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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일기

[서평]사우스 센트럴의 사라진 여인들 『그림 슬리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9. 7. 15.

 

 책을 처음 집었을 때 강렬한 색감의 표지가 눈길을 끌었다. 일반적인 스릴러 소설 중 하나가 아닌가 싶었다. 그림 슬리퍼라는 제목은 무슨 뜻일까 궁금하던 찰나 '어두운 공동체의 느긋한 살인마, 잠들었던 살인마를 파헤친 기자 리포트' 라는 문구에 눈길이 갔다. 스릴러 소설이 아닌 논픽션이라니, 구미가 당겼다.

 

 

 이 책은 범죄 전문 기자인 크리스틴 펠리섹이 '흑인'이자 '여성' 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의 희생양이 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10년 동안 기록한 책이다. 젊은 여성들을 살해하고 그 시신을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버린 연쇄살인범. 그림 슬리퍼라는 책 제목은 펠리섹 작가가 연쇄살인범에게 붙인 별명이다. 이토록 극악무도한 사건에 대해 정부와 언론은 잔인하리만큼 무관심했다. 저자는 연쇄살인범에게 별명 하나 없는 것조차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림 슬리퍼라는 별명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살인 사건 사이에 긴 휴식기를 가지는 특성을 고려해 'The Grim Sleeper(잠들었던 살인마)' 라고 불렀고, 그 결과 언론의 관심을 얻어 재수사가 시작된다.

 

  연쇄살인마에 초점을 맞추고 적나라하게 사건을 서술해나가는 일반적인 범죄 기록집들과 달리 이 책의 초점은 범인 로니 프랭클린이 아니다. 살인자의 특징과 그의 내면적인 부분을 필요이상으로 설명하거나 수식하지 않는다. 책의 주인공은 살인범이 아니라 피해자들이다. 피해자들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그들의 일상생활이 우리들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이웃이었음을 알린다.

사우스 센트럴 지역에 사는 코카인에 중독된 가난한 흑인 여성들은 같은 방식으로 죽고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13년의 긴 휴식기를 가진 후 살인범은 똑같은 25구경의 권총을 사용해 다시 같은 대상의 그들을 노리기 시작한다. 펠리섹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던 이 사건을 집요하게 수사하기 시작한다.

 

피해자 ‘제니시아 피터스’의 어머니인 레이번을 만났고 그는 강도-살인 사건팀 형사들이 제니시아의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6개월쯤 뒤에 찾아왔다고 했다. 그들은 레이번에게 온갖 질문을 했지만 수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다. 레이번은 경찰이 자신의 딸이 연쇄살인범의 무작위 살인에 희생된 거라고 말해주지 않은 것에 화가 났다. 여성들이 흑인이 아니거나 흑인 거주 지역에서 살해당하지 않았다면 경찰은 연쇄살인범의 존재를 대중에 공표했을 것이라고 레이번은 말했다.  (214쪽)

 

제니시아의 시신이 2007년 발견되었을 때, 2005년 5월 카리브해 아루바에 졸업 여행을 갔다가 실종되어 크게 보도되었던 금발 소녀 나탈리 할러웨이와 달리 제니시아의 사건은 6시 뉴스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미디어는 할러웨이 사건을 끝도 없이 방송했다. 기자들이 조사하러 그 이국의 섬까지 파견되기도 했다, 레이번의 딸이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을 때, 조사하러 파견된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기자 회견도 없었다. 보상금도 없었다. (215쪽)

 

 피해자 어머니인 레이번의 말처럼 피해자들은 모두 '흑인'이자 '여성'이였으며 ‘빈민가’에서 살고 있었다. 그림 슬리퍼의 타겟이 된 그들의 죽음에 정부도 대중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만약 공동체의 다른 이들이 피해자들을 자신들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주었다면, 그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면 범죄자 프랭클린은 그림 슬리퍼라는 수식어를 달 수 있었을까.

 

에니트라는 프랭클린이 처음에 그를 거절하고 차에 타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자기를 공격했다고 생각한다고 그에게 말했다 - "난 괜찮다고 했어요. 혼자 걸어갈 수 있다고, 멀리 가지도 않는다고. 하지만 당신은 내게 치근덕대며 말했더요. ‘그게 바로 당신들, 흑인 여자들의 문제야.’ 마치 백인 여자들만 당신 격에 걸맞다는 것처럼요 그러니까 이게 당신이 우리한테하는 짓인 거죠? 당신을 낳은 여자도 흑인이에요. 당신도 흑인이고. 그런데 어떻게 우리를 그런 식으로 무시할 수 있죠? 그런데 우리가 당신을 위해 나서길 바라요? “ (360쪽)

 

 

가족들의 진술이 끝났을 때 프랭클린은 표정 없이 앉아 있었다.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간혹 가족들 쪽을 휙 바라보기는 했지만 한 번도 직접 눈을 맞추지는 않았다. 후회하는 기색은 없었다 수치심으로 고개를 숙이지도 않았다. 그걸 바라보며 나는 저 사람이 후회의 감정을 가질 능력이 있는지 궁금했다. 아마 그저 무감각했을지도 모른다. (361쪽)

 

 그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가난하고 나이 많은 사람들의 차를 수리해주는 친절하고 사려 깊은 이웃이었다. 그가 자신의 범죄를 부정했기 때문에 확실한 동기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집 불과 4km반경 내에서 20년 동안이나 살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몇 번의 살인에도 그에 대한 처벌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수사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들도 대중들도 피해자들의 죽음에 점점 둔감해졌고 범인은 이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도넬 알렉산더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내게 걸어와 나를 끌어당겨 안았다. 10년전 자기 집 문을 두드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던 살인 사건에 대해 글을 써줘서 사하다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는 흐느끼며 말했다. “관심 가져주셔서요.” (406쪽)

 

  가족도 지인도 아니었던 펠리섹 기자는 무려 10년간 집요하게 이 사건을 취재했다. 가족들이 피해자들의 죽음이 풀 수 없는 미스터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체념할 때, 그는 그들과 같이 진심으로 슬퍼했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족들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관심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 인상 깊게 읽었던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이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크리스틴 펠리섹이 이 사건을 긴 시간동안 조사했던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피해자들에게 그동안의 무관심을 사과하고자 함은 아니었을까. 희생자들의 존엄성을 회복해주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이 지점에서 나는 생각한다. 과연 지금 우리의 공동체에 대해 나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혹시 우리 공동체 내에 이런 차별은 없는가. 부끄럽게도 나는 자신 있게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가 없다. 사건이 발생한지 수 십 년이 지났다. 슬프지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여전히 세상에는 맥락이 없는 혐오가 넘쳐나고 이웃의 안녕에 무관심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펠리섹은 매우 예의 있게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무례함이 만연하고 자극적인 적나라한 보도가 들끓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미덕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

 

 

 

그림 슬리퍼 - 10점
크리스틴 펠리섹 지음, 이나경 옮김/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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