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 소설집 『만남의 방식』

 

                       설마설마하니 진짜 그 정인(情人)이다. 저자가 소설가로서 지은 자신의 이름 정인 말이다. 저자는 소설집 『만남의 방식』을 출간한 다음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애인을 “늘 그립고, 위안과 고통을 함께 주는 존재”라고 했다. 독자로서의 나는 그립다는 말이 주는 서정이 좋았으나, 편집자로서의 나는 누군가의 타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연인이라는 존재가 고독하고 연약해 보였다. 그 사랑이 진행 중이든 이미 단절되었든 상관없이 연인은 결국 누군가의 연인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만인의 연인이라 할지라도) 물론 이것은 금방 부정되어 머릿속에서 사라진 감상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통과 고백, 치유의 경계를 넘나드는 소설집 『만남의 방식』 중 가장 어두운 편인 작품 「밤길」에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폭력이 등장하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마지막엔 변기에 오줌을 눠놓고 화영의 얼굴을 몇 번씩이나 처박았다. 마침내 화영이가 오줌물이 뚝뚝 흐르는 얼굴로 울음을 터뜨리자 깔깔거리며 말했다. 다음엔 똥이야!” 나는 괴로워하며 초교를 보고 이후 교정할 때마다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한번은 나의 고통을 호소하며 이런 장면을 쓸 때 힘들지 않느냐고 묻기도 했는데, 작가는 쓸 때는 힘들지 않은데 쓰고 나서 힘들다는 요지의 답을 했다. 지금도 나는 쓰고 나서야 비로소 찾아오는 힘듦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잘 모르며, 다만 그 말을 곱씹을 때마다 어떤 강인함을 느낄 뿐이다. 대적자를 순식간에 압도하는 종류와는 다른, 이를테면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냄으로써 기우제를 지내면 비가 내린다는 말을 기어코 참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런 묵묵한 끈질김. 그것 때문에 나는 『만남의 방식』에 실린 작품 여덟 편이 앞다투어 모국어를 잊어야만 했던 남자, 딸이 자살한 여자, 성폭행을 당하고 그 기억을 잊어야만 하는 소녀, 혼자 요트를 몰고 악명 높은 파도를 뚫는 남자 들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려주어도 지나치게 괴로워하지는 않게 되었다. 독자 여러분도 그러시기를 바란다. 물론 괴롭지 않다는 말은 외면이 아니라 용기와 가까워야 할 것이다.


2014년 5월 상하이대학교와 함께하는 동아시아 문학교류를 위해 부산의 여러 소설가, 시인, 평론가와 함께 상하이에 다녀왔다. 정인 소설가도 일행이었다. 문학포럼을 경청하고 문학의 밤 행사에서 우아하게 작품을 낭독하던 작가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남다르게 기억하는 것은 작고 개인적인 일화이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와이파이가 일행 중 유독 저자에게만 불통이었다. S.O.S.를 받고 옆방으로 건너간 내가 휴대전화를 들고 이것저것 건드려보아도 해결하지 못해 다시 여기저기에 물었으나 끝내 저자는 상하이에서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했다. 저자는 답답했을지언정 이제 와 다시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구석도 있다. 그 넓은 대륙을 쥐락펴락하는 전파도 저자에게는 감히 범접하지 못한 게 아닌가. 억지가 좀 심했나? 그래도 정인은 강인하다. (출판저널 2014년 10월호 편집자 출간기에 게재된 글입니다)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