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에 수록된

단편소설 「점심의 종류」를 연재합니다.

 

 

 

 

점심의 종류

조 명 숙

 

 

 

캡을 쓰고 작업복을 입으면

유미가 사라지기 전의 시간 속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어코 되돌려 놓고 싶은 순간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1화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내다본다. 육 층에서 내려다보는 바깥은 고요하다. 이른 가을, 잔잔한 바람이 지나가는지 화단의 나뭇잎이 아주 조금 흔들린다. 숲에는 떨어진 나뭇잎이 이끼와 돌을 덮고 있을 즈음이다. 현관을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숲으로 가는 길이 있다. 오십 미터 간격으로 의자가 있고, 의자 아래에는 담배꽁초나 껌 같은 것이 떨어져 있다. 사람들이 드문드문 오가고, 가끔은 개들도 지나가는 길이다. 숲에서는 여전히 나무들이 자라고, 자란 나무들의 가지는 잘리거나 굵어지고 있을 것이다.

 

  숲에 가지 않고 지낸 지 십 년이 됐다. 숲에만 가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옷가게라든가 과일가게, 빵집 같은 곳에도 가지 않았다. 집과 일터 외에 목적하고 가는 곳을 영애는 꼽아 본다. 은행. 월급이 들어왔는지, 전기료와 관리비, 전화 요금 같은 것이 잘 이체되고 있는지 확인한다. 시장. 김치와 무장아찌, 양말 같은 것을 산다. 바다. 회한이 치밀어 오를 때는 유미를 담그고 있는 바다에 간다.

 

  노천 주차장에는 먼지가 가득 앉은 그녀의 차가 있다. 지난 달 차는 유미에게 가다가 톨게이트를 눈앞에 두고 멈춰 버렸다. 돌보지 않음에 항의라도 하듯 갑자기. 뒤따르던 차들이 정체를 견디다 못하고 늘어섰다. 선글라스를 낀 마흔줄의 남자가 선글라스를 끼지 않은 등산복 차림의 남자 둘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영애의 차를 갓길로 밀어붙이고 침을 퉤 뱉고 가 버렸다. 그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운전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한 건을 노리고 달려온 견인차 기사는 차가 멈춘 원인이 오일 오프 때문이라는 걸 알고는 제풀에 화를 냈다. 주유소에 가는 건 늘 지철의 일이었다. 지철의 출퇴근 거리가 멀기도 했고 외근이 잦아서 산 차였다. 그 차를 타고 바다에 갈 때마다, 차가 집에 도착하던 날이 생각났다. 환하게 웃던 지철과 팔짝거리며 좋아하던 유미였다. 우리에게도 차가 생겼어. 이제 어디든 갈 수 있게 됐어. 그들이 차를 타고 첫 주말 나들이를 한 것은 교외에 있는 숲이었다. 돗자리며 도시락에 아이스박스까지 싣고도 넉넉히 자리가 남아 이듬해에는 텐트까지 장만했다. 지철이 텐트를 치고 영애는 버너에 코펠을 올려 찌개를 끓였다. 삼 년도 채 못 가 시들해지고 말았지만 몇 번의 캠핑에 대한 추억은 차 구석구석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유모차를 밀며 103동에서 나온 여자가 상가 쪽으로 걸어간다. 사람이라곤 여자와, 유모차에 담겨 있을 아이뿐이다. 이곳의 정오는 늘 정적이다. 정오에 이곳 사람들은 점심을 먹으며 집에 있거나, 점심을 먹으러 외출했을 것이다. 그보다 일찍 많은 사람들은 일하러 가거나 학교에 갔을 것이다. 그보다 일찍 보다 조금 늦게 또 어떤 사람들은 휘트니스 클럽이나 백화점에 갔을 테고 더러는 병문안을 가기도 했겠지. 그중 몇은 법원이나 변호사, 회계사, 부동산중개업자에게 갔을지도 모른다. 드물기는 하겠지만 어쩌면 몇은 시 창작 강의나 사진 강좌 같은 걸 들으러 갔을 수도 있다. 이렇게 바깥을 내다보며 서 있는 사람도 혹 있을 것이다.

 

  영애는 유모차와 여자를 주시한다. 이 시간쯤에 종종 걸음으로 나타나는 여자는 대개 집안일을 두 시간 정도 해 주고 돌아가는 가사도우미일 확률이 높다. 지금 유모차를 밀고 있는 여자는 아이돌보미일 수도 있고, 아이를 돌봐 주러 온 할머니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육 층에서 보기에 여자의 다리는 길고 머리는 어깨에서 보기 좋게 찰랑거리는 것이, 아이 엄마 같다.

 

  하지만 여자가 누구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이곳 사람들은 서로를 모른다. 조금 전 지나친 사람이 빈집털이범이나 소시오패스일 수도 있고, 우울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몇 번 시도한 사람일 수도 있다. 상가가 있는 입구에서 205동까지 오는 동안에 돈을 빌려주고 떼인 사람과 남의 돈을 떼먹은 사람을 지나치기도 할 것이고, 주식투자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 지나간 보도블록 위에 그녀의 발이 지나가기도 한다. 게임중독자나 여러 종류의 해킹프로그램을 가동하는 재주를 가진 컴퓨터 폐인, 사람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히키코모리, 건설업자, 사채업자, 베이커리 주인이 서로 정체를 알지 못한 채 엘리베이터에 함께 있을 수도 있다.

 

  또 그들 중에 국회의사당이나 시청 광장 같은 곳에서 영애가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극도의 절망감과 간절함을 담아 침묵시위를 하고 있을 때 비난을 일삼던 사람들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래서 영애는 늘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곁눈질하지 않으려고 발끝만 쳐다본다.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해지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십 년 전에는 가끔 말을 걸어오기도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안심이 된다.

 

 

 

 

  유모차가 상가로 들어간 뒤 영애는 창가에서 물러선다. 정오이고, 밥을 먹어야 하는 시각이다. 밥 먹기 전에는 손을 씻어야 한다. 욕실로 가서 세면대 앞에 선다. 제복과 캡을 벗는다. 캡이 벗겨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머리카락이 부풀어 오른다. 말썽쟁이 아이처럼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자라 있다. 어제, 푸석푸석한 것이 하도 뻗치기에 가위로 대충 잘라 버렸다. 물끄러미 거울을 본다. 움푹 들어간 눈자위, 블랙헤드가 박힌 코와 뺨, 막무가내로 닫힌 입…. 깡마르고 윤기라고는 없는 여자가 그림자처럼 조용히 거울 속에 있다.

 

  손을 닦고 욕실을 나오는데 폰이 울린다. 폰은 거실 소파에 던져둔 가방에 있다. 천천히 걸어가서 가방을 연다. 폰을 꺼내 들여다본다. 영미다. “왔지? 나 지금 올라간다.” 엄마 죽고 유일한 피붙이로 남은 영미다. 잘 울고 매우 보채던 어린것이 벌써 마흔을 넘겼다. 한 달에 한 번 정도이던 영미의 방문이 지난달부터 사흘 간격으로 좁혀져 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가슴에서 자그락자그락 깬돌을 밟는 소리가 난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세상 어느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지만 영미에게만은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 냉장고로 간다. 물을 마시고 전기밥솥을 열어 본다. 어제 저녁 지어서 보온해 둔 밥이 있다. 노리끼리하게 색이 변한 밥이 담긴 내솥을 쟁반에 올리고 수저와 김치, 무장아찌와 물 한 컵을 챙긴다. 시장에서 산 김치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나고, 무장아찌는 곰팡이가 피어 있다. 거실로 가서 TV와 외장형 수신기를 켠다. 되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밥 한 숟가락을 욱여넣는다. 장아찌 한 쪽과 물 한 모금을 섞어 목구멍으로 넘긴다.

 

 

 

 

  구식 외장형 TV수신기는 그제야 로딩을 마무리한다. 외장형 수신기는 저소음형 벽걸이 시계라든지, 수많은 흠집이 그 자체로 액정화면이 되어 버린 폰, 뒷꿈치가 나달나달해진 플라스틱 슬리퍼나 끈이 떨어진 운동화, 때가 묻고 색깔이 변한 토드 백 같은 것들과 함께 영애의 2024년에 와 있다. 그동안 여러 곳에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겼고, 지하철 노선 두 개가 개통되었으며, 신용카드의 유효기간은 세 번이 지났다. 엄청나게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영애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유미는 돌아오지 않았고 유미를 잃은 상처는 조금도 아물지 않았다. 그것만이 엄연한 현실이다.

 

  밥 한 숟가락을 더 욱여넣고 3, 0, 9를 누른다. 제목이 뜬다. 태극기 휘날리며. 화면에 눈을 대고 다시 밥 한 숟가락. 이 오래된 영화는 몇 번이나 보았다. 현실이 아닌 영화라서 다행이야 생각하는 사이, 장민호가 전화를 받는다. 전화는 갑작스러운 것이지만 이미 여러 번 받은 적이 있는, 기다리던 전화다. 국군유해수습위원회 소속의 젊은이가 정중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장민호의 이름과 성을 묻는다. 예. 제가 이진석입니다.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젊은이가 다시 말한다. …혹시 이진태… 확실하지 않지만 혹시나 해서요…. 전화를 끊고 장민호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예쁘고 발랄하며, 사려 깊은 태도로 조윤희가 다가든다. 할아버지. 큰할아버지 소식인가요? 장민호는 애매한 태도로 말을 흐린다. 아, 아니.

 

  바뀐 장면. 장민호가 옷을 갈아입는다. 낡은 책상 서랍을 열어 알약을 챙긴다. 지병이 있을 때도 됐지. 저 나이가 되어서도 변함없이 힘껏 달리고 섹스하고 먹어 대야 한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나이를 먹고 병이 생긴다는 것이 이제 그만 살아도 된다는 예고를 받는 것이라면 괜찮은 진행인 셈이다. 사진틀 두 개가 장민호의 시선으로 잡힌다. 그중 하나의 사진틀에 끼어 있는 사진에서 조윤희의 모습이 확인된다. 최근에 찍은 가족사진이다. 장민호가 그 옆의 사진틀을 집어 든다. 앉은 이영란 뒤로 장동건과 원빈이 나란히 서 있다. 멈칫거리는 장민호의 손,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 옷장 문을 열고 장민호는 오래된 대나무 상자를 꺼낸다. 다갈색의 구두 한 켤레 클로즈업.

 

 

 

  구두가 사라지면서 영화 속 시간이 거꾸로 가기 시작한다. 생기발랄한 장동건과 원빈, 그리로 이은주가 화사하게 웃는다. 그때 영미가 들어온다. 거꾸로 가고 있는 시간을 되돌리듯 영미가 쟁반 옆에 가방을 툭 던진다. “이걸 밥이라고 먹어?” 힐난인지 걱정인지 종잡을 수 없는 투다. 힐난이기도 하고 걱정이기도 하겠지. 묵묵히 밥 한 숟가락을 푹 뜬다. 그래. 이건 밥이 아니다. 영애는 밥 아닌 밥을 입에 넣는다. 밥과 장아찌를 씹는 입 저쪽, 어금니 하나가 시큰거린다. 어쩌다 밥알이 푹 빠지기도 하는 그 어금니는 썩어 뿌리만 남아 주기적으로 지독한 통증을 불러일으킨다. 치통은 모멸스러운 것이다. 발뒤꿈치에 두툼하게 앉은 각질이라든가, 큐티클이 자라는 손톱, 수북한 겨드랑이 털 같은 것들처럼, 치통이 올 때마다 영애는 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그렇게 십 년째 치통과 함께 밥을 먹는다. 치통과 먹는 밥은 밥이 아니다. 귓밥이나 걸레, 제 손으로 대충 자른 머리카락과 변기 뚜껑, 제멋대로 퍼져 자란 눈썹과 굽이 낮은 구두 같은 것들과 함께, 여름옷과 겨울옷에서부터 가방, 신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낡은 것들과 함께, 베란다의 빨래대며 에어컨 실외기, 텔레비전 리모컨과 이불, 베개 같은 것들과 함께 영애는 치통의 발발지점에 머물러 있다.

 

  “여기 205동 602혼데요, 볶음밥 두 개요. 최대한 빨리요.” 가방 옆에 앉은 영미가 중국집에 주문을 한다. 그리고 한결 누그러진 투로 말한다. “볶음밥 먹고, 미장원 가자. 머리가 이게 뭐야?” 영미가 뻗쳐 오른 영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울컥 눈물이 솟으려는 걸 감추느라 영미 손을 떨친다.“캡 쓰면 돼.” 작업용 캡을 쓰면 아무리 잘 다듬은 머리도 한 가지 포즈로 나오게 되어 있다. 동료들은 일이 끝나면 캡을 벗고 난 뒤 움푹 들어간 자국을 고대기로 펴고 유니폼을 갈아입지만 영애는 캡을 쓰고 유니폼을 입은 채로 집에 온다. 아이가 살아 있는 이들은 아이를 잃은 여자의 뒤에서 수군거린다. 저 여자, 애가 죽었대. 안됐어, 참. 하지만 저 꼴이 뭐야. 십 년이나 됐다면서 정신을 못 차리고. 회사에선 저런 여잘 왜 안 자른대? 더럽고 기분 나빠. 그때 그 사고로 특별법이라는 걸 만들어서 제 발로 나가기 전엔 못 자른대. 보상금도 꽤 받았을 건데 왜 꾸역꾸역 나오나 몰라. 그래도 너무하는 거 아냐? 이 자리라도 구하려고 목매달고 있는 사람 줄을 섰는데, 웬 특혜냐고. 일터에서의 따돌림은 고통스럽지만 견딜 만하다. 영애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다. 일을 하면서 고통을 잊으려는 것도 아니다. 캡을 쓰고 작업복을 입으면 유미가 사라지기 전의 시간 속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어코 되돌려 놓고 싶은 순간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2화에서 계속됩니다.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

 

조명숙 지음 | 문학 | 국판 변형 | 244쪽 | 13,000원

2015년 4월 6일 출간 | ISBN : 978-89-6545-286-7 03810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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