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산지니 인턴 하혜민입니다. 지난번에 올린 『데린쿠유』의 서평에 이어 저자 인터뷰까지 맡게 되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원래라면 직접 찾아뵙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만, 안지숙 작가님이 계신 곳과의 거리가 멀어 직접 찾아뵙기가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너무 아쉽게도 서면 인터뷰로 진행하게 됐습니다.
책을 읽고 제가 궁금했던 점이나 알고 싶었던 것들에 대한 질문을 드렸는데, 작가님께서 아주 상세히 답변해 주셨습니다. 다 같이 한번 보실까요?
▲ 안지숙 작가님께서 찍어주신 사진.
Q. 안지숙 작가님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 출간됐습니다. 장편이니만큼 오랜 시간 공을 들이셨을 것 같아요. 『데린쿠유』가 출간된 기분이 어떠세요?
A. 되게 막 좋을 것 같았는데…. 책을 처음 받아 대면하는 순간 스스로 대견한 마음 반, 허전한 마음 반이랄까. 첫 장편이니만큼 문학상 공모에 당선돼 화려하게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채로 내서 이런가, 싶어요.
Q. ‘데린쿠유’라는 단어를 처음 봤을 때 굉장히 낯설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이런 단어를 발견하시고, 작품의 주요 소재로 끌어오실 수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터키에 놀러 갔을 때 가이드 해 주신 분이 지하 우물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 우물을 같이 찾아서 들어갔죠. 허리를 거의 90도로 숙이고 아주 좁은 길을 걸어 내려갔는데, 한참 가다 보니 마을 형태의 구조를 이룬 빈 공간들이 나오더군요. 무수히 많은 작은 방들, 방과 방 사이의 통로, 끝없이 이어지는 통로 어디쯤에서 비밀스럽게 뚫린 방공호, 회의 장소로 썼음직 한 너른 방, 화장실로 썼지 싶은 공간…. 그곳이 아랍인들로부터 목숨을 구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숨어 살던 곳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현실의 공포를 피해 이곳 지하 공간으로 숨어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나 역시 현실의 고통, 현실의 어려움을 피해 숨어들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현실적 공간이 없을 때 우리는 마음속 자신만의 공간으로 도피해 숨어들잖아요. 데린쿠유는 실재하는 구조물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고통을 피해 숨어드는 상징적 공간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생각을 하는 동시에 ‘데린쿠유’를 제목으로 내세운 소설을 쓰기로 마음먹었지요.
Q. 작품 속 등장하는 인물 한 명, 한 명마다 캐릭터 성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 하나 인상적이지 않은 인물이 없지요. 현수, 다솜, 경술, 복임, 세라, 찬우를 비롯해 안 감독이나, 은주, 정숙과 같은 인물들까지도요. 작가님께서 인물에 굉장히 공을 들였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인물 설정은 대개 어떻게 하시는 편인가요?
A. 소설 시놉시스를 쓸 때 서사에 알맞은 역할을 배분하고 성격을 구체적으로 스케치했습니다. 성격이 잡히면 거기에 맞는 말투나 얼굴, 몸집이나 버릇 같은 게 자연스럽게 따라붙더군요. 그리고 사실 이 소설이 친부모 찾기라는 신파 라인을 타고 가잖아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드라마를 많이 봤어요. 소설을 접어놓고 며칠간 완결된 드라마를 통으로 다운받아서 보기도 했고요. 여러 인물의 성격과 대사를 유념해서 봤는데 그게 도움이 된 것도 같습니다.
▲ 안지숙 작가님께서 찍어주신 사진.
Q. 다솜이 순우리말로 ‘사랑’이라는 의미가 있잖아요. 저는 세라와 찬우의 사랑(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으로 태어난 현수가 자신의 데린쿠유를 벗어나 새로운 길로 들어서는 과정에서 다솜에 대한 사랑이 그 방식이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혹시 다솜이의 이름을 그런 의도로 지으신 건지 개인적으로 궁금합니다.
A. 네, 맞아요. 맑고 따뜻하고 한없이 건강하고 밝은 여자아이를 현수의 여자 친구로 만들어주자고 생각했고, 우리말에서 찾았어요. ‘양명’(亮明)시라는 ‘환하게 밝은’ 도시에 사는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밝은 양지의 사람이에요, 다솜은.
Q. 저는 이 글을 다 읽고 나서 '복임'이란 인물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친아들을 사고로 잃고, 현수를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어쨌든 너도 내 아들이라고 말하는 엄마의 모성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고요. 작가님께서는 『데린쿠유』의 인물 중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A. 현수죠. 다른 인물 하나하나가 다 애착이 가지만 그 많은 인물 사이에서 약간 뚱한 표정으로 느리게 오가는 인물 현수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손을 잡고 갔으니까요. 복임의 경우, 사실 제가 아이를 낳아 기른 적이 없어 자식 잃은 감정을 그대로 살려내는 게 좀 힘이 들었어요. 복임이란 인물을 제대로 살려냈나 싶기도 하고…. 제 손안에 쥐기가 버거운 인물이었습니다.
Q. 우리 사회 내에 신체적 질병을 참아 내는 세라나 정신적 질병을 참아내는 현수와 같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요, 그에 따라서 그들만의 데린쿠유도 분명히 다양하게 존재할 것 같고요. 작가님께서는 이렇게 고통을 참고 버텨야 하는 삶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회의 방향성에 따르면 세라와 같은 미련함을 지녀야 할 것 같은데, 내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서는 그 자리를 벗어난 현수와 같은 삶도 필요한 것 같거든요.
A.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도 하던데요. 피할 수 없는 고통은 자기 방식대로 감당할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숙명 아니겠습니까. 세라의 경우가 그렇죠. 그게 성격의 한계이든 질병을 가지고 살아가는 신체적 한계에서 오는 것이든 간에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여지가 있다면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벗어나는 것 자체가 힘들고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을 극복하면서 다른 인생에 도전하는 게 더 나은 삶을 이루지 않을까요. 인생, 한 번뿐인데 할 수만 있다면 밝고 긍정적으로 사는 편이 좋겠죠.
▲ 안지숙 작가님께서 찍어주신 사진.
Q. 작가의 말에 '용서와 화해로 방향을 틀기가 쉽지 않았다.'라는 대목이 있는데, 원래 그리시던 데린쿠유의 결말이 궁금해요. 저는 서로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있었기에 이 소설이 성장소설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생각했는데요. 만일 작가님이 그리신 결말대로 갔더라면 현수의 운명은 어떻게 뒤바뀌었을까요?
A. 바로 위의 질문에 대한 답과 연관되는 건데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대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있거든요. 현수가 처한 삶, 현수가 살아가는 방식에서 밝고 건강한 다솜의 삶으로 뻗친 손을 거둔다면 현수는 자신의 지하도시에 머물게 되겠죠. 복임과의 거리, 세라와의 거리를 좁히지 않고 자신의 지하도시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현수의 모습, 이게 결말이 되었을 것 같네요. 아마도.
Q. 우연히 작가님 블로그를 통해 출간 소식을 알리는 글을 보게 됐습니다. 해당 포스트에는 '궁극적으로 고통을 치르는 방식'에 대해 쓴 글이라고 언급하셨더라고요. 그 글을 읽고 나니 단순히 이 소설 속 인물들이 성장했다는 지점에만 초점을 맞출 수가 없게 되었어요. 작가님은 성장에 반드시 성장통처럼 고통이 잇따른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A. 현수뿐만 아니라 세라도, 복임도, 경술도, 심지어는 송찬우도 자신만의 고통을 견디면서 살잖아요.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선택한 삶의 양태를 보여주고 있죠. 성장하고 변화하는 삶에는 필연적으로 고통이 따른다고 봅니다. 사는 꼴이 어떻든 자신의 삶에 안주하고 자포자기해버린 인물에게 성장통이란 건 따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들 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자포자기한 삶, 본인은 편하잖아요. 하하.
Q. 이전에 내신 소설집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도 그렇고 이번에 나온 『데린쿠유』도 그렇고 작가님께서 사회에서 배제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풀어나가는 이유가 있을까요?
A. 저 자신이 사회에서 배제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배제당하고 소외당하고 몸이 아픈 경험이 그런 인물들을 만들어 소설 속에서 움직이게 하고, 현실의 고통과 두려움, 공포를 이겨내게 함으로써 소설 속에서 구원을 받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가 제 인생을 견디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견디는 저 같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 안지숙 작가님께서 보내주신 사진.
Q. 두 번째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시다고 들었는데, 장편의 경우에는 한 번의 호흡이 길게 이어져야 하잖아요. 작가님께서 긴 호흡을 가지고 계속해서 글을 쓰실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있을까요?
A. 30대 때 몸이 좋지 않아 6, 7년 정도 아무것도 못 하고 허송세월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 장편소설을 무지하게 읽었습니다. 그때 사들인 책의 80%가 장편소설이었어요. 엎드려서 읽고 누워서 읽고 앉아서 읽고 서서도 읽었죠. 읽었다기보다 읽어치웠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리는 독서질풍의 시대였죠. 그때의 독서가 알게 모르게 장편의 서사를 떠올리고 장편의 호흡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됐을 겁니다. 단편을 쓰는 것보다 장편 작업을 하는 게 일단 재미가 있어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전공자로서 문학이 세상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요. 이론이 도출하지 못하는 지점에 선 문학이 우리가 실천하게끔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고,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A. 이건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각 한 권밖에 못 낸 작가에게 하기에는 너무 거창한 질문 같은데요. 하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위의 질문에 대한 답과 같다고 해야겠네요. 문학은, 작품 속 인물들의 삶과 그 삶 속에서의 선택들, 어려움을 이기고 고통과 슬픔, 아픔을 겪어내는 모습들을 통해 자기성찰을 끌어내는 힘이 있죠. 자기성찰 속에서 위안도 얻고 반성적 자아를 만나기도 하면서 행동에도 변화가 오게 하는 문학이 좋은 문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학의 역할에 대해 지금 제가 생각하는 건 그 정도입니다.
▲ 안지숙 작가님의 환한 미소.
데린쿠유 - 안지숙 지음/산지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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