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더, 오래>



인생에서 누구나 한번은 환승해야 할 때와 마주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직장이나 일터에서 퇴직해야 하죠. 나이와 상관없이 젊어서도 새로운 일, 새로운 세계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한번 실패한 뒤 다시 환승역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요. 인생 환승을 통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한 경험을 함께 나눕니다. 

<편집자>



2005년 운영하던 학원을 정리하고 보험영업에 뛰어들었다. 남편의 부도로 인해 가정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무형의 상품을 판매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기본에 충실하고 아이들과 남편을 생각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새로 간 구두 굽이 며칠 되지 않아 또 갈아야 할 정도로 걷고 뛰었다. 얼마 후 가정은 안정되었고 일을 시작하며 세웠던 목표도 이뤘다. 무엇보다 값진 것은 일을 통해 만나고 교류해 온 사람들과의 시간이 소중하고 보람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들을 보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지침을 세우기도 했고 그들을 보며 끊임없이 나를 연마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내면의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꿈꾸었던 국문학도로서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도 있었다. 그래서 수필을 쓰게 됐다. 수필을 쓰며 내면의 상처가 치유됨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시간에 대한 사유를 통해 과거와 화해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저자와의 만남의 하이라이트. 수필집 중에서 딸아이에 대한 글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정문숙]

저자와의 만남의 하이라이트. 수필집 중에서 딸아이에 대한 글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 정문숙]



글을 쓰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수입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주체할 수 없이 깊이 빠지게 되었다. 통장의 잔고는 줄어도 만족감은 그 이상으로 커졌다. 2015년, 50세의 나이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소설을 공부하게 되었다. 2017년에는 그동안 써 놓은 글을 모아 책으로 엮었다.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라는 수필집이다. 

  

대학원을 다니며 조교 일을 병행했다. 직장과 학업 조교 일이 힘들었지만 모든 일이 꿈처럼 행복했다. 대학생들에게 글쓰기를 지도하는 일이었는데 내 아이들 또래라서 더 깊은 애정을 가지고 챙겼으며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하고 진로를 찾아가는 아이들을 보며 보람을 느꼈다. 



2017년,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사로 근무하며 찍은 사진. [사진 정문숙]

2017년, 동아대학교 부민캠퍼스 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사로 근무하며 찍은 사진. [사진 정문숙]



수필집을 낸 후, 학교 도서관에서 리빙 라이브러리도 하게 됐고 수필에 대해 강의도 하고 있다. 내심 작가의 길에 대한 열망이 더 크지만 현실 문제를 무시할 수는 없기에 심기일전해서 직장에서도 열심히 뛰고 있다. 작가의 길로 들어선 지 4년째, 직장생활과 작가의 길, 두 마리 토끼를 좇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소설을 쓴다. 처음 소설을 쓰고자 했던 이유는 이 시대 어머니 아버지의 시대적인 상처와 아픔, 그리고 치유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욕심을 내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소설집 발간을 앞두고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쓴다. 

  

또 9시까지 사무실에 출근해 업무를 본다. 바쁜 하루를 보낸 후, 집으로 돌아와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나만의 방에서 아침에 쓴 글을 다시 이어 쓴다. 앞으로 내 삶은 또 몇 번의 환승을 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환승역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면 또 다른 환승이 두렵지 않으리라 믿는다. 


서영지 기자



정문숙 수필집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정문숙 지음 | 214쪽 국판  | 13,000원 | 978-89-6545-458-8 03810

 

일상에서의 단상, 여성으로서의 삶, 가족에 대한 이야기, 늦깎이 작가로서의 이야기를 담은 이 수필집은 구성과 내용의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저자는 다소 힘에 부쳤던 과거의 일들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내며 비슷한 처지이거나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 10점
정문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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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정문숙 작가를 만나다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은 집에 대한 이야기다. 

한 권의 책은 집과 같다. 언어로 짓는 집. 

길을 따라 들어선 마당을 지나 툇마루 옆의 작은 방.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꿈을 꾸었다. 

그곳에서 오롯이 혼자였고, 우리였고, 모두였다. 

그래서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은 나만의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지난 금요일, 부산문화콘텐츠콤플렉스 4층 카페테리아에서 83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이 열렸습니다. 이번에 함께 이야기나눠주신 주인공은 지난 12월 첫 책을 출간하신 정. 문. 숙. 작가님입니다. 

버지니아 울프의 선언을 떠올리게 하는 책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은 정문숙 작가님의 '산문집'입니다. 정문숙 작가님은 뒤늦게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여 소설을 공부하고 2015년 수필 「천사가 머무는 시간」으로 공식 지면에 글을 쓰시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그간의 산문들을 차곡차곡 모은 작가님의 첫 책이기도 하지요. 이러한 작가님의 글쓰기 이력 때문일까요. 책에 담긴 한 편 한 편의 글에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선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선언이 상징적으로 스며들어 있는 듯합니다.  




이 날의 메인 무대는 작가님에게 직접 듣는 '글쓰기와 삶'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첫 책의 의미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질문에 응한 정문숙 작가님의 솔직한 답변들이 매력적이었지요. 

작가님은 책의 서문에 자신의 글쓰기를 <치유와 희망의 글>이라 정의내려주셨는데요. 이날 작가님의 목소리를 통해 '치유'와 '희망'이 무엇인지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글을 쓸 수 있도록 정문숙 작가님에게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되어주었던 것은, 유년을 포함한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삶(일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공통 분모는 바로 '가족'이었습니다.  

총 4부로 이루어진 이 책에서 정문숙 작가님은 '일상적인 소재'를 빌려 유년시절에 대한 회상과 현재의 삶을 가감없이 풀어내주셨습니다.  특히 삶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는 가족관계에 깊은 애착을 갖고 쓰신 첫 책에는 가족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래서였을까요. 한 권의 책을 엮고난 이후 기쁨과 곤란함이라는 상반된 기분을 느끼기도 하셨다는 작가님의 후기는 더욱 솔직하게 다가왔습니다.  



'허구'가 가미되지 않은 나와 가족에 대한 정문숙 작가님의 일상의 글쓰기. 이 날 작가님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곳곳에서 많은 분들이 모여주셨습니다. 작가님의 글에서 빠질 수 없는 가족이란 이름의 소중한 사람, 오랜만에 만나는 고향 친구들, '글쓰기'를 통해 인연을 맺은 지인분들, 무엇보다 작가님의 첫 책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읽어주신 특별한 독자분들이 모인 자리였지요. 각자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자리였기에, 혼자 읽을 때 알 수 없는 묘미를 이 자리에서 다함께 나누고자 작가님께서 직접 책의 일부분을 낭독해주셨습니다. 물론, 이책에서 '가장 애착을 갖는 작품'이라는 소개와 함께요.   



오늘은 식빵을 만든단다. 발효 과정이 까다로워 초보자들에게는 아주 어려운 과제라고 한다. 어찌 해결을 할 것인지. 덩달아 조바심을 내며 자꾸만 주방을 기웃거리게 된다. 역시 다른 빵을 만들 때보다 손이 더 바쁘다. 한때 저 손은 피아노 건반 위에서 하느작거리던 손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고운 선율을 자아내는 것 외에는 저 두 손이 동분서주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유난히 가늘고 길었던 손가락은 검고 흰 건반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 타이머가 울린다. 중간발효가 끝나자 둥근 반죽의 등에 사선으로 칼집을 내고 빵틀에 넣어 또 발효를 시킨다. 온도를 맞춰놓고 시간을 재고 있다. 딸은 이 시간이 '천사가 머무는 시간'이라며 행복해한다. 

(...) 과정을 돌아보며 결과를 기대하는 이 시간이야말로 빵 만들기의 백미라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정리해놓고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한다. 동틀 무렵, 꽃들이 피어나기 전 마지막 치장을 준비하는 듯 은은한 선율이 거실을 타고 흐른다. 빵이 익기를 기다리며 연주하는 딸의 모습 위로 백의의 천사가 되어 바삐 움직이는 딸의 모습이 겹쳐진다. 세상에 나아가서도 악기가 낼 수 없는 그 이상의 감동을 선물하는 딸이기를 기도하며 가만히 지켜보는 지금이야말로 딸의 어깨 위로 천사가 머무는 시간이다. 

- <천사가 머무는 시간> 중에서



정문숙 작가는 첫 책을 펴내며 한 권의 책을 '언어로 짓는 집'에 비유해주셨습니다. 작가는 말과 글로 책을 지으며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치유해나가고 거창한 어떤 의미가 아닌 나와 내곁의 가족을 회상하고 바라보며 일상의 희망을 담습니다. 그 집에 초대된 독자는 작가가 지어놓은 집을 나름대로 부유합니다. 독자들은 제각각 살아오며 갖게된 삶의 시각을 통해 작가의 글이 탄생한 '툇마루 옆의 작은 방'을 이리저리 둘러봅니다. 언어로 지은 집에서 '오롯이 혼자'이지만 '우리였고, 모두였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 

"내 안에서 흘러나와 세상으로 나온 글은 이제 독자에게로 옮겨진다. 어떻게 읽히고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문제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 된다. 한 편 한 편, 읽고 난 후, 가슴에 예쁜 무늬 하나 그려지는, 다시 힘을 얻고 지금을 살아낼 수 있는 위안의 글이 되었으면 한다. (책머리에)"고 쓴 작가의 말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다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날의 만남을 더욱 멋있게 장식해주셨던 또다른 주인공! 앞으로 더 좋은 글을 많이 써주면 좋겠다는 따뜻한 당부의 말과 함께, 멋진 기타연주를 세 곡이나 들려주셨던 도창현 클래식 기타리스트입니다. 작가님의 오랜 지기이기도 하시지요^^ 이날 연주해주신 목록을 소개해드리며 83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setlist

* Paul Mauriat, <El Bimbo>

* Jean François Maurice, <28° à l'ombre (Monaco)>

* maksim mrvica, <exod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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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의 이야기 

돌아오는 금요일, 산지니 독자들께 찾아가는 주인공은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정문숙 작가입니다. 


클래식 기타 연주로 여는 이번 행사에서는 

늦깎이 작가로 데뷔하여 '치유와 희망'의 글을 부지런히 써나가는 

작가의 삶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봅니다.

따뜻한 자리에 독자분들을 초대합니다. 







 

정문숙 수필집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늦깎이 여성 작가 정문숙의 첫 수필집. 일상에서의 단상, 여성으로서의 삶, 가족에 대한 이야기, 글을 짓는 작가로서의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는 다소 힘에 부쳤던 과거의 일들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내며 비슷한 처지이거나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 수필집을 '치유와 희망의 글'이라고 말한다. "내 안에서 흘러나와 세상으로 나온 글은 이제 독자에게로 옮겨진다. 어떻게 읽히고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문제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 된다. 한 편 한 편 읽고 난 후, 가슴에 예쁜 무늬 하나 그려지는, 다시 힘을 얻고 지금을 살아낼 수 있는 위안의 글이 되었으면 한다." 

작가는 글쓰기의 과정을 '바둑을 복기하듯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글을 쓰면서 '덮어버렸던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 마음을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또 다른 누군가를 안아줄 채비를 마친 작가의 진솔한 고백과도 같다. 

 

 

정문숙 작가

1967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다. 1990년 경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2018년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졸업하였다. 이후 동아대학교 지식나눔교실 글쓰기 멘토로 근무했다.


수상 내역

2015년 주변인과 문학 신인상 수상 「천사가 머무는 시간」

생명문학공모전 수상 「봄, 이부탐춘을 다시 읽다」

모래톱문학상 수상 「까치발을 내려놓고」

근로자 문학제 동상 수상 「숫돌」

2016년 근로자 문학제 은상 수상 「청어의 꿈」

문향 여성문학제 장려 수상 「사랑니」

2017년 직장인 신춘문예 당선 「까치발」

제3회 주변인과 문학 신인상 수상 「나무 한 그루」

제7회 가족사랑 수기 공모전 당선 「며느리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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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정문숙 수필집

 

 

 

 

 

▶‘치유와 희망의 글’
늦깎이 작가의 삶과 글, 그리고 예술

 

늦깎이 여성 작가 정문숙의 첫 수필집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출간되었다. 늦은 나이에 글을 쓰기 시작해 크고 작은 공모전과 문학상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꿈을 키워온 저자의 수필들이 담겨 있다.
일상에서의 단상, 여성으로서의 삶, 가족에 대한 이야기, 늦깎이 작가로서의 이야기를 담은 이 수필집은 구성과 내용의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저자는 다소 힘에 부쳤던 과거의 일들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내며 비슷한 처지이거나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는 이 수필집을 ‘치유와 희망의 글’이라고 말한다.

 

내 안에서 흘러나와 세상으로 나온 글은 이제 독자에게로 옮겨진다. 어떻게 읽히고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문제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 된다. 한 편 한 편, 읽고 난 후, 가슴에 예쁜 무늬 하나 그려지는, 다시 힘을 얻고 지금을 살아낼 수 있는 위안의 글이 되었으면 한다. -「책머리에」중에서

 

저자는 글쓰기의 과정을 ‘바둑을 복기하듯 지난 시간을 뒤돌아보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비록 그 과정이 힘든 시절을 상기시켜 쉽지 않았음에도 글을 통해 ‘덮어버렸던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이 마음을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고 고백한다.
이제 개운하게 풀린 마음으로 또 다른 누군가를 안아줄 채비를 마친 정문숙 작가의 진솔한 고백이 담긴,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다.

 

 

 

▶ ‘퀴퀴한 책 곰팡이 냄새가 나는 어두운 골방에 천재 소녀가 있다.’
    이 땅의 모든 예술가들에게

 

표제작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은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 『자기만의 방』을 모티브로 삼았다. 사회적 인습과 통제로 인해 문학적 한계를 겪을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여성 작가들에게 ‘매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을 줘야 한다고 호소했던 버지니아 울프. ‘주디스 셰익스피어’라는 가상의 여성을 통해 당시 여류 작가들이 처했던 상황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던 울프의 글을 인용하며 저자는 오늘, 바로 이 땅의 예술가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비교적 빈곤 계층이 많이 사는 정체 지역인 낙후된 구도심 지역에 정착해, 활기를 불어넣으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주민을 몰아내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중략) 서울 홍익대학교 인근과 신사동 가로수길, 경리단길 등은 가난하지만 개성 있는 예술가들이 모여 독특한 예술 공동체 문화를 만들었던 곳이다. 이 지역에서만 누릴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던 카페와 상가들이 유명해져 유동인구가 늘어났다. 사람들이 몰리자, 기업형 자본들이 물밀 듯이 들어와 임대료를 높여놓았다. 이에 수입이 적은 가난한 예술가나 기존 거주자들을 몰아내고 있다.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중에서

 

외부의 압박에 의해 터전에서 밀려나는 우리 주변의 예술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만의 방’이 아닐까. 버지니아 울프와 동시대에 살았던 여성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본의 사회에서 가난한 예술가들은 여러 형태의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정문숙 작가는 과거의 여성들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의 예술가들에 이르기까지 ‘자기만의 방’이 절실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 나와 내 곁의 모든 사람들,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 모두에게

 

이렇듯 작가의 길에 들어서며 느낀 현실, 글 쓰는 생활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글들은 언뜻 무거운 주제를 다룬 글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나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전하는 위로이자 응원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이 수필집 전체를 꿰뚫는 주제의식은 ‘위로’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밀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저자 본인이 겪었던 고된 시간들에서부터 나온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날도 남편은 몇 마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협력 업체의 부도로 남편의 회사가 직격탄을 맞았단다.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더미에 압사를 할 지경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빚 독촉 전화는 공포였고, 가재도구에 붙어 있는 빨간 딱지를 보는 일은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두어라, 신의 뜻대로」 중에서

 

괴롭고 아픈 기억을 글로 담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저자가 힘든 기억들을 담담하게 끄집어내는 것은, 아픔을 내보이고 토로하는 것이 하나의 치유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걸 집어삼킬 기세로 덮쳐온 악재도 시간과 함께 지나가고 사그라진다. 억겁의 세월을 이겨내는 동안 우리 곁에는 과연 누가 함께하고 있을까? 힘겨운 시간을 가족과 함께 견디고 일어선 저자는 이제 눈앞에 닥친 악재를 혼자 짊어지고 가는 누군가를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내보인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p.18.  닫힌 문 사이로 학생들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고 늦은 오후의 햇살이 버티컬 사이로 비집고 들어올 때 즈음 컴퓨터를 다시 켠다. 두 평 남짓한 곳, 나만의 방에서 또 다른 내일을 꿈꾸며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주디스 셰익스피어를 만난다.

 

p.77.  막 부풀어 오르기 시작할 때 김을 빼버렸으니 딸의 꿈은 제대로 된 발효의 과정을 거칠 수 없었던 셈이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큰 좌절과 절망의 늪을 허우적거렸을까. 돌이켜보니 딸의 마음을 알고도 아는 체할 수 없었던 지난 시간이 명치끝으로 묵직하게 얹힌다.

 

pp.140-141. 어머니와 같이 울어주던 자귀나무 꽃이 다시 흔들린다. 간다는 작별의 말도 못하고 먼저 간 아버지와 잘 가라는 이별의 손짓도 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애끓는 조우가 자귀나무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p.190.  나를 열광케 했던 그녀가 다시 내 안에서 꿈틀댄다. 나는 이제, 문학이라는 또 다른 꿈을 찾는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려고 한다. 국어강사 생활을 하며 짬짬이 써놓았던 습작 노트를 다시 꺼내어본다. 오래 전 접어두었던 나의 꿈의 조각들이 반짝인다. 새로운 도전 앞에 다시 한 번 상처 많은 번데기가 되어볼 작정이다.

 

p.209.  글 앞에 앉으면 자주 지나간 시간을 돌이켜보게 된다. 되돌아보면, 나는 글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자석에 끌리듯 그 언저리를 맴돌았던 것 같다. 감았던 실타래를 풀어내듯 지나온 길을 되돌아 걸어가 본다.

 

pp.115-116. 내가 부딪히고 넘어지며 나를 깎는 동안 눈과 귀를 온통 내게 걸어놓고 지내셨을 아버지. 칼이 무뎌질세라 수시로 숫돌 앞에 앉던 아버지를 이제야 제대로 읽는다. 뒤늦은 자책이겠지만, 한때 내가 철없이 쏟아냈던 말의 칼날들이 아버지를 아프게 하지 않았기를 빌어보는 날이다.

 

 

저자 소개                                                        

정문숙

1967년 경남 산청에서 태어났다. 1990년 경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고 2018년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졸업하였다. 이후 동아대학교 지식나눔교실 글쓰기 멘토로 근무했다.

 

수상 내역
2015년 주변인과 문학 신인상 수상 「천사가 머무는 시간」
생명문학공모전 수상 「봄, 이부탐춘을 다시 읽다」
모래톱문학상 수상 「까치발을 내려놓고」
근로자 문학제 동상 수상 「숫돌」
2016년 근로자 문학제 은상 수상 「청어의 꿈」
문향 여성문학제 장려 수상 「사랑니」
2017년 직장인 신춘문예 당선 「까치발」
제3회 주변인과 문학 신인상 수상 「나무 한 그루」
제7회 가족사랑 수기 공모전 당선 「며느리 가면」

 

 

목 차                                                            

 

더보기

 

 

 

정문숙 수필집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정문숙 지음 | 214쪽 국판  | 13,000원 | 978-89-6545-458-8 03810

 

일상에서의 단상, 여성으로서의 삶, 가족에 대한 이야기, 늦깎이 작가로서의 이야기를 담은 이 수필집은 구성과 내용의 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띠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저자는 다소 힘에 부쳤던 과거의 일들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내며 비슷한 처지이거나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 10점
정문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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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안녕하세요, 여러분

병아리 편집자입니다 :)

얼마 전 산지니에서 나온 신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관련 기사가 나왔네요.

 

일상의 이야기, 인생의 그늘, 사람들의 이야기를

꼭꼭 접어 넣은 것처럼 알차게 채워진 수필집이랍니다.

 

여성으로서 느끼는 삶, 늦깎이 예술가의 눈으로 보는 세상 등

의미 있는 내용들도 들어 있답니다.

 

마음까지 차가워지는 추운 겨울,

이불 속에서 책 한 권 읽으며 마음까지 녹여보는 건 어떨까요?

 

 

***

 

[이 주의 새 책] 김상욱의 양자 공부 外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 

표제작을 비롯해 '안젤리나' '숫돌' '봄, 이부탐춘을 다시 읽다' 등 책에 실린 수필들은 일상에서의 단상, 여성으로서의 삶, 가족에 대한 이야기, 늦깎이 작가로서의 이야기 등을 담담한 문체로 풀어낸다. 책 머리말에서 저자는 '치유와 위안의 글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정문숙 지음/산지니/214쪽/1만 3000원.

 

부산일보 백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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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