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잠홍 편집자입니다. 


며칠 전, 보내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가 없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얇은 흰 봉투,

그리고 우편번호 없이 적힌 구주소.



조심스레 봉투를 열어보니 편지 한 장이 나왔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쓰신 것이 느껴지는 새해 인사로 편지는 시작되었고

이어지는 짤막한 문장들을 통해 

편지를 쓰신 분께서 안타까운 사연으로 2015년 말에 

수감생활을 시작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교도소 생활에서 유일한 낙이며 소일거리인 독서, 

그래서 용기내어 적어 보내신

책을 단 한 권이라도 보내달라는 부탁.


여기까지 읽자

작년에 읽었던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이 떠올랐습니다.



신 선생님께서는 수감 시절 동양 고전 공부를 시작하셨지요.

책 읽기가 어려운 감옥이기에, 

한 권을 오랫동안 읽을 수 있는 책인 고전을 선택하셨다고 합니다.

물론 고전 이외에 소설 책도 여러 권 가지고 계셨고,

동료 수감자들에게 책을 빌려주기도 했다고 쓰셨는데요.

수감자 한 명당 소지할 수 있는 책에도 제한이 있어

소지품 검사를 받게 되면 여러 재소자들이 합심해 책을 이리저리 숨겼다고 합니다.

('도둑질, 사기 등으로 감옥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책 몇 권 숨기는 건 일도 아니었다' 

정도로 쓰셨던 것 같아요.)

재소자들이 몰래 몰래 소설책을 전달하고 읽는 모습을 상상하면 

언뜻 미소가 지어지기도 합니다.

산지니로 편지를 보내주신 분이 말씀하셨듯이

자유롭지 못한 생활에서 책 읽기가 작은 기쁨이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신영복 선생님께서는 한 인터뷰에서 교도소를 

"역사가 썩는 듯한 " 악취가 나는 "끔찍한 풍경" 으로 묘사하셨습니다.


1970년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 신영복 교수가 처음 수감됐던 안양교도소 전경. 출처: 신동아


'재소자 준수사항'에 자살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을 정도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 일이 빈번했던 그곳에서

선생님은 무기징역자로 생활하셨습니다. 

기약 없는 수감 생활 동안 자살하지 않은 이유로 '햇볕'을 드셨는데요.


"내가 (교도소에서)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다. 길어야 2시간밖에 못 쬐는 신문지 크기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다. 겨울 독방의 햇볕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였고 생명 그 자체였다."


자살하지 않은 이유가 '햇볕'이었다면 살아가는 이유는

"하루하루의 깨달음과 공부"였다고 합니다.

겨울의 교도소, 아직 다른 이들이 잠을 자고 있을 때 일어나

고요함 속에서 "생각을 벼르던" 일.

그 시간에 어떤 책의 어느 구절을 곱씹으셨을지

또 책과 함께 주변의 사람들을 어떻게 살피셨을지 궁금해집니다.

書三讀(서삼독)


독서는 삼독입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필자를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합니다.



산지니로 온 편지 중에 있는 말, '소일거리' 라는 단어를 찾아보았습니다.



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소일거리'란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기 위하여 심심풀이로 하는 일' 입니다.

편지에 쓰신 대로 하루하루의 '유일한 낙'이기도 하며 

'그럭저럭 심심풀이로 하는 일'이기도 한 것,

큰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소소한 기쁨을 주기도 하는 것이 책 읽기인 것 같습니다.

편지 주신 분처럼, 저도 이 두 가지 의미로서의 책 읽기를 모두 좋아합니다. 

저에게는 출퇴근 길에 읽는 책, 책상에 붙어앉아 읽는 책, 연필을 꺼내들고 읽는 책 모두 

저에게 기쁨과 자유를 주고, 쓸쓸함을 조금씩 녹여주는 책들이니까요.


편지를 쓰신 분께서는 올 한 해 산지니의 만사형통까지 기원해주셨습니다.

책을 보내드리고 싶지만, 주소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구주소를 써주신 것으로 보아 도로명주소가 사용되기 시작한 2014년 전에 출간된 책을 읽어보시고 연락을 주신 것 같은데, 이 밖에는 딱히 유추하기가 어렵습니다.


안타까운 마음 한 켠에 두고, 이렇게나마 인사 드립니다.

책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참고 자료: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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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2016.06.20 0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안타까운데요.... 어떻게라도 좀 보냈으면 해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