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보냈던 중의 일이다. 중국의 하반기에는 11월 11일 전후로 나라 전체가 물류로 들썩인다. 한국에서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로 유명한 날이지만 중국에서 11월 11일은 '광군제'라는 중국 최대 규모의 인터넷 쇼핑 축제날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유명한 인터넷 쇼핑몰은 일 년에 단 한 번 파격 세일을 하는 마케팅을 진행하고, 소비자들은 장바구니에 물건을 마구마구 담는다. 그 어마어마한 주문량은 또 하나의 광경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택배 상자 수가 감당이 안 될 만큼 많아서 땅에 우르르 쏟아놓은, 마치 언덕처럼 솟아오른 ‘택배 언덕’이다. 그것을 보면 택배 작업량이 엄청 많겠는데?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중국뿐만이겠는가. 전 세계적으로 점점 온라인 쇼핑의 비중은 높아지면서 택배의 비중 또한 높아지고 있다. 당연히 택배 작업 노동도 작업량이 많아질 것이다.
중국은 아니지만 한국의 택배 노동 환경을 그린 만화 『까대기』 가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택배 노동 환경은 어떠할까? 이 책은 애타게 기다린 택배 상자 안의 물건만 보던 우리들의 시선을 택배 상자 밖으로 옮긴다. 옮긴 시선이 닿는 곳에는 치열한 택배 작업의 현장이 있다.
가대기 : 창고나 부두에서, 인부들이 쌀가마니 같은 무거운 짐을 갈고리로 찍어 당겨서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 또는 그 짐.(표준국어대사전)
현장감 가득한 내용과 시각적인 만화의 시너지
-표지
책의 내용은 표지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까대기'라는 제목 밑에 깔린 노란색 테이프 표현이 그렇다. 그리고 표지에는 택배 상하자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 '바다'와 곧 배송될 수많은 택배 상자들이 있다. 화물차 안의 상자 더미 속에서 잠시 쉬고 있는 무표정한 표정의 주인공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본문 속 작업 환경
출처 : 『까대기』 p.207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던 택배의 뒷이야기가 만화로 생생하게 펼쳐진다. 택배 현장에 가득한 네모 네모난 상자들은 뒤로 가면 갈수록 내가 기다리던 '설레는 상자'라는 생각보다 인물들이 견뎌야 하는 '힘겨운 짐'으로 다가온다.
이상을 좇으며 현실을 사는 주인공에 대한 공감
출처 : 『까대기』 p.30
출처 : 『까대기』 p.39
주인공 바다는 만화가를 꿈꾸며 지방에서 서울로 왔다. 생활비에 대한 걱정의 현실과 이루고 싶은 만화가라는 이상 사이에 택배 아르바이트가 있었다. 바다는 자신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택배 현장을 만화로 그리고자 한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줄여나가려는 주인공을 보는 것은 주인공과 멀지 않은 고민을 하는 청년으로서의 '나'를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택배 현장을 통해 그리는 '우리'를 위한 위로
"어차피 몇 번 쓰고 버릴 텐데 대충 써."
지점장의 그 말이
......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기를 바랐다. pp.124~125
출처 : 『까대기』 p.125
『까대기』는 택배 노동 환경의 열악함을 말한다. 특수 고용직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얻지 못하는 상황(pp.120~123), 택배사들의 무리한 택배비 경쟁으로 그 피해는 택배기사들과 물류센터들에게 전가되는 '택배계의 공룡'(pp.155~157)이 나온다. 노동자의 열악한 환경은 택배 업계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책을 덮은 뒤에 우리는 생각에 잠긴다.
작가는 전반부, 후반부에 걸친 23개의 에피소드를 아울러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위로였다.
"하나하나의 택배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저마다의 벽을 깐다. 벽을 깐다. 함께 벽을 깐다." pp.278~279
작가는 곧 터질 것 같은 짐처럼 버거운 그들의 삶에 귀를 기울여 이야기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오늘을 산다. 그러나 오늘을 여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더불어 살면서 벽을 깐다, 오늘을 산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잘 알지 못하고 또 쉽게 잊는다. 그러나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기다리던 택배 상자 안의 반가움 속에서 고개를 들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그 안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인생을. 더 나은 삶을 위해 용기 내서 바꿔야 할 현실을. 결국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 삶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저자소개
이종철 (지은이)
어린 시절 포항제철 공단 지역에서 살았다. 시골 마을과 공단 사이에 있는 상가 동네였다. 그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부모님과 함께 제철소 노동자들과 건설 인부, 식당 종업원, 시장 상인, 농민 등 다양한 노동자의 삶을 보며 자랐고 만화 작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생계를 위해 6년 동안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인 ‘까대기’를 했다. 그때 기록한 이야기들을 만화 《까대기》로 만들었다.
펜화로 그린 어린이 창작 만화 〈바다 아이 창대〉(모두 3권)의 그림 작가로 참여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은 두 편의 단편 만화를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연재했다.
책소개
택배는 사람들의 일상을 편리하게 하지만 그 뒤에는 고된 노동이 숨어 있다. 《까대기》는 일을 하면 하루 만에 도망치게 된다는 전설의 알바,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의 실상을 A부터 Z까지 담은 만화책이다. 만화가를 꿈꾸며 서울로 올라온 주인공 이바다는 택배 알바를 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간다. 《까대기》는 실제로 6년 동안 택배 일을 하며 만화를 그린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취재와 인터뷰로는 끌어낼 수 없는 생생한 택배 노동 현장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녹아 있다. ‘2018 다양성만화제작지원사업’ 선정작이다.
까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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