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되멍 모두 행복해질 거라 믿었주. 

경헌디 사름만 다 죽어 불고..."


뒷말을 잇지 못하는 김 노인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하다. 문식이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빈 지게를 어깨에 짊어진 박도 침묵을 지킨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나무의 가지며 풀이 흩날린다. 힘없이 이리저리 휘돌리는 이름 없는 잡풀처럼 제주 민초들의 삶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_<레드 아일랜드> 본문 중에서



2018년 4월 3일

Posted by 와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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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 추리 장편소설 『레드』 등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을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사랑받아 온

김유철 작가의 새 장편소설 『레드 아일랜드』가 출간됐습니다.  

 

  이 소설은 해방 전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대의 폭력과 상처,

그리고 그 속에서 변해가는 사람들의 운명을 다루고 있는데요.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외면하고 싶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상처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미 김유철 작가는 제주 4·3 사태라는 소재를 가지고

추리 소설 「암살」을 네이버 장르문학에 공개하여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죠!

 

이번 장편소설 『레드 아일랜드』는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 놓인 인물들과 현실적인 구성을 통해

1948년 4월 3일 제주를 다시금 바라보고자 합니다.

 

 

해방 이후 이데올로기의 늪에 빠진 제주, 

그 속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해방 후 하루아침에 변한 세상에 모두가 혼란스러운 제주, 사람들은 기대에 뒤따르지 못하는 해방의 현실로 인해 분노에 빠져 있다. ‘김헌일’ 역시 그런 제주의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그의 곁에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집안일을 봐주던 쇠테우리(목동) 친구 ‘방만식’이 있었고, 경찰과 군정의 비위를 맞추며 사업을 하는 형 ‘김종일’이 있다. 또한 김헌일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는 홍성수는 혜화정문학교를 중퇴하고 글을 쓰기 위해 제주까지 내려온 외지사람이다. 그는 제주에 머물며 28주년 3·1절 기념대회에서 발생한 경찰의  총격사건 등 심상치 않은 제주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지프에서 내려 연병장을 걷는 동안 홍성수는 철조망 안에 있는 노약자와 부녀자, 아이들을 보고 놀란다. 천막과 건물 안에는 그보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을 것이다. 사찰주임은 먼지바람이 일자 신경질을 부린다. 손수건으로 입과 코를 막으며 걷는 그에게 홍성수가 묻는다.
“무슨 죄를 지은 겁니까?”
“폭도들이오. 토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수용소 안이 비좁을 정도가 되었죠……. 아무튼 이 냄새엔 적응이 되지 않소. 지나다닐 때마다 이런 역겨운 냄새를 맡아야 하다니…….”
“노약자나 부녀자, 아이들이 많군요.”
(…)  건물 입구에 들어선 두 사람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현관 안으로 들어선다. 건물 입구에서 경계근무 중이던 군인이 사찰주임에게 거수경례를 붙인다. 1층 복도로 들어서는 홍성수의 몸이 움츠러든다. 이곳 어디에선가 서울에서 내려온 고문 전문가들이 제주도민들에게 끔찍한 고문을 자행하고 있을 것만 같다. _104~105쪽

 

 

 

변하지 않은 세상과 변해가는 사람들

 

  일제 말기, 김헌일 아버지의 요청으로 김헌일을 대신해 징용을 간 방만식은 죽을 고생을 한 후 해방과 동시에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어 가슴이 뜨거워진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후 마주하게 된 세상은 그가 꿈꾸던 모습과는 다르다. 이유도 없이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친구 김헌일의 도움으로 겨우 풀려나게 된 방만식은 세상에 회의를 느끼며 제주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혁명을 꿈꾼다.
  김종일이 악명 높은 서청과 육지 경찰 간부를 대동하고 마을에 나타나면서 그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김헌일 또한 그런 형이 못마땅하지만, 형의 아이를 가진 한석희가 집에 찾아오면서 온 가족이 오순도순 함께 사는 꿈을 꾼다.
  그 무렵 제주 곳곳에 일어나는 폭동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김종일은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떠나려고 하지만, 그날 밤 얼굴에 숯검정 칠을 한 사내들에게 김헌일과 함께 납치를 당한다. 심한 구타를 당한 뒤 끌려가던 중 그 사내들은 김헌일의 포승줄을 끊어주고 김종일만 끌고 사라진다.
  한편 홍성수는 제주 여인 권유순을 사랑하게 되고, 점점 위험해지는 제주의 상황들을 보면서 그녀와 함께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을 굳혀간다.

 

 

무자비한 시대에 등 떠밀리는 사람들의 운명


  김종일을 납치한 무리 속에는 방만식도 함께 있었다. 방만식은 당의 지시에 따라 서청의 프락치 노릇을 하는 김종일을 즉각 사살해야 했지만, 한 마을에서 자란 이웃이자 친구의 형인 그를 모른 체하지 못하고 결국 산 아래로 돌려보낸다.
  김종일이 납치된 이후 비서부장은 김종일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마을사람들(특히 인민위원회나 민해청에 가입했던 청년들)을 잡아가기 시작하고, 형의 복수를 핑계로 김헌일에게 경찰학교에 들어갈 것을 권유한다. 사실 비서부장의 이와 같은 행동은 권력층에게 보여주기 위한 실적을 쌓고, 그동안 자신의 물주가 되어온 김종일의 돈을 모두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살아남은 김종일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게 된 비서부장은 깜짝 놀라며 그를 조용히 처리하라고 지시한다.
  남로당 세포조직에 대한 검거작전이 계속되던 어느 날, 모자점과 약방을 운영하던 이들이 모두 남로당 당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김헌일은 약방 사장이 체포된 지 이틀 만에 경찰에게 잡혀간다. 그는 무장대에 끌려갔다 살아 돌아온 뒤부터 고향집을 떠나 약방에 세 들어 살면서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일본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김헌일은 제주농업학교로 끌려가 조사 명목으로 고문을 받는다. 그는 비서부장이 형 김종일의 돈 때문에 자신을 괴롭힌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과 모진 고문에 지쳐 경찰학교에 입학하기로 약속하고, 풀려나게 된다. 

 

 

 “힘없이 이리저리 휘돌리는 이름 없는 잡풀처럼 

제주 민초들의 삶 또한 그러하지 않은가.”


  어린 시절 동무였던 김헌일과 방만식은 이데올로기가 무성한 시대의 파도 속에 휩쓸려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처지가 된다. 또한 외지인 홍성수가 제주도민들과 함께 죽음을 맞고, 내지인 김헌일은 자신의 고향 사람들의 반대편에 서게 된다. 소설 『레드 아일랜드』는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다루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사건 속의 사람들에게 집중한다. 김헌일은 모순된 대한민국 정치 상황에 비판적이지만 결국 체제에 순응하여 경찰이 되고, 방만식은 징용을 다녀온 뒤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하며 혁명을 꿈꾸는 인물이다. 또 다른 지식인 계층의 홍성수는 사랑하는 여인과 자신의 양심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인물로 그려지며, 김종일은 전형적인 기회주의자 자본가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레드 아일랜드』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잔인한 시대와 아픈 역사의 상처를 읽을 수 있다. 서로를 죽여야 하는 두 친구의 떨리는 대화와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야 하는 이의 마음에서 잔인한 역사가 남기는 상처를 발견할 수 있다.

 

 

글쓴이 : 김유철
  1971년 부산 출생. 2002년 『오시리스의 반지』로 제1회 한국 인터넷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고, 2007년 「국선변호사―그해 여름1」로 황금펜상을 수상했다. 2009년 해양소설 「위대한 유산」으로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문단에 등단한 후 장편소설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 『레드』를 출간했고, 중편소설 「암살」, 「탐닉」, 단편소설 「미츠코에 관한 추억」, 「연인」 등을 발표하며 본격문학과 장르문학을 넘나들며 꾸준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레드 아일랜드 - 10점
김유철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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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소설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 《장미화분》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소설을 읽는다는 것에 무슨 함의가 담겨 있을까. 과연 소설이 킬링타임용이 아닌, 한 독자에게 있어 어떤 가치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책 본연의 기능을 충실하고는 있는 걸까. 편집자로 일하면서 소설 원고를 받을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었다. 소설의 주요한 가치는 ‘재미’에 있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재밌는 원고를 나름 출판하였음에도 사실 독자들은 소설보다는 에세이나 다른 교양도서에 관심 있는 게 통계에서도 드러난 사실이니까. 그렇게 문학작품에 과연 어떤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회의가 들 무렵, 『장미화분』 원고를 접하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캄보디아에서 맨몸으로 시집와 고난의 한국생활을 겪는 이주여성의 삶이 담긴 표제작 「장미화분」은 그 무렵의 나의 고민과 맞닿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담당편집자로서 초고를 읽으며 소설의 재미를 따지기 전에 이 원고의 가치를 찾기부터 바빴던 것 같다. 김현 작가가 보여주려 하는 바는 실로 뚜렷했다. ‘이주여성’, ‘노인’, ‘제주 해녀’, ‘5·18 가해자’ 등 사회의 어두운 속살을 과감히 드러냄으로써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인문서가 아닌 문학으로 ‘받아들이게끔’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문학이 갖는 의미란 이러한 사회상을 비추어내는 그 본연의 사실에 있다는 것을 배운 셈이다.


실제로도 김현 작가는 자신이 체험하지 않은 타인의 삶을 그려내기 위해 취재의 방식으로 다가섰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주여성이나 노인 문제, 해녀의 목소리들이 제각기 다름에도 우리의 ‘아픈 이웃’이라는 어떤 한 목소리로 나올 수 있었던 구심점에는 김현 작가의 부단한 노력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편집자로서 주인공의 삶을 전해 듣기 위해 이주여성을 직접 만났을 소설가의 삶을 짐작해보았다. 소설을 집필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또 그 사람의 인생과 그 사람 주변의 모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성찰했을 소설가의 또 다른 삶을 상상하게 된다.


「장미화분」 속 캄보디아 이주여성만이 아니다. 김현 작가는 작품 「연장」 속에 등장하는 가야금의 이야기를 보다 진실하게 전하기 위해 가야금을 만드는 장인과 교류하며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 소설집 속 개개인의 목소리는 각 개인이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소설의 이름을 가장한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이라 봐도 무방한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소설을 읽을 때의 그 먹먹한 감정을 겪어보았으리라 짐작한다. 소설을 편집하며 출간하기까지 이 소설집에 방점을 두었던 것은 소설의 ‘현재성’에 대한 가치이다. 김현 작가는 그런 점에서 이 사회를 예리하게 관찰하여 소설 속에 지금 ‘현재’를 담아낸 관찰자적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지금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바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타인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아닐까. 소설을 읽으며 이주여성에 대해 주위를 환기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삶을 살아가는 동안 주위의 시선을 타인에게 돌린다면 우리는 좀 더 건강한 사회를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사회과학 도서 『88만원 세대』 속 도입부가 장 폴 뒤부아의 『프랑스적인 삶』의 인용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훗날 사회적 문제를 환기시킬 때 소설이란 장르가 가장 강력한 상징으로 작용할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양아름 산지니 편집부

**출판저널 2월호 <편집자 출간기>에 게재되었습니다.




장미화분 - 10점
김현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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