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년남의 애팔레치아 트레일 3360km 여행기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미국 동부의 14개 주를 관통하며 남과 북을 연결하는 아주 긴(3360km) 등산로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백두대간(1400km)에 해당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1
500m 넘는 봉우리가 무려 350개나 줄줄이 이어지고, 종주하는 데 반년(사람마다 편차가 있지만 보통 5개월 이상)이나 걸리며 야생곰의 습격이나 예상치 못한 기후 변화, 추위 등의 위험으로 가득 차 있는 길이다.

저자가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결심한 계기는 두 가지. 등산로가 집 근처를 지나간다는 게 첫번째 이유고 두번째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50년 안에 지구 온도가 4도 상승하면 미국의 숲은 사막화 현상으로 사바나(대초원)가 된다. 숲의 나무가 모두 사라지기 전에 자신의 눈으로 봐두고 싶었던 것이다.

종주를 결심하고 그는 곧바로 주위에 그를 아는 모든이들에게 이 사실을 떠벌린다. 그러자 사람들은 (잘 아는 친구의 얘기라며) 애팔래치아 트레일에서 곰이나 살쾡이가 나타나 사람을 해꼬지한 무시무시한 얘기를 해대며 겁을 주었다. 그러나 중년남의 생각은 달랐다. 총기소지가 합법인 미국에서 그 어떤 야생동물보다도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도시보다는 인적 드문 산길이 오히려 안전할거라고 위안하며 결심을 굳힌다.

트레킹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고 등산장비점에 들렀는데, 종류는 왜그리도 많고 가격은 왜그리 비싼지. 똥 묻을 때 쓰는 플라스틱 삽(것두 오렌지색)도 있다는 걸 알고 저자는 거의 실신 직전이다. 결국 똥 묻는 삽은 안샀지만, 쉐르파 몇 명만 고용하면 히말라야 원정이라도 갈 수 있을만큼 많은 장비를 구입한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생긴 이래로 여러 번 사라질 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트레일 구간에 상업지역이 형성되거나 민간인들이 땅 소유권을 주장하기도 했는데, 다행히 당시 미 내무장관 스튜어트 우달이 등산애호가여서 트레일 옆 민간인 땅을 1억 7천만 달러의 국비로 사들여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바람에 길이 살아난 것. 권력자의 취향(?) 덕분에 길의 운명이 확 달라진것이다. 낙동강의 앞날을 생각해보니... 휴... 애팔래치아 트레일! 넌 정말 운이 좋았다.

숲을 걸으면서 저자는 국토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자연이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는 걸 절절히 깨닫는다. 예산부족을 핑계로 직무유기를 밥먹듯 하는 국립공원 관리국과 나무를 보호해야 할 산림청이 오히려 민간기업에게  벌목허가권을 내주고 땅 임대로 돈벌이에만 급급하다고 맹비난한다.

두어달동안 약 1000km의 숲길을 걸었다. 종주를 마치진 못했지만 과정에 만족했고 마중나온 아내와 아들은 몰라보게 날씬해진 아빠의 모습에 환호했다. 가족을 만나기 위해  몇주만에 대면한 도시 풍경에 저자는 당황한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너무나 익숙한 일상이었는데 말이다. 끝없이 펼쳐진 주차장, 쇼핑몰, 주유소, 월마트, K마트, 던킨도넛츠, 블록버스터 비디오 대여점. 끝도 없는 상업 세계의 현란함에 저자는 현기증을 느낀다.

돌아온 후 저자는 숲을 못잊어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린다. 틈만 나면 배낭을 매고 근교 산이나 숲으로 향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길에서 땀을 흘리고 시장해지면 배낭을 열어 아내가 싸준 도시락 반찬을 확인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 저자는 말한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가르쳐준 게 있다면 "우리 삶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사소한 환희를 정말 행복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고.

<나를 부르는 숲>은 여행작가 겸 기자로 20년간 영국에 살다가 미국으로 귀향한 빌 브라이슨의 애팔래치아 트레일 여행기이다. 책을 다 읽고나니 산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 집 뒷산 백양산으로 향했다. 좀 가다보니 산 밑으로 삼광사가 보이고 조금 더 가니 수퍼마라톤 코스 표지판이 보였다. 그렇다고 수퍼마라톤에 도전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 오솔길의 끝은 어디일지 조금 궁금하긴 했다.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남원 행정리 서어나무 숲길



나를 부르는 숲 - 10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동아일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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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산지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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