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숙'에 해당되는 글 2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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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7.04.17 [다시 읽는 소설] 조명숙 단편소설 「점심의 종류」②
  3. 2017.04.14 [다시 읽는 소설] 조명숙 단편소설 「점심의 종류」①
  4. 2016.04.15 밥이 아닌 밥을 먹는 시간:: 세월호 2주기와 「점심의 종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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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2012.04.20 34회 저자와의 만남 :: 조명숙 소설가
  25. 2012.03.23 너무 환한 세상은 잊어요, 엄마 『댄싱 맘』 (2)

 

4.16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에 수록된

단편소설 「점심의 종류」를 연재합니다.

 

 

 

 

점심의 종류

조 명 숙

 

 

 

시신도 만져 보지 못한 채 유미가 사라졌다.

그런데 누구도 모른다고 했다

 

 

 

 

마지막 화 

 

 

 

 

  검찰은 사고 직후 종적을 감춘 선주를 찾느라 법석이나 떨고, 매스컴은 선주의 비리를 캐는 데 열을 올리기나 할 뿐, 사고의 원인 규명이 점차로 유야무야되고 있을 때였다. 어떻게 애를 두고 혼자 빠져나올 수 있어? 죽더라도 같이 있었어야지. 참고 또 참았던 말을 결국 영애는 내뱉고 말았다. 시신도 만져 보지 못한 채 유미가 사라졌다. 그런데 누구도 모른다고 했다. 국정조사, 청문회, 재판 같은 절차는 마치 사고 기록 지우기를 목표로 한 듯 차근차근 진행되었지만 원인을 먼저 규명하라는 유족들의 요구는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부 정치권이 편을 들어 한동안 마찰을 빚는 듯했지만 당신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라고, 나라를 계속 시끄럽게 하는 건 애국적인 차원이 아니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도대체 왜,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말을 들은 체도 않는지, 도대체 왜, 원인규명 없이 엉뚱한 사람을 내세워 여론을 호도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던 그때 그녀는 지철에게라도 그렇게 물어야 했다. 싫다는 애 등 떠밀어 보낸 게 누군데 그래? 그 잘난 일, 딱 사흘만 쉬고 같이 가자니까, 왜 그렇게 악착을 떨었어? 평생 청소나 하면서 살아! 지철과는 그렇게 끝났다. 일 년에 한두 번 슬그머니 들르기는 하지만 서로 마주보지 않는다. 둘 다 잘못한 게 없으면서도 잘못을 뒤집어씌웠다는 걸 알지만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영미가 남은 볶음밥과 빈 그릇을 현관 밖에 내놓고 꺼진 풍선처럼 앉는다. 지금 이 순간은 산 상태일까, 죽은 상태일까? 확실한 형체를 가지고 움직이는 저 영미가 죽은 것일까, 산 것일까. 영애는 청맹과니처럼 눈을 깜빡이며 낯설고 어색한 이쪽 세계를 떠나 화면을 바라본다. 장동건과 원빈이 조우한다. 포연으로 범벅이 되어 시커먼 두 남자의 감격스러운 포옹. 절규.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인 것이 전쟁이다. 자꾸 위로 뻗치는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가진 영애와 찰랑거리는 영미의 머리카락이 저렇게 꽉 껴안고 살아 있음에 감격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영화다. 사는 게 전쟁이라지만 전쟁터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는 보다 자세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작용한다. 감정들은 제각각 움직여서 틈을 만들고 하나를 둘로, 둘을 셋으로 갈라놓는다.

 

 

 

  아버지 죽고 엄마는 영애와 영미를 장동건과 원빈처럼 키웠다. 영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어 영미 학비를 댔다.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장동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영미는 늘 고마워했고, 최선을 다해 가깝게 지내려고 했다. 언니 나 할 말 있는데.영미가 우정 다가앉는데,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다. 유미를 잃은 뒤 해죽해죽 웃기만 하던 엄마가 생각난다. 얘야. 내가 해 줄 말이 있는데. 지철이 집을 나가고 혼자 남았을 때도 해죽해죽 웃던 엄마. 얘야. 내가 해 줄 말이 있는데. 인생이란 걸 싹 잊어버려라. 우리가 뭘 인생이란 걸 살았다고. 그런 거 없었다. 해죽해죽 웃으면서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어느 순간 정말 깨끗이 싹 잊어버렸다. 영애와 영미를 업고 걸리고 겨울 골목을 쏘다니며 찹쌀떡을 팔던 일도, 대학 등록금을 넣지 못하고 함께 울었던 일도. 그 모든 일을 엄마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나서 영애에게도 깨끗이 잊어버리라고 했다. 나 이민 간다.영미가 조용히 말했다.

 

  부지런히 드나들며 자꾸 볶음밥을 시켜댈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영미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십 년이었다. 모든 걸 싹 잊어버린 엄마는 자주 길을 잃었다. 아무 데나 똥오줌을 누었고, 발가벗고 거리를 뛰쳐나갔다. 그러더니 어느 날 차에 치어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엄마가 죽었지만 슬프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담담해서 장례 끝난 뒤 영미에게 두 차례 빰을 맞았다. 좀 더 일찍 가지 그랬니.그때처럼 영미가 후려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영미에게 유미는 자식 같은 조카였다. 김서방이 이민 가재. 그렇잖으면 헤어지재. 언니 혼자 두고 가는 거 정말 마음이 아프지만, 김서방 따라갈래. 언니처럼 유령이 되긴 싫어.

 

 

 

  고지전 장면이다. 장동건은 북한군복을 입고 있다. 참호에서의 육탄전. 장동건은 자동 기계처럼 적을 죽인다. 원빈이 장동건을 발견한다. 장동건은 원빈을 알아보지 못한다. 장동건과 원빈의 육탄전. . 나야. 나 진석이야. 원빈이 소리쳐도 장동건은 계속 공격한다. 장동건은 살인기계다. 원빈이 살인기계에게 한사코 인간으로 접근한다. 시꺼먼 장동건의 얼굴. 광기 어린 장동건의 눈이 허옇게 까뒤집어진다. 원빈이 장동건을 제압한다. 마지막 밥과 김치를 입에 넣는다. 치통과 함께 밥을 씹는다. 치통과 함께 밥을 씹으면서 주방으로 간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친다. 저녁에 일하러 가기 전에 먹을 밥이다. 금방 지은 밥은 유미가 좋아하던 밥이다. 지철이 잘 먹던 밥이다. 그날 아침에도 먹은 밥이다. 이젠 못 봐. 안 올 거니까!새된 소리와 함께 영미가 문을 열고 나간다. 취사 버튼을 누르고 돌아서는데 뒷머리가 화끈하다. 몸이 휘어진다. 휘어진 몸이 바닥에 닿는다. 어느 곳에서나 사는 건 찬란하지 않다는 말을 해 주었어야 했다.

 

  문 소리의 여운이 사라진 뒤 영애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다. 텔레비전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간다. 텔레비전을 주시한다. 죽은 장동건의 몸이 태아처럼 오그라든다.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고 영애도 몸을 웅크린다. 모든 것이 처음의 그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우린 산 게 아니었어. 그러니까, 다 잊어버리자. 유미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 엄마는 알게 되었던 거다. 스물셋에 알 수 없었던 일은 서른셋에 알게 되고, 서른셋에 알 수 없었던 건 마흔셋쉰셋예순셋그렇게 삶의 슬픈 의미는 아주 늦게야 알게 된다는 것을. 슬퍼하고 기뻐한 순간들이 모멸과 굴욕으로 가득 찬 것의 표면을 살짝 덮는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엄마는 다 잊어버리라고 했던 것이다. 영애는 웅크린 채 텔레비전을 본다. 점심을 먹는 건 아직 기억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기억할 힘이 있기 때문이다. 점점 약해지고 있지만 어쨌든.

 

  고통을 이기려고 잔뜩 몸을 웅크린 장동건의 뼈가 누런 황토에 말뚝처럼 박혀 있다. 장민호가 수습된 유물 중에서 녹이 슨 만년필을 집는다. 오십 년 동안의 회한은 담담해서 꼭 낙엽 같다. 썩은 낙엽은 지금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광고가 시작된다. 광고는 현재의 시간을 무차별 포격한다. 과거로 뭉쳐진 영애에게 현재의 파편이 날아온다. 슬픔보다는 기쁨을, 모자람보다는 넘침을 강조, 또 강조하는 현란한 색의 잔치를 영애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사고도 이렇게 광고였던 것 같다.

 

 

 

  그때 그 바다의 현재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영화가 끝나자마자 밀려드는 광고처럼 평온이 끝나던 그 순간, 그 아비규환을 상상하는 일은 전파를 손으로 잡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백 명의 승선객 중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일흔일곱 명이었고, 시신으로 건진 사람이 또 일흔일곱이었다. 나머지 마흔여섯은 마흔여섯 날을 두 번이나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뒤집어진 배가 침몰하자 바닷물이 재빨리 흔적을 지워 버렸다. 해당 기관의 얽히고설킨 부패와 선주의 부정축재가 두 달 동안 매스컴 종사자들을 흥분시켰지만, 잔치는 곧 끝나 버렸다. 정치권에서는 애도를 무기 삼아 싸움을 벌였고, 방심과 안일의 타성을 곧 회복한 사람들은 여객선이나 비행기를 타고 여행했으며 위험한 일터에서 일했다. 애도의 상징이었던 노란 리본도 하나둘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는 말은 맞지 않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항의하고 싸우고 기억하려 애썼으므로 유미, 유미들은 확실히 조금 더 오래 기억되었다. 몇 가지 법안이 상정되었고, 입법부는 그중 몇 가지를 가결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십 년 동안 실제로는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유미가 없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었다.

텔레비전을 끄고 영애는 창가로 간다. 아직 시들지 않은 잎이 무성한 나무 사이로 젊은 남자가 걸어온다. 어깨가 곧고 걸음걸이가 빠른 젊은 남자는 105동 현관으로 사라진다. 창문을 연다. 세찬 바람이, 예기치 않았던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영애는 문득 놀라면서 혹 바람에 실려 왔을지도 모를 어떤 것을 찾는다. 냄새, 소리, 움직임. 한때 이 공간을 채우고 있던 냄새와 소리 움직임을. 아무 냄새도 나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끝

 

2014.04.16

잊지 않겠습니다.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

 

조명숙 지음 | 문학 | 국판 변형 | 244쪽 | 13,000원

2015년 4월 6일 출간 | ISBN : 978-89-6545-286-7 03810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4.16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에 수록된

단편소설 「점심의 종류」를 연재합니다.

 

 

 

 

점심의 종류

조 명 숙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면서

 유미의 죽음이 심연처럼 가라앉을 때,

마침내 고통은 고통끼리 부딪쳤다.

 

 

 

 

2화

 

 

 

 

  영미가 숟가락을 뺏으려 한다.“미장원 갔다가 옷도 좀 사자.” 완강하게 뿌리치면서 영애는 쟁반을 들고 뒤로 물러난다. 영미가 깬돌의 모서리처럼 모난 눈으로 노려본다. 그러고 보니 영미는 방금 미장원에 다녀온 모양이다. 사흘 전보다 머리가 조금 짧아졌고, 헤어에센스 냄새도 난다. 물 한 모금 마신 영애는 영미가 가리고 있는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목을 뽑는다. 중학생 모자를 쓰고 교복을 입은 장동건과 원빈이 구두를 구경하고 있다. 선명한 다갈색의 구두 한 켤레에 모아지는 장동건과 원빈의 눈. 장동건과 원빈의 시간이 전진하고 있는 가운데 영애의 시간은 후진을 계속한다. 다갈색 스웨이드 신발을 신은 유미가 콩콩 발을 구른다.

 

  유미의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영애의 손에는 캔커피가 들려 있었다. 볕살 좋은 봄날이다. 유미가 눈을 찌푸리며 손으로 해를 가린다. 유미는 새로 산 스웨이드 신발을, 영애는 유미가 신던 낡은 운동화를 신고 있다. 유미가 영애를 껴안는다. 구두에, 옷에, 정말 고마워, 엄마. 나 취직해서 월급 받으면 엄마 다 줄게. 그래, 그래라. 그땐 엄마 청소일 그만두고 쉬기만 해. 알았지? 그래, 그러자. 유미와 영애는 햇살을 받으며 걷는다. 그래, 그래라. 우리 유미 취직하면 나 청소일 그만둘게. 영애는 중얼거린다. 그래, 그랬지. 우리 유미 취직하면 나 일 그만두고 쉬기로 했지. 그런데 우리 유미 아직 취직을 못했어. 그래서 내가 일을 쉴 수가 없어. 일을 하려면 먹어야지. 먹어야 일을 하지.

 

  화면이 갑자기 사라진다. 영미가 눈앞에서 리모컨을 흔들고 있다. “이러고 있는 거 유미가 다 보고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 봤어? 유미도 이제 그만 언니가 편안해지길 바랄 거야. 이제 그만하자, 우리. 난 지쳤어.” 영미를 향해 물이 담긴 컵을 집어던진다. 컵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다. “난 그만두지 않을 테야. 왜냐고? 모두들 그만두길 원하니까. 그래서 그만두지 않을 거야.” 걸레를 가져와 엎질러진 물을 닦으며 영미가 맞고함을 지른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계속해. 계속하라고. 실컷!” 곱슬곱슬한 영미 머리카락이 출렁거리면서 흔들린다. 영미 머리카락이 아래위로 왔다 갔다 한다. 나이를 먹어도 싱싱하고 탄력 있는 머리카락을 가진 영미가 운다. 영미와 함께 유미가 운다. 엄마. 이제 그만 날 잊어버려. 유미가 울면서 말한다. 영애는 입술을 꼭 문다. 나도 그러고 싶다. 지난 일이라 치고 다시 처음부터 살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일 뿐, 나는 다시 잊지 못한다.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하라니, 내 머리를 갈라 모든 기억을 꺼내 버리렴.

 

  계란 노른자와 다시마 가루로 만든 헤어팩을 잔뜩 바르고서 영미와 유미는 나란히 앉아 있곤 했다. 유미와 영미는 죽이 잘 맞았다. 엄마 노릇의 십분의 일은 영미가 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랬던 영미가 이제 그만 유미를 잊으란다. 서운하고 야속하고 밉다. 고통도 오래되면 지병처럼 지긋지긋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만 잊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보기 싫거든 오지 마. 너 없이도 살아.” 중얼거리고서 영미를 외면한다. 입은 밥을 씹고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깬돌들이 모난 모서리를 서로 부딪치고 있다. 장아찌를 씹던 이가 혀를 건드렸다. 씹던 일을 멈추고 얼른 물을 마신다. 그날도 이렇게 심하게 혀를 깨물었다. 대단한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 혀를 깨물었고, 입안이 계속 불편했다.

 

 

  네온이 불야성을 이룬 유흥가. 대형 빌딩에서 쏟아져 나온 쓰레기가 주차장 한쪽에 태산처럼 쌓이는 시간. 영애는 십칠 층 룸을 청소하고 있었다. 술 냄새, 담배 냄새가 가득 차 있었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을 때 세찬 바람 한 줄기가 들이닥쳤다. 꽃병이 넘어지면서 동료의 발등을 찍었다. 빌딩과 빌딩 사이로 가끔 용오름이 지나간다더니, 그런 것인가 여겼다. 그런데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시커먼 어떤 것이 바람을 타고 들어온 것 같았다. 오래 고인 물에 산다는 물컹거리고 기이한 큰빗이끼벌레 같은 것이 몸을 옥죄는 듯 숨이 막혔다. 뭐야, 이 기분 나쁜 냄새는? 동료가 투덜거리는데 또로롱 문자벨이 울렸다. 유미. 위젯을 끌어당기자 큰빗이끼벌레 같은 것이 창밖으로 쑤욱 빠져나갔다. 좋은 아침. 아빠와 난 잘 잤고, 기분도 좋아. 엄마만 남겨 놓고 와서 미안. 문자를 읽고 있는데 유미의 검고 탐스런 머리카락이 얼굴을 머릿속을 싹 스치고 지나갔다. 고약한 냄새를 지우면서 유미가 쓰는 샴푸 냄새가 났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유미가 보고 싶었다. 넌 꼭 대학에 보내 줄게.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십 분이나 지났을까. 지철에게서 전화가 왔다. 배가 기울었어. 뒤집어질 것 같아. …유미, 유미가 안 보여. 화장실 간다고 했는데…. 지철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세상에 하고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도 그게 다 남의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큰빗이끼벌레처럼 낯설고 무섭고 불길한 어떤 것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졌을 때, 일은 이미 터져 있었던 것이다.

 

  영미에게서 리모컨을 뺏는다. “이러다 죽겠어. 차라리 죽어 버려. 그러면 잊을 거잖아. 유미한테로 가, 차라리!” 말 끝에 영미가 쿨쩍거린다. 사흘 전 정오에도 영미가 왔고, 볶음밥이 배달되었다. 텔레비전이 꺼졌고 물이 쏟아졌으며 쿨쩍 소리도 났다. 이 반복이 영화라면 얼마나 좋을까. 걸레를 빨아 바닥을 닦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청소를 하는 일, 어설픈 밥을 먹고 자는 듯 마는 듯 밤을 지내는 일, 신발을 신거나 세탁기의 버튼을 누르는 일, 이불을 덮고 다리를 웅크리는 일이 이미 본 영화라면. 그런데 사는 건 영화가 아니다. 매번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 영화처럼 엄밀하게 똑같지 않다. 비슷하게 재현되는 장면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고, 그 변화는 보이지 않게 조금씩 바뀐 미래를 가져온다. 장면의 균열과 변화가 그것을 말해 준다.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것이 아닌 리모컨,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 사람이 아닌 영애,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영미가 아닌 영미, 매일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는 유미. 그렇기 때문에 영애는 살아 있어야 했다. 내 속에서도 점점 희미해지는 유미를 누가 기억해 줄까? 질문을 담은 눈으로 영미를 본다. 영미에게 유미가 겹쳐진다. 잠 어린 눈을 비비며 식탁에 앉던 유미, 책가방을 메고 팔짝팔짝 뛰어서 목에 매달리던 유미, 젖은 머리카락으로 물을 뿌리며 환히 웃던 유미…가 영미처럼 있다.

 

 

  슬픔이 서슬처럼 담긴 눈길에 영미가 주춤하는 사이 초인종이 울린다. 영미는 얼른 영애 앞을 벗어나 조르르 현관으로 달려간다. 배달원이 철가방을 내려놓는다. 영애는 리모컨을 누른다. 3, 0, 9. 전쟁터에도 휴식은 있다. 잠시 문명인이 된 병사들은 장난을 친다. 원시인처럼 먹고 자며, 원시인처럼 흥분하여 싸우지만 또 원시인과도 같은 순수한 의지로 병사들이 휴식한다. 바뀐 장면. 포연 속에서 장동건이 포복하고 있다. 바로 곁 병사가 쓰러진다. 연발 총성. 장동건이 수류탄을 던진다. 장동건이 병사 셋과 함께 사이드로 빠지면서 원빈을 따돌린다. 돌격하는 장동건 뒤로 건물이 무너지고 파편이 튄다. 바뀐 장면. 장동건이 북한군과 육탄전을 벌인다. 엄호를 맡은 북한군이 장동건과 맞총질하다 죽는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배우들이 스러지는 장면을 지나 태극기가 휘날린다. 병사들이 평양에 입성한다. 거수경례하는 장동건과 원빈.

 

  볶음밥이 담긴 접시 두 개와 단무지, 양파와 중국 된장에는 랩이 씌워져 있다. 영미는 수저를 싼 종이와 볶음밥을 덮은 랩을 벗긴다. “먹자, 제발.” 영애는 화면을 가린 영미의 등을 민다. “비켜.” 옆으로 밀려난 채로 영미가 볶음밥을 먹는다. 볶음밥이 냄새를 피운다. 영애는 볶음밥을 기억한다. 그것은 몇 가지 야채를 잘게 썰고, 그것을 싸구려 고기 볶은 것과 섞어서 만든 음식이다. 영미가 막 랩을 벗긴 단무지는 절인 무에 설탕이나 사카린으로 단맛을 내고 약간의 식초를 뿌린 것이다. 양파는 가을에 심어 봄에 거두는 채소이며 동그랗게 생겼고, 여러 겹의 외피를 가지고 있다. 또 그것은 단맛과 매운 맛을 내는 것으로 여러 가지 음식에 양념으로 쓰인다. 새까맣고 진득한 중국 된장은 밀가루와 소금을 발효시켜 만든 재료에 캐러멜과 같은 첨가물을 넣은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원빈이 난투극을 벌이고 있다. 상대 배우는 아직 모른다. 몇몇 조연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인 체하는 것이 관객이다. 그녀도 엄연한 관객이다. 영애에게도 권리가 있다. 영화를 볼 권리, 맛있는 음식을 먹을 권리, 좋은 옷을 입을 권리 같은 것이 분명히 있다. 그 엄연한 권리를 누가 빼앗아 버렸는가. 온몸이 불에 타는 것처럼 뜨거워지는 것만 같다. 얼른 화면으로 눈을 돌린다. 불탄 시체들. 앙상하고 시꺼먼 뼈들. 장동건이 잿더미 속에서 만년필을 집어 든다. 표정이 침통하다. 새까만 뼈로 남은 하나의 목숨에, 하나의 목숨이었던 새까만 뼈에 장동건이 손을 얹는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은 참혹하게 죽지만 조용히 묻힌다. 더러는 묻히지 못하고 흙더미 위에서 썩는다. 목숨을 밟고 지나가는 탱크. 밥알처럼 으스러지는 뼈. 수없이 많은 유미들.

 

 

  영미가 볶음밥 접시를 들이민다. “먹어, 좀. 언니 볶음밥 좋아하잖아.” 못 들은 척한다. 옛날 일이다. 볶음밥을 좋아했고 만두를 좋아했다. 하지만 진흙이 메워진 것 같은 머릿속, 누런 위액이 구석구석 고여 있는 것 같은 뱃속, 스멀거리는 통증과 가려움으로 채워진 뼈와 살…. 고통의 증거들 속에서 배회하는 기억이 식욕을 가로막고 있다. 물끄러미, 영미를 본다. 음식은 이제 머릿속에 저장된 하나의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유미가 마음속에 있는 한 어떤 음식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음식을 넣으면 속에 있던 유미가 그것을 몽땅 뒤집어쓰고 말 것 같다. 반찬투정 없던 유미였지만 오래 보온된 밥과 시장에서 파는 김치, 무장아찌는 도저히 안 넘어간다고 했다. 김치가 떨어지면 어설픈 깍두기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영애는 유미가 먹지 못하게 된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됐다. 유미가 싫어하던 것만 그나마 조금 먹을 수 있다. 어디에 있니? 점심은 뭘 먹니? 매일 주고받던 말의 기억을 다 잊어버린 뒤라면 모를까.

 

  러닝셔츠 차림의 오지호가 원빈에게 다가간다. 장동건을 찾아보자고 한다. 원빈이 격하게 받아친다. 나하고 상관없다고 했잖아. 훈장 못 받아서 환장한 인간이니 그 인간 죽든 말든 알게 뭐야. 오지호에게서 멈춘다. 선한 입매. 깊고 큰 눈. 주의해서 보지 않았지만 어느 때부턴가 주의해서 보게 된 배우다. 오지호가 화면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지철은 길게 찢어진 눈이었으나 입매는 묘하게 오지호를 닮았다. 눈 뜨고 웃어. 영애는 자주 지철을 놀렸다. 눈 작은 사람 간은 크다던데. 어, 그런가… 그런가 보군. 지철은 잘 웃었고 웃을 때면 눈이 거의 감겨 버렸다.

 

  유미는 죽었지만 그가 살았다는 것이 한동안은 위로가 됐다. 최소한 고통을 함께 나눌 상대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기 싫다는 걸 억지로 떠밀어 보낸 영애와, 같이 아침밥 먹고 유미가 화장실 간 사이에 무릎까지 차오른 바닷물을 헤치고 혼자 살아 나온 지철은 자신들이 고통을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으로 서로를 찌를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는 것까지는 몰랐다. 그것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경황이 없었던 것이다. 순항 중이던 배가 왜 갑자기 선로를 바꿨고, 그처럼 큰 여객선이 왜 순식간에 속수무책 뒤집어졌는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살 길을 찾아 뱃머리로 나온 일흔일곱 외에는 왜 단 한 사람도 구조될 수 없었는지, 살지도 죽지도 않은 마흔여섯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면서 유미의 죽음이 심연처럼 가라앉을 때, 마침내 고통은 고통끼리 부딪쳤다.

 

 

 

 

 

3화에서 계속됩니다.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

 

조명숙 지음 | 문학 | 국판 변형 | 244쪽 | 13,000원

2015년 4월 6일 출간 | ISBN : 978-89-6545-286-7 03810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4.16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에 수록된

단편소설 「점심의 종류」를 연재합니다.

 

 

 

 

점심의 종류

조 명 숙

 

 

 

캡을 쓰고 작업복을 입으면

유미가 사라지기 전의 시간 속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어코 되돌려 놓고 싶은 순간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1화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내다본다. 육 층에서 내려다보는 바깥은 고요하다. 이른 가을, 잔잔한 바람이 지나가는지 화단의 나뭇잎이 아주 조금 흔들린다. 숲에는 떨어진 나뭇잎이 이끼와 돌을 덮고 있을 즈음이다. 현관을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숲으로 가는 길이 있다. 오십 미터 간격으로 의자가 있고, 의자 아래에는 담배꽁초나 껌 같은 것이 떨어져 있다. 사람들이 드문드문 오가고, 가끔은 개들도 지나가는 길이다. 숲에서는 여전히 나무들이 자라고, 자란 나무들의 가지는 잘리거나 굵어지고 있을 것이다.

 

  숲에 가지 않고 지낸 지 십 년이 됐다. 숲에만 가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옷가게라든가 과일가게, 빵집 같은 곳에도 가지 않았다. 집과 일터 외에 목적하고 가는 곳을 영애는 꼽아 본다. 은행. 월급이 들어왔는지, 전기료와 관리비, 전화 요금 같은 것이 잘 이체되고 있는지 확인한다. 시장. 김치와 무장아찌, 양말 같은 것을 산다. 바다. 회한이 치밀어 오를 때는 유미를 담그고 있는 바다에 간다.

 

  노천 주차장에는 먼지가 가득 앉은 그녀의 차가 있다. 지난 달 차는 유미에게 가다가 톨게이트를 눈앞에 두고 멈춰 버렸다. 돌보지 않음에 항의라도 하듯 갑자기. 뒤따르던 차들이 정체를 견디다 못하고 늘어섰다. 선글라스를 낀 마흔줄의 남자가 선글라스를 끼지 않은 등산복 차림의 남자 둘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영애의 차를 갓길로 밀어붙이고 침을 퉤 뱉고 가 버렸다. 그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운전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한 건을 노리고 달려온 견인차 기사는 차가 멈춘 원인이 오일 오프 때문이라는 걸 알고는 제풀에 화를 냈다. 주유소에 가는 건 늘 지철의 일이었다. 지철의 출퇴근 거리가 멀기도 했고 외근이 잦아서 산 차였다. 그 차를 타고 바다에 갈 때마다, 차가 집에 도착하던 날이 생각났다. 환하게 웃던 지철과 팔짝거리며 좋아하던 유미였다. 우리에게도 차가 생겼어. 이제 어디든 갈 수 있게 됐어. 그들이 차를 타고 첫 주말 나들이를 한 것은 교외에 있는 숲이었다. 돗자리며 도시락에 아이스박스까지 싣고도 넉넉히 자리가 남아 이듬해에는 텐트까지 장만했다. 지철이 텐트를 치고 영애는 버너에 코펠을 올려 찌개를 끓였다. 삼 년도 채 못 가 시들해지고 말았지만 몇 번의 캠핑에 대한 추억은 차 구석구석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유모차를 밀며 103동에서 나온 여자가 상가 쪽으로 걸어간다. 사람이라곤 여자와, 유모차에 담겨 있을 아이뿐이다. 이곳의 정오는 늘 정적이다. 정오에 이곳 사람들은 점심을 먹으며 집에 있거나, 점심을 먹으러 외출했을 것이다. 그보다 일찍 많은 사람들은 일하러 가거나 학교에 갔을 것이다. 그보다 일찍 보다 조금 늦게 또 어떤 사람들은 휘트니스 클럽이나 백화점에 갔을 테고 더러는 병문안을 가기도 했겠지. 그중 몇은 법원이나 변호사, 회계사, 부동산중개업자에게 갔을지도 모른다. 드물기는 하겠지만 어쩌면 몇은 시 창작 강의나 사진 강좌 같은 걸 들으러 갔을 수도 있다. 이렇게 바깥을 내다보며 서 있는 사람도 혹 있을 것이다.

 

  영애는 유모차와 여자를 주시한다. 이 시간쯤에 종종 걸음으로 나타나는 여자는 대개 집안일을 두 시간 정도 해 주고 돌아가는 가사도우미일 확률이 높다. 지금 유모차를 밀고 있는 여자는 아이돌보미일 수도 있고, 아이를 돌봐 주러 온 할머니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육 층에서 보기에 여자의 다리는 길고 머리는 어깨에서 보기 좋게 찰랑거리는 것이, 아이 엄마 같다.

 

  하지만 여자가 누구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이곳 사람들은 서로를 모른다. 조금 전 지나친 사람이 빈집털이범이나 소시오패스일 수도 있고, 우울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몇 번 시도한 사람일 수도 있다. 상가가 있는 입구에서 205동까지 오는 동안에 돈을 빌려주고 떼인 사람과 남의 돈을 떼먹은 사람을 지나치기도 할 것이고, 주식투자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 지나간 보도블록 위에 그녀의 발이 지나가기도 한다. 게임중독자나 여러 종류의 해킹프로그램을 가동하는 재주를 가진 컴퓨터 폐인, 사람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히키코모리, 건설업자, 사채업자, 베이커리 주인이 서로 정체를 알지 못한 채 엘리베이터에 함께 있을 수도 있다.

 

  또 그들 중에 국회의사당이나 시청 광장 같은 곳에서 영애가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극도의 절망감과 간절함을 담아 침묵시위를 하고 있을 때 비난을 일삼던 사람들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래서 영애는 늘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곁눈질하지 않으려고 발끝만 쳐다본다.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해지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십 년 전에는 가끔 말을 걸어오기도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안심이 된다.

 

 

 

 

  유모차가 상가로 들어간 뒤 영애는 창가에서 물러선다. 정오이고, 밥을 먹어야 하는 시각이다. 밥 먹기 전에는 손을 씻어야 한다. 욕실로 가서 세면대 앞에 선다. 제복과 캡을 벗는다. 캡이 벗겨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머리카락이 부풀어 오른다. 말썽쟁이 아이처럼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자라 있다. 어제, 푸석푸석한 것이 하도 뻗치기에 가위로 대충 잘라 버렸다. 물끄러미 거울을 본다. 움푹 들어간 눈자위, 블랙헤드가 박힌 코와 뺨, 막무가내로 닫힌 입…. 깡마르고 윤기라고는 없는 여자가 그림자처럼 조용히 거울 속에 있다.

 

  손을 닦고 욕실을 나오는데 폰이 울린다. 폰은 거실 소파에 던져둔 가방에 있다. 천천히 걸어가서 가방을 연다. 폰을 꺼내 들여다본다. 영미다. “왔지? 나 지금 올라간다.” 엄마 죽고 유일한 피붙이로 남은 영미다. 잘 울고 매우 보채던 어린것이 벌써 마흔을 넘겼다. 한 달에 한 번 정도이던 영미의 방문이 지난달부터 사흘 간격으로 좁혀져 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가슴에서 자그락자그락 깬돌을 밟는 소리가 난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세상 어느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지만 영미에게만은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 냉장고로 간다. 물을 마시고 전기밥솥을 열어 본다. 어제 저녁 지어서 보온해 둔 밥이 있다. 노리끼리하게 색이 변한 밥이 담긴 내솥을 쟁반에 올리고 수저와 김치, 무장아찌와 물 한 컵을 챙긴다. 시장에서 산 김치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나고, 무장아찌는 곰팡이가 피어 있다. 거실로 가서 TV와 외장형 수신기를 켠다. 되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밥 한 숟가락을 욱여넣는다. 장아찌 한 쪽과 물 한 모금을 섞어 목구멍으로 넘긴다.

 

 

 

 

  구식 외장형 TV수신기는 그제야 로딩을 마무리한다. 외장형 수신기는 저소음형 벽걸이 시계라든지, 수많은 흠집이 그 자체로 액정화면이 되어 버린 폰, 뒷꿈치가 나달나달해진 플라스틱 슬리퍼나 끈이 떨어진 운동화, 때가 묻고 색깔이 변한 토드 백 같은 것들과 함께 영애의 2024년에 와 있다. 그동안 여러 곳에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겼고, 지하철 노선 두 개가 개통되었으며, 신용카드의 유효기간은 세 번이 지났다. 엄청나게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영애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유미는 돌아오지 않았고 유미를 잃은 상처는 조금도 아물지 않았다. 그것만이 엄연한 현실이다.

 

  밥 한 숟가락을 더 욱여넣고 3, 0, 9를 누른다. 제목이 뜬다. 태극기 휘날리며. 화면에 눈을 대고 다시 밥 한 숟가락. 이 오래된 영화는 몇 번이나 보았다. 현실이 아닌 영화라서 다행이야 생각하는 사이, 장민호가 전화를 받는다. 전화는 갑작스러운 것이지만 이미 여러 번 받은 적이 있는, 기다리던 전화다. 국군유해수습위원회 소속의 젊은이가 정중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장민호의 이름과 성을 묻는다. 예. 제가 이진석입니다.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젊은이가 다시 말한다. …혹시 이진태… 확실하지 않지만 혹시나 해서요…. 전화를 끊고 장민호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예쁘고 발랄하며, 사려 깊은 태도로 조윤희가 다가든다. 할아버지. 큰할아버지 소식인가요? 장민호는 애매한 태도로 말을 흐린다. 아, 아니.

 

  바뀐 장면. 장민호가 옷을 갈아입는다. 낡은 책상 서랍을 열어 알약을 챙긴다. 지병이 있을 때도 됐지. 저 나이가 되어서도 변함없이 힘껏 달리고 섹스하고 먹어 대야 한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나이를 먹고 병이 생긴다는 것이 이제 그만 살아도 된다는 예고를 받는 것이라면 괜찮은 진행인 셈이다. 사진틀 두 개가 장민호의 시선으로 잡힌다. 그중 하나의 사진틀에 끼어 있는 사진에서 조윤희의 모습이 확인된다. 최근에 찍은 가족사진이다. 장민호가 그 옆의 사진틀을 집어 든다. 앉은 이영란 뒤로 장동건과 원빈이 나란히 서 있다. 멈칫거리는 장민호의 손,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 옷장 문을 열고 장민호는 오래된 대나무 상자를 꺼낸다. 다갈색의 구두 한 켤레 클로즈업.

 

 

 

  구두가 사라지면서 영화 속 시간이 거꾸로 가기 시작한다. 생기발랄한 장동건과 원빈, 그리로 이은주가 화사하게 웃는다. 그때 영미가 들어온다. 거꾸로 가고 있는 시간을 되돌리듯 영미가 쟁반 옆에 가방을 툭 던진다. “이걸 밥이라고 먹어?” 힐난인지 걱정인지 종잡을 수 없는 투다. 힐난이기도 하고 걱정이기도 하겠지. 묵묵히 밥 한 숟가락을 푹 뜬다. 그래. 이건 밥이 아니다. 영애는 밥 아닌 밥을 입에 넣는다. 밥과 장아찌를 씹는 입 저쪽, 어금니 하나가 시큰거린다. 어쩌다 밥알이 푹 빠지기도 하는 그 어금니는 썩어 뿌리만 남아 주기적으로 지독한 통증을 불러일으킨다. 치통은 모멸스러운 것이다. 발뒤꿈치에 두툼하게 앉은 각질이라든가, 큐티클이 자라는 손톱, 수북한 겨드랑이 털 같은 것들처럼, 치통이 올 때마다 영애는 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그렇게 십 년째 치통과 함께 밥을 먹는다. 치통과 먹는 밥은 밥이 아니다. 귓밥이나 걸레, 제 손으로 대충 자른 머리카락과 변기 뚜껑, 제멋대로 퍼져 자란 눈썹과 굽이 낮은 구두 같은 것들과 함께, 여름옷과 겨울옷에서부터 가방, 신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낡은 것들과 함께, 베란다의 빨래대며 에어컨 실외기, 텔레비전 리모컨과 이불, 베개 같은 것들과 함께 영애는 치통의 발발지점에 머물러 있다.

 

  “여기 205동 602혼데요, 볶음밥 두 개요. 최대한 빨리요.” 가방 옆에 앉은 영미가 중국집에 주문을 한다. 그리고 한결 누그러진 투로 말한다. “볶음밥 먹고, 미장원 가자. 머리가 이게 뭐야?” 영미가 뻗쳐 오른 영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울컥 눈물이 솟으려는 걸 감추느라 영미 손을 떨친다.“캡 쓰면 돼.” 작업용 캡을 쓰면 아무리 잘 다듬은 머리도 한 가지 포즈로 나오게 되어 있다. 동료들은 일이 끝나면 캡을 벗고 난 뒤 움푹 들어간 자국을 고대기로 펴고 유니폼을 갈아입지만 영애는 캡을 쓰고 유니폼을 입은 채로 집에 온다. 아이가 살아 있는 이들은 아이를 잃은 여자의 뒤에서 수군거린다. 저 여자, 애가 죽었대. 안됐어, 참. 하지만 저 꼴이 뭐야. 십 년이나 됐다면서 정신을 못 차리고. 회사에선 저런 여잘 왜 안 자른대? 더럽고 기분 나빠. 그때 그 사고로 특별법이라는 걸 만들어서 제 발로 나가기 전엔 못 자른대. 보상금도 꽤 받았을 건데 왜 꾸역꾸역 나오나 몰라. 그래도 너무하는 거 아냐? 이 자리라도 구하려고 목매달고 있는 사람 줄을 섰는데, 웬 특혜냐고. 일터에서의 따돌림은 고통스럽지만 견딜 만하다. 영애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다. 일을 하면서 고통을 잊으려는 것도 아니다. 캡을 쓰고 작업복을 입으면 유미가 사라지기 전의 시간 속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어코 되돌려 놓고 싶은 순간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2화에서 계속됩니다.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

 

조명숙 지음 | 문학 | 국판 변형 | 244쪽 | 13,000원

2015년 4월 6일 출간 | ISBN : 978-89-6545-286-7 03810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4월 16일, 내일은 세월호가 침몰한지 2년이 되는 날입니다.

10년, 20년이 지나도 유가족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2024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고부터 10년 뒤를 상상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세월호에서 딸을 잃은 어머니의 점심식사를 그린 「점심의 종류」 입니다.


"이걸 밥이라고 먹어?" 

힐난인지 걱정인지 종잡을 수 없는 투다. 

힐난이기도 하고 걱정이기도 하겠지. 

묵묵히 밥 한 숟가락을 푹 뜬다. 그래. 이건 밥이 아니다. 

영애는 밥 아닌 밥을 입에 넣는다. 

밥과 장아찌를 씹는 입 저쪽, 어금니 하나가 시큰거린다. 

어쩌다 밥알이 푹 빠지기도 하는 그 어금니는 

썩어 뿌리만 남아 주기적으로 지독한 통증을 불러일으킨다. 

치통은 모멸스러운 것이다. 발뒤꿈치에 두툼하게 앉은 각질이라든가, 

큐티클이 자라는 손톱, 수북한 겨드랑이 털 같은 것들처럼, 

치통이 올 때마다 영애는 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그렇게 십 년째 치통과 함께 밥을 먹는다. 치통과 먹는 밥은 밥이 아니다.

-조명숙, 점심의 종류


주인공 '영애'가 먹는 것은 "노리끼리하게 색이 변한 밥", 

"시큼한 냄새"가 나는 시장에서 산 김치, 곰팡이가 핀 무장아찌입니다. 

이런 밥 아닌 밥을 입안에 욱여넣고 있습니다.


보다 못한 여동생은 중국음식점에서 볶음밥을 주문합니다.


"먹어, 좀. 언니 볶음밥 좋아하잖아." 

못 들은 척한다. 옛날 일이다. (…) 

음식은 이제 머릿속에 저장된 하나의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유미가 마음속에 있는 한 어떤 음식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음식을 넣으면 속에 있던 유미가 그것을 몽땅 뒤집어쓰고 말 것 같다. (…) 

영애는 유미가 먹지 못하게 된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됐다. 

유미가 싫어하던 것만 그나마 조금 먹을 수 있다. 

어디에 있니? 

점심은 뭘 먹니? 

매일 주고받던 말의 기억을 다 잊어버린 뒤라면 모를까.

-조명숙, 점심의 종류


세월호 1주기가 조금 지나 열린 작가와의 만남에서, 

조명숙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상 속에서는 어느 평범한 아줌마로 살면서도, 작가로서 놓치면 안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 공감하는 태도였습니다. 작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뒤, 서울에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광화문에 안 갔어요. 안 갔다고 해야 하나, 못 갔다고 해야 하나 헷갈리지만... 제가 좀 그런 것 같습니다. 깊이 공감하고 혼자 막 눈물도 흘리는데 실제로 행동은 안되더라고요. 


지난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럽고 힘들어 하고 있을 무렵에 저 역시도 어린 생명을 보내야 하는 일이 생기더군요. 그때 제가 그랬어요. "그래도 우리는 편안하게 보냈잖아. 그 바다를 보면서 보낸 사람들... 그 사람들은 마음이... 어떨까" 이후에 사건이 수습되는 과정과 몇몇 사람들의 몰지각한 행동들을 보며서 인간으로서 느끼게 되는 모독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

제 스스로는 「점심의 종류가 작위적인 부분이 많아서 (세월호) 유족 분들한테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인간으로 느꼈던 분노, 모멸감을 느끼면서 '아직도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가?'라는 생각도 했고요."


이 날 눈물을 훔치며 말씀하시던 작가님의 모습, 

그리고 함께 눈물 흘렸던 독자분들이 기억납니다.



그때 그 바다의 현재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

이백 명의 승선객 중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일흔일곱 명이었고,

시신으로 건진 사람이 또 일흔일곱이었다.

나머지 마흔여섯은

마흔여섯 날을 두 번이나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조명숙, 점심의 종류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 세상을 떠난 생명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바다. 회한이 치밀어 오를 때는 유미를 담그고 있는 바다에 간다.


-조명숙, 「점심의 종류」


딸을 잃은 뒤 '영애'는 집과 직장을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지만

가끔 바다에 갑니다. 바다에 가는 것을 

이제는 소리도, 냄새도, 움직임도 느낄 수 없는 딸에게 가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부산입니다. 

이곳에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부산의 한 출판사가 특별한 책을 냈다. 작가의 글이 아닌, 바로 출판사를 꾸려가는 그들 스스로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기에 그렇다.

지역출판사 ‘산지니(대표 강수걸)’가 엮은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강수걸 외 지음)는 작은 출판사가 10여 년 동안 부산에서 300여권이 넘는 단행본과 문예잡지 등을 펴낸 기록을 담고 있다.

독서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데다 판매망을 독점한 소수의 대형 서점들, 온라인 유통 활성화 등으로 지역 출판계는 칼바람을 맞고 있고 산지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재 산지니는 전국은 물론 해외로도 책을 유통하는 부산지역의 대표적 출판사로 거듭났지만 지난 10년의 세월은 그리 평탄치 않았다.

지난 2005년 2월 출판사 문을 연 뒤 8개월이 지나서야 처음으로 책을 출간할 수 있었고, 직거래 서점의 부도를 몇 차례 겪으며 고스란히 손해를 보기도 했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창업을 준비하던 강수걸 대표에게 사람들은 “2년도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고, 그 말은 현실이 되는 듯 했다.

하지만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지역의 소소한 일상이나 가치를 담아내는 특화전략으로 어느덧 험난한 출판시장에서 10년을 버티게 됐다.

산지니의 첫 책인 <반송사람들>(고창권 지음)도 부산 변두리에 위치한 반송마을에서 자치공동체를 이끌던 고창권 씨를 강 대표가 수차례 설득한 결과물이다. 또 조갑상 소설가, 최영철 시인과 그 부인인 조명숙 소설가 등 지역 곳곳의 작가들과 손잡고 부산을 배경으로 한 문학콘텐츠를 선보이기도 했다.

“부산의 중견 시인 최영철 선생을 처음 본 것은 광주에서였다. (중략) 영광독서토론회는 지역 서점에서 책과 함께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참석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최영철 시인을 만나게 되었다. 몇 달 전 광주에서 열린 행사 때 뵈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왜 아는 척을 안 했느냐’며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에 매우 반가워 했다.” (109쪽)

이처럼 강수걸 대표와 7명의 직원들은 지역과, 저자와 함께 단순한 책이 아닌 ‘인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다.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보이기 쉽지만 오히려 지역의 저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데 있어 강점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출판사 직원 각자의 경험담과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모은 이 책은 지역의 작은 출판사가 생존해나가는 이야기를 쉽고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한 권의 책이 독자를 마주하기까지의 과정을 엿 볼 수 있으며, 예비 편집자나 지역출판사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진지한 조언도 담겼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15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선정작이기도 하다.

최성은 | 전북일보 | 2016-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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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 - 10점
강수걸 외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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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러분. 잠홍 편집자입니다. 

연휴에는 푹 쉬셨나요? 

부산은 겨울인가 봄인가 싶을 정도로 따뜻한 날씨였는데요.

저는 새해맞이 등산을 갔다가 꽃이 피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12월 말의 철쭉이라니!


그런데 '12월 철쭉'으로 검색하면 사진이 참 많이 나오네요...ㅎ_ㅎ 사진출처: http://bit.ly/1TBwlYh


지구온난화는 현실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기후변화와 신사회계약>을 추천해드리는 바입니다. 

(새해에는 당당한 홍보...!)


2016년이라는 숫자가 슬슬 익숙해져가는 지금

산지니 어워드는 2015년, 저 건널 수 없는 강 너머에 두고 왔으리라 생각하셨겠지요.


훗... 


새해가 밝았다고 방심하시면 아니되는 것입니다.


산지니 어워드의 완결판


산지니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편애하는 


2015년의 귀한 책!


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럼 어서 어서 만나 보실까요.



1/ 다시 시작하는 끝

조갑상 소설집



단디SJ 편집자님이 뽑아주신 책은 제목에서부터 가슴 저릿한 느낌이 오는 

조갑상 작가님의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 입니다. 

"25년만에 재발간된 만큼 의미가 큰 책"이라고 하셨는데요. 


1990년 처음 출간된 이후 다시 만나는 작가님의 첫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은 데뷔작 「혼자웃기」와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사라진 하늘」을 비롯해 총 17편의 중단편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작품 수만큼이나 묵직한 삶의 이야기를 전하는데요. 특히 재출간본에는 등단 후 두 번째로 발표한 소설 「방화」가 수록되어 「혼자웃기」,「은경동 86번지」와 함께 은경동 3부작을 이룹니다. 소설에는 고단한 삶과 그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인물들, 공간에 대한 긴 묘사, 그리고 쉬이 위로하지 않는 시선이 존재합니다. 독특한 상상력과 스타일로 무장한 소설의 홍수 속에서 오랜만에 현실을 삼켜 소화하는 고통을 고스란히 담은 소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끝> 재출간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작가로서 놓치지 않고 추구하려 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선생님께서는

"사람이 억압당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추구하는 바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는 삶과 사회를 줄곧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분단이라는 어려움이 드리워 있어 

더욱 예민했다"고 답하셨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끝 - 10점
조갑상 지음/산지니


2/ 내 안의 강물 


김일지 소설집



엘뤼에르 편집자님은 기억에 남는 책을 <내 안의 강물>을 뽑아 주셨어요. 여성 작가의 소설집으로서 편집하면서 보람을 느끼셨다고 하는데요. 

"중편작의 여운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뭐랄까..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도시인의 느낌이 표지와 잘 어우러져서 올해 제게 의미 있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표지, 정말 예쁘죠? 실물로 보면 색감이 훨씬 멋지답니다.


앞에서 언급된 중편 「내 안의 강물」은, 6년째 동거 중인 한 연인의 삶을 교차하여 그려내고 있습니다. 동거 형태의 불확실한 사랑 속에서 흔들리는 여자(연이)와 그런 그녀에 대한 사랑이 깊어져가는 남자(준규)의 상처와 고민, 변화의 양상이 소설의 주요한 테마이고요. 두 주인공은 오랜 기간 함께 살아왔지만 서로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상대에게 드러내지 않습니다. 깊은 정을 통하는 연인일지라도, 내면의 상처를 보여줄 수 없는 현대인들의 취약한 관계성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결혼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롭게 살아가던 그들은 연이가 수술을 위해 열흘간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계기로 관계가 보다 끈끈해집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학대를 겪었던 연이와 기혼자였던 아버지의 사생아로 태어난 준규는 각기 다른 상처를 서로 드러내지 못하고, 그들 마음의 생채기는 결코 봉합되지 못합니다.



내 안의 강물 - 10점
김일지 지음/산지니




3/ 조금씩 도둑


조명숙 소설집



조명숙 작가님의 <조금씩 도둑>은 온수입니까 편집자님과 제가 공동 선정한 책입니다.


온수입니까 편집자님은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섬세하고 치밀하게 표현했다"고 적어 주셨는데요.

저는 저자와의 만남에서 정미숙 평론가님께서 짚어 주신대로 후각, 촉각을 활용하여 인물과 세계를 만들어내시는 점, 그리고 여성의 삶에 대한 선명한 시각이 감명 깊었습니다.



작가님께 '몸'의 의미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조명숙 작가님은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정신이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몸이 잖아요. 제가 나이가 드니까 그런게 보이더라고요. 어느날 한의원에 갔는데 어르신들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서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아픈 것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의 아픈 부분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픈 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함으로서 그 사람의 내면적인 고통을 조금 더 또렷하게 나타낼 수 있었고요.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4/ 소금 성자

정일근 시집



 추천을 받다 보니 소설집이 많았지만2015년은 산지니 시인선 002가 탄생한 해이기도 합니다.

정일근 시인의 열두번째 시집, 등단 30주년 기념 시집 <소금 성자>에서는 시인의 정제된 철학이 빛을 발하고 있는데요.

표제작에 등장하는 '성자聖子' 히말라야에서 '소금 받는 평생 노역'을 하고 있는 한 노인입니다

네팔 지진 사태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집이 나오게 되자, 정일근 시인은 인세 전액을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네팔 지진 구호성금으로 내놓았습니다올해 초에 네팔 신두팔촉 지역에서 있을 대한적십자사의 구호활동에 직접 참가하시기도 할 예정입니다

온수입니까 편집자님은 "시가 물론 좋았고 앞으로도 산지니가 좋은 시인을 만날 수 있게 다리 역할을 해준 것 같아요."라며 이 책을 뽑으셨어요

<소금 성자>출판진흥원에서 '이번 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되기도 했지요. 정일근 작가님, 축하드립니다!

 


소금 성자 - 10점
정일근 지음/산지니



5/ 패션, 영화를 디자인하다


진경옥 



진경옥 교수님의 <패션, 영화를 디자인하다>는 권디자이너님, 온수입니까 편집자님의 표를 받았습니다.


권디자이너님: "사진이 많은 책이라 안팎(표지/본문)으로 디자인하기 힘들었는데 실물책의 화려한 자태를 보니 모두 용서가 되었죠."

온수입니까 편집자님:  <패션, 영화를 디자인하다>도 추천할게요. 새롭고 신선한 기획이라 좋았습니다. 이 책으로 독자들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산지니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화려한 패션, 그리고 우리를 사로잡는 영화! 놓칠 수 없는 조합이 아닌가 싶습니다. 


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쇼윈도를 바라보며 입었던 검은색 드레스, <7년 만에 외출>에서 환기구 위로 불어온 바람에 치솟아 오른 마릴린 먼로의 흰색 드레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커텐으로 만든 비비안 리의 녹색 드레스…. 

이런 영화의상들은 영화 속 인물의 캐릭터를 잘 보여주면서 동시에 스토리를 이끌어가기도 하고, 그 시대의 패션유행을 이끌어나가기도 했습니. 잘 만든 영화의상은 20, 21세기 패션에서 감초 같은 역할을 맡아왔다고 할 수 있지요. 

<패션, 영화를 디자인하다>는 쉰한 가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패션을 통해 그동안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영화의상의 세계를 조명합니다. 이를 통해 패션과 영화의상의 공생관계와 더불어, 패션디자이너에 비해 주목을 덜 받았던 영화의상 디자이너의 이야기와 함께, 시대를 주름잡았던 영화 속 패션아이콘들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패션, 영화를 디자인하다 - 10점
진경옥 지음/산지니




6/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김비 장편소설



마지막으로 꼽을 책은 김비 작가님의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입니다. 연초부터 '출구 없음' 이라니, 무슨 소린가?! 하실 수도 있지만, 담당 편집자로서 이 책을 뽑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이 '출구 없음'이 사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이미 가지고 있는 힘을 들여다보기를 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트랜스젠더 여성 소설가인 김비 작가님은 장편소설, 에세이 등을 통해 꾸준히 위태로운 삶 속에서 반짝이는 힘에 주목해 오셨습니다. 네 번째 장편소설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은, 가난의 쳇바퀴를 도는 데 지쳐 동반자살을 택하지만, 자살이라는 출구조차 막혔음을 깨닫는 한 가족의 ‘후련한 절망’에서 시작하는데요. 이 소설은 우리를 둘러싼 암흑으로 몸을 던져, 희망이 아닌 다른 언어로 삶을 비추고 있습니다.


작가님과의 책이야기 자리에서 하신 말씀을 발췌해 봅니다.

어느 서면 인터뷰에서 ‘주인공인 남수라는 인물은 왜 영웅적인 인물이 아니고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이냐’ 라는 [질문을 받았어요]. (…) 실제로 보통의 이야기는 회의적이고 비관적인 인물이 어떤 사건이나 이유.. 다른 계기가 있어서 다른 인물로 바뀌거든요. 선하게 깨우친다거나, 내가 이제 바뀌어야 되겠다, 내가 이제 가족을 위해 살아야 되겠다, 이렇게 바뀌게 되는데 제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죠. 저는 인물을 바꾸는 대신 세계를 바꾼 거죠. 그러니까 그런 세계라면 그런 인물이 오히려 더 가장 희망적이고, 그 세계를 믿지 않고, 그 세계를 불신하는 비관적인 그 모습이 오히려 더 가장 희망적이고 생을 향해 가장 힘 있는 발걸음을 내딛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붉은 등, 닫힌 문, 출구 없음 - 10점
김비 지음/산지니



산지니 어워드의 귀환, 느닷없지 않으셨나요 ㅎㅎ;

이렇게나마 산지니 디자이너와 편집자들이 편애하는 

2015년의 책을 낱낱이 공개해 보았습니다.


새해에도 멋진 책들이 등장할 예정인데요.

궁금하시다면 

산지니 어워드 1부: 2016년 달라지는 산지니!

에 힌트가 있습니다 :)


그럼, 저는 신간과 함께 조만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osted by 비회원

10여 년간 250여권 출판 / 지역 작가·단체와 연대도 / 

홍보 다각적 전략에 주력 / SNS 활용 독자 소통 앞장



 
▲ 전국적으로 책을 유통하고 있는 부산 ‘산지니’ 강수걸 대표.

지역에서 책을 만들고 팔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독서인구가 크게 줄어든데다 일부 유명 서점의 판매망 독점, 온라인 유통의 증가 등으로 지역 출판사와 서점의 생존가능성은 희박해지고 있다. 물론 정글 같은 출판시장에서도 차별화전략으로 주목받는 지역출판사와 서점도 있다. 규모는 작지만 독특한 경영전략으로 입지를 넓히며 책을 매개로 지역문화를 만들어 가는 곳들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지역출판’을 주제로 한 릴레이 강연을 열고 있다. 지역에서 책을 만들고, 팔면서 지역공동체를 확장해가는 이들의 고군분투기를 네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10여 년 동안 250여권이 넘는 단행본과 문예잡지, 번역서에 수출도서까지 낸 지역출판사. 부산의 ‘산지니(대표 강수걸)’는 전국적으로 책을 유통하는 드문 지역 출판사다.

부산은 서울 다음의 도시지만 출판 산업은 도시규모에 못 미치는 수준. 지난 2005년 창업당시 출판사가 몇 곳 있었지만 대부분의 지역출판사가 그러하듯 문학인들이 운영하며 문학서적을 만드는 상황으로 여건이 좋지 않았다.

지역 사람으로, 지역에서 콘텐츠산업을 해야겠다고 작정한 강수걸 대표가 출판사를 설립하고 낸 첫 책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김대갑 지음)과 <반송사람들>(고창권 지음). 지역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지역성’은 지역출판사가 특화할 수 있는 최선의 덕목. 강 대표는 ‘영화도시’ ‘항구도시’ 부산에 주목했고, <무중풍경> <영화로 만나는 현대중국> <20세기 상하이영화> 등의 영화관련 서적과 <바다가 어떻게 문화가 되는가> <삼국유사, 바다를 만나다> <해양풍경> 같은 바다이야기를 꾸준히 만들어냈다. 지역 작가와도 손을 잡았다. 조갑상 소설가, 최영철 시인, 조명숙 소설가부부 등 부산을 대표하는 작가와 함께 책을 만들어 전국에 유통했다. 지역 작가들과의 작업이 출판사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

출판 장르 확장에도 공격적으로 나섰다. 철학 등 인문·사회과학 서적도 출판했는데, 지역 대학의 교수와 시민단체 등과 협업, 인도와 일본의 종교·역사·철학서적도 펴냈다.

‘만든 책’을 ‘잘 팔기’위해 다각적인 전략도 모색했다. 무엇보다 홍보활동에 주력했다. 언론사에 책을 적극 알리고, 출판사 출간목록을 만들어 온·오프라인으로 독자들에게 제공했다. ‘산지니’가 주목받는 활동의 하나는 지역과의 활발한 소통이다. 독자와 저자가 만나는 자리를 자주 만든다. 서점, 대학, 시민단체, 독서모임 등 독자를 만날 수 있는 곳은 모두 찾아다니며 독서문화 확산에 나선다. 독자와 소통하지 않고는 출판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오프라인의 행사는 모두 블로그나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SNS와 연계한다. 지역 출판사, 서점, 도서관, 대학이 공생하는 방안 모색에도 앞장서고 있다.

  
▲ 출판사 산지니 블로그에는 산지니 소식뿐 아니라 부산지역과 전국 출판계 소식이 다양하게 소개되고 있다.

강 대표는 세계시장에도 관심이 많다. 지난 2013년 <부산을 맛보다>(박종호 지음)라는 책을 일본에 첫 수출했는데, 국제도서전에 책을 꾸준히 출품하고 있다.

‘산지니’의 가족은 강 대표를 포함해 모두 8명. 대한민국학술원, 문화관광부, 문화예술위원회 등이 선정하는 우수도서를 여러 권 만들어내고, 지역출판정책을 이끄는 성공모델로 꼽히지만 미래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강 대표는 “지역에 있다는 것이 불리하지만, 결정적인 장애는 아니다. 관건은 기획능력과 다품종 소량출판을 통해 책을 꾸준히 시장에 내놓는 것이다. 지역의 특색을 살린 책, 서울의 출판사들이 다루지 못한 보석들을 책으로 만들어 틈새시장을 찾아낼 수 있다”며 지역출판계에 힘을 불어넣고 있다.


은수정 | 전북일보 | 2015.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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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단편 9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 통해

삶에 휘둘리지 않는 작가 뚝심 엿보여

"달라졌다. 조명숙 작가의 소설이 달라졌다." 조명숙 작가의 네 번째 창작집 <조금씩 도둑>(산지니 펴냄)을 읽고 난 다음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그의 소설이 새로 발표될 때마다 읽어왔던 터라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조명숙의 소설은 <조금씩 도둑>과 그 이전의 소설로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의 소설이 조금은 다정하고,  정감이 있는 푸근한 소설이었다면 <조금씩 도둑>은 훨씬 담담한 진술방식을 택하고 있다.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남아있는 수분 같은 걸(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말끔하게 닦아낸 다음 독자에게 내밀고 있다고나 할까. 또 하나는 작가가 타임캡슐을 타고 과거로 되돌아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이 젊어졌다'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다. 

 
작가에게 '담담한 진술' '젊어진 문장의 느낌'이라는 말을 했더니, 작가는 "다행"이라며 웃었다. 작가는 "초창기 작품들은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진솔한 의미와 상황을 문장에 담게 됐다. '튀지 않는 진술'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며 "나이가 든 만큼 좀 노련해진 것 같다고나 할까. 젊었을 때처럼 애를 쓰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쓰기도 한다"고 말했다. 
 
창작집 <조금씩 도둑>에는 9편의 중단편이 수록됐다. '이치로와 한나절', '점심의 종류', '러닝 맨', '가가의 토요일', '거기 없는 당신', '사월', '나비의 저녁', '조금씩 도둑', '하하네이션'.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은 매일 매순간의 시간을 '꾸준하게 메워가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사실 등장인물들은 제각각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감당하다 못해 쓰러지기 직전이다. 그 삶에 휘둘리지 않고 담담하게 진술할 수 있는 작가의 뚝심은 이 창작집 책갈피마다 엿보인다. 
 
'점심의 종류'는 세월호로 딸을 잃은 여인 영애의 이야기이다. 이 소설 어디에도 세월호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소설의 몇 페이지가 넘어갈 때까지 지독한 아픔을 견뎌내는 여인의 독백인 줄로만 알았다가 세월호 이야기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소설의 배경은 오는 2024년. 가족을 잃은 채 10년을 살고 있는 한 여인의 일상과 기억을 보여준다. 딸 유미를 그만 잊으라고 말하는 동생 영미를 향해 물이 담긴 컵을 던지는 영애. 소설을 통 털어 영애가 보인 격렬한 행동은 이것이 전부이다. "매일 조금씩 희미해지는 유미, 그렇기 때문에 영애는 살아 있어야 했다. 내 속에서도 점점 희미해지는 유미를 누가 기억해줄까?" 딸을 잃은 채 10년 째 살고 있는 어머니의 존재 이유에는 이런 슬픔이 짙게 배어있었다. 그 어머니의 하루 중 몇 시간을 다룬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가가의 토요일'은 부산 지하철 수영역 입구에서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파는 한 남자 가가의 토요일을 그린 소설이다. 태어날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는 가가는 '가가'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 가가는 새벽에 일어나 작은 수레를 끌고 가서 정성을 다해 맛있는 프렌치토스트를 만든다. 성실한 노동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던 가가는 수영로터리를 지나가는 시위대열과 만나게 된다. 이 소설은 2005년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렸던 부산의 하루와 가가의 토요일을 담고 있다. 1987년 6월 부산역 광장에서 뻥튀기를 팔던 가가는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함성과 외침 속에서 귀가 열리는 것을 경험했다. 가가는 '가가'를 외치며 그 시위대와 함께 걸었다. 그때가 다시 온 것인가 하면서 가가는 2005년의 토요일에도 시위대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난 뒤 그 소리들은 다시 사라져버리고 가가는 혼자 낡은 슬레이트 집으로 돌아간다. 
 
조명숙 작가는 "전통적인 소설 플롯을 버리고,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팽팽한 긴장으로 계속 이어가는 이런 방식을 '지진성 플롯'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는 주변의 모든 것이 소설로 보인다. 주위의 힘든 상황, 참아내기 힘든 사람들도 모두 객관화 되어 보인다. 그런 것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잔영만 남았을 때 어느 순간 그 잔영이 문장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하하네이션'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작가의 꿈을 꾸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장차 작가가 되려고 했지만, 결코 작가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떤 소설이 현실보다 리얼하겠어?" 
 

박현주ㅣ김해뉴스ㅣ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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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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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뒷모습에서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독서후기

 


 

 

 

 

 

 

'이 단발머리 여자는 누굴까?'
'그녀가 읽고 있는 저 책을 뭘까?'
'그녀는 무엇 때문에 고개를 돌렸을까?'

 

   『조금씩 도둑』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참 단순하게도 표지의 여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한가로이 책을 읽고 있던 여자. 창밖에 일어난 어떠한 일(사건)로 하여 순간 고개를 돌린 듯한(그녀의 단발머리가 흔들렸거든요!) 모습은 평화로운 여자의 시간이 깨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잔잔한 삶에 예고 없이 다가온 어떤 사건, 그리고 그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 제게『조금씩 도둑』의 첫인상을 그러했습니다.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내다본다'

 

 「점심의 종류」의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나와 상관없이 창밖의 풍경들은 시간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갑니다. 밖의 모든 것들은 10년 뒤의 미래를 살고 있지만,「점심의 종류」의 주인공은 아직 10년 전,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이 소설의 앞부분을 다시 읽었을 때, 잔잔한 창밖 모습이 왠지 환상처럼 느껴졌습니다. 밀려드는 시간의 홍수가 아픔을 채 덮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고요한 풍경들이 진짜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2014년 4월, 시대적인 상처가 되어버린 '세월호 사건'. 소설을 그 사건이 발생한 뒤 10년 후 미래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영미가 볶음밥 접시를 들이민다. "먹어, 좀. 언니 볶음밥 좋아하잖아." 못 들은 척한다. 옛날 일이다. 볶음밥을 좋아했고, 만두를 좋아했다. 하지만 진흙이 메워진 것 같은 머릿속, 누런 위액이 구석구석 고여 있는 것 같은 뱃속, 스멀거리는 통증과 가려움으로 채워진 뼈와 살…. 고통의 증거들 속에서 배회하는 기억이 식욕을 가로막고 있다.
   
    지난 저자와의 만남(http://sanzinibook.tistory.com/1367)을 통해서 조명숙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식지 않은 슬픔, 분노, 모멸감을 느끼며 '작년에 일어난 일'이 아닌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편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창 밖의 풍경 속에 살고 있는 걸까? 궁금해졌습니다.

 

  「점심의 종류」를 비롯해 2008년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앞두고 촛불시위를 벌이는 애인을 찾는 여자의 우울한 일상을 그린 「거기 없는 당신」, 2005년 APEC정상회의를 둘러싼 어떤 사회적 기미를 ‘가가’의 하루를 통해 풀어낸 「가가의 토요일」까지. 무엇보다 이번 작품집에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인물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어떤 소설이 현실보다 리얼하겠어?”

「하하네이션」의 작가 지망생 '유'가 한 말처럼 작품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블라인드를 올리고 현대사회의 리얼한 모습, 그대로를 바라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조금씩 도둑』의 주인공들은 모두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이치로와 한나절」의 '고아'인 주인공,「러닝 맨」은 '자식을 잃을 위기에 처한 아버지',「사월」은 '실질적인 결혼 생활이 끝난 여성',「나비의 저녁」의 남자의 충격적인 죽음을 이겨나가며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여자 등. 삶의 상처가 몸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마음의 응어리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소설들 속에서 이런 고통을 마주하는 것은 매우 힘이 듭니다. 하지만 잔잔하게(하지만 뾰족하게) 밀려드는 고통을 참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것은 아픔 끝에 묻어있는 따뜻한 시선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은 표제작이기도 한「조금씩 도둑」입니다.

 

   "띠띠는 피융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초라하고 고되게 나이를 먹은 피융이 눈앞에 있었다. 띠띠는 피융의 곁에 누웠다. 피융에게서 시큼한 시장 냄새와 헤나 냄새가 함꼐 풍겼다. 띠띠는 피융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띠띠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훔쳐와 버려서 피융은 그 자체로 별로 남은게 없었다."

 

   용희, 선경, 영미 대신 피융, 바바, 띠띠라는 이름으로 우정을 쌓아가던 열여섯의 소녀들.  꿈 많던 청년기에서 중절 수술의 후유증을 얻게 되는 고단한 삶에 이르기까지. 세 소녀는 서로의 아픔을 조용히 끌어안으며 함께 생을 견뎌 나갑니다. 특히 친구 '피융'에게 조금씩 마음을 주고만 '띠띠'의 마음은 애달프게 다가왔습니다. 소설 중간마다  "괜찮아?"라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내가 아닌 타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안부를 물어보는 사소한 말 속에서 왠지 모를 위안을 얻습니다. 아마, 이 세 소녀가 고단한 생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가장 큰 힘이 이 말 속에 들어있었던 것을 아니었을까요? 

 


   마지막 장을 덮으며 다시 책의 표지를 봤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으로 느껴졌던 여자의 모습에서 창밖의 세상을 바라보고 삶의 고통을 잊지 않는 여자의 따뜻함이 느껴졌습니다. 아픔과 위로,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고된 현실을 걸어나갈 힘을 얻습니다. 9편의 작품들을 만나며 블라인드를 걷고, 밖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씩 도둑』은 아픈 현실 위에서도 생의 꽃을 피우는 많은 사람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전하는 책인 것 같습니다. 아마, 표지 속 여자의 뒷모습도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닐까요?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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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연제구 거제1동 | 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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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해가 쨍쨍했던 목요일 (6/4), 구덕도서관에 다녀왔습니다.

앞마당에는 폐백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고

도서관을 두르는 울타리 건너편으로는 숲으로 난 산책길이 보이는 곳.

나무그늘 아래 책 읽기 좋은 

아담한 '동네 도서관' 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도서관 구경/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이 날 제가 도서관에 간 건

가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올해의 원북원부산 선정도서, 최영철 시인의 『금정산을 보냈다』



"다 말하지 않고 더 말하는" 시


최영철 선생님은 시가 오늘날에는 소수자의, 변방의 장르가 되었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여셨습니다.

80년대에는 문창과 학생들 대부분이 시를 쓰는 이들이었던 데 비해 

오늘날은 드라마나 시나리오 작가를 지망하는 이들이 대다수라고 합니다.

쓸모와 효율의 논리가 지배적인 지금, 시는 주변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그러나 "다 말하지 않고 더 말하는" 시의 속성 때문에

최영철 시인은 "그래도 시가 담당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고 하십니다.


길게 설명할 것 없이 시를 한 편 나누기로 합니다. 

선생님께서 낭독하실 테니, 저희 참석자들은 시를 써보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시를 눈으로 읽다가 소리내어 말하고 들으면 다르듯이, 

써보는 것도 느낌이 새롭습니다.


    첫사랑 

              -이우걸

배경은 노을이었다

머릿단을 감싸 안으며

고요히 떴다 감기는

호수 같은 눈을 보았다

내게도 그녀에게도 

준비해둔 말이 없었다


3장 6구로 이루어지는 시조에서는, 마지막 두 구가 클라이막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의 마지막 두 줄이 그리는 풍경은 뜨겁기는커녕 오히려 심심합니다.

최영철 시인은 청산유수로 상대를 유혹할 수 있다면 그건 첫사랑이 아닐 것이라 하셨습니다.

아직 경험이 없어서, 어떤 말을 하면 좋을지 몰라 머뭇거리는 

그 순간을 추억하는 시를 함께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시인은 근본적으로 바람쟁이다"


시의 또 다른 특징은 익숙하고 훈련된 것이 아니라 

낯설고 처음인 것마냥 세상을 경험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께서는 "시인은 근본적으로 바람쟁이다"라는 선언(?!)을 하셨습니다.

매년 돌아오는 봄이고 꽃이지만, 시인은 그 꽃을 매번 새롭게 봅니다.

"수없이 마음을 뺏기는" 사람이 시인인 것입니다.


"동네에 자기만의 나무를 가져보라"

최영철 선생님께서 즐겨 찾으시는 수영 사적공원의 곰솔나무


시인은 표제작인 <금정산을 보냈다> 이야기를 꺼내시며

가난한 아버지 때문에 아들이 요르단으로 떠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아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시인들은 사실 엄청난 부자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빈손이어야 삼라만상이 자기에게 안깁니다. 

좋은 차 타고 흙길 밟지 않는 사람에게는 들꽃이 보이지 않습니다."


"동네에 자기만의 나무를 가져보세요." 라는 제안을 하실 때에는

선생님이 오래 사시던 수영에 있는 

사적공원의 푸조나무에 대한 시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잎-푸조나무 아래


동반 강사로 자리해주신 조명숙 소설가님!


최영철 시인의 짧은 강연이 끝난 뒤, 

조명숙 소설가의 진행으로

시를 함께 읽고, 읽은 시에 대한 질문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표제작 <금정산을 보냈다>를 참가자 분의 낭독으로 함께 읽고,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질문: 이 시의 주제는 부모의 사랑입니까? 시가 너무 어렵습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같은 시는 평소에 쓰는 말로 쓰여져 있어서 이해하기 쉬운데요.

답: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있어야 시입니다. 이것은 시 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좀 몰라야 시라고 생각합니다.

질문: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시를 이해할 수 있나요?

답: 시의 관문은 이해가 아닙니다. 이해는 서사적입니다. 시는 공감의 예술입니다. 또, 시는 이해되기를 바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 걸 볼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해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문학적 소양이 없는가'하지 마시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합니다. 이해의 통로로 접근하기보다, 느낌을 주는 시를 찾아 읽으시길 바랍니다. 



번외 질문: 시집 뒤에 실린 대담에서 선생님께서는 들꽃을 만지실 때도 꼭 "만져봐도 되겠습니까?"하고 묻고 만지신다 읽었습니다. 정말인가요?

답: 네, 정말 그렇습니다. 물어봐야 되요. 꽃을 만져보면 꽃이 부끄러워서 몸도 비틀기도 하는데, 그 정도로 내밀한 소통을 하는 게 시심을 가진 자들이 누리는 특혜라고 생각합니다.


 

강연회를 마치고 나오니 구덕도서관의 얼굴마담이라는

길고양이 한 마리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도서관을 드나드는 사람마다 계단참에 쭈그려 앉아

고양이를 반갑게 쓰다듬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시가 우리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금정산을 보냈다 (반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금정산을 보냈다 (양장)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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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명숙 ‘조금씩 도둑’ 저자와의 만남 성황리 개최


상실, 그 이후에도 삶은 이어진다. 
 육체의 고통 속, 우리는 절절한 외로움을 느낀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마음이 아프다는 것.  여기, 자신의 아픈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글을 쓴 소설가가 있다. 
 200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한 후 작품집 ‘댄싱 맘’과 장편소설 ‘바보이랑’ 등을 쓴 소설가 조명숙<사진>. 그가 최근 소설집 ‘조금씩 도둑’을 출간하고, ‘저자와의 만남’이라는 행사를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그날 그 현장을 찾아 조명숙의 문학, 그리고 그녀의 삶에 대해 들여다봤다. 
 특히 이날 행사에는 ‘정미숙’ 문학평론가가 대담자로 나서 유쾌한 대화를 이끌었다.
 “어떤 소설이 현실보다 리얼하겠어?”(221쪽)라고 말하는 조명숙. ‘리얼리즘’. 즉 현실인식이 그녀가 소설과 마주하는 방식이다. 
 이날 행사에서 정 평론가는 잔잔하게 마음에 울림을 전하는 그녀의 소설 속 ‘아픈 여성’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짚으면서 ‘고통의 감각’을 잃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전 보다 나이가 들고 몸이 나약해졌지만 여전히 사건과 사람에 대해 공감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학의 힘이 약해진 것이 현실이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문학의 힘이 세다고 믿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스물셋에 알 수 없었던 일은 서른셋에 알게 되고, 서른셋에 알 수 없었던 건 마흔셋…쉰셋…예순셋…. 그렇게 삶의 슬픈 의미는 아주 늦게야 알게 된다는 것을.”(54쪽)
 그녀 특유의 고통의 감각을 가장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소설이 바로 ‘점심의 종류’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10년 후 모습을 그린 이 소설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병치해 소설 속 인물 ‘영애’가 영화 속 캐릭터와 자신의 모습을 일치 시키며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듯 그렸다.
 표제작 ‘조금씩 도둑’ 속 표면적으로는 동성애 코드가 담긴 소설이지만 그 속을 깊게 들여다 보면 ‘여성적 연대’가 가진 힘에 대해 그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각각 파란만장한 사연으로 남성의 부재 속 살아가는 중학교 동창 피융, 띠띠, 바바. 모든 게 결핍된 그들의 삶 속에서 그래도 조금씩 마음을 훔쳐가는 너의 ‘사랑’이 있다.
 정 평론가는 이 소설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녀의 소설 속 대부분의 작품에서 ‘남성적인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시인의 아내로 살아가면서 강해져야 했던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지 않았나 싶다”고 답했다.
 “아버지는 아직 달리고… 있다.”(83쪽)고 끝나는 소설 ‘러닝 맨’은 지난해 여동생을 폐암으로 잃은 그녀의 개인적인 아픔이 담겨있다. 
 이번 소설집에는 종이공장기계에 빨려 들어가 죽은 남편을 기억하기 위해 종이를 만드는 오윤에 대해 그린 ‘나비의 저녁’을 비롯해 그녀의 치밀한 문체를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이 수록돼 있다. 
 이날 저자와의 만남 행사에는 웃음과 눈물이 공존했다. 그것이 마치 인생이고 그것이 마치 소설인 것처럼.
 조명숙 그녀가 그린 세상은 쓸쓸했지만, 외롭지 않았고 고요했지만 적막하지 않았다.
 조명숙. 산지니. 1만3000원.


이경관ㅣ경북도민일보ㅣ2015-05-26

원문 읽기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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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의 조각들'

이번 대담자로 나서 주신 정미숙 문학평론가는 이 카피가 조명숙 작가님의 작품을 잘 나타낸다고 말했습니다. 소담스럽게 차려진 작품들 안으로 비치는 삶의 민낯들은 아프고 치열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조명숙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계속해서 삶을 이어갈 희망과 이상을 만나게 해줍니다. 66회 산지니 저자와의 만남은 아프지만 따뜻했던 소설집『조금씩 도둑』의 조명숙 작가님과 함께 했습니다.

 

    

 

저자: 조명숙

1958년 김해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국어국문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96년 『진주가을문예』와 2001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창작집 『헬로우 할로윈』,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 『댄싱 맘』(2012 향파문학상 수상)과 장편소설 『바보 이랑』, 『농담이 사는 집』 등을 썼다. 2006년 장편동화 「누가 그랬지?」로 14회 MBC창작동화대상을 받았으며, 그림동화책 『샘바리 악바리』, 『아기뱀 꼬물이』를 냈다. 그 외에 산문집 『우리 동네 좀머씨』가 있고, 아내들을 위한 연시집 『하늘 연인』을 엮었다.

 

이번 저자와의 만남에서는 대담자로 정미숙(문학평론가) 선생님께서 참석해 주셔서 보다 유쾌하고 재밌는 시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정미숙(이하 정) 

오늘 부부의 날인데 공교롭게도 조명숙 선생님과 최영철 선생님을(조명숙 선생님과 최영철 선생님의 소설가  시인 부부이십니다.) 함께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더불어 모범적인 문인 부부를 보며 본받아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웃음)

 

조명숙 선생님의 작품들은 문체가 친밀하고, 탄탄한 구성을 통해 집요하게 타자들의 삶과 상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조금씩 도둑』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참으로 치열하고 따뜻한, 그리고 아픈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표제작인 <조금씩 도둑>은 제목의 참신함에 반했고, 동성애적인 코드와 여성연대, 견딤을 만나며 참으로 아름답게 읽었습니다. 이외에도 조명숙 선생님의 『조금씩 도둑』에는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치로와 한나절>의 주인공은 '고아'로 설정되어 있고, <점심의 종류>는 시대적 상처인 '세월호 사건', <러닝 맨>은 '자식을 잃을 위기의 아버지', <가가의 토요일>은 '사랑이 모두 과거에 끝난 쓸쓸한 여성', <사월>은 '실질적으로 결혼 생활이 끝난 여성' 등 행복하지 않은 인물들의 집요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문맥을 쉽게 건너뛰지거나 과장하지도 않기 때문에 더욱 고통스럽습니다.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사람들이 현을 직시하는 모습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절망-희망, 현실-이상의 변주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먼저, 표제작 <조금씩 도둑>에서 띠띠와 피융의 동성애 코드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동성애, 결혼, 여성주의는 어떤 것입니까?

 

조명숙(이하 조)

페미니스트냐, 동성애자냐를 떠나서 기본적으로 여자인 내가 어떻게 여성을 보는가? 그 관점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자로 살아가면서 제 존재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봤던 것 같고요.

 

선생님의 소설들에서는 (남성적인) 남성이 드러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혹시 '남성은 믿을만한 존재가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시는 것인가요? (웃음) 

 

(웃음) 남자에 대한 신뢰도가 굉장히 낮습니다. (웃음) 개인적으로는 집의 중심은 여자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제가 배우기로는 여자는 남자보다 약하다고 배웠는데 살아가면서 느끼는 바로는 그 반대인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것도, 가정을 지켜 나가는 것도 여자의 영향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남자들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물질적인 것보다 여자, 아이들이 가지는 문제에 대한 깊은 공감이 우선돼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것이 삶 전체를 포용하는 여성성이라 생각하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오랜 신뢰에 기반한 동성애적 코드가 인상적이었는데요. 저 역시도 동성애를 관계에서의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도둑>에서 조금씩 진행되는 동성애(사랑)가 굉장히 현실적으로 받아지면서, 한편으로는 여성주의와 맞물려 있다고 보는 것에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 소설에는 '헤나 냄새', '시큼한 시장 골목 냄새'와 같이 후각이 많이 드러나는데 이는 굉장히 감각적이란 느낌을 줍니다. 작중 인물들이 대부분 몸이 아픈 상태로 등장하는데, 이는 오히려 세상과 더 밀착되어 있고 정신과 감각이 더 열려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감각적 표현들이 인물들의 아픔을 더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몸', '아픈 몸'은 어떤 의미인가요? 

 

 

정신이나 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몸이 잖아요. 제가 나이가 드니까 그런게 보이더라고요. 어느날 한의원에 갔는데 어르신들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서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아픈 것은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의 아픈 부분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아픈 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함으로서 그 사람의 내면적인 고통을 조금 더 또렷하게 나타낼 수 있었고요.

 

선생님의 소설이 잔잔하게 와닿는 것은, 초심을 잃지 않는다고 할까요? 고통의 감각을 잃지 않는 느낌을 받아요. 조명숙 선생님도 이제 '나 조명숙이야'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셨는데, 이전 작품들에서도 느꼈던 아픈 여성들을 바라보는 그 감각이 여전하단 생각이 듭니다. 반면 몸의 문제를 여성과 인간의 경계로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성숙되었단 느낌을 받았고요. 

 

일상 속에서는 어느 평범한 아줌마로 살면서도, 작가로서 놓치면 안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사건이나 사람에 대해 공감하는 태도였습니다. 작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뒤, 서울에 몇 번 간 적이 있는데 그때마다 광화문에 안 갔어요. 안 갔다고 해야 하나, 못 갔다고 해야 하나 헷갈리지만... 제가 좀 그런 것 같습니다. 깊이 공감하고 혼자 막 눈물도 흘리는데 실제로 행동은 안되더라고요. 지난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 때문에 굉장히 혼란스럽고 힘들어 하고 있을 무렵에 저 역시도 어린 생명을 보내야 하는 일이 생기더군요. 그때 제가 그랬어요. "그래도 우리는 편안하게 보냈잖아. 그 바다를 보면서 보낸 사람들... 그 사람들은 마음이... 어떨까" 이후에 사건이 수습되는 과정과 몇몇 사람들의 몰지각한 행동들을 보며서 인간으로서 느끼게 되는 모독감 같은 것을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제가 <점심의 종류>에서 세월호에 대한 이야기를 부탁 드릴려고 했는데, 이렇게 눈물을 흘리며 이야기해 주시니 바로 이야기 해야 겠네요. 선생님의 소설 대부분들이 과거에 이뤄졌고 현재에 반추하는 형식인데 <점심의 종류>는 10년 후의 미래에 와 있더라고요. 미래에 존재하는 여자가 밥을 잘 못 먹는 상황을 보면서 박완서 선생님의 나목이 떠올랐습니다.

 

제 스스로는 <점심의 종류>가 작위적인 부분이 많아서 (세월호) 유족 분들한테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인간으로 느꼈던 분노, 모멸감을 느끼면서 '아직도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가?'라는 생각도 했고요.

 

 

다른 소설들에서 결혼 생활이 피폐적으로 끝나지만 대안적인 가족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런데 <점심의 종류>를 읽으면서 선생님께서 얼마나 충격을 받으셨는지 느껴졌던 것 같아요. 동생의 위로도 10년이란 시간이 흘러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보면서 어떤 대안이나 여지가 없는 것이구나... 싶기도 했고요. 또 한편으론 문제는 가족 안으로, 쓸쓸함의 패턴으로 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님의 소설에서의 보잘 것 없는 남성들을 작파하고 남성과의 연대를 통해서 한 번 휘젓고 싶은 바람도 있습니다.(웃음) 

 

(웃음) 선생님은 참 용감하신 것 같습니다. (웃음)

 

제가 좀 용감하지요? (웃음) 선생님의 소설이 좋은 말로 하면 성숙하지만 나쁜 말로 하면 여성주의에 상처 받아서 기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많이 늙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성숙이죠! (웃음)

 

제가 작중 인물들을 힘없이 설정한 것은 어찌보면 불가항력적인, 우리가 정말 많이 싸우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쳐지지 않은 결과들이 모여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하게 요즘은 자갈을 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문학으로서나마 꿈틀거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양아름 편집자의 남자친구가 제게 정면으로 물어보더라고요. 문학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한다고 생각하냐고. 저는 그냥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문학의 힘이 크다고 생각하며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요. 지금은 기대가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얼마 전, 늦둥이 아들이 박종철 관련 책을 읽고는 열사라면서 열변을 토하더라고요. 그것을 보면서 책(혹은 문학)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아들과 세대차이가 제법 나는데 그것도 극복하고 말이죠. (웃음)  

 

 

(문학에 대한 기대가 없다)이렇게 말하면 안되는데, (웃음) 소설 쓸 때는 저의 마음이 솔직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후배 작가들은 문학의 힘을 믿고 발휘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비의 저녁>에서 결국 남편이 죽고 오윤이 혼자 남겨져 종이를 만들다 기계 속으로 들어가는 부분이 굉장히 상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 부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은데 저는 정말 신나게 썼습니다. 이 부분은 저의 지인이 종이 공장에서 근무를 할 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대요. 그래서 '이거 소설감이다' 싶으면서도 '거짓말 아니냐'고 물었는데, 실제로 신발만 남겨져 있었다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3년 뒤에 소설이 나오고 읽어나 보라고 보냈는데, '그냥 뻥을 친 건데 거기에 뻥이 더해져 이렇게 작품이 됐네.'라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웃음) 그리고 저는 이 작품이 실패했다고 생각한 이유가 연애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썼거든요.

 

선생님, 연애... 연애는 아닙니다.

 

안 그래도 다른 분들도 연 애소설이 아니라 예술가 소설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저는 가끔씩 선생님의 글을 읽다 보면 소설이지만 굉장히 비유나 시적인 표현이라고 느낄때가 있습니다. 혹시 남편 분인 최영철 선생님의 영향인 것인지요?

 

제가 등단이 늦지 않습니까? 저는 작품 활동의 공백도 있었고요. 제가 십 몇년이 지난 후에도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한편으로는 문학의 성취를 이룬 시인하고 사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열패감도 들고... 그래도 '저 사람은 내 손바닥 안이다' 싶은 위로를 하기도 해요. (웃음)

 

 

이번 저자와의 만남에는 웃음과 눈물이 함께 했던 진한 시간이었습니다. 시간 관계상 더 많은 이야기와 조명숙 선생님께 드리고픈 질문은 접어둬야 했지만, 조명숙 선생님의 작품으로 더 깊게 만나보기로 약속하고 아쉬움 마음을 달랬습니다.

 

 

 

▶▶ 조명숙 작가님의 작품을 만나보세요!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댄싱 맘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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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란 것이 어느 시점에 착상해서 언제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 

2005년의 사건과 5개월이 되기 전에 써 버린 2014년의 사건이 뒤섞여 있다.”

_조명숙, 「작가의 말」중에서


안녕하세요, 산지니입니다.

어느덧 5월, 여름이 훌쩍 다가왔습니다만,

아직도 많은 이들의 몸과 마음은 지난해 4월을 서성이고 있습니다.


상처가 있다면 잊으려 하기 전에 그것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말 한마디라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작은 바램에서, 저자와의 만남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번 만남의 주인공은 

소설집『조금씩 도둑』의 지은이 조명숙 작가님이십니다. 

2012년『댄싱맘』출간 이후 3년 만의 작품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에 대한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입니다.

세월호 사건 10년 후를 상상하며 한 유가족의 슬픔을 그리고,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서 애인을 찾는 여자의 이야기,

이제는 마흔이 된 소녀시절 친구들의 엇갈린 우정과 사랑 등을 담았습니다.


이번 만남에서는 

문학평론가 정미숙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상실, 그 이후에도 살아가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볼 예정입니다.



참가비는 무료이며, 다과가 제공됩니다. 

추첨을 통해 산지니 책을 받으실 기회도 있으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일시 : 2015년 5월 21일(목) 오후 7시
장소 : 러닝스퀘어 서면점 (동보플라자 맞은편 모닝글로리 3층)

대담자: 정미숙 (문학평론가)

문의 : 러닝스퀘어 051-816-9610




상처 입은 여성들의 마음을 살피는 공감의 태도-『조금씩 도둑』(책소개)



 

저자: 조명숙

1958년 김해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국어국문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96년 『진주가을문예』와 2001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창작집 『헬로우 할로윈』,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 『댄싱 맘』(2012 향파문학상 수상)과 장편소설 『바보 이랑』, 『농담이 사는 집』 등을 썼다. 2006년 장편동화 「누가 그랬지?」로 14회 MBC창작동화대상을 받았으며, 그림동화책 『샘바리 악바리』, 『아기뱀 꼬물이』를 냈다. 그 외에 산문집 『우리 동네 좀머씨』가 있고, 아내들을 위한 연시집 『하늘 연인』을 엮었다.

 

산지니 출판그룹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sanzinibook 

산지니 출판그룹 트위터 : http://twitter.com/sanzini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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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해와 부산에서 책에 관한 훈훈한 이야기를 여러 건 접했습니다.

 

▲ 이광우 김해뉴스 사장(부산일보 이사).

'김해의 책 추진협의회'는 매년 한 권의 책을 선정해 시민들이 함께 읽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작가와의 만남을 비롯한 독후 활동도 다채롭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2015 김해의 책'으로 성석제 작가의 <투명인간>과 어린이 도서 <어느 날 구두에 생긴 일>을 선정했습니다. 어린이 도서를 선정하는 곳은 김해가 유일하다고 합니다. 김해에 '책의 꽃'이 만발하길 바랍니다.
 
부산에서는 부산일보사와 부산시·부산시교육청이 공동주최하고 부산지역 25개 공공도서관이 주관해, 부산을 대표하는 '올해의 책'을 선정하고 있습니다. '원북원부산(One Book One Busan)운동'입니다. 직접 책을 읽은 시민들이 온·오프라인 투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최영철 시인의 시집 <금정산을 보냈다>(산지니)가 채택됐습니다. 12회 째를 맞는 동안 시집이 '원북원'으로 선정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최종 후보 도서로는 <상실의 시간들>(최지월), <세상물정의 사회학>(노명우),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오연호), <저녁이 깊다>(이혜경) 등이 있었는데, <금정산을 보냈다>는 총 투표인단 1만 3천649명 중 3천206표를 얻어 1위를 했다고 합니다. 
 
책의 제목으로 쓰인 시 '금정산을 보냈다'는 '아들이 중동 갈 적에 가슴 주머니에 쥐어 보낸 무언가에 대해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인은 열사의 나라로 일하러 떠나는 아들에게 금정산을 선물하고 있는 것입니다. 금정산처럼 묵직하고 넉넉하면서도 자식 걱정에 늘 마음 한 구석이 저린 부모의 마음이 읽힙니다. 한편으로는 세계가 마침내 금정산 같았으면 좋겠다는 염원도 보입니다.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먼 서역으로 떠나는 아들에게 뭘 쥐어 보낼까 궁리하다가 나는 출국장을 빠져나가는 녀석의 가슴 주머니에 무언가 뭉클한 것을 쥐어 보냈다(줄임) 서역의 바람이 드세거든 그 골짝 어딘가에 몸을 녹이고 서역의 햇볕이 뜨겁거든 그 그늘에 들어 흥얼흥얼 낮잠이라도 한숨 자두라고 일렀다 막막한 사막 한가운데 도통 우러러볼 고지가 없거든 이걸 저만치 꺼내놓고 그윽하고 넉넉해질 때까지 바라보기도 하라고 일렀다 그 놈의 품은 원체 넓고도 깊으니 황망한 서역이 배고파 외로워 울거든 그걸 조금 떼어 나누어줘도 괜찮다고 일렀다" (시 '금정산을 보냈다' 일부)
 
최 시인은 김해 생림 도요마을에서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도요'란 이름의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영철이 하고 농사짓기> 같은 따뜻한 책들이 여러 권 나왔습니다. 도요출판사는 매월 저자들을 초청해 '맛있는 책읽기'란 고급 문화행사를 열고 있기도 합니다. 김해로서는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고로, 최 시인은 <김해뉴스> 창간 초기에 '금바다칼럼'의 필진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마침 최 시인의 문학 도반이자 부인이면서 <김해뉴스>에 '김해의 설화'를 연재 중인 조명숙 소설가도 네 번째 소설집 <조금씩 도둑>(산지니)을 펴냈습니다. 조 소설가는 생림에서 태어나 자란 여인인데, 창녕 출신의 최 시인과 동상동시장 등지에서 소주, 막걸리 같은 걸 마시며 연애를 했다더군요. 그렇다면 김해 시민들에게 최 시인은 '최서방'이 되겠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책들이 김해 시민들과 출향인들에게 두루두루 많이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한 끼니의 국밥을 거르더라도 반드시 이 책들을 사서 읽음으로써, 저자들에 대한 예의도 갖추어 주었으면 합니다. 꾸벅.

이광우ㅣ김해뉴스ㅣ201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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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을 보냈다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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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시인 최영철·소설가 조명숙 부부

낙동강변 도요마을에 가랑비가 내렸다. 삼랑진역에 내렸을 때부터 비는 그치지 않았다. 시인 최영철과 소설가 조명숙 부부가 역까지 마중을 나왔다. 택시를 타고 들어가겠다고 만류했는데 굳이 도요마을에서 차를 끌고 나왔다. 이들은 5년 전 부산을 떠나 김해시 생림면 도요마을로 이주해 살고 있다. 도요마을에 도자기 굽는 가마나 도요새 군락지 같은 건 없다. 천태산과 무척산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 옆 평범한 농촌 마을이다. 삼한시대부터 주요 마을이라 하여 도읍 도(都)자에 중요하다는 맥락의 요(要)자가 붙어 도요마을로 명명된 것인데, 시적인 마을 이름처럼 풍광도 아름다운 건 사실이다. 이윤택 시인이 대표로 있는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창작스튜디오가 있고 그들의 주거지까지 자리 잡은 연극촌으로도 호가 높은 마을이다. 이윤택과 형제처럼 살아온 최영철 시인도 이 연극집단이 2009년 이곳에 자리 잡을 때 부산의 집을 내놓고 들어왔다.

경남 김해 도요마을 옆 낙동강에 선 시인 최영철, 소설가 조명숙 부부. 이들은 5년 전 부산을 떠나 도요마을로 들어와 변방에서 중심을 누리고 있다.

“도시 변두리에서만 살면서 그곳을 무대로 시를 캐낸 터라 이제 환경을 바꾸면 좋겠다 싶었어요. 저로서는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 별 볼일 없는 변방에서 새로 시작해보고 싶었던 거지요. 그 즈음 아버님도 돌아가시고 맥이 빠져 있던 때라 이윤택 선생의 제안을 두 번 생각 안 하고 바로 받아들였습니다.”

최영철(59) 시인은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중견시인으로 활약하면서 부산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각광받아온 인물이다. 올해는 부산에서 12년째 진행해온 책읽기운동 ‘원북원부산’의 책으로 그가 작년에 출간한 시집 ‘금정산을 보냈다’(산지니)가 뽑혀 명실상부한 부산의 상징 문인이 되었다. 전문가집단이 5권까지 후보를 압축해놓은 뒤 이를 온오프라인을 통해 부산시민들이 투표로 한 권을 선정하는 방식인데, 부산 출신 문인이 그것도 시인이 시집으로는 처음으로 1만3000여 표를 얻어 뽑힌 경우여서 의미가 각별하다. 이 시집을 놓고 올 10월까지 다양한 독서 프로그램이 이어질 예정인데 지자체에서 인문의 향연을 벌이는 돋보이는 모범적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처음에는 진저리를 쳤어요. 성장기에 촌에서 자란 데다 바로 건너 마을이 친정 동네여서 한 다리만 건너면 전부 아는 사람인 처지라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을까 걱정한 거지요. 게다가 소설을 쓰는 공간이 저에게는 중요한데 이곳은 너무 평화로워서 오히려 집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여건이었어요. 처음 1년은 두 집 살림을 하다가 이곳에 정착했는데 지금은 중심에 있다고 착각하는 도시 사람들이 오히려 불쌍하게 여겨집니다.”

소설가 조명숙(57)은 1996년 진주신문 가을문예와 2001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해 장편과 소설집을 펴낸 중견작가다. 이달 초에는 네 번째 소설집 ‘조금씩 도둑’(산지니)을 펴내 건재를 과시했다(세계일보 4월17일자 참조). 개인이 안고 있는 작은 상처들의 내력을 핍진하게 되짚어온 조씨가 남편 최영철을 만난 건 1970년대 후반이었다. 부산에서 발행되는 동인지에 시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을 보고 역시 문학청년이었던 최영철이 물어물어 그네를 김해까지 찾아간 것이다. 그들은 편지를 주고받고 당시만 해도 버스를 여러번 갈아타야 했던 김해와 부산을 번질나게 오가며 연애를 했던 것인데, 이를 안 양가 집안은 서로의 교제를 극렬하게 반대했던 모양이다. 이제 갓 스물 한두 살인 어린 사람들인 데다, 조명숙은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했고 최영철 또한 중학교 때 사고를 당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처지였다. 이들의 사랑을 부모들은 불장난으로 치부했다.

이 ‘대책 없는’ 문학청년들은 먼저 ‘사고’부터 치고 결혼을 밀어붙였다. 혼전 임신과 출산을 거쳐 첫딸이 기어다닐 무렵 결혼식을 올렸다. 가난과 박대의 터널 속에서 이들의 결혼 생활은 시작됐다. 최영철 시인이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잠시 서울에서 출판사 편집장 생활도 했지만 끝내 도시적 삶에 길들여지지 못한 그이는 가족들을 설득해 부산 변두리로 내려와 1990년대 중반 이후 전업시인으로 살아왔다. 전업작가 아내와 전업시인 남편이 꾸려온 생활의 가난이야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다. 이들은 밝고 따스하게 아이들을 키웠고 두 자녀는 보란 듯이 서울과 부산의 국립대를 나와 딸은 박사과정에, 아들은 지금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있다. 6년 전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100여 곳에 취업 원서를 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더니 어렵게 요르단 근무를 전제로 취직해서 떠나게 됐다. 이때 시인 아비는 아들을 멀리 보내는 아픔을 담아 ‘금정산을 보냈다’를 썼다. 부산의 상징적인 금정산을 아들에게 통째로 선물한 것이다. 아들은 무사히 돌아왔고 부산 시민들은 시인이 새로 쌓은 금정산을 따스하게 안아준 셈이다. 문인 부부로 사는 건 어떤 의미일까.

“서로 격려할 것 같지만 반대예요. 피차 아는 처지에 글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어차피 겪기로 한 이상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요. 상대방의 작품에 대해서는 날 선 감시자 역할을 하는 편입니다. 남보다 더 인정사정없이 비판해요. 이런 게 외려 좋았던 것 같아요. 제가 균형감각을 잃지 않도록 남편이 스승 역할을 한 건 확실합니다.”

낙동강에서 사진을 찍고 도요마을 흰 집으로 들어와 식탁을 마주 보고 앉았을 때 소설가 아내 조명숙은 시인 남편과 사는 소회를 말했다. 사실 시는 조명숙이 먼저 문청 시절 시작했지만 남편에게 ‘양보’를 한 셈이다. 결혼해서 양육하느라 10여년을 글쓰기와 멀어져 있다가 소설로 다시 문학을 경작해왔다. 최 시인은 “지금이라도 내가 시를 포기하고 산문을 쓸 테니 시로 돌아가라”고 농을 건네자 아내는 “이젠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시도 많고 소설이 더 낫다”고 받아쳤다. 최영철은 “나는 눈물이 더 잦아졌다. 망치를 들고 세상을 깨부수고 싶은 날이 있다. 시는 더 절박하고 절실해야 할 것이다”고 시집 후기 대담에서 언급했거니와 “세상은 미궁 속으로 추락하는데 다른 소리만 하는 시가 너무 많아져 걱정된다”면서 “시로 이야기할 때 무엇이 더 중요한지 인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명숙도 “시와 소설의 역할이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동시대를 반영하는 소설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시인 남편과 문학을 대하는 기본 자세가 같음을 확인했다. 

조명숙은 부산 여성소설가들 중에서 맏언니 격에 속한다. 부산에는 등단 작가만 80여명,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들도 반이 넘는다. 그네는 인터넷과 교통수단이 발달한 이즈음에 중앙과 지방문단의 구별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도시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중심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 같다고, 비켜서보니 그런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고 시인 남편이 옆에서 덧붙였다. 특히 상부, 하부 조직으로 체계화된 문인단체의 구성 때문에 중앙, 지방이 구분될 따름인데 이제 이런 단체들도 해산될 때가 됐다고 그는 강조했다. 사실 작금의 문학 환경은 어디에 머무느냐보다 ‘의식’이 더 큰 요인일 수 있다. 끊임없이 변방으로 내려가 자신을 낮추어 중심을 제대로 관찰하고 반성하는 자세야말로 문학의 기본 덕목 중 하나일 것이다. 

나오는 길, 도요마을 하얀 집 대문 문패에 아내가 심었다는 인동초 덩굴이 드리워져 있다. 35년 넘게 서로 마음의 다리가 되어 문학이라는 지팡이를 짚고 애틋하게 낮은 변방까지 걸어온 이들 부부의 이름 위로 곧 아름다운 ‘금은화’(金銀花)가 피어날 절기다.

조용호ㅣ세계일보ㅣ201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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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금정산을 보냈다 - 10점
최영철 지음/산지니


댄싱 맘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어중씨 이야기 - 10점
최영철 지음, 이가영 그림/산지니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 10점
최영철 지음, 박경효 그림/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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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지친 당신 어루만지는 속 깊은 소설

조명숙 단편집 '조금씩 도둑'…세월호 사고 10년 뒤 무대 등 개성·문체 다채로운 9편 실어


소설가 조명숙


소설가 조명숙의 네 번째 단편소설집 '조금씩 도둑'(산지니)의 표제작에 나오는 주인공 세 명은 꿈이 싱그럽던 열여섯 살 소녀 시절에 본명 대신 '띠띠'와 '바바'와 '피융'이라는 별명을 정해 서로 부른다.


띠띠도 바바도 피융도 울퉁불퉁하고 불친절한 삶을 살아내느라 지쳤고, 상처받았고, 돈벌이에 시달린다. '…열여섯 그때만 해도 인생이 이렇게 꼬일 줄 몰랐다. 각각 한마디씩 별명에 대한 덕담을 해 주기로 했을 때 피융이 그랬던 것처럼 띠띠! 경적을 울리면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들이 싹 비켜 줄 줄 알았다.' 바바는 종업원 없이 돼지국밥집을 하고, 피융은 집안 경제가 풍비박산 나자 부식가게를 열었다. 결혼도 안 했는데 자궁적출 수술을 한 상처투성이 띠띠는 마트 빵집 종업원이다.


언뜻 이 단편소설은 가난하고 심란한 여성들의 '상처받은 삶 이야기'로 흐를 듯하지만 안 그렇다. 따뜻하게 존재를 보듬는다. 물론, 그렇다고 주인공들의 살림이 확 핀다든가 엄청 유쾌한 일이 들이닥치지도 않는다. '염색약을 다 바르고 비닐 캡을 씌워 주자 피융은 침대에 그대로 벌렁 드러누웠다. "에라 모르겠다. 한숨 자자." 될 대로 되라는 듯 피융이 눈을 감았다. 띠띠는 피융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고작 이 정도의 행복이고 이 만큼의 따뜻함이다.


조명숙 작가가 이 소설에서 그린 건 뭘까? 작가가 속 깊이 생각한 우리 삶의 속내, 우리 삶의 진실이다. 휘황한 이야기, 감각을 자극하는 스토리는 아니다. 삶을 응시하고 겪어낸 작가가 손으로 한 땀 한 땀 그려낸 수제품 같은 단편소설 9편을 '조금씩 도둑'은 실었다.


차츰 쌓여가는 스트레스와 달리,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는 난데없이 밀고 들어와 인생을 아예 파괴해버릴 만큼 강하고 아프다고 한다. 이번 작품집에서 트라우마에 휩쓸리는 어둡고 우울한 주인공은 '점심의 종류'에 나오는 영애다. 영애는 2014년 세월호 사고로 딸 유미를 잃었다. 그 뒤 10년이 지난 2024년을 소설은 무대로 한다. 트라우마가 심한 사람은 '하루하루가 사고의 다음날'로 느낀다고 한다. 이 작품은 아프다.


다른 수록작품은 개성과 문체가 무척 다채로운데, 우리 삶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 심각함과 유머, 역설이 뒤섞이면서 묘하게 단단하고 끈적한 느낌을 준다. '러닝 맨'은 '아픈 유머'로 삶의 모습을 드러낸다. 아버지는 들을 수 있지만, 말은 못 하는 장애가 있다. 아버지는 첫째 부인에게서 아들 셋, 둘째 부인에게서 막내딸을 뒀다.

  

겨우 서른여섯 살밖에 안 된 막내 딸이 둘째 엄마의 제삿날에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말한다. "독한 암에 걸렸고 여섯 달밖에 못 산다"고. 말 못하는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갑자기 팬티만 입은 채 동네를 뛰기 시작한다. 막내를 살리고 싶은 말 못하는 염원이 전류처럼 느껴지고, 가족사와 자기 삶의 회한을 표현하는 방법으로도 보인다.


수록작 '조금씩 도둑'에서 띠띠는 이렇게 말한다. "비유를 느끼자면 여간 세심하지 않으면 안 돼. 안 보이는 것을 봐야 하고, 주어진 것들을 거부할 줄도 알아야 해." 이 말은 곧 조명숙 작가가 소설 쓰는 법으로도 느껴졌다. 삶의 진실을 수작업으로 그리는 소설가에게 작품 쓰기는 존재증명의 방식이다.


국제신문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

원문읽기>>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500&key=20150422.2202119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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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토박이 여성작가 2人 나란히 책 출간
부산 문단의 두 여성 작가가 나란히 묵직한 작품을 상재했다. 중견작가 조명숙(57)과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가인 박향(52)이 그들이다. 이들은 부산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면서 그곳의 풍광과 정서까지도 작품에 반영하는 토박이 작가들이다. 이들이 생산한 작품은 지역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시대와 인간 보편의 고민과 아픔을 보듬어내는 문학적 성취도가 높다. 


나란히 소설을 펴낸 부산 토박이 작가 박향(왼쪽), 조명숙씨. 이들은 지역의 질감을 잘 살려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조금씩 도둑’

‘조금씩 도둑’(산지니)은 표제작을 포함해 단편 9편이 수록된 조명숙의 네 번째 소설집이다. 1996년 ‘진주가을문예’와 2001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단에 나왔으니 문단 이력이 2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연치와 등단 이력만큼 작품도 깊다. 

‘러닝 맨’의 아버지는 갑자기 옷을 벗어던지고 팬티 바람으로 눈 내리는 거리로 

달려나갔다. 그를 모시고 살아온 미혼의 서른여섯 살 막내딸이 폐암이라는 말을, 그것도 수술이 불가능한 비소세포성 선암 말기라서 잘해야 여섯 달 더 살까 말까 한다는 사실을 지나는 말처럼 형제들에게 던진 뒤였다. 아버지가 말도 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장애인이어서 방심했다. 아버지는 딸의 운명을 오감으로 파악했던 것인지 모른다. ‘다섯 살에 엄마를 잃고 벙어리 아버지와 오빠 셋 틈에서 천방지축 세상을 배운 막내’는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누르고 외친다. “저러신다고 내가 안 죽을까 봐!”


‘가가의 토요일’에도 말을 못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누가 무슨 질문을 던지 건 ‘가가’ 소리밖에 내지 못해 ‘가가(呵呵)’로 불리는 사내. 이 남자는 부산 지하철 2호선과 3호선이 교차하는 수영역 2번 출구 앞 부산은행 모퉁이에서 프렌치토스트를 판다. 1987년 6월, 부산역 광장에서 뻥튀기를 팔던 가가는 도도한 시위대의 물결에 휩쓸려 서면로터리까지 행진할 때 함성과 외침 속에서 어느 순간, 태어날 때부터 까무룩 잠긴 귀가 열렸었다. 그리고 다시 2005년 에이펙(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반대를 외치며 해운대 누리마루까지 행진하는 시위대 속에서 새로운 소리를 듣는다. 

‘점심의 종류’는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배경인 단편으로 “10년쯤 지난 뒤에는 여러 방식으로 유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이 최소한이나마 치유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에서 썼다”고 작가의 말에 밝혔다. 시대와 특정 공간이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음각된 조명숙의 이번 소설집에는 이밖에도 ‘이치로와 한나절’ ‘거기 없는 당신’ ‘사월’ ‘나비의 저녁’ ‘조금씩 도둑’ ‘하하네이션’ 등이 수록됐다. 

◆‘카페 폴인 러브’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나온 뒤 2013년 ‘에메랄드궁’으로 1억원 고료 세계문학상 대상을 받으며 새삼 부각됐던 작가 박향은 새 장편 ‘카페 폴인 러브’(나무옆의자)를 상재했다. 부산 중앙동에 존재하는 가상의 카페 ‘폴인 러브’를 무대로 커피에 관한 지식을 사랑 이야기에 삼투시켰다.

권세희라는 여자가 이 카페의 바리스타이다. 그네는 남편 정수와 겉도는 부부관계로 살아오다 이 카페에 단골도 드나드는 기러기아빠 제호에게 빠져든다.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세희는 정작 남편 정수야말로 결혼 전부터 한 여자를 가슴에 담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번민에 사로잡힌다. 

세희에게 카페를 차려준 친구 효정은 죽음을 앞둔 암환자이지만 그네 남편과의 사랑에 마지막 생의 나날을 ‘전투적으로’ 바친다. 딸과의 불화도 극복해나가는 눈물겨운 캐릭터다. ‘죽으나 사나 영도다리’에서 만나기로 했던 60여년 전의 여자를 잊지 못하는 낭만적인 할아버지, 이 노인을 감싸는 할머니의 사랑도 일품이다. 몇 개의 사랑이야기는 원두를 로스팅하고 커피를 내리는 과정의 세밀한 지식들을 배경으로 흥미롭게 전개된다. 커피에 관한 이러한 성찰은 사랑을 말할 때 제법 유용할 듯하다.

“커피에는 신맛과 단맛과 쓴맛이 있다. 각각의 맛은 너무나 매력 없고 맛이 없는데, 그 세 가지 맛이 잘 어우러졌을 때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최고의 커피 맛이 우러나온다. 어쩌면 사랑도 그와 같지 않을까. 사랑의 단맛만 보려고 하다가 실패하는 사람도 있고, 쓴맛이나 신맛이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시작도 하기 전에 돌아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박향은 “사랑은 나에게 어려운 숙제와 같은 일이고, 경이로움과 권태가 함께 새겨진 행운권 당첨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면서 “사랑은, 태연히 세상 한가운데에 수많은 의문을 남긴다”고 작가의 말에 썼다.

조용호ㅣ세계일보ㅣ2015-04-17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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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명숙, 3년 만에 소설집 출간




중견 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냈다. 2012년 '댄싱 맘' 이후 3년 만이다.

새 소설집 '조금씩 도둑'에는 그가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표한 단편소설 9편이 실렸다.

표제작인 '조금씩 도둑'은 어려서부터 친구인 세 소녀가 마흔을 전후한 나이가 될 때까지의 이야기를 그렸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음식점에서 만난 조명숙 작가는 "작가로서 사회에 냉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회적 문제를 완전히 작품 전면에 내놓기도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짧은 글이라도 써서 SNS에 올리고 털어버리면 좋을 텐데, 소설가라 그것도 잘 안 되더라고요."

고민하던 작가가 실제 사건을 작품에 담는 데 쓴 비법은 '왜곡'이다. 조 작가는 영감을 얻은 사회적 사건이 일어나면 적어도 1년, 길게는 5년이 지나고 기억의 실체가 흐릿해졌을 때, 자기 방식으로 다시 그 때를 회상하며 글을 써내려갔다.

이런 방식으로 '거기 없는 당신'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파동 당시 촛불시위를 하는 남편을 찾는 여자의 우울한 일상을 그렸다. '가가의 토요일'은 2005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둘러싼 사회적인 분위기를 담아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충격만큼은 오래 기다릴 수 없었다. '점심의 종류'는 참사 5개월이 지나기 전에 썼다. 그마저도 차마 사고 직후의 처참함을 담을 수 없어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하고 썼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작품 대부분이 사건 당시나 직후를 담고 있어 저는 새로운 방식으로 쓰고 싶었습니다. 참사 자체를 다루기 괴로웠던 점도 있었고요."

'러닝 맨'에는 지난해 여동생을 폐암으로 잃은 작가 본인의 개인적인 아픔이 담겼다. 책 속에서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아버지는 딸이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한겨울 거리를 옷을 벗고 달린다.

조 작가는 이 소설을 줄 한 번 바꾸지 않고 뱉어내듯 써내려갔다. "너무 힘들어서, 내가 힘들어서 읽는 사람도 같이 아파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

책 속 작가의 말에서 그는 "지극한 고통엔 섣부른 위로보다 또 다른 고통이 약이 되기도 하는 법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여기 적어둔다"고 했다.

한혜원ㅣ연합뉴스ㅣ201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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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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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






상처 입은 여성들의 마음을 살피는 공감의 태도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중견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조금씩 도둑』에서는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최근작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소설에 나타나는 다양한 소품들인 가정과 국가 폭력, 친구와 연인, 그리고 예술 안에서 조명숙 소설 속 인물들의 어두운 삶의 파편이 조각조각 드러난다.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 속, 우물물 길어올리듯 상처의 흔적들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듯한 태도가 엿보이는 작품집 『조금씩 도둑』에서 독자들은 작가 조명숙이 들려주는 생의 기쁨과 슬픔들을 마주하며 따스한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어떤 허구보다도 더 극적인 현실,

일상에 잠복해 있는 현실의 그 ‘리얼’한 재생

글은 기교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혼신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 아마도 이 작가는 그렇게 굳게 믿고 있을 것이다. _전성욱(문학평론가)

「작가의 말」에서 “소설이란 것이 어느 시점에 착상해서 언제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 2005년의 사건과 5개월이 되기 전에 써 버린 2014년의 사건이 뒤섞여 있다.”라고 밝힌 것처럼 이번 작품집에서는 실로 다양한 시대적 배경과 서사를 이끌고 있는 여럿 인물들이 나온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나서 10년 이후의 유가족의 슬픔을 재현한 「점심의 종류」에서부터, 2008년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앞두고 촛불시위를 벌이는 애인을 찾는 여자의 우울한 일상을 그린 「거기 없는 당신」, 2005년 APEC정상회의를 둘러싼 어떤 사회적 기미를 ‘가가’의 하루를 통해 풀어낸 「가가의 토요일」까지 조명숙 소설이 갖고 있는 시대의 스펙트럼은 꽤 넓은 편이다. 소설이 현재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할 때, 현대사회의 병리를 짚는 것도 소설이어야 할 것이다. 그 점이 더욱 잘 드러나는 소설은 수록작 「하하네이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가 지망생 ‘유’의 일상을 통해 우리 삶의 부조리와 글쓰기의 문제의식을 잘 드러내고 있다. ‘유’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 ‘사물과 사람과 시간 같은 것’에 예민하려 했지만 결국 그가 거주하는 오피스텔인 ‘하하네이션’ 내에 있는 현실의 비극에 둔감했던 자신을 뒤돌아보고 “장차 작가가 되려고 했지만, 결코 작가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떤 소설이 현실보다 리얼하겠어?”라고 되묻는다. 




딸을 잃은 세월호 그 사건 이후, 십 년

“우리가 뭘 인생이란 걸 살았다고. 그런 거 없었다.”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것이 아닌 리모컨,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 사람이 아닌 영애,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영미가 아닌 영미, 매일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는 유미. 그렇기 때문에 영애는 살아 있어야 했다. 내 속에서도 점점 희미해지는 유미를 누가 기억해 줄까? 질문을 담은 눈으로 영미를 본다. 영미에게 유미가 겹쳐진다. 잠 어린 눈을 비비며 식탁에 앉던 유미, 책가방을 메고 팔짝팔짝 뛰어서 목에 매달리던 유미, 젖은 머리카락으로 물을 뿌리며 환히 웃던 유미…가 영미처럼 있다. _「점심의 종류」 중에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그 통탄할 사건은 이제 사건이 발생한 지 1주기가 된다. 끝나지 않은 유족의 아픔과 보상금 논란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세월호 문제는, 인양을 해서라도 남은 실종자를 찾기 위해 끝까지 노력해달라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공식 요청과 더불어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국민여론을 통해 세월호 인양을 적극 검토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발표된 시점이다. 조명숙의 단편 「점심의 종류」은 사건 이후 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세월호 사건으로 딸을 잃은 그 상실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엄마 ‘영애’의 삶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기억과 회상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병치하며 서술되는데, ‘영애’는 6·25 전쟁으로 평화롭던 가족의 균열을 보이는 영화 속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며 다시금 고통을 받고 영화라는 ‘환상’ 속에서도 도피할 수 없음을 발견한다. 결국 ‘영애’의 동생 ‘영미’마저 이민을 떠나고, 대한민국의 지독한 현실 속에서 유가족들이 슬픔을 위로받고 구원을 받기란 불가능함을 역설하고 있는 소설이다.



끝내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훔쳐낸 네 마음

서른두셋쯤의 나이, 띠띠와 피융이 지나온 나이의 그들이 거기 있었다. 워커를 신은 피융이 손을 내밀었고, 스카프를 두른 띠띠가 그 손을 잡았다. 탁자 아래서 그들의 무릎이 어깨처럼 조심스럽게 부딪쳤다.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띠띠는 분명히 느꼈다.

“피융과 나도 저렇게 앉아 있었어.”

서늘하고 메마른 혼잣말이 피융이라는 이름이 뚫어 놓은 구멍을 빠져나갔다. 잔영만 남은 여러 순간들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 저런 때가 있었다. 한 번이었는지 두 번이었는지, 세 번이었는지 네 번이었는지….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다 마침내 피융이 오면 띠띠는 달려가 얼싸안았다. 손을 잡고 그 눈을 들여다보았다. 피융의 눈은 얼마나 까맣고 초롱했던지. 띠띠는 재생하고 싶은 그 순간을 붙잡으려 애썼다. _「조금씩 도둑」 중에서

열여섯 무렵, 용희, 선경, 영미 대신에 피융, 바바, 띠띠라는 이름으로 우정을 다짐하던 세 소녀가 마흔을 전후로 한 나이가 되기까지의 상처 입은 마음과 서로를 향한 위로를 담고 있는 표제작 「조금씩 도둑」은 과장된 시선이 아닌 담담한 문체로 그들의 이야기를 조근조근 풀어냈다. 꿈 많던 청년기를 보내고 중절수술에 후유증까지 서로의 고단한 삶을 알고 있는 셋의 우정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빛이 난다. 더욱이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결국 친구였던 ‘피융’에게 조금씩 마음을 주고 만 ‘띠띠’의 마음이 애달프다. 남들과 다른 “자신의 취향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수긍하기로” 하면서 띠띠는 끝내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성장하지 않은 여자로 버텨냈다. 자궁을 축출한 여자가 매번 해바라기 씨를 주문하며 오지 않는 택배기사를 기다리는 이야기 「사월」과, 남자의 충격적인 죽음을 이겨나가며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는 여자의 이야기가 담긴 「나비의 저녁」 또한 상실을 겪은 여성의 삶과, 상실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나가야 하는 생의 고단함을 그리고 있는 소설들이다. 



환상의 기록으로서의 소설

“이 모두는 사실이 아니다.”

달리는 아버지와 함께 그 집에서 옴짝도 하지 않은 채로 여섯 달에서 두 달을 더 산 막내는 숨을 거두기 사흘 전 병원에 옮겨졌다. 막내가 숨을 거두던 날에도, 세 오빠들이 침울함을 가누지 못한 채로 화장장에 다녀오던 날에도 아버지는 새벽을 달렸다. 아버지의 달리기는 막내가 죽은 뒤 몇 해가 지나도록 계속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니, 이 모두는 사실이 아니다. 막내가 폐암이라는 말을 꺼낸 날 갑작스럽게 달리기 시작한 아버지는 집에서 두 블록 지난 파출소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식들의 희망사항이었을 뿐, 그렇게 달려 나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막내가 한사코 병원을 마다하고 집에서 비명을 삼킨 것도 그날 밤 그렇게 달려 나간 아버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니다. 아버지는 아직 달리고… 있다. _「러닝 맨」 중에서

특유의 감수성으로 환상적인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조명숙의 소설은 「이치로와 한나절」과 「러닝 맨」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간결하고도 속도감 있는 문체에 덧붙여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모호성이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작가는 사건의 장면들을 독자에게 묘사한 뒤, 이를 일종의 환상으로 만들어버리는 기발함을 보인다. 자기를 버려두고 떠나버린 엄마와, 자살을 해버린 친구 청수, 그리고 눈과 귀와 기억이 희미해져가는 할아버지를 생각해내는 ‘나’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그런 주인공에게 나타난 원숭이와 보낸 한나절의 기록을 조명숙은 소설 속에 담았다. 소설 속에 나온 원숭이는 환각이나 환상일 테지만 결국 엄마와 청수와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갸륵한 ‘나’의 마음이 담긴 ‘일상’의 한 부분일 것이다. 가족사의 곡절과 함께 배다른 막내 여동생의 죽음을 그려낸 「러닝 맨」 또한, 자식의 환상 속에서 달리는 아버지의 서사이다. 이처럼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놓은 불가능한 환상의 서사들 속에서, 독자는 조명숙 소설이 드러내는 삶의 보편적 진실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를 발견할 것이다.


조금씩 도둑 

조명숙 소설집

조명숙 지음 | 문학 | 국판 변형 | 244쪽 | 13,000원

2015년 4월 6일 출간 | ISBN : 978-89-6545-286-7 03810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글쓴이 : 조명숙

1958년 김해에서 태어나 부산대학교 국어국문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1996년 『진주가을문예』와 2001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창작집 『헬로우 할로윈』,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 『댄싱 맘』(2012 향파문학상 수상)과 장편소설 『바보 이랑』, 『농담이 사는 집』 등을 썼다. 2006년 장편동화 「누가 그랬지?」로 14회 MBC창작동화대상을 받았으며, 그림동화책 『샘바리 악바리』, 『아기뱀 꼬물이』를 냈다. 그 외에 산문집 『우리 동네 좀머씨』가 있고, 아내들을 위한 연시집 『하늘 연인』을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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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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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향기

정태규 평론집







느닷없이 우리를 기습하는 삶의 상처와

일상의 시간을 탐문하는 소설쓰기의 미학

중견 소설가 정태규의 첫 번째 평론집 『시간의 향기』가 출간되었다. 시간이 가지는 비정함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소설쓰기를 두고, 정태규는 다양한 평문들을 통해 소설이 가지는 미의식을 탐구하였다. 이번 평론집을 통해 정태규는 이효석과 김유정 소설의 공간인식 연구와 경주 지역 문학 연구, 부산 소설 작가들의 작품 세계 분석, 소설가 나여경, 윤정규, 박종관의 작품 세계 분석을 시도하였다. 이미 소설집 『집이 있는 풍경』(개정판 『청학에서 세석까지』), 『길 위에서』를 통해 부산 문단의 뼈 굵은 중견소설가로 인정받은 저자이지만, 정태규 소설가의 비평가로서 또 다른 면모를 이번 평론집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저자가 비평한 다양한 소설은 대부분 부산 지역 작가들에 시선이 머물러 있는데, 이는 정태규의 지역작가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어 평론집을 읽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공간인식으로 이효석과 김유정을 다시 읽다

1930년대의 중요한 소설적 성취를 이룬 두 작가 이효석과 김유정. 정태규는 이들 두 작가의 작가의식과 작품의 특성을 재조명하여 두 작가의 소설에 나타난 공간적 배경과 공간 인식의 태도 그리고 공간 지향의 특성을 통해 비교해보았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산」, 「들」을 통해 이효석이 도시적 공간을 떠나 자연적 공간으로 관심을 두는 ‘구심적 지향’을 보이고 있음을 설명했다. 한편 김유정의 「소나기」, 「만무방」, 「봄봄」 등을 통해 김유정이 자연적 공간을 떠나 도시적 공간으로 관심을 옮기며 ‘원심적 지향’을 보인다는 해석으로 두 작가가 「구심적 상상력과 원심적 상상력」이라는 각기 다른 공간지향을 보인다는 결론을 도출하였다.





끊임없이 시도할 수밖에 없는 시지프스의 길이자

‘지금 여기’의 의미를 사유하게 하는 힘

그러나 우리의 기억은 시간에 반란을 꾀한다. 우리의 기억은 저 선조적이고 기계적이고 무채색인 자연의 시간을 우리의 임의대로 줄이고 늘이고 비틀고 때로는 망각의 형태로 생략하기도 한다. 또한 기억은 시간에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을 물들인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연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기억은 우리의 삶을 특별하게 하고 기억의 집적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 속을 아프게 살아온 우리의 기억들이다. 소설은 그 아픈 기억에 대한 기록이다. 

_「부산 소설의 여름 풍경」에서


저자는 소설읽기에 앞서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사색을 곁들였다. 늘 우리에게 적대적인 일상. 이 일상이 우리에게 비우호적일지라도 이러한 일상과 시간의 비정함을 인식하는 것에서 소설쓰기가 출발한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시간이 주는 아픔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소설을 통해 작가와 독자 모두 좌절 속에서도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지금 여기’의 의미를 사유하게 할 수 있다는 저자의 성찰이 담겨 있다.




지역 작가에 대한 애정 곁들여

저자는 이번 비평집에서 유독 부산 소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소설가 나여경, 이남희, 조명숙, 강동수, 문성수 등 걸출한 부산문단의 소설가들을 조명하여 그들의 작품세계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나여경 작가의 소설집 『불온한 식탁』을 통해 나여경 소설이 결핍과 욕망 사이에 놓여 있는 인간의 삶을 묘파했다며 분석하였고, 특히 2002년 타계한 소설가 윤정규의 작품세계 분석을 통하여 부당한 현실에 저항하며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쉽사리 좌절하지 않는 윤정규 소설 속의 인간 군상을 포착했다. 저자는 작가의 작품 분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설가 윤정규의 인간됨, 인간 윤정규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함으로써, 보다 입체적인 작가분석을 시도하였다.






글쓴이 : 정태규

1958년 경남 합천 출생. 부산대학교 대학원(국문학과)을 졸업하였고, 199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소설집으로 『집이 있는 풍경』(개정판 『청학靑鶴에서 세석細石까지』), 『길 위에서』가 있으며, 산문집으로 『꿈을 굽다』, 평론집으로 『시간의 향기』가 있다. 제1회 부산소설문학상, 제28회 향파문학상을 수상했다. 부산작가회의 회장과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시간의 향기』    정태규 평론집

정태규 지음
평론 | 신국판 | 
224쪽 | 20,000원

2014년 10월 20일 출간 | ISBN : 978-89-6545-268-3 03810

소설가 정태규의 첫 번째 평론집. 시간이 가지는 비정함을 인식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소설쓰기를 두고, 정태규는 다양한 평문들을 통해 소설이 가지는 미의식을 탐구하였다. 이번 평론집을 통해 정태규는 이효석과 김유정 소설의 공간인식 연구와 경주 지역 문학 연구, 부산 소설 작가들의 작품 세계 분석, 소설가 나여경, 윤정규, 박종관의 작품 세계 분석을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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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향기 - 10점
정태규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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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 도서관 협회에서 매분기 발간되는 국내 신간 문학도서를 대상으로 엄선된 우수문학도서를 마을문고, 어린이도서관, 사회복지시설, 작은도서관, 아동청소년센터, 대안학교, 교정시설, 고아원 등에 무료로 보내주는 정부 사업인 문학나눔.


이번 문학나눔 사업의 소설부문에 조명숙 선생님의 『댄싱 맘』이 선정되었습니다.

그림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만남 감동과 감흥을 시작으로 '소설로 그림 읽기'라는 새로운 형식의 단편을 그려낸 조명숙 선생님의 소설집이 이주홍 문학상 수상에 이어 문학나눔 선정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좋은일이 계속 일어나네요^^.

문학나눔 소설부문 심의위원은 구효서, 강영숙, 전성태 소설가와 안인자 동원대 교수(시민평가단)이 참여한 가운데 총 14종의 소설이 선정되었습니다.

강영숙 소설가는 『댄싱 맘』 작품을 두고 "소설 속 주인공들의 현재적 시간은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깨져 있고, 몸은 죽었고, 마음은 불행하지만 그들의 불행은 이상하게도 자꾸만 어디선가 끌어당기는 희미하지만 끈질긴 끈에 의해 견딜 만한 것이 된다. 그것은 모두가 과거의 꿈, 공동체에 대한 희미한 기억인지도 모르는데, 그 희미함 한쪽에 프리다 칼로의 그림 [버스]의 승객들을 배치해놓고 보면 독서의 즐거움이 배가되는 것 같아서 매우 즐겁다"라고 평했습니다.

바로 이 그림을 두고 하는 말이겠죠?


프리다 칼로, bus


 저또한,「거꾸로 가는 버스」 속의 내용과 묘하게 밀접되어 있는 이 그림을 찾아보며 다시 소설을 읽다가 처음 소설을 읽었을 때와 또다른 감흥을 느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런데 말야, 참 이상했어.”
그녀의 뼈를 강물에 뿌리고 돌아오는 장의차 안에서 그녀의 첫 번째 자식이 나란히 앉은 순규에게 말했다.
“뒤주 속에 엄마가 앉아 있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 팔꿈치를 겨드랑이에 착 붙이고 상체를 구부려 입으로 뭘 집으려는 자세였는데, 그게 꼭 새 같았다니까.”
그녀의 첫 번째 자식은 그녀의 자세를 잘 보여줘야 되겠다는 듯이 두 팔꿈치를 겨드랑이에 착 붙이고 상체를 구부린 다음 입을 쑥 내밀었다.
그 자세가 어느 날 꿈에 보았던 그 날개 접은 새 같다고, 순규는 콧물이 멈추지 않는 그녀의 세 번째 자식을 돌아보면서 생각했다.(「댄싱맘」에서)

그때 영주의 어깨는 참 자주 빠졌다. 길을 가다가도 문득, 체조를 하다가도 문득. 어깨가 빠지면 영주는 재빨리 그것을 끼워 넣었다. 남들에게는 없는 자신만의 특징을 강조하려는 듯, 혹은 엄숙한 의식을 거행하기라도 하듯, 허옇게 눈을 까뒤집고 고개를 외로 꼬면서 말이다. 흰자위만 남은 눈으로 허공을 보면서 어깨를 고치는 그 광경은 몹시 불쾌하고 난처했다.(「어깨의 발견」에서)


문학나눔에 선정된 『댄싱 맘』은 오는 8월 말부터 전국 각지의 도서보급처로 보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성인이 된 지금에서야 책을 한달에 몇권씩 꼬박 구입하여 읽곤 하지만, 어렸을때 책을 접하는 유일한 창구는 도서관이었습니다.

학교도서관이었기도 하고 마을도서관이었던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책들이 지금의 나를 이룬 밑거름이 되었다고 아직도 생각하곤 하는데요.

이번 문학나눔사업으로 인해 문학을 접하기 힘든 문화소외지역에 위치한 많은 이들이 『댄싱 맘』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길 기대해 봅니다.


문학나눔 공지사항 바로가기>>

http://www.for-munhak.or.kr/idx.html?Qy=notice&nid=313


댄싱맘 관련 포스팅>>

2012/06/09 조명숙 작가『댄싱 맘』, 이주홍문학상 수상

2012/05/11 축하합니다. 조명숙 소설가 『댄싱 맘』, 향파 이주홍 문학상 수상!

2012/05/02 <34회 저자와의 만남> 조명숙 선생님의 댄싱맘

2012/03/23 너무 환한 세상은 잊어요, 엄마 『댄싱 맘』


댄싱 맘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산지니안 여러분 안녕하세요, 갑자기 자주 인사드리는 전복라면입니다. 26일 목요일 저녁, <34회 저자와의 만남>을 위해 중앙동 백년어서원으로 갔습니다.

앉으면 발등이 덮이는 긴 치마를 입고 오신 선생님은 책날개의 프로필 사진에 안경만 씌운 딱 그 모습이시더군요. 사회자는 <댄싱맘>의 해설을 써주신 김경연 평론가님이십니다.

 

*아래 대담은 후에 대화의 주제와 흐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발언 순서와 내용이 임의로 보충, 수정, 생략되었습니다. 또한 전작들보다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위주로 정리했습니다. 날것 그대로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저자와의 만남에 꼭 방문해 주세요^^

화가의 방을 보다
선생님은 서울 시립미술관의 천경자 전에 전시된 ‘화가의 방’을 보고 흥미로우셨다고 합니다. 그즈음 글의 주제나 형식의 새로움을 찾고 계셨기 때문에 자연스레 그림에 관심이 가셨고, 그러다 6년의 과정을 거쳐 댄싱맘이 탄생했습니다. 그림을 끌어온다는 건 작가에게 모험이었다고, 주제나 구성이 흐려지거나 그림에 글이 부속적으로 따라갈까 봐 많은 걱정을 하셨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림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림과 같이 읽든 별개로 읽든 독자에게 맡기시겠다 하셨습니다.

소설처럼 살다가 시처럼 죽는다
댄싱맘 속 인물들은 어딘가 결핍되어 있고, 소설의 분위기는 어둡습니다. 그리고 글 속의 그 남루함을 윤리적으로 감싸 안아야 하는 책무나 성찰은 없습니다. 선생님에게 있어 인간은 불완전합니다. 소설가는 그러한 문제적 인간을 그립니다. 선생님의 개인적인 이상형에 따르면, 완전한 인간은 자유로운 인간입니다. 노숙자를 보고 느끼신 감상이라고 합니다.(^^) 그처럼 다 놓아버린 상태, 마음대로 살다가 안 되면 휙 죽고 싶은 욕망을 내비치기도 하셨습니다. 물론 그 말씀을 하신 선생님은 비롯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웃었습니다.


똑같은 걸 반복하기 싫다!
김경연 사회자께서는 조 선생님을 ‘유목민의 소설가’라 칭하셨습니다. 선생님의 50년 삶 중 글을 쓰며 보내신 시간은 20년입니다. 긴 시간동안 편안한 한 군데 정박하지 않은 선생님. 무엇이 좋은 소설가인가? 라는 질문에도 새로운 것을 성실하게 쓴다, 는 답을 내셨습니다. 그림과 소설을 엮은 형태를 시도한 이유에는 본격적인 소설에서 벗어나려는 일탈의 의도도 있었다고 하십니다. 항상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민하시며,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지켜보고 있다는 선생님.
 
<독자 질문>
Q: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 죽음이 낯설었습니다. 의도가 무엇인가요?
A: 사실 그건 우리들의 참 모습이 아닐까요. 동정을 드러내는 것은 제 소설과는 다릅니다.  19세기 소설처럼 어떤 공식이 생긴다면 편하겠지만, 저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입니다. <까마득>의 마지막에서 버려진 흐엉의 치마를 바람이 흔들고 지나갑니다. 그 바람이 뭘까요? 독자들은 소설가에게 너무 많은 희망을 바라는 것 아닐까요?

Q: 단편 중에서 영감을 얻어 차기작이나 연작 소설을 쓰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A: 없습니다. 산지니가 대박날 수 있는 작품을 써야 할 텐데요^^

Q: <비비>의 그녀가 엄지손가락을 이마에 올리는 그 포즈는 어떤 포즈인가요? 보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A: 어이구, 저는 못합니다. 젊고 예쁜 아가씨가 해야죠.


<그냥투표>

선생님이 오시길 기다리며 산지니 여섯 식구를 대상으로 한 앙케이트.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러고 싶어서 딱 골랐습니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그냥 그러고 싶으니까.

1. 소설에 사용된 그림 중 좋았던 것은?
바람꽃 (3표)   버스 (2표)

2. 좋았던 단편은?
까마득 (4표)   댄싱맘 (1표)   거꾸로 가는 버스 (1표)

3. 그럼 별로였던 단편은?
바람꽃 (1표)   나쁜 취미 (1표)   댄싱맘 (1표)   없음 (1표)

4. 마음이 가는 인물은?
바람꽃의 상희 (1표)   비비의 그녀 (1표)   어깨의 발견의 케리 (1표)   댄싱 맘의 셋째 자식 (1표)
까마득의 흐엉 (1표)

 

5월 24일, <35회 저자와의 만남>에는 '지식의 윤리성에 관한 다섯 편의 에세이'의 저자 윤여일 선생님과 함께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댄싱 맘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2012년 4월 <저자와의 만남>은 조명숙 소설가와 함께 합니다.


『댄싱 맘』으로 다시 독자를 찾아온 조명숙 소설가는 이번 소설에서 "소설로 그림 읽기라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결코 투명해지지 않는 생의 진리와 바투 한판 붙는 도전"을 끝낸 조명숙 소설가의 소감을 이번 행사에서 들어보고자 합니다. 어둠, 절말, 불행의 자리에 한 번이라도 자신의 돌을 놓아본 적이 있는 분들의 많은 참석 바랍니다.


2012년 4월 26일 목요일 저녁 7시

백년어서원



》『댄싱 맘』책 소개

2012/03/23 너무 환한 세상은 잊어요, 엄마 『댄싱 맘』




Posted by 비회원



"
결코 투명해지지 않는 생의 진리와 바투 한판 붙는 도전.
                                                                          
"
단지 이것만이 '조명숙스러운' 것이며, 내가 아는 한 조명숙은 이 만만치 않은 조명숙스러움의 수행을 포기한 적이 없다. 이번 소설집 『댄싱 맘』역시 이 조명숙스러움 가운데 있으며, 늘 그래왔듯이 예의 별스러운 시도를 하고 있다. 소설로 그림을 독해하는 것이다.

-김경연(문학평론가) 
  




▶ 조명숙 소설집 『댄싱 맘』 출간 

2001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래 장편소설 『농담이 사는 집』, 『바보 이랑』을 비롯해 소설집 『헬로우 할로윈』과 『나의 얄미운 발렌타인』 등을 집필한 중견작가 조명숙의 신작 소설집. 변화를 시도함에 있어 늘 주저함이 없는 소설가 조명숙은 이 책에서도 ‘소설로 그림 읽기’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림을 보고 느낀 감흥을 소설로 표현한 것인데, 프리다 칼로의 <버스> 등 7점의 그림에 7편의 소설작품이 조우하는 형식이다.「어깨의 발견」, 「거꾸로 가는 버스」, 「댄싱 맘」, 「바람꽃」, 「나쁜 취미」, 「까마득」, 「비비」 등 총 7편을 수록했다.






▶ 소설로 그림 읽기

저자는 그림을 보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만난 감동과 감흥을 마냥 버려두고 싶지 않다는 욕심에 이끌려 ‘소설로 그림 읽기’라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고 한다. 화가나 소설가나 근본적으로 창작자라는 원칙에 동의한다면, 매순간 항하사처럼 많은 일이 일어나는 생활세계에서 마주친 딱 하나의 장면, 그 단면을 통해 삶의 전체적 풍경을 포착한다는 점에서 그리기와 쓰기는 접점을 가진다고 믿고 시작한 일이었다. 소설에 참조한 그림은 모두 여성 화가의 작품으로, 파울라 모더존 베커(Paula M. Becker)의 <자작나무 숲에서 고양이를 안고 있는 소녀>,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버스>, 김원숙의 <Dance On a Bridge>, 추지영의 <바람꽃>, 가브리엘레 뮌터(Gabriele Munter)의 <Black Mask with Rose>, 노은님의 <새>, 황주리의 <추억제> 등이다. 그림의 모티브와 이미지를 참조하기도 하고(「거꾸로 가는 버스」,「바람꽃」,「댄싱 맘」,「어깨의 발견」,「비비」), 소설적 장치가 끝난 다음에 맞춤한 그림을 물색해 주제와 대치시키면서 쓰기도 했다(「까마득」,「나쁜 취미」)고 한다.

 



▶ 어둠을 식별하는 동시대성의 감각

조명숙은 어둠을 식별하는 데 유독 민감한 작가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집과 직장과 국가, 가족과 동료로부터 떨어져 나온 ‘탈구된 인간들’의 벌거벗은 삶을 응시하며, 잊히고 찢겨나간 이들의 잔해 같은 서사를 복원하는 데 진력한다. 예를 들면, 표제작이기도 한 「댄싱 맘」에서는 기억을 잃어가는 한 노인의 실종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로 성장의 신화에 붙들린 문명독재의 현실을 응시하고, 「어깨의 발견」에서는 알바와 비정규직으로 겨우 생존하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스무 살 문턱의 인간들에게 주목한다. 그러나 스물여섯 두 여자의 죽음 결행기라 할 수 있는 「나쁜 취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듯이, 조명숙의 소설은 여릿한 가운데서도 언제나 희망의 기미를 품고 있으며, 절망이 때로 죽음에 이를 만큼 치명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언제나 삶을 향한 열망을 내장한다.




 1. 어깨의 발견

 

파울라 모더존 베커(Paula M. Becker)의

<자작나무 숲에서 고양이를 안고 있는 소녀>

 

여대생 케리의 부름을 받고 모여든 고등학교 동창들이 친구 영주를 기억한다. 대학을 포기하고 학교생활에 흥미가 없던 그들에게 보육원 출신의 겁 많고 소심한 영주는 바로 표적이 되었다. 장님 아버지에 정신지체 어머니를 둔 영주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앵벌이, 도둑질 등도 서슴지 않았는데, 그때 영주의 어깨는 참 잘도 빠지곤 했다. 탈구된 영주의 어깨는 세상으로부터 탈락한 비인간의 표지이다.






2. 거꾸로 가는 버스
 

프리다 칼로(Frida Kahlo)의 <버스>


스무 살 무렵 만났던 친구들은 십여 년이 지나 친구 에이의 갑작스러운 부고를 받고 재회한다. 친구들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었던 에이는 사고로 휠체어를 타는 신세가 되고, 두 번의 결혼을 거쳐 삶을 마감하게 된다. 삶에 지친 서른셋의 나이로 만난 친구들에게 에이의 부고는 망각했던/하고자 했던 에이에 관한, 혹은 일찌감치 탕진한 그들의 젊음에 관한 기억을 느닷없이 소환한다. 

 



3. 댄싱 맘
 

김원숙의 <Dance On a Bridge>


표제작이기도 한 「댄싱 맘」은 기억을 잃어가는 한 노인(엄마)의 실종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대한민국의 보편적인 할머니 세대이며, 네 명의 자식을 둔 엄마는 지나가는 말 한마디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 탓에 자식들과도 소원해져 외롭게 늙어간다. 어느 날 그녀의 네 번째 자식이 엄마의 전화를 받고 집을 찾아가지만, 집에 있어야 할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석 달 후 그 집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4. 바람꽃

추지영의 <바람꽃>


군인에서 고등학교 교련선생으로 다시 실업자로 전전해가며 남루한 퇴역군인의 생을 살았던 아버지의 호루라기 소리는 나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금기 영역이다. 그러나 몸도 정신도 온전치 못한 아버지를 구해주고 아버지와 함께 호루라기를 불어준 상희는 나에게 이 오래된 호루라기 소리의 의미를 바꿔놓는다. 갑자기 나타난 상희는 내가 준수해온 삶의 원칙들을 깨뜨리며, 경험으로 축적해온 삶의 의미들을 재정의하도록 종용한다.

 


5. 나쁜 취미

 가브리엘레 뮌터(Gabriele Munter)의 <Black Mask with Rose>

 

스물여섯 두 여자의 죽음 결행기.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제대로 된 몸을 가꾸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어머니에 이끌려 성형외과에 들락거리던 나의 몸은 한없이 망가져간다. 한 번도 자가용을 타보지 못하고 퉁퉁 부은 다리로 편의점에 서 있거나 우유를 배달해야만 했던 제이는 사랑이라 믿었던 남자가 게임중독에 빠져 자신을 내팽개치자 함께 죽을 사람을 찾아 사이버공간을 떠돈다.





6.까마득
 

노은님의 <새>


외국인 결혼 이주여성의 삶을 조명한 소설. 삼촌 집에 얹혀사는 소녀 유리는 스물둘 꽃다운 나이에 마흔두 살 곰배팔 삼촌한테 시집온 베트남 신부 흐엉에게 한글을 가르쳐준다. 아이를 가진 흐엉은 이를 무기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잠도 같이 잔 대가를 당당하게 삼촌한테 요구한다. 하지만 이렇게 모은 돈을 악의적으로 접근한 동네 사람한테 모두 떼이고 만다. 



7.비비
 

황주리의 <추억제>


직원들의 평균 재직기간이 고작 3년에 불과한 생존 정글의 세계에 매몰되어 있는 나. 어느 날, 나의 생존을 담보로 야성을 길들여온 회사에 검은 정장 차림으로 비비탄을 난사하는 4인조 콰르텟이 등장하고, 이 검은 정장들의 출몰은 내 삶을 전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이동시킨다.

 




  글쓴이 : 조명숙 


1958년 김해 출생. 부산대학교 국어국문과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2001년 《문학사상》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창작집 『헬로우 할로윈』(문학과경계사, 2003),『나의 얄미운 발렌타인』(문학사상사, 2005)과 장편소설 『바보 이랑』(화남, 2008), 『농담이 사는 집』(문학과지성사, 2010) 등을 썼다. 2006년 장편동화 「누가 그랬지?」로 14회 mbc창작동화대상을 받았으며, 그림동화책 『샘바리 악바리』(가교, 2011)를 냈다. 외에 산문집 『우리 동네 좀머씨』(당그래, 2005), 『영철이하고 농사짓기』(도요, 2010, 공저)가 있고, 아내들을 위한 연시집 『하늘 연인』(열음사, 2006)을 엮었다.  



" 가끔씩 나는 
조명숙이 이 벌거벗은 생명들의 삶에 그토록 강하게 붙들리지 않았다면, 그의 말마따나 그저 대충 소설가 흉내나 내며 살았더라면, 지금보단 훨씬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보곤 한다. 달리 말해 
그것은 이들의 어둠을 함께 사는 것, 이들의 절망을 감당하고, 이들의 불행에 동참하는 일일 텐데, 행복과 멀찌감치 거리를 둔 이 작가는 기어코 그 어둠, 절망, 불행의 자리에 매번 자신의 마지막 돌을 놓는 악수를 두고야 만다."

 
                                                                   -김경연(문학평론가)  






▶ 차례 
 

어깨의 발견

거꾸로 가는 버스

댄싱 맘

바람꽃

나쁜 취미

까마득

비비
 

해설: 보이지 않는 지도를 읽어가는 유목민의 글쓰기_김경연

작가의 말

 



『댄싱 맘』


지은이 : 조명숙

쪽수 : 260쪽

판형 : 신국판

ISBN : 978-89-6545-173-0 03810

값 : 12,000원

발행일 : 2012년 3월 26일

십진분류 : 813.7-KDC5

895.735-DDC21






댄싱 맘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