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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일기

뒤바뀐 페이지

by 산지니북 2010. 2. 26.

저자 : "오후에 책을 받았는데 너무 잘 나왔습니다.
          표지 색감도 좋고 아주 마음에 듭니다. 감사합니다."
출판사 직원 : "네. 마음에 드신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그럼..."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통화를 끝냈다.
휴~ 또 제작 한 건을 무사히 마쳤구나.

그런데 몇일 뒤에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무슨 일일까.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당황한 저자의 목소리.

저자 :  "지금 책 들고 계시면 146쪽 한번 펴보시겠어요?
출판사 직원 :  "네. 잠깐만요. 혹시 책에 무슨 문제라도..."
저자 :  "146쪽 다음 몇 쪽이지요?"
출판사 직원 :  "146쪽 다음이 헉! 149쪽이 나오네요. 우찌 이런일이..."

페이지가 뒤바뀌다니.
제본사고였다. 정합[각주:1]이 잘못된 것이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100여권의 책을 만들면서 한번도 없던 사고였는데.
죄인된 심정으로 연신 죄송합니다를 중얼거렸다.

금정산 소나무. 소나무 원목은 펄프의 원료로 쓰이기도 한다.

얼른 해결하겠다고 저자를 안심시킨 후 부리나케 인쇄소로 전화했다.
자초지종을 말하며 따지니 인쇄소 사장님도 당황하신 듯.  
개학 앞두고 제작 물량이 넘쳐 급하게 작업하다보니 제본과정에 실수가 생긴 것 같다고. 책을 모두 수거해 인쇄소로 보내면 표 안나게 수술해서 다시 보내주겠다고 한다. 휴~ 다행이다. 최악의 상황엔 재인쇄까지 예상하고 있었는데. 순서가 뒤바뀐 종이 두 장 때문에 200쪽 가까이 되는 책 수백권을 파지로 만들고 새 종이로 다시 만든다면 나무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다.

인쇄고 제본이고 기계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결국은 사람 손으로 하는 것이므로 실수가 나기 마련이다. 전전긍긍해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했다.

지난 일요일, 수술한 책을 진주의 저자에게 다시 보냈고
오늘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저자의 목소리는 다시 예전의 따뜻한 톤으로 돌아가 있었다.

저자 :  "어쩜 이렇게 감쪽같지요? 정말 표가 하나도 안나네요."
출판사 직원 :  "네. 아무래도 전문가들이다 보니... 잘 고쳐져서 다행입니다."

휴~ 이번엔 진짜 한 건 마무리.
인쇄소 사장님을 너무 닥달한 게 마음에 걸린다.
사람이 살다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건데.
다음에 또 이런 일이 터지면 좀 더 너그럽게 대처할 수 있을 것 같다.


  1. 인쇄된 낱장을 페이지 순서대로 추리는 작업.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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