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미혜 소설가의 갑작스러운 별세가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지난 16일 향년 52세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는 소식을 신문 지면을 통해서 봤는데요. 재작년 저희 출판사에서 나온 『부산을 쓴다』라는 책에도 선생님 작품이 실려 있는 인연이 있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쉽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김미혜 소설가의 생전의 모습


책에 넣을 저자 사진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라 ‘참 예쁘시게 웃으시는 분이구나’ 했었는데 이런 아픔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명랑한 성격의 고인은 오로지 소설밖에 모르는 타고난 예인이었다고 합니다. ‘현상은 마음의 그림자이므로 현상을 바꾸려면 마음을 바꾸면 된다’라는 각성을 늘 마음에 품고 다녔다고 하는데요. 그래서인지 아프시면서도 그렇게 환하게 웃으실 수 있었는가 봅니다.

고인은 부산 출생으로 1994년 문화일보를 통해 등단했고, 작품집으로 콩트집 『웃어주기』(1990), 창작집 『몇 가지 증상의 일상적 소묘』(2001) 등을 남겼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부산을 쓴다』에 실린 단편 「별을 향해 쏘다!!-온천천」을 싣습니다. 내용이 길어 두 번에 나눠 싣습니다.

 

별을 향해 쏘다!!
-온천천-

 진부하고 재미없는 표현이지만, 어떤 고통이나 기쁨도 고통만이 전부거나 기쁨 자체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즈음, 삶에 대해 안도한다. 귀찮고 힘든 일 속에 숨은 예측불허한 삶의 비의와 모순처럼 보이는 것에 숨은 정연한 질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기운들은 ‘이루지 못한 일’에 대해 초조해하거나 안달나지 않게 해서 좋다.

본가에서 살다 이곳 아파트로 가출(?)한 이듬해. 단지 내의 중앙집중식 난방방식을 개별 난방으로 바꾸자는 입주자대표회의의 대주민발표가 있었다. 물론 나는 반대했다. 주면 주는 대로 살면 편할 걸, 숨쉬기도 힘든 세월을 사는 내게 이사한 지 일 년 만에 멀쩡한 집을 파뒤집는다는 사실도 그렇고. 좁디좁은 베란다에 보일러를 설치한다는 것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다행스럽게도 반대의견이 많아 개별 난방공사는 없던 일이 되었다.

그런데 3년 만에 다시 일이 터졌다. 각 동별로 찬반투표가 시작되었고 결국 우리 동도 대세에 밀려 공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내닫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애초 계획된 베란다 쪽이 아니라 뒷방을 뜯어내고 복도에다 보일러를 단다는 것. 내심 걱정한 소음의 피해와 공사 규모는 줄어들게 되었지만 뒷방에 가득 찬 짐들은 또 어쩔 것인가!

공사비 마련과 짐 옮길 걱정으로 잠이 오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을 즈음, 희한한 일이 생겼다. 20년도 더 전에 상 하나를 같이 받은 사람이 작은 출판사를 열었다며 자신의 작품을 A4용지에 인쇄해 내게 보내준 것이 있었는데, 무심하게 봐 왔던 그 책이 갑자기 눈에 확 들어온 것이었다. 순간 한 생각이 떠올라 전화를 걸었다. 혹시 복사나 제본도 가능한가 하고. 그의 답이 시원했다. 복사도 제본도 가능하고, 전화도 반갑다고. 아마도 나를 박대하지 않던 그의 친절함 때문에 내 고민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하이고, 그기 먼 고민이라꼬. 내가 가서 당장 옮기 주께요. 10분이면 될 걸 갖고.”
공사하기 일주일 전, 그는 이십 몇 년 만에 나타나 정말 순식간에 뒷방을 깨끗이 비워 주었고, 그 방에서 나온 술 한 병을 손에 들려주자 실은 바빠 죽을 판이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내 힘으론 결단코 불가능한 일이 예정에 없던 전화 한 통으로 해결이 되었던 것이다.

한데,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빈 방의 장판을 들춰 보니 목욕탕 쪽 방바닥이 시커멓게 곰팡이에 절어 있었다. 위층의 목욕탕 배수관이 터졌을 때, 우리 집으로 새어 내려온 물이 바닥에서 썩는 중이었던 것이다. 워낙 잡동사니들로 가득 찬 방이라 나는 방바닥이 썩는 줄도 모르고 있었고.

사연을 들은 사직동 영혜 씨가 고무장갑까지 챙겨서 달려왔고, 함께 락스를 풀어 씻고 닦고 말리고 하느라 온몸이 녹초가 되어 버린 오후. 영혜 씨가 가자마자 K 선생께서 한 보따리나 되는 밑반찬을 싸들고 오셨다. 내 생각인지 모르지만 나를 보는 K 선생의 눈빛이 아련했다. 찬물 한 잔 마시지 않은 그분은 금방 일어나셨고, 떠난 자리엔 두툼한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통화 때마다 공사비 걱정을 하시더니. 머릿속이 하얘지며 가슴이 저려 왔다.

파쇄기의 소음으로 온 세상이 떠나갈 것 같던 공사 당일. 시멘트 먼지의 폭탄 속에서도 어쨌거나 무사히 하루해는 저물었다. 방을 파뒤집는 공사도 끝났고 이제 한숨 돌리나 했더니 웬걸. 이번엔 온수관 해체공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자화수기(磁化水機)! 이사올 무렵, 자화수기는 꼭 있어야겠기에 아는 여사님께 부탁을 했는데 굳이 대금을 마다하셔서 더 귀히 여기고 있던 물건. 그러니 공사 전에 그놈부터 미리 챙겨 놔야.

온수관 해체작업이 끝난 후 자화수기를 부착했다. 그런데 601호 전직 선생님이 오셔서 내 집 아닌, 옆집 603호에 자화수기가 달렸다는 거였다. 그럴 리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 선생이 부러지게 말씀하셨다. 계량기 잠궈 놓고 들어가서 물 틀어 보면 된다고. 이 선생과 함께 두 집의 계량기를 잠궈 가며 확인한 결과. 자화수기는 4년이 넘도록 내 집이 아닌, 남의 집에 달려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이 선생이 나를 비웃었다. 바보 쪼다라고. 욕먹어도 쌌다. 허나 욕을 먹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공사 아니었으면 아니, 이 선생 아니었다면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것 아닌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어떻게 아셨냐고. 공사하기 전 각 계량기마다 호수 적는 걸 보셨는데 내가 자화수기를 들고 왔다 갔다 하기에 제대로 달았는지 확인해 봤단다. 그랬구나. 인생은 이처럼 복선으로 넘치고, 처처의 귀인들은 알아서 맹활약 해 주시고.

자화수기를 내 집에 달자 물때가 끼지 않아 청소를 자주 하지 않아도 타일 바닥이 뽀송뽀송한 것이 여간 행복하지 않았다. 한데 깨끗하니까 오히려 재미가 나서 온종일 청소하느라 고단한 몸이 더 고단해졌다. 무리했다 싶었는데, 결국 대형사건 하나를 저지르고 말았다. 뻑뻑한 현관문을 있는 힘껏 열다가 육중한 철문에 왼발 엄지발톱을 통째로 날려 먹은 것이다. 생발톱이 날아가 버린 발가락은 처참하고도 무서웠다. 몇 달 고생을 했고, 죄 없는 일이어서인지 발은 덧나지 않고 잘 나아 주었다. 방심한 나는 발톱이 덜 난 발에 붕대를 감은 채 센텀시티로 이사 온 동창 순애의 차를 타고 쑥 캐러도 가고 가까운 외출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약해진 피부가 신발 속에서 서로 맞닿아 다친 발이 성이 나 버린 것이다.

덧난 발은 처음의 통증과는 강도 자체가 달랐다. 진통제는커녕 항생제 한 알 먹지 않고 동인당고약과 에너지워터만 바르며 생으로 통증을 이겨 냈다. 그러다가 엊그제 비뇨기과 개업의인 사촌동생 영수에게 전화를 했다. 통증이 뒤늦게 녀석을 생각나게 한 것이다. 내 목소리를 듣자 평소와 다르게 녀석이 엄청 반가워했다.

“아이고, 그렇잖아도 내가 전화 한 번 때릴까 했는데.”
발을 다쳐서 어쩌고저쩌고 덧나서 어쩌고저쩌고. 그러나 녀석은 내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제 말만 했다.
“아, 잘 됐네. 오늘 밤에 쫌 봅시다.”
발이 아파서 못 나간다 해도 막무가내였다.
“아, 마, 나오소. 내가 의산데 뭔 걱정이라요.”

망미동에서 택시 타고 오다가 토곡사거리에서 국민은행 쪽으로 좌회전하라, 좌회전해서 한 150미터쯤 오면 오른편에 주유소가 하나 있다, 그 주유소를 축으로 유나삼계탕 골목으로 우회전, 우회전해서 직진하면 한양아파트 6동과 21동을 양쪽에 두고 관통하게 된다, 그 길을 계속 직진하다 보면 온천천 길과 딱 마주치게 되는데 왼쪽으로 붉은 벽돌 건물이 보일 것이다, 그곳에서 택시를 버리고 횡단보도를 건너라, 길을 건너면 바로 온천천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인다, 허나, 계단으로 내려가지 말고 연안교 쪽으로 10미터만 올라오면 누님이 좋아하는 화장실도 있고 작은 정자가 하나 있다, 그곳으로 저녁 먹고 9시까지 나와라, 집에 갈 때는 모셔다 준다.

녀석의 설명이 그랬다. 웃기는 녀석이었다. 명색이 의사라는 사람이 아픈 발을 배려하기는커녕, 그 발을 끌고 밤 9시에 만나자니. 한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했다. 녀석이 그렇게 나오니 통증이야 어떻든 불안감이 가시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나가 볼 생각도 생겼다. 저녁식사 전 잠깐 아고라 게시판을 보고 있는데 해운대 진숙 씨가 재활용품과 음식물쓰레기를 치워 주겠다며 전화도 없이 찾아왔다. 고마움 섞어 저녁상을 차렸고, 그래봤자 찬 없는 시시한 저녁을 먹었고, 시간이 되어 진숙 씨와 함께 집을 나섰다.(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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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