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문화부는 2018년을 마무리하면서 산지니, 전망, 해성, 호밀밭(이상 부산), 남해의봄날(통영), 펄북스(진주) 등 부산과 경남의 출판사 6곳에 “올해 펴낸 책 가운데 특히 인상 깊었던 책, 독자와 함께 다시금 되새기고 싶은 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지역 출판사들의 올해 성과를 이를 통해 소개한다.
◇ 지역화로 인간·환경 공존 찾는 ‘로컬의 미래’
# 남해의봄날
- ‘마녀체력’ 운동으로 바뀐 인생
우리는 언제까지 ‘성장’만을 이야기해야 할까? 지구의 자원이 유한함에도 끝없는 성장을 추구하는 오늘날 글로벌 소비 경제에 지친 이들에게 권하는 책이 ‘로컬의 미래’다. 스테디셀러 ‘오래된 미래’의 저자이자, 환경운동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신작(최요한 옮김)이다. 저자가 인류에게 전하는 시급하고 중요한 메시지는 환경을 해치고, 경쟁만을 부추기는 세계화에서 벗어나 ‘지역화’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화는 인간과 환경이 공존하고, 많은 사람이 문화 다양성을 지키며 행복하게 사는 해법이자, 공동체를 회복하는 행복의 경제학이다.
올해 ‘마흔 열풍’을 일으킨 바로 그 책! 출간과 동시에 무수한 독자의 추천과 함께 “운동을 새로 시작했다”는 희소식 릴레이가 이어지게 한 그 책! 바로 ‘마녀체력’(이영미 지음)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건강’은 꼭 들어간다. 하물며 마흔 전후 여성에게 ‘체력’은 남은 인생 전체를 좌우할 큰 무기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하루 내내 책상 앞에 앉아 일하던 저질 체력의 에디터가 마흔에 운동을 시작해 ‘운동장 한 바퀴’에서 철인 3종을 완주하는 ‘철녀’로 거듭나는 여정을 오롯이 담았다.
◇ 해양소설집 ‘하선자들’… 뱃사람 용어 ‘오롯’
# 전망
한국출판산업진흥원 콘텐츠 사업에 선정된 ‘선장 시인·소설가’ 이윤길의 해양소설집이다.
바다에서 일하는 이윤길 작가는 해마다 배를 타기 위해 남미로 떠난다. 그가 떠나기 전 서둘러 완성된 작품을 받았고 교정을 봤다. 이어 작가는 훌쩍 떠났다. 그가 바다로 떠나면 연락할 길이 막막하다. 발간하기까지 힘겨웠던 것은 이 책에 무수히 나오는 뱃사람들의 용어였다. 현역 선장에게 확인도 했지만 확인이 안 되는 것도 있었다. 더 어려운 것은 지명이었다. ‘하선자들’이라는 제목을 어떻게 표현할지 표지를 디자인하는 일도 까다로웠다. 그렇게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 전신 발작 장애아의 성장동화 ‘마법에 걸린 아이’
# 해성
- ‘희망은 있는가’ 지역문화 성찰
동화작가 서하원의 장편동화 ‘마법에 걸린 아이’에서 전신 발작의 장애를 가진 아이 한별이는 종일 학원을 쳇바퀴 돌 듯 수업을 듣는다. 무한 경쟁사회에 사는 청소년이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배우게 하려는 엄마의 노력은 눈물겹다. ‘지식 주도 성장’을 외쳐대는 엄마에 항거해 “나는 내 길을 가겠다”며 홀로서기를 외친 한별이의 성장기는 흥미롭다. 작가는 미래 환상 세계를 통해 한별이와 엄마의 ‘지금, 이곳의 교육’에 질문을 던진다.
문학평론가 남송우(부경대 국문학과) 교수의 ‘지금, 이곳에 희망은 있는가’는 ‘근원’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한 결과를 ▷한국 교회의 현실 ▷우리 대학, 무엇이 문제인가? ▷지역문화가 가야 할 길 등 세 영역으로 나눠 정리했다. 지역문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문화인으로서의 고민이 담긴 이 책은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 탈북 청소년의 삶 그린 소설 ‘생각하는 사람들’
# 산지니
- ‘국가폭력과 …’ 유해발굴사 정리 - ‘독일 헌법학의…’ 논저 31편 번역
제주도의 예멘 난민 문제가 올해 큰 이슈였다. 그 누구도 답을 알지 못했던 난민 수용에 관한 찬반 논쟁이 있었다. 우리는 이미 난민과 함께 살고 있었다. 자유를 찾아, 먹고 살기 위해 남한 땅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은 멀리서는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서 보면 보이는 두껍고 높은, 투명한 유리벽에 가로막혀 온전한 한국인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난민이다. 장편소설 ‘생각하는 사람들’에는 정영선 작가가 2년간 하나원 내 청소년 학교에 파견교사로 근무하며 지켜본 탈북 청소년의 삶과 이야기가 생생하다. 올해 제35회 요산김정한문학상을 받았다.
‘국가폭력과 유해 발굴의 사회문화사’(노용석 지음)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연구와 유해 발굴을 주도한 저자가 현장에서 얻게 된 풍부한 사례와 자료에 이론을 더해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유해 발굴 역사를 정리한 책이다. 유해 발굴의 의미를 가족의 시신을 찾는 ‘좁은 단위’에서 국가와 인간의 보편적 인권을 이야기하는 ‘넓은 단위’로 확장하고, 잊혔던 ‘비정상적 죽음’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한다. 과거사 청산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이 시점에 주목할 책이다.
‘독일 헌법학의 원천’(카를 슈미트 외 지음)은 2018년 세종도서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책이다. 카를 슈미트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헌법학자 김효전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독일 헌법학 주요 논저 31편을 번역해 엮은 1184쪽의 방대한 책이다. 독일 헌법학 이론은 우리나라 입헌 민주주의의 뼈대라 할 수 있는데, 이 책은 독일 헌법학 이론을 정독해 우리 헌법학의 특수성과 입헌 민주주의 발전을 되짚어볼 수 있게 한다. 김효전 교수는 이 책으로 지난달 목촌법률상을 받았다.
◇ 중세~현대 날씨 연대기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
# 펄북스
- 헌책방의 매력 ‘아폴로 책방’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알렉산드라 해리스 지음·강도은 옮김)는 732쪽이라는 분량에서 알 수 있듯 작업 기간이 꽤 길었다. 지역 출판사 대부분이 한정된 인원으로 업무를 처리하는데 그러다 보면 이 정도 볼륨의 책은 시간이나 제작비 부담 등으로 포기하기 쉽다. 애초 이 책의 내용에 매료됐기에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중세에서 현대로 이어지는 날씨 연대기라 할 이 책은 날씨 관련 문학작품이나 회화 그리고 예술가의 이야기 외에도 흥미롭고 새롭고 신기한 날씨 이야기가 정말 많다. 공을 많이 들이다 보니 정가도 만만찮은데 도서관에 신청해서라도 읽어주시길 부탁한다.
‘아폴로 책방’은 현재 진주에서 헌책방 ‘소소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 조경국의 소설집이다. 조경국 작가는 ‘밥벌이와는 상관없이’ 사랑하는 책방, 인연을 맺었던 책, 책방을 찾은 사람들에 대한 팬픽이라고 이 책을 소개하곤 하는데, 펄북스 또한 현직 책방지기가 들려주는 본격 책방 소설집을 만들며 매우 행복했다.
작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과 다채로운 사연을 한 권의 책과 연결하면서 어느새 우리를 아폴로 책방으로 데려다 놓는다. 매 단편의 끝에는 소설에 등장하는 책에 관한 책방지기의 책 소개가 있다.
◇ 남성권력이 만든 여성혐오 ‘못생긴 여자의 역사’
# 호밀밭
- 강동수 소설집 ‘언더 더 씨’
미투 운동을 중심으로 한국사회에서도 페미니즘과 여성 인권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하지만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비인간적으로 대해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못생긴 여자의 역사’(클로딘느 사게르 지음·김미진 옮김)는 여성 외모를 둘러싼 혐오와 권력관계의 긴 역사를 추적한다. 왜 여성에게 아름다움은 ‘의무’인가? 왜 여성에게 추함은 ‘죄악’인가? 저자는 “남성들은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야 했다”고 말한다.
‘언더 더 씨’는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의 세 번째 작품이자 소설가 강동수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 세월호 참사를 마주한 작가의 윤리적 슬픔이 기록된 표제작 ‘언더 더 씨’를 비롯해 일곱 편으로 이뤄진 소설집은 군더더기 없는 문체와 탄탄한 서사 구성을 통해 소설 양식이 감당해야 하는 임무를 떠안는다. 중진 작가 강동수의 신작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한국사회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이란, 새로운 저항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반어적 감수성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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