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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책/정치|사회

춘추전국 시대의 국제정치-『조공과 사대』(책소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6. 10.

시대마다 달랐던 조공과 사대 실체와 성격 비교

중국 전통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전체 입장에서 고찰


조공과 사대를 매개로 한 과거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의 국제질서를 살펴보고 G2로 격상된 현대 중국의 세계관과 외교 책략을 짚어본 책이다. 먼저 방읍국의 성읍국가 시대에 조공의 기원을 찾아보고, 은·주 왕조 시대와 춘추전국 시대의 조공 실체와 성격을 비교한다. 특히 선진(先秦, 진나라 이전의 중국 문명) 시대 왕조 교체와 시대 변화에 따른 조공의 특징과 변화를 분석해 선진이후 중국과 주변국 간에 오랫동안 시행되어왔던 조공의 성격과 역사적 의미를 설명한다.

지금까지 조공에 관한 연구 경향은 중국의 전통적 시각에서 중국에 대한 주변국의 자발적인 내조(來朝)로 간주하거나 중국 천자와 제후 간의 봉건적 군신관계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조공이 주 왕조의 봉건제도하에 주 천자와 제후 간의 봉건적 관계에서 기원한 것으로 단순하게 이해했던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조공과 사대가 국가 간 종속관계에서 이뤄졌다고 판단하기보다 시대마다 성격과 역할이 달랐다고 보고 이를 자세히 설명한다. 또한 저자는 조공과 사대를 중국 위주의 국제질서가 아니라 주변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전체 입장과 시각에서 고찰해야 함을 강조한다.


방읍국의 성읍국가 시대 조공의 기원


농경의 발달로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기존의 농경지가 부족해지자 점차 부족들은 자신의 영역 밖으로 활동을 넓혀가면서 다른 부족과 충돌을 일으켰다. 결국 토지 쟁탈전이 발발되어 전쟁은 부족사회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졌다. 각 부족사회는 군장을 정점으로 무력을 소유한 전사 집단과 농경에 종사하는 농민으로 구성된 군장사회로 발전하였고 주거지 주변에 흙과 돌로 구성된 성벽을 구축하였는데 이것이 성벽으로 무장된 방·읍·국 즉 성읍(城邑)의 출현이었다. 부족사회의 상호 역학관계에 의해서 약소부족은 강대부족에게 생산물의 일부를 공물로 헌상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공납의 발생이었다.

그러나 강대부족은 약소부족을 정복했을 때 왜 직접 수탈하지 않고 기존 체제를 유지해 주면서 공납을 허용했을까? 저자는 그 이유가 강대부족이 약소부족 전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상호연맹 결성을 위한 정치적 군사적 필요성, 강대부족에게 보호받고자 하는 약소부족의 필요성 등 공동의 군사적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은주 왕조 시대 조공의 실체


은 왕조가 수립되면서 연맹 방·읍·국의 정치·군사적 수장들은 은 왕의 ‘제후’, ‘제백’으로 참여하여 조근과 공납을 행하였다. 은나라 왕은 일정 영토와 무력을 소유한 제후, 제백을 변경의 전략적 요충지에 배치하여 적대적인 주변 방국들의 외침에 대비하고, 동성의 씨족을 각지에 봉하여 번병으로 삼았으며 또 ‘복’을 사방에 배치하여 치안을 담당하게 했다.

저자는 은·주왕에 대한 제백 제후들의 조공은 본질적으로는 방읍국 사회에서 약소부족이 강대부족에게 행한 공납과 다르지 않았고 은·주왕에 대한 제백 제후의 조근과 공납 즉 조공은 대소 동맹국 간의 역학관계에서 이루어진 정치·군사적 복속의례였다고 말한다.


 은 왕조의 국가 기반이었던 방국연맹을 형성하고 있던 제백 제후국은 상읍에 비해 정치·군사적으로는 열세하였지만 정치적으로는 자족 ‘후’ 영도하의 독립적, 농경에 기반한 자급자족적, 군사적 자위능력을 갖춘, 그리고 장구한 씨족전통, 공동지연의식, 공동혈연의식, 공동운명의식 등으로 강력히 결속된 성읍국가들이었다.                                                                    _「본문」중에서


춘추 시대 대국 조공의 성격과 역할


춘추 시대에는 주 왕조의 제후국들이 주왕의 봉건적 통어를 벗어나 독립 영토 주권의 대소 열국으로 발전하여 국제사회를 형성하였다. 그리고 성장 과정에서 영토 크기, 인구 수효, 경제력 규모, 군사력 강약 등 여러 요인에 의해 대국, 차국, 소국이 형성되었지만 국력의 차이에 관계없이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춘추 중기 이후 제·진·초 같은 대국이 출연하여 주변의 약소열국을 병합하면서 치열한 쟁패전을 전개됐다. 약소열국은 자국의 보존을 위해 대국에 일방적 조빙·헌물의 조공 사대를 행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또 대국으로터 이를 강요당했다. 그러나 약소열국은 자국의 안전과 실리에 배치되면 조공 사대 관계를 서슴지 않고 단절하기도 했다. 대국이 천하통일을 위해 약소열국에게 땅을 일부 떼어 바치는 ‘할지’를 강요하자 점차 조공의 형식도 바뀌었다. 시대의 상황에 따라 조공과 사대의 성격도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대국과 약소열국 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군사적 세력균형이 형성되었으며 이 같은 정치·군사적 세력균형 속에서 약소국이 특정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조빙·사대 이행을 통하여 정치?군사적 복속을 표명하는 경우 대국은 이를 거부할 명분과 이유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_「본문」 중에서


지은이 : 이춘식

고려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목포 출생,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사학과에서 문학 석사를 취득했다. 국립대만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고 미국 브리검영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켄사스 대학교에서 철학 석사를 받고 같은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동양사학과와 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중국고대의 역사와 문화』, 『중국사 서설』, 『사대주의』, 『중화사상의 이해』, 『춘추전국 시대의 법치사상과 세((), 『유학의 천도관과 정치이념』, 『중국학 자료해제』, 『중국 패권의 뿌리와 이념』외에 다수 논문이 있다.






조공과 사대

이춘식 지음 | 신국 | 28,000원

978-89-6545-351-2 94910 | 2016년 5월 25

 

조공과 사대를 매개로 한 과거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의 국제질서를 살펴보고 G2로 격상된 현대 중국의 세계관과 외교 책략을 짚어본 책이다. 먼저 방읍국의 성읍국가 시대에 조공의 기원을 찾아보고, 은·주 왕조 시대와 춘추전국 시대의 조공 실체와 성격을 비교한다. 특히 선진(先秦, 진나라 이전의 중국 문명) 시대 왕조 교체와 시대 변화에 따른 조공의 특징과 변화를 분석해 선진이후 중국과 주변국 간에 오랫동안 시행되어왔던 조공의 성격과 역사적 의미를 설명한다.


 

조공과 사대 - 10점
이춘식 지음/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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