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출판일기

부산에서 열린 '가을 독서문화축제' 이야기

by 산지니북 2010. 10. 1.

지난 17일(금)부터 19일(일)까지 3일간 열린 '2010 가을 독서문화축제' 소식입니다. 2008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처음에는 서울 행사였는데, 전국순회행사로 바뀌어 올해는 부산이 행사지로 선정되었습니다. 어린이책축제는 매년 열리고 있지만 청소년, 성인을 대상으로 한 책축제가 부산서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행사는 시청 앞 야외광장과 청사 1층 로비에서 열렸습니다. 3일간의 축제이므로 산지니 식구들도 날짜를 정해 돌아가면서 출판사 부스를 지켰습니다. 제가 맡은 행사 둘째날(토요일) 아침, 버스를 타고 시청앞에서 내려 행사장을 찾았습니다. 돛때기 시장을 예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축제의 장이니 조금은 사람들로 북적이겠지 하는 저의 예상을 뒤엎고 청사 앞은 너무나 한산했습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만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고 있더군요.
정문을 지났는데 1층 로비의 문은 꼭꼭 잠겨 있고 행사장으로 가는 길표시라든지 행사를 알리는 펼침막이 같은 것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아 조금 당황했습니다. 여기가 아닌가? 분명 시청에서 한다고 했는데. 청사 뒷쪽으로 가는 아이들을 따라가니 그제야 북적북적 사람들도 눈에 띄고 광장에 행사부스도 차려져 있고 뭔가 하는 분위기더군요. 어쨌든 버스 타고 정문쪽으로 온 사람들은 저처럼 '여기가 행사장 맞아?'하는 조금은 당황스런 경험을 했다는 후문입니다.  

정문 쪽으로 들어오니 행사장이 저 아래에 있네요. 흠.. 돌베개 부스도 보이구요.

행사장 가운데 놓여 있는 커다란 책 모양의 설치물.

재밌는 설치물 앞에서 다들 기념촬영도 하고 특히 아이들이 좋아했습니다. 근데 신기해서 만져보려고 손을 뻗으면 어디에선가 진행요원이 쏜살같이 달려와 막았습니다. 보디가드 2명을 항시 대동한 이 설치물은 볼 수만 있고 만지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비싼 거라네요. 미술관 전시품도 아니고, 저도 신기해서 이걸 뭘로 만들었나 만져보고 싶던데 아이들은 오죽할까요. 보다 못한 한 시민이 그렇게 비싼거면 '만지지 마세요'란 팻말이라도 하나 세워놓지 그러냐며 혀를 차기도 했습니다.

산지니도 1층 로비의 출판사 존에 한자리 차지했습니다.
그 옆으로 작가마을, 전망, 해성 출판사 등 부산에 있는 출판사들이 모여 있습니다. 서울 출판사들도 몇군데 보이네요. (주)잉글리쉬 에그, 청개구리, 돌베개 등등.

산지니 부스는 종합 안내소 옆. 입구쪽이라 비교적 좋은 자리였습니다.

전시해놓은 책들

주최측에서 마련해준 길쭉한 테이블 2개와 책장에 책을 전시했는데 공간이 조금 모자랐습니다. 그동안 출간한 100여종의 책을 모두 가져갔거든요. 부산관련 책과 신간, 잘나가는 책들을 앞쪽매대에 진열하고 보니 뒷쪽에 밀린 책들이 '나도 잘보이는 좋은 자리에 놓아줘'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아 조금 미안했습니다. 사실 쉽게 만들어진 책은 한 권도 없었지만, 판매 여부에 따라 대우가 달라지는 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책의 운명이겠지요. 
 

'신문화지리지'를 들고 있는 독자

역시 부산 관련 책과 '논어'같은 고전에 관심이 많으시네요. 신간 '발트3국에 묻힌 아름다움과 슬픔'도 인기가 좋았습니다. 책을 살 때 보통은 많이 살펴보고 이거살까 저거살가 무지 고민하고 결국은 안사고 그냥 가는 사람이 더 많은데, 어떤 어린 여자분께서 휙 둘러보더니  600쪽짜리 '논어'를 골라 선뜻 "계산해주세요"라고 해서 좀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강원도에서 시집온 어떤 아주머니는 30년 넘게 살았는데 누가 부산에 대해서 물어보면 아는 것이 없으니 어떤 책이 좋겠냐고 물어보셔서 '부산을 쓴다'를 추천해드리기도 했습니다.
부산의 한 파워블로거도 만났습니다. 책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신 블로거였는데 산지니에서 나온 책들을 많이 사보셨다고 해서 더 반가웠습니다. 좋은 책을 많이 내는데 출판사를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며 마케팅에 좀 더 힘을 쓰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앞으로 신간이 나올때마다 소개 메일을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축제 로고가 찍힌 커다란 손수건을 선물로 주는군요.

무료로 나눠주는 손수건은 금방 동이났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섰거든요. 손수건처럼 책도 잘나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희 맞은편에 있는 보수동 헌책방 존입니다. 그 외 추리문학관 부스와 프랑스문학관 부스도 있네요. 저희가 매달 '저자와의 만남' 행사를 열고 있는 인문학카페 백년어서원도 보입니요. 부산에 있는 출판사와 서점, 북카페 등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보수동 책방 존에 걸려있는 옛날 잡지와 포스터

선데이서울이 이렇게 오래된 잡지인 줄 몰랐어요. 그런데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인 두 여배우의 표정과 시선이 무척 비슷하지 않나요? 저 시절의 얼짱각도는 저랬나 봅니다. 낡고 바랜 잡지 표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니 헤드카피가 꽤나 선정적입니다. "정신병 고친다는 <섹스> 요법"
 "女子에겐 관심 없는 총각 배우 재벌" 등등.

독서삼매경에 빠진 아이들.

꼬맹이들이 땅바닥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기특해서 가까이 가보니 모두들 만화책에 푹 빠져있네요.^^ 아동책을 특가(천원)에 판매중인 보수동 헌책방 부스는 꼬마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젊은 엄마들은 역시 아이들 교재에 관심이 많네요. 저희 부스 바로 옆에 있던 영어교재 출판사입니다. 행사 전날 부스 위치 확인하러 갔는데, 이 곳은 이미 각종 배너와 pop, 화려한 조명으로 으리번쩍하게 전시를 해놓고 아줌마 손님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더군요.

부스를 지키다 책구경도 할겸 둘러보았습니다. 서울서 내려온 몇 안되는 출판사 중 하나인 돌베개에 들러 책은 좀 나가냐고 물어보니 직원분께서 한숨을 폭 쉬시며 "서울서 정말 저희만 왔을 줄은 몰랐어요, 홍보가 많이 안된 것 같아 아쉽네요"라고.  책을 팔아 수익을 낼 목적이었다면 못왔을텐데... 책은 많이 안나가지만 저녁마다 부산에서 맛난 것 많이 먹고 있다구요.^^ 곰장어랑 회를 먹어봤다고 해서 돼지국밥을 권해드렸습니다. 독자와의 만남을 위해 먼거리를 달려온 돌베개의 열정에 응원을 보냅니다. 책도 만천원에 두권을 샀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저렴한 가격에 좋은 책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이런 책축제의 또다른 즐거움이지요.

소설과 정영선과 문학을 만나다

오후에 정영선 소설가와 허정 평론가를 모시고 장편소설 '물의 시간'을 만나보는 자리가 열렸습니다.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바쁘게 달려오신 정영선 샘과 벌초도 미루고 꼼꼼한 질문지까지 준비해 토론회에 참석해주신 허정 샘께 감사드립니다. 행사에 사람들이 너무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았습니다. 자리가 없어 임시 의자를 내올 정도였거든요.^^

책에 사인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학생들

오늘도 역시 경남여고에서 국사를 가르치고 계신 정영선 샘의 제자들이 많이 왔습니다. 토론회 중에 한 학생이 이런 질문을 했어요. "선생님은 글을 쓰는 것과 저희를 가르치는 것 중 어떤게 더 좋으세요?" 좀 예리한 질문이지요.^^  선생님은 "내가 받아본 질문중에 4번째로 좋은 질문이네요"라며, 한때 교사를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되어 글만 쓰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고 하시네요. 주위에서 글만 써서는 먹고살기 힘들다고 모두 말려 결심을 접었는데, 교사라는 직업덕분에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고 이만큼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으므로 가르치는 것과 글쓰는 것 모두 소중하다고 답해 예리한 질문을 슬쩍 피해가셨습니다.

실내 행사장

저녁부터 시작된 야외행사


아이들 손을 잡고 온 젊은 엄마 아빠들, 4~50대 아저씨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  토요일 수업대신 왔는지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보였고,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보였지만 3일동안 대체적으로 한산한 분위기였습니다. 축제 전에 홍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대부분 모르시더라구요. 이런 축제를 한다는 걸요.

이번 책축제는 전국순회축제라 부산에서 열리는 건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전국을 모두 돌고 십몇년 후에 다시 열릴지도 모르겠지만요. 가을은 축제의 계절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여기저기 많은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대부분 볼거리 먹을거리 위주입니다. 마음을 살찌우는 이런 책축제가 부산에서 매년 열렸으면 합니다. 조금 있으면 부산국제영화제와 광안리 불꽃축제로 부산이 들썩거리겠지요. 다른 대형 축제들의 예산에서 조금만 떼어줘도 가능한 일 아닐까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