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에 수록된

단편소설 「점심의 종류」를 연재합니다.

 

 

 

 

점심의 종류

조 명 숙

 

 

 

시신도 만져 보지 못한 채 유미가 사라졌다.

그런데 누구도 모른다고 했다

 

 

 

 

마지막 화 

 

 

 

 

  검찰은 사고 직후 종적을 감춘 선주를 찾느라 법석이나 떨고, 매스컴은 선주의 비리를 캐는 데 열을 올리기나 할 뿐, 사고의 원인 규명이 점차로 유야무야되고 있을 때였다. 어떻게 애를 두고 혼자 빠져나올 수 있어? 죽더라도 같이 있었어야지. 참고 또 참았던 말을 결국 영애는 내뱉고 말았다. 시신도 만져 보지 못한 채 유미가 사라졌다. 그런데 누구도 모른다고 했다. 국정조사, 청문회, 재판 같은 절차는 마치 사고 기록 지우기를 목표로 한 듯 차근차근 진행되었지만 원인을 먼저 규명하라는 유족들의 요구는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부 정치권이 편을 들어 한동안 마찰을 빚는 듯했지만 당신들 뿐만 아니라 우리도 살기 힘든 건 마찬가지라고, 나라를 계속 시끄럽게 하는 건 애국적인 차원이 아니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도대체 왜, 아이를 잃은 엄마의 말을 들은 체도 않는지, 도대체 왜, 원인규명 없이 엉뚱한 사람을 내세워 여론을 호도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던 그때 그녀는 지철에게라도 그렇게 물어야 했다. 싫다는 애 등 떠밀어 보낸 게 누군데 그래? 그 잘난 일, 딱 사흘만 쉬고 같이 가자니까, 왜 그렇게 악착을 떨었어? 평생 청소나 하면서 살아! 지철과는 그렇게 끝났다. 일 년에 한두 번 슬그머니 들르기는 하지만 서로 마주보지 않는다. 둘 다 잘못한 게 없으면서도 잘못을 뒤집어씌웠다는 걸 알지만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영미가 남은 볶음밥과 빈 그릇을 현관 밖에 내놓고 꺼진 풍선처럼 앉는다. 지금 이 순간은 산 상태일까, 죽은 상태일까? 확실한 형체를 가지고 움직이는 저 영미가 죽은 것일까, 산 것일까. 영애는 청맹과니처럼 눈을 깜빡이며 낯설고 어색한 이쪽 세계를 떠나 화면을 바라본다. 장동건과 원빈이 조우한다. 포연으로 범벅이 되어 시커먼 두 남자의 감격스러운 포옹. 절규.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인 것이 전쟁이다. 자꾸 위로 뻗치는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을 가진 영애와 찰랑거리는 영미의 머리카락이 저렇게 꽉 껴안고 살아 있음에 감격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영화다. 사는 게 전쟁이라지만 전쟁터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는 보다 자세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작용한다. 감정들은 제각각 움직여서 틈을 만들고 하나를 둘로, 둘을 셋으로 갈라놓는다.

 

 

 

  아버지 죽고 엄마는 영애와 영미를 장동건과 원빈처럼 키웠다. 영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어 영미 학비를 댔다. 전쟁이 아니었더라면 장동건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영미는 늘 고마워했고, 최선을 다해 가깝게 지내려고 했다. 언니 나 할 말 있는데.영미가 우정 다가앉는데,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 있다. 유미를 잃은 뒤 해죽해죽 웃기만 하던 엄마가 생각난다. 얘야. 내가 해 줄 말이 있는데. 지철이 집을 나가고 혼자 남았을 때도 해죽해죽 웃던 엄마. 얘야. 내가 해 줄 말이 있는데. 인생이란 걸 싹 잊어버려라. 우리가 뭘 인생이란 걸 살았다고. 그런 거 없었다. 해죽해죽 웃으면서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어느 순간 정말 깨끗이 싹 잊어버렸다. 영애와 영미를 업고 걸리고 겨울 골목을 쏘다니며 찹쌀떡을 팔던 일도, 대학 등록금을 넣지 못하고 함께 울었던 일도. 그 모든 일을 엄마는 깨끗이 잊어버리고 나서 영애에게도 깨끗이 잊어버리라고 했다. 나 이민 간다.영미가 조용히 말했다.

 

  부지런히 드나들며 자꾸 볶음밥을 시켜댈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영미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십 년이었다. 모든 걸 싹 잊어버린 엄마는 자주 길을 잃었다. 아무 데나 똥오줌을 누었고, 발가벗고 거리를 뛰쳐나갔다. 그러더니 어느 날 차에 치어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엄마가 죽었지만 슬프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담담해서 장례 끝난 뒤 영미에게 두 차례 빰을 맞았다. 좀 더 일찍 가지 그랬니.그때처럼 영미가 후려쳐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영미에게 유미는 자식 같은 조카였다. 김서방이 이민 가재. 그렇잖으면 헤어지재. 언니 혼자 두고 가는 거 정말 마음이 아프지만, 김서방 따라갈래. 언니처럼 유령이 되긴 싫어.

 

 

 

  고지전 장면이다. 장동건은 북한군복을 입고 있다. 참호에서의 육탄전. 장동건은 자동 기계처럼 적을 죽인다. 원빈이 장동건을 발견한다. 장동건은 원빈을 알아보지 못한다. 장동건과 원빈의 육탄전. . 나야. 나 진석이야. 원빈이 소리쳐도 장동건은 계속 공격한다. 장동건은 살인기계다. 원빈이 살인기계에게 한사코 인간으로 접근한다. 시꺼먼 장동건의 얼굴. 광기 어린 장동건의 눈이 허옇게 까뒤집어진다. 원빈이 장동건을 제압한다. 마지막 밥과 김치를 입에 넣는다. 치통과 함께 밥을 씹는다. 치통과 함께 밥을 씹으면서 주방으로 간다. 쌀을 씻어 밥을 안친다. 저녁에 일하러 가기 전에 먹을 밥이다. 금방 지은 밥은 유미가 좋아하던 밥이다. 지철이 잘 먹던 밥이다. 그날 아침에도 먹은 밥이다. 이젠 못 봐. 안 올 거니까!새된 소리와 함께 영미가 문을 열고 나간다. 취사 버튼을 누르고 돌아서는데 뒷머리가 화끈하다. 몸이 휘어진다. 휘어진 몸이 바닥에 닿는다. 어느 곳에서나 사는 건 찬란하지 않다는 말을 해 주었어야 했다.

 

  문 소리의 여운이 사라진 뒤 영애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다. 텔레비전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간다. 텔레비전을 주시한다. 죽은 장동건의 몸이 태아처럼 오그라든다.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고 영애도 몸을 웅크린다. 모든 것이 처음의 그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우린 산 게 아니었어. 그러니까, 다 잊어버리자. 유미가 바다에서 돌아오지 않게 되었을 때 엄마는 알게 되었던 거다. 스물셋에 알 수 없었던 일은 서른셋에 알게 되고, 서른셋에 알 수 없었던 건 마흔셋쉰셋예순셋그렇게 삶의 슬픈 의미는 아주 늦게야 알게 된다는 것을. 슬퍼하고 기뻐한 순간들이 모멸과 굴욕으로 가득 찬 것의 표면을 살짝 덮는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엄마는 다 잊어버리라고 했던 것이다. 영애는 웅크린 채 텔레비전을 본다. 점심을 먹는 건 아직 기억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 기억할 힘이 있기 때문이다. 점점 약해지고 있지만 어쨌든.

 

  고통을 이기려고 잔뜩 몸을 웅크린 장동건의 뼈가 누런 황토에 말뚝처럼 박혀 있다. 장민호가 수습된 유물 중에서 녹이 슨 만년필을 집는다. 오십 년 동안의 회한은 담담해서 꼭 낙엽 같다. 썩은 낙엽은 지금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영화가 끝나고 광고가 시작된다. 광고는 현재의 시간을 무차별 포격한다. 과거로 뭉쳐진 영애에게 현재의 파편이 날아온다. 슬픔보다는 기쁨을, 모자람보다는 넘침을 강조, 또 강조하는 현란한 색의 잔치를 영애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사고도 이렇게 광고였던 것 같다.

 

 

 

  그때 그 바다의 현재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영화가 끝나자마자 밀려드는 광고처럼 평온이 끝나던 그 순간, 그 아비규환을 상상하는 일은 전파를 손으로 잡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백 명의 승선객 중에서 살아나온 사람은 일흔일곱 명이었고, 시신으로 건진 사람이 또 일흔일곱이었다. 나머지 마흔여섯은 마흔여섯 날을 두 번이나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뒤집어진 배가 침몰하자 바닷물이 재빨리 흔적을 지워 버렸다. 해당 기관의 얽히고설킨 부패와 선주의 부정축재가 두 달 동안 매스컴 종사자들을 흥분시켰지만, 잔치는 곧 끝나 버렸다. 정치권에서는 애도를 무기 삼아 싸움을 벌였고, 방심과 안일의 타성을 곧 회복한 사람들은 여객선이나 비행기를 타고 여행했으며 위험한 일터에서 일했다. 애도의 상징이었던 노란 리본도 하나둘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는 말은 맞지 않다. 여러 사람이 함께 항의하고 싸우고 기억하려 애썼으므로 유미, 유미들은 확실히 조금 더 오래 기억되었다. 몇 가지 법안이 상정되었고, 입법부는 그중 몇 가지를 가결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십 년 동안 실제로는 아주 많은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일은 유미가 없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었다.

텔레비전을 끄고 영애는 창가로 간다. 아직 시들지 않은 잎이 무성한 나무 사이로 젊은 남자가 걸어온다. 어깨가 곧고 걸음걸이가 빠른 젊은 남자는 105동 현관으로 사라진다. 창문을 연다. 세찬 바람이, 예기치 않았던 세찬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영애는 문득 놀라면서 혹 바람에 실려 왔을지도 모를 어떤 것을 찾는다. 냄새, 소리, 움직임. 한때 이 공간을 채우고 있던 냄새와 소리 움직임을. 아무 냄새도 나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끝

 

2014.04.16

잊지 않겠습니다.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

 

조명숙 지음 | 문학 | 국판 변형 | 244쪽 | 13,000원

2015년 4월 6일 출간 | ISBN : 978-89-6545-286-7 03810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4.16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에 수록된

단편소설 「점심의 종류」를 연재합니다.

 

 

 

 

점심의 종류

조 명 숙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면서

 유미의 죽음이 심연처럼 가라앉을 때,

마침내 고통은 고통끼리 부딪쳤다.

 

 

 

 

2화

 

 

 

 

  영미가 숟가락을 뺏으려 한다.“미장원 갔다가 옷도 좀 사자.” 완강하게 뿌리치면서 영애는 쟁반을 들고 뒤로 물러난다. 영미가 깬돌의 모서리처럼 모난 눈으로 노려본다. 그러고 보니 영미는 방금 미장원에 다녀온 모양이다. 사흘 전보다 머리가 조금 짧아졌고, 헤어에센스 냄새도 난다. 물 한 모금 마신 영애는 영미가 가리고 있는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목을 뽑는다. 중학생 모자를 쓰고 교복을 입은 장동건과 원빈이 구두를 구경하고 있다. 선명한 다갈색의 구두 한 켤레에 모아지는 장동건과 원빈의 눈. 장동건과 원빈의 시간이 전진하고 있는 가운데 영애의 시간은 후진을 계속한다. 다갈색 스웨이드 신발을 신은 유미가 콩콩 발을 구른다.

 

  유미의 손에는 아이스크림이, 영애의 손에는 캔커피가 들려 있었다. 볕살 좋은 봄날이다. 유미가 눈을 찌푸리며 손으로 해를 가린다. 유미는 새로 산 스웨이드 신발을, 영애는 유미가 신던 낡은 운동화를 신고 있다. 유미가 영애를 껴안는다. 구두에, 옷에, 정말 고마워, 엄마. 나 취직해서 월급 받으면 엄마 다 줄게. 그래, 그래라. 그땐 엄마 청소일 그만두고 쉬기만 해. 알았지? 그래, 그러자. 유미와 영애는 햇살을 받으며 걷는다. 그래, 그래라. 우리 유미 취직하면 나 청소일 그만둘게. 영애는 중얼거린다. 그래, 그랬지. 우리 유미 취직하면 나 일 그만두고 쉬기로 했지. 그런데 우리 유미 아직 취직을 못했어. 그래서 내가 일을 쉴 수가 없어. 일을 하려면 먹어야지. 먹어야 일을 하지.

 

  화면이 갑자기 사라진다. 영미가 눈앞에서 리모컨을 흔들고 있다. “이러고 있는 거 유미가 다 보고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해 봤어? 유미도 이제 그만 언니가 편안해지길 바랄 거야. 이제 그만하자, 우리. 난 지쳤어.” 영미를 향해 물이 담긴 컵을 집어던진다. 컵이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다. “난 그만두지 않을 테야. 왜냐고? 모두들 그만두길 원하니까. 그래서 그만두지 않을 거야.” 걸레를 가져와 엎질러진 물을 닦으며 영미가 맞고함을 지른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계속해. 계속하라고. 실컷!” 곱슬곱슬한 영미 머리카락이 출렁거리면서 흔들린다. 영미 머리카락이 아래위로 왔다 갔다 한다. 나이를 먹어도 싱싱하고 탄력 있는 머리카락을 가진 영미가 운다. 영미와 함께 유미가 운다. 엄마. 이제 그만 날 잊어버려. 유미가 울면서 말한다. 영애는 입술을 꼭 문다. 나도 그러고 싶다. 지난 일이라 치고 다시 처음부터 살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일 뿐, 나는 다시 잊지 못한다.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하라니, 내 머리를 갈라 모든 기억을 꺼내 버리렴.

 

  계란 노른자와 다시마 가루로 만든 헤어팩을 잔뜩 바르고서 영미와 유미는 나란히 앉아 있곤 했다. 유미와 영미는 죽이 잘 맞았다. 엄마 노릇의 십분의 일은 영미가 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랬던 영미가 이제 그만 유미를 잊으란다. 서운하고 야속하고 밉다. 고통도 오래되면 지병처럼 지긋지긋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만 잊어버리고 싶은 것이다. “보기 싫거든 오지 마. 너 없이도 살아.” 중얼거리고서 영미를 외면한다. 입은 밥을 씹고 있는데 머릿속에서는 깬돌들이 모난 모서리를 서로 부딪치고 있다. 장아찌를 씹던 이가 혀를 건드렸다. 씹던 일을 멈추고 얼른 물을 마신다. 그날도 이렇게 심하게 혀를 깨물었다. 대단한 음식을 먹은 것도 아닌데 혀를 깨물었고, 입안이 계속 불편했다.

 

 

  네온이 불야성을 이룬 유흥가. 대형 빌딩에서 쏟아져 나온 쓰레기가 주차장 한쪽에 태산처럼 쌓이는 시간. 영애는 십칠 층 룸을 청소하고 있었다. 술 냄새, 담배 냄새가 가득 차 있었다.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을 때 세찬 바람 한 줄기가 들이닥쳤다. 꽃병이 넘어지면서 동료의 발등을 찍었다. 빌딩과 빌딩 사이로 가끔 용오름이 지나간다더니, 그런 것인가 여겼다. 그런데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시커먼 어떤 것이 바람을 타고 들어온 것 같았다. 오래 고인 물에 산다는 물컹거리고 기이한 큰빗이끼벌레 같은 것이 몸을 옥죄는 듯 숨이 막혔다. 뭐야, 이 기분 나쁜 냄새는? 동료가 투덜거리는데 또로롱 문자벨이 울렸다. 유미. 위젯을 끌어당기자 큰빗이끼벌레 같은 것이 창밖으로 쑤욱 빠져나갔다. 좋은 아침. 아빠와 난 잘 잤고, 기분도 좋아. 엄마만 남겨 놓고 와서 미안. 문자를 읽고 있는데 유미의 검고 탐스런 머리카락이 얼굴을 머릿속을 싹 스치고 지나갔다. 고약한 냄새를 지우면서 유미가 쓰는 샴푸 냄새가 났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유미가 보고 싶었다. 넌 꼭 대학에 보내 줄게. 마음을 다잡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십 분이나 지났을까. 지철에게서 전화가 왔다. 배가 기울었어. 뒤집어질 것 같아. …유미, 유미가 안 보여. 화장실 간다고 했는데…. 지철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세상에 하고 많은 사건 사고가 일어나도 그게 다 남의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큰빗이끼벌레처럼 낯설고 무섭고 불길한 어떤 것이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졌을 때, 일은 이미 터져 있었던 것이다.

 

  영미에게서 리모컨을 뺏는다. “이러다 죽겠어. 차라리 죽어 버려. 그러면 잊을 거잖아. 유미한테로 가, 차라리!” 말 끝에 영미가 쿨쩍거린다. 사흘 전 정오에도 영미가 왔고, 볶음밥이 배달되었다. 텔레비전이 꺼졌고 물이 쏟아졌으며 쿨쩍 소리도 났다. 이 반복이 영화라면 얼마나 좋을까. 걸레를 빨아 바닥을 닦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청소를 하는 일, 어설픈 밥을 먹고 자는 듯 마는 듯 밤을 지내는 일, 신발을 신거나 세탁기의 버튼을 누르는 일, 이불을 덮고 다리를 웅크리는 일이 이미 본 영화라면. 그런데 사는 건 영화가 아니다. 매번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 같지만 영화처럼 엄밀하게 똑같지 않다. 비슷하게 재현되는 장면에는 약간의 변화가 있고, 그 변화는 보이지 않게 조금씩 바뀐 미래를 가져온다. 장면의 균열과 변화가 그것을 말해 준다.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것이 아닌 리모컨,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그 사람이 아닌 영애, 지금 여기 있지만 십 년 전의 영미가 아닌 영미, 매일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는 유미. 그렇기 때문에 영애는 살아 있어야 했다. 내 속에서도 점점 희미해지는 유미를 누가 기억해 줄까? 질문을 담은 눈으로 영미를 본다. 영미에게 유미가 겹쳐진다. 잠 어린 눈을 비비며 식탁에 앉던 유미, 책가방을 메고 팔짝팔짝 뛰어서 목에 매달리던 유미, 젖은 머리카락으로 물을 뿌리며 환히 웃던 유미…가 영미처럼 있다.

 

 

  슬픔이 서슬처럼 담긴 눈길에 영미가 주춤하는 사이 초인종이 울린다. 영미는 얼른 영애 앞을 벗어나 조르르 현관으로 달려간다. 배달원이 철가방을 내려놓는다. 영애는 리모컨을 누른다. 3, 0, 9. 전쟁터에도 휴식은 있다. 잠시 문명인이 된 병사들은 장난을 친다. 원시인처럼 먹고 자며, 원시인처럼 흥분하여 싸우지만 또 원시인과도 같은 순수한 의지로 병사들이 휴식한다. 바뀐 장면. 포연 속에서 장동건이 포복하고 있다. 바로 곁 병사가 쓰러진다. 연발 총성. 장동건이 수류탄을 던진다. 장동건이 병사 셋과 함께 사이드로 빠지면서 원빈을 따돌린다. 돌격하는 장동건 뒤로 건물이 무너지고 파편이 튄다. 바뀐 장면. 장동건이 북한군과 육탄전을 벌인다. 엄호를 맡은 북한군이 장동건과 맞총질하다 죽는다. 이름을 알지 못하는 배우들이 스러지는 장면을 지나 태극기가 휘날린다. 병사들이 평양에 입성한다. 거수경례하는 장동건과 원빈.

 

  볶음밥이 담긴 접시 두 개와 단무지, 양파와 중국 된장에는 랩이 씌워져 있다. 영미는 수저를 싼 종이와 볶음밥을 덮은 랩을 벗긴다. “먹자, 제발.” 영애는 화면을 가린 영미의 등을 민다. “비켜.” 옆으로 밀려난 채로 영미가 볶음밥을 먹는다. 볶음밥이 냄새를 피운다. 영애는 볶음밥을 기억한다. 그것은 몇 가지 야채를 잘게 썰고, 그것을 싸구려 고기 볶은 것과 섞어서 만든 음식이다. 영미가 막 랩을 벗긴 단무지는 절인 무에 설탕이나 사카린으로 단맛을 내고 약간의 식초를 뿌린 것이다. 양파는 가을에 심어 봄에 거두는 채소이며 동그랗게 생겼고, 여러 겹의 외피를 가지고 있다. 또 그것은 단맛과 매운 맛을 내는 것으로 여러 가지 음식에 양념으로 쓰인다. 새까맣고 진득한 중국 된장은 밀가루와 소금을 발효시켜 만든 재료에 캐러멜과 같은 첨가물을 넣은 것이다….

 

  피투성이가 된 원빈이 난투극을 벌이고 있다. 상대 배우는 아직 모른다. 몇몇 조연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최선을 다하는 태도인 체하는 것이 관객이다. 그녀도 엄연한 관객이다. 영애에게도 권리가 있다. 영화를 볼 권리, 맛있는 음식을 먹을 권리, 좋은 옷을 입을 권리 같은 것이 분명히 있다. 그 엄연한 권리를 누가 빼앗아 버렸는가. 온몸이 불에 타는 것처럼 뜨거워지는 것만 같다. 얼른 화면으로 눈을 돌린다. 불탄 시체들. 앙상하고 시꺼먼 뼈들. 장동건이 잿더미 속에서 만년필을 집어 든다. 표정이 침통하다. 새까만 뼈로 남은 하나의 목숨에, 하나의 목숨이었던 새까만 뼈에 장동건이 손을 얹는다. 전쟁터에서 병사들은 참혹하게 죽지만 조용히 묻힌다. 더러는 묻히지 못하고 흙더미 위에서 썩는다. 목숨을 밟고 지나가는 탱크. 밥알처럼 으스러지는 뼈. 수없이 많은 유미들.

 

 

  영미가 볶음밥 접시를 들이민다. “먹어, 좀. 언니 볶음밥 좋아하잖아.” 못 들은 척한다. 옛날 일이다. 볶음밥을 좋아했고 만두를 좋아했다. 하지만 진흙이 메워진 것 같은 머릿속, 누런 위액이 구석구석 고여 있는 것 같은 뱃속, 스멀거리는 통증과 가려움으로 채워진 뼈와 살…. 고통의 증거들 속에서 배회하는 기억이 식욕을 가로막고 있다. 물끄러미, 영미를 본다. 음식은 이제 머릿속에 저장된 하나의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유미가 마음속에 있는 한 어떤 음식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음식을 넣으면 속에 있던 유미가 그것을 몽땅 뒤집어쓰고 말 것 같다. 반찬투정 없던 유미였지만 오래 보온된 밥과 시장에서 파는 김치, 무장아찌는 도저히 안 넘어간다고 했다. 김치가 떨어지면 어설픈 깍두기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영애는 유미가 먹지 못하게 된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됐다. 유미가 싫어하던 것만 그나마 조금 먹을 수 있다. 어디에 있니? 점심은 뭘 먹니? 매일 주고받던 말의 기억을 다 잊어버린 뒤라면 모를까.

 

  러닝셔츠 차림의 오지호가 원빈에게 다가간다. 장동건을 찾아보자고 한다. 원빈이 격하게 받아친다. 나하고 상관없다고 했잖아. 훈장 못 받아서 환장한 인간이니 그 인간 죽든 말든 알게 뭐야. 오지호에게서 멈춘다. 선한 입매. 깊고 큰 눈. 주의해서 보지 않았지만 어느 때부턴가 주의해서 보게 된 배우다. 오지호가 화면에서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지철은 길게 찢어진 눈이었으나 입매는 묘하게 오지호를 닮았다. 눈 뜨고 웃어. 영애는 자주 지철을 놀렸다. 눈 작은 사람 간은 크다던데. 어, 그런가… 그런가 보군. 지철은 잘 웃었고 웃을 때면 눈이 거의 감겨 버렸다.

 

  유미는 죽었지만 그가 살았다는 것이 한동안은 위로가 됐다. 최소한 고통을 함께 나눌 상대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가기 싫다는 걸 억지로 떠밀어 보낸 영애와, 같이 아침밥 먹고 유미가 화장실 간 사이에 무릎까지 차오른 바닷물을 헤치고 혼자 살아 나온 지철은 자신들이 고통을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으로 서로를 찌를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는 것까지는 몰랐다. 그것을 알아차리기에는 너무 경황이 없었던 것이다. 순항 중이던 배가 왜 갑자기 선로를 바꿨고, 그처럼 큰 여객선이 왜 순식간에 속수무책 뒤집어졌는지,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살 길을 찾아 뱃머리로 나온 일흔일곱 외에는 왜 단 한 사람도 구조될 수 없었는지, 살지도 죽지도 않은 마흔여섯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면서 유미의 죽음이 심연처럼 가라앉을 때, 마침내 고통은 고통끼리 부딪쳤다.

 

 

 

 

 

3화에서 계속됩니다.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

 

조명숙 지음 | 문학 | 국판 변형 | 244쪽 | 13,000원

2015년 4월 6일 출간 | ISBN : 978-89-6545-286-7 03810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Posted by 비회원

 

4.16 세월호 참사 3주기를 맞아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에 수록된

단편소설 「점심의 종류」를 연재합니다.

 

 

 

 

점심의 종류

조 명 숙

 

 

 

캡을 쓰고 작업복을 입으면

유미가 사라지기 전의 시간 속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어코 되돌려 놓고 싶은 순간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1화

 

 

 

 

 

  블라인드를 올리고 밖을 내다본다. 육 층에서 내려다보는 바깥은 고요하다. 이른 가을, 잔잔한 바람이 지나가는지 화단의 나뭇잎이 아주 조금 흔들린다. 숲에는 떨어진 나뭇잎이 이끼와 돌을 덮고 있을 즈음이다. 현관을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숲으로 가는 길이 있다. 오십 미터 간격으로 의자가 있고, 의자 아래에는 담배꽁초나 껌 같은 것이 떨어져 있다. 사람들이 드문드문 오가고, 가끔은 개들도 지나가는 길이다. 숲에서는 여전히 나무들이 자라고, 자란 나무들의 가지는 잘리거나 굵어지고 있을 것이다.

 

  숲에 가지 않고 지낸 지 십 년이 됐다. 숲에만 가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옷가게라든가 과일가게, 빵집 같은 곳에도 가지 않았다. 집과 일터 외에 목적하고 가는 곳을 영애는 꼽아 본다. 은행. 월급이 들어왔는지, 전기료와 관리비, 전화 요금 같은 것이 잘 이체되고 있는지 확인한다. 시장. 김치와 무장아찌, 양말 같은 것을 산다. 바다. 회한이 치밀어 오를 때는 유미를 담그고 있는 바다에 간다.

 

  노천 주차장에는 먼지가 가득 앉은 그녀의 차가 있다. 지난 달 차는 유미에게 가다가 톨게이트를 눈앞에 두고 멈춰 버렸다. 돌보지 않음에 항의라도 하듯 갑자기. 뒤따르던 차들이 정체를 견디다 못하고 늘어섰다. 선글라스를 낀 마흔줄의 남자가 선글라스를 끼지 않은 등산복 차림의 남자 둘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그들은 영애의 차를 갓길로 밀어붙이고 침을 퉤 뱉고 가 버렸다. 그 모든 일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운전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한 건을 노리고 달려온 견인차 기사는 차가 멈춘 원인이 오일 오프 때문이라는 걸 알고는 제풀에 화를 냈다. 주유소에 가는 건 늘 지철의 일이었다. 지철의 출퇴근 거리가 멀기도 했고 외근이 잦아서 산 차였다. 그 차를 타고 바다에 갈 때마다, 차가 집에 도착하던 날이 생각났다. 환하게 웃던 지철과 팔짝거리며 좋아하던 유미였다. 우리에게도 차가 생겼어. 이제 어디든 갈 수 있게 됐어. 그들이 차를 타고 첫 주말 나들이를 한 것은 교외에 있는 숲이었다. 돗자리며 도시락에 아이스박스까지 싣고도 넉넉히 자리가 남아 이듬해에는 텐트까지 장만했다. 지철이 텐트를 치고 영애는 버너에 코펠을 올려 찌개를 끓였다. 삼 년도 채 못 가 시들해지고 말았지만 몇 번의 캠핑에 대한 추억은 차 구석구석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유모차를 밀며 103동에서 나온 여자가 상가 쪽으로 걸어간다. 사람이라곤 여자와, 유모차에 담겨 있을 아이뿐이다. 이곳의 정오는 늘 정적이다. 정오에 이곳 사람들은 점심을 먹으며 집에 있거나, 점심을 먹으러 외출했을 것이다. 그보다 일찍 많은 사람들은 일하러 가거나 학교에 갔을 것이다. 그보다 일찍 보다 조금 늦게 또 어떤 사람들은 휘트니스 클럽이나 백화점에 갔을 테고 더러는 병문안을 가기도 했겠지. 그중 몇은 법원이나 변호사, 회계사, 부동산중개업자에게 갔을지도 모른다. 드물기는 하겠지만 어쩌면 몇은 시 창작 강의나 사진 강좌 같은 걸 들으러 갔을 수도 있다. 이렇게 바깥을 내다보며 서 있는 사람도 혹 있을 것이다.

 

  영애는 유모차와 여자를 주시한다. 이 시간쯤에 종종 걸음으로 나타나는 여자는 대개 집안일을 두 시간 정도 해 주고 돌아가는 가사도우미일 확률이 높다. 지금 유모차를 밀고 있는 여자는 아이돌보미일 수도 있고, 아이를 돌봐 주러 온 할머니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육 층에서 보기에 여자의 다리는 길고 머리는 어깨에서 보기 좋게 찰랑거리는 것이, 아이 엄마 같다.

 

  하지만 여자가 누구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이곳 사람들은 서로를 모른다. 조금 전 지나친 사람이 빈집털이범이나 소시오패스일 수도 있고, 우울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몇 번 시도한 사람일 수도 있다. 상가가 있는 입구에서 205동까지 오는 동안에 돈을 빌려주고 떼인 사람과 남의 돈을 떼먹은 사람을 지나치기도 할 것이고, 주식투자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이 지나간 보도블록 위에 그녀의 발이 지나가기도 한다. 게임중독자나 여러 종류의 해킹프로그램을 가동하는 재주를 가진 컴퓨터 폐인, 사람이라면 진저리를 치는 히키코모리, 건설업자, 사채업자, 베이커리 주인이 서로 정체를 알지 못한 채 엘리베이터에 함께 있을 수도 있다.

 

  또 그들 중에 국회의사당이나 시청 광장 같은 곳에서 영애가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함께 극도의 절망감과 간절함을 담아 침묵시위를 하고 있을 때 비난을 일삼던 사람들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면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래서 영애는 늘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곁눈질하지 않으려고 발끝만 쳐다본다.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무관심해지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십 년 전에는 가끔 말을 걸어오기도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안심이 된다.

 

 

 

 

  유모차가 상가로 들어간 뒤 영애는 창가에서 물러선다. 정오이고, 밥을 먹어야 하는 시각이다. 밥 먹기 전에는 손을 씻어야 한다. 욕실로 가서 세면대 앞에 선다. 제복과 캡을 벗는다. 캡이 벗겨지기를 기다렸다는 듯 머리카락이 부풀어 오른다. 말썽쟁이 아이처럼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자라 있다. 어제, 푸석푸석한 것이 하도 뻗치기에 가위로 대충 잘라 버렸다. 물끄러미 거울을 본다. 움푹 들어간 눈자위, 블랙헤드가 박힌 코와 뺨, 막무가내로 닫힌 입…. 깡마르고 윤기라고는 없는 여자가 그림자처럼 조용히 거울 속에 있다.

 

  손을 닦고 욕실을 나오는데 폰이 울린다. 폰은 거실 소파에 던져둔 가방에 있다. 천천히 걸어가서 가방을 연다. 폰을 꺼내 들여다본다. 영미다. “왔지? 나 지금 올라간다.” 엄마 죽고 유일한 피붙이로 남은 영미다. 잘 울고 매우 보채던 어린것이 벌써 마흔을 넘겼다. 한 달에 한 번 정도이던 영미의 방문이 지난달부터 사흘 간격으로 좁혀져 있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가슴에서 자그락자그락 깬돌을 밟는 소리가 난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세상 어느 곳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지만 영미에게만은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 냉장고로 간다. 물을 마시고 전기밥솥을 열어 본다. 어제 저녁 지어서 보온해 둔 밥이 있다. 노리끼리하게 색이 변한 밥이 담긴 내솥을 쟁반에 올리고 수저와 김치, 무장아찌와 물 한 컵을 챙긴다. 시장에서 산 김치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나고, 무장아찌는 곰팡이가 피어 있다. 거실로 가서 TV와 외장형 수신기를 켠다. 되도록 입을 크게 벌리고 밥 한 숟가락을 욱여넣는다. 장아찌 한 쪽과 물 한 모금을 섞어 목구멍으로 넘긴다.

 

 

 

 

  구식 외장형 TV수신기는 그제야 로딩을 마무리한다. 외장형 수신기는 저소음형 벽걸이 시계라든지, 수많은 흠집이 그 자체로 액정화면이 되어 버린 폰, 뒷꿈치가 나달나달해진 플라스틱 슬리퍼나 끈이 떨어진 운동화, 때가 묻고 색깔이 변한 토드 백 같은 것들과 함께 영애의 2024년에 와 있다. 그동안 여러 곳에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겼고, 지하철 노선 두 개가 개통되었으며, 신용카드의 유효기간은 세 번이 지났다. 엄청나게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영애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유미는 돌아오지 않았고 유미를 잃은 상처는 조금도 아물지 않았다. 그것만이 엄연한 현실이다.

 

  밥 한 숟가락을 더 욱여넣고 3, 0, 9를 누른다. 제목이 뜬다. 태극기 휘날리며. 화면에 눈을 대고 다시 밥 한 숟가락. 이 오래된 영화는 몇 번이나 보았다. 현실이 아닌 영화라서 다행이야 생각하는 사이, 장민호가 전화를 받는다. 전화는 갑작스러운 것이지만 이미 여러 번 받은 적이 있는, 기다리던 전화다. 국군유해수습위원회 소속의 젊은이가 정중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장민호의 이름과 성을 묻는다. 예. 제가 이진석입니다.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젊은이가 다시 말한다. …혹시 이진태… 확실하지 않지만 혹시나 해서요…. 전화를 끊고 장민호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예쁘고 발랄하며, 사려 깊은 태도로 조윤희가 다가든다. 할아버지. 큰할아버지 소식인가요? 장민호는 애매한 태도로 말을 흐린다. 아, 아니.

 

  바뀐 장면. 장민호가 옷을 갈아입는다. 낡은 책상 서랍을 열어 알약을 챙긴다. 지병이 있을 때도 됐지. 저 나이가 되어서도 변함없이 힘껏 달리고 섹스하고 먹어 대야 한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나이를 먹고 병이 생긴다는 것이 이제 그만 살아도 된다는 예고를 받는 것이라면 괜찮은 진행인 셈이다. 사진틀 두 개가 장민호의 시선으로 잡힌다. 그중 하나의 사진틀에 끼어 있는 사진에서 조윤희의 모습이 확인된다. 최근에 찍은 가족사진이다. 장민호가 그 옆의 사진틀을 집어 든다. 앉은 이영란 뒤로 장동건과 원빈이 나란히 서 있다. 멈칫거리는 장민호의 손,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 옷장 문을 열고 장민호는 오래된 대나무 상자를 꺼낸다. 다갈색의 구두 한 켤레 클로즈업.

 

 

 

  구두가 사라지면서 영화 속 시간이 거꾸로 가기 시작한다. 생기발랄한 장동건과 원빈, 그리로 이은주가 화사하게 웃는다. 그때 영미가 들어온다. 거꾸로 가고 있는 시간을 되돌리듯 영미가 쟁반 옆에 가방을 툭 던진다. “이걸 밥이라고 먹어?” 힐난인지 걱정인지 종잡을 수 없는 투다. 힐난이기도 하고 걱정이기도 하겠지. 묵묵히 밥 한 숟가락을 푹 뜬다. 그래. 이건 밥이 아니다. 영애는 밥 아닌 밥을 입에 넣는다. 밥과 장아찌를 씹는 입 저쪽, 어금니 하나가 시큰거린다. 어쩌다 밥알이 푹 빠지기도 하는 그 어금니는 썩어 뿌리만 남아 주기적으로 지독한 통증을 불러일으킨다. 치통은 모멸스러운 것이다. 발뒤꿈치에 두툼하게 앉은 각질이라든가, 큐티클이 자라는 손톱, 수북한 겨드랑이 털 같은 것들처럼, 치통이 올 때마다 영애는 십 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그렇게 십 년째 치통과 함께 밥을 먹는다. 치통과 먹는 밥은 밥이 아니다. 귓밥이나 걸레, 제 손으로 대충 자른 머리카락과 변기 뚜껑, 제멋대로 퍼져 자란 눈썹과 굽이 낮은 구두 같은 것들과 함께, 여름옷과 겨울옷에서부터 가방, 신발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낡은 것들과 함께, 베란다의 빨래대며 에어컨 실외기, 텔레비전 리모컨과 이불, 베개 같은 것들과 함께 영애는 치통의 발발지점에 머물러 있다.

 

  “여기 205동 602혼데요, 볶음밥 두 개요. 최대한 빨리요.” 가방 옆에 앉은 영미가 중국집에 주문을 한다. 그리고 한결 누그러진 투로 말한다. “볶음밥 먹고, 미장원 가자. 머리가 이게 뭐야?” 영미가 뻗쳐 오른 영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 울컥 눈물이 솟으려는 걸 감추느라 영미 손을 떨친다.“캡 쓰면 돼.” 작업용 캡을 쓰면 아무리 잘 다듬은 머리도 한 가지 포즈로 나오게 되어 있다. 동료들은 일이 끝나면 캡을 벗고 난 뒤 움푹 들어간 자국을 고대기로 펴고 유니폼을 갈아입지만 영애는 캡을 쓰고 유니폼을 입은 채로 집에 온다. 아이가 살아 있는 이들은 아이를 잃은 여자의 뒤에서 수군거린다. 저 여자, 애가 죽었대. 안됐어, 참. 하지만 저 꼴이 뭐야. 십 년이나 됐다면서 정신을 못 차리고. 회사에선 저런 여잘 왜 안 자른대? 더럽고 기분 나빠. 그때 그 사고로 특별법이라는 걸 만들어서 제 발로 나가기 전엔 못 자른대. 보상금도 꽤 받았을 건데 왜 꾸역꾸역 나오나 몰라. 그래도 너무하는 거 아냐? 이 자리라도 구하려고 목매달고 있는 사람 줄을 섰는데, 웬 특혜냐고. 일터에서의 따돌림은 고통스럽지만 견딜 만하다. 영애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다. 일을 하면서 고통을 잊으려는 것도 아니다. 캡을 쓰고 작업복을 입으면 유미가 사라지기 전의 시간 속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어코 되돌려 놓고 싶은 순간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2화에서 계속됩니다.

 

 

 

 

조명숙 소설집 『조금씩 도둑』

 

조명숙 지음 | 문학 | 국판 변형 | 244쪽 | 13,000원

2015년 4월 6일 출간 | ISBN : 978-89-6545-286-7 03810

 

2012년 소설집 <댄싱 맘> 이후 3년 만에 소설가 조명숙이 네 번째 소설집을 출간했다. 어둠을 식별하는 감각적 문체와 정주하지 않고 유목하는 글쓰기 행보를 보였던 그가, 이번 소설집에서는 상처 입은 여성들의 세심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들로 돌아왔다. 특히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한 '점심의 종류'가 수록되어 있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와 현대인의 상실감을 엿볼 수 있다.

 

 

 

조금씩 도둑 - 10점
조명숙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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