은 충칭모델의 경우 국가 주도의 어떤 산업경제 절차라고 할 수 있는데, 광동모델 같은 경우는 이미 국유재산들이 상당정도 민영화되어 있거나 혹은 토지 같은 사유권들이 이미 매각되었기 때문에 충칭모델로 광동모델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죠. 오히려 생산력 복지사회라고 하는 이 시스템 속에서 만약 광동 자체를 개혁해나간다고 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선진화되고 산업생산력이 우수한 광동지역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됩니다. 그렇게 국제 수준이 올라가면서 광동 시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나올 것 같은데, 말씀하신대로 지역별로 나뉜 큰 틀과, 이에 따른 생활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렇게 보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자 사인 중이신 이종민 교수님^^*



전성욱            그런 지역과 중앙에 대한 문제도 책에 언급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 질문이 없으면 오늘 정리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흩어진 모래는 제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맥락에서 인문주의적인 좋은 책이 나왔다고 생각되고 앞으로 많이 알려져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졌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에서 나온 저자의 저서로서, 어떤 큰 맥락을 잡고 하나의 기획을 보여주는 좋은 책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참석하신 분들께서도 한 번 읽어주시면 아주 큰 시각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이 아닌가 생각되고요. 마지막으로 오신 분들에게 크리스마스고 하니까 좋은 말씀 가볍게 하시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종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북경에서 한 4주 동안 있을 생각인데 다음 고민은 어떤 책을 써야할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독한 시간을 좀 보내게 될 것 같습니다. 그 시간을 성공적으로 보낸다면 다음 공부계획과 삶의 계획이 나올 것 같습니다.



***더 깊은 내용이 궁금하다면,

흩어진 모래 - 10점
이종민 지음/산지니


다음 저자와의 만남 안내>>>

2014년 1월 14일 화요일 저녁 6시, 부경대 더 밴드


규슈백년의 

BOOK CONCERT에 초대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링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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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서흔(書痕) 2014.01.16 10: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일이 다 옮기시다니 대단!
    저자와의 만남을 복기할 수 있어서 좋네요 ㅎㅎ

 

 

 

몇 주간 내리지 않던 비가 시원하게 내리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완연한 가을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직 햇살은 뜨겁지만 책내음 맡으러 잠깐 마실 나가는 것은 어떠한가요?

 

 

가을을 맞이하여  "2013가을독서문화축제"가 열립니다. 2010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벌써 4회째를 맞이한 행사입니다.

9월 7일 토요일과 8일 일요일, 이틀에 걸쳐 광복동 패션거리, 보수동 책방골목 등 중구 곳곳에서 행사를 진행합니다.

전시뿐만 아니라 직접 참여도 할 수 있는 체험부스, 저자와의 만남 등 볼거리가 풍성합니다.^^

그럼 이 중 저희 산지니를 만날 수 있는 행사를 밑줄 쫙 쳐서 알려드립니다.

9월 7일 토요일 오후 여섯 시 광복로 패션거리에서 개최되는 김진명 북콘서트(개막행사)에는 『오늘의문예비평』편집위원 전성욱 평론가 사회자로 참여합니다. 

9월 8일 일요일 오전 열한 시 ESS어학원에서는 『밤의 눈』조갑상 소설가, 오후 다섯 시 우리글방에서는 『문학을 탐하다』최학림 저자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참가 신청, 더 자세한 행사 소개는 공식 블로그에서(눌러주세요)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밤의 눈』 2013 만해문학상 수상!

문학기자 최학림이 만난 작가들─『문학을 탐하다』(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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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산지니 출판사입니다.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이제 2013년으로 접어들면서, 43회째를 맞이하였습니다.

2013년의 첫 저자는 《경남도민일보》의 편집국장이신 김주완 저자입니다.


최근 『SNS시대 지역신문기자로 살아남기』를 출간하면서, 많은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요.

산지니가 그동안 40여회를 넘게 '저자와의 만남' 행사를 진행하면서 갖는 첫 원정행사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경남권 독자들도 꾸준히 만나면서

한국, 나아가 아시아를 휘감는 오래 나는 새인 산지니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산지니는 산에서 자라 여러 해를 묵은 매라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랍니다)


산지니 경남 독자분들, 그럼 내년 1월 11일 그날 뵈어요^^





**오시는 길



마산만이 펼쳐져있는 창동거리내 135번지 가배소극장에서 그날 행사가 있습니다. 마창진에 사시는 독자여러분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SNS시대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남기 - 10점
김주완 지음/산지니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서동 |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135 (창동거리길 41)
도움말 Daum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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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남소리』, 『민꽃소리』, 『소리꽃』 등 그동안 우리 전통음악과 예술가들의 혼이 담긴 소재로 ‘예술가 소설’의 획을 그었던 중견소설가 유익서가 소설집 『한산수첩』을 발간하였습니다.

 이번 소설은 한산도에 매력을 느껴 자발적 유배를 선택한 유익서 선생님이 한산도에 머물면서 꾸준히 창작활동에 전념해온 결과물을 모은 것입니다. 



구도(求道)를 위한 섬으로의 자기 유폐 - 『한산수첩』

 소설은 한결같이 주류사회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상처받은 자들의 고독한 정서를 그려나간다. ‘사랑’(「그 못난 사람」, 「죽도 별신굿」)과 ‘죽음’(「꽃배」, 「바람신」), ‘예술’(「통학선」, 「국화무늬 그림자」), ‘운명과 자기의지’(「더듬거리는 필연」), ‘보여지는 것과 감추어진 진실’(「대장경 일화」)이라는 제법 굵직한 주제를 통해 다양한 각도로 사유하는 구도자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굵은 붓으로 그린 여덟 폭의 동양화 같은 소설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을 거스르며 굳건히 같은 자리에 서서 영구히 아픔을 견디고 앓아야 하는 섬도 예외가 아니라네. 지구의 내재적 리듬을 가장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곳이 어디라 생각하나. 속으로 영구히 아픔을 견디며 앓고 있는, 섬이라네.”(「통학선」, 42p)

 속세와 단절하며 아픔을 견디는 ‘섬’ 속에서 소설 속 인물들은 예술의 본질이나 사건의 진실과 같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스로 청한 고행을 겪게 된다. 이들은 스스로가 회고와 사유를 거듭함으로써 ‘섬’이라는 고립된 장소 내에서 그간 우리가 간과해왔던 중요한 진실들을 깨닫게 한다. ‘외로움’이 자신의 자양분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소설가 유익서. 이 소설집이 본인의 이야기와 더욱 닮아 보이는 이유는 그래서이다. 굵은 붓으로 그린 여덟 폭의 동양화처럼 선이 아름답고 여백이 많아 깊은 사유를 요하는 여덟 가지 각기 다른 소설 속에는 섬에서 살아가는 주변인의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



세속 너머를 헤매는 상처받은 사람의 고독한 보행

유익서의 소설은 대체로, 엄격한 자기 응시 속에서 숭고한 세계를 꿈꾸는 고독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무참하게 상처받은 자의 가망 없는 외로움이, 세속 너머의 저 어딘가를 낭만주의적인 동경 속에서 헤매게 한다._전성욱(문학평론가)

 유익서가 이번 소설집에서 그리고 있는 주요 정서는 ‘고독’이다. 소설은 ‘섬’ 속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개인들의 속살을 가감없이 비추고 있다. 홀로 이상을 꿈꾸며 외골수의 길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좇다 보면, 그간 유익서가 글을 쓰면서 고뇌해 왔던 성찰과 사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별신굿’, ‘오구굿’, ‘영등할만네 제’와 같은 지역의 향토문화와 ‘바람신’과 같은 전설, 예술가들이 겪는 고통, 한산도의 지역적인 배경과 같은 독특한 소재들은 유익서 소설집 『한산수첩』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소설 곳곳에는 추리적 재미까지 살아 있어,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대장경 일화」에 등장하는 화자가 홀로 섬에 머물며 산책을 통해 여러 가지 성찰을 하는 것에서 엿볼 수 있듯, 유익서의 소설은 삶과 예술, 사랑과 운명에 대한 깊은 사유를 드러낸다.



▶ 작품 소개

 「그 못난 사람」은 유익서가 2010년 통영국제음악제 개막작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본 감흥으로 쓴 소설이다. ‘나’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관람했던 여자와 우연히 한산도로 가는 배를 같이 탔고, 몽돌해수욕장에서 다시 그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와 대화를 하게 된 ‘나’는 이윽고 <오르페의 유언>이라는 작품을 그녀와 함께 공연해 올렸던, 여자의 ‘그 못난 사람’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같은 신화 속 영원한 사랑에 대해 환멸을 느끼는 여자는 현실보다 관념의 세계 속에 천착했던 옛 남자로 인해 괴로워하고, ‘나’는 그 이야기가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양 아프게 받아들인다.

 「통학선」에서 주인공 ‘나’는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화가 친구 휘의 근황이 궁금해, 비진도로 직접 떠난다. 삼원색의 가장 심오한 색감을 얻기 위해 시행착오를 거듭하기도 하고, 모든 존재의 형상 과정에 대해 탐구하고자 한 ‘휘’에게 세상은 그저 냉혹하기만 했다. 심지어 휘의 아내는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라 휘를 힐난하기도 했다. 돈이 되지 않는, 단지 ‘훌륭한’ 화가였을 뿐인 휘는 결국 비진도의 선유도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휘의 딸아이는 아버지가 찾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자 한다. 이처럼 「통학선」은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는 유익서 소설의 전형을 따르고 있는 수작이다.

 「더듬거리는 필연」은 낚시터에서 만난 한 사내의 이야기이다. 광고계에서 이름을 날린 사내는 박물관에서 우연히 보게 된 돌멩이 하나에 대한 광고카피를 써서 이름을 드날리게 되고, 책 외판원이 흘리면서 던진 말 한마디를 기억했다가 카피에 적용하는 등 무수한 우연을 거듭하여 성공가도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우연일 뿐, ‘의지와는 상관없이 남의 의지와 그 작용에 의해 흘러온 것 같아 허망하다’고 단언한다. 사내의 말을 듣고 ‘나’는 우연과 필연의 실체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국화무늬 그림자」는 지역 방송국 PD인 김기승이 자신의 아버지인 김장후 시인을 소재로 다큐멘터리 제작을 맡게 되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취재를 하던 중 많은 지인들이 한 선생이야말로 김장후 시인에 대해 가장 믿을 만한 사실을 알려줄 사람이라고 추천한다. 그러나 한 선생은 취재를 요청하는 김기승에게 느닷없이 수련 이야기를 꺼낸다. “수련 잎과 그 그림자를 찍은 것인데, 수면 위의 수련 잎은 둥그런 모양인데 물속에 그려진 그림자는 국화무늬를 짓고 있었네. 잎은 둥그런 말굽 모양인데 그림자는 국화무늬라니……,” 아버지의 좋은 면만 담고 싶었던 김기승에게 한 선생의 이야기는 형상과 내면, 그 차이의 숨은 뜻을 헤아리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다.

 「죽도 별신굿」은 사랑을 포기하면서도 예술에 대한 집념을 떨치지 못하는 여자와 그 여자에게 예술에 대한 집념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을길 초입에 포구나무라 불리는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의 이상한 모양에 대해 “이 섬과 풍상을 견디며 고락을 함께 해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버지의 출생지여서 마을과 인연이 깊은 ‘그’는 죽도 별신굿의 행중 일원인 해금을 타는 여자와 정을 나누게 된다. 그녀는 ‘그’와 함께 낯선 도시로 떠나지만, 이미 해금과 자신을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결국에는 마을로 돌아간다.

 「꽃배」는 죽은 자가 죽음으로써 꽃피운 이야기의 허구성과 그 허구성으로 인해 세상을 속이는 것의 난처함에 대해 묻고 있는 소설이다. 개인 블로그 ‘무지개 섬나라’의 ‘꽃배’ 이야기는 ‘나’의 유쾌하지 못한 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아끼던 후배 영비가 죽고서, 상주가 남긴 영비의 소설을 읽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는 진실과 같으면서도 다른 부분이 많았고, ‘나’는 당혹스러워 한다.

 「바람신」은 한국전쟁 당시 점령당한 추봉도의 비극적 역사가 낳은 혼혈 여성의 삶을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오구굿에서 무녀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죽은 ‘조문례’의 일대기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돈과 같은 물신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대명천지 문명사회”에서 굿이나 무녀와 같은 미신을 믿고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손에 잡을 수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정신적 가치와 자연에 대한 경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장경 일화」는 ‘나’의 한산도 유배 계획으로부터 시작한다. 한산도 생활 중 자연스레 시작한 산책에서 한산사라는 절을 만나고, 그곳에서 ‘나’는 스님의 가슴속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대장경 유출 시도를 저지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희생되고, 그 이야기는 소리소문 없이 묻혔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장경 일화」는 ‘사실과 진실’, ‘보여지는 것과 숨겨진 이야기’, ‘역사와 야사’, ‘소설과 실화’의 경계에 대해 탐구하는 작품이다.


지은이 : 유익서

쪽수 : 304쪽

판형 : 국판

ISBN : 978-89-6545-180-8 03810

값 : 13,000원

발행일 : 2012년 6월 29일

십진분류 : 813.62-KDC5

       895.734-DDC21




글쓴이 : 유익서

부산 출신으로 중앙대 국문과에서 문학을 공부하다 동아대 법학과로 옮겨 법학을 공부했다. 197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부곡」, 197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우리들의 축제」로 등단한 후, 고도의 상징과 알레고리로 시대상황을 비춰낸 『비철이야기』,『표류하는 소금』,『겨울환자』,『바위물고기』 등의 소설집과 우리 전통음악의 우수성과 고유한 아름다움의 근본을 밝혀 미학적으로 승화시킨 『새남소리』, 『민꽃소리』, 『소리꽃』 3부작을 비롯하여 『아벨의 시간』, 『예성강』 등의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놓은 바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이주홍문학상, PEN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한동안 동아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이즘은 단국대학교 대학원과 서울시교육청 문학교육센터에서 소설을 강의하고 있다.



차례

그 못난 사람-한산수첩 8

통학선-한산수첩 7

더듬거리는 필연-한산수첩 6

국화무늬 그림자-한산수첩 5

죽도 별신굿-한산수첩 4

꽃배-한산수첩 3

바람신-한산수첩 2

대장경 일화-한산수첩 1

해설

작가의 말




한산수첩 - 10점
유익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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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5회 윤여일 저자와의 만남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

 윤여일 선생님

 

 5월 24일 목요일 저녁 7시, 산지니 출판사, 오늘의 문예비평이 공동주관하는 저자와의 만남 시간은 저자분의 강연을 주로 했던 종전과는 달리 계간지『오늘의 문예비평』의 편집위원분들께서 한분한분 돌아가시면서 토론을 나누는 토론방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그 첫 토론회의 주인공은 『오늘의 문예비평』의 연재물을 모아 책을 내셨던 수유너머R(http://www.transs.pe.kr/) 연구원, 윤여일 선생님이십니다. 이날의 토론회는 윤여일 선생님과 더불어 『오늘의 문예비평』편집위원이신 전성욱 문학평론가와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전성욱 문학평론가 : 수유너머R 연구원으로 계신 윤여일 선생님의 저서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이하 지식의 윤리성)는 오늘의 문예비평에 연재했던 글을 바탕으로 취합하여 책으로 낸 결과물이다. 오늘 토론회를 갖기 전, 윤여일 선생님과의 저녁 식사로 충분히 함께 교감을 나누었는데 부산에는 10년 만에 다시 와보셨다고 하셨다. 부산방문에 관한 간단한 소회를 말해 달라.

윤여일 저자 : 연구원 활동 외에도, 논술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예전에 방문했던 부산은 서울에서 강의를 마치고 순천에서 강의를 하고 이동하는 바람에 구경을 못해, 제대로 된 부산 방문은 처음이나 다름없다 . 사실 『지식의 윤리성』 책을 쓸 때 기분이 우울한 상태였다. 반면, 오늘은 부산에 와서 마을도 보고 저녁식사도 맛있게 하고 와서 우울한 기분이 들지 않아 집필 당시와의는 감정 상태에 있어 간극이 있다.

 

 

신체와 정신에 남는 기록을 쓰고파

전성욱 문학평론가 : 책에 보면 후기에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셨다. 번역 활동, 논문을 쓰고 있으며, 여행기를 쓰기도 하고, 에세이 작업을 하시는 등 여러 가지 작업을 하시고 있는데 자신의 작업 활동에 관해 간단한 소개 바란다.

윤여일 저자 : 네 가지를 썼는데, 어떻게 보면 번역도 창작이나 다름없다. 나는 번역자의 기능적인 역할이 아니라, 사상가로서의 역할에 주목하였다. 『지식의 윤리성』은 나의 첫 저서인데 이러한 나의 네 가지 작업 중 마지막에 해당한다.

석사논문을 쓸 때, 개념어의 관계성을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말의 부재로 인해 논문에서의 논의하려는 문제를 성립시키기가 어려웠고 사회현상의 징후들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논문이 끝난 이후에는 개념화에 비판적인 거리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우연찮은 만남을 통해 동아시아에 대한 문제의식이 점차적으로 생기게 되었다.

한 번은 멕시코로 여행갈 일이 생겨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용량 부족으로 백업을 시켰는데 분실당했다. 도둑맞은 것 같다. 집에 돌아와 보니 백업을 시킨게 아니라 포맷을 시켜놨더라. 파일이 모두 사라진 것에 대해 분통이 나기도 했고, 내가 무슨 글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더 화가 났다.

물질적인 결과물인 파일이 사라지고 나니, 신체나 정신에 내가 쓴 언어들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언어감각에 대한 생각들을 하게 된 것 같다. 일본에 2008년 겨울까지 있었는데 일본어를 잘 모르는 상태로 말이 와전되는 경우에 생긴, 말하고자 하는 의지 사이의 불일치 경험이 언어감각에 대한 생각을 더욱 촉발시켰다. 한국어에 대한 감각 또한 이와 다르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들이 결국 쌓이고 쌓여서 『지식의 윤리성』을 쓰게 되었다.

 

추상적인 언어로 구체화된 형식을 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도전하고 싶었다.

전성욱 문학평론가

전성욱 문학평론가 :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지 못해 저자와의 만남 시간에 말을 잘할 수 있을까 두렵다고 하시더니 말을 너무 잘하신다. 이 책은 정신적 체험에 관한 자서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자신을 대상화 하는 작업이다. 글을 쓰고, 글을 읽고, 지식에 관여하는 사람이라면 지식의 관계 속에서 그 관계를 성찰해야 한다. 곧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작업을 반성적으로 되돌아보는 글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책에 등장하는 ‘지식의 윤리성’에 대한 개념 설명을 부탁한다.

윤여일 저자 : 아까 얘기와 연결시키겠다. 일본에 가서 동아시아 관련 논문을 썼는데 그때 당시, 밤이 되면 고민이 있어서라기보다 낮에 하고자 했지만 결국 못했던 말들이 생각나서 결국 잠을 이루지 못했다. 때문에 그전에 없었던 언어로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생겼다.

어떤 수업을 들었을 당시, 한 일본 학생이 어눌한 일본어로 질문을 했는데 스승이 태도가 좋은 질문이라며 칭찬하셨다. 그 스승의 태도는 학생에 대한 립 서비스가 아니라, 상대의 동기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어눌했던 학생의 질문을 수준 높은 질문으로 승화시켰다. 질문 내용을 자신의 체험에 대입시켜 질문자 스스로의 신변의 체험으로 끌어당기는 방식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내 개인의 체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할 수 있도록 쓸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언어감각의 문제가 촉발된 것이다.

『지식의 윤리성』은 말하자면 여행기였다. 몸으로 다니면서 체험하고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언어로 구체화된 형식을 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도전하고 싶었다. 그것이 작년이었고 이 책은 나에게 있어서 그 도전의 결과물이다. 전성욱 선생님께서 말한 정신적 체험의 결과물이 그런 의미다.

 

시대에 답을 제시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

전성욱 문학평론가 : 결국 윤여일 저자분의 말씀은 지식의 주체와 지식의 대상이 맺는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지식의 주체가 객관적인 인식에만 매달려서만 안 되고, 자신의 변화를 추구해야만 지식 주체와 지식의 대상이 만나서 변화하는 과정에서 지식의 윤리성이라는 문제가 다시금 제기되는 것이다. 그 지식의 윤리성을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지식의 세 가지 속성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세 가지 맥락에 관해서 설명해 주셨으면 한다.

윤여일 저자 : 이론, 비평, 사상에 대해 다시 또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이 세 가지의 맥락은 자의적인 것이다. 책 속에서 전달하는 나의 메시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논문을 쓰는 것은 세계를 질문과 답의 형식으로 재창출해 내는 것이다. 물음이 있어서 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설정한 물음에 답을 찾아가는 방식이 사회학에서 추구하는 방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적인 발견이라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연구자에게 있어서 연구를 사는 행위를 통해 이론이 탄생한다.

글쓰기에 있어 이런 방식의 문답관계가 궁극적으로 재질문이 아니라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시대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는 사람은 사상가이지, 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억압의 기제로 이론을 설정해 보고 싶었다. 사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끄집어내고 싶어서 이러한 이론, 비평, 사상이라는 주제로 1장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적 스승으로서의 루쉰과 다케우치 요시미.

 

루쉰

전성욱 문학평론가 : 상투적이고 진부한 질문이기도 한데, 윤여일 저자분의 글 속에서 중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사상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선생님의 작업이 이론가가 아니라 사상가였는지 그 맥락을 집어주시길 바란다.

윤여일 저자 : 사상적 인격이 나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쓸 수 있었다. 루쉰에 대해 간단히 얘기하자면 루쉰의 글 속에는 불투명한 말이 종종 있다. 루쉰의 원문에서 이미 번역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불행에 따라 글이 전달되지 않고 번역가를 거쳐 전달되는 것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이렇게 하여 루쉰을 발견했는데, 역사와 시대, 장소 속에 맞물려있는 어떤 사람의 사유가 번역가에 의해 옮겨질 때 사상은 이론과도 같은 다른 형식으로도 옮겨질 수 있다.

루쉰이란 작가에 대해 말하자면, 그 사람의 글이 번역서로 가득 차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글을 쓰면서 허구의 이야기와 같이 불투명한 사람 속으로 진입하고자 하면 자기 자신을 송두리째 거는 행위가 뒤따르게 되고, 그 행위로 인해 글의 진의에 가닿고 거기서 무언가의 의미를 건져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의 아카데미적으로 지적인 후계자를 만들지 못한 사람이었다. 전후 일본사상계에 있어서 극과 극으로 평이 갈린 사람이기도 하다. 이른바 체계를 갖지 못한 것이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현실사상에 대해 가설을 만들어내고 그에 따른 기대나 성과를 만들어 낸다. 그러나 전에 만들어냈던 가설을 다시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때마다의 상황 속에서 살아보려 한 사람이고, 그래서 많은 오류를 범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의 시간을 좀먹고 사유능력을 뺏는 TV라는 존재

 

윤여일 선생님.

전성욱 문학평론가 : 이번에는 번역과 현실 감각에 대해 묻고자 한다. 번역이라는 것은 원문에 대한 충실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만, 이 책에서 중요시하고 있는 점은 조금 다르다. 원문과 번역과의 어긋남을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 같다. 또한, 현실감각 부분에 관하여서는 책을 출간하면서 첨가한 부분으로 알고 있다. 격정적인 어조에 텔레비전을 끊는다던지 하는 분노에 찬 결단을 내리는 부분이 나오는데 「현실감각에 관하여」편을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윤여일 저자 : 이명박 정권 들어서 감정적으로 많은 피해를 받게 되었다. 이명박에게 바로 갚을 방법이 없어, 유의미하고 생산적인 방법으로 바꾸고 싶었다. 이는 텔레비전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텔레비전으로 뺏긴 시간들을 텔레비전으로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텔레비전으로 인한 분노를 생각해보라. 요즘 텔레비전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너무 분노스럽지 않은가. 요즘 보게 되는 내용이 뉴스나 토론프로그램 등 우울한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내 작업이 힘들겠구나 하는 자연스런 생각을 하게끔 되었다. 생각의 호흡을 압축시키고 있다는 느낌과 함께, 이렇게 텔레비전을 보며 느낀 나의 피해가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성욱 문학평론가 : 결국 저자 분 말마따나 텔레비전은 우리의 시간을 소모시키고 사유능력을 좀먹고 현실감각을 둔화시킨다. 더 중요한 것은 반복적으로 습관화되는 현실에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되는 것이다. 즉, 현실에 대한 예민한 감정을 놓치게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며 이러한 감각이 축적되어 곧 비평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현실을 예민하게 바라보는 현실 감각을 연마하기 위해서 비사유를 사용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윤여일 저자 : 현실감각에 대한 부분에서 비사유의 사유에 대한 얘기를 언급했다. 비사유의 사유와 관련된 대목이기도 한데, 곧 있으면 대선이다. 결과는 내가 생각한대로 잘 안 나올 것 같기도 한데, 만약에 박근혜 씨가 되면 니체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커다란 변수가 없으면 사실은 루쉰을 읽고 싶다.

이명박은 한국사회의 속물근성이 집약된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그동안 인터넷이 얼마나 개인의 감정과 정신을 집약시키는 미디어인지를 알 수 있었다. 촛불시위 따위를 지켜보며 내 자신이 얼마나 피폐해지는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촛불운동이 사상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보았다면, 첫째로 그 안에서 이명박이 아니라 우리 안의 이명박적인 것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가 논의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명박적인 것이란 외과수술처럼 선명하게 도려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된다. 앞으로 제2,3의 이명박이 등장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또 하나는 촛불운동 실패 이후의 것이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촛불운동은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촛불의 성과를 남기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요즘들어 다시금 광우병이나 막장정권이 나타나고 있는데 예전처럼 촛불운동이 기능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루쉰을 읽고 싶기는 하나 니체를 읽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니체의 저작을 담론으로 삼아 이를 문제시하는 사회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나 또한 니체의 저작을 통한 작업을 하게 될테니 말이다. 책에서는 충분하게 담지 못했다.

 

 

역동적인 결과물인 정치 속, 민주주의에 대한 사유의 여지를 남긴 노무현 정권

전성욱 문학평론가 : 나 또한 「비사유에 관한 사유」 부분에 관해 충분치 않게 읽혔다. 이 책은 뭐랄까, 답을 내야하는 조바심을 갖지 말고, 물음을 촉발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형식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책에서 기대하고 있는 답은 없으니 나같은 못된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답답했을 것이다. 정치감각에 관한 부분을 보면 텔레비전이나 언론을 보면서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무력,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그것에서 우리가 적극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비평정신과 정치감각으로 나온다. 선생님께서는 정치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 권력과 정치의 구분, 정치사고의 구도를 이야기하셨다. 상층부 중층부, 하층부를 나누게 되는 정치사회의 구도에 대해 설명해 달라.

윤여일 저자 : 정치와 권력에 대해서 얘기하겠다. 노무현의 새만금 간척사업, 대추리, 한미FTA, 모두 나와 내 동료들이 개입하려고 했던 사건이다. 노무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을 비교해 봤을 때, 둘 다 못마땅하지만 생각해보니 민주주의라는 문제에 있어 두 정권은 다른 면을 보인다. 이명박 정권은 민주주의를 사유하지 못하고 요구하게 만들었으나, 노무현은 민주주의에 사유의 여지를 주었다. 검찰과의 대화와 같은 행보가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에 대해 한국사회가 어디까지 생각해볼 수 있는가를 만들었던 계기를 마련하였던 것 같다.

민주주의가 요구되는 것이 자명시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명박 사회는 민주주의가 자명시되지 못하고 퇴행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정치라는 것은 역동적인 과정이며, 권력은 역동적인 과정에 대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일 따름이다. 그 운동성을 정치가 상실하면 권력을 가진 층에서 정치개입 요소를 제공하게 된다. 권력이 정치가 되어버린 사회에서는 권력이 정치적 세계인 것처럼 마치 우리가 보게 되는 스포츠 뉴스를 다루는 방식과 가까워진다. 즉, 정치가 운동 경기를 설명하는 용어와 흡사해지는 것이다. 그런 용어에만 깊이 빠질 것을 경계하고, 권력을 누가 쟁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정치적 사고에 대해서는 이처럼 현실정치에 대해서, 정치인들의 정치뿐 아니라 이념과 이념,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인권과 인권, 중층, 생활세계의 하층의 다양한 정치가 있다. 현실정치라는 상층부에 있는 정치를 생활정치라는 하층부로 끌고 와야 한다.

 

토론회에 참여해주신 독자분들.

 

독자와의 대담

전성욱 문학평론가 : 책에는 구체적 사례가 많이 없다. 사례를 들어 설명을 해주니 좋다. 이번에는 독자여러분들의 질문을 받아보겠다.

 

독자1 :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숨이 막힌다고나 할까. 읽으면서 생각이나 여유가 없다는 생각을 받았다. 너무나 빠르고 숨막히게 글이 전개되어 미처 의문을 제기할 수가 없었는데, 이 책을 쓰시면서 독자를 위해 좀 더 친숙하고 편하게 쓰실 수는 없었는지 궁금하다.

윤여일 저자 : 어떤 글을 쓸 때 결정하게 되는 것은 글의 주제와 소재뿐만이 아니라, 감정상태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우울한 책이다. 여행기를 연재할 때는 일주일 동안 다녔던 여행을 상상하며 글을 쓰니 즐거운 감정상태였는데, 『오늘의 문예비평』에 글을 쓸 때는 어떤 다른 감정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우울한 정서였다. 글에 여백을 두고 싶지 않아 의식적으로 글을 썼다. 니체의 글쓰기 방식 중에 접속어와 함께 연결되는 세계와, 형상을 만들어내는 글쓰기 방식이 있는데 니체를 흉내내고 싶었다기 보다, 무언가 한 문장의 옆의 문장 하나하나를 다 살리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힘들었다. 문장을 써내면서 여백에 해당하는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표현을 없애며 써보고 싶었다.

 

독자2 : 이 책은 난해하다. 글을 쓰는 작가는 아니지만 글을 쓰는 데 있어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 첫문장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문장, 한문장에 있어서 어떤 단어를 선택할까 고민을 많이 하는데 몇줄씩 고민하게 된다. 길을 가다가도 떠올리며 메모하고는 하는데, 추상적 언어로 구체적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 글은 솔직히 이해가 잘 안되었다.

윤여일 저자 : A란 주제에서 글로 풀어내고자 하는 B지점이 있을 때, 나는 아주 좁은 걸음으로 가고자 한다. 그 좁은 지점을 열 문장으로 써보고 싶었다, 라는 의미에 가까웠다. 사고의 절차와 표현의 절차를 어디까지 표현해 볼 수 있는가를 말하고 싶었다. A와 B사이가 먼 거리여야 했다. 둘 사이가 연관성이 없는데 논리적 비약이 될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다리를 놓아보는 것이다. B로 가지 못하고 A'나 A''라는 방식으로 관성화되는 부분이 많기에 그런 부분을 충분히 경계하고 싶었다. 그래서 돌들을 까는 방식으로 문장을 배치해보려 한 것이다. 문장을 촘촘하게 하여 이론적인 증거를 들거나 사례를 들지 않고 이론적인 표현만으로 글을 구성한 것이다. 이는 첫 번째 독자분의 질문의 답이기도 하다.

사례로 들지 않고 글을 쓴 이유는 이 책을 쓰기 전의 글이 사실 모두 사례였다. 공감대를 형성하기에는 사례만큼 좋은 것이 없지만, 번역불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구체적 사례를 들지 않았다. 원전인 내 자신의 표현만으로 글을 써보고 싶었다.

 

독자 3 : 신체에 남는 연구가 무엇인지 답변해 달라.

윤여일 저자 : 다케우치 요시미는 루쉰이 말한 ‘挣扎(쟁찰)’[zhēngzhá]이라는 용어에 대해 투입하다, 끄집어내다 정도로 표현해냈는데, 이는 글을 쓰고자 하는 대상에 자신을 투입해서 자신을 던지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신체에 남는 연구라고 하는 것은 이처럼 글을 쓰는 대상과 자신의 거리를 어떻게 두는가에 있다. 글쓰기마다 문체가 달라질 수 있는데, 나는 줄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글쓰기 방식을 선호한다. 이와 다른 종류의 글쓰기와 관련해서 끄집어내고 싶은 충동을 갖고 있다.

 

독자4 : 「이론, 비평, 사상」부분에 있어 이론과 비평사상에 관한 총괄적인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비평이라는 지점과 자기비평이라는 사상에 대해서 맥락을 풀어서 얘기해 주시면 좋겠다.

윤여일 저자 : 다케우치 요시미 선생은 1500편의 글을 발표했다. 매달 한편씩 발표를 했다치면 1400편 정도 쓰는 셈이 되는데, 선생은 생애 모든 시간을 글쓰는 데 바친 사람이다. 그 글을 읽는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고, 이런 사람의 모든 시간은 글을 쓰거나 읽거나 하는 등의 글과 관련되어 있다.

열아홉 편의 글을 써낼 때 자신에게 이정표가 되는 글이 있는 반면, 자신에게서 버려지는 글이 있다. 내 고민에서 그 물음을 가장 구체화되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글이 있으면 그것을 이어보면서 확인시킨다. 그 이외의 글은 몸에 남는 글이 아니다. 기능적인 글이랄까. 이정표가 남는 글이 생기면 사유의 지도를 완성할 수 있다. 이론적인 공부방식을 거부하는 이유는 좌표를 찾아가는 방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글쓰는 사람에게 글쓰기란 거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다. 잠시 머물러 비로소 발견되는 내 한계에 대해 노력했기 때문에 그 과정속에서 내 한계를 배우게 된다. 글쓰는 행위를 나는 ‘사상한다’라는 동사로 만들고 싶다. 글쓰기는 자기자신을 분열상태로 내모는 행위이다.

 

독자5 : 루쉰과 다케우치 요시미, 쑨거를 사상가로 꼽으셨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누구를 들 수 있을까?

윤여일 저자 : 잘 모르겠다. 그 세 명은 텍스트로 접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삶의 전체상황과 시대상황을 파악했기 때문에 사상가로 꼽을 수 있었지만, 어떤 분에 대해서 그 세 분 외에 그런 종류의 전체상을 그려본 적이 없고 연구해 본적이 없다. 다, 나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자기고백과도 같은 솔직한 글

전성욱 문학평론가 : 그런 분들을 만나기가 어렵고, 나도 윤선생님께 물어봤었는데 같은 대답을 하시더라. 사상을 하려는 자에게는 자신이야말로 진정 중요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대목이 있었다. 자기고백과 같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솔직한 글이다. 마지막으로 짧게 인사말 부탁한다.

윤여일 저자 : 솔직한 글은 아니다. 전성욱 선생님과 대화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대화를 하면서도 의식하는 사람은 앉아계신 여러분이다. 글쓰는 행위 또한 읽어주는 사람을 향해있다. 실제 글을 쓸 때도 솔직하게 글을 썼지만, 읽힐 것을 염두했기에 솔직하게 쓰지 못했다. 타인의 시선은 당연한 것이었으나 내가 애초에 했던 계산에 대해서는 조금 충분하지 못했다. 책의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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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복라면 2012.05.29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은 어렵지만(선생님이 워낙에 입말을 글처럼 하시는 바람에ㅋㅋ) 텍스트나 사진 배치가 오밀조밀해서 예쁘네요 첫 사진에 포샵한 문구까지 넣으시고! 역시 엘뤼에르님의 혈관에는 드~자이너의 피가 흐르고 있어요ㅋㅋㅋㅋ

  2. BlogIcon 박변덕 2012.05.29 13: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 이렇게 자세한 후기라니!)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일부러 책에 쓰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 행사를 통해 저자의 경험담을 듣지 못했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 건 힘들었을 겁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 BlogIcon 엘뤼에르 2012.05.29 1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좋았어요. 솔직히 책만으로는 알기 힘들었던, 내용을 다양한 사례를 제시해서 설명해주시니까 무슨말이지 알겠더라구요^^. 사실, 책이 저에게는 좀 낯설고 어려웠어요.ㅎ

  3. 윤여일 2014.07.19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랑 동명이인인 분 중에 사상학 쪽으로 유명하신 분이 계시네요.
    저는 공학 쪽 일을 하고 있고 "윤여일 박사"라고 검색하면 제가 더 많이 검색이 되는 것 같습니다. 동명이인을 보는 건 참 신기합니다.

    계속 건투를 빕니다.






  작년, 돌베개에서 『한글의 탄생』이란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인 학자가 일본인을 대상으로 일본에서 출간했던 책인데, 다시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재밌는 이력을 가진 책입니다. 이 책은 일본에서 학자들의 호평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한국어와 한글에 대한 지식이 없던 독자들까지 매료시키며 3만부 넘게 읽히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된 후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독자들에게 한글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불려일으켰죠. 때마침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와 함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러한 양질의 책이라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창원KBS 《TV문화공감》의 두 번째 코너 <책,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책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산지니출판사 강수걸 대표와 전성욱 문화평론가가 진행을 맡아, 토크형식으로 썰렁한 농담도 섞어가며(^^) 시청자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지요.

 *제작: 백승철, 최진영 *진행: 박소영 Ann *작가: 김세민 
http://changwon.kbs.co.kr/tv/tv_cult.html?pgcode=159


지난 1월 4일에 방송되었는데요,
 이 방송을 보시고 노마 히데키 선생님께서 답장을 보내오셨어요.  



최진영PD님


이번에는 무사히 받아보았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책을 깊이 읽어 주신 것 같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두 분 출연자 선생님께도 감사말씀을 꼭 전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분 인상이 아주 좋습니다!


중간에 들어간 그림도 효과적인 것 같아요.

애를 써 주셨군요.

진지한 내용이라 전체적으로 참 인상이 좋습니다.


근데 옛날 미술작가 부분은 저를 너무 칭찬을 하셔서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어떤 제목으로 몇월 며칠에 어디서 방송이 된 것인지

data도 알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서울에 와 있습니다.

공항에서 빌린 핸드폰입니다


가능하면 한번 통화를 하지요.

인하대학 대학원에서 월요일에 강연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노마 히데키 올림




  이 분 이력을 보면 꽤나 흥미로운데요,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는 화가였습니다. 두 차례의 국제 판화 비엔날레전에 참여하고 여덟 번의 개인전을 여는 등 미술작가로 왕성한 활동을 하며 1977년에는 현대일본미술전 가작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한국어와 한글에 매력을 느껴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급기야 대학에 들어가 한국어학을 전공하게 됩니다. 그것도 아주 열정적으로 파고들어, 한국어학, 일한대조언어학, 한국어 교육을 중심으로 음운론, 어휘론, 문법론과 언어존재론을 연구합니다. 1996~1997년에는 서울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특별연구원으로 있었고 2005년에는 대학민국 문화포장文化褒章을 수장受章하였습니다.
  한번 '꽂힌' 일에는 단칼에 뛰어들어 잡념도 없이 그 일에 푹 빠져드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보내오신 편지를 보면 활기찬 기운도 느껴집니다.



<바람에 흔들림 없는 뿌리 깊은 나무>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깊은 물>이라는 음양의 암유 暗兪는 우리 누구나가 지금 처음으로 체험하는, 한국어의 청초하고도 힘이 넘치는 선율이다. 천년의 시간을 겪으며 한자한문에 가려졌던 이 땅의 가장 깊은 곳에서 지금 샘물과 같이 넘쳐나는 이 땅의 말인 것이다. 우리의 눈 앞에 시각적으로 형상화된 <쓰여진 언어>로부터, 거룩한 왕조가 이 땅에 태어나려는 목숨의 고동이 분명한 <소리>로서 들려온다. 이 땅의 말만이 그려 낼 수 있는, 이 땅의 그윽함이자 옹훈함이다. 
(......)
이리하여 모어는 에크리튀르가 되고 <지知>가 되었다.  
-p.264


  예전 국어시간에 배웠던  《용비어천가》. 어떻게 이렇게 지루한 걸 125장이나 썼지? 하며 신기해 하기까지 했던 그 노래를 노마 히데키 선생은 이렇게 살아있게 만듭니다.
『한글의 탄생』을 읽으며 우리가 매일 입에서 만들어내는 소리의 비밀을 느껴보는 것도 재밌는 일일 겁니다. 


 
한글의 탄생 - 10점
노마 히데키 지음, 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돌베개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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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권 디자이너 2012.02.08 2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봤습니다.
    화가를 하다 한글을 공부하고 책까지 내시다니
    저자의 이력이 정말 흥미롭네요.


산지니 필자이며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인 전성욱 평론가가 제8회 봉생청년문화상(문학 부문)을 받았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평론집 <바로 그 시간>이 나왔을 때 첫책이라며 감격에 겨워하던 모습이 생생한데 벌써 2달이 훌쩍 지났네요. 책과의 인연으로 얼마전부터는 산지니 팀블로그에 '전성욱 평론가의 문화 읽기'  필자로도 활동하고 계신답니다. 

봉생청년문화상은 사단법인 봉생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사업으로 부산의 문화예술인에게 주는 상인데, 봉생문화상(제22회)은 나이 제한이 없지만 봉생청년문화상은 35세이하의 청년들만 받을 수 있는 상이라고 합다. 부산에 10년 이상 거주해야하는 것도 조건이구요. 1회부터 3회까지는 1인에게 시상하였으나, 2006년부터 문학, 공연, 전시 분야 3명에게 시상하고 있답니다.

그저께 전성욱 샘께서 출판사에 오셨는데 수상과 함께 상금을 받았다며 맛있는 점심을 사주셨어요. 시원한 복국을 먹으며 수상을 축하했습니다. 지난주 금요일 부산일보사에서 시상식이 열렸는데 '가문의 영광'을 축하하기 위해서 누님들이 많이 참석하셨다고 하네요.^^

전성욱 : 문학평론가. 1977년 경남 합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 때부터 지금까지 부산에서 살고 있다.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7년 봄 계간 '오늘의문예비평'을 통해 비평가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은 몇 개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봉생문화> 겨울호에 실린 제8회 봉생청년문화상 수상소감과 심사평을 소개합니다.

수상소감 :
읽고 또 쓴다는 것, 그것은 진정으로 즐거운 마음에서 하는 일이지만 언제나 외로운 일이다. 인생의 반 고비 나그네 길에서,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깊이 외로움 속에서 홀로 방황해 왔던가. 그러나 그 외로움이 단지 절망은 아니었다. 문학 연구자로서 또 비평가로서 내게 주어진 소임은 읽고 느끼고 생각하며, 말하고 써서 논쟁을 촉발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들을 거치면서 나는, 분명 외로움 속에서 나왔을 그 누군가의 숱한 활자들에서 내 외로움의 깊이와 의미를견주어 살필 수 있었다. 그러니 문학이란 어쩌면 서로 외로움을 견디는 자들의 우정의 연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명을 떠받들어 모시는 봉생(奉生)의 정신이란 아마도 내 절실한 외로움의 통각으로 다른 이의 외로움에 공감하는 뜨거운 사랑일 것이다. 그 사랑에 성실한 비평가로 사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봉생의 소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상을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린다. 더 깊이 외로워하고 더 많은 외로움들과 만나라는 당부로 받아들인다.
-전성욱

심사평 :
비평은 작품이 안고 있는 의미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해 그것의 이해와 해석이 가능해지도록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지적 작업이다. 그것은 대개 비평가의 미적 진정성과 미시적 안목에 곧바로 닿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평론가 전성욱의 비평적 시각은 남달리 두드러진다. 세상을 보는 눈이나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오랜 기간 수련의 흔적과 인간적 깊이를 확인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 낱낱이 주는 이미지로서 깨어 있는 즉 열려 있는 시각도 청년문학상 수상으로서 심사위원들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음을 밝힌다. 그리고 아직 미흡한 부분들은 전성욱 평론가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발전 가능성의 여지로 인정하기로 했다.
아무튼 심사위원들은 청년문학상 수상자로서 평론가 전성욱의 선정에 모두가 합의하면서 그의 비평작업을 각별한 관심으로 지켜보기로 했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강남주(시인), 고현철(문학평론가), 김창근(시인), 박홍배(문학평론가), 신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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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시간 - 10점
전성욱 지음/산지니
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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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여강여호 2010.12.08 15: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봉생청년문화상. 처음 알고 갑니다. 행복한 시간 되십시오

    • BlogIcon 산지니북 2010.12.08 17: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여강여호님.
      솔직히 저도 출판사에서 일하기 전까진 이런 상이 있는줄 몰랐거든요.^^
      열심히 일하는 젊은 문화예술인들을 격려하는 상이니 참 좋은 상인것 같습니다.




가을이 깊어간다. 날이 차가워지고 어두운 시간이 길어지는 기온의 변화가 나의 몸과 마음에도 큰 소용돌이를 불러일으킨다. 우주의 변화는 이처럼 내 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런 때는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지고 따라서 마음이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쉽게 말해 나는 요즘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심란하다. 이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무엇에라도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할 것만 같다. 나는 때마침 공연 중인 연극 <바보각시>를 관람하는 것으로 마음을 추슬러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본다.


2010년 10월 30일 저녁 7시 30분. 후배들과 저녁을 함께 먹고 거제에 있는 가마골 소극장에서 <바보각시>를 관람했다. <오구>에서부터 비교적 최근의 작품인 <이순신>에 이르기까지 이윤택의 작품들을, 연희단 거리패의 공연을 자주 관람해왔던 나에게 역시 이 작품은 그 낯익음, 어떤 익숙함으로 다가왔다. 전통과 현대를 교섭시키려는 이윤택의 열정은 <바보각시>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맹인 악사의 노래와 하모니카 연주가 서구 전통극의 코러스를 대신한 것이라면 극 전체의 구조는 씻김굿을 본뜬 것이다. 극의 절정부에서 현대인의 악마적 본성을 표현할 때는 전통 연희인 탈춤의 형식을 가져왔다.


이 작품은 전통극의 형식을 현대화하면서 연극이 초연되었던 1993년 당시의 구체적 정황을 담아내려 애쓴다. 이른바 동구권이 몰락하면서 냉전이라는 이념적 대립구도가 해체되기 시작하던 때, 누군가에게 역사는 종말을 고한 것처럼 보였고 이제 세상은 자본의 신천지 속에서 즐거운 한 때를 열어갈 것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세상의 그런 변화는 세계의 종말이라는 묵시록(Apocalypse)으로 여겨졌고 이제 삶은 절망으로 기울어갈 것이 분명해 보였다.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만이 남은 듯 보였던 그 때에, <바보각시>는 철지난 이념이나 세속화된 종교 따위가 가짜 희망을 내세우며 판치는 비루한 세태를 냉소하면서 초연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 그 냉소는 초연 당시의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이제 그런 식의 냉소는 하나의 상투적 유형이 되어버렸다.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문화적 교섭이라는 발상 역시 지금에 와서는 그리 신선한 무엇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보각시>는 한 시대의 특수성 안에 머물고 만 작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미안하지만 내가 본 <바보각시>에서는 초연 당시의 시대적 조건을 보편으로 비약시킬만한 연극적 에너지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다만 나는 이 연극이 예수의 수난사를 바보각시의 수난사로 재연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인류의 원죄를 자기의 죽음으로 대속함으로써 진정한 사랑의 실천을 보여준 예수의 수난사는, 이 연극에서 타락한 현대인들의 속악한 욕망과 더러운 죄악들을 제 몸 안에 잉태해 사산하는 바보각시의 수난사로 다르게 되풀이된다. <오구>의 대단원에서 상여가 나가면서 현세에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것처럼, 죽어서 사산하는 바보각시의 수난은 마지막에 이르러 장례와 함께 인간들의 그 모든 죄악을 씻어간다. 이런 연극적 형식은 몇 달 전 보았던 <창작뮤지컬 이순신>(이윤택 작, 연출; 2010년 6월 11일 저녁 7시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에서도 이어졌던 것 같다. 그 연극의 대단원이 임진왜란이라는 대재앙을 이순신이라는 한 개인의 죽음으로 치환하여 해소하는 씻김굿의 형식이었던 것처럼, 바보각시의 죽음은 이 세상의 모든 폭력과 패악을 대속하고 있는 것이다.


연극의 마지막은 ‘우리 모두 사랑합시다’라는 맹인의 대사로 끝난다. 그러므로 <바보각시>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찬양했던 신약의 복된 소리를 한국적 감수성으로 다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약의 협애함을 깨뜨리고 보편의 사랑이라는 신약의 복음으로 비약할 수 있었던 기독교라는 종교와 이 연극 <바보각시>를 서로 대등하게 맞세울 수 있을까? 예술로 종교를 넘어서고 싶었던 이윤택의 예술가적 열정은 아직 종교의 보편이라는 위대한 경지를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뜨거웠던 것은 아닐까? 내면적 성찰이 사회적인 정의로 이어지거나, 자기에 대한 탐구가 보편적인 것으로 일반화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어려운 일을 결국 해내고야 만 사람들을 일컬어 기꺼이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깊어가는 가을, 지금 나의 이 심란한 마음은 개인적인 우울을 넘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위대한 각성의 계기로는, 그러니까 진정한 멜랑콜리에는 미달하는 것이다. <바보각시>를 보고 나는 생각한다. 보편에 이르는 길은 참으로 멀고 아득하구나.

Posted by 전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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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와의 만남>이 어느덧 16회를 맞이하였네요. 한 달 한 달 쌓이다 보니 어느덧 1년이 훌쩍~~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이번 <저자와의 만남>은 『바로 그 시간』의 저자 전성욱 평론가입니다.


전성욱 평론가는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아주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비평가인데요. 『바로 그 시간』은 전성욱 평론가의 첫 평론집으로 주류적인 담론에서 눈길을 주지 않았던 소수적인 문학들의 탐구를 통해 다수적인 것의 횡포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소수적인 것의 참된 의미를 일깨우고 있는 평론집입니다.

책소개 더 보기

시작하기 조금 이른 시간부터 제자, 선후배 동료 분들이 많이 오셔서 분위기가 후끈 하였습니다. 꽃다발을 들고 오신 분도 있고 이런저런 정담이 오가는 분위기에서 선생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도 문학평론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은 외롭다”며 먼저 김곰치 소설가의 말을 빌려 첫 말문을 여셨는데요. 그래도 오늘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자기는 참 행복하다며 약간 들뜬 표정으로 ‘독자들과의 만남’을 시작하셨습니다.

첫 책이라 느낌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책을 처음 받은 날 그 감동을 온전히 만끽하고 싶은데 김곰치 소설가에 의해 무참히 깨졌다고 하시네요. 강제로 끌려 나가 책도 3권이나 강탈당하시고 몇 시간 동안 같이 말벗을 하느라 그 느낌을 만끽할 수 없었다며 투정하셨지만 은근히 첫 책의 기쁨과 김곰치 소설가와의 친분을 자랑하시네요.

평론가라 그러신지 아주 달변이시더군요. 어쩌면 재미없게 흐를 수도 있는 주제인데 선생님 특유의 유머로 시종일관 재미있게 진행되었답니다. 나름 명언(?)도 제법 나왔는데 저의 기억력을 한탄합니다. 이런 재미는 현장에 오셔야 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두어 개 생각나는 것이 “세상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문학하는 사람이고 그 변화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문학”이라는 말. 그리고 일부 특정 작가나 작품에만 모든 논의가 집중되는 현 세태를 비판하시며 소수문학의 조명도 필요하며 이를 통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유의미한 의미를 조명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네요.

무슨 스타와의 만남도 아니고 평소엔 없는 포토타임까지 가지며 제16회 <저자와의 만남>을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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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시간 - 10점
전성욱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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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전성욱의 첫 번째 평론집 『바로 그 시간』이 출간되었습니다. 전성욱 평론가는 2007년 봄 계간 『오늘의문예비평』을 통해 비평가의 길로 들어선 이후 현재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다방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평론가입니다. 얼마전부터 저희 블로그 <전성욱 평론가의 문화 읽기>(링크)의 필자로도 열심히 활동중입니다.(덕분에 블로그 글쓰기에 대한 저희 부담이 많이 줄었지요^^) 그저께 화요일 책이 출판사에 도착해서 연락을 드렸더니 한달음에 달려 오셨네요.  첫책은 누구에게나 설레임이지요. 표지 색감도 좋고 책이 산뜻하게 잘 나와서 필자, 편집자, 제작자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평론집 『바로 그 시간』은 주류적인 담론에서 눈길을 주지 않았던 소수적인 문학들의 탐구를 통해 다수적인 것의 횡포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소수적인 것의 참된 의미를 일깨우고 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낭만적으로 동경하는 모든 사유의 반대편에서 사유하는 전성욱 평론가의 글을 통해 모순으로 가득한 이 세계와 적대하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젊은 평론가의 치열한 열정을 만나볼 수 있다.

『바로 그 시간』책소개 더보기


책 뒷표지에 실린, 필자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담뿍 담겨 있는 김곰치 소설가의 글이 인상적이어서 소개해봅니다.

전성욱은 내 후배다. ‘문학판’이라는 같은 업계에 있고, 나보다 대여섯 살이 어리니까 후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후배 같지가 않다. 친구 같은 느낌이다. 알고 지낸 지 3년이 되었다. 동년배 친구 같은 느낌이 드는 까닭은 뭘까. 첫째, 사람됨이 나보다 더 씩씩하고 튼튼하다. 둘째, 문학에 대한 믿음이 견실하다. 셋째, 나보다 책을 더 많이 읽었다. 즉 아는 게 많다. 음, 그러면 친구가 아니라 선배가 아닌가. 성욱과 만나며 나는 많이 배우고 많이 자극받는다. 작가에게 꼭 필요한 훌륭한 문학평론가가 아닌가.

이 책은 전성욱의 첫 책이다. 아무도 문학평론을 읽지 않는 시대에 책은 외롭다. 외로움이 얼마나 깊어야 새 언어가 견디지 못하고 탄생되어 나올까. 그가 한국의, 아니 세계의 작가들에게 꼭 필요한 문학평론가가 되기를 바란다. 한 명의 올바른 문학평론가가 세계문학의 왜곡된 지점을 바로잡는다. 그의 글이 작가들의 정신병을 치료하기를 바란다. 작가를 사랑하고 독자를 사랑하는 그의 빛나는 글쓰기를 나는 지지한다.
-김곰치(소설가)

문학평론가. 1977년 경남 합천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열두 살 때부터 지금까지 부산에서 살고 있다.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007년 봄 계간 『오늘의문예비평』을 통해 비평가의 길로 들어섰다. 지금은 몇 개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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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번째 <저자와의 만남>- 전성욱 평론가

바로 그 시간 - 10점
전성욱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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